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이 하윤을 다시 선우의 품으로 돌려놓으며 말했다.“대표님.”선우는 조심스레 하윤을 받아안고 아이가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요?”“20분 정도 더 걸릴 것 같습니다. 도착하면 헬기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목적지까지 총 한 시간 정도 소요할 거고요.”우진은 조금 머뭇거리며 윤아와 두 아이를 바라봤다.“가는 도중에 깨진 않겠죠?”그러자 선우가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설령 깬다 해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겠지만요.”우진은 다시 한번 윤아 쪽을 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대표님. 캠핑 쪽도 사실 준비를 마쳤는데...”“네.”그러나 선우는 담담한 대꾸만 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러니까 제 말은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겁니다. 지금이라도 차를 돌리면 윤아 아가씨가 깨도 너무 피곤한 탓이라고 여기고 별로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그 말에 선우가 드디어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진 비서님.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우진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대표님이 후회하실까 봐요. 그동안 윤아 님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덕에 이제 대표님을 가족같이 믿을만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계시잖아요. 이러다 들켰다간... 원망을 살 겁니다.”“그래서요?”선우가 비아냥거리며 입꼬리를 올렸다.“윤아가 다른 남자한테 가도록 내버려두는 것만큼 후회될 일은 없어요.”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우진이 그의 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한 선우를 보며 더 말려봤자 소용없겠다고 생각했다.그는 애꿎은 한숨만 푹 쉬며 입을 다물었다.하지만 이번 계획이 윤아한테는 얼마나 기분 나쁠지 예상이 갔기에 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설령 성공한다 해도 선우와 윤아가 쌓아왔던 관계는 아마 점차 균열이 생길 것이다.그러나 지금 선우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듯 보였다.‘생각해 보면 윤아 님이 귀국한다고 했을 때 대표님이 어떻게든 막았어야 했어. 그랬으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이미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듯한 저 태도.선우는 이미 윤아의 원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윤아는 화를 내지 않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쉬고 창밖을 통해 비행고도를 가늠해 봤다.지면이 아예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미 비행기가 뜬지 한참은 된 모양이었다.“훈이랑 윤이는?”“앞쪽에 돌봐주는 사람이 있으니 걱정 마.”“아이들을 좀 봐야겠어.”그 말에 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가 데려다줄게.”윤아는 선우를 따라 다른 칸으로 들어갔다. 먼저 깨서 간식을 먹고 있던 두 아이는 윤아가 다가오는 걸 보고 방긋 웃었다.아이들한테는 이미 적당히 둘러낸 모양이다. 아이들은 워낙 선우를 믿고 잘 따르니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그나마 사리가 밝은 서훈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엄마, 우리 캠핑 가는 거 아니었어요? 왜 갑자기 비행기를 탄 거예요?”윤아는 애써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갑자기 생각이 바뀌었어. 맛있어?”“맛있어요.”“그럼 먼저 먹고 있어. 엄마는 선우 아저씨랑 할 얘기가 있어서 나중에 다시 찾으러 올게.”“네.”두 녀석이 동시에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아이가 안전한 걸 확인한 윤아는 몸을 일으켜 선우와 눈을 맞추었다. 그녀는 화가 치미는 걸 겨우 억누르며 무표정으로 그를 스쳐 지나갔다.이런 반응을 예상했던 선우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윤아의 뒤를 따라나섰다.다른 칸으로 자리를 옮긴 뒤, 윤아는 발걸음을 멈춘 채 그대로 앞을 보며 선우에게 물었다.“어디로 가는 건데?”“해외.”“얼마나 더 걸려?”선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아는 그가 대답하든 말든 할 말을 쏟아냈다.“도착하면 곧바로 돌아가는 항공편을 알아볼 거야. 두 아이와 함께 무사히 귀국하면 오늘 일은 그냥 여행 온 셈 쳐줄게.”그녀는 선우에게 앞으로 무슨 짓을 하려고 하든 지금이라도 멈추라고 말하고 있었다.그래도 꽤 좋은 사이였지 않은가. 윤아는 가능하다면 둘 사이의 평화를 산산조각 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윤아의
