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환은 길가 감시카메라에서 천우혁의 봉고차를 발견했다. 그의 사람들이 천우혁을 포위했고 그러면서 도망치려고 하면서 신명훈의 부하들을 때렸다.그뿐만 아니라 안효주와 천우혁은 막다른 길에 몰려 어쩔 수 없이 근처 농가의 거름 구덩이에 뛰어들었다.오랫동안 기다린 뒤 강주환의 사람들이 모두 떠난 뒤 안효주와 천우혁은 온몸에 똥을 묻히고 거름 구덩이에서 나왔다. 그런 안효주는 참지 못하고 토했다.강자주환의 사람들이 조금만 더 늦게 떠났더라면 그녀와 천우혁은 거름 구덩이에 빠져 죽었을 것이다.“젠장...”안효주가 욕을 내뱉을 때 바람이 불어오더니 똥이 가득 묻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입으로 들어갔다.“욱...”순간 또다시 메스꺼움이 몰려와 씻을 틈도 없었다.안효주와 천우혁은 강주환과 윤성아 그리고 경찰에게 쫓겨 온몸에 악취를 풍기면서도 도망치기 시작했다.그들은 하수구에 숨어 있다가 강도 건넜고 심지어 다리 밑에서 숨어 지내기도 했다. 쥐들보다 못한 삶을 살았다. 제대로 된 밥 한 끼를 고사하고 잠조차 잘 수가 없었다.결국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산속 숲으로 숨었다.운성 호텔, 아침 8시.안효연은 어젯밤 늦게까지 촬영이 있어 새벽 2시가 넘어서 끝났다. 그래서 아예 호텔에서 잠을 잤다. 그녀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띵동, 띵동.시끄럽게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안효연이 일어났다.그녀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넘기며 슬리퍼를 신고 걸어가 문을 열었다.문 앞에 서 있는 임설영을 보고 안효연은 조금 놀랐다.“임 비서님, 여긴 어쩐 일이에요?”그녀는 나엽의 비서라 안효연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안면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임설영이 나엽을 좋아하는 것도 안효연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효연은 임설영 같은 캐릭터를 눈여겨보지도 않았다.민설영은 딱히 예쁘지도 않고 능력이 출중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안효연은 나엽이 임설영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확신했다.그래서 임설영이 나엽에게 마음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안효연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그녀로서는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당황하기 그지없었다. 안효연은 차에 돌아와 문을 닫고 웅크린 채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그날, 안효연의 차는 하루 종일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다.아침부터 저녁까지, 노을이 지고 어둠이 깔릴 때까지.안효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나엽이였다.그녀가 받지 않자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나엽의 전화가 세 번째 걸려 왔을 때 안효연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첫 마디에 나엽은 이상함을 감지했다.“울었어?”그는 긴장하며 다시 물었다.“무슨 일 있어? 나한테 얘기해! 효연아. 너 지금 어디야?”안효연이 말했다.“바로 집으로 갈 거야.”그녀가 대답했다.“너도 집으로 와.”“알겠어.”나엽이 대답했다.전화를 끊은 뒤 안효연은 눈물을 닦았다.그녀는 차에 시동을 건 뒤 집으로 돌아갔다.남숙자의 기분은 확실히 좋아 보였다. 그녀가 온 것을 보고서는 평소와 같은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이 시간에 무슨 일이니?”“어머니.”안효연이 말했다.그녀의 눈은 부어 있었고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다.“어머님이 저 싫어하는 거 알아요. 하지만 저 어머니 마음에 들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제가 건강하지 않은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임신을 못 하는 건 아니라고 하셨어요. 저와 나엽 씨는 아이를 가질 수 있어요.”그녀는 정말 억울하고 슬펐다.이 말들을 하면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안효연은 남숙자를 바라보며 짜증섞인 말투로 낮게 물었다.“그리고 중요한 건 어머니도 나엽 씨와 제가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는지 아시죠?”남숙자는 미간을 찌푸렸다.그녀는 안효연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안효연에게 물었다.“갑자기 이게 무슨 소란이니?”“허허.”그녀는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났다. 나엽이 돌아와 눈앞의 장면을 목격하고는 가슴이 철렁했다.그는 본능적으로 큰 일이 일어났음을 감지했다.“효연아 무슨 일이야?”그는 안효연을 품에 안으며 손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는
