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말하는 좋아한다는 마음이 나와 아이들의 믿음을 이용해서 강제로 기절시켜 비행기에 태우는 거야? 이게 네 마음의 표현이야?”아프게 날아오는 말에 선우의 눈에 슬픈 기색이 비쳤다.“미안해.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윤아야, 나 무려 5년이란 시간을 너한테 쏟아부었어. 그런데도 네가 받아주지 않으니 이렇게 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어. 날 너무 탓하지 말아줘.”선우의 태도를 보니 계속 얘기를 이어가도 답이 없을 것 같았다.윤아가 그럴만한 성격은 안되지만 지금 비행기 안에서 난동을 부린다 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윤아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말했다.“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진 모르지만 가는 동안 한번 잘 생각해 봐. 네가 생각을 바꾸고 날 무사히 한국으로 돌려보내 주면 없던 일로 해줄게.”윤아는 선우와 더는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아 아무 좌석이나 찾아 앉아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아직 약효가 완전히 가시지 않아 몸이 뻐근하고 졸음이 몰려왔다. 그러나 눈을 감아도 선우의 말이 떠올라 머릿속이 복잡하고 가슴도 답답했다.그리고 잇따라 몰려온 건 왜 체면 때문에 수현에게 문자를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였다.문자를 보냈다면, 그리고 수현이 그 문자를 봤다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단 걸 알 수 있었을 텐데.어쩌면 지금쯤...윤아는 불현듯 뭔가 떠오른 듯 눈을 번쩍 뜨더니 주머니를 뒤적였다.없다. 아무것도 없다.윤아는 고개를 돌려 아직 그 자리에 서있는 선우에게 물었다.“내 핸드폰은?”선우는 싱긋 웃더니 옆으로 와 앉았다.“비행기가 착륙 하기 전까진 핸드폰 사용 금지야.”“... 안 쓸 테니까 돌려줘.”“응. 도착한 뒤에 비행에서 내리면 돌려줄게.”윤아는 돌려준다는 그의 말이 썩 믿기진 않았지만 아직 시간은 있으니 그동안 선우가 생각을 바꾸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비행기는 그렇게 한참을 날았고 어느덧 점심때가 되었는지 식사를 준비해 오는 직원들이 보였다. 자가용 비행기라 그런지 내부에 개인 셰프가 있었다. 덕분에 음
선우는 윤아의 접시를 곁눈질하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윤아야, 이제 몇 입 먹었다고 그래.”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우는 윤아가 지금 자기를 밀어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선우는 잠시 입술을 말며 생각하다 뭔가가 떠오른 듯 말했다.“그래, 아무래도 이 요리사가 제대로 만들지 못해서겠지? 괜찮아, 조금 이따 비행기에서 내리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말을 마치고 선우는 사람을 시켜 접시를 치우게 했다. 이윽고 그는 손에 와인 한 잔을 쥐고 걸어왔다.“마실래?”“아니, 괜찮아.”선우는 와인잔을 손에 들고 여유롭게 마셔댔다. 마시고 난 뒤 선우는 조용히 윤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윤아는 그를 보지 않고 있었고 가슴에 손을 올린 채 눈 감고 잠에 든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선우는 그런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다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도착하면 자연스레 그녀를 잘 챙길 것이니. 비행 내내 복잡한 마음을 품고 드디어 카네베에 도착했다.카네베의 시차는 국내와 달라서 도착했을 때 국내는 자정일 시각이었지만 카네베는 밝은 낮이었다.“먼저 공항 근처의 가까운 호텔에 가서 씻고 쉬고 있어. 깨면 그때 별장으로 데려다줄게.”카네베에서의 일정은 모두 사전에 완벽하게 짜였다. 윤아가 비행기에서 제대로 쉬지 못한 것을 고려하지 않았더라면 선우는 바로 윤아를 별장으로 데려갔을 것이다.윤아는 미동 없이 앉아있었다.“이렇게 긴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생각을 못 끝낸 거야? 윤아야, 나 정말 오래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야.”선우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윤아의 팔을 부축했다.“일어나, 내려야지.”윤아는 계속 꿈쩍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선우야, 난 쭉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했어.”“당연하지.”선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후에도 난 계속 너의 친구일 거야. 물론 그와 동시에 가장 친밀한 사람이기도 하고.”여기까지 들은 윤아가 선우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넌 미쳤어.”선우는 팔이 내쳐져도 그저 살짝 고개를 숙
