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들은 이때다 싶어 몰려와서 괜히 한마디씩 거들었다.「나 배우가 술에 취했으면 뭐? 딱 봐도 여자랑 잤잖아!」「덮친 건 둘째치고, 이건 지금 먹튀 하겠다는 거 아님?」「나엽 팬들이 찾아낸 정보들을 한번 보세요. 매니저라는 사람이 비록 얼굴은 못생겼지만 여자의 어머니와 나 배우의 어머니가 친구 사이래요. 어쩌면 지금 두 사람이 연애 중일지도 모르죠! 근데 이렇게 발각되니깐 자기의 사업을 위해 여자를 버린 거잖아요!」...이 일에 대한 구설수가 빠르게 퍼졌다.만약 처리를 잘못하면 나엽의 사업들이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앞으로 그가 어디에 가든지 항상 언론 기자들이 이 일에 대해 취재하고 물어볼 것이다.하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일이 끊기면 마침 쉬고 싶었는데 오히려 좋다.어쩌면 연예계에서 아예 은퇴할 수도 있는데 앞으로 부업을 해서 아내와 함께 살면 그만이다.여기서 중요한 건 지금 아내가...나엽이 임설영의 꾀에 넘어가고 있을 때 안효연은 패션 잡지 촬영 때문에 외지에 있었다.일이 터지자 명월은 제일 먼저 기사를 보고 달려왔다. “큰일 났어요!”명월은 휴대폰의 뉴스 기사 헤드라인을 안효연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다행인 건 효연 씨랑 나 배우가 결혼했다는 사실은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요! 하지만 두 사람은 지금 연인 사이이고 연예계에서도 인정받는 모범 커플이잖아요.”“근데 이런 불상사가 터졌으니.”“효연 씨, 혹시...”명월은 안효연의 안색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고는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다시 걱정스레 물었다.“괜찮아요?”안효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괜찮아.”근데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을까?지금 남숙자가 벌인 일 때문에 구역질 나고 괴로워 죽겠는데!분명한 건 두 사람은 여전히 뜨겁게 사랑하고 있고 무엇도 그들을 갈라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그녀는 나엽을 뜨겁게 사랑하지만 남숙자가 벌인 일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근데 설상가상 이런 일까지
명월은 그녀를 깨워서 신신당부했다.“약은 침대 머리 쪽에 뒀으니깐 잊지 말고 드세요.”“응.”안효연은 짧게 얼버무렸다.명월이 방에서 나오자 나엽이 재빨리 다가와 걱정스레 물었다.“효연이는 어때? 보니깐 안색이 안 좋더라.”“효연 씨가 감기 기운이 있어요. 지금 열도 나고요.”명월은 말을 마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겨우 이틀 만에 나엽의 턱에 푸른 수염이 올라온 걸 발견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안효연의 곁을 지키면서도 모든 걸 해명하고 싶어 하는 나엽의 모습을 보았다.명월은 두 사람이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지금 두 사람이 매우 힘들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그리고 명월은 결심했다.그녀는 안효연의 방문 키를 나엽에게 넘겨줬다.“이따가 효연 씨가 약을 먹었는지 한번 들어가서 봐주실 수 있을까요? 잘 돌봐주세요. 그리고 깨어나면 두 사람이 잘 이야기해 보시고요.”“고마워!”나엽은 키를 가지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그가 침실 방문을 열어보니 안효연이 곤히 자고 있었다.나엽은 다가가서 그녀의 뜨거운 이마를 짚어보고는 미간이 찌푸려졌다.“효연아...”“빨리 일어나봐. 약부터 먹자.”안효연은 이미 깊게 잠이 든 상태라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나엽은 잠시 망설였다.어쩔 수 없이 해열제를 먼저 안효연의 입에 넣고 자신이 물을 입에 머금은 다음 그녀의 입으로 옮겨줬다...다행히 안효연은 해열제를 삼켰다. 시간이 지나니 역시나 안효연은 열이 빠르게 내려갔다.나엽도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열도 나고 해열제도 먹으니 땀이 많이 났다.나엽은 안효연이 찝찝한 상태에서 자게 내버려두기 싫었다.그래서 일단 욕실에 따뜻한 물을 받아두었다.그리고 안효연을 안고 욕조에서 뜨거운 샤워를 해주려고 했다.나엽이 그녀의 옷을 벗기려는 순간 안효연이 깨어났다.“뭐 하는 거야?”나엽이 냉큼 해명했다.“열이 많이 났고 땀도 많이 흘려서...”“내려줘!”안효연은 굳어진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당장 꺼져! 지금은 네 얼굴 보고
임설영은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이때 남숙자가 갑자기 팔을 들어 그녀의 뺨을 ‘짝’하고 내리쳤다.임설영은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얼굴은 얼얼했다.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 아픈 뺨을 감싸고 남숙자에게 물었다.“사모님, 왜 때려요?”남숙자가 눈을 부릅뜨면서 말했다.“이 뻔뻔한 년, 감히 내 아들을 모함해? 너 때문에 내 아들의 사업이 망하면 그때는 아주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야!”말을 마치고 남숙자는 또 그녀를 때리려고 손을 들었다.임설영은 남숙자의 손목을 단번에 잡고 거침없이 내팽개쳤다.그녀는 더 이상 예전처럼 남숙자 앞에서 머리를 수그리고 고분고분 말을 듣는 사람이 아니다.남숙자는 깜짝 놀라 외마디를 쳤다.