하영은 막 아래층으로 내려오다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그대로 제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레고 별장은 세준이와 세희, 그리고 희민이가 꽤 오랜 시간을 공들여 만든 결과물이었고, 아직 지붕을 덮는 공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망가져 버렸으니 애들이 돌아오면 화를 낼 게 분명했다.하영은 밀려오는 짜증에 잠시 눈을 감고 벽에 기댄 채 마음을 가다듬었다.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하영은 한번 또 한 번 호흡을 가다듬고, 복잡한 생각은 일단 뒤로 하자고 눈을 뜨는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하영은 아래층으로 내려와 돈에 눈이 멀어버린 인간들을 보며 싸늘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3층에 방이 두 개 있으니까 알아서 골라요.”강씨 가족들은 그 말에 바로 정신을 차렸다.“자, 우리가 지낼 방을 구경이나 좀 해볼까?”강미정은 말을 마치고, 계단 입구에 서 있던 하영을 옆으로 밀치면서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그때 구 선생이 계단에서 내려오면서 강씨 가족들을 돌아보며 하영의 곁으로 다가왔다.“강하영 씨, 저 사람들은…….”“일단 참으세요. 저는 회사에 일이 있어서 집안일을 부탁 좀 할게요.”“네……, 알겠습니다.”구 선생은 아무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오후.하영은 배현욱과 약속을 잡고 함께 공장으로 향했다.공장에 도착한 하영은 공장의 부지 면적에 충격을 받았다.MK 산하의 의류 공장이니 소규모는 아닐 거라고 미리 심리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어마어마한 공장의 부지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니 1억이라는 임대료가 너무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공장에 들어선 하영은 각 작업실마다 간판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각 작업실의 생산 단계는 완전히 달랐고, MK에는 자체의 방직 고장을 갖고 있었다.배현욱이 순찰차 한 대를 구해와, 하영을 데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구경시켜 줬는데 하마터면 힘들어 쓰러질 뻔했다.그리고 가끔씩 계속 사진을 찍어 우인나에게 보내줬는데, 우인나는 한참 뒤에야 답장 한 마디를 보냈다.“비용
공장을 전부 둘러보고 나니 어느새 애들이 하원할 시간이 다가왔다.하영은 배현욱과 헤어지고 유치원으로 향했고, 뒷좌석에 앉은 두 아이를 보며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세준아, 세희야. 너희들한테 얘기해줄 게 있어.”세희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무슨 일인데요?”“엄마 아버지 친척이 집에 와 게시는데, 행동거지가 별로 좋지 않아서 실수로 너희들이 만든 레고를 박살 냈어.”“네?!”세희는 눈을 크게 뜨고 깜짝 놀라 소리 질렀다.“왜 우리가 힘들게 만든 성을 박살 냈어요?”그 말에 세준도 입가의 미소를 거두고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어떤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교양이 없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래서 너희들한테 해줄 얘기가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자신을 잘 지켜야 해, 알겠지?”“언제까지 우리 집에 있어요?”“엄마도 정확히 모르겠어.”세준의 물음에 하영은 고개를 저었고, 세희의 눈가에 뿌옇게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엄마, 혹시 그 사람들이 엄마를 괴롭혔어요?”세희의 말에 하영은 얼른 세희를 품에 안았다.“엄마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잖아. 그런데 어떻게 엄마를 괴롭힐 수 있겠어? 엄마 걱정은 하지 마.”세희는 앙증맞은 손으로 하영의 옷을 꽉 쥐고 흐느꼈다.“그들이 너무 심하게 굴지만 않으면, 우리도 엄마 입장을 난처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그럴 필요 없어. 엄마는 너희들이 다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얘기했잖아. 정말 너희들을 괴롭히면 참지 말고 욕해도 돼.”‘만만하게 보이기 시작하면 끝까지 만만한 사람으로 남을 뿐이야. 나를 지킬 방법은 많아. 그러니까 절대 애들만큼은 참게 하지 않을 거야!’세준도 주먹을 불끈 쥐고 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두고 보고 싶었다.‘감히 엄마가 우리한테 이런 말씀을 하게 만들어?’집에 도착해서 하영이 문을 열자마자, 강의영이 하영의 하이힐을 신고 거실에서 걸어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강미정은 하영의 실크 가운을 몸에 걸치고는 얼굴에 팩까지 하고 있었다.세희는 그 광경을 보고 두말없이 강
