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송아름은 부정했고 모든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불여시같은 수작질은 그만하시지, 말했을 텐데, 나한테는 안 통한다고.”강주혜는 그대로 송아름을 잡고 밖으로 끌어냈다. 동시에 집에 도우미들한테 말했다.“위층으로 가서 이 불여시 물건들을 챙겨서 가져오세요. 이 여자랑 물건이랑 같이 던져버리게.”“강주혜! 이제 그만해.”송아름은 그만하라고 소리쳤고 강주혜는 이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오늘은 기필코 이 불여시 같은, 언제든 사람을 물어 죽일 뱀 같은 여자를 이 집에서 끌어낼 생각이었다. 송아름도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했고 손을 높이 들어 짝하고 그대로 강주혜의 얼굴을 내려쳤다. 송아름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는 증오와 온몸에서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 강하게 내리치는 힘에 맞은 강주혜는 머리가 울렸다. “네가 먼저 시작한 거야. 강주혜, 그동안 너를 너무 오냐오냐해줬어. 그전에는 너를 동생처럼 생각해서 참아준 거야. 하지만 오늘에는 내가 반드시 어머니를 대신해서 팔이 밖으로 굽는 너 같은 딸을 똑똑히 교육해줘야겠어.”어디서나 지고는 못 사는 강주혜는 그대로 송아름에게 달려가서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송아름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그대로 엉켜 서로 싸웠다. 그때, 고은희가 모든 정황을 알고 달려와서 두 사람을 뜯어말렸다. “둘 다 그만해.”고은희는 강주혜를 보호하며 송아름을 막아섰다.“아름아, 주혜는 네 동생이잖아. 네가 좀 참아줘.”“난 저 여자 동생이 아니야!”머리가 산발이 된 강주혜는 송아름을 노려보며 말했다.“엄마, 이런 꽃뱀 같은 여자를 오빠가 절대 집으로 데려오게 할 수 없어.”고은희는 드디어 두 사람을 떼여놓았고 고은희의 편애로 인해 송아름은 더욱 상처가 깊어진 얼굴을 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대로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 돌아선 뒷모습은 무척이나 처량해 보였고 그런 모습을 본 고은희는 마음이 아팠다. “불여시! 누가 너더러 위층으로 올라가래? 당장 내려와!”강주혜는 소리쳤지만 고은희에게 잡혀,
대부분의 부잣집 사모님들은 다른 대중들처럼 몇 마디 욕하면 됐지만 거기서 고여사와 관계가 좋은 몇 사람은 바로 고 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로서 고 여사에게 집안을 망치는 송아름을 빨리 내보내고 최대한 멀리 떨어지라고 충고와 조언을 해줬다. 고은희는 송아름의 사건이 폭로되자 분노로 혈압이 상승했고 그대로 드러누웠다. 그녀는 심장을 누가 칼로 베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자신의 딸이 생각지도 못한 생활을 겪었다는 거에 고은희는 더욱 죄책감을 느끼고 자책을 하게 되었다.혼자서 고독하게 병원 침대에서 깨어난 송아름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속에 있었다. 온몸의 뼈가 얼마나 끊어진 것인지 팔과 오른쪽 다리에는 석고로 고정했고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못했다. 눈에는 두꺼운 붕대를 감았고 한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붕대를 감은 눈에는 통증이 심했고 앞으로 눈을 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몰랐다. “의사! 간호사!”송아름은 의사와 간호사를 소리쳐 불렀고 누군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바로 물었다.“저 어떻게 된 거예요? 제 눈은 앞으로 못 보는 건가요?”“네, 현재는 앞을 볼 수 없으세요. 환자분의 눈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눈 안에 있던 렌즈가 눈을 찔렀어요. 왼쪽 눈의 각막이 완전히 파손되어 현재로서는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돼요. 오른쪽 눈의 상처는 심각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실력 좋은 전문가가 수술을 해주셔야 미약하게 볼 수 있는 희망이 있어요.”송아름의 물음에 간호사는 성의껏 대답해주었다. “중요한 건 환자분이 우리 병원으로 이송되고 응급조치한 후 가족에게 연락했지만 계속 연락이 닿지 않네요. 환자분의 입원비용이랑 수술비용을 가족이 오셔서 지급하셔야 해요. 계속 체납이 되면 더는 병원에 머무를 수 없으실 거예요.”병원에서 송아름이 알려준 고 여사의 번호로 전화를 했지만 고 여사는 받지 못하고 강주혜가 전화를 받았다. 송아름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강주혜는 오히려 좋아했다. 두 사람이 싸우기까지 했으니
