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 없으면 안 된다는 걸 분명 알면서, 내가 너 아직 너무너무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 너는 다 알고 있으면서...”여기까지 말하던 송해인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 되었다. 눈물은 그녀의 베개를 축축하게 적셨다. 도정윤은 송해인이 서럽게 우는 것을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아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건네주었다. 하지만 송해인은 도정윤을 밀쳐내고 눈물을 닦고는 계속 울며 말했다.“서강빈, 네가 저지른 이 모든 게 다 나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은 것이라 해도, 네가 나한테 숨기는 게 있다고 해도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있어. 우리 다시 시작하자. 응? 내일 당장 가서 다시 혼인신고를 하고 재결합하자.”송해인은 버둥거리며 일어나서는 서강빈에게 안기려고 했다.이때, 문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흥, 저 여자가 일부러 쓰러진 척 한 거 다 알아. 책임을 회피하려고 저러는 거잖아! 저기를 봐봐, 송해인 저 여자가 지금 병실에서 남자랑 노닥거리고 있잖아.”문밖에서는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이훈과 몇몇 친우들은 한 무리의 기자를 데리고 응급실 쪽을 향해 달려왔다.지금 문 앞에 있는 진기준은 병실 안에서 재결합하자고 애원하고 있는 송해인을 악에 받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등 뒤에서 나는 발걸음 소리에 다급히 시선을 돌리고 뒤돌아 이훈이 오고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기자들이 장비들을 들고 기세등등하게 다가오는 것을 본 그는 눈빛이 굳었다.비오 그룹의 일에 대해 진기준은 다 알고 있었다. 그는 오히려 자기에게 불똥이 튈까 봐 다급하게 뒤돌아 양미란에게 말했다.“아주머니, 비오 그룹의 일에 대해서 전해 들었어요. 저는 방금 어떻게 하면 이 사건이 주는 영향을 최소한으로 줄일지 여러 매니지먼트의 대표들과 상의를 하고 있었어요. 해인이가 괜찮아졌으니 저도 한시름 놓았어요. 아주머니께서 해인이를 잘 보살펴주세요. 비오 그룹의 일은 제가 최대한 빨리 해결하겠습니다.”양미란이 대답하기도 전에 진기준은 빠르게 병원을 나서서 사람들의
현장에 있는 기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강빈이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때릴 줄 이훈도 생각지 못했다.“너... 너 감히 사람을 때려?”이훈은 얼굴을 움켜잡고 버둥거리며 일어났다. 이때 인파 속에 있던 중년 기자가 첫눈에 서강빈을 알아보고 차갑게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저 사람 기억나. 저 사람이 바로 얼마 전에 구역 선발전의 첫 라운드에서 우승한 서강빈 아니야? 좋은 의술을 가지고 있다지만 의사로서 품성이 엉망일 줄 몰랐네. 의사라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사람을 때린다고? 거기다가 사람을 때린 것도 모자라 비오 그룹의 미녀 대표님이랑 놀아나면서 이성 관계가 문란하니, 이런 사람은 의사의 자격이 없어!”중년 기자가 이렇게 말하자 다른 기자들도 정신이 들었다. 그중 기자 한 명이 마이크를 서강빈에게 내밀면서 말했다.“서강빈 씨, 송 대표님과 도대체 어떤 관계입니까? 바람입니까? 아니면 비밀연애입니까?”나머지 기자들도 흥미로운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잡지거나 기사를 보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마당에 비오 그룹의 대표에 관한 스캔들이거나 자극적인 기사를 낸다면 무조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될 것이다.“서강빈 씨는 제 전남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들이 기자로서의 직업윤리를 지키고 지나친 언행은 삼가셨으면 합니다.”송해인은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서서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양미란은 이렇게 많은 기자가 자신의 딸을 공격하고 있는 것을 보고 다급하게 사람들 속에서 나와 기자들에게 손가락질하면서 말했다.“내 딸이 아픈 척을 거짓말하고 남자랑 놀아나는지 아니면 정말로 심한 병이 들었는지는 응급실의 의사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감히 함부로 기사를 내거나 이상한 소문을 낸다면 내가 당신들의 잡지사를 고소하여 파산시켜 버릴 거야!”기자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철렁했다. 송해인의 상태로 봐서는 정말 크게 아프고 난 것 같았다. 만약 서강빈이 정말로 송해인을 치료하기 위해 온 것이라면 그