“너...”임설영은 그녀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사모님, 나엽 오빠는 저랑 하룻밤을 잔 게 맞아요! 어쩌면 제 뱃속에 이미 손주를 임신했을지도 모른다고요!”“저를 때렸다가 뱃속의 손주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남숙자는 드디어 진짜 모습을 드러낸 임설영에게 말했다.“너 같은 물건은 아무리 내 아들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해도 때릴 수 있어!”남숙자는 임설영을 무시했다.지금 임설영이 이런 비열한 수단을 써서까지 나엽을 모함하고 뻔뻔하기까지 한 그녀를 남숙자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그런데요. 밖에서 찾았다던 그 여자는 진짜 임신이 가능한 거예요? 설상 가능하다고 해도 그때 가서 배 속의 아이가 만약 나엽 오빠의 씨가 아니면 어떡해요?”남숙자가 물었다.“무슨 뜻이야?”“하하하!”임설영이 득의양양해하며 웃음을 터뜨렸다.그녀는 이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남숙자를 쳐다보았다.“사모님도 때가 되면 알게 될거에요!”...강주환 쪽.남궁성우가 드디어 강주혜를 데리고 M 국으로 돌아간다.출발할 때 그들은 먼저 운성에 들렀다.병실에 도착하자 강주혜는 뒤따라온 송아름을 보며 말했다.“너는 밖에서 기다려!”송아름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졌다.그리고 한껏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주혜야, 그
모든 것이 그렇듯 일상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날들이었다!“나엽씨...”안효연은 눈물을 머금고 다시금 나엽의 이름을 불러보았다.“응, 나 여기 있어!”남자는 대답했다.그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을 다루듯 경건한 마음으로 뜨겁게 그녀의 가녀린 목덜미와 쇄골에 입을 맞췄다. 또한...“효연아, 사랑해!”그는 수많은 달콤한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나엽의 가슴속엔 뜨거운 불씨가 일었다. 그러나 안효연의 열정적인 모습에 그의 가슴 속 불꽃은 마치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처럼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하루 종일, 두 사람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피곤하면 서로를 끌어안고는 그대로 잠들곤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미 한밤중이 되었다. 밖은 이미 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안효연은 눈을 뜨고 잠에서 깨어났다.자신의 곁에 누워있는 준수한 얼굴의 남자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아픔이 묻어있었다. 오늘 밤이 지나면, 우리는 각자 이대로 흩어지는 거야!그러나 그가 그녀의 인생에서 사라져,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 그녀의 심장은 너무나 아파와 마치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녀에게 나엽은 진실한 사랑이었다. 이미 그녀의 심장에 깊게 박혀버린 사람이었다!“나엽 씨.”그녀는 다시 한번 낮은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그리고는 손을 들어 그의 준수한 얼굴을 살며시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의 눈썹부터 눈, 코, 그리고 마지막엔 그의 얇은 입술까지.나엽이 깨어났다. 그는 큰 손으로 그녀의 작은 손을 살며시 잡았다. 졸음이 채 가셔지지 않은 그의 두 눈은 부드러움과 사랑스러움으로 가득 찼다. “벌써 깼어?”“응, 잠이 안 와서.”안효연은 남자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리고는 그에게로 다가가, 가볍게 나엽의 입술에 입맞춤했다. 그녀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엽을 보며 말했다. “할까...” 안효연의 짧은 한마디에 나엽은 움찔했다.그는 순식간에 몸이 긴장된 상태로 모든 세포들이 춤추
강주환의 눈빛은 원망으로 가득 찼다.“내가 병원에 보름 동안 입원해 있었는데, 보름을 굶었다고.”윤성아는 말이 없었다.“...”남자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으로 그녀의 몸을 짓누르며 욕망이 들끓고 있는 까만 눈동자로 윤성아를 유혹하듯 쳐다보며 말했다. “설마 당신은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거야?”그는 윤성아의 손을 잡으며...몸을 낮추고,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했다...밤은 그야말로 고요했다. 창밖의 살랑거리는 바람이 들어오며 뜨거워진 열기를 식혀주었다. 벌레소리와 개구리 소리가 들려오니 윤성아는 마치 광활한 초원에서 남자와 함께 말을 타고 뛰어다니며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성아야.”비에 젖은 것처럼 땀을 잔뜩 흘린 강주환은 윤성아의 품에 안겼다. 그의 눈에서는 사랑스러움이 가득 묻어있었다.“같이 샤워하러 가자.”“...”윤성아는 피곤함이 잔뜩 몰려왔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남자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성스레 닦아주고는 그녀를 안고 함께 누웠다.