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소영 본인도 약을 먹었었다. 어제 수현을 쫓아 나온 후, 길에서 약효가 나타났고 이때 마침 지나가던 남자와 마주쳤다. 그 남자는 소영이 비틀대는 것을 보자 그녀가 취한 줄 알고 좋은 마음에 집까지 데려다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가 부축하자마자 소영이 매달린 것이다.그 후, 두 사람은 호텔에 가서 하룻밤을 보냈고 소영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늦은 시각이었다.그녀는 부모님께 전화해 이 일을 막으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녀와 하룻밤을 보낸 남자는 수원에서 꽤 유명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금방 해외에서 돌아온 그는 하룻밤을 보낸 것으로 소영에게 책임을 지려고 했다.소영의 부모님은 현재 수원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촌 오빠를 보내 상황을 파악하게 했다. 하지만 소문은 날개라도 돋친 듯 일파만파 퍼졌고 결국 강씨 집안에서도 막기 어려웠다.고작 몇 시간밖에 되지 않는 동안 모든 이들이 소영과 그 남자 사이의 일을 알게 되었다.여러 집안 영애들은 이 소문을 듣고 단톡방에서 소영을 신나게 놀렸다.[강소영 원래 수현 씨 좋아하지 않았어? 전에 수현 씨한테 약혼 밀어붙였다는 소문도 돌았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빨리 다른 남자랑 잤대? 수현 씨한테 버림받고 홧김에 잔 거 아니야?][이 소문 퍼지면 강소영과 수현 씨 더 안 될 것 같애.]민재는 이런 일들을 수현에게 빠짐없이 알려준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어젯밤에 일찍 가셨으니 참 다행입니다. 자칫하면 강소영 씨한테 당할 뻔했어요. 만약 그분과 하룻밤이라도 보내 몸이라도 더러워진다면 윤아 씨 마음을 돌리는 건 더 희망이 없을 거예요.”“몸이라도 더러워진다” 는 민재의 말에 수현은 의식적으로 그를 힐끗 보았다.그러나 민재는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제가 잘못 말했습니까? 대표님께서 몇 년 동안 여자를 만나지 않으신 이유가 윤아 씨 때문 아닙니까?”그러니 이런 표현을 쓴 거엔 아무 문제가 없었다.우리 대표님 사생활 깔끔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얇은 입술을 꾹 다문 수현이 반박하는 대신
그래서 민재는 전에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말들을 윤아와 엮어 실컷 말했다.지금처럼 말이다. 대표님의 그 부분의 능력을 의심했는데 그저 맞고 싶냐는 말로 끝나다니.평상시 같으면 연말 보너스나 뭐 이런 걸 다 손해 보았을 텐데...이때 뭔가 떠오른 민재가 장난기를 삭 거두며 진지하게 물었다.“강소영 씨는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십니까?”민재는 손을 들어 안경을 올렸다.“사실 지금 상황을 보았을 때 대표님께서 가만히 계셔도 강소영 씨는 앞으로 더 이상 대표님을 귀찮게 굴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현재 소문이 자자하고 또 하룻밤을 보낸 그 남자까지 책임지겠다고 나선 걸 보면 아마 강씨 집안의 자원과 인맥에 눈독을 들인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출세하려는 속셈이 아닐까 싶어요.”남자 쪽 집안 형편은 꽤 좋았지만 강씨 집안과는 거리가 멀었다.요 몇 년 동안 강씨 집안에서 진씨 집안의 라인을 타려고 애를 쓰다 보니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뭐 급상승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지금 이런 기회를 빌어 강씨 집안과 연을 맺는 건 곧 진씨 집안의 라인을 타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 남자가 멍청하지 않다면 이런 절호의 기회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이번에 소영은 큰 문제를 일으켰다고 할 수 있었다. 쉽게 빠져나가기 어려울 것이다.이런 일이 생긴 후에도 수현에게 매달릴 시간이 있을까?뒤에 붙은 꼬리를 끊기도 어려운 상황에 지금 소문까지 자자하니 예전처럼 뻔뻔하게 수현에게 매달리지 못할 거라고, 민재는 생각했다. 또한 그는 수현이 자신의 목숨을 구한 소영에게 손을 쓰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이때 수현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부모님께 오늘 빨리 돌아오라고 하세요.”민재는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헐, 부모님까지 부르다니, 사태가 정말 심각한가 봐...민재는 더 이상 농담을 하지 못하고, 재빨리 수현의 분부대로 일을 처리했다.-강 씨네 부부가 서둘러 왔을 때, 소영은 방에 틀어박혀 나올 엄두를 내
여기까지 말한 후, 태훈의 어머니는 안쪽을 힐끗 쳐다봤다.“우리 태훈이가 소영 씨를 다치게 했다고요? 저희는 소영 씨가 우리 아들에게 상처를 줬다고 생각하는데요. 소영 씨가 여자라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손을 대고도 무책임하게 넘어갈 순 없잖아요? 물론, 저희는 개방적인 부모에요. 다 큰 어른인데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겠죠. 만약 두 사람이 서로 눈이 맞아서 만나보겠다고 해도 전 아무런 의견이 없어요.”유지혜의 얼굴엔 시커먼 먹구름이 드리웠다.강씨 집안이 진씨 집안의 라인을 탄 후, 신분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재산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했다. 그 결과 최근 몇 년 동안 유지혜가 다양한 행사에 참여할 때 그녀에게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모두가 그녀를 존중했고 받들었다. 