“네가 말하는 좋아한다는 마음이 나와 아이들의 믿음을 이용해서 강제로 기절시켜 비행기에 태우는 거야? 이게 네 마음의 표현이야?”아프게 날아오는 말에 선우의 눈에 슬픈 기색이 비쳤다.“미안해.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윤아야, 나 무려 5년이란 시간을 너한테 쏟아부었어. 그런데도 네가 받아주지 않으니 이렇게 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어. 날 너무 탓하지 말아줘.”선우의 태도를 보니 계속 얘기를 이어가도 답이 없을 것 같았다.윤아가 그럴만한 성격은 안되지만 지금 비행기 안에서 난동을 부린다 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윤아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말했다.“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진 모르지만 가는 동안 한번 잘 생각해 봐. 네가 생각을 바꾸고 날 무사히 한국으로 돌려보내 주면 없던 일로 해줄게.”윤아는 선우와 더는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아 아무 좌석이나 찾아 앉아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아직 약효가 완전히 가시지 않아 몸이 뻐근하고 졸음이 몰려왔다. 그러나 눈을 감아도 선우의 말이 떠올라 머릿속이 복잡하고 가슴도 답답했다.그리고 잇따라 몰려온 건 왜 체면 때문에 수현에게 문자를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였다.문자를 보냈다면, 그리고 수현이 그 문자를 봤다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단 걸 알 수 있었을 텐데.어쩌면 지금쯤...윤아는 불현듯 뭔가 떠오른 듯 눈을 번쩍 뜨더니 주머니를 뒤적였다.없다. 아무것도 없다.윤아는 고개를 돌려 아직 그 자리에 서있는 선우에게 물었다.“내 핸드폰은?”선우는 싱긋 웃더니 옆으로 와 앉았다.“비행기가 착륙 하기 전까진 핸드폰 사용 금지야.”“... 안 쓸 테니까 돌려줘.”“응. 도착한 뒤에 비행에서 내리면 돌려줄게.”윤아는 돌려준다는 그의 말이 썩 믿기진 않았지만 아직 시간은 있으니 그동안 선우가 생각을 바꾸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비행기는 그렇게 한참을 날았고 어느덧 점심때가 되었는지 식사를 준비해 오는 직원들이 보였다. 자가용 비행기라 그런지 내부에 개인 셰프가 있었다. 덕분에 음
선우는 윤아의 접시를 곁눈질하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윤아야, 이제 몇 입 먹었다고 그래.”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우는 윤아가 지금 자기를 밀어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선우는 잠시 입술을 말며 생각하다 뭔가가 떠오른 듯 말했다.“그래, 아무래도 이 요리사가 제대로 만들지 못해서겠지? 괜찮아, 조금 이따 비행기에서 내리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말을 마치고 선우는 사람을 시켜 접시를 치우게 했다. 이윽고 그는 손에 와인 한 잔을 쥐고 걸어왔다.“마실래?”“아니, 괜찮아.”선우는 와인잔을 손에 들고 여유롭게 마셔댔다. 마시고 난 뒤 선우는 조용히 윤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윤아는 그를 보지 않고 있었고 가슴에 손을 올린 채 눈 감고 잠에 든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선우는 그런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다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도착하면 자연스레 그녀를 잘 챙길 것이니. 비행 내내 복잡한 마음을 품고 드디어 카네베에 도착했다.카네베의 시차는 국내와 달라서 도착했을 때 국내는 자정일 시각이었지만 카네베는 밝은 낮이었다.“먼저 공항 근처의 가까운 호텔에 가서 씻고 쉬고 있어. 깨면 그때 별장으로 데려다줄게.”카네베에서의 일정은 모두 사전에 완벽하게 짜였다. 윤아가 비행기에서 제대로 쉬지 못한 것을 고려하지 않았더라면 선우는 바로 윤아를 별장으로 데려갔을 것이다.윤아는 미동 없이 앉아있었다.“이렇게 긴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생각을 못 끝낸 거야? 윤아야, 나 정말 오래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야.”선우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윤아의 팔을 부축했다.“일어나, 내려야지.”윤아는 계속 꿈쩍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선우야, 난 쭉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했어.”“당연하지.”선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후에도 난 계속 너의 친구일 거야. 물론 그와 동시에 가장 친밀한 사람이기도 하고.”여기까지 들은 윤아가 선우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넌 미쳤어.”선우는 팔이 내쳐져도 그저 살짝 고개를 숙