두 아이는 고사하고 윤아 혼자 도망가기도 버거웠다. 게다가 윤아의 핸드폰은 선우한테 있었다.그리고 선우가 자기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건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아마 그녀의 여권이며 신분증을 다 찾아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밥을 할 때 방에 들어가서 뒤진 건가? 윤아는 답답했지만 계속 생각했다.그래서 선우가 그녀 근처로 다가왔을 때, 그녀는 입을 열어 물었다.“내 핸드폰은?”선우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까 질세라 윤아가 덧붙였다.“비행기에서 내리면 핸드폰 줄 거라고 네가 얘기했잖아.”“응.”선우는 약속을 어기지 않고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윤아한테 건넸다. 핸드폰을 가진 윤아는 꿈인가 싶었다. 선우가 순순히 핸드폰을 내놓을 줄은 몰랐던 터였다. 아까 비행기에서 한 말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비록 아주 미세한 효과인 것 같긴 해도.그러나 핸드폰의 전원을 켰을 때 이내 윤아는 뭔가 달라졌음을 발견했다. 핸드폰의 유심칩은 원래 쓰던 그 칩이 아니었다. 원래 쓰던 칩은 진작 바꿔치기 당했고 지금 쓰는 칩은 카베네에서 쓰는 전용 칩이었다.이러면 핸드폰을 돌려주나 안 돌려주나 무슨 다른 점이 있단 말인가. 윤아는 어이없다는 듯 선우를 쳐다봤다.“너 내 허락도 없이 칩을 바꾼 거야?”묻고 난 뒤 윤아 본인도 그런 질문을 한 자신이 우스웠다. 물어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외국은 뭐 허락받고 왔나, 유심칩 하나 바꾼 건 일도 아니었다.“국내 유심칩은 여기서 못 써, 알잖아.”선우는 평소와 같이 덤덤하게 설명했다.“그래서 미리 새 칩을 준비해 둔 거야, 안심하고 써.”윤아는 카톡을 눌러보고 서야 자신이 사용하던 앱들이 전부 새로 다운받아진 걸 알아챘다. 카톡 계정도 새 계정이었고 카톡 연락처는 선우와 우진 둘뿐이었다. 그 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연락처도 말끔히 지워져 핸드폰이 초기화된거나 다름이 없었다. 윤아가 참지 못하고 화를 내려 할 때,“엄마?”마침 두 아이가 기다리는 게 지쳤는지 윤아를 불렀다. 윤아는 두 아이를 돌아보았
호텔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하기까지 윤아는 선우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선우는 윤아를 공항 부근의 호텔에 데려갔다. 말로는 부근이라더니 차로 반 시간 정도 가야 하는 거리였지만 말이다. 윤아가 편히 쉴 수 있게 갖은 준비를 해두고 나서야 선우는 윤아에게 말을 건넸다.“먼저 쉬고 있어, 저녁에 다시 와서...”쾅!선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호텔 방문이 닫혔다. 선우는 잠시 침묵하다 이내 못한 말을 덧붙였다.“데리러 올게.”그러나 방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이 대표님...”옆에서 지켜보던 우진이 망설이듯 선우를 불렀다. 이게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우진의 부름에 선우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 명령했다.“여기 잘 지키고 있어요. 그 어떤 수상한 사람도 들이면 안 되니까.”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이 대표님, 안심하세요.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미가 보인다면 절대 들여보내지 않을 겁니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한숨도 쉬지 못하셨잖아요. 얼른 가서 좀 쉬세요.”선우는 장장 20시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제대로 쉬지 못해 눈에 실핏줄까지 어렸다. 물론 지금 같은 상황에 방에 돌아간다 해도 잘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서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 건 안 하느니만 나았다.“알겠어요, 진 비서.”선우는 짧게 대답하고 자리를 떴다.한편 윤아는 방문을 닫고 안쪽으로 걸어갔다. 테이블 위에는 호텔 측에서 갓 올려온 신선한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지만 두 아이는 조각 케이크를 먹고 난 뒤 나머지 음식들에 손대지 않았다. 아이들은 비행기에서부터 계속 뭔가를 먹으며 애니메이션을 보더니 슬슬 지칠 때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예상대로 두 아이는 이내 소파에서 쓰러져 담요를 껴안고 잠들었다.윤아는 담요를 잘 덮어주고는 다른 편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연락처를 없애면 그녀가 방법이 없을까 봐? 의외로 윤아는 꽤 많은 이들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유독 수현의 전화번호가 기억에 남아있었다. 당시 연락처를 추가하
