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름은 언뜻 강주혜랑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송아름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여동생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름 씨는 제 말을 뭐로 들으셨어요? 저한테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과 결혼할 생각이 추호도 없어요. 저는 절대로 윤성아가 아닌 다른 여자를 좋아할 수 없어요. 거기다......”강주환은 다시 한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며 송아름을 쳐다보았다.“아름 씨하고 제 동생 강주혜가 많이 닮았어요. 그래서 아름 씨를 보면 주혜 생각이 나요. 그러니까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아름 씨를 좋아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저한테 아름 씨는 그냥 동생이에요, 아시겠어요?”송아름의 얼굴이 순간 굳었지만 이내 다시 밝은 웃음을 띠며 말했다.“저하고 강주혜 씨가 닮았다고 해도 저는 당신의 여동생이 아니에요. 주환씨 이러는 거 솔직히 저한테 너무 불공평하세요. 하지만 지금 저를 동생같이 느낀다 해도 저는 괜찮아요.”송아름은 눈을 깜빡이며 짐짓 귀여운 동생인 듯 애교를 부렸다.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게 정말 미워할 수 없는 여자였다.“그래서 이제는 밥 좀 드시겠어요? 제가 밥을 여기까지 가져왔는데 안 드시면 저 좀 있다 돌아가서 은희 이모한테 뭐라고 말해요.”강주환은 아까처럼 냉정하게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상냥하지도 않았다. 냉랭한 얼굴은 여전히 내 마음에 네 자리는 없다고 말해주었다.“거기다 둬요. 바쁜 거 끝나면 먹을게요.”“안돼요.”송아름의 투명한 눈동자가 강주환을 쳐다보며 말했다.“당신 같은 일 중독자들은 일을 시작하면 항상 시간이 없잖아요. 은희 이모가 저한테 준 임무라서 저는 꼭 눈앞에서 당신이 밥을 먹는 모습을 봐야겠어요.”이렇게 말하면서 송아름은 자신의 손에 있던 도시락을 소파 테이블에 올려놓고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송아름은 강주환의 앞까지 걸어와서 강주환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빼서 내려놓으며 말했다.“일은 끝이 없어요. 밥을 다 먹으면 저는 바로 나가서 절대 눈앞에서 알짱거리지 않을 테니까 일단
고은희는 강주환한테 송아름과 결혼하는 데서 생기는 여러 가지 좋은 점 등을 수다스럽게 떠들었다. "어머니, 그만 얘기해요."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는 확고한 눈빛을 한 강두환이 싸늘하게 말했다. "어머니가 뭐라고 말하시든 저는 송아름이랑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자리를 뜬 강주환은 곧장 서재로 올라갔다. 떠나는 강주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고은희도 단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고은희는 반드시 송아름을 며느리로 삼아 집에 돌아오도록 하게 하고야 말겠다고 생각했다. 저녁 식사 때 고은희 또 송아름을 칭찬하면서 강주환을 부추겼다. 저녁밥을 먹은 후 휴식할 때 강주환과 송아름을 함께 묵게 하려고 하는 고은희의 말에 강주환은 눈살을 찌푸렸다. 강주환이 거절의 말을 꺼내기 전에 송아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모, 지금 주환 씨는 저를 싫어해요. 저도 자신을 얕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저와 주환 씨에 관한 일은 이모도 더 이상 부추기지 말아 주세요, 알겠죠?” 송아름은 고은희에게 애교를 부렸다. 송아름은 상냥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은희에게 말했다. "지금 주환 씨가 저를 밀어내지 않고 저와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걸요. 다른 일은 천천히 해요. 주환 씨가 끝까지 저를 좋아하지 않고, 주환 씨가 생각하는 여자와 함께 하겠다고 고집해도, 저는 축하해 줄 거예요. 저도 나름 괜찮은 여자니까요! 저를 원하지 않는 건 주환 씨의 손해잖아요.” "그런데...”"괜찮아요.” 송아름은 얌전하게 웃고는 애교를 부리면서 말했다. "은희 이모, 저를 예뻐해 주세요. 저와 주환 씨의 일은 먼저 신경 쓰지 말고요.” "제발요... 그냥 될 대로 되게 내버려 둬요.” "저도 일단 주환 씨와 지내보고 싶어요. 며칠 동안 함께 지내고 나면 제가 주환 씨를 좋아하지 않게 될 수도 있잖아요?” 송아름의 말에 고은희는 알겠다고 했다. 고은희는 다정하게 웃고는 송아름의 손을 만지며 말했다. "그래, 네 말대로 하자." 송아름의 말이 어색
