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강빈 씨를 굳게 믿어요. 그러니까 힘내요!”말을 마치고 권효정은 서강빈이 그녀의 말을 들었든 말든 그대로 고개를 돌리고 도망가버렸다.한편 서강빈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 점점 멀어져가는 차의 후미등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송해인과 달리 권효정은 조금 더 귀엽고 순진했다.게다가 그녀의 모습은 3년 전 그를 무조건 믿어주던 송해인의 모습과 비슷했다.또다시 복잡해진 머리에 서강빈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마침 심심했던지라 서강빈은 낮에 송해인이 자신에게 캐물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는 잠시 고민하고는 이내 페이스북을 키고 “도도한 눈”이라는 아이디를 검색했다.확실히 권효정의 아이디가 맞았다.팔로워가 적지 않았다. 팔로워가 족히 십몇만은 되었다.게시물은 많지 않았지만 대충 4, 5개는 되는 듯싶었다. 모두 전에 여행을 다니며 찍었던 셀카였다. 그리고 게시물 아래에는 전부 엄청난 미녀라고 칭찬하는 댓글뿐이었다.가장 최근의 게시물은 “정빈 마스크팩”에 관한 것이었고 전에 올린 게시물과 무려 반년 정도 텀이 있었다.게다가 이 게시물의 인기는 상당했고 공유수와 댓글은 천을 훌쩍 넘겼으며 모두 이 마스크팩이 언제 발매되는지를 묻고 있었다.몇 번 게시물을 훑어보던 서강빈도 잠시 고민을 하고는 그녀의 게시물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재업로드 하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하단에 “좋은 제품은 항상 시간의 흐름이 필요하고 성급하게 판매되는 제품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라는 댓글을 남겼다.게시물을 올린 뒤 서강빈은 더는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샤워를 하러 갔다.하지만 샤워를 마치고 돌아와 다시 자신의 페이스북 댓글을 찾아본 서강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이 쓰레기 같은 자식! 어장남! 바람둥이! 결혼했음에도 바람을 피우다니. 당신과도 같은 쓰레기 자식은 왜 아직도 살아있는 거야?”“이혼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다른 여자와 썸을 타는거야? 전처의 입장을 하나도 생각하지 않는 걸 보니 네 놈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모
곧이어 그의 게시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힘에 의하여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서강빈은 본래 이럴 생각은 없었지만 나는 의사다 프로그램의 인지도가 너무 높은 건 그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게다가 배후에 누군가가 이를 조작하고 있으니 서강빈의 게시물은 성공적으로 실시간 트랜드 3위에 자리 잡았다. 하여 서강빈의 일은 자연스럽게 큰 풍파를 일으키게 되었다.같은 시각, 진기준은 한 나이트클럽의 룸에 앉아있었다. 요란한 음악과 눈앞에서 몸을 흔들고 있는 댄서들, 그리고 사처에 널려 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술친구들이 룸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진기준은 핸드폰을 들고 사악한 얼굴로 음흉한 냉소를 터뜨리며 누군가에게 카톡을 보냈다.“잘했어! 계속해. 계속 논란을 만들면서 서강빈을 끝까지 내몰아. 그리고 송해인의 독립적인 여성 대표 이미지를 끌어올려. 나한테 사진 몇 장이 있는데 하나는 송해인의 독립여성대표 사진이고 하나는 서강빈이 송해인을 버리고 다른 여성을 꼬시는 사진이야. 이것들을 올려서 계속 여론을 몰고 가.”이윽고 진기준은 그가 몰래 찍은 송해인의 사진과 서강빈이 권효정과 팔짱을 끼고 있는 사진, 그리고 파티에서 귓속말하는 사진을 상대방에게 보내주었다.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으로부터 알겠다는 답장이 도착했다.“으하하! 서강빈, 넌 이제 끝이야! 감히 나와 해보시겠다고? 내가 제대로 죽여주마. 이제 얼굴도 들고 다니지 못하도록 네 명성을 전부 짓밟아주겠어.”진기준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술맛을 음미하며 몸을 일으켜 여성의 허리를 끌어안고는 그녀의 몸을 더듬더듬 만져댔다.같은 시각.이세영 역시 실시간 검색어를 보게 되었고 그녀의 입꼬리가 음흉한 곡선을 그려냈다.“웃겨 정말. 어디서 감히 주제도 모르고 우리 송 대표님과 경쟁을 하겠다고. 다음 주 선발전? 허허. 너같이 아무 쓸모도 없는 인간이 과연 어떤 좋은 성적을 거둘지 어디 한번 두고 보도록 하지.”피식 냉소를 터뜨린 이세영이 이윽고 박여름에게 처방전의 연습은 어