“잘 회복하고 있어. 환자의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서강빈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지금 송해인은 누군가가 심장을 세게 움켜쥔 것처럼 가슴에서 말 못 할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럴수록 그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자신에 대한 서강빈의 사랑을 다시 되돌리겠다고 마음을 더 굳게 먹었다. ...문을 열고 병실에 들어선 서강빈의 시선은 침대에 누워 숨이 곧 끊길듯한 노인에게 머물렀다. 노인은 낯빛이 검게 변하고 숨결이 미약했으며 입술은 이미 갈라진 지 오래고 거의 저승길의 문턱까지 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병실에서 계속 지키고 있던 손인수는 서강빈이 온 것을 보고 서둘러 마중 나오면서 주먹을 모으고 인사를 올렸다.“스승님께 인사를 올립니다. 제... 제가 무능합니다.”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몇 번이나 얘기했습니까, 당신은 제 제자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호칭을 부르면 안 된다고요. 잊었습니까?”“아...”이 말을 들은 손인수는 어찌할 바를 몰라 고개를 숙인 채 뒤로 물러섰다. 이 장면은 마침 따라온 몇 명의 기자들의 눈에 들어왔다.“헐! 설마... 그럴 리가! 저... 저분은 손 신의잖아!”“저... 저 사람이 이제 몇 살인데 손 신의까지도 저 사람을 스승이라고 불러?”“이건 정말 경악할만한 기사일 거야!”기자들이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정신을 차렸을 때, 서강빈은 이미 침대 앞으로 와서 노인의 맥을 짚고 있었다. 이훈은 팔짱을 낀 채 곁에 서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어디서 무게를 잡고 있어! 고칠 수 있다며? 그럼 어디 한번 말해봐. 도대체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데?”서강빈은 시선을 내리깔고 노인을 자세히 훑어보다가 갑자기 이훈의 멱살을 잡고는 그를 노인의 침대 앞으로 끌고 가서 노인을 가리키며 이훈에게 말했다.“제 아버지까지 해치다니, 네가 사람이야?”말을 마친 서강빈은 손을 들어 이훈의 뺨을 열번 넘게 내리쳤다. 이훈은 단단한 철판이 자신의 얼굴을 내리치
“증거가 필요해? 의사를 불러와서 면봉으로 이 부위를 닦기만 하면 알 수 있겠지.”서강빈은 말하면서 손으로 노인의 목에 빨갛게 부어오른 부분을 어루만졌다. 이 말을 들은 이훈의 눈에는 경악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서강빈의 말대로 그는 아버지의 목에 인동초 성분이 들어간 약을 발랐었다. 서강빈은 도대체 어떻게 이것을 보아낸 것인가?서강빈은 뒤돌아 은침을 꺼내서는 노인의 혈 자리를 찾아 침을 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시간을 보고는 문 앞에 있는 기자들에게 말했다.“3분이 지나면 환자는 의식을 회복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이 일의 자초지종이 제가 말한 것처럼 그런 것인지 아닌지 직접 환자에게 물어보세요.”기자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서강빈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서강빈은 이훈의 앞으로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고는 말했다.“우리는 이제 장소를 옮겨서 제대로 얘기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너... 너 뭐 하자는 거야? 이거 놔!”지금 이훈은 당황해서 자신을 잡은 서강빈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서강빈의 손은 마치 단단한 집게처럼 그를 잡고 있어 아무리 힘을 써도 꿈쩍하지 않았다.서강빈은 그와 쓸데없는 말을 계속하고 싶지 않아 이훈을 끌고 병실과 멀지 않은 곳의 화장실로 갔다.“말해. 누가 시킨 거야?”서강빈은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훈과 같은 사람들은 비오 그룹을 해칠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저렇게 많은 기자도 데려오지 못한다. 하여 반드시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목적은 절대 비오 그룹뿐이 아니다.“너... 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 나는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어. 나는 금오단이 만병을 통치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강빈은 손으로 이훈의 뺨을 내리쳤고 바닥에 나뒹구는 이훈의 손을 발로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마지막으로 기회를 한 번만 더 줄게. 만약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다면 이 손은 앞으로 컵도 들지 못할 거야.”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커다란 통증에 이훈은 이를