남숙자는 안효연에게 울면서 애원했다.“어머니!”나엽은 그녀를 끌어당기며 말했다.“왜 이렇게까지 저한테 강요하시는 거예요?”“난 너한테 강요한 적 없어.”남숙자는 아직도 자기가 한 모든 것은 나엽과 안효연을 위해서 그랬다는 말뿐이었다. “이건 사실 아주 단순한 일이야. 효연이만 허락하면 모두가 행복해질 거야.”안효연은 그대로 떠났다.그녀는 차를 몰고 호텔로 돌아왔다.얼마 뒤 나엽도 따라왔다.하지만 호텔 방 문을 안에서 열어주지 않아 나엽은 계속 문을 두드렸다. 그는 안효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예 받지 않았다.“효연아.”나엽은 문을 두드리며 호텔 방 앞에서 안효연에게 문자를 보냈다.「이건 나도 모르는 일이야. 내가 알았으면 절대로 엄마가 그런 일을 꾸미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야.」「미안해... 효연아.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나도 몰랐어.」「효연아, 문 열어주면 안 돼? 나 좀 들여보내 줘.」나엽은 계속 문자를 보냈다.하지만 문자는 모두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아무런 답장도 없었다.호텔 방 안에서 안효연은 침실에 들어간 뒤 바로 침대에 누웠다.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워 잠을 자고 싶었지만 잠에 들 수가 없었다.그녀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핸드폰은 계속 울려댔지만 보지 않아도 나엽이 보낸 문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안효연은 핸드폰을 볼 기분이 아니었기에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또 흘렀다. 아니면 처음부터 멈추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그녀와 나엽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다가 연애를 시작했다. 그들은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변함없이 서로를 사랑했다. 평생을 함께하자고 약속까지 했지만 안효연은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그날 밤, 안효연과 나엽 모두 뜬눈으로 지새웠다.나엽은 안효연의 호텔 방 문 앞에서 하룻밤을 기다렸다.다음 날 아침 나엽은 잠시 떠났다.그는 안효연이 가장 좋아하는 아침을 사서 돌아왔다. 다시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효
천우혁도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그러면 어떡해?”“가자!”안효주는 결정을 지었다. 그리고 사악한 눈빛으로 차갑게 말했다.“하지만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안효주는 이렇게 그냥 떠나기에는 아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 혼자만 낭패를 볼 수 없다 여겼다.그래서...“우혁아, 우리가 저번에 안효연이 운성시에서 촬영하고 있다는 걸 알아봤잖아. 그리고 걔가 지금 그린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것도 내가 알아봤어!”“지금 안효연의 주변에는 경호원도 없어.”천우혁이 물었다.“뭐 하려고?”안효주는 사악하게 웃으면서 말했다.“아무것도 안 하고 떠나긴 너무 아쉬워.”“마지막이야.”“한 번만 같이 가줘! 가서 안효연을 죽여 야지!”안효주는 천우혁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이 일만 잘 처리되면 너랑 같이 떠날게.”“우리가 순조롭게 떠날 수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만약에 떠나지 못하더라도 내 손으로 안효연을 죽였다는 것만으로 나는 만족해! 내가 잡히는 한이 있더라도.”천우혁은 안효주를 말려보았지만 안효주는 들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그래서 천우혁는 안효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두 사람은 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그린 호텔에 도착하였다.천우혁이 몰고 온 택시를 정차하려고 하는 순간 한 고급 차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강주환과 윤성아가 차 문을 열고 걸어 나왔다. 그리고 둘은 호텔로 들어갔다.천우혁과 안효주도 이 광경을 목격했다.“효주야, 강주환과 윤성아도 왔는데. 우리 그만 여기서 멈출까?”천우혁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안효주를 말려보려 했다.“왜 여기서 멈춰?”안효주의 머릿속은 온통 못된 생각으로 꽉 찼다.“이게 다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지 않아?”“허허.”“강주환과 윤성아도 이곳에 왔다는 건 안효연을 찾으러 온 거네!”“오늘 안효연만 죽이면 될 줄 알았는데. 하느님이 이 둘까지 보내줬으면 할 수 없이 다 같이 죽이는 수밖에 없지!”“하지만...”안효주는 천우혁이 하려던 말을 가로챘다.“뭐가 하지만인데! 그런 거 없어!”