윤아는 핸드폰을 집어넣고 자리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커튼을 젖히고 밖을 내다본 뒤에야 윤아는 자신이 머무르는 층이 16층이란 걸 알았다.문 앞에 다가가 문을 열고 보니 안절부절못하는 우진과 우락부락해 보이는 두 남자가 문을 지키고 서 있었다. 어디로 가나 도망갈 출구 따위는 없었다. 이는 감금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윤아는 화가 나 우진에 말했다.“나가야겠어요.”우진은 난감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윤아 님,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장시간 비행에 지치셨을 텐데 대표님께서 아이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잠시 나가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비행에 지친 절 휴식하라 하는 건가요, 아니면 감금하는 건가요?”감금이라는 단어를 들은 우진은 재빨리 반박하며 말했다.“윤아 님, 감금이라뇨? 윤아 님, 오는 내내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셨는데 대표님이 윤아 님을 위해서 내린 결정입니다.”“아무튼 저 못 나가게 막겠다는 거죠?”우진은 말이 없었다. 윤아는 그를 앞에 두고 또 다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닫았다.소파로 돌아와 두 아이가 쌔근쌔근 잠 든 모습을 보고 윤아는 차츰 이성을 되찾았다. 분명 뭔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포기할 수 없지, 뭔가 도움을 요청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윤아는 다시 칩을 꽂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호텔 안내데스크 직원한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저편에서 뚜뚜뚜하는 통화연결음이 들려왔다. 윤아는 통화가 연결 된다는 것에 감격했다. 그 말인즉 그저 그녀가 연락하고 싶었던 그 몇 명만 통화가 제한되어 있을 뿐 다른 이에겐 충분히 연락이 가능하단 소리였다. 선우가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칩만 바꿀 수 있다면 그들한테 연락할 수 있을 것이다.사색에 잠겨 있을 무렵, 수화기 너머에서 유창한 영어가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왔다. 윤아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베란다 쪽으로 다가갔다.“안녕하세요, 피자 좀 주문하고 싶은데요.”그녀는 재빠르게 테이블 위의 음식들을 훑고는 피자가 없는 것을 확
감금을 들먹이니 우진 쪽은 또 말이 없었다.“나 지금 먹고 싶어요. 하기 싫으면 하지 마세요. 안 먹으면 말죠 뭐.”말이 끝나고 윤아는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핸드폰이 도청되고 있던 게 맞았던 걸까. 그 말인즉슨 그녀가 어디에 전화를 치든, 무엇을 요구하든 다 소용이 없단 소리였다.윤아는 선우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야만 해야 했다. 무언가 방법이 꼭 있을 것이다....한편 우진은 전화를 끊은 뒤 진퇴양난의 위기에 몰려 어쩔 수 없이 선우의 의견을 물으러 갈 수밖에 없었다. 선우는 윤아의 요구를 들은 뒤 입술을 말며 생각하다 말했다.“윤아 말대로 해주세요.”“그런데 호텔에는...”“호텔에 없으면 밖에도 없습니까? 차이나타운 같은 데라도 찾아봐요. 운전해야 하면 운전해서 갔다 오고 정 안되면 돈을 주고 요리사를 고용하든가요.”“...”“윤아 옆에는 지금 나밖에 없지 않습니까? 내가 요구를 들어주지 못한다면 누가 들어준답니까?”별수 없이 우진은 시키는 대로 했다. 선우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려댔다. 한창 휴식하고 있었던 그는 다시 안경을 썼고 그 깊고 차가운 눈빛이 안경알 뒤로 가려졌다.그저 먹고 싶은 음식일 뿐이니 그 정도는 선우도 자연스레 해줄 수 있었다. 선우는 윤아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결코 자신이 수현보다 못하지 않다는 걸....윤아는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고 두 아이를 안아 침실로 이동했다. 그러고는 아이들에게 이불을 꼭 덮어준 뒤 문을 닫아 거실과 담을 쌓았다. 이윽고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카톡을 눌렀다. 아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혹시 앱으로 전화번호를 검색했을 때 친구 추가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우가 그녀에게 계정을 만들어주며 아마 이 생각은 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윤아 자신도 너무 급한 나머지 이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윤아가 검색창에 전화번호를 입력하려던 찰나에 초인종이 울렸다. 그녀는 잽싸게 핸드폰을 치우고는 가만히 앉아있