이튿날 아침.서강빈은 일찌감치 일어나 영업준비를 하기 시작했다.부르릉...그때 포르쉐 911 한 대가 가게로 다가왔다.권효정은 캐주얼한 운동복 차림에 청순한 매력을 뽐내며 차에서 내려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서강빈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권효정이 싱긋 웃어 보였다.“일이 있어서 왔죠.”“무슨 일인데요?”“다음 주 선발전 1라운드 경기가 곧 시작되잖아요. 그때 가서 나는 의사다 프로그램 제작진분들이 현장에서 녹화할 거예요. 강빈 씨 쪽은 준비가 잘 되어가나요? 제가 출전 순서 좀 잡아드릴까요?”이러한 경기는 프로그램 녹화 요인도 있기에 출전 순서가 매우 중요했다.출전 순서 하나만으로도 심사위원의 심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그러나 서강빈은 상관이 없다는 듯 부적을 그리며 팔괘경을 이리저리 옮기며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상관없어요. 전 제 약을 제련할 거니까 언제 출전하든 다 똑같아요...”권효정은 그대로 할 말을 잃어버렸고 곧 이해가 되지 않는듯한 어투로 물었다.“강빈 씨 약을 제련한다고요? 강빈 씨,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심사위원분들이 이미 상의를 거쳐 처방전을 내세웠고 현장에서 약을 제련해내어 약효에 따라 평가를 하는 것인데 강빈 씨 본인의 약을 제련해나가는 건 노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자작곡을 들고 나가는 사람들과 무슨 차이가 있나요? 본인의 약을 제련하는 건 엄청 어렵다고요! 설마 그냥 한 번 출전해보고 말려는 심산은 아니시죠...”서강빈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전 다른 사람의 처방전에 따라 약을 제련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처방전들 다 너무 별로거든요. 제가 제련해낸 약효과가 그 심사위원분들의 처방전보다 훨씬 강할 겁니다.”권효정은 두 눈을 깜빡거리며 미소를 지었다.“서강빈 씨, 정말이에요?”“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몇 번째에 출전하든 전 상관없습니다.”서강빈이 덤덤하게 말을 하자 권효정은 잠시 침묵을 지킨 뒤 하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대단하세요. 역시
권효정의 말에 이청산이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경기중에 자신의 처방전으로 약을 제련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말은 없었지만, 아가씨, 만약 서강빈 씨가 반드시 자신의 처방전을 쓰겠다고 한다면 저희 심사위원들은 더 엄격하게 심사할 것입니다. 아가씨께서 서강빈 씨에게 프로그램에 나와 한방에 뜨려고 욕심부리지는 말라고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한의학은 연예계처럼 한방에 사람들의 관심과 인기를 얻으려는 것이 아닌 천천히 연구에 몰두하는 걸 중심으로 해야 하는 겁니다.”이청산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이청산은 서강빈의 의술을 인정해줄 수는 있지만, 그의 수법은 그다지 인정할 수 없었다.전문적인 경기에서 자신의 처방전으로 약을 제련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일단 처방전은 심사위원팀의 승인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처방전의 약효도 반드시 심사위원이 내준 처방전보다 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강빈은 경기중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알겠습니다. 꼭 서강빈 씨에게 전해주도록 할게요.”권효정이 미소를 지으며 웃어 보이자 이청산도 더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묵인하였다.상황을 지켜보던 장 감독도 잠시 고민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알겠습니다. 효정 아가씨 친구라고 하시니 저도 굳이 말리지는 않겠지만 전 무조건 프로그램의 이익을 챙기기 때문에 서강빈 씨가 제멋대로 군다면 저도 어쩔 수 없이 효정 씨 부탁을 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권효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응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네. 감사합니다, 감독님. 그렇다면 서강빈 씨는 몇 번째에 출전하는 거죠?”장 감독이 눈썹을 찌푸리더니 손에 쥐어진 서강빈의 자료들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제일 먼저 출전하도록 하죠.”인기를 얻는 것이 목적이라니 기왕이면 가장 먼저 경기에 출전하도록 한 것이다.서강빈이 약 제련에 성공하든 말든 제작팀에게 있어서 그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관건이었다.성공한다면 모두의 찬사를 받으며 프로그램은 인기를 얻을 것이다.