말을 마친 하영은 세준이와 세희의 손을 잡고 위층에 올라가 씻겨주려 했다.더러운 물건을 만졌으니 깨끗이 씻어야 하지 않겠는가?그때 강미정이 하영의 길을 막아서며 말했다.“거기 서! 내 아이부터 단속하라고? 우리 아이가 뭘 잘못했는데, 저런 교양없는 자식한테 괴롭힘을 당해야 하지?”그때 하영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하더니, 강미정을 쏘아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다시 한번 말해 봐요.”그러자 강미정은 하영의 눈빛에 지레 겁을 먹은 것 같았다.“마, 말하라고 하면 못할 줄 알아? 저런 교양 없는…….”“시끄러워…….”그때 백지영의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오기 시작하자, 강미정은 몸을 흠칫 떨더니 두 말없이 입을 다물고는 서둘러 울고 있는 강의영을 안아 들고 화장실에 숨었다.그 모습은 영락없이 귀신이라도 본 것 같았다.백지영은 멍한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하며 눈이 퉁퉁 부은 강세희를 발견하고는 얼른 세희 곁으로 다가왔다.그리고 세희 얼굴에 묻은 침을 보더니 화를 내기 시작했다.“누가 너를 괴롭혔어?”세희는 입을 삐죽이며 입을 열었다.“이모, 저 여자가 저랑 우리 오빠, 그리고 엄마까지 괴롭혔어요.”백지영은 화장실 쪽을 노려보더니 이내 화장실로 다가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또다시 우리 애들을 괴롭혔다가 찢어버릴 거야!”거실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동시에 백지영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녀도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는지 부릅뜬 눈으로 부자를 노려봤다.두 사람은 동시에 몸을 웅크리며 소파 사이로 몸을 숨기더니 숨소리조차 감히 내지 못했다.그리고서 백지영은 세희 곁으로 다가와 세희를 안아 들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하영은 입꼬리를 올렸다.‘보아하니 지영 언니의 눈빛이 내가 하는 독한 말보다 더 효과가 좋은 것 같네.’저녁.하영은 두 아이와 백지영을 데리고 외식하러 나가려 했는데, 강미정이 하영의 손을 잡아끌며 당연하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돈 줘야지!”“돈이라뇨?”“밥 먹을 돈 말이야! 이곳에 처음
모처럼 이렇게 훌륭한 남자를 찾았는데, 양다인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양다인은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양다인: “정주원 씨, 번번이 제가 너무 귀찮게 해드린 것 같네요. 앞으로 별일 없으면 괜히 방해하지 않을게요.”][정주원: “양다인 씨, 너무 그러지 마세요. 다음엔 꼭 같이 밥 먹어요.”]양다인은 조금 의외란 생각이 들었다.‘일부러 거절한 건 아닌 것 같네.’양다인은 전에 정유준 회사에서 매수했던 기술원에게 문자를 보냈다.“오백만 원 줄게. 정주원이 결혼했는지 알아봐 줘. 너희 사장님 형님이니까 제대로 알아봐!”“네, 내일 바로 답변드리겠습니다.”양다인은 채팅 어플을 종료하고 블로그를 열었는데, 그때 어떤 실검 하나가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양다인은 그 문장을 클릭하고 내부 사진을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사진에서 강하영이 두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강하영 친척이라는 인간들 벌써 움직인 거야? 그냥 미끼를 던져줬을 뿐인데 이렇게 빨리 별장으로 쳐들어가다니. 강하영도 또 골머리를 앓겠네.’게시물을 발표한 지 3시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계정의 팔로워 수가 4천 명이나 급증한 것을 보고 양다인은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강하영,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주목하고 있다니 제법이잖아? 언젠가는 네년이 악명을 떨치게 만들어 줄게!’저녁 8시 30분.하영이 두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 강씨 가족들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모처럼 조용한 집안 풍경에 아이들의 안색도 조금이나마 좋아졌고, 하영은 아이들을 데리고 세수를 시킨 다음 방에 눕혔다.“엄마, 그 사람들 안 돌아오는 거 아니에요?”하영이 대답하기 전에 세준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그런 게 아니라 아직 덜 놀아서 그래.”세희는 입을 삐죽이며 물었다.“엄마, 그 사람들이 설마 그 얄미운 여자애를 우리 유치원에 보내는 건 아니겠죠?”“그런 불길한 얘기 하지 마
