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란과 이세영은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스위트룸 안의 비참한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너무 섬뜩했다.방 안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바닥에는 피가 가득했고 그 위에는 사람이 한 명 누워있었다.이세영이 다가가서 발로 그 사람의 얼굴을 툭 쳐 보았는데 그의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한동훈 씨...”큰일이었다.이제 끝장이었다.한동훈은 얼굴이 피범벅이었다. 만약 이세영이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면 아마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가장 중요한 건 한동훈의 가랑이도 피범벅이라는 점이었다.이건 한씨 집안의 대를 끊었다는 걸 의미했다.누가 한 짓일까?서강빈을 제외하고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이 비서, 이, 이... 이걸 어떡해?”양미란은 이런 장면에 너무 놀라서 몸을 떨었다.그녀는 한동훈을 알고 있었다.한동훈이 이 꼴이 되었으니 한씨 집안에서 그들에게 책임을 묵는다면 송씨 집안은 끝장이었다.이세영은 침착하려고 애썼다. 그녀는 방 안의 상황을 살펴본 뒤 한쪽에 카메라가 넘어져 있는 걸 보았다.그녀는 황급히 달려가서 카메라에 담긴 영상을 보았다양미란도 다가가서 보았는데 영상을 보자마자 그녀는 화를 내며 욕을 했다.“이 빌어먹을 놈, 짐승만도 못한 자식! 한동훈은 그놈이 때린 거였어!”“우리 딸과 송씨 집안을 엿 먹이려는 게 분명해!”양미란과 이세영이 본 건 몇 분 전에 찍힌 영상이었다.두 사람은 너무 화가 나서 앞의 영상을 미처 보지도 않았다.이세영은 카메라를 들고 음산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어머님도 보셨겠지만 서강빈 이 사람은 완전히 미친놈이에요!”“한동훈 씨를 이렇게 때렸으니 송씨 집안은 한씨 집안의 엄청난 분노를 마주해야 할 거예요!”“송씨 집안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금 당장 내려가서 그에게 따져야 해요!”양미란은 그 말을 듣더니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맞아! 서강빈이 한동훈을 때렸으니 당연히 책임을 져야지!”곧이어 두 여자는 크게 다친 한동훈에게 신경 쓰지도 않고
“아니, 말도 안 돼. 서강빈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난 똑똑히 기억해. 한동훈 그 자식이 날 성폭행하려고 했어. 그러다, 그러다가 누군가 들어와서 날 구했는데...”송해인은 머리를 툭툭 치면서 기억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그러나 머리가 너무 아파서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딸아, 이런 상황에서도 그 자식의 편을 들어주려는 거야? 너 어디 아프니?”“서강빈은 널 성폭행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한동훈을 심하게 때렸다고!”“한씨 집안에서 우리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우리 송씨 집안은 끝장이라고.”양미란이 다급히 말했다.송해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뇨, 그럴 리가 없어요. 서강빈은 절 성폭행하지 않았어요. 한동훈이 절 성폭행하려고 했죠. 분명 서강빈이 절 구한 걸 거예요.”“헛소리하지 마! 내가 보기에 서강빈은 누나가 한동훈 씨랑 협상하려는 걸 알고 질투가 나서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와 한동훈을 때린 걸 거야. 누나가 한동훈이랑 협상하지 못하게 말이야.”송태호가 소란스럽게 떠들어댔다.양미란과 송태호가 한마디씩 하자 송해인은 마음이 복잡해지면서 판단 능력을 상실했다.혹시 그가 잘못 기억한 걸까?“아... 머리가 너무 아파요.”송해인은 자기 머리를 툭툭 치면서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딸아, 자꾸 생각하지 마. 앞으로 우리는 서강빈 그 자식을 멀리하면 돼.”양미란이 위로했다.이세영이 서둘러 말했다.“대표님, 어머님 말씀이 맞아요. 여기에 직접적인 증거가 있어요. 서강빈이 한동훈 씨를 때렸다는 증거 말이에요.”“어쩌면 다른 것도 찍혔을지 몰라요.”“이번에는 분명 서강빈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을 거예요.”이세영은 사람들 앞에서 카메라를 꺼내 처음부터 영상을 재생했다.이세영은 한동훈이 송해인을 성폭행할 리가 없다고, 분명 다른 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어쩌면 서강빈이 일부러 한동훈을 때리고 송해인을 성폭행해서 한동훈에게 누명을 씌우려 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영상이 재생되었다.그들은 영상을 보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로비 안의 분위기는 심각했다.