웨이터 의상으로 갈아입은 안효주는 어떻게 강주환과 나엽이 들어간 방으로 같이 들어갈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때 로비에서 안효은 방 쪽으로 음식을 배달해 주는 웨이터를 만나자 안효주는 누구 방에 가냐고 물었다.안효연의 방으로 보내질 음식인 것을 확인한 안효주는 너무 신났다!“제가 도와드릴게요. 저를 주세요.”하지만 웨이터는 거절하였다. 안효주가 너무 낯선 얼굴이라서 의심을 하면서 물었다.“누구신지? 예전에 본 적이 없는 얼굴인 것 같아요.”“저 오늘 첫 출근이에요.”안효주가 대답했다.“아닐 텐데!”“제가 알기로는 우리 호텔에서 이번에 신인을 채용하지 않아서 들어올 신입이 없는데요!”웨이터는 진지하게 물었다.“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그러자 안효주는 주머니에 넣었던 칼로 웨이터를 힘껏 찔렀다! 몇 번 찌르고 나니 웨이터는 즉시 사망하였다.“죽을 짓을 찾아 하네!”안효주는 사나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리고 시체를 소방 통로가 있는 층계 쪽으로 던졌다. 그다음 칼을 깨끗이 청소하고 피를 닦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안효주는 카트를 밀고 안효연 방의 초인종을 눌렀다.나엽이 문을 열었다.안효주는 웨이터 복장을 입은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고객님, 안녕하세요. 이건 고객님이 주문하신 영양죽과 아침 메뉴입니다.”“네.”나엽이 비키자 안효주는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안효주는 갑자기 방문을 잠갔다. 이 이상한 행동은 강주환의 의심을 불러일으켰다.강주환은 윤성아와 안효연 쪽으로 카트를 밀고 가는 웨이터를 보면서 그녀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한 순간 위험을 감지하고 소리를 치려고 했다.그리고 재빨리 윤성아 쪽으로 걸어갔다!이때 윤성아가 한발 먼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는 안효주의 손을 잡고 말했다.“신영은? 혹은 안효주!”안효주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빨리 정체가 들킬 줄은 생각도 못 했다!안효주는 힘을 쓰면서 주머니에 있던 칼을 들고 윤성아를 찌르려고 했다.하지만 실패했다. 안효주가 칼을 꺼내는 순간
안효주는 윤성아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불만을 호소했다.“나는 예쁜 얼굴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지금은 끔찍한 흉터가 생겼어!”“만약 메이크업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만나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흉터! 심지어 사람인지 귀신인지도 구별 못 할 만큼 끔찍한 흉터 말이야!”“그리고 내 다리!”안효주는 바지를 접어 올리며 윤성아에게 착용하고 있던 의족을 보여주었다.“봤어?”“윤성아, 네가 내 다리를 이렇게 만든 거야!”안효주는 윤성아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자신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다 윤성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윤성아는 덤덤하게 미친 짓을 하고 있는 안효주를 바라보면서 말했다.“너 자신이 너를 그렇게 만든 거야!”“안효주, 네가 행복한 삶을 누렸던 건 사실이야.”“하지만 그걸 소중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너는 어릴 때부터 나쁜 심보로 사람을 해치려고 했어!”“부모의 사랑을 독차지 하려했고 그리고 또 나엽씨를 빼앗아 가려고 자기 친언니까지 죽였던 사람이야!”“너는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나쁜 일은 전부 해봤어!”“나를 몇 번이나 해치려 했어?”윤성아는 안효주가 했던 나쁜 짓을 모두 말했다.“우리 둘이 닮았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나를 사칭하려고 했지.”“강주환과 결혼하고 싶어서 나를 모함하고 심지어 자기 아이까지 유산시켰어...”“신명훈이랑 손잡고 한연 그룹을 빼앗아 가려고 했고 실패한 후에 미친 사람처럼 자기를 키웠던 아버지를 죽이려고도 했지!”“하성이를 납치하고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고!”“양신우도...”양신우는 휘황찬란한 미래를 꿈꾸는 젊은 나이에 안효주에게 납치되면서 살해당했다.윤성아는 이 말들을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였다.“안효주, 네가 이렇게 많은 나쁜 짓을 했는데 벌을 받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너 같은 사람은...”“아니지. 넌 사람도 아니지. 인성이 없으니깐 짐승이지. 너 같은 사람은 죽어서 지옥에 가는 것도 아까워!”윤성아의 말을 들은 안효주는 화를 내기는커녕 웃기 시작했다.“하하하...”그 웃음소리는
윤성아는 안효주의 헛된 환상을 하나하나 깨부수면서 말했다.“너는 안씨 가문 둘째 아가씨가 아니라 윤정월의 딸이야!”“네가 훔친 아이도 네 아이가 아니야!”“너는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했어.”윤성아는 계속 말했다.“만약 네가 일찍 그만두었다면 오늘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거야!”“네가 차로 나를 치는 바람에 눈이 펑펑 오는 그날, 주차장에서 나는 아이를 낳다가 죽을 뻔했어!”“네가 내 아이를 훔쳐 갔는데 내가 어떻게 찾으러 오지 않을 수가 있겠어?”윤성아는 그때 상처를 받고 힘겹게 도망쳐서 조용히 아이를 낳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평생 아이를 지키면서 살려고 했다.“내가 돌아온 이유는 바로 내 아이를 찾기 위해서야!”“안효주, 네가 양지강과 양신우를 죽인 것도 모자라 나를 또 죽이려 하고 내 아이까지 훔쳐 가는 미친 짓을 했어! 