원이림은 조용히 말했다."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 내가 끝나면 바로 와서 돌봐줄게. 착하지?" 그리고는 또 강주환을 쳐다보면서 말했다."일부 상관없는 옛사람들은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쫓아내면 돼." "…"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강주환은 사실 원이림과 한판 뜨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곳은 병원 병실이고, 게다가 지금 쫓겨난 사람은 원이림이지 자신이 아니었기에 강주환은 꾹 참았다. 그렇게 원이림이 나가고 병실에는 강주환과 윤성아, 둘 뿐이었다. 강주환의 얼굴은 마치 배신이라도 당한 듯 신속히 어두워졌다. 그는 몹시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왜 원이림이랑 연락한 거야?" "저는 계속 원이림과 연락하고 있었어요."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뜻이지?" 만족할 만한 대답을 원하는듯, 윤성아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강주환. 그 시선에 그녀 역시 당당하게 맞서며 말했다."4년 전에 저랑 나엽 씨가 배에서 불에 타 죽을 뻔했어요. 아주 심하게 다쳤는데 이림 씨가 우리를 도와줬어요." "저는 F 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그 후에는 계속 F 국에서 지냈어요. 지난 4년 동안 이림 씨는 저를 잘 보살펴 주셨어요." 윤성아가 4년 전 큰 화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들은 강주환은 마음 한구석이 습관적으로 아파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찾아도 윤성아를 찾아내지 못해서 이미 죽은 줄 알았던 4년 동안, 강주환은 잦은 협심증때문에 심장이 말라 죽을 정도로 아팠다. 윤성아가 나타남으로써 강주환의 죽었던 심장이 다시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시체처럼 살지 않았고 세상만사에 다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원이림이랑 사귀는 거야?” '그런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윤성아와 원이림이 사귄다는 가능성만 생각해도, 강주환은 질투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마치 질투라는 바다에 던져진 것처럼 온몸에 질투가 치밀어 올랐다. '성아는 내 여자야. 성아가 다른 남자와 사귀는걸 절대
강주환은 말했다. "내가 있는 한 원이림은 기껏해야 명분밖에 가질 수 없어. 너와 잠자리를 가지는 남자는 나일 수밖에 없어!” "윤성아, 넌 결국 나에게로 올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거거든. 원이림이 너한테서 버림받고 혼자 남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게 해 줄게!” "내가 옛사람이라며?" "옛사람인 내가 평생 원이림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거야. 원이림에게 내가 너와 잠자리를 가지는 걸 죽을 때까지 보게 할 거야!” 윤성아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말했다. "꺼져!” 그리고 그다음 날 강주환이 아침 일찍 병원에 왔을 때, 역시나 또 원이림을 만났다. 다만 이번에는 원이림이 강하성과 비슷한 또래의 소녀를 데려왔다. 아이는 아주 예쁘게 생겼고 속눈썹은 너무 길어서 깜박거렸다. 크고 검은 포도 같은 눈동자 속에는 수많은 별들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자그마한 코에 쭉 내민 분홍빛의 입은 부드러워 보였다. 아이는 정말 귀여웠다. 보기만 해도 사람의 마음을 녹아버리게 하고,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되고 품에 안고 싶어지게 했다. 아이는 공주 치마를 입고 검고 긴 머리에 땋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목소리도 맑고 듣기 좋았다. 그런데 이렇게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어린 여자아이가 뜻밖에도 원이림을 '아빠'라고 불렀다. 그리고는 배시시 웃으며 병상에 누워 있는 윤성아를 보며 말했다. "엄마, 아빠 좀 봐, 바보 같아!"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강주환은 병실의 훈훈한 장면을 보았다. 주위의 공기는 순식간에 끔찍하게 싸늘해졌다. "왜 춥지?” 어린 아이가 말했다. 아이는 들어오는 강주환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구지?' 큰 눈을 깜박이면서 아이는 애교 많은 목소리로 강주환을 불렀다. "아저씨.” 강주환이 대답하려고 할 때 원이림이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가야, 모르는 사람한테 아저씨라고 부르지 마.” 어린 여자 아이의 이름은 윤지안이었다. 윤지안은 작은 눈썹을 찡그렸다. '낯선 사람이라고? 이 아저씨가 내 친아빠가 아니라는 건가?'
