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빈이 변준호를 이겼다는 것은 진민석의 예상 밖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의 눈에서 서강빈은 그저 개미처럼 미천할 뿐, 경계할 가치가 없었다. 변준호는 목숨을 살려두려고 온 힘을 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드래곤 팀의 임무는 아주 까다롭고 힘들었고 매번 임무가 다 생사를 오가는 일이었다. 만약 지금이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면 서강빈은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하여 진민석은 쌀쌀하게 비웃으며 말했다.“네가 준호를 이긴 것이 네 실력 때문이라고 착각하지 마. 준호는 온 힘을 다해서 공격한 게 아니야. 아니면 너는 진작에 시체로 차갑게 식었을 거야.”이때, 버둥거리며 일어선 변준호의 입가에는 피가 가득했고 눈빛은 사납게 서강빈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미친놈!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너 내가 누군지 알아?”“네가 누군지 뭔 상관이야? 내가 네 몸에 손을 대지 않으면 맞기를 가만히 기다릴까?”서강빈은 무척 불만스러운 말투로 차갑게 말했다. 변준호의 태도가 그를 아주 불쾌하게 했다.“너 이 자식!”변준호는 화를 내며 자신의 체면을 다시 세우려고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이때 진민석이 나서서 차갑게 말했다.“됐어, 내가 할게. 우리 드래곤 팀을 건드린 대가가 어떤 것인지 내가 제대로 알려줄 거야.”말을 마친 진민석은 자신의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싸늘한 눈빛으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이 자식아, 내가 직접 너를 상대해줄게. 네가 어떤 실력인지 한번 봐야겠어. 실력이 안 된다면 당장 효정의 곁에서 꺼져!”진민석이 화를 내며 말했고 서강빈은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하게 대답했다.“어디 한번 해봐.”“너 죽고 싶구나!”이 말을 끝으로 진민석은 주먹을 들어 허공을 가르면서 정확하게 서강빈의 가슴팍을 향해 내리치려고 했다. 이 주먹은 대가의 위엄이다. 일반 사람, 설사 무사라고 하더라도 이 주먹에 맞으면 깊은 내상을 얻게 되는데 몇 개월 치료를 거치지 않고서는 침대에서 내려올 수가 없다. 서강빈도 당연히 이 주먹의 위력을 느꼈다.“이렇게 심하게 공격한
이윽고 진민석은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서강빈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공격마다 날카로운 살기를 띠고 있었지만, 서강빈도 두려운 기색이 없이 진민석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교묘하게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두 사람의 접전이 길어질수록 진민석은 더 화가 치밀어 올랐고 그는 자신이 어떤 공격을 하든지 모두 서강빈의 옷깃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이 자식이 그저 보통 무사란 말이야?”진민석의 마음속에는 의문이 들었지만 뱉은 말이 있어 이렇게 끝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여 그의 공세는 더욱 거세졌고 매번의 공격마다 목숨을 단번에 끊을 수 있을 정도였다. 서강빈은 눈썹을 치켜들더니 싸움을 계속할 흥미가 사라져 차갑게 말했다.“진 팀장, 실력이 별로네. 그럼 내가 진 팀장을 깔끔하게 보내줄게.”말을 마친 서강빈은 수비만 하던 데로부터 적극적인 공격 자세로 돌변하여 주먹을 휘둘렀다. 펑 하는 굉음과 함께 진민석이 눈치채기도 전에 이미 가슴팍에 주먹이 꽂혔다.순간, 그는 커다란 화물차에 부딪힌 것처럼 튕겨 올랐고 수십 미터를 날아가서 바닥에 세게 곤두박질했다. 진민석은 바닥에 쓰러져 피를 토하고 가슴을 움켜잡았다. 그는 갈비뼈가 몇 개 부러진 느낌이 느꼈다. 이 모습을 본 변준호는 얼른 달려가서 진민석을 부축하며 다급하게 물었다.“진 팀장님, 괜찮으세요?”진민석은 고통을 참으며 변준호를 밀어내고는 악에 받친 눈빛으로 서강빈을 보면서 소리쳤다.“미친놈! 네가 감히 꾀를 부려서 기습공격을 해? 네가 그렇게 대단하다면 다시 한번 해봐!”진민석이 다시 싸우려고 하자 권효정이 나서서 불만이 가득한 말투로 진민석에게 소리쳤다.“민석 오빠, 그만 해요! 꾀를 부려서 기습공격을 한 것인지 아닌지는 오빠가 누구보다도 잘 알잖아요! 지금 보면 강빈 씨의 무술 실력이 오빠보다 세잖아요. 그러면 강빈 씨가 충분히 저한테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것도 증명되었죠?”이 말을 들은 진민석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래도 물러서기 싫은 듯 말했다.“그럼 출신이랑 사회적