그는 반짝거리는 까만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이렇게나 오랫동안 당신의 애인이었는데, 당신도 나를 좋아하고! 하성이의 얼굴을 봐서라도, 나 좀 승진시켜주면 안될가?”윤성아가 대답했다. “어떤 승진이요?”강주환의 눈빛이 더욱 반짝였다.“우선은 내가 당신의 남자 친구가 되는 거지. 성아야, 네가 계속해서 나를 지켜보다가 이만하면 만족했다싶을 때, 그때 나를 남자 친구에서 남편으로 승진시켜주는거지! 결혼도 하고, 나에게 합법적인 신분을 주는 거지. 어때?”강주환의 계략은 아주 철저했다.윤성아는 웃음이 났다. 그리고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나는 당신의 애인행세를 4년이나 했고, 당신 때문에 1년은 갇혀있기까지 했는데! 당신은 이제 며칠이나 됐다고 그만하고 싶어졌어요? 그렇게 쉬운 일이 어디 있어요?”강주환의 눈빛은 원망으로 가득 찼고, 억울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그러나 윤성아에게 이런 방식은 먹히지 않았다!둘째 날
여자는 나엽을 만나고 나서 인츰 그의 신분을 알아차렸다. 만약 영화계의 황제인 나엽의 아이를 가진 거라면, 그녀의 신분은 한순간에 달라질 테니! 하물며 영화계의 황제, 나엽의 와이프는 임신도 할 수 없다고 하니!그렇다면 그녀에게...“나엽 님, 당신은 제 아이를 지울 수 없어요! 만약 당신이 억지로 지우려고 한다면, 전 이 모든 사실을 폭로해 버릴 거예요! 그렇게 되면 나엽님께서 여자를 찾아 아이를 낳으려고 한다는 사실과 박정윤이 임신 할 수 없다는 스캔들이 온 세상에 다 퍼질 거예요. 나엽님이 스캔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박정윤 씨는요? 과연 그분도 괜찮을까요?”나엽은 화가 나 미칠 것만 같았다.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당신 뭐 하자는 거야?”여자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였다. 그녀는 청순하면서도 부드러운 모습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후회하고 있어요. 아무튼 저는 이미 당신의 아이를 가졌고, 제 아이가 태어나서 곧바로 데려가는 것도 원치 않아요. 나엽님, 저는 당신의 사랑도, 그 무엇도 바라지 않아요. 전 단지 아이만을 원해요! 나엽님은 그저 저와 아이를 밖에서 키운다고 생각하면 돼요. 앞으로도 계속 키워준다면 훨씬 더 좋고요!”나엽은 일이 너무 복잡해져서 빠른 시간안에는 절대로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그는 머리가 심하게 아팠다!며칠 사이에 나엽은 너무 초췌해진 탓에 꼴이 말이 아니었다.결국 그는 병이 났다.남숙자는 의사에게 가보라고 했지만 나엽에게 거절당했다.그녀가 의사를 모셔왔지만 나엽은 곧장 의사를 내쫒으며 치료에 응하지 않았다!마치 모든 생기를 잃은 것만 같은 그는 텅 빈 눈동자로 남숙자를 쳐다보며 말했다.“어머니, 이제 좀 만족하시겠어요? 허허.”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텅 빈듯한 한 쌍의 눈에는 깊은 원망이 서려 있었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남숙자를 향해 말했다. “내 인생 모든 것이 어머니 때문에 망해버렸어요! 알기나 해요?”한편 안씨 가문.안효연은 연속으로 며칠 밤이나 윤성아와 함께 있었다
의사는 마스크를 벗으며 남숙자에게 말했다. “환자의 경우 상사병이 심각하네요! 최근에 아마 제대로 먹지도 않고, 처음에 병이 생겼을 때부터 계속 버티기만 했지, 치료에 응하지 않았잖아요. 지금 링거를 맞으면서 안정을 취하고 있지만, 만약 계속 이대로라면...”의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남숙자를 향해 계속 말했다.“환자가 치료에 응하지 않는다면, 작은 병이라도 악화하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의사라 해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남숙자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그리고 안효연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효연아,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나엽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잖아, 나엽이의 병이 악화하고, 서서히 말라비틀어져 가는 모습을 넌 그저 보고만 있을 건 아니지?”“사모님.”윤성아는 남숙자를 얼른 일으켜 세웠다.그녀는 남숙자를 붙잡고는 안효연더러 나엽을 보러 얼른 들어가라고 했다. 안효연은 응급실로 들어갔다. 열흘 만에 본 남자의 모습은 너무나 야위어있었다! 얼굴에는 수염이 덥수룩했고, 눈은 움푹 들어가 있었으며 그저 눈을 감은채 병상에 누워있었다. 안효연의 얼굴에는 이내 눈물이 흘러내렸다...깨어난 나엽의 눈에 안효연이 보였다. 그는 아직 꿈꾸는 듯했다!“깨났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놔?”안효연은 나엽을 바라보며 한마디 한마디 계속 말했다. “듣자 하니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면서? 위가 많이 약해졌겠네. 배는 안고파? 죽은 먹을 수 있겠어? 내가...”“효연아, 정말 너야? 나 꿈꾸는 거 아니지!”나엽은 흥분되어 어쩔 줄 몰라 했다.그는 얼른 일어나 앉으려 했지만 몸이 허약해진 탓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안효연은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들의 마음은 서로 통해 있었다. 그가 뭘 하려고 하는지 알아차린 그녀는 먼저 나엽의 손을 잡으며 그에게 말해주었다. “나야, 꿈 아니야.”나엽은 순간 눈물이 났다.“효연아, 날 버리지 마, 응? 당신이 내 옆에