한정산의 모습을 지켜보던 서강빈이 덤덤한 미소를 지었다.“한 가주님, 이만 일어나셔서 차 좀 드세요. 마음이 진정되실 겁니다.”그제야 한정산은 몸을 일으켜 탁자 위에 놓여있던 찻잔을 들어 한입에 들이켰다.찻물이 목구멍으로부터 배에 흐르니 몸 안에 쌓여있던 초조함과 긴장감이 단번에 씻겨 내려간 느낌이었다.이윽고 서강빈이 방금 그려놓은 부적을 꺼내 들어 한정산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이 평안부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세요. 부적이 당신에게 평안을 가져다줄 겁니다.”“평안부? 이게 정말 효과가 있는 건가?”평안부를 건네받은 한정산의 안색이 변하자 서강빈이 설명하기 시작했다.“한 가주님께서 저를 믿으신다면 들고 다니시고 믿지 않으신다면 이 비단함을 도로 가져가셔도 좋습니다.”서강빈의 말을 듣자 한정산이 다급히 공손하게 웃으며 굽신거렸다.“믿지. 난 서 거장을 믿지. 그럼 난 이만 먼저 가보도록 하겠네.”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멀어져가는 한정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한 가주님, 요 며칠 동안은 송주에 머무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주님의 인당에 검은 기운이 맴도는 것을 보아하니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요 며칠 정체 모를 사람들이 계속하여 가주님을 습격할 것 같습니다.”쿵!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한정산은 다급히 고개를 돌려 울먹이는 목소리로 서강빈에게 물었다.“서 거장, 그럼 난 어떡하지?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걱정하지 마십시오. 송주에 편히 머무르고 계시면 제가 다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하자 한정산이 손에 들고 있는 평안 부적을 꽉 쥐어 잡고는 반신반의하며 가게를 나섰다.한정산이 자리를 뜨고 서강빈은 탁자 위에 놓여있는 비단함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다 모았군. 이제 약을 제련하여 돌파할 수 있겠어!”서강빈도 더는 지체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가게 문을 닫아 영업을 중지하고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약로를 꺼내어 한정산이 가져다준 약재들을 모두 약로에
서강빈은 다급하게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샤워를 마치고는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와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너무나도 상쾌했다.“스승님께서 남겨주신 고대 의술, 고대 처방전, 그리고 고대 술과 무술도 이제 배울 수 있겠군.”그때 서강빈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핸드폰 화면을 확인하니 발신자는 황규성이었다.“서 신의님, 오늘 시간 되십니까? 괜찮으시다면 제 아내 좀 봐주실 수 있습니까?”전화 건너편으로부터 황규성의 공손한 목소리가 전해왔고 서강빈도 담담히 웃으며 그의 부탁에 응했다.“시간은 충분합니다.”“정말 다행입니다! 그럼 제가 지금 모시러 가겠습니다.”서강빈의 대답에 황규성은 감격스러운 말투로 다급히 입을 열었다.“알겠습니다.”20분 뒤, 황규성은 직접 랜드로버를 몰고 서강빈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황규성의 별장에 도착하고 차에서 내린 서강빈은 옅은 회색빛을 띄고 있는 살기가 별장 내외를 감싸고 있는 광경을 보고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서 신의님, 왜 그러십니까?”황규성은 서강빈이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자 덩달아 긴장해져 조심스럽게 물었다.“별거 아닙니다. 일단 들어가시죠.”이윽고 황규성은 서강빈을 데리고 아내의 침실로 들어갔다.그리고 침실에 발을 들인 그 순간 서강빈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침실 전체가 매우 음산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마침 정오였기에 눈부시게 찬란한 햇빛이 계속하여 침실 안을 비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내에서는 조금의 온기도 느껴볼 수가 없었다.침대 위에는 하얀 피부와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3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누워있었다. 그녀는 상당한 미인이었고 열심히 자기관리를 해온 것인지 그녀의 피부와 몸매도 매우 완벽했다.그 여성은 다름 아닌 황규성의 아내, 유금란이었다.하지만 현재의 유금란은 침대에 누워 매우 허약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서강빈을 바라보더니 눈썹을 찌푸리며 소리를 질렀다.“나가! 난 의사한테 진찰 안 받아. 난 병이 없다고!”말을 마