그 렌즈를 남궁성우도 본 적이 있었다. 조윤정이 렌즈를 개발했을 당시 일부러 남궁성우에게 달려와 자랑하기까지 했다. “성우, 이것 봐, 내가 알려줄게. 이 렌즈는 그냥 보통 렌즈가 아니야. 조금만 최면술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 렌즈만 착용하면 진짜 쉽게 최면에 걸리게 할 수 있어.”눈을 다친 송아름의 눈에 있던 렌즈는 진즉에 병원으로 이송된 후 의사들이 송아름 눈의 상처를 치료할 때 꺼내서 버렸다. 그 렌즈는 이미 파손이 된 상태였다. 남궁성우는 수술 후 렌즈를 꺼낸 사진을 먼저 보았고 보자마자 바로 알아차렸다.“이제 조윤정이 만든 렌즈도 파손되고 송아름 씨 눈에 난 상처도 심각하니 앞으로 평생 최면은 다시 할 수 없겠군요. 그것도 좋은 일이에요.”송아름은 속이 답답했다. 이게 어떻게 좋은 일이야. 만약 다시는 최면을 못 하게 된다면 앞으로 신세가 더욱 초라해질 게 뻔했다. 이때, 남궁성우가 송아름을 쳐다보며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몸에 난 상처는 심각하지만 언젠가는 나을 수 있는 상처들이에요. 하지만 눈에 생긴 상처가 문제에요.”송아름이 남궁성우가 있는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다급하게 물었다.“성우 씨 의술 좋기로 소문났잖아요. 제 눈은 고칠 방법이 없을까요?”“고칠 방법 있어요.”송아름의 왼쪽 눈은 각막이 심각하게 손상됐고 다시 볼 수 있으려면 적당한 각막 기증자를 찾아 각막 이식을 해야 볼 수 있었다. 오른쪽 눈은 언제든 수술이 가능한 상태였다. “만약 영주 시에 계속 남아있을 생각이 아니라면 제가 송아름 씨를 데리고 M 국으로 갈 수도 있어요. 가서 당신의 친아버지를 만나게 해드릴게요.”남궁성우는 놀랄만한 소식을 전했다.“친아버지?”송아름은 놀라서 되물었다. 삼십 년 전 송아름은 고은희가 오윤미랑 바꿔온 아이였다. 자신의 친엄마는 고은희였다. 그렇다면 친아빠는 당연히 강태민이어야 했다.“당신은 오윤미 씨의 딸이죠. 당시에 경훈 아저씨랑 윤미 이모 사이에 많은 오해가 있었어요. 아저씨가 영주 시를 떠난 후에도 마음에는
남궁성우는 강주혜를 잡아당겨 그대로 자신의 차에 앉히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안고 키스를 했다.“착하지, 그리고 한 가지 일이 더 있어. 아마 며칠 동안 M 국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송아름에게 맞는 각막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했어.”강주혜는 남궁성우와 헤어지기 아쉬워 남궁성우를 따라 같이 짐을 싸고 떠나기 전 온갖 애정행각을 펼쳤다.한편, 강 씨네 본가의 거실에서는 송아름이 대성통곡하고 있는 고은희를 다정하게 불렀다.“은희 이모, 울지 마세요. 저 정말 괜찮아요. 정말이에요.”“이게 어떻게 괜찮은 거야.”고은희는 송아름이 얼마나 다친 것인지, 상태가 어떤지, 경찰에는 신고했는지 등등 많은 질문을 던지며 마음이 아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큰일이 일어나고 크게 다쳤는데 어째서 일찍 나한테 전화하지 않은 거야?”송아름은 속으로 웃으며 자신이 생각한 것이 맞다고 확신했다. 간호사가 고은희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을 당시 전화를 받은 사람은 강주혜일 것이다. 간호사의 말로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라 하였으니 틀림없었다.“그날 제가 집 문을 나서는데 강도를 만났어요. 하마터면 그 사람들한데 맞아 죽을 뻔했지만 이 모든 일을 차마 말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이모 생각이 났고 이 집이 생각났어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고 퇴원도 했으니 바로 성우 씨한테 데려다 달라고 했죠.”고은희는 더욱더 크게 울며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어째서 맞은 거야? 무슨 강도가 이렇게 심하게 때렸어? 이 쳐죽일 놈들!”고은희는 속상한 마음과 욕을 뒤로하고 뉴스에서 봤던 사건들에 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뉴스에서 나온 사건들은 뭔지 나한테 말해줘. 정말 그런 거야?”송아름은 머리를 끄덕였다.“그때는 너무 어려 다른 사람한테 사기를 당해서 그런 곳에 팔려갔어요. 술집 아가씨를 하게 된 건 사실이에요. 거기에 나오는 사진들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 맞고요. 하지만 은희 이모, 저도 피해자예요. 저도 속아서...”더 이어 말하지 못하고 엉엉 울던 송아름은 젖
그의 커다란 손이 강주혜의 머리 위에 얹어졌다. 그리고 마치 어렸을 때처럼 동생을 사랑스럽게 쓰다듬어줬다.“바보야, 이게 어찌 보면 더 좋은 일일 수도 있어.”“여태껏 난 호진 그룹에 발이 묶인 채 회사만을 위해 달려왔어. 근데 오늘 호진 그룹의 모든 주식을 내놓았으니, 더 이상 그리 힘들지 않을 거야.”“그럼 나는 더욱 여유롭게 운성시에 가서 성아를 만날 수 있겠지, 하루빨리 내 곁에 둬야겠어!”윤성아는 모든 면에서 매우 뛰어났다. 마치 모래에 파묻힌 보석과도 같았는데, 이제 마침 모래가 걷어져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멀리에 있는 F 국의 원이림, 그리고 오늘날 양준회와 에릭까지.안진강은 자신의 딸인 윤성아와 맞선을 볼 괜찮은 인물들을 물색하고 있었다.때문에 강주환은 더 위기감이 들었다.호진 그룹에서 빠져나오니 몸은 홀가분했다! 마침 사랑하는 여자 곁으로 갈 수 있고, 또 윤성아 곁을 노리고 있는 날파리들도 이 기회에 쫓아버릴 수 있다!강주혜는 그런 오빠가 걱정되었다. “그래도...”아무리 강주환이 성아 언니를 찾으러 간다고 해도 호진 그룹의 주식을 남에게 줄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호진 그룹에 몸 바쳐 일해왔던 모습과 어머니의 핍박이 문득 떠올랐다.“됐어. 이제 필요 없으니까.”“돈은 그냥 소모품일 뿐이야. 오빠가 행복하면 됐어. 난 그냥 오빠랑 성아 언니 사이에 좋은 결과가 있기만을 바랄게!”강주환이 그녀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강주혜는 조금 잘난체하는 면이 있지만, 개념만은 올바른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남매 사이가 좋았고 종래로 그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강주환은 그래도 주식을 전부 내놓았다.그는 손에 있던 40% 주식을 반으로 나눴다. 그중 20%는 송아름에게 줬고, 나머지 20%는 강주혜에게 줬다.이렇게 되면, 강주혜가 호진 그룹 주식의 30% 소유주가 되는 것이다!송아름의 눈살이 갑자기 찌푸러졌다.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다가 갑자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이 소식은 강주혜