남숙자는 임설영을 얼른 막아서며 말했다. “안돼! 지금은 나엽이가 많이 아파, 그 어떤 자극도 받아선 절대 안 돼! 만약 나엽이가 네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엽의 병은 더 깊어만 질뿐이야!”“그럴 리가요? 사모님, 제가 나엽오빠의 귀찮은 일을 해결해 줬잖아요.”임설영은 따뜻하고도 자애로운 눈길로 자신의 배를 만지면서 말했다.“그리고 내 배속의 아이는 나엽오빠의 핏줄이라고요! 오빠는 분명 좋아할 거예요!”남숙자는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얘기했다.“나엽이도 역겹다고 하겠지!”임설영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남숙자는 차갑게 그녀를 쳐다보며 계속 말했다. “네가 정자를 바꿔치기 한 것도, 또 우리 아들이 술에 취한 틈을 타, 침대로 기어 올라간 것도! 불미스러운 일을 이리도 많이 했는데! 너 같은 애는, 우리 아들뿐만 아니라 나조차도 꼴 보기가 싫어! 너만 보면 그냥 재수없고 역겨울 뿐이야.”임설영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웃으며 말했다.“그래도 어쩌겠어요? 사모님이 아무리 내가 싫고 밉다지만, 난 이미 나엽오빠의 아이를 가졌잖아요! 자식이 귀하면 엄마의 지위도 달라지는 법! 그리고요, 사모님, 저는 나엽오빠를 많이 좋아해요. 오빠에게 시집가고 싶어요! 그래서 결혼도 할 거고요! 중요한 건, 저는 사모님이 찾은 여자처럼 그리 쉽게 내쳐지지는 않을 거에요!”“...”남숙자는 말이 없었다.그녀는 임설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남숙자는 분노에 차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도 임설영에게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할수 밖에 없었다. “나엽이가 정말로 많이 아파. 내가 한 일 때문에 효연이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나엽이에게 이혼을 요구했어! 나엽이는 효연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상사병이 심하게 걸렸고! 자신을 괴롭히다 못해 정말로 죽을 뻔했어...”임설영은 나엽이 아프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사실을 알고 난 임설영은 입술을 깨물며 질투했다. 젠장! 안효연이 뭐가 그리 좋다
남서훈은 싱긋 웃었다.아직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맥으로 정확히 짚어 낼 순 없었지만 느낌은...“아마 남동생일 거야.”“아... 남동생...”양나나는 눈을 굴리더니 남서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남동생도 좋은 것 같아요. 동생 태어나면 저랑 엄마가 동생한테 의술도 가르쳐주고 아빠랑 사업하는 것도 배우고요. 그리고 남자애는 너무 응석 받아줄 필요도 없고 내가 맘껏 부려 먹을 수 있잖아요.”자기 뒤꽁무니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누나, 누나 하고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양나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어떻게 생긴 남동생이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날까, 양나나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그러나 남서훈이 임신 다섯 달째로 접어드는 어느 날, 양나나는 실종됐다.양준회와 남서훈은 매일 안절부절못하여 속이 타들어 갔다.둘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동원해 전 세계 각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여전히 양나나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양나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그때 양나나는 이미 8살이었다.남서훈은 딸을 찾지 못해 날마다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그녀는 점점 야위어갔다.그걸 보는 양준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나는 똑똑한 아이야. 당신이 의술과 독 쓰는 법도 잘 가르쳐줬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나나는 너와 내가 낳은 딸이야. 전에 풍운파에 혼자 몰래 들어가서도 그 안을 마구 헤집고 다녔잖아.”아무튼 그는 양나나가 어디에 가서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던 자신을 잘 보호할 거라고, 아무 일 없이 잘 살아 있을 거라고 남서훈을 위로했다.남서훈도 굳게 믿고 있었다. 양나나의 시체를 보게 되지 않는 한 그들의 딸은 세상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거라고.그 후 넉 달이 지났다. 9달이 된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왔다.양나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그러다 남서훈은 아들을 낳았다. 강보에 싸여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보며 남서훈은 양나나를 그리워했다.“나나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네 뒤꽁무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양준회와 남서훈, 그리고 백나연과 성진훤, 이렇게 네 사람은 백무산을 찾아갔다.