강주환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눈을 부릅뜨며 쳐다보았다.“왜 그렇게 아이를 입양하려고 해? 그것도 하필이면 빌어먹을 원이림과 같이!?”“흥!”강주원은 씩씩대며 윤성아를 향해 말했다. “내 아들의 엄마를 다른 애와 같이 나눠줄 수 없어! 다른 애를 입양했으니, 하성이를 내놔!”“하성이는 내 아이예요! 주환 씨, 이미 하성이를 나에게 줬다는 걸 잊지 마세요!”“그게 뭐 어때서?”강주환은 윤성아에게 똑똑히 일깨워 주었다.“네가 그렇게 하성이를 원한다면, 더 이상 원이림과 어떠한 이유로든지 엮이지 마! 그 빌어먹을 놈에게서 떨어지라고! 그리고 아까 그 여자애, 만약 당신이 원이림과 같이 입양한 거라면 둘 중 하나를 골라! 원이림이 입양할지, 윤성아, 네가 입양할지.”“어찌 되었든 간에 원이림의 아이가 당신을 엄마라고 부를 수 없다고!”“그럴 수 없어요!”윤성아는 강주환이 말도 안 되는 생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했다.“내가 얼마나 더 얘기해야 해요? 저는 절대로 원이림과 엮이고 싶지 않다고요! 그와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에요! 그리고 주환 씨, 당신은 나를 간섭할 권리가 없어요!”강주환에게는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화가 극도로 치밀어 올라 당장이라도 윤성아를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강주환은 윤성아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당신은 내 여자야! 당신이 다른 사람 아이의 엄마가 되게 놔둘 수 없다고!”“좋아요!”강주환은 한발 양보하기로 했다.그윽한 눈동자로 윤성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이 아이를 좋아하는 걸 알아. 그래서 굳이 그 여자애를 입양한다면 말리지는 않을게. 내가 받아들이면 되지! 그 여자애도 하성이처럼 아빠라고 불러서 아들 하나, 딸 하나면 단란한 온 가족 네 식구가 되잖아.” 사실 강주환은 그 여자애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속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단지 여자애가 원이림을 아빠라고 부르는 게 몹시 불쾌했다.하지만 그토록 귀여운 여자애를 데려와 아빠라고 부르게 한다면... 그러면 강주환은 여자애를 입양하는 것도 괜찮아
고은희는 애처로워하며 강하성을 안아주었다. 그리고 닭똥 같은 눈물을 닦아주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하성이가 원하면 이제부터는 아름 이모가 하성이 엄마가 될 거야. 아름 이모가 하성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리고 하성이도 아름 이모를 엄청나게 좋아하잖아!”강하성이 아무리 송아름을 좋아한다 해도 그런 느낌과는 달랐다.그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고은희를 쳐다보며 똑 부러지게 말했다.“싫어요! 전 엄마가 있어요!”이 말에 고은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무엇을 말하려던 그때, 송아름이 강하성의 우는 모습을 보고는 재빨리 달려왔다.“어떻게 된 거예요?”송아름의 시선은 한껏 안색이 어두워진 강주환에게로 향했다.“은희 이모, 무슨 일이에요?”이윽고 고은희를 보고 물으면서 자연스럽게 강하성을 품에 안았다.“자, 아름 이모에게 알려줄래? 왜 얼룩 고양이가 될 때까지 울었는지?”강하성은 눈물을 닦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송아름에게 말했다.“전 엄마가 있어요! 아름 이모가 제 엄마가 될 수는 없어요!”송아름은 한순간 움찔하더니 다시금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좋아, 그럼 하성이 말대로 하자.”송아름은 손으로 강하성의 머리를 어루만져주었다. 부드럽고 자애로운 눈빛으로 미소를 잃지 않고 말했다.“하성이가 원하면 엄마 말고 계속 이모 할게. 그럴까? 하성이 착하지? 이제 울음 뚝 그치자, 응?”“이모든 할머니든 하성이가 원하지 않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이모가 약속할게!”그러자 송아름은 금방 강하성의 울음을 멈추게 했고 강하성이 왜 울게 되었는지도 그제야 알게 되었다.송아름은 말없이 강주환을 힐끗 쳐다보았다.“아름 이모...”강하성은 울음은 그쳤지만 목소리에는 울먹임이 남아 있었고 검은 보석같이 똘망똘망한 눈망울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아빠가 저한테 거짓말하는 거죠? 맞죠? 무조건 엄마랑 다퉜을 거예요! 엄마가 얼마나 저를 이뻐하고 사랑하는데 어떻게 저를 버릴 수 있겠어요?”송아름은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럼! 하성이가 얼마나 착한데,
안효주는 안진강의 극심한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주환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자, 안진강도 아버지로서 어찌할 방법이 없어 더 이상 안효주를 말리지 않았다.그때는 여러모로 강주환을 아주 난처하게 했던 만큼 안진강도 안효주의 고집 때문에 체면이 깎일 대로 깎였었다. 사사건건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에요, 얘기 그만하죠.”안진강은 착잡한 마음에 더 이상 안효주에 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친딸도 아니었다.그의 딸은...윤성아를 떠올리다 보니 안진강의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제야 허리를 곧게 펴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안진강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그래도 제 친딸은 똑 부러지잖아요! 