잠깐 생각하던 서강빈은 권효정에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한편, 2층 룸 안에서는 심종석이 술잔을 들고 송해인의 곁으로 다가가서 능글맞게 웃었다.“송 대표, 술 한잔하지.”송해인은 얼른 술잔을 들고 웃으며 대답했다.“심 대표님, 한잔하시지요.”말을 마친 그녀가 술을 한 모금만 마시자 심종석은 일부러 화난 얼굴을 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송 대표, 한 모금만 마시는 건 너무 하잖아? 나를 무시하는 건가, 아니면 우리 심진 그룹을 무시하는 건가?”송해인은 이 말을 듣고 얼른 공손하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심 대표님, 제가 그럴 리가요. 마시겠습니다.”송해인은 다시 술잔을 들고 원샷했다. 술을 마시는 송해인의 모습을 보고 있던 심종석은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송해인이 흘린 술이 그녀의 입가를 타고 흐르는 장면을 보고는 더욱 흥분하여 지금 당장에라도 경국지색의 이 여인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싶어 했다.“그래, 송 대표, 한 잔 더 해.”심종석은 술을 한 잔 더 부었다. 송해인은 거절하려고 했지만 심종석은 매번 각가지 이유를 대면서 송해인이 술을 마시게 했다. 그렇게 술을 연거푸 마신 송해인은 얼굴이 발갛게 익었고 머리가 어지러워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심종석이 들고 있는 술잔을 향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심 대표님, 죄송합니다. 저는 더는 못 마시겠어요. 저희 비오 그룹과 심진 그룹의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는 언제쯤 시작할 수 있을까요?”심종석은 송해인이 어느 정도 취한 것처럼 보이자 자리에 앉아서 웃으며 말했다.“송 대표, 우리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얘기할 수 있어. 딱히 중요한 일이 아니야. 지금 제일 중요한 일은 송 대표가 나를 기쁘게 해주는 거지. 송 대표가 나를 기쁘게 할 수만 있다면 그 프로젝트는 바로 성사할 수 있어.”송해인은 심종석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하게 물었다.“심 대표님,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음흉한 눈빛으로 송해인을 바라보
심종석은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정신 나간 놈! 뻔뻔한 놈!”송해인은 이렇게 욕을 퍼부으며 일어서서 방을 떠나려고 애를 썼다.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있다가는 끔찍한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간이 1분 1초 흐르고 송해인은 자신의 체내에서 이상한 충동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온몸에 열이 오르고 가슴 깊은 곳에 있는 어떠한 욕망이 무한대로 확장되었다. 특히 심종석을 바라보면서 송해인은 저도 모르게 서강빈의 모습이 겹쳐 보이게 되었다. 한편, 점점 정신을 놓아가는 송해인을 보고 있는 심종석은 무척 흥분하기 시작했다. 더 기다릴 수가 없었던 심종석은 술잔을 던져버리고 송해인을 덮치면서 소리쳤다.“예쁜이, 오늘 너는 내 사람이야!”“싫어. 꺼져, 꺼져!”송해인은 악을 쓰며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때, 갑자기 누군가가 펑 하고 방문을 걷어찼다. 인영 하나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내뿜으며 돌진해서는 심종석을 멀리 차버렸고 그는 바닥에 부딪혀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다.“서, 서강빈? 살려줘...”송해인은 갑자기 나타난 서강빈의 모습을 보고는 희미하게 한마디 하고는 참지 못하고 달려들어 서강빈에게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서강빈은 어쩔수 없이 송해인의 뒷목을 쳐서 기절시키고는 소파에 눕혔다. 그리고 서강빈은 송해인의 가슴에 있는 혈 자리에 은침 몇 개를 놓아 체내에 있는 약효를 없앴다. 이때, 바닥에 있던 심종석이 일어서더니 배를 움켜잡고 빨개진 얼굴로 서강빈을 향해 악에 받친 소리를 질렀다.“젠장! 어디서 굴러온 미친놈인데 감히 내 계획을 망쳐버려? 죽고 싶어?”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차가운 눈빛으로 심종석을 보더니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테이블에 있는 술병을 들어 심종석의 머리를 내리쳤다. 순식간에 머리의 살이 찢어지고 피가 흘렀다. 얼굴이 피범벅이 된 심종석은 머리를 만지면서 비명을 질렀다.“젠장! 네가 감히 내 머리를 깨?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심종석이 소리 지르자 밖에 있던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신속