“아이고, 오는 내내 그 소리를 하더니, 이제 그만 좀 해. 한 끼가 그렇게 비쌀 줄 누가 알았겠어? 여기 가게들은 손님들에게 덤터기만 씌우나 봐.”“그러니까 제 말대로 내일 강하영이 밥 먹으러 갈 때 따라가요. 그 돈은 남겼다가 나중에 우리가 쓰면 좋잖아요!”“쓰긴 뭘 쓴다고 그래? 차곡차곡 모아야지! 기왕 여기서 지내기로 했으니까, 먹고 자는 건 그년 돈을 쓰고, 며칠 뒤에 집을 마련해 달라고 할 거야!”“엄마, 그게 좋은 생각이네요! 요즘은 전원주택이 유행이라고 하는데 우리도 구경하러 가요!”“좋아, 가면 되지!”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백지영은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안 돼! 하영 씨가 위험한 것 같으니까 내가 도와줘야 해!’샤워를 마친 하영은 아래층에서 소예준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영아, 시간도 늦었는데, 아직도 많이 바쁜 거야?”하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잔뜩 피곤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아니, 오빠가 도와줘야 할 일이 좀 있어.”예준은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웃으며 물었다.“얘기해 봐, 무슨 일인데?”하영은 배현욱이 공장에서 두 아이의 행방에 대해 물었던 사실을 예준에게 애기하자, 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어려운 일은 아니지. 사망 증명서는 위조할 수 있지만, 잘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거야. 나중에 유준이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크게 화를 낼 게 분명하니까.”“이미 그렇게 얘기했으니 어쩔 수 없지. 적어도 아이를 정씨 집안에 빼앗기는 일은 없잖아.”“그렇게 결정했다면 나도 더 해줄 말이 없고.”“최대한 빨리 만들어 줘. 배현욱과 정유준은 절친이니까 분명 그 사실을 유준 씨한테 얘기할 거야.”“그래. 내가 알아서 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하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오빠한테 불공평한 일이긴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바보, 그런 말 하지 말고, 늦었으니까 일찍 자.”같은 시각, 라운지 바.현욱이 유준의 술잔에 술을 따라 건네줬고, 유준은 그윽한 눈빛으로 현욱을
“유준아, 강하영 씨도 힘들었을 거야. 그러니까 애들 일이 관해서는 너도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아.”“그렇게 힘들었다면 어떻게 소예준이랑 또 아이를 둘씩이나 낳을 수 있어?”배현욱의 말에 정유준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 누르며 되물었다.“어쩌면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식일 수도 있잖아.”현욱의 추측에 정유준은 들고 있던 술잔을 내리쳤다.“위로라고? 강하영이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식이 남자를 찾는 것이라고?”“유준아, 내가 한마디만 할게. 양다인이 강하영 씨 아이 중에 한 명을 빼돌렸다는 건, 나머지 애들한테도 손을 썼을 수 있다는 뜻이잖아. 여자의 질투심은 남자들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거야!”정유준은 사악한 기운이 감도는 눈을 가늘게 뜨기 시작했다.“이 일은 내가 철저히 알아보라고 할 거야!”현욱은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쉽게 알아낼 수 없을 것 같은데, 특히 양다인 그 여자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아. 다시 말해 강하영 씨가 그때 그 살인범이 아니라면, 양다인은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었을까? 무고한 피해자? 믿을 수 없어! 절대 그렇게 쉽진 않을 거야!’……토요일.하영은 아침 일찍 애들을 밥 먹으라고 깨우지 않고 그냥 늦잠을 자도록 내버려 두었다.아무래도 아래층 인간들과 적게 마주치는 게 좋은 편이니까.10시 30분쯤 되었을 때, 세희와 세준이가 하영의 방문을 열고 들어오자, 하영도 얼른 이불을 젖히며 침대에서 내려왔다.“일어났어? 나가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세희는 통통한 자기 배를 잡으며 입을 열었다.“엄마, 뱃살이 항의해요.”세희의 말에 세준이가 곁에서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한 끼를 안 먹었는데도, 네 배는 여전히 볼록하네.”그 말에 세희는 세준이를 노려보았다.“오빠 미워! 왜 매번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하영은 웃으며 옷장에서 옷을 꺼냈다.“뭐 먹을지 생각해 봐.”“푸어 키즈 카페로 가도 돼요?”“그럼! 엄마가 지금 전화해서 예약할게.”그때 계단 입구에서 강의영이 그들의 대화를