갑작스러운 윤아의 분노는 직원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직원은 그대로 제자리에서 굳어져 어쩔 줄을 몰라 했다.사실 가장 많이 놀란 것은 선우였다. 윤아와 알고 지낸 수많은 세월 동안 이렇게 크게 화내는 모습은 선우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이 음식들, 먹을 수 있어. 그렇지만 넌 보고 싶지 않아.”윤아는 선우의 눈을 쳐다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말을 마친 뒤 윤아는 손을 써 선우를 밀며 앞으로 나갔다.윤아가 자기를 보고 싶지 않다고 했을 때, 선우의 마음은 칼로 에는 듯 아파 났다.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선우는 문밖으로 내밀렸고 이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우진이 나는 듯이 달려와 선우를 부축했다.“대표님, 괜찮으십니까?”선우는 평형을 잡으며 말했다.“괜찮아요.”그리고 선우는 우진의 손을 밀어냈다. 두 사람이 이 지경까지 된 걸 보면서 우진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대표님, 지금 후회하십니까? 윤아 님이 아무것도 먹지 않고 대표님을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말을 들은 선우는 오히려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시간이 지나면 윤아도 받아들일 거야.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됐다, 말을 말자.문을 닫은 뒤 윤아의 가슴은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내 몸을 돌려 직원을 향해 웃어 보였다.“물건 가지고 올라와 줘서 고마워요.”직원은 윤아가 선우한테 노발대발하는 모습을 보면서 혹시 불똥이 자기한테 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런데 자길 향해 웃다니, 직원은 살짝 멍하기도, 어색하기도 해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별말씀을, 이게 제 일인걸요.”말을 마치고 직원은 뭔가가 생각난 듯 손에 있던 물건을 건넸다.“이게 카운터에 말씀하신 물건이죠?”“네.”윤아는 안색이 밝아지며 물건을 건네받았다.“고마워요.”“괜찮습니다. 그럼... 시키실 일 없으시면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맛있는 식사 되세요.”윤아는 직원을 바라보며
직원이 자신과 선우를 커플이라 오해하는 것을 보고는 윤아는 귀찮음에 따로 해석하지 않고 아예 순순히 인정하며 말했다.“제가 그 이랑 싸워서 보고 싶지 않아서요. 그러니까 부탁이에요. 저 이를 약 올린다고 생각하고 같이 먹어주세요, 네?”윤아는 다가가 직원의 팔을 흔들며 도와주기를 바랐다. 여직원도 심성이 여린지라 윤아가 이리 부탁하자 결국 이렇게 얘기했다.“그럼, 그럼 매니저님한테 연락해 볼게요. 만약 동의하시면...”“그래요. 만약 동의하지 않으시면 전화 나한테 줘요. 내가 말하게.”여직원은 윤아를 향해 웃어 보이고 이내 전화기를 꺼내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윤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이따가 결과 알려줘요.”“네.”화장실에 들어선 뒤, 윤아는 신속하게 칩을 꺼내 바꿨다. 유심 핀이 없었으나 다행이었던 건 윤아가 아침에 문을 나설 때 화장을 안 했어도 귀걸이를 하고 나와 조금이나마 신경을 쓴 것이었다. 마침 그 귀걸이가 도움이 됐다.칩을 바꿀 때 윤아는 가슴이 계속 콩닥콩닥 뛰어왔다. 칩을 빼냈을 때 그들이 알 수 있는지도 몰랐다. 이 화장실에 카메라 같은 건 없겠지? 여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무의식 간에 사위를 둘러보며 구석구석 살폈다. 침착하려고 애썼으나 떨리는 손이 윤아를 팔아넘겼다.핸드폰이 땅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윤아는 재빠르게 주어 핸드폰을 닦고는 칩을 핸드폰에 꽂아 넣고 전원을 켰다. 마침 현아에게 연락하려던 찰나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고객님, 물어봤습니다.”윤아는 하는 수 없이 모든 물건을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문을 열었다.“동의한대요?”여직원은 볼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매니저님이 고객님이 마주친 문제를 해결하는 것 또한 우리 직원의 의무 중 하나라면서 고객님이 필요로 하시고 팁까지 주신다는데 저더러 남아서 잘 도와드리랍니다.”“고마워요.”윤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그럼 제가 남자 친구분한테 가서 말씀드리고 올게요.”“아니요, 그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