딸이 강 대표님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강 대표님과 엮이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만약 윤성아가 안씨 가문의 딸이라면 안진강이 그녀를 입양하고 나서 무조건 강주환을 다시 귀찮게 만들 거라는 것을 진즉에 알아차렸어야 했다. 이 또한 그가 자초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누가 그더러 미래의 장인어른의 미움을 사라고했던가? 그러나 윤성아, 그녀가 진짜로 안진강의 딸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아버님.”지금까지의 강주환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공경한 태도였다.그는 안진강을 그윽하게 쳐다보며 말했다.“제가 전에는 여러모로 실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단지 안효주에게 마음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아버님에게 명확히 얘기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안효주가 저를 대하는 수법이 얼마나 잔인했던지...”강주환은 비록 안진강에게 공손한 태도였어도 할 말은 해야 했다.“그때는 안효주가 아버님 딸이었기 때문이었죠. 아버님이 효주를 대신해 찾아올 때면 저더러 그녀를 책임져서 아내로 맞이하라고요. 그래서 아버님을 대할 때면 저의 태도가 좋지 안았던거고요.”“그뿐만 아니라...”강주환이 이어서 말했다.“효주가 저렇게 된 건 아버님의 책임도 있어요!” 물론 모든 사람의 눈에는 안효주가 안씨 가
김서향은 서연우를 향한 불만이 점점 커져갔다. 왜냐하면 고상한 안씨 가문에는 안효주같이 발랑 까진 아이가 태어났다는 건말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녀는 안진강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딴따라인 서연우를 아내로 맞이했기에 손녀 안효주가 안씨집안 좋은 유전자를 계승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몇 년 동안 김서향은 며느리인 서연우를 벌레보다 못한 취급을 해왔고 집으로 안진강이 안효주와 서연우를 데려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할머니, 엄마가 우리 안씨 가문을 위해 나랑 성아처럼 훌륭한 쌍둥이 자매를 낳아드렸으니 큰 공헌을 한 거 맞죠? ”윤성아도 덩달아 말하였다. “할머니, 제가 아무 탈 없이 안씨 가문에 돌아온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가족 모두가 화목하게 지내는 일이 제일 중요해요!” 김서향은 두재매의 꿍꿍이를 다 안다는 듯이 손녀들의 이마를 톡톡 쳤다. “이 할미는 너희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안단다!” “연우야, 이리 오너라.” 김서향은 서연우를 불렀다. 그녀는 얼굴에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서연우의 손을 잡으며 말하였다. “며늘아, 몇 년 동안 많이 힘들었지?” 서연우의 눈시울은 삽시에 붉어졌다! 그녀는 울먹이며 말하였다. “어머님...” “에휴.” 김서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얼굴에 밝은 미소를 하고 서연우에게 말하였다. “이젠 시간도 많으니 나랑 너희 아버지 보러 자주 진강이랑 함께 집으로 오려무나.” 그러고 또 이틀이 지났다. 안씨 가문에서는 큰 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특별히 여러 신문사의 기자들도 초대하여 윤성아가 진짜 안씨 가문의 둘째 딸이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20여 년 전, 윤정월이 몰래 안씨 가문의 딸을 바꿔놓은 사실이 모두 까발려졌다. 이 사건은 전체 운성시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각 신문사 기자들은 현장에서 라이브 방송을 하기에 바빴다. 윤성아와 안효연 두 자매는 예쁘게 차려입고 파티장에 나타났다. 7센치미터의 힐에 샴페인 색의 드레스를 입고
남서훈은 싱긋 웃었다.아직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맥으로 정확히 짚어 낼 순 없었지만 느낌은...“아마 남동생일 거야.”“아... 남동생...”양나나는 눈을 굴리더니 남서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남동생도 좋은 것 같아요. 동생 태어나면 저랑 엄마가 동생한테 의술도 가르쳐주고 아빠랑 사업하는 것도 배우고요. 그리고 남자애는 너무 응석 받아줄 필요도 없고 내가 맘껏 부려 먹을 수 있잖아요.”자기 뒤꽁무니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누나, 누나 하고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양나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어떻게 생긴 남동생이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날까, 양나나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그러나 남서훈이 임신 다섯 달째로 접어드는 어느 날, 양나나는 실종됐다.양준회와 남서훈은 매일 안절부절못하여 속이 타들어 갔다.둘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동원해 전 세계 각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여전히 양나나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양나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그때 양나나는 이미 8살이었다.남서훈은 딸을 찾지 못해 날마다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그녀는 점점 야위어갔다.그걸 보는 양준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나는 똑똑한 아이야. 