송태호는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엄마, 이제 어떡해요? 서강빈 그 자식이 한동훈을 고자로 만들어버렸잖아요. 한씨 집안에서 책임을 묻는다면 우리는 끝장이라고요...”“나도 알아!”양미란은 짜증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이세영을 바라보며 물었다.“이 비서, 무슨 좋은 방법 없어?”이세영은 팔짱을 두르며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양미란을 바라보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어머님, 이 영상을 본 사람은 저희뿐이에요.”“그래, 그게 왜?”양미란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한동훈 씨는 서강빈이 때렸어요. 여기 영상도 있죠. 우리는 한씨 집안에 영상을 보내는 거예요. 그러면 한씨 집안도 송 대표님과 송씨 집안에 책임을 묻지 않을 거예요.”이세영이 곧바로 말했다.양미란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몸을 흠칫 떨었다.“서강빈더러 책임지게 하자는 말이야?”“네!”이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서강빈은 해인이를 구하려고 그런 건데...”양미란이 말했다.이세영은 진지한 얼굴로 양미란을 바라보며 말했다.“어머님, 이런 상황에서 그게 중요해요? 위에 누워있는 건 한씨 집안 도련님이에요. 한씨 집안 어르신께서 가장 아끼는 손자라고요.”“서강빈이 이 모든 걸 책임지지 않는다면 송 대표님과 송씨 집안이 책임을 져야 할 거예요.”양미란은 순간 머릿속이 텅 비었다.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녀는 눈빛이 차갑게 변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동의해.”“나, 나도 동의해요!”송태호가 말을 보탰다.그는 송씨 집안이 망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집안이 망한다면 그의 부잣집 도련님 생활도 끝이기 때문이다.그러니 이 일은 반드시 서강빈 혼자 책임져야 했다.이세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카메라를 켜서 앞에 한동훈이 송해인을 괴롭히던 영상을 전부 삭제하고 서강빈이 한동훈을 때리는 부분만 남겼다.곧이어 이세영은 SD카드를 빼서 양미란과 송태호에게 말했다.“이건 바로 한씨 집안에 보내야 해요.”...병원.
이세영은 다급하게 말했다.“회장님, 도련님을 때려서 이렇게 만든 사람은 서강빈이라는 자식입니다! 이 일은 처음부터 송 대표님과 송씨 가문이랑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회장님이 도련님을 위해 복수하고 싶다면 그 자식을 찾으시면 됩니다.”이세영은 모든 책임을 깨끗이 서강빈에게 밀어 던졌다. 하지만 그녀는 한철산의 표정이 매우 어둡고 복잡해졌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알았어. 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먼저들 가봐.”한철산은 차갑게 말하면서 손님을 배웅하라고 하인에게 눈치를 줬다.그러자 이세영은 어리둥절해하며 무슨 말을 더 하려 했지만 이미 병실에서 밀려 나왔다.“이 비서, 지금 무슨 상황이야? 왜 회장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지?”병실 문 앞에서 양미란이 물었다.“어머니, 저도 뭔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한동훈이 이렇게 두들겨 맞고 폐인이 되어 대를 잇지 못하게 생겼는데 한철산이 왜 화를 내지 않죠? 서강빈을 죽여도 모자랄 판에?”“한철산이 서강빈을 보자 뭔가 걱정하는 게 있는 듯한 표정이었어요...”송태호가 말했다. 이세영도 미간을 찌푸리면서 입을 열었다.“이미 증거는 회장님에게 넘겼어요. 회장님이 어떻게 처리하던 그건 한씨 집안 일입니다. 우리도 상관할 필요가 없고요.”“그래. 우리 그러면 빨리 가자. 이따가 사람들이 못 가게 하면 큰일이야.”양미란은 송태호를 잡아당기면서 병원을 떠나려고 했다. 이세영은 병실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결국 발걸음을 옮겼다.이 시각, 병실 안.한철산 옆에 있던 경호원도 영상을 봤다. 그러자 그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회장님, 너무 심하게 손을 썼네요. 도련님은 결국 회장님 아드님이신데.”“정말 도련님을 위해 복수를 하실 생각이 없으세요?”“닥쳐!”한철산이 소리를 질렀다.“네가 뭘 알아?”“서 선생은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분이 아니야!”“그런 분은 나 한철산이 아니라 한씨 가문 10개가 합쳐도 상대가 안 된다고!”“그리고 서 선생 뒤에는 천주 권씨 가문이 있잖아. 그
