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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갑작스러운 명령에 로희는 놀라서 몸이 굳어버렸다. 하지만 민우는 이미 인내심이 바닥난 상태였고, 커다란 손으로 로희의 어깨를 잡아 돌려세웠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로희는 민우의 축축하고 단단한 가슴에 부딪혔다. 민우는 타월 하나만 두르고 있었다.

로희는 예전에 들었던 소문들이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소문들이 오히려 지나치게 절제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민우는 단순히 잘생긴 정도가 아니라, 마치 신이 직접 빚어낸 조각상처럼 모든 것이 완벽에 가까웠다.

‘세상에, 어떻게 돈 많고 능력 있고 배경까지 좋은 사람이 이렇게 몸매까지 완벽할 수 있을까?’

로희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애써 강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목소리를 낮췄다.

“도 대표님,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로희의 변성된 목소리는 인터넷에서 많은 소녀들을 매혹시킨 부드럽고 듣기 좋은 음성이었다. 심지어 몇몇 여성향 게임에서는 로희를 성우로 초청해 캐릭터 목소리를 녹음하기도 했다.

목소리를 낮추면 더 듣기 좋아졌고, 순수한 남성의 목소리였다. 민우는 잠시 멈칫하며, 로희의 섬세한 턱선을 바라보며 가슴이 쿵쿵 뛰는 기분을 느꼈다.

민우는 스스로 미친 게 틀림없다고 생각되었다. 여자와 남자도 구분할 수 없게 된다니. 모두 그 지긋지긋한 여자 때문이었다. 심하게 짜증이 난 민우는 거칠게 손을 놓으며 말했다.

“나가요.”

민우는 그 어느 때보다 변덕스러웠기에, 로희는 위기를 모면하며, 재빨리 욕실을 빠져나갔다.

...

짜증이 가시지 않은 채로, 민우는 옷을 입으며 물었다.

“발견한 거 있나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로희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도 대표님.”

설령 뭔가 발견했더라도, 로희는 그것을 숨기고 절대 민우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었다. 로희는 그저 조용히 일하고 살아가고 싶었고, 아영애의 병이 나아질 때까지 기회를 잡아 높은 자리에 오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로희는 그런 자리에 어울리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

로희는 손목의 구슬 팔찌를 쓰다듬으며, 쓰게 웃었다. 로희의 마음속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로희가 더 이상 그의 곁에 설 자격이 없더라도,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로희가 눈을 내리깔고 겁먹은 모습으로 있는 것을 보니, 민우는 이유 없이 짜증이 났다.

“쓸모없는 놈...”

민우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차갑게 로희를 훑어보았다. 로희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우는 더 이상 그녀를 신경 쓰지 않는 듯, 느긋하게 넥타이를 매기 시작했다.

긴 손가락은 뼈마디가 뚜렷했고, 완벽한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저 기계적으로 넥타이를 목에 고정할 뿐이었다. 민우에게서 절제된 섹시함이 풍겨 나왔다. 그의 동작은 우아하고 고귀해 보였으며, 슈트는 넓은 어깨와 좁은 허리를 완벽하게 감싸고 있었다.

로희의 머릿속에는 어젯밤 그의 몸이 땀으로 얇게 덮이고, 낮게 숨을 내쉬며 엎드린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그 생각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입안이 마르며 목이 타들어 갔다.

민우의 동작이 멈추고, 그는 손목을 바라보며 냉혹한 눈빛을 보냈다. 로희는 그 시선을 보고 깜짝 놀라며 급히 눈을 돌렸다.

“도, 도 대표님, 왜 그러세요?”

“손목시계.”

민우는 차갑게 말했다.

“그 여자가 내 손목시계를 훔쳐 갔네.”

‘의도적이었을까, 아니면 실수였을까? 과시하려고 한 것일까, 아니면 경고를 한 것일까?’

“훔친 게 아니에요!”

로희는 무심코 반박했다. 갑작스러운 반응에 민우는 냉랭하게 바라보았다. 그 깊고 서늘한 눈빛이 마치 로희의 피부를 꿰뚫고 심연까지 파고들었다. 모든 비밀이 그 앞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을 듯했다.

“제, 제 말은, 그건 단순한 오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도 대표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분의 명성에도 높지 않을 것 같아서요.”

로희는 손목시계를 가져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침에 온몸이 아팠고, 급하고 당황한 나머지 서둘러 물건을 챙겨 나갔다. 근데 그때 하필 손목시계를 챙겨온 줄은 전혀 몰랐다.

민우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지만, 눈빛에는 전혀 웃음기가 없었다.

“오해라고요?”

“오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아요. 그 여자를 잡으면, 명성이 높거나 나쁘거나 그런 것 따윈 중요하지 않을 테니까.”

‘무슨 말일까? 어떤 사람이 명성이 필요 없다는 것일까? 범죄자로 잡힌 사람? 아니면 죽은 사람?’

로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의심을 살까 봐 더 이상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괜찮을 거야.’