당신이 의술과 독 쓰는 법도 잘 가르쳐줬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나나는 너와 내가 낳은 딸이야. 전에 풍운파에 혼자 몰래 들어가서도 그 안을 마구 헤집고 다녔잖아.”아무튼 그는 양나나가 어디에 가서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던 자신을 잘 보호할 거라고, 아무 일 없이 잘 살아 있을 거라고 남서훈을 위로했다.남서훈도 굳게 믿고 있었다. 양나나의 시체를 보게 되지 않는 한 그들의 딸은 세상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거라고.그 후 넉 달이 지났다. 9달이 된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왔다.양나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그러다 남서훈은 아들을 낳았다. 강보에 싸여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보며 남서훈은 양나나를 그리워했다.“나나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네 뒤꽁무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양준회와 남서훈, 그리고 백나연과 성진훤, 이렇게 네 사람은 백무산을 찾아갔다.그를 만나자마자 양준회와 성진훤은 백무산한테 사과부터 했다.어리둥절한 백무산은 그들이 왜 갑자기 찾아와서 사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 후 양준회는 남서훈의 어깨를 와락 감싸안았고 성진훤도 보란 듯이 백나연의 손을 꼭 잡았다. 성진훤은 원래 양준회처럼 백나연을 확 끌어안고 싶었지만 미래 장인어른이 될 사람 앞이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손만 잡았다.백무산은 더 혼란스럽고 얼떨떨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는 눈알이 튀어져 나올 듯하게 그들 넷을 번갈아 쳐다봤다.그때 양준회가 입을 열었다.“어르신, 우리 서훈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남씨 집안의 특수한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남장을 했던 것이고, 백나연 씨와의 혼약도 그저 소동극이었습니다. 이 일은 서훈이한테 책임 묻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노여움이 있으시면 저한테 푸세요.”그 말에 백무산은 눈살을 찌푸렸다.남서훈이 여자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여자가 그의 딸과 약혼했다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백무산은 불같이 화를 냈다.그러자 백나연이 나섰다.“아빠, 이 일은 서훈이 탓이 아니에요, 제가, 제가 꼭 도와달라고 했어요.”“뭐야? 널 도와줘?”“네.”백나연이 설명했다,“아빠랑 오빠가 자꾸 소개팅 주선하는 바람에 제가 너무 골치 아파서 서훈이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나랑 약혼하자고. 그럼 아빠랑 오빠가 나한테 선 자리를 더는 강요 안 할 거 아니에요. 서훈이는 싫다고 했는데 내가 억지 써서 해주기로 한 거예요.”백나연은 자기 잘못이라고 매우 강조했다.그녀의 눈빛에 아픔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전 그때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저랑 서훈이는 서로 약속했어요. 누가 먼저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든, 그때 되면 파혼하기로요. 절대 서로의 앞날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그 순간 용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펑펑 쏟아졌다.이게 얼마 만인가.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은 생각을 항상 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는 오늘 끝내 그녀를 안을 수 있었다. 팔을 뻗어 그녀를 껴안고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용준은 또 한참을 울었다.예서는 그가 평생 사랑한 유일한 여자였다.그는 품속에 있는 그녀를 부드럽고 진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난 네가 고마워. 넌 너무 용감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해. 옛날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넌 이것만 기억해. 난 널 사랑하고, 네가 있어야만 내가 살 수 있어. 네가 있으니까 내가 괴물로 변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난 모든 걸 다 망가뜨렸을 거야. 스스로도 혐오하는 그런 나쁜 인간으로 돼버렸을 거야.”예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남자가 하려는 말이 뭔지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이날, 둘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예서는 더는 용준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용준이 있으므로 하여 그녀는 더 빨리 회복될 것이었다.그렇게 예서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을 때. 남서훈과 양나나는 한 번 나가 돌아다니기로 했다.한 거리의 상가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남자애 몇 명이 갑자기 튀어나와 양나나를 에워쌌다.그들은 매우 들뜬 소리로 말했다.“대장! 살아 있었어요?”“너무 잘 됐어요!”“대장, 대장을 그 사람들이 데려간 후로 우린 계속 대장의 소식을 기다렸어요. 대장도 그 애들처럼 상처투성이가 돼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고요.”“지금은 어떤 상황이에요? 대장이 후계자가 된 거예요?”양나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 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남자애들한테 말했다.“난 후계자 되는 것에 관심 없어. 풍운파에 지금 남아있는 건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야.”양나나는 시선을 남서훈한테 향하며 그들한테 남서훈을 소개했다.“이분이 내 스승님이야, 우리 스승님 엄청 대단해!”그날, 양나나는 그