그는 이런 걸 제일 싫어했다!비록 지금은 호진 그룹의 대표가 아니지만, 이 나이를 먹고 이렇게 유치하고 멍청한 행동을 하라고?하지만!강주환의 블랙 마이바흐가 결국에는 한연 그룹의 1층에 나타났다. 그는 인터넷에서 봤던 것처럼 트렁크에 꽃을 가득 채우는 행위까지는 따라 하지 않았다.어차피 강주환은 시크, 그 자체이니까!그리고 블랙 정장까지 아래위로 맞춰 입었다. 큰 키에 브라운 색깔의 구두까지 신으니 금세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오 마이 갓, 너무 잘생겼어!”“대박...”“저기 봐! ”여러 가지 크고 작은 감탄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지나가던 여자들도 걸음을 멈추고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결코 그녀들의 눈이 낮은 게 아니다. 강주환은 원래부터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다! 준수한 용모에, 입체적이고 뚜렷한 이목구비, 어느 것 하나가 정교하지 않은 곳이 없다.까맣고 짙은 눈썹, 나비 날개처럼 긴 속눈썹, 심지어 여자보다 더 길어 보였다.소용돌이처럼 빨려들 것 같은 검고 깊은 눈동자.오뚝한 콧날.얇고 차가워 보이는 입술.넓은 어깨와 좁은 허리, 완벽한 몸매에 귀티가 흐르는 모습을 보면 누구든 저마다 비명을 지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커다란 장미 다발이 들려져 있었다.길쭉한 몸을 마이바흐에 살짝 기댄 채, 고개를 들어 눈앞에 우뚝 솟은 빌딩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과연 누구를 만나러 왔을까?”“설마! 좋아하는 여자가, 혹은 여자친구가 이 회사의 사람인가? 누굴까?”여자들의 재잘재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잠깐 사이에, 강주환의 주위는 이미 눈에서 하트뿜뿜인 소녀들로 가득했다. 한연 그룹 36층, 대표 사무실.윤성아는 창문으로 1층 로비에 갑자기 사람들이 와글와글한 모습을 발견했다.시간대가 마침 퇴근시간이긴 했다.원래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을 시간대이긴 하지만, 지금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한연 그룹의 문 어구라, 윤성아는 갑자기 무슨 일이 일
윤성아는 자신을 원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강주환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강주환 씨는 제 남자친구일 뿐이에요. 저를 기쁘게 하고 필요한 건 해소해 주는 그런 사람이라고요. 아닌가요?”“저도 집이 있는데 당연히 집에 가야죠!”강주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예전의 일로 지금 복수하고 있는 윤성아를 빤히 보며 물었다. “안 가면 안 돼?”“예전에 한 번도 날 붙잡은 적이 없었잖아...”강주환은 원래 윤성아가 예전에 그를 붙잡았으면 분명 그녀와 함께 밤을 보냈을 거라고 말하려 했다!하지만 아직 반밖에 말하지 않았는데 윤성아는 차갑게 거절했다. “안돼요!”윤성아는 여기서 나가려다가, 갑자기 가방에서 은행 카드 한 장을 꺼냈다. 원래 금수저인 그녀는 이와 어울리게 행동도 시원시원했다. 그녀는 그 카드를 강주환에게 넘겼다. “받아요!”“안에 2억 정도 있을 거에요. 모자라면 다시 말해요.”강주환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하지만 빠르게 그는 미소를 지었다. 블랙홀 같은 두 눈이 반짝이더니 윤성아를 보며 말했다. “2억씩이나, 보아하니 내가 아주 마음에 드나 봐?”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커다란 손으로 윤성아의 손을 어루만지더니 다시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렇게 마음에 들면 언제쯤 남자친구라는 딱지를 떼어줄 건데?”윤성아가 대답했다. “아직이에요.”남편이 되고 싶다고? 어림도 없지. “그래.”강주환은 동의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이긴 하지.”말을 마치고 다시 그녀의 입술을 물었다...“강주환 씨, 그만해요.”“싫어.”남자의 목소리는 조금 잠겼지만, 그것마저도 쓸데없이 듣기 좋아 사람을 매혹시켰다. “지금 너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잖아.”“잘 보여야 그에 맞는 보상도 받지.”“내가 원하는 진짜 보상 말이야!”윤성아가 방금 단정하게 입었던 옷이 다시 벗겨졌다...밤이 깊어졌다. 강주환은 즐겁게 하던 걸 마저 했다. 그의 입술은 점점 아래쪽으로 향했다. 턱을 지나 목...그의 입맞춤은 매우 경건하