서강빈은 덤덤하게 웃으면서 말했다.“회장님 뜻은 저에게 복수하려는 것 같은데?”한철산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서 선생, 그럴 리가요. 오늘 일은 없었던 일로 하고 제가 아들을 잘 교육하겠습니다.”“그리고 서 선생이 필요하시다는 약재도 지금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한철산이 정말 화를 참을 수 있다는 사실에 서강빈은 조금 놀랐다. 한철산은 독한 사람이다.“감사합니다. 회장님.”서강빈이 웃으면서 말했다.“사실 회장님 아들도 완전히 폐인이 된 건 아닌데. 제가 손을 쓰다 멈췄거든요.”그러자 한철산은 깜짝 놀라면서 격동된 어조로 물었다.“서 선생, 정말입니까?”그는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방금 서강빈이 자신을 테스트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정말 화를 벌컥 내고 복수를 했더라면 그의 아들은 정말 폐인이 될 수도 있었다!심지어 한씨 가문 전체도 다시는 서강빈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서 선생, 부디 너그럽게 봐주세요. 한씨 가문의 대를 이을 수만 있게 한다면 제가 뭐든 하겠습니다.”한철산이 감격에 겨워 말했다. 그러자 서강빈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반 시간 안에 아드님의 장기를 교체하면 될 겁니다.”장기 교체?한철산은 단번에 깨달았다.“서 선생의 조언에 감사드립니다.”한철산이 말했다.“잠깐, 제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처방을 드릴 테니 처방에 따라 약을 달이세요. 고양이와 개의 장기라도 제 약을 바르면 치료할 수 있습니다.”서강빈이 말하자 한철산은 어리둥절해졌다.한동훈에게 고양이와 개의 장기를?하지만 한씨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서 한철산은 이을 악물고 받아들이려고 했다.“알겠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남겨주셨네요. 감사합니다!”한철산은 고맙다고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곧바로 병원 측에 장기 교체 수술을 하라고 지시했다.시간이 급한지라 한동훈에게 맞는 장기를 찾아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한철산은 하인에게 개 한 마리를 구해오라고 하면서 이를 갈았다.“
그리고 권효정은 눈을 감고 서강빈을 기다렸다. 마치 오늘 자기를 가져도 된다는듯한 모습으로 말이다. 매혹적인 권효정을 바라보면서 서강빈은 저도 모르게 목이 타들어 갔다. 이런 미모에 흔들리지 않을 남자가 없을 것이다.“저기 효정 씨, 혹시 입술에 문제라도 있으세요? 제가 한번 봐 드릴까요?”서강빈은 어색하게 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분위기가 확 깨졌다.권효정은 서강빈을 째려보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정말 답답하네요! 뽀뽀해달라고요! 뽀뽀!”그녀는 화가 나고 답답했다. 차라리 자기가 서강빈에게 뽀뽀하는 게 더 속시원할뻔했다. 하지만 여자로서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서강빈은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말했다.“효정 씨,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됐어요. 귀찮으니까 그만둬요. 앞으로 이런 기회 절대로 없을 거예요!”권효정은 화를 냈다. 그러자 서강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런 기회가 없었으면 좋겠네.’“그리고 저번에 말한 우리 집안의 수석 의사가 되는 일은 어떻게 결정했어요?”권효정이 묻자 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대답했다.“아직도 고민 중입니다.”“그걸 뭐 그렇게 오래 고민하세요. 만약 얽매이는 게 싫으면 우리 집에 이름만 걸어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요. 필요할 때 제가 찾을게요.”권효정이 슬쩍 유혹했다.“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이건 낙하산으로 들어가는 거잖아요?”서강빈이 웃었다. 그러자 권효정은 당당하게 대답했다.“맞아요. 제가 강빈 씨에게 주는 특권 같은 거죠! 다른 사람은 그럴 기회도 없을걸요.”응?서강빈이 어리둥절했다. 왠지 이 말이 애매하게 들렸다.서강빈이 망설이자 권효정은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강빈 씨, 저를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수석 의사 해주세요. 만약 강빈 씨가 거절하면 저는 또 자격을 갖춘 의사를 찾아야 하잖아요. 이렇게 중요한 일을 누구에게 맡겨요?”권효정이 불쌍한 척 애교를 쓰자 서강빈은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좋아요. 일단 받아들일게요. 하지만 저는 효정 씨 가