너는 천벌을 받을 년이야. 죽어도 마땅한 목숨이라고!”이 대화를 듣던 강주환은 어리둥절해하면서 윤성아를 바라봤다.윤성아와 안효주가 말한 눈이 오던 그날의 주차창, 출산, 그리고 아이를 훔친 사실까지 강주환은 전혀 몰랐다. 때문에 강주환은 이 말들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강주환은 많은 생각이 들면서 4 년 전, 그날 밤을 떠올렸다.운성으로 출장 간 강주환은 폭설 때문에 하룻밤 머물고 가려 했다.길을 걷던 강주환은 윤성아의 뒷모습을 본 듯한 기억이 떠올랐다! 너무 그리워서 였을가? 아니면 착각이 었을가...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그날, 강주환도 차를 그 주차장에 세우러 갔다. 눈이 그치질 않자 기사는 강주환의 차를 몰고 지하 정거장으로 내려갔다.강주환은 정확히 그 순간이 떠올랐다! 차가 지하 정거장으로 내려가는 순간 심장이 갑자기 아파오면서 질식할 것 같았다. 가슴이 답답하면서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그 순간, 강주환은 갑자기 손을 떨기 시작했다. 그래서 차를 세우라고 소리까지 질렀다! 강주환은 차 창밖을 내다보았다. 20, 30 미터 반경의 지상 주차장은 이미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 주차장 끝쪽을 보
안효주는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강주환을 바라보았다. “전 여전히 주환 씨를 사랑해요!”“제발 그 빌어먹을 계집애 옆에 있지 말고 저한테로 와요. 그러면 살려줄게요. 네? 우리 같이 저 세 사람 죽이고 저랑 같이 살아요, 네?”강주환은 싸늘한 눈빛으로 안효주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안효주 쪽으로 걸어갔다. 강주환과 윤성아 두 사람은 안효주와 불과 몇 걸음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기에 두 걸음만 떼면 바로 곁에 다가갈 수 있었다. 안효주는 넋이 나간 듯 강주환을 바라보았다. 바로 강주환을 안고 싶었으나 덜컥 겁이 났다. 온몸으로 냉기를 뿜어내면서 증오와 혐오의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느껴지는 사악한 기운이 당장이라도 그녀를 죽일 것 같았다.“다가오지 마요!”안효주는 손에 쥐고 있던 총을 강주환에게 겨누었다. “저랑 함께 있기 싫은 거죠!”“당신...”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다. 이때, 가까이에 있던 강주환이 갑자기 움직였다. 그는 단번에 안효주의 손을 결박한 뒤 들고 있던 총을 뺏으려 했다. 하지만 안효주도 악귀처럼 힘이 어마어마했다.그녀는 강주환한테서 벗어나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었다! 강주환이 그녀한테서 총을 뺏으려는 순간 ‘탕’하는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총알은 정확히 강주환의 복부를 가격했다.강주환의 눈빛이 순간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는 아픈 게 무엇인지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총을 맞고도 안효주가 들고 있던 총을 빼앗으려 했다.이때, ‘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이번에는 윤성아였다!그녀는 강주환과 안효주가 옥신각신 총을 빼앗는 모습을 보고 냉큼 달려왔다. 그리고 마침 안효주를 발로 걷어찼더니 손에 들고 있던 총이 강주환에게 넘어갔다.강주환은 총기 사격을 배운 적이 있었고 실력도 나쁘지 않았다. 한 방이면 바로 안효주를 죽일 수 있다!하지만...“하하.”안효주는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몸에 있던 폭탄의 버튼을 누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강주환, 쏴 봐
남서훈은 싱긋 웃었다.아직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맥으로 정확히 짚어 낼 순 없었지만 느낌은...“아마 남동생일 거야.”“아... 남동생...”양나나는 눈을 굴리더니 남서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남동생도 좋은 것 같아요. 동생 태어나면 저랑 엄마가 동생한테 의술도 가르쳐주고 아빠랑 사업하는 것도 배우고요. 그리고 남자애는 너무 응석 받아줄 필요도 없고 내가 맘껏 부려 먹을 수 있잖아요.”자기 뒤꽁무니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누나, 누나 하고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양나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어떻게 생긴 남동생이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날까, 양나나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그러나 남서훈이 임신 다섯 달째로 접어드는 어느 날, 양나나는 실종됐다.양준회와 남서훈은 매일 안절부절못하여 속이 타들어 갔다.둘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동원해 전 세계 각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여전히 양나나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양나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그때 양나나는 이미 8살이었다.남서훈은 딸을 찾지 못해 날마다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그녀는 점점 야위어갔다.그걸 보는 양준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나는 똑똑한 아이야. 당신이 의술과 독 쓰는 법도 잘 가르쳐줬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나나는 너와 내가 낳은 딸이야. 