지난 날에 발생한 그 끔찍한 과거를 스스로 입에 올리는 용준은 피가 흘러나올 듯이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감정이 폭발할 한계치까지 다다랐다.그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몇 분 후에야 그는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그놈들은 죄다 죽여버려야 할 놈들이에요. 예서가 이쁘니까, 내 앞에서 예서를... 그때 예서는 이미 내 아이를 임신했는데...”용준의 온몸에서 난폭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주먹으로 나무를 세게 한 방 내리쳤다. 그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그 큰 나무가 흔들릴 정도면 얼마나 센 펀치를 날렸는지 알 수 있었다.그의 손마디도 살이 찢겨나가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상처에 무덤덤했다. 아마도 손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터였다.용준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심장이 뜯겨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예서가 피투성이가 된 채 텅 빈 눈으로 누더기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져서 누워있던 참혹한 장면만 머릿속에 떠올리면 그놈들을 무참하게 도륙을 내고 싶었다.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였다.풍운파의 보스가 된 후 첫 번째로 한 일이 바로 예서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그놈들의 범죄증거를 전부 찾아내 한 명도 빠짐없이 직접 처단했다.그때 그들은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용서를 빌었다. 막다른 길에 몰려 살려고 해도 안 되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할 때, 그들은 찌질이같이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애원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정작 그들은 용준이나 예서한테 그런 자비를 베푼 적이 없는데 말이다.용준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그것들이 나와 예서의 모든 것을 망치고 날 시궁창에 몰아넣었죠. 여전히 난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생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그것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해요!”그러나 그놈들이 죽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니었다.용준은 피로 물든 주먹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들은 예서가 그들이 한
용준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고, 금호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그는 어둠이 없는 밝은 햇빛 아래에서 사는 반듯한 사람이었다.그러나 일부 국제조직에서는 용준을 불안하게 여겼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심지어 그가 의심되어 오랫동안 그에게 전자발찌를 채웠다.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는 범죄자 취급을 당했고, 그리하여 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더더욱 생각지도 못한 건, 그 당시 그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었던 여자친구마저 누구한테 몹쓸 짓을 당하게 된 것이다.그러므로 용준이 점점 나쁘게 변하여 나중에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되었던, 모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요 몇 년 동안 풍운파는 용준의 관리하에 동남아에서 제일 큰 폭력조직으로 성장하였고,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나 다 저지르는 편이었지만 딱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그건 바로 노약자와 여자,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였다.의리도 지켰다.하지만...“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남서훈이 말했다.“이 세상은 원래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니깐요. 동남아는 원래 상황이 어수선하잖아요. 무장세력과 폭력조직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으로 바꿀 수도 없어요. 