강주환은 호언장담했다. “제 능력이라면, 호진 그룹보다 더 큰 기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하지만...”강주환은 비록 호진 그룹의 모든 주식을 내놓은 상태지만, 그가 개인적으로 소유한 자산과 쌓아놓은 인맥 등은 다시 새로운 상업 제국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건 명백한 사실이었고 이것 또한 그의 실력이다. 하지만 강주환이 이번에 이렇게 온 목적은 결코 자랑하러 온 것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 당장 상업 제국을 건설할 생각도 없다!호진 그룹을 넘겨주고 얻은 여유와 시간을 모두 윤성아와의 혼인에 쓸 예정이다! 동시에 불필요한 똥파리들은 처리하면서.그중 제일 중요한 단계가 바로 장인어른을 설득시키는 일이다. 하여 강주환은 다시 말을 이었다. “하물며 제가 호진 그룹을 전부 포기한 원인이 바로 성아랑 함께 하고 싶어서입니다. 이건 저의 진심입니다!”“제 마음속에는 성아가 호진 그룹보다 더 중요하니까요!”강주환의 근엄한 눈동자에서 빛이 났다.그리고 다시 안진강에게 말했다. “호진 그룹은 이제 저와 무관합니다! 우리 어머니 쪽에서도 더 이상 저와 성아가 함께 있는 것을 반대할 이유도 없어졌고요!"안진강은 말할 것도 없이 강주환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객관적으로, 안진강은 어쩔 수 없이 강주환이 모든 방면에서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했다! 한때 그가 정말 좋아했던 사위 후보이기도 했다. 더구나 강주환은 두 아이의 친아버지다! 가장 중요한 점은 안진강도 윤성아가 아직 강주환을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안진강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아버지로서, 자신의 딸이 강주환에게 그렇게까지 괴롭힘을 당했던 모습이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또다시 그를 따라가서 고생을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필경 고은희의 반대도 심했다.안진강은 윤성아가 그런 집안에 들어가서 악덕 시어머니와 함께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강주환이 윤성아를 위해 호진 그룹까지 포기한 행위는 안진강의 마음에 쏙 들었다! 하지만 아직 모자라다. 누구 때문에 자신의 딸이
남서훈은 싱긋 웃었다.아직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맥으로 정확히 짚어 낼 순 없었지만 느낌은...“아마 남동생일 거야.”“아... 남동생...”양나나는 눈을 굴리더니 남서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남동생도 좋은 것 같아요. 동생 태어나면 저랑 엄마가 동생한테 의술도 가르쳐주고 아빠랑 사업하는 것도 배우고요. 그리고 남자애는 너무 응석 받아줄 필요도 없고 내가 맘껏 부려 먹을 수 있잖아요.”자기 뒤꽁무니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누나, 누나 하고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양나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어떻게 생긴 남동생이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날까, 양나나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그러나 남서훈이 임신 다섯 달째로 접어드는 어느 날, 양나나는 실종됐다.양준회와 남서훈은 매일 안절부절못하여 속이 타들어 갔다.둘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동원해 전 세계 각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여전히 양나나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양나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그때 양나나는 이미 8살이었다.남서훈은 딸을 찾지 못해 날마다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그녀는 점점 야위어갔다.그걸 보는 양준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나는 똑똑한 아이야. 당신이 의술과 독 쓰는 법도 잘 가르쳐줬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나나는 너와 내가 낳은 딸이야. 전에 풍운파에 혼자 몰래 들어가서도 그 안을 마구 헤집고 다녔잖아.”아무튼 그는 양나나가 어디에 가서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던 자신을 잘 보호할 거라고, 아무 일 없이 잘 살아 있을 거라고 남서훈을 위로했다.남서훈도 굳게 믿고 있었다. 양나나의 시체를 보게 되지 않는 한 그들의 딸은 세상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거라고.그 후 넉 달이 지났다. 9달이 된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왔다.양나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그러다 남서훈은 아들을 낳았다. 강보에 싸여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보며 남서훈은 양나나를 그리워했다.“나나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네 뒤꽁무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양준회와 남서훈, 그리고 백나연과 성진훤, 이렇게 네 사람은 백무산을 찾아갔다.그를 만나자마자 양준회와 성진훤은 백무산한테 사과부터 했다.어리둥절한 백무산은 그들이 왜 갑자기 찾아와서 사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 후 양준회는 남서훈의 어깨를 와락 감싸안았고 성진훤도 보란 듯이 백나연의 손을 꼭 잡았다. 