그를 만나자마자 양준회와 성진훤은 백무산한테 사과부터 했다.어리둥절한 백무산은 그들이 왜 갑자기 찾아와서 사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 후 양준회는 남서훈의 어깨를 와락 감싸안았고 성진훤도 보란 듯이 백나연의 손을 꼭 잡았다. 성진훤은 원래 양준회처럼 백나연을 확 끌어안고 싶었지만 미래 장인어른이 될 사람 앞이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손만 잡았다.백무산은 더 혼란스럽고 얼떨떨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는 눈알이 튀어져 나올 듯하게 그들 넷을 번갈아 쳐다봤다.그때 양준회가 입을 열었다.“어르신, 우리 서훈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남씨 집안의 특수한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남장을 했던 것이고, 백나연 씨와의 혼약도 그저 소동극이었습니다. 이 일은 서훈이한테 책임 묻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노여움이 있으시면 저한테 푸세요.”그 말에 백무산은 눈살을 찌푸렸다.남서훈이 여자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여자가 그의 딸과 약혼했다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백무산은 불같이 화를 냈다.그러자 백나연이 나섰다.“아빠, 이 일은 서훈이 탓이 아니에요, 제가, 제가 꼭 도와달라고 했어요.”“뭐야? 널 도와줘?”“네.”백나연이 설명했다,“아빠랑 오빠가 자꾸 소개팅 주선하는 바람에 제가 너무 골치 아파서 서훈이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나랑 약혼하자고. 그럼 아빠랑 오빠가 나한테 선 자리를 더는 강요 안 할 거 아니에요. 서훈이는 싫다고 했는데 내가 억지 써서 해주기로 한 거예요.”백나연은 자기 잘못이라고 매우 강조했다.그녀의 눈빛에 아픔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전 그때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저랑 서훈이는 서로 약속했어요. 누가 먼저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든, 그때 되면 파혼하기로요. 절대 서로의 앞날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그 순간 용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펑펑 쏟아졌다.이게 얼마 만인가.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은 생각을 항상 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는 오늘 끝내 그녀를 안을 수 있었다. 팔을 뻗어 그녀를 껴안고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용준은 또 한참을 울었다.예서는 그가 평생 사랑한 유일한 여자였다.그는 품속에 있는 그녀를 부드럽고 진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난 네가 고마워. 넌 너무 용감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해. 옛날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넌 이것만 기억해. 난 널 사랑하고, 네가 있어야만 내가 살 수 있어. 네가 있으니까 내가 괴물로 변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난 모든 걸 다 망가뜨렸을 거야. 스스로도 혐오하는 그런 나쁜 인간으로 돼버렸을 거야.”예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남자가 하려는 말이 뭔지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이날, 둘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예서는 더는 용준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용준이 있으므로 하여 그녀는 더 빨리 회복될 것이었다.그렇게 예서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을 때. 남서훈과 양나나는 한 번 나가 돌아다니기로 했다.한 거리의 상가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남자애 몇 명이 갑자기 튀어나와 양나나를 에워쌌다.그들은 매우 들뜬 소리로 말했다.“대장! 살아 있었어요?”“너무 잘 됐어요!”“대장, 대장을 그 사람들이 데려간 후로 우린 계속 대장의 소식을 기다렸어요. 대장도 그 애들처럼 상처투성이가 돼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고요.”“지금은 어떤 상황이에요? 대장이 후계자가 된 거예요?”양나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 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남자애들한테 말했다.“난 후계자 되는 것에 관심 없어. 풍운파에 지금 남아있는 건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야.”양나나는 시선을 남서훈한테 향하며 그들한테 남서훈을 소개했다.“이분이 내 스승님이야, 우리 스승님 엄청 대단해!”그날, 양나나는 그