오히려 풍운파와 같은 조직이 있다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양준회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측면으로 보면 용준은 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둘은 원수지간이다. 양준회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 비록 지금까지는 아무 짓을 안 했어도, 또 그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풍운파를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다스린 용준이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리하여 양준회는 안심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남서훈과 같이 풍운파를 즉시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나나도 여기 있어요.”남서훈이 예상치도 못한 폭탄을 터트렸다. 양준회는 깜짝 놀랐다.양나나가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는 바로 말했다.“그럼 나나도 같이 떠나면 돼.”갇힌 두 달
강하영이 부케를 내던지는 일순간 우양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부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부케를 잽싸게 낚아채는 그의 모습이 정지화면인 양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부케를 손에 쥔 그다음 순간, 그는 부케와 함께 바다에 떨어졌다.모두가 경악했다.강하영은 크루즈 난간 쪽으로 달려가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남자를 보며 입을 떡 벌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선원들이 즉시 튜브를 던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즉시 뛰어내려 구조하려 했지만 강주환이 그들을 말렸다.왜 구하지 말라는 건지 이해 안 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윤성아는 강주환을 쳐다봤다.그러다 팔로 물살을 가르며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우양주가 크루즈 위에 있는 강하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는 걸 듣고 왜 그러는지 알 것만 같았다.“여보, 어쨌든 내가 부케 받았으니까 당신 나랑 결혼식 치러야 돼요! 안 그러면...”그 뒤엔 위협적인 말이 따라야 하는데 우양주도 무엇으로 강하영을 협박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남은 건 자신의 이 몸뚱이 하나뿐인데...“안 그러면 나 안 올라갈 거야. 여기 바다에 계속 있을 거야, 결혼식도 못 하는데 그냥 빠져 죽지 뭐.”강하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바다에 빠진 남자를 까만 눈동자로 차분하게 내려다보며 끝내 입을 열었다.“빠져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안 말려요.”“...”우양주는 서럽게 그녀를 쳐다봤다.역시나 아내는 매정했고 자신에 대해 애정이 없었다.그러나 그때 윤성아 곁에 서있는 강주환이 무덤덤하게 한마디 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바다에 상어가 출몰한다고 했어요. 식인 상어.”강주환은 고개를 돌려 강하영한테 말했다. “지금 아직 상어가 오지 않아서 그렇지, 나타나기만 하면 한꺼번에 열 몇 마리씩 무리 지어서 나올 거예요. 그게 게네들 습성이라. 이야... 쟨 아마 그러면 뼛조각도 남지 않겠네.”“...”그 말에 강하영이 급해 났다. 말투도 전처럼 차분하고 담담하지 않았다.난간에 기대어 우양주를 향해 내리 소리 질렀다.“뭐
미리 준비한 축사를 울먹이며 끝까지 다 읽고는 원이림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너 이 놈 자식, 내가 죽을 때까지 네가 결혼하는 걸 못 보는 줄 알았다. 아이고...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너도 이제 가정이 생겼어.”“너 똑바로 들어. 은진이한테 평생 잘 해줘야 돼, 아내한테 잘 하는 건 우리 집안 내력이야. 나도 네 엄마 말을 엄청 잘 들었어. 너도 똑같아, 알겠니? 오늘부터는 은진이한테 더 잘해야 돼, 말도 잘 듣고, 은진이부터 생각하고 배려해 주고. 은진이가 조금이라도 맘고생을 하게 되는 날엔 내가 너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원이림은 새카만 눈동자로 여은진을 깊게, 애틋하게 들여다보며 그녀와 깍지를 낀 두 손에 힘을 더 주었다.“걱정 마세요. 난 평생 우리 여보 맘고생 안 시킬 거예요.”여보라는 호칭이 지금 이 시각부터 명실상부하게 되었다.원이림은 그녀의 손을 잡고 크루즈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데이지 꽃을 바다로 뿌렸다. 하얀 꽃잎들이 파도에 실려 멀리 떠내려갔다.둘은 거기에 선 채 눈물을 머금고 울먹이며 말했다.“어머니, 아버지. 저 너무 행복해요. 우리 너무 행복해요.”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할 부케 토스하는 시간이 다가왔다.강주환과 윤성아, 그리고 나엽과 안효연은 모두 기혼자로서 나가지 않고 구경만 했다. 하객 중에 미혼인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우양주도 강하영의 손을 잡고 그리로 향했다.강하영은 몸을 뒤로 빼면서 말했다.“우린 결혼했는데 왜 부케를 받으러 가요? 다른 사람한테 갈 좋은 축복을 왜 우리끼리 받겠다고 달려들어요, 쓸데없이. 그렇게 할 일 없고 힘이 남아돌면 내가 다른 일 하게 해 줄게요.”“무슨 일?”강하영은 푸른 바다를 향해 눈을 힐끔 하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 수영 좋아하잖아요. 내가 엉덩이 확 걷어찰 테니까 바다로 들어가서 수영이나 할래요?”“...”저번에 강하영과 같이 수영하면서 그녀가 자신한테 새빨간 수영팬티를 사줘 창피를 당하고 나서부터 우양주는 수영하는