“천주의 큰 병원에서도 속수무책일세. 그래서 이 일을 해결을 해결하도록 한 전 씨 어르신이 나를 찾아왔어. 나한테 명의를 찾아봐달라고 말이야. 그러자 나는 서 거장이 바로 떠올랐다네. 서 거장이 흔쾌히 도와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야.”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일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아 보이는데요?”이 말을 들은 한정산은 살짝 머뭇거리다가 웃으며 말했다.“서 거장, 사실은 말일세. 내가 이렇게 사업을 크게 벌일 수 있는 건 다 전 씨 어르신 덕분이라네. 그러니 서 거장이 나를 좀 도와줬으면 하네. 이건 내가 준비한 작은 선물이야. 부담 갖지 말고 받아줬으면 하네.”말을 마친 한정산은 100억이 들어있는 은행카드를 서강빈의 앞에 내밀었다. 서강빈은 한정산이 건넨 카드를 밀어내면서 말했다.“한 가주님,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요즘 바쁜 일이 많아서 천주에 가기 어려울 듯합니다.”“이게...”한정산은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다시 웃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서 거장, 잘 모를 수 있는데 이국에서는 이미 약속을 했다네. 왕자님을 살리기만 한다면 이국에서는 수년간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설련빙백을 열 개 주겠다고 했어. 설련빙백이 어떤 보물인지는 서 거장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설련빙백이라는 말을 들은 서강빈도 마음이 동했다. 설련빙백 하나만 있어도 서강빈은 연기 6단계를 돌파할 수 있는 데 열 개라니, 서강빈에게도 아주 유혹적인 조건이었다.“서 거장, 나를 돕는다고 생각해주게. 그리고 이 계기로 전 씨 어르신과 인연을 맺는다면, 서 거장과 권효정 씨한테도 좋은 일이 될걸세.”한정산은 다시 한번 간절하게 말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알겠어요. 그럼 이번 한 번은 제가 무리를 해서 도와드릴게요.”한정산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잠깐 멈칫하더니 계속해서 말했다.“서 거장, 한 가지 더 얘기해야 할 게 있다네. 이번에 이국에서는 전 씨 어르신에게만 부탁한 게 아닐세. 의학 종가의 사람도 모셨는데 그쪽의 뜻
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경기에 대해서 서강빈은 아주 자신이 있었다.“상관없어요. 가주님께서 얘기한 대로 하면 됩니다.”서강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날 저녁, 한정산은 항공편을 예매하여 서강빈 일행과 함께 천주로 갔다. 천주에 도착한 후, 한정산은 한씨 가문에서 제일 좋은 리조트를 하나 비워서는 서강빈 일행이 머물게 했다.이튿날 아침, 사람들은 아침 일찍 기상했고 권효정은 일부러 흰색 치마를 골라 입었다. 새하얀 치마는 지금의 계절을 놓고 보면 많이 눈에 띄는 스타일링이었다. 염지아도 예쁘게 치장했다.권효정은 며칠전에 서강빈에게 선물한 명품 슈트를 꺼내서 서강빈에게 입히고 옷매무새를 정리해주었다.“주인님, 갑시다. 기사님께서 밖에서 기다리고 계세요.”염지아는 미소를 띠고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성큼성큼 문 앞으로 다가갔다. 검은색의 롤스로이스는 일찍부터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다.검은 슈트를 입은 젊은 남자는 서강빈 일행이 문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차 문을 열며 말했다.“세 분 차에 타시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 올라탔다. 권효정과 염지아도 따라서 차에 오르고 서강빈은 기사에게 말했다.“출발하죠.”차가 천천히 출발하자 서강빈은 덤덤하게 차 시트에 기대 두 눈을 살짝 감았다. 이때, 시내 중심의 천주 체육관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매체들과 잡지사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용국 각 업계의 유명인사들과 스타들까지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적지 않은 천주 시민들도 현장에 와서 용국 의술의 꼭짓점에 있는 두 고수의 풍채를 느끼고 싶어 했다. 전국 각지의 신문 매체들도 덩달아 서둘러 자신들의 장비를 장착하고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진행할 준비를 했다.달라디 백작과 가족들은 무대 정면을 향해 있는 단상에 앉아있었고 거기에는 정치계의 유명인사들도 있었다.서강빈은 바로 단상을 향해 걸어갔다. 오늘 의학 종가를 대표하여 경기에 참여한 사람은 서강빈과 나이가 비슷한 이천서라고 하는 젊은 남자였다.