전에 풍운파에 혼자 몰래 들어가서도 그 안을 마구 헤집고 다녔잖아.”아무튼 그는 양나나가 어디에 가서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던 자신을 잘 보호할 거라고, 아무 일 없이 잘 살아 있을 거라고 남서훈을 위로했다.남서훈도 굳게 믿고 있었다. 양나나의 시체를 보게 되지 않는 한 그들의 딸은 세상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거라고.그 후 넉 달이 지났다. 9달이 된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왔다.양나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그러다 남서훈은 아들을 낳았다. 강보에 싸여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보며 남서훈은 양나나를 그리워했다.“나나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네 뒤꽁무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양준회와 남서훈, 그리고 백나연과 성진훤, 이렇게 네 사람은 백무산을 찾아갔다.그를 만나자마자 양준회와 성진훤은 백무산한테 사과부터 했다.어리둥절한 백무산은 그들이 왜 갑자기 찾아와서 사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 후 양준회는 남서훈의 어깨를 와락 감싸안았고 성진훤도 보란 듯이 백나연의 손을 꼭 잡았다. 성진훤은 원래 양준회처럼 백나연을 확 끌어안고 싶었지만 미래 장인어른이 될 사람 앞이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손만 잡았다.백무산은 더 혼란스럽고 얼떨떨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는 눈알이 튀어져 나올 듯하게 그들 넷을 번갈아 쳐다봤다.그때 양준회가 입을 열었다.“어르신, 우리 서훈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남씨 집안의 특수한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남장을 했던 것이고, 백나연 씨와의 혼약도 그저 소동극이었습니다. 이 일은 서훈이한테 책임 묻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노여움이 있으시면 저한테 푸세요.”그 말에 백무산은 눈살을 찌푸렸다.남서훈이 여자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여자가 그의 딸과 약혼했다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백무산은 불같이 화를 냈다.그러자 백나연이 나섰다.“아빠, 이 일은 서훈이 탓이 아니에요, 제가, 제가 꼭 도와달라고 했어요.”“뭐야? 널 도와줘?”“네.”백나연이 설명했다,“아빠랑 오빠가 자꾸 소개팅 주선하는 바람에 제가 너무 골치 아파서 서훈이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나랑 약혼하자고. 그럼 아빠랑 오빠가 나한테 선 자리를 더는 강요 안 할 거 아니에요. 서훈이는 싫다고 했는데 내가 억지 써서 해주기로 한 거예요.”백나연은 자기 잘못이라고 매우 강조했다.그녀의 눈빛에 아픔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전 그때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저랑 서훈이는 서로 약속했어요. 누가 먼저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든, 그때 되면 파혼하기로요. 절대 서로의 앞날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그 순간 용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펑펑 쏟아졌다.이게 얼마 만인가.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은 생각을 항상 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는 오늘 끝내 그녀를 안을 수 있었다. 팔을 뻗어 그녀를 껴안고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용준은 또 한참을 울었다.예서는 그가 평생 사랑한 유일한 여자였다.그는 품속에 있는 그녀를 부드럽고 진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난 네가 고마워. 넌 너무 용감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해. 옛날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넌 이것만 기억해. 난 널 사랑하고, 네가 있어야만 내가 살 수 있어. 네가 있으니까 내가 괴물로 변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난 모든 걸 다 망가뜨렸을 거야. 스스로도 혐오하는 그런 나쁜 인간으로 돼버렸을 거야.”예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남자가 하려는 말이 뭔지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이날, 둘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예서는 더는 용준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용준이 있으므로 하여 그녀는 더 빨리 회복될 것이었다.그렇게 예서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을 때. 남서훈과 양나나는 한 번 나가 돌아다니기로 했다.한 거리의 상가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남자애 몇 명이 갑자기 튀어나와 양나나를 에워쌌다.그들은 매우 들뜬 소리로 말했다.“대장! 살아 있었어요?”“너무 잘 됐어요!”“대장, 대장을 그 사람들이 데려간 후로 우린 계속 대장의 소식을 기다렸어요. 대장도 그 애들처럼 상처투성이가 돼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고요.”“지금은 어떤 상황이에요? 대장이 후계자가 된 거예요?”양나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 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남자애들한테 말했다.“난 후계자 되는 것에 관심 없어. 풍운파에 지금 남아있는 건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야.”양나나는 시선을 남서훈한테 향하며 그들한테 남서훈을 소개했다.“이분이 내 스승님이야, 우리 스승님 엄청 대단해!”그날, 양나나는 그