여은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예쁘게 미소 지었다.“나 다 알아요.”지난 1년 동안 그가 어떻게 해왔는지 잘 아는 그녀는 더 이상의 맹세와 언약 같은 건 필요 없었다.“응!”여은진을 안은 채로 원이림은 그녀의 여린 입술에 쪽쪽거리며 뽀뽀를 했다.장내의 플래시 세례가 정신없이 터지는 가운데 그는 돌아서서 무대 아래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한테 당찬 목소리로 선포했다.“오늘 저의 이 행복한 순간을 지켜본 여기 계신 모든 증인 분들한테 제가 선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저희 베린 그룹에 가셔서 선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달 20일에 저와 은진이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니 여러분들께서 모두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여은진을 안고 시상대를 내려가려 했다.여은진이 내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게 안은 채로 시상식장을 걸어 나와 차에 올라탔다.럭셔리한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내달리고 있었다.여은진은 아직도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있었다.“이번 달 20일에 결혼한다고요? 그럼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촉박하지 않아요?”그녀가 눈을 들어 바라보며 물었다.“아니, 전혀.”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떨구며 원이림이 말했다.“시간이 모자라지만 않았으면 내일에라도 당장 결혼식 치르고 싶어.”반년이 넘는 동안, 그는 매일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결혼반지, 웨딩드레스, 그리고 결혼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디테일한 사항들을 전부 준비하고 체크했다. 그녀가 결혼을 동의하는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이 끝내 다가왔다.웨딩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크게 시간을 들일 일도 없었다.다만 여은진이 임신했기 때문에 너무 빠듯하게 스케줄을 잡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결혼식에 참석할 하객을 초대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10일이면 충분했다.촉박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여보, 우리 지금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가.”원이림은 한시라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기사한테 얘기하여 구청으로 가자
원이림은 금방 샤워를 마친 여은진한테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침대로 향했다.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순을 밟아갔다.한창 격렬해지려던 찰나, 원이림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크게 지르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은진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새에 살에 푹 찔린 그 가는 물건을 빼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빨리 반응했다.하지만 역시 늦었다.여은진이 몸을 일으켜 스탠드를 켰고, 어두웠던 방안은 환한 빛으로 채워졌다.이어 급히 그를 살피던 여은진은 원이림의 엉덩이에 바늘이 하나 꽂혀있는 걸 발견했다.짧고 가는 옷을 꿰맬 때 쓰는 그런 바늘이었다.여은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남자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바늘에 찔릴 수 있어요? 침대에 왜 바늘이...”“...”꽂힌 바늘을 빼며 원이림은 이야기를 얼버무렸다.“괜찮아, 그냥 바늘인데 뭐. 별로 아프지도 않아.”그러고는 또 다짜고짜 몸을 뒤집으며 여은진을 몸 아래로 깔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스탠드를 끄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잠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진행 중이었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지였다.하지만 여은진은 그의 키스를 받아내면서도 오후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난데없이 침대에 나타난 바늘을 함께 떠올렸다. 정신을 쏙 빼놓으려는 지금의 행동도 분명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잠깐만.”여은진은 원이림을 밀어내고 다시 한번 스탠드를 켰다.의심이 부풀어 오른 눈으로 빤히 그를 노려봤다. “똑바로 말해요. 아까 그 바늘로 수작 부린 거 맞죠? 말해요, 몇 개나 찔렀어요?”“...”끝내는 발각되었다. 원이림은 이실직고했다. 강주환이 원흉이라고, 그가 시켜서 했다고 불었다.“여보, 나 며칠 전에 운봉 비즈니스 회담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강주환을 만났어. 그 자식이 날 비웃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하라고 아이디어를 내줬어. 바늘로 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