두 아이는 고사하고 윤아 혼자 도망가기도 버거웠다. 게다가 윤아의 핸드폰은 선우한테 있었다.그리고 선우가 자기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건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아마 그녀의 여권이며 신분증을 다 찾아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밥을 할 때 방에 들어가서 뒤진 건가? 윤아는 답답했지만 계속 생각했다.그래서 선우가 그녀 근처로 다가왔을 때, 그녀는 입을 열어 물었다.“내 핸드폰은?”선우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까 질세라 윤아가 덧붙였다.“비행기에서 내리면 핸드폰 줄 거라고 네가 얘기했잖아.”“응.”선우는 약속을 어기지 않고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윤아한테 건넸다. 핸드폰을 가진 윤아는 꿈인가 싶었다. 선우가 순순히 핸드폰을 내놓을 줄은 몰랐던 터였다. 아까 비행기에서 한 말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비록 아주 미세한 효과인 것 같긴 해도.그러나 핸드폰의 전원을 켰을 때 이내 윤아는 뭔가 달라졌음을 발견했다. 핸드폰의 유심칩은 원래 쓰던 그 칩이 아니었다. 원래 쓰던 칩은 진작 바꿔치기 당했고 지금 쓰는 칩은 카베네에서 쓰는 전용 칩이었다.이러면 핸드폰을 돌려주나 안 돌려주나 무슨 다른 점이 있단 말인가. 윤아는 어이없다는 듯 선우를 쳐다봤다.“너 내 허락도 없이 칩을 바꾼 거야?”묻고 난 뒤 윤아 본인도 그런 질문을 한 자신이 우스웠다. 물어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외국은 뭐 허락받고 왔나, 유심칩 하나 바꾼 건 일도 아니었다.“국내 유심칩은 여기서 못 써, 알잖아.”선우는 평소와 같이 덤덤하게 설명했다.“그래서 미리 새 칩을 준비해 둔 거야, 안심하고 써.”윤아는 카톡을 눌러보고 서야 자신이 사용하던 앱들이 전부 새로 다운받아진 걸 알아챘다. 카톡 계정도 새 계정이었고 카톡 연락처는 선우와 우진 둘뿐이었다. 그 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연락처도 말끔히 지워져 핸드폰이 초기화된거나 다름이 없었다. 윤아가 참지 못하고 화를 내려 할 때,“엄마?”마침 두 아이가 기다리는 게 지쳤는지 윤아를 불렀다. 윤아는 두 아이를 돌아보았
호텔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하기까지 윤아는 선우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선우는 윤아를 공항 부근의 호텔에 데려갔다. 말로는 부근이라더니 차로 반 시간 정도 가야 하는 거리였지만 말이다. 윤아가 편히 쉴 수 있게 갖은 준비를 해두고 나서야 선우는 윤아에게 말을 건넸다.“먼저 쉬고 있어, 저녁에 다시 와서...”쾅!선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호텔 방문이 닫혔다. 선우는 잠시 침묵하다 이내 못한 말을 덧붙였다.“데리러 올게.”그러나 방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이 대표님...”옆에서 지켜보던 우진이 망설이듯 선우를 불렀다. 이게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우진의 부름에 선우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 명령했다.“여기 잘 지키고 있어요. 그 어떤 수상한 사람도 들이면 안 되니까.”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이 대표님, 안심하세요.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미가 보인다면 절대 들여보내지 않을 겁니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한숨도 쉬지 못하셨잖아요. 얼른 가서 좀 쉬세요.”선우는 장장 20시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제대로 쉬지 못해 눈에 실핏줄까지 어렸다. 물론 지금 같은 상황에 방에 돌아간다 해도 잘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서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 건 안 하느니만 나았다.“알겠어요, 진 비서.”선우는 짧게 대답하고 자리를 떴다.한편 윤아는 방문을 닫고 안쪽으로 걸어갔다. 테이블 위에는 호텔 측에서 갓 올려온 신선한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지만 두 아이는 조각 케이크를 먹고 난 뒤 나머지 음식들에 손대지 않았다. 아이들은 비행기에서부터 계속 뭔가를 먹으며 애니메이션을 보더니 슬슬 지칠 때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예상대로 두 아이는 이내 소파에서 쓰러져 담요를 껴안고 잠들었다.윤아는 담요를 잘 덮어주고는 다른 편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연락처를 없애면 그녀가 방법이 없을까 봐? 의외로 윤아는 꽤 많은 이들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유독 수현의 전화번호가 기억에 남아있었다. 당시 연락처를 추가하