성진훤은 원래 양준회처럼 백나연을 확 끌어안고 싶었지만 미래 장인어른이 될 사람 앞이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손만 잡았다.백무산은 더 혼란스럽고 얼떨떨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는 눈알이 튀어져 나올 듯하게 그들 넷을 번갈아 쳐다봤다.그때 양준회가 입을 열었다.“어르신, 우리 서훈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남씨 집안의 특수한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남장을 했던 것이고, 백나연 씨와의 혼약도 그저 소동극이었습니다. 이 일은 서훈이한테 책임 묻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노여움이 있으시면 저한테 푸세요.”그 말에 백무산은 눈살을 찌푸렸다.남서훈이 여자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여자가 그의 딸과 약혼했다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백무산은 불같이 화를 냈다.그러자 백나연이 나섰다.“아빠, 이 일은 서훈이 탓이 아니에요, 제가, 제가 꼭 도와달라고 했어요.”“뭐야? 널 도와줘?”“네.”백나연이 설명했다,“아빠랑 오빠가 자꾸 소개팅 주선하는 바람에 제가 너무 골치 아파서 서훈이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나랑 약혼하자고. 그럼 아빠랑 오빠가 나한테 선 자리를 더는 강요 안 할 거 아니에요. 서훈이는 싫다고 했는데 내가 억지 써서 해주기로 한 거예요.”백나연은 자기 잘못이라고 매우 강조했다.그녀의 눈빛에 아픔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전 그때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저랑 서훈이는 서로 약속했어요. 누가 먼저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든, 그때 되면 파혼하기로요. 절대 서로의 앞날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그 순간 용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펑펑 쏟아졌다.이게 얼마 만인가.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은 생각을 항상 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는 오늘 끝내 그녀를 안을 수 있었다. 팔을 뻗어 그녀를 껴안고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용준은 또 한참을 울었다.예서는 그가 평생 사랑한 유일한 여자였다.그는 품속에 있는 그녀를 부드럽고 진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난 네가 고마워. 넌 너무 용감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해. 옛날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넌 이것만 기억해. 난 널 사랑하고, 네가 있어야만 내가 살 수 있어. 네가 있으니까 내가 괴물로 변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난 모든 걸 다 망가뜨렸을 거야. 스스로도 혐오하는 그런 나쁜 인간으로 돼버렸을 거야.”예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남자가 하려는 말이 뭔지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이날, 둘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예서는 더는 용준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용준이 있으므로 하여 그녀는 더 빨리 회복될 것이었다.그렇게 예서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을 때. 남서훈과 양나나는 한 번 나가 돌아다니기로 했다.한 거리의 상가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남자애 몇 명이 갑자기 튀어나와 양나나를 에워쌌다.그들은 매우 들뜬 소리로 말했다.“대장! 살아 있었어요?”“너무 잘 됐어요!”“대장, 대장을 그 사람들이 데려간 후로 우린 계속 대장의 소식을 기다렸어요. 대장도 그 애들처럼 상처투성이가 돼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고요.”“지금은 어떤 상황이에요? 대장이 후계자가 된 거예요?”양나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 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남자애들한테 말했다.“난 후계자 되는 것에 관심 없어. 풍운파에 지금 남아있는 건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야.”양나나는 시선을 남서훈한테 향하며 그들한테 남서훈을 소개했다.“이분이 내 스승님이야, 우리 스승님 엄청 대단해!”그날, 양나나는 그