지난 날에 발생한 그 끔찍한 과거를 스스로 입에 올리는 용준은 피가 흘러나올 듯이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감정이 폭발할 한계치까지 다다랐다.그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몇 분 후에야 그는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그놈들은 죄다 죽여버려야 할 놈들이에요. 예서가 이쁘니까, 내 앞에서 예서를... 그때 예서는 이미 내 아이를 임신했는데...”용준의 온몸에서 난폭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주먹으로 나무를 세게 한 방 내리쳤다. 그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그 큰 나무가 흔들릴 정도면 얼마나 센 펀치를 날렸는지 알 수 있었다.그의 손마디도 살이 찢겨나가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상처에 무덤덤했다. 아마도 손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터였다.용준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심장이 뜯겨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예서가 피투성이가 된 채 텅 빈 눈으로 누더기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져서 누워있던 참혹한 장면만 머릿속에 떠올리면 그놈들을 무참하게 도륙을 내고 싶었다.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였다.풍운파의 보스가 된 후 첫 번째로 한 일이 바로 예서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그놈들의 범죄증거를 전부 찾아내 한 명도 빠짐없이 직접 처단했다.그때 그들은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용서를 빌었다. 막다른 길에 몰려 살려고 해도 안 되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할 때, 그들은 찌질이같이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애원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정작 그들은 용준이나 예서한테 그런 자비를 베푼 적이 없는데 말이다.용준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그것들이 나와 예서의 모든 것을 망치고 날 시궁창에 몰아넣었죠. 여전히 난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생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그것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해요!”그러나 그놈들이 죽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니었다.용준은 피로 물든 주먹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들은 예서가 그들이 한
용준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고, 금호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그는 어둠이 없는 밝은 햇빛 아래에서 사는 반듯한 사람이었다.그러나 일부 국제조직에서는 용준을 불안하게 여겼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심지어 그가 의심되어 오랫동안 그에게 전자발찌를 채웠다.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는 범죄자 취급을 당했고, 그리하여 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더더욱 생각지도 못한 건, 그 당시 그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었던 여자친구마저 누구한테 몹쓸 짓을 당하게 된 것이다.그러므로 용준이 점점 나쁘게 변하여 나중에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되었던, 모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요 몇 년 동안 풍운파는 용준의 관리하에 동남아에서 제일 큰 폭력조직으로 성장하였고,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나 다 저지르는 편이었지만 딱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그건 바로 노약자와 여자,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였다.의리도 지켰다.하지만...“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남서훈이 말했다.“이 세상은 원래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니깐요. 동남아는 원래 상황이 어수선하잖아요. 무장세력과 폭력조직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으로 바꿀 수도 없어요. 