승합차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다 싣지 못했을 것이다.하영이 막 입을 떼려던 순간 입구에서 또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잠깐 기다려요! 나도 갈래!”저 멀리서 지영이 뛰어오고 있었고 구 선생님이 그녀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는데, 지영의 목소리에 강씨 식구들은 순간 흠칫 몸을 떨었다.“나는 안 가! 여기서 내릴게!”유국진이 온몸을 벌벌 떨며 말을 하던 순간 지영이 이미 빠른 속도로 차에 탔고, 강씨 식구들은 바로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마치 겁에 질려, 한 곳에 몰려 있는 병아리들 같았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하영은 피싯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영 언니의 카리스마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지영은 강씨네 식구들을 한번 노려보더니 하영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하영 씨, 나도 가고 싶어요!”“좋아요.”하영의 통쾌한 대답에 세준과 세희도 옆에서 킥킥거리며 몰래 웃었다.‘다들 지영 이모를 두려워하는 거야?’가는 길에 강씨네 식구들은 감히 입도 뻥긋하지 못한 채 지영과 멀찍이 떨어져 앉았는데, 레스토랑에 도착하고 나서야 도망치듯 차에서 내렸다.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종업원이 그들을 데리고 원형 테이블로 안내했고, 자리에 앉자마자 종업원은 웃는 얼굴로 하영을 향해 물었다.“강하영 씨, 오늘도 지난번처럼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 세트를 주문하시겠습니까?”“네, 저는 송로 스테이크로 주세요.”주문을 마친 하영은 백지영을 보며 물었다.“지영 언니, 언니는 어떤 걸로 드시겠어요?”“나도 어린이 세트로 줘요.”종업원은 지영의 주문을 적은 뒤, 강씨네 가족들을 돌아보며 필요한 것을 물었고, 강백만은 손을 휙휙 저었다.“묻기만 하면 뭘 먹을지 어떻게 알아요? 여기는 메뉴판도 없어요?’종업원이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메뉴판을 내밀자 강백만은 그런 종업원을 째려보았다.“서비스가 형편없네!”강백만이 메뉴판을 펼치는 순간 멍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전부 영어잖아!’강미정은 강백만의 안색이 이상한 것을 보더니 재촉하기 시
손님들은 강씨네 식구들의 추태를 남몰래 비웃었다.“저 사람은 정말 맞아도 싸.”“그러게 말이야.”구 선생님이 앞으로 나서서 제지하려는 순간 하영이 제지했다.“종업원이 와서 해결하게 놔둬요.”“네…….”같은 시각, 레스토랑 밖.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자 현욱의 페라리는 천천히 멈춰 섰다.현욱은 지루한 표정으로 차창 밖을 바라보다가 시선이 맞은편의 한 레스토랑에 멈추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이 휘둥그레졌다.현욱은 얼른 차창을 내리고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사람을 때리고 있는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정유준의 어머님이잖아?’현욱은 얼른 휴대폰을 꺼내 정유준에게 전화를 걸어 다급한 목소리로 입으 열었다.“유준아, 나 너의 어머니를 본 것 같아. 지금 푸어 키즈 카페에 있으니까 얼른 이쪽으로 와!”‘키즈 카페? 어머니가 왜 그곳에 있는 거지?’정유준은 의아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대답했다.“금방 갈 테니까, 잘 지켜보고 있어!”전화를 끊고 현욱은 빠르게 주차장으로 향했다.레스토랑.종업원들이 달려와 말리기 시작했고, 하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구 선생도 앞으로 나서 백지영을 제지하기 시작했다.“지영 씨, 우리 세희한테 더 많은 아이스크림을 사 주는 건 어때요?”백지영은 그제야 강백만을 놓아줬다.“좋아요, 그럼 지금 사러 가요.”구 선생님은 백지영을 데리고 뒷문으로 나가자 구경하던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졌고, 그때 종업원들이 주문한 음식들을 들고나왔다.강백만은 노기등등한 표정으로 하영을 노려보기 시작했다.‘이 썅X, 일부러 도우미한테 그 미친X을 막지 못하게 했어!’스테이크가 하나씩 올라오기시작하자 강미정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테이블 위에 크고 작은 나이프와 포크가 있었는데, 대체 어떤 걸 써야 할지 몰라 강미정은 곁에 있는 강백만을 툭툭 치며 물었다.“아들, 이거 사용할 줄 알아?”미정의 말에 세준이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스테이크는 한 입씩 먹기 좋게 썰어 드시는 거 아니에요? 작은 나이프와 포크가 딱인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