“서 신의님, 뭐 하시려는 겁니까? 이것들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건가요?”황규성이 의아한 듯 물었고 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황 사장님 아내분에게는 병이 없습니다. 문제가 있는 건 이 별장이에요.”“별장이요? 그게 무슨 말이죠?”황규성은 더욱 어리둥절해졌다.서강빈이 설명했다.“조금 전에 밖에서부터 황규성 씨 별장의 풍수지리가 좋지 않은 게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옅은 살기가 이곳을 감싸고 있었어요.”“특히 황 사장님 아내분이 계시는 이 침실의 살기가 가장 짙습니다. 이 살기는 아내분 건강에 심각하게 영향을 주고 있어요. 아내분 관상의 자녀궁에는 회색이 감돌고 금이 끊어졌어요. 그래서 그동안 자식이 없었던 거예요.”“보세요. 지금은 정오라 햇빛이 침실을 내리쬐고 있는데도 따뜻한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잖아요. 심지어 몸도 으슬으슬하죠.”“황 사장님, 그동안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나요?”황규성은 당황하며 더듬거렸다.“그... 솔직히 얘기하자면 다른 분들을 찾아갔었는데 다들 문제가 없다고 하셨어요. 제 아내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이 별장에 문제가 있는 게 확실한가요?”“네. 이곳의 살기를 없애면 아내분의 불임도 해결될 겁니다.”말을 마치자마자 침대 위에 있던 유금란이 소란을 피웠다.“헛소리하지 말고 나가요. 당장! 믿음직스러운 의사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사기꾼이네요. 여보, 뭐해요? 얼른 밖으로 쫓아내요.”황규성은 난처했다.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서강빈의 말이 진짜일까 아니면 가짜일까?엽전, 도목검, 종이돈으로 정말 사악한 것을 내쫓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걸까?“서 신의님, 그 말 진짜인가요?”황규성은 망설이며 물었다.서강빈이 말했다.“황 사장님께서 절 믿으신다면 조금 전 제가 말한 그 세 가지를 준비해 주세요. 반대로 절 믿지 않으신다면 절 데려다주시면 됩니다.”황규성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고민 끝에 이를 악물고 말했다.“저는 서 신의님을 믿습니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황규성은
황규성은 오래전에 이미 넋이 나갔다. 그는 유금란을 꼭 끌어안고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이건 너무 무시무시했다.서강빈은 덤덤한 얼굴로 바닥의 엽전을 주워서 본 뒤 황규성과 유금란에게 말했다.“이제 괜찮습니다. 살기를 제거했어요. 황 사장님 별장을 차지하고 있던 그 귀신도 사라졌습니다.”서강빈은 유금란의 얼굴에 혈기가 도는 걸 발견했다.게다가 자녀궁에 드리워졌던 회색도 점차 사라지고 있었으며 동시에 침실 안의 온도가 점차 올라가며 따스해졌다.황규성은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더니 예를 갖추며 머리를 조아렸다.“서 신의님, 아니, 서 거장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오늘 서 거장님 덕분에 견식을 넓혔습니다. 예전에 세상에 이렇게 대단하신 분이 있다는 말은 들어봤었는데 오늘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제가 서 거장님께 절을 올리겠습니다.”황규성은 교양이 부족한 편이라 마음속의 흥분과 감사함을 머리를 조아리는 것으로 표현했다.서강빈은 전에 그를 구한 적이 있었다.그런데 이번에는 그의 집에 있던 악령까지 제거했으니 정말 커다란 은혜를 입은 셈이었다. 평생 보답할 수 없는 그런 은혜 말이다.서강빈은 황규성을 일으켜 세우면서 덤덤히 말했다.“이럴 필요 없습니다. 약속드린 일은 이미 다 처리했습니다.”“감사합니다, 서 거장님.”황규성은 끊임없이 허리를 구부리며 감사 인사를 했다.유금란도 침대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말했다.“서 거장님, 전에는 제가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제가 보는 눈이 없었어요.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세요.”서강빈은 황급히 유금란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아닙니다. 이럴 필요 없으세요. 전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유금란은 무척 기뻐하며 물었다.“그러면 전 앞으로 임신할 수 있는 건가요?”“제가 처방을 내줄 테니 우선 몸조리를 하세요. 한 달 뒤면 임신 준비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석 달 내로 임신할 수 있을 거예요.”그 말을 들은 황규성과 유금란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이면서 끊임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