이천서는 도도한 표정으로 말했다.“설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말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서강빈은 웃음을 띤 얼굴로 물었다.“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는 다 받아들일 수 있어.”이천서는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당신의 제안과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고 절을 10번 올려.”서강빈의 목소리는 강당 전체에 울려 퍼졌고 모든 사람이 똑똑히 들었다.“감히 의학 종가의 제자인 나한테 무릎을 꿇으라고?”이천서는 고개를 돌리고 서강빈을 노려보았다. 서강빈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만약 그렇게 못하겠다면 없던 일로 하고 사람들에게 절을 올려. 그것으로 당신이 말한 내기가 없었던 거로 하지.”이천서는 굳어진 얼굴로 서강빈을 노려보았다. 자신이 진 것으로 간주하고 앞에서 말한 조건을 없던 일로 하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좋아. 내가 받아주면 되잖아.”이천서는 가슴이 오르락거리게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하고는 곁에 있는 의학 종가의 대표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자신은 확신이 있음을 전했다.이때, 의학 종가의 대표 중 한 사람이 일어서서 전 씨 어르신에게 말했다.“전 씨 어르신, 경기 규칙을 선고하시죠?”전 씨 어르신은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양 측에서 모두 이의가 없으니 다음으로는 제가 경기 규칙을 선고하도록 하겠습니다...”이번의 경기 규칙은 사전에 선택된 암 환자에 대해 침술 치료를 하는 것이었는데 완치하거나 치료를 통해 환자가 원하는 정도를 만족시키거나 해야 했다.최종 평점은 단상에 있는 심사위원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 말인즉슨 단순한 통증 억제거나 단계적인 치료는 개인의 수준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두 분께서 이에 대해 이의 있습니까?”진행자는 고개를 돌려 이천서와 서강빈에게 말했다.“저는 없습니다.”서강빈의 말투는 아주 덤덤했다. 이천서도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저도 동의합니다.” “좋습니다. 누가 먼저 무대에 오르겠습니까?”진행자는 서
암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만약 일반적인 침술을 사용한다면 단지 통증만 완화할 수 있을 뿐 실질적인 치료 효과를 볼 수 없다. 작게 한숨을 쉰 서강빈은 곁에 있는 테이블에서 9개의 은침을 꺼내 손바닥에 놓고 몇 번 움직였다.환자의 병을 빠르게 치료하려면 반드시 현명신침을 이용해야 했다. 그게 아니면 경기가 끝날 때까지 환자의 통증을 멈출 방법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가락을 살짝 움직였고 9개의 은침이 동시에 날아가 환자의 9개 혈 자리에 각각 꽂혔다.곁에 있던 통역사마저도 서강빈이 왜 묻지도 않고 침을 꽂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선생님, 환자의 상황을 묻거나 맥을 짚을 필요가 없는 건가요?”여자 통역사는 다급한 기색이었다.“폐암 말기에 신장 결석을 가지고 있어요.”서강빈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무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의학 종가 단상에 있던 노인까지도 저도 모르게 서강빈에게 시선이 향했다.“흥, 정말 건방지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보는 것만으로 병을 진단할 수 없는데 네가 그럴만한 능력이 된다고?”이천서는 차갑게 웃으며 비웃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이윽고 백인 남자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세상에, 내가 폐암 말기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설마 당신의 눈이 기기보다도 더 정확한 건가요?”백인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고 있었다.서강빈은 침착한 태도로 침 9개를 움직였고 굵고 힘찬 기운이 은침을 따라 백인 남자의 체내로 들어갔다. “침술로 암을 치료할 수도 있어?”무대 아래의 관객들은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단상 위에 있는 전 씨 어르신 등 사람들도 말을 잃었다.“사실 암이라는 건 한기가 너무 많은 탓에 생기는 병입니다. 한기가 가지는 응고되는 성질 때문에 혈관이 한기로 하여 굳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막힌 혈관을 뚫어주기만 하면 치료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이 담담하게 말했다.“허튼소리!”이천서는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는 3살 때부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