오히려 풍운파와 같은 조직이 있다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양준회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측면으로 보면 용준은 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둘은 원수지간이다. 양준회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 비록 지금까지는 아무 짓을 안 했어도, 또 그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풍운파를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다스린 용준이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리하여 양준회는 안심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남서훈과 같이 풍운파를 즉시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나나도 여기 있어요.”남서훈이 예상치도 못한 폭탄을 터트렸다. 양준회는 깜짝 놀랐다.양나나가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는 바로 말했다.“그럼 나나도 같이 떠나면 돼.”갇힌 두 달
강하영이 부케를 내던지는 일순간 우양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부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부케를 잽싸게 낚아채는 그의 모습이 정지화면인 양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부케를 손에 쥔 그다음 순간, 그는 부케와 함께 바다에 떨어졌다.모두가 경악했다.강하영은 크루즈 난간 쪽으로 달려가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남자를 보며 입을 떡 벌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선원들이 즉시 튜브를 던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즉시 뛰어내려 구조하려 했지만 강주환이 그들을 말렸다.왜 구하지 말라는 건지 이해 안 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윤성아는 강주환을 쳐다봤다.그러다 팔로 물살을 가르며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우양주가 크루즈 위에 있는 강하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는 걸 듣고 왜 그러는지 알 것만 같았다.“여보, 어쨌든 내가 부케 받았으니까 당신 나랑 결혼식 치러야 돼요! 안 그러면...”그 뒤엔 위협적인 말이 따라야 하는데 우양주도 무엇으로 강하영을 협박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남은 건 자신의 이 몸뚱이 하나뿐인데...“안 그러면 나 안 올라갈 거야. 여기 바다에 계속 있을 거야, 결혼식도 못 하는데 그냥 빠져 죽지 뭐.”강하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바다에 빠진 남자를 까만 눈동자로 차분하게 내려다보며 끝내 입을 열었다.“빠져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안 말려요.”“...”우양주는 서럽게 그녀를 쳐다봤다.역시나 아내는 매정했고 자신에 대해 애정이 없었다.그러나 그때 윤성아 곁에 서있는 강주환이 무덤덤하게 한마디 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바다에 상어가 출몰한다고 했어요. 식인 상어.”강주환은 고개를 돌려 강하영한테 말했다. “지금 아직 상어가 오지 않아서 그렇지, 나타나기만 하면 한꺼번에 열 몇 마리씩 무리 지어서 나올 거예요. 그게 게네들 습성이라. 이야... 쟨 아마 그러면 뼛조각도 남지 않겠네.”“...”그 말에 강하영이 급해 났다. 말투도 전처럼 차분하고 담담하지 않았다.난간에 기대어 우양주를 향해 내리 소리 질렀다.“뭐
미리 준비한 축사를 울먹이며 끝까지 다 읽고는 원이림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너 이 놈 자식, 내가 죽을 때까지 네가 결혼하는 걸 못 보는 줄 알았다. 아이고...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너도 이제 가정이 생겼어.”“너 똑바로 들어. 은진이한테 평생 잘 해줘야 돼, 아내한테 잘 하는 건 우리 집안 내력이야. 나도 네 엄마 말을 엄청 잘 들었어. 너도 똑같아, 알겠니? 오늘부터는 은진이한테 더 잘해야 돼, 말도 잘 듣고, 은진이부터 생각하고 배려해 주고. 은진이가 조금이라도 맘고생을 하게 되는 날엔 내가 너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원이림은 새카만 눈동자로 여은진을 깊게, 애틋하게 들여다보며 그녀와 깍지를 낀 두 손에 힘을 더 주었다.“걱정 마세요. 난 평생 우리 여보 맘고생 안 시킬 거예요.”여보라는 호칭이 지금 이 시각부터 명실상부하게 되었다.원이림은 그녀의 손을 잡고 크루즈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데이지 꽃을 바다로 뿌렸다. 하얀 꽃잎들이 파도에 실려 멀리 떠내려갔다.둘은 거기에 선 채 눈물을 머금고 울먹이며 말했다.“어머니, 아버지. 저 너무 행복해요. 우리 너무 행복해요.”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할 부케 토스하는 시간이 다가왔다.강주환과 윤성아, 그리고 나엽과 안효연은 모두 기혼자로서 나가지 않고 구경만 했다. 하객 중에 미혼인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우양주도 강하영의 손을 잡고 그리로 향했다.강하영은 몸을 뒤로 빼면서 말했다.“우린 결혼했는데 왜 부케를 받으러 가요? 다른 사람한테 갈 좋은 축복을 왜 우리끼리 받겠다고 달려들어요, 쓸데없이. 그렇게 할 일 없고 힘이 남아돌면 내가 다른 일 하게 해 줄게요.”“무슨 일?”강하영은 푸른 바다를 향해 눈을 힐끔 하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 수영 좋아하잖아요. 내가 엉덩이 확 걷어찰 테니까 바다로 들어가서 수영이나 할래요?”“...”저번에 강하영과 같이 수영하면서 그녀가 자신한테 새빨간 수영팬티를 사줘 창피를 당하고 나서부터 우양주는 수영하는