권효정이 그 말을 하자 마당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다.“응?”백서준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서강빈과 권효정을 쳐다보았다. 특히 권효정이 서강빈의 손을 꽉 잡고 있는 걸을 보자 백서준은 배신이라도 당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괘씸하다!또 이 자식이다!이 거지 같은 자식!“효정아! 무슨 소리야? 너랑 서준의 혼사는 우리가 백씨 가문이랑 다 말해둔 건데 헛소리 하지 마!!”손이란은 눈살을 찌푸리며 호통을 쳤다. 그리고 권효정 곁에 있던 서강빈을 곁눈질하다가 서로 손을 꼭 잡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손이란은 자기 딸이 남자와 이런 스킨십을 하고 모습이 매우 언짢았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부잣집 아가씨로서의 체면을 어떻게 세우지?“쟤는 누군데?”손이란이 정색하고 물었다. 권효정은 턱을 치켜올리고 당당하게 말했다.“엄마, 소개할게요. 이 친구의 이름은 서강빈이예요. 할아버지의 병을 치료한 신의가 바로 서강빈 씨입니다.”“서강빈? 얘가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한 거라고?”손이란은 안색이 변하며 놀라는 눈빛으로 서강빈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 젊은이가 이런 대단한 의술이 있는 사람인지 생각도 못 했다.서강빈도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다.“효정 씨 어머님, 안녕하세요.”손이란은 서강빈에게 대꾸하지 않고 권효정을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아까 뭐라고 했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그녀는 자기 딸의 친구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언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까?“네! 있어요! 바로 서강빈 씨입니다!”권효정은 서강빈을 잡아당기며 진지하게 말했다. 서강빈은 흠칫 놀라더니 당황한 표정으로 권효정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효정 씨, 이렇게 말하면 좀...”“강빈 씨도 봤잖아요. 우리 엄마가 꼭 저 백서준에게 시집가라고 해서요. 저는 쟤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러니깐 잠시만 제 남자 친구인 척해 주세요. 나중에 제가 보상해 드릴게요.”권효정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서강빈에게 눈치를 줬다.그러자 서강빈은
손이란은 화가 치밀어 올라 숨이 막혔다. 그녀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마음을 추슬렀다.“서강빈, 또 만났네!”백서준은 서강빈을 바라보면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특히 서강빈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경멸로 가득 찼다. 지난번 권효정 생일 파티에서 서강빈이 백서준을 때린 장면을 백서준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원래는 기회를 봐서 한번 혼내주고 싶었는데 마침 오늘 이런 우연이 있을 줄은 몰랐다.‘정말 하느님이 나를 돕는구나!’“서준 도련님, 상처는 다 나았나 보죠?”서강빈이 덤덤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그 말을 듣자 백서준은 얼굴색이 어두워지더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 자식이 고의로 콕 짚어 말하네!’“감히 먼저 그걸 묻네요? 정말 겁도 없고 무례하기까지 하네!”백서준이 차갑게 말했다. 그러자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면서 두려울 것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이 모습은 백서준을 더 미치게 했다!“서강빈 씨, 오늘 효정이 체면을 봐서 무릎을 꿇고 절하면서 사과하면 그날 일은 없었던 일로 하죠!”백서준이 위협했다.“네?”서강빈이 미간을 찌푸렸다.‘백서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서준 도련님, 제가 정말 무릎을 꿇고 절이라도 할까요? 정말 그걸 원하시는 거 맞죠?”서강빈이 차갑게 물었다.“그럼! 무릎 꿇고 사죄하지 않으면 오늘 살아서 나갈 생각 하지 마!”백서준은 큰 소리로 서강빈을 위협했다.“지난번 효정의 체면을 보지 않았더라면 너는 이미 시체가 되었을 거야. 지금까지 살 수 있는 걸 고맙게 생각해. 그런 주제에 오늘 여기까지 와 내 여자를 빼앗아? 네 자식이 뭔데. 제 주제도 모르고. 그럴 실력과 자격이 있어?”백서준의 위협과 조롱이 섞인 말을 듣자 서강빈은 웃었다. 백씨 가문 둘째 도련님으로서 오만방자하게 사람을 대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았다. 모든 사람이 그의 말을 듣고 그에게 굴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왜, 안 꿇어? 꼭 내가 손을 써야겠어? 제대로 말할게. 내 사람들이 일단 손을 쓰면 너는 반드시 죽거나 불구가 될 것이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