지난 날에 발생한 그 끔찍한 과거를 스스로 입에 올리는 용준은 피가 흘러나올 듯이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감정이 폭발할 한계치까지 다다랐다.그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몇 분 후에야 그는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그놈들은 죄다 죽여버려야 할 놈들이에요. 예서가 이쁘니까, 내 앞에서 예서를... 그때 예서는 이미 내 아이를 임신했는데...”용준의 온몸에서 난폭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주먹으로 나무를 세게 한 방 내리쳤다. 그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그 큰 나무가 흔들릴 정도면 얼마나 센 펀치를 날렸는지 알 수 있었다.그의 손마디도 살이 찢겨나가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상처에 무덤덤했다. 아마도 손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터였다.용준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심장이 뜯겨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예서가 피투성이가 된 채 텅 빈 눈으로 누더기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져서 누워있던 참혹한 장면만 머릿속에 떠올리면 그놈들을 무참하게 도륙을 내고 싶었다.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였다.풍운파의 보스가 된 후 첫 번째로 한 일이 바로 예서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그놈들의 범죄증거를 전부 찾아내 한 명도 빠짐없이 직접 처단했다.그때 그들은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용서를 빌었다. 막다른 길에 몰려 살려고 해도 안 되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할 때, 그들은 찌질이같이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애원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정작 그들은 용준이나 예서한테 그런 자비를 베푼 적이 없는데 말이다.용준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그것들이 나와 예서의 모든 것을 망치고 날 시궁창에 몰아넣었죠. 여전히 난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생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그것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해요!”그러나 그놈들이 죽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니었다.용준은 피로 물든 주먹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들은 예서가 그들이 한
용준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고, 금호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그는 어둠이 없는 밝은 햇빛 아래에서 사는 반듯한 사람이었다.그러나 일부 국제조직에서는 용준을 불안하게 여겼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심지어 그가 의심되어 오랫동안 그에게 전자발찌를 채웠다.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는 범죄자 취급을 당했고, 그리하여 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더더욱 생각지도 못한 건, 그 당시 그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었던 여자친구마저 누구한테 몹쓸 짓을 당하게 된 것이다.그러므로 용준이 점점 나쁘게 변하여 나중에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되었던, 모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요 몇 년 동안 풍운파는 용준의 관리하에 동남아에서 제일 큰 폭력조직으로 성장하였고,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나 다 저지르는 편이었지만 딱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그건 바로 노약자와 여자,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였다.의리도 지켰다.하지만...“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남서훈이 말했다.“이 세상은 원래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니깐요. 동남아는 원래 상황이 어수선하잖아요. 무장세력과 폭력조직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으로 바꿀 수도 없어요. 오히려 풍운파와 같은 조직이 있다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양준회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측면으로 보면 용준은 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둘은 원수지간이다. 양준회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 비록 지금까지는 아무 짓을 안 했어도, 또 그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풍운파를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다스린 용준이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리하여 양준회는 안심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남서훈과 같이 풍운파를 즉시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나나도 여기 있어요.”남서훈이 예상치도 못한 폭탄을 터트렸다. 양준회는 깜짝 놀랐다.양나나가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는 바로 말했다.“그럼 나나도 같이 떠나면 돼.”갇힌 두 달