한편, 권효정은 서강빈이 송해인을 안고 계단을 내려오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찡그리며 다가와 물었다.“무슨 일이에요?”“나중에 설명해줄게요. 먼저 이 사람 좀 데려다주고요.”서강빈은 송해인을 안고 레스토랑을 나섰고 짜증이 난 권효정은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 따라갔다. 세 사람은 만물상점에 돌아왔다. 곁에 서 있던 권효정은 서강빈이 송해인에게 침을 놓는 것을 보고 질투했다.“강빈 씨가 저를 이 정도로 걱정한 적이 없는 것 같네요.”서강빈은 그녀를 흘겨보고는 말했다.“누군가가 이 사람한테 약을 먹였어요.”“약을 먹였다고요?”권효정은 예쁜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에요?”서강빈은 침을 정리하면서 룸 안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한번 얘기했다.“상대방이 누군지 알아요?”권효정이 묻자 서강빈은 고개를 저었다.“몰라요. 묻는다는 걸 깜빡했어요.”마침 깨어난 송해인은 눈앞에 있는 서강빈과 권효정을 보고 머리를 꾹꾹 누르며 물었다.“내가 왜 여기에 있어?”권효정은 짜증 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째려보며 두 손을 가슴 앞에 팔짱 끼고 말했다.“왜긴요. 강빈 씨가 당신을 구해줬으니까 그렇죠.”“서강빈?”송해인은 의아해하다가 앞서 룸 안에서 있었던 장면들이 기억났다. 그녀는 몸을 퍼뜩 떨더니 굳은 표정으로 서강빈을 바라보며 다급하게 물었다.“너 심 대표를 어떻게 한 거 아니지?”서강빈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응.”송해인은 안도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별일 없으면 됐어.”하지만 이어진 서강빈의 말은 송해인을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게 했다.“그저 두 번 정도 걷어찼을 뿐이야.”서강빈이 태연하게 하는 말에 송해인이 놀라서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뭐라고? 너 심 대표를 때렸어?”“무슨 문제 있어?”서강빈은 표정이 살짝 굳으며 되물었고 초조해진 송해인은 서강빈에게 화를 냈다.“심 대표가 누군지 알아? 어떻게 그 사람한테 손을 댈 수가 있어? 그 사람은 심진 그룹의 심종석이야! 송주 절반의 경
서강빈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송해인의 손을 뿌리치고 그녀를 바라보면서 되물었다.“송 대표, 네가 걱정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너 자신과 비오 그룹의 프로젝트잖아?”송해인은 의아한 눈빛으로 서강빈을 바라보며 말했다.“그게 무슨 뜻이야?”“무슨 뜻인지 한 번 더 얘기해야 해?”서강빈의 차가운 말에 표정이 굳어진 송해인은 그게 불만인 듯 소리쳤다.“서강빈, 너는 나를 그 정도로밖에 안 보는 거야?”“그럼 내가 너를 어떻게 봐야 하는데? 너를 생각하는 마음에 구해줬지만 너는 나를 탓하고 원망하고만 있어. 심진 그룹이 그렇게 대단해? 심종석이 그렇게 대단해? 내가 심종석을 때린 게 너랑 회사가 손해를 보게 했다고 생각하면 심종석한테 말해. 나 찾아오라고.”서강빈은 차갑게 말하고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 송해인은 그 자리에 굳어서 입만 벙긋거리고 있었다. 권효정도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송해인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송해인 씨, 저는 정말 이해가 안 돼요. 강빈 씨가 그렇게 잘해주는데 왜 번번이 강빈 씨에게 상처만 주는지요. 한마디 할게요. 앞으로 다시는 강빈 씨 앞에 나타나지 말아요. 저 사람이 더 상처받게 하고 싶지 않아요.”말을 마친 권효정도 서강빈을 따라 들어갔다. 전당에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송해인은 초조하고 서운했다. 제 뜻은 서강빈의 말처럼 그런 게 아닌데, 송해인은 심종석이 서강빈에게 복수를 할까 봐 더 걱정되었다.“강빈아, 네가 오해했어...”송해인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녀가 따라 들어가서 해명하려던 때, 핸드폰이 울려서 확인해보니 송명옥한테서 온 전화였다.“송해인! 너 어디야? 당장 회사로 와!”화를 내는 송명옥의 목소리에 송해인은 미간을 찡그리고 물었다.“할머니, 왜 그래요?”“왜 그러냐고? 네가 제일 잘 알 거 아니야! 당장 회사로 돌아와!”송명옥은 낮은 음성으로 호통을 치고는 전화를 끊었다. 송해인은 가게 안쪽을 한번 보고는 어쩔수 없이 만물상점을 떠나 택시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회사의 회의실에