어젯밤 로희는 가발을 쓰고 진하게 화장했으니, 남장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집에 돌아가 어젯밤 썼던 가발과 옷을 버리기만 하면, 아무도 자신이 그 여자인 줄 알지 못할 것이다. 로희는 완벽히 숨었고, 들키지 않을 것이기에 절대 문제가 될 리 없다고 자신했다.

로희는 그런 생각에 잠겨 있었고, 민우가 자신을 주시하며 모든 반응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민우의 눈빛은 차가웠고, 그는 휴대전화를 강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유 비서 반응, 수상하네.’

‘어젯밤의 여자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것일까?’

...

“백 실장님, 전 정말 무리예요. 정말 안 됩니다.”

다음 날, 로희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로희는 거의 울먹이며 말했다.

“저는 그냥 평범한 사무직일 뿐이라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백 실장님, 전 도 대표님과 백 실장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두렵습니다.”

“할 줄 모르면 배우면 되죠, 지시만 따르면 됩니다.”

기준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도 대표님이 승진시킨 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못 하겠으면, HSH그룹을 떠나시던가요.”

로희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친절했던 기준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는지. 민우가 갑자기 자신을 개인 비서로 지목한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대표의 개인 비서 자리는 그렇게 쉬운 자리가 아니었다. 예전의 류하늘은 해외 명문 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외국어에 능통하며, 업무 능력이 뛰어났다.

이처럼 능력 있고 뛰어난 사람도 아무렇지 않게 경찰서로 보내버렸으니, 민우가 얼마나 냉혹하고 무정한지 알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여자가 개인 비서 자리를 민우에게 접근할 최고의 기회로 여겼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 자리에 앉게 되면 수많은 사람의 눈엣가시가 될 운명이었다.

그렇지만 로희는 그저 조용히 일하고 싶었고, 자신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민우의 깊고 차가운 눈빛을 떠올리면 이유도 없이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에 로희는 불안감을 느끼고, 민우의 곁에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기준은 로희가 계속 거절할 기회를 주지 않고, 곧바로 새로운 사무실로 데려갔다.

“난 할 일이 많으니, 임 팀장, 이분을 데려가시죠.”

임달미는 키가 크고 화려하게 생긴 미녀였다. 사실 HSH 그룹의 비서실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경력과 외모가 뛰어난 슈퍼 엘리트들이었다. 달미는 팔짱을 끼고, 로희를 보는 눈빛에 적대감이 가득했다.

‘촌스럽고 겁먹은 이 평범한 남자가, 도 대표님의 비서로 자격이 있다고? 도대체 백 실장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달미는 적대감과 무시를 숨기지 않고, 서류를 탁자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이 서류들을 다 읽고, 보고서를 작성해 제게 제출하세요.”

이건 명백히 고의로 업무량을 늘린 것이었다. 이 서류들을 다 읽으려면, 아마도 야근해야 할 것이 분명했다.

어젯밤 로희는 집에 돌아와서 그날의 물건들을 모두 뒤져보다가, 결국 실수로 가방에 넣었던 손목시계를 발견했다.

그 비싼 손목시계를 보고 로희는 깜짝 놀라 밤새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 심지어 꿈속에서조차 민우가 자기 목을 움켜쥐고, 도둑이라고 욕하며 감옥에 보내려고 하는 장면이 반복되었다.

잠깐의 휴식도 이제는 사치가 되어버렸다. 로희는 시간을 확인하고, 할 수 없이 자리에 앉아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로희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고, 이런 같잖은 괴롭힘은 참아내기로 했다.

달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로희를 보자, 그제야 조금은 속이 풀린 듯했다.

“흥, 개인 비서 자리는 간단하지 않아요. 제대로 하지 못하면, 시간낭비 하지 말고 나가기나 하세요.”

달미가 멀어지자, 옆자리의 안미정이 흥분한 얼굴로 다가왔다.

“은빈아! 대표 비서실로 옮겼다니! 대단해! 승진 축하해, 밥 한끼 쏴!”

로희는 신분이 발각될까 두려워 회사에서 거의 투명 인간처럼 지내왔다. 로희가 미정과 친해진 것은, 어느 날 미정이 생리 중에 바지를 더럽혔을 때, 로희가 우연히 도와준 덕분이었다. 그 후로 외향적인 성격의 미정이 로희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이에 로희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서, 일을 망칠까 봐 걱정이야.”

로희가 선택할 수 있다면, 차라리 회사에서 평범한 사무직으로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미정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임달미 신경 쓰지 마. 그 사람은 늘 도 대표님을 자기 소유물로 여겨서 누구 둔 마음에 안 들어 해.”

“실제로는, 도 대표님이 쳐다보지도 않으셨어. 그렇지 않으면 개인 비서 자리가 왜 네게 돌아갔겠어?”

로희는 뒤에서 남의 험담을 하는 습관이 없어, 조용히 듣기만 했고, 미정은 로희가 대답할 필요도 없이 말을 이었다.

“은빈아, 들었어? 류 비서가 감옥에 간대!”

그 말에 로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류하늘은 능력이 뛰어나고 아름다웠으며, 경찰서로 보내졌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이었다. 근데 정말로 감옥에 가게 된다면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망가지게 될 것이다.

“역시 도 대표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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