지난 날에 발생한 그 끔찍한 과거를 스스로 입에 올리는 용준은 피가 흘러나올 듯이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감정이 폭발할 한계치까지 다다랐다.그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몇 분 후에야 그는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그놈들은 죄다 죽여버려야 할 놈들이에요. 예서가 이쁘니까, 내 앞에서 예서를... 그때 예서는 이미 내 아이를 임신했는데...”용준의 온몸에서 난폭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주먹으로 나무를 세게 한 방 내리쳤다. 그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그 큰 나무가 흔들릴 정도면 얼마나 센 펀치를 날렸는지 알 수 있었다.그의 손마디도 살이 찢겨나가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상처에 무덤덤했다. 아마도 손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터였다.용준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심장이 뜯겨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예서가 피투성이가 된 채 텅 빈 눈으로 누더기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져서 누워있던 참혹한 장면만 머릿속에 떠올리면 그놈들을 무참하게 도륙을 내고 싶었다.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였다.풍운파의 보스가 된 후 첫 번째로 한 일이 바로 예서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그놈들의 범죄증거를 전부 찾아내 한 명도 빠짐없이 직접 처단했다.그때 그들은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용서를 빌었다. 막다른 길에 몰려 살려고 해도 안 되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할 때, 그들은 찌질이같이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애원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정작 그들은 용준이나 예서한테 그런 자비를 베푼 적이 없는데 말이다.용준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그것들이 나와 예서의 모든 것을 망치고 날 시궁창에 몰아넣었죠. 여전히 난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생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그것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해요!”그러나 그놈들이 죽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니었다.용준은 피로 물든 주먹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들은 예서가 그들이 한
용준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고, 금호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그는 어둠이 없는 밝은 햇빛 아래에서 사는 반듯한 사람이었다.그러나 일부 국제조직에서는 용준을 불안하게 여겼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심지어 그가 의심되어 오랫동안 그에게 전자발찌를 채웠다.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는 범죄자 취급을 당했고, 그리하여 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더더욱 생각지도 못한 건, 그 당시 그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었던 여자친구마저 누구한테 몹쓸 짓을 당하게 된 것이다.그러므로 용준이 점점 나쁘게 변하여 나중에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되었던, 모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요 몇 년 동안 풍운파는 용준의 관리하에 동남아에서 제일 큰 폭력조직으로 성장하였고,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나 다 저지르는 편이었지만 딱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그건 바로 노약자와 여자,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였다.의리도 지켰다.하지만...“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남서훈이 말했다.“이 세상은 원래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니깐요. 동남아는 원래 상황이 어수선하잖아요. 무장세력과 폭력조직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으로 바꿀 수도 없어요. 오히려 풍운파와 같은 조직이 있다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양준회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측면으로 보면 용준은 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둘은 원수지간이다. 양준회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 비록 지금까지는 아무 짓을 안 했어도, 또 그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풍운파를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다스린 용준이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리하여 양준회는 안심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남서훈과 같이 풍운파를 즉시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나나도 여기 있어요.”남서훈이 예상치도 못한 폭탄을 터트렸다. 양준회는 깜짝 놀랐다.양나나가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는 바로 말했다.“그럼 나나도 같이 떠나면 돼.”갇힌 두 달