윤아는 핸드폰을 집어넣고 자리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커튼을 젖히고 밖을 내다본 뒤에야 윤아는 자신이 머무르는 층이 16층이란 걸 알았다.문 앞에 다가가 문을 열고 보니 안절부절못하는 우진과 우락부락해 보이는 두 남자가 문을 지키고 서 있었다. 어디로 가나 도망갈 출구 따위는 없었다. 이는 감금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윤아는 화가 나 우진에 말했다.“나가야겠어요.”우진은 난감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윤아 님,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장시간 비행에 지치셨을 텐데 대표님께서 아이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잠시 나가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비행에 지친 절 휴식하라 하는 건가요, 아니면 감금하는 건가요?”감금이라는 단어를 들은 우진은 재빨리 반박하며 말했다.“윤아 님, 감금이라뇨? 윤아 님, 오는 내내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셨는데 대표님이 윤아 님을 위해서 내린 결정입니다.”“아무튼 저 못 나가게 막겠다는 거죠?”우진은 말이 없었다. 윤아는 그를 앞에 두고 또 다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닫았다.소파로 돌아와 두 아이가 쌔근쌔근 잠 든 모습을 보고 윤아는 차츰 이성을 되찾았다. 분명 뭔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포기할 수 없지, 뭔가 도움을 요청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윤아는 다시 칩을 꽂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호텔 안내데스크 직원한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저편에서 뚜뚜뚜하는 통화연결음이 들려왔다. 윤아는 통화가 연결 된다는 것에 감격했다. 그 말인즉 그저 그녀가 연락하고 싶었던 그 몇 명만 통화가 제한되어 있을 뿐 다른 이에겐 충분히 연락이 가능하단 소리였다. 선우가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칩만 바꿀 수 있다면 그들한테 연락할 수 있을 것이다.사색에 잠겨 있을 무렵, 수화기 너머에서 유창한 영어가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왔다. 윤아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베란다 쪽으로 다가갔다.“안녕하세요, 피자 좀 주문하고 싶은데요.”그녀는 재빠르게 테이블 위의 음식들을 훑고는 피자가 없는 것을 확
감금을 들먹이니 우진 쪽은 또 말이 없었다.“나 지금 먹고 싶어요. 하기 싫으면 하지 마세요. 안 먹으면 말죠 뭐.”말이 끝나고 윤아는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핸드폰이 도청되고 있던 게 맞았던 걸까. 그 말인즉슨 그녀가 어디에 전화를 치든, 무엇을 요구하든 다 소용이 없단 소리였다.윤아는 선우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야만 해야 했다. 무언가 방법이 꼭 있을 것이다....한편 우진은 전화를 끊은 뒤 진퇴양난의 위기에 몰려 어쩔 수 없이 선우의 의견을 물으러 갈 수밖에 없었다. 선우는 윤아의 요구를 들은 뒤 입술을 말며 생각하다 말했다.“윤아 말대로 해주세요.”“그런데 호텔에는...”“호텔에 없으면 밖에도 없습니까? 차이나타운 같은 데라도 찾아봐요. 운전해야 하면 운전해서 갔다 오고 정 안되면 돈을 주고 요리사를 고용하든가요.”“...”“윤아 옆에는 지금 나밖에 없지 않습니까? 내가 요구를 들어주지 못한다면 누가 들어준답니까?”별수 없이 우진은 시키는 대로 했다. 선우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려댔다. 한창 휴식하고 있었던 그는 다시 안경을 썼고 그 깊고 차가운 눈빛이 안경알 뒤로 가려졌다.그저 먹고 싶은 음식일 뿐이니 그 정도는 선우도 자연스레 해줄 수 있었다. 선우는 윤아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결코 자신이 수현보다 못하지 않다는 걸....윤아는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고 두 아이를 안아 침실로 이동했다. 그러고는 아이들에게 이불을 꼭 덮어준 뒤 문을 닫아 거실과 담을 쌓았다. 이윽고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카톡을 눌렀다. 아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혹시 앱으로 전화번호를 검색했을 때 친구 추가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우가 그녀에게 계정을 만들어주며 아마 이 생각은 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윤아 자신도 너무 급한 나머지 이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윤아가 검색창에 전화번호를 입력하려던 찰나에 초인종이 울렸다. 그녀는 잽싸게 핸드폰을 치우고는 가만히 앉아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