강하영이 부케를 내던지는 일순간 우양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부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부케를 잽싸게 낚아채는 그의 모습이 정지화면인 양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부케를 손에 쥔 그다음 순간, 그는 부케와 함께 바다에 떨어졌다.모두가 경악했다.강하영은 크루즈 난간 쪽으로 달려가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남자를 보며 입을 떡 벌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선원들이 즉시 튜브를 던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즉시 뛰어내려 구조하려 했지만 강주환이 그들을 말렸다.왜 구하지 말라는 건지 이해 안 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윤성아는 강주환을 쳐다봤다.그러다 팔로 물살을 가르며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우양주가 크루즈 위에 있는 강하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는 걸 듣고 왜 그러는지 알 것만 같았다.“여보, 어쨌든 내가 부케 받았으니까 당신 나랑 결혼식 치러야 돼요! 안 그러면...”그 뒤엔 위협적인 말이 따라야 하는데 우양주도 무엇으로 강하영을 협박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남은 건 자신의 이 몸뚱이 하나뿐인데...“안 그러면 나 안 올라갈 거야. 여기 바다에 계속 있을 거야, 결혼식도 못 하는데 그냥 빠져 죽지 뭐.”강하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바다에 빠진 남자를 까만 눈동자로 차분하게 내려다보며 끝내 입을 열었다.“빠져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안 말려요.”“...”우양주는 서럽게 그녀를 쳐다봤다.역시나 아내는 매정했고 자신에 대해 애정이 없었다.그러나 그때 윤성아 곁에 서있는 강주환이 무덤덤하게 한마디 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바다에 상어가 출몰한다고 했어요. 식인 상어.”강주환은 고개를 돌려 강하영한테 말했다. “지금 아직 상어가 오지 않아서 그렇지, 나타나기만 하면 한꺼번에 열 몇 마리씩 무리 지어서 나올 거예요. 그게 게네들 습성이라. 이야... 쟨 아마 그러면 뼛조각도 남지 않겠네.”“...”그 말에 강하영이 급해 났다. 말투도 전처럼 차분하고 담담하지 않았다.난간에 기대어 우양주를 향해 내리 소리 질렀다.“뭐
미리 준비한 축사를 울먹이며 끝까지 다 읽고는 원이림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너 이 놈 자식, 내가 죽을 때까지 네가 결혼하는 걸 못 보는 줄 알았다. 아이고...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너도 이제 가정이 생겼어.”“너 똑바로 들어. 은진이한테 평생 잘 해줘야 돼, 아내한테 잘 하는 건 우리 집안 내력이야. 나도 네 엄마 말을 엄청 잘 들었어. 너도 똑같아, 알겠니? 오늘부터는 은진이한테 더 잘해야 돼, 말도 잘 듣고, 은진이부터 생각하고 배려해 주고. 은진이가 조금이라도 맘고생을 하게 되는 날엔 내가 너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원이림은 새카만 눈동자로 여은진을 깊게, 애틋하게 들여다보며 그녀와 깍지를 낀 두 손에 힘을 더 주었다.“걱정 마세요. 난 평생 우리 여보 맘고생 안 시킬 거예요.”여보라는 호칭이 지금 이 시각부터 명실상부하게 되었다.원이림은 그녀의 손을 잡고 크루즈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데이지 꽃을 바다로 뿌렸다. 하얀 꽃잎들이 파도에 실려 멀리 떠내려갔다.둘은 거기에 선 채 눈물을 머금고 울먹이며 말했다.“어머니, 아버지. 저 너무 행복해요. 우리 너무 행복해요.”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할 부케 토스하는 시간이 다가왔다.강주환과 윤성아, 그리고 나엽과 안효연은 모두 기혼자로서 나가지 않고 구경만 했다. 하객 중에 미혼인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우양주도 강하영의 손을 잡고 그리로 향했다.강하영은 몸을 뒤로 빼면서 말했다.“우린 결혼했는데 왜 부케를 받으러 가요? 다른 사람한테 갈 좋은 축복을 왜 우리끼리 받겠다고 달려들어요, 쓸데없이. 그렇게 할 일 없고 힘이 남아돌면 내가 다른 일 하게 해 줄게요.”“무슨 일?”강하영은 푸른 바다를 향해 눈을 힐끔 하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 수영 좋아하잖아요. 내가 엉덩이 확 걷어찰 테니까 바다로 들어가서 수영이나 할래요?”“...”저번에 강하영과 같이 수영하면서 그녀가 자신한테 새빨간 수영팬티를 사줘 창피를 당하고 나서부터 우양주는 수영하는