강하영이 부케를 내던지는 일순간 우양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부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부케를 잽싸게 낚아채는 그의 모습이 정지화면인 양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부케를 손에 쥔 그다음 순간, 그는 부케와 함께 바다에 떨어졌다.모두가 경악했다.강하영은 크루즈 난간 쪽으로 달려가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남자를 보며 입을 떡 벌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선원들이 즉시 튜브를 던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즉시 뛰어내려 구조하려 했지만 강주환이 그들을 말렸다.왜 구하지 말라는 건지 이해 안 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윤성아는 강주환을 쳐다봤다.그러다 팔로 물살을 가르며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우양주가 크루즈 위에 있는 강하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는 걸 듣고 왜 그러는지 알 것만 같았다.“여보, 어쨌든 내가 부케 받았으니까 당신 나랑 결혼식 치러야 돼요! 안 그러면...”그 뒤엔 위협적인 말이 따라야 하는데 우양주도 무엇으로 강하영을 협박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남은 건 자신의 이 몸뚱이 하나뿐인데...“안 그러면 나 안 올라갈 거야. 여기 바다에 계속 있을 거야, 결혼식도 못 하는데 그냥 빠져 죽지 뭐.”강하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바다에 빠진 남자를 까만 눈동자로 차분하게 내려다보며 끝내 입을 열었다.“빠져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안 말려요.”“...”우양주는 서럽게 그녀를 쳐다봤다.역시나 아내는 매정했고 자신에 대해 애정이 없었다.그러나 그때 윤성아 곁에 서있는 강주환이 무덤덤하게 한마디 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바다에 상어가 출몰한다고 했어요. 식인 상어.”강주환은 고개를 돌려 강하영한테 말했다. “지금 아직 상어가 오지 않아서 그렇지, 나타나기만 하면 한꺼번에 열 몇 마리씩 무리 지어서 나올 거예요. 그게 게네들 습성이라. 이야... 쟨 아마 그러면 뼛조각도 남지 않겠네.”“...”그 말에 강하영이 급해 났다. 말투도 전처럼 차분하고 담담하지 않았다.난간에 기대어 우양주를 향해 내리 소리 질렀다.“뭐
미리 준비한 축사를 울먹이며 끝까지 다 읽고는 원이림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너 이 놈 자식, 내가 죽을 때까지 네가 결혼하는 걸 못 보는 줄 알았다. 아이고...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너도 이제 가정이 생겼어.”“너 똑바로 들어. 은진이한테 평생 잘 해줘야 돼, 아내한테 잘 하는 건 우리 집안 내력이야. 나도 네 엄마 말을 엄청 잘 들었어. 너도 똑같아, 알겠니? 오늘부터는 은진이한테 더 잘해야 돼, 말도 잘 듣고, 은진이부터 생각하고 배려해 주고. 은진이가 조금이라도 맘고생을 하게 되는 날엔 내가 너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원이림은 새카만 눈동자로 여은진을 깊게, 애틋하게 들여다보며 그녀와 깍지를 낀 두 손에 힘을 더 주었다.“걱정 마세요. 난 평생 우리 여보 맘고생 안 시킬 거예요.”여보라는 호칭이 지금 이 시각부터 명실상부하게 되었다.원이림은 그녀의 손을 잡고 크루즈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데이지 꽃을 바다로 뿌렸다. 하얀 꽃잎들이 파도에 실려 멀리 떠내려갔다.둘은 거기에 선 채 눈물을 머금고 울먹이며 말했다.“어머니, 아버지. 저 너무 행복해요. 우리 너무 행복해요.”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할 부케 토스하는 시간이 다가왔다.강주환과 윤성아, 그리고 나엽과 안효연은 모두 기혼자로서 나가지 않고 구경만 했다. 하객 중에 미혼인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우양주도 강하영의 손을 잡고 그리로 향했다.강하영은 몸을 뒤로 빼면서 말했다.“우린 결혼했는데 왜 부케를 받으러 가요? 다른 사람한테 갈 좋은 축복을 왜 우리끼리 받겠다고 달려들어요, 쓸데없이. 그렇게 할 일 없고 힘이 남아돌면 내가 다른 일 하게 해 줄게요.”“무슨 일?”강하영은 푸른 바다를 향해 눈을 힐끔 하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 수영 좋아하잖아요. 내가 엉덩이 확 걷어찰 테니까 바다로 들어가서 수영이나 할래요?”“...”저번에 강하영과 같이 수영하면서 그녀가 자신한테 새빨간 수영팬티를 사줘 창피를 당하고 나서부터 우양주는 수영하는