여은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예쁘게 미소 지었다.“나 다 알아요.”지난 1년 동안 그가 어떻게 해왔는지 잘 아는 그녀는 더 이상의 맹세와 언약 같은 건 필요 없었다.“응!”여은진을 안은 채로 원이림은 그녀의 여린 입술에 쪽쪽거리며 뽀뽀를 했다.장내의 플래시 세례가 정신없이 터지는 가운데 그는 돌아서서 무대 아래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한테 당찬 목소리로 선포했다.“오늘 저의 이 행복한 순간을 지켜본 여기 계신 모든 증인 분들한테 제가 선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저희 베린 그룹에 가셔서 선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달 20일에 저와 은진이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니 여러분들께서 모두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여은진을 안고 시상대를 내려가려 했다.여은진이 내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게 안은 채로 시상식장을 걸어 나와 차에 올라탔다.럭셔리한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내달리고 있었다.여은진은 아직도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있었다.“이번 달 20일에 결혼한다고요? 그럼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촉박하지 않아요?”그녀가 눈을 들어 바라보며 물었다.“아니, 전혀.”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떨구며 원이림이 말했다.“시간이 모자라지만 않았으면 내일에라도 당장 결혼식 치르고 싶어.”반년이 넘는 동안, 그는 매일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결혼반지, 웨딩드레스, 그리고 결혼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디테일한 사항들을 전부 준비하고 체크했다. 그녀가 결혼을 동의하는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이 끝내 다가왔다.웨딩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크게 시간을 들일 일도 없었다.다만 여은진이 임신했기 때문에 너무 빠듯하게 스케줄을 잡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결혼식에 참석할 하객을 초대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10일이면 충분했다.촉박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여보, 우리 지금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가.”원이림은 한시라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기사한테 얘기하여 구청으로 가자
원이림은 금방 샤워를 마친 여은진한테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침대로 향했다.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순을 밟아갔다.한창 격렬해지려던 찰나, 원이림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크게 지르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은진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새에 살에 푹 찔린 그 가는 물건을 빼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빨리 반응했다.하지만 역시 늦었다.여은진이 몸을 일으켜 스탠드를 켰고, 어두웠던 방안은 환한 빛으로 채워졌다.이어 급히 그를 살피던 여은진은 원이림의 엉덩이에 바늘이 하나 꽂혀있는 걸 발견했다.짧고 가는 옷을 꿰맬 때 쓰는 그런 바늘이었다.여은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남자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바늘에 찔릴 수 있어요? 침대에 왜 바늘이...”“...”꽂힌 바늘을 빼며 원이림은 이야기를 얼버무렸다.“괜찮아, 그냥 바늘인데 뭐. 별로 아프지도 않아.”그러고는 또 다짜고짜 몸을 뒤집으며 여은진을 몸 아래로 깔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스탠드를 끄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잠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진행 중이었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지였다.하지만 여은진은 그의 키스를 받아내면서도 오후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난데없이 침대에 나타난 바늘을 함께 떠올렸다. 정신을 쏙 빼놓으려는 지금의 행동도 분명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잠깐만.”여은진은 원이림을 밀어내고 다시 한번 스탠드를 켰다.의심이 부풀어 오른 눈으로 빤히 그를 노려봤다. “똑바로 말해요. 아까 그 바늘로 수작 부린 거 맞죠? 말해요, 몇 개나 찔렀어요?”“...”끝내는 발각되었다. 원이림은 이실직고했다. 강주환이 원흉이라고, 그가 시켜서 했다고 불었다.“여보, 나 며칠 전에 운봉 비즈니스 회담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강주환을 만났어. 그 자식이 날 비웃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하라고 아이디어를 내줬어. 바늘로 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