여은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예쁘게 미소 지었다.“나 다 알아요.”지난 1년 동안 그가 어떻게 해왔는지 잘 아는 그녀는 더 이상의 맹세와 언약 같은 건 필요 없었다.“응!”여은진을 안은 채로 원이림은 그녀의 여린 입술에 쪽쪽거리며 뽀뽀를 했다.장내의 플래시 세례가 정신없이 터지는 가운데 그는 돌아서서 무대 아래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한테 당찬 목소리로 선포했다.“오늘 저의 이 행복한 순간을 지켜본 여기 계신 모든 증인 분들한테 제가 선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저희 베린 그룹에 가셔서 선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달 20일에 저와 은진이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니 여러분들께서 모두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여은진을 안고 시상대를 내려가려 했다.여은진이 내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게 안은 채로 시상식장을 걸어 나와 차에 올라탔다.럭셔리한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내달리고 있었다.여은진은 아직도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있었다.“이번 달 20일에 결혼한다고요? 그럼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촉박하지 않아요?”그녀가 눈을 들어 바라보며 물었다.“아니, 전혀.”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떨구며 원이림이 말했다.“시간이 모자라지만 않았으면 내일에라도 당장 결혼식 치르고 싶어.”반년이 넘는 동안, 그는 매일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결혼반지, 웨딩드레스, 그리고 결혼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디테일한 사항들을 전부 준비하고 체크했다. 그녀가 결혼을 동의하는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이 끝내 다가왔다.웨딩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크게 시간을 들일 일도 없었다.다만 여은진이 임신했기 때문에 너무 빠듯하게 스케줄을 잡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결혼식에 참석할 하객을 초대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10일이면 충분했다.촉박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여보, 우리 지금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가.”원이림은 한시라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기사한테 얘기하여 구청으로 가자
원이림은 금방 샤워를 마친 여은진한테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침대로 향했다.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순을 밟아갔다.한창 격렬해지려던 찰나, 원이림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크게 지르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은진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새에 살에 푹 찔린 그 가는 물건을 빼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빨리 반응했다.하지만 역시 늦었다.여은진이 몸을 일으켜 스탠드를 켰고, 어두웠던 방안은 환한 빛으로 채워졌다.이어 급히 그를 살피던 여은진은 원이림의 엉덩이에 바늘이 하나 꽂혀있는 걸 발견했다.짧고 가는 옷을 꿰맬 때 쓰는 그런 바늘이었다.여은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남자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바늘에 찔릴 수 있어요? 침대에 왜 바늘이...”“...”꽂힌 바늘을 빼며 원이림은 이야기를 얼버무렸다.“괜찮아, 그냥 바늘인데 뭐. 별로 아프지도 않아.”그러고는 또 다짜고짜 몸을 뒤집으며 여은진을 몸 아래로 깔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스탠드를 끄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잠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진행 중이었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지였다.하지만 여은진은 그의 키스를 받아내면서도 오후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난데없이 침대에 나타난 바늘을 함께 떠올렸다. 정신을 쏙 빼놓으려는 지금의 행동도 분명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잠깐만.”여은진은 원이림을 밀어내고 다시 한번 스탠드를 켰다.의심이 부풀어 오른 눈으로 빤히 그를 노려봤다. “똑바로 말해요. 아까 그 바늘로 수작 부린 거 맞죠? 말해요, 몇 개나 찔렀어요?”“...”끝내는 발각되었다. 원이림은 이실직고했다. 강주환이 원흉이라고, 그가 시켜서 했다고 불었다.“여보, 나 며칠 전에 운봉 비즈니스 회담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강주환을 만났어. 그 자식이 날 비웃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하라고 아이디어를 내줬어. 바늘로 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