여은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예쁘게 미소 지었다.“나 다 알아요.”지난 1년 동안 그가 어떻게 해왔는지 잘 아는 그녀는 더 이상의 맹세와 언약 같은 건 필요 없었다.“응!”여은진을 안은 채로 원이림은 그녀의 여린 입술에 쪽쪽거리며 뽀뽀를 했다.장내의 플래시 세례가 정신없이 터지는 가운데 그는 돌아서서 무대 아래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한테 당찬 목소리로 선포했다.“오늘 저의 이 행복한 순간을 지켜본 여기 계신 모든 증인 분들한테 제가 선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저희 베린 그룹에 가셔서 선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달 20일에 저와 은진이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니 여러분들께서 모두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여은진을 안고 시상대를 내려가려 했다.여은진이 내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게 안은 채로 시상식장을 걸어 나와 차에 올라탔다.럭셔리한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내달리고 있었다.여은진은 아직도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있었다.“이번 달 20일에 결혼한다고요? 그럼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촉박하지 않아요?”그녀가 눈을 들어 바라보며 물었다.“아니, 전혀.”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떨구며 원이림이 말했다.“시간이 모자라지만 않았으면 내일에라도 당장 결혼식 치르고 싶어.”반년이 넘는 동안, 그는 매일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결혼반지, 웨딩드레스, 그리고 결혼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디테일한 사항들을 전부 준비하고 체크했다. 그녀가 결혼을 동의하는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이 끝내 다가왔다.웨딩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크게 시간을 들일 일도 없었다.다만 여은진이 임신했기 때문에 너무 빠듯하게 스케줄을 잡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결혼식에 참석할 하객을 초대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10일이면 충분했다.촉박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여보, 우리 지금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가.”원이림은 한시라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기사한테 얘기하여 구청으로 가자
원이림은 금방 샤워를 마친 여은진한테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침대로 향했다.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순을 밟아갔다.한창 격렬해지려던 찰나, 원이림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크게 지르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은진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새에 살에 푹 찔린 그 가는 물건을 빼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빨리 반응했다.하지만 역시 늦었다.여은진이 몸을 일으켜 스탠드를 켰고, 어두웠던 방안은 환한 빛으로 채워졌다.이어 급히 그를 살피던 여은진은 원이림의 엉덩이에 바늘이 하나 꽂혀있는 걸 발견했다.짧고 가는 옷을 꿰맬 때 쓰는 그런 바늘이었다.여은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남자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바늘에 찔릴 수 있어요? 침대에 왜 바늘이...”“...”꽂힌 바늘을 빼며 원이림은 이야기를 얼버무렸다.“괜찮아, 그냥 바늘인데 뭐. 별로 아프지도 않아.”그러고는 또 다짜고짜 몸을 뒤집으며 여은진을 몸 아래로 깔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스탠드를 끄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잠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진행 중이었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지였다.하지만 여은진은 그의 키스를 받아내면서도 오후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난데없이 침대에 나타난 바늘을 함께 떠올렸다. 정신을 쏙 빼놓으려는 지금의 행동도 분명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잠깐만.”여은진은 원이림을 밀어내고 다시 한번 스탠드를 켰다.의심이 부풀어 오른 눈으로 빤히 그를 노려봤다. “똑바로 말해요. 아까 그 바늘로 수작 부린 거 맞죠? 말해요, 몇 개나 찔렀어요?”“...”끝내는 발각되었다. 원이림은 이실직고했다. 강주환이 원흉이라고, 그가 시켜서 했다고 불었다.“여보, 나 며칠 전에 운봉 비즈니스 회담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강주환을 만났어. 그 자식이 날 비웃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하라고 아이디어를 내줬어. 바늘로 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