송해인은 망설여졌다.“네가 선택할 수 없다면 내가 대신 선택하지. 여봐라, 가서 서강빈을 잡아 와!”송명옥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은 비오 그룹과 송씨 가문의 생사에 관련된 일이므로 송명옥은 반드시 결단을 내려야 했다.“네.”문 앞에서 기다리던 경호원들이 대답하고는 뒤돌아 떠나려 하자 송해인이 다급하게 소리쳤다.“잠깐만요!”그 순간, 회의실에 있던 회사 고위인사들과 송명옥 등 사람들은 모두 송해인에게 눈길이 향했다. 송해인은 잠깐 망설이더니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제가 갈게요! 서강빈을 괴롭히지 말아요. 이 일은 제가 잘 해결할게요.”“참나!”송명옥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일어나서 사람들을 지나 회의실을 나섰다. 이윽고 회사의 고층 인사들도 연이어 자리를 떴다. 그들의 얘기 속에는 서강빈이 심종석을 때렸다는 데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양미란은 사람들이 거의 다 나갔을 때야 다가와서 초조한 얼굴로 송해인에게 말했다.“해인아, 왜 서강빈 그 자식을 위해 혼자서 감당하려는 거야? 그 자식이 때렸으니 그 자식이 감당해야지! 지금 네가 이러는 건 네 몸을 파는 거랑 뭐가 달라?”송태호도 따라서 거들었다.“그래, 누나. 서강빈 그놈이랑 이혼도 한 마당에 왜 그렇게 그놈을 위하는 거야? 지금 다시 선택해도 늦지 않아.”“그만해. 이 일에 대해서는 이미 결정했어. 나 혼자서 잘 해결할 거야.”송해인은 차갑게 말하고는 고개를 들어 양미란과 송태호한테 당부했다.“그리고 절대 서강빈에게 얘기하지 말아요.”양미란과 송태호는 눈을 마주쳤고 송해인은 홀로 심진 그룹으로 향했다. 양미란은 떠나는 송해인을 보면서 속으로는 무척 걱정되고 화가 나서 욕을 퍼부었다.“이게 다 서강빈 그놈 때문이야! 내 딸이 그 자식을 위해서 덤터기를 쓰게 됐어!”“엄마, 이제 어떡해요? 누나가 몹쓸 짓을 당하러 가는 걸 그저 보고만 있어요?”송태호가 다급하게 물었다. 송해인은 진기준이 탐내고 있는 여자인데 심종석과 잠자리를 가졌다고 하면
“심종석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이 송주에서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변태란 말이야! 심 대표님이 제시했던 요구는 우리 송씨 가문에서 네 두 손을 망가뜨린 채로 너를 심진 그룹 앞에 데리고 가서 무릎 꿇고 사죄하게 하는 거였어! 근데 우리 누나가 미친 것인지 너를 보호하겠다고 홀로 심진 그룹으로 갔단 말이야. 그런데도 너는 지금 이렇게 유유자적하게 숨어서 너랑 상관없다는 말이 나와? 너 정말 사람이 아니구나! 우리 누나가 그렇게나 너를 생각해준 게 아까워!”송태호가 투덜거리는 말과 욕을 듣고 서강빈은 미간을 찡그리며 차갑게 물었다.“뭐라고? 송해인이 홀로 심진 그룹에 갔다고?”“그래! 네가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당장 가서 우리 누나를 구해줘. 늦으면 우리 누나는 심종석 그 자식한테 몹쓸 짓을 당하게 될 거야!”송태호가 소리쳤고 서강빈은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송해인, 정말 오지랖이네.”어쩔수 없이 서강빈은 송태호의 차를 운전하여 심진 그룹으로 달려갔다. 서강빈이 떠나는 것을 보고 송태호와 양미란은 시선을 마주치며 만족스러운 듯한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한편, 이미 심진 그룹에 도착한 송해인은 대표 사무실 안에서 심종석을 향해 허리를 굽혀 사과하고 있었다.“심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 전남편이 대표님께 손을 댈 줄 몰랐습니다. 그 사람을 대신해서 대표님께 사과하겠습니다.”심종석은 눈앞에 있는 송해인을 훑어보다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송 대표, 우리 다들 성인인데 사과하러 왔으면 성의를 좀 보여야지? 고작 몇 마디 말로 나더러 당신 전남편을 용서해달라는 건 너무 황당한 일이 아닌가? 아니면 송 대표가 아예 나를 무시하고 있는 건가?”이 말을 들은 송해인이 다급하게 소리쳤다.“심 대표님, 그런 뜻이 아니라...”“그럼 무슨 뜻인데?”심종석은 사람을 압박하는 듯한 눈빛으로 물었다. 송해인은 어쩔수 없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심 대표님, 제가 어떻게 하면 될지 얘기하세요. 대표님의 얘기를 따를게요.”“내 말을 듣겠다고? 송 대표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