진 사모님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만 제외하면 그녀는 거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은 셈이었다.하지만 지금 별 볼 일 없는 중소기업 집안 여자한테 손가락질이나 당하고 있다니. 심지어 저 집안은 그녀의 소중한 딸애마저 엿보고 있었다.유지혜는 경멸로 가득한 시선으로 태훈의 어머니를 보았다.“너 딴 게 뭐라고 감히 내 앞에서 함부로 지껄여?”태훈의 어머니는 손을 들어 얼굴 옆에 있는 한 가닥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계속해서 미소를 지었다.“강 사모님, 강씨 집안이 진씨 집안의 도움을 받기 전 일이 떠오르네요. 그땐 강 회장님께서 우리 남편을 만나기만 하면 공손하게 인사를 했었죠. 지금 비록 진씨 집안의 라인을 타고 올라가긴 했어도 그건 강씨 집안의 능력이 아니니까 너무 자만하지 마세요. 제 생각엔 두 아이의 소식이 전해진 마당에 우리 두 가족이 서로 평화롭게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희 하씨 집안도 전에 강씨 집안보다 못하지 않았어요. 두 집안이 정말 사돈으로 된다면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일일 겁니다.”“허!”유지혜는 참지 못하고 태훈 어머니의 말에 반박했다.“아름다운 일? 그건 당신 집안의 아름다운 일이겠죠! 어서 우
수현과 결혼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가 다른 여자랑 행복하게 사는 것만 지켜보라는 엄마의 말에 소영은 끝내 대성통곡하며 어젯밤에 벌어졌던 일을 자세히 말했다.원래도 안 좋았던 유지혜의 안색은 소영의 말을 들은 후, 더 시커멓게 변했다.“손을 쓰지 못한 줄 알았는데 지금 들어보니 손을 쓰고도 놓쳤다는 소리야? 넌 일 처리를 도대체 어떻게 하는 애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남자 하나 손에 넣지 못하고 말이야.”“엄마... 저도 이러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수현 씨가 어떻게 알게 된 건지 갑자기 도망갔어요. 어젯밤 분명 심윤아를 찾으러 갔을 거예요. 이제 저 어떡해요? 엄마, 전 하태훈과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제 마음속엔 수현 씨밖에 없다고요!”유지혜는 못난 딸애가 못마땅했다.“걱정하지 마. 널 하태훈과 결혼시키는 일은 없을 거야.”강씨 집안을 위해서라도 소영은 반드시 수현과 결혼해야 했다.유지혜는 입술을 꾹 다물며 모질게 마음먹었다.“이번 일은 반드시 결단을 내려야 해.”“엄마, 제... 제가 뭘 하면 될까요?”-기세가 등등하던 유지혜는 딸애를 만난 후부터 하씨 집안 사람들에게 비로소 예를 갖추었다.“하 사모님, 딸애가 지금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예요. 그러니 아이들 문제를 의논할 좋은 시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랑 애 아빠는 지금 소영이를 집에 데려가 자초지종을 잘 물어볼 생각이에요.”태훈의 어머니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강씨 집안과 사돈을 맺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녀는 유지혜의 태도가 꽤 마음에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우리 태훈이도 어제 처음으로 그런 일을 겪어서 그런지 마음이 평온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저희도 돌아가서 잘 물어봐야겠어요. 음, 이러죠. 내일에 다시 만날까요?”유지혜는 태훈을 쳐다보았다. 평온하지 않기는커녕, 얼굴이 화사한 게 당장이라도 예쁜 신부를 맞이할 모습이었다.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하마터면 저 뻔뻔한 녀석의 뺨을 후려칠 뻔했다.그러나 원하는 걸 성사시키기 위해 그녀
그러자 윤아는 회사가 제대로 성장하기 전에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며 민우의 제안을 거절했다.“쯧쯧.”민우는 반 장난 삼아 말했다.“그래서 저한테서도 절약해요? 대표님, 너무 하시네요.”윤아는 웃으며 말했다.“음, 앞으로 회사가 잘되면 오 매니저의 넓은 아량을 잊지 않을게요.”“예, 회사가 하루빨리 성대히 발전할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겉으로는 농담도 하며 서글서글하게 굴었지만 회의할 때 윤아는 회사 대표답게 팩트를 콕 집어 날카로운 의견을 여러 개 제기했었다. 하지만 틈만 나면 정신을 딴 데 팔아서 골치가 아팠다. 첫 번째는 괜찮았는데 여러 번 그러니 직원들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회의가 끝난 후, 민우는 그녀에게 물었다.“대표님, 왜 그러세요? 회의 내내 딴 생각 했잖아요.”윤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대표님, 그러시지 말고 휴가받는 게 어떠세요?”휴가?윤아는 허탈하게 웃었다. “오 매니저가 입사한 후부터 나 꽤 많이 쉬었어요. 더 이상 쉬면 회사는 문을 닫을 지도 몰라요.”“에이, 어차피 대표님이신데 뭐 어때요?”“대표는 더더욱 직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죠. 모든 직위의 사람들이 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회사는 금방 망해요.”“그건 그렇지만, 대표님께서 사적인 일을 잘 처리하셔야 모든 정력을 회사 일에 쏟을 수 있지 않겠어요?”윤아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민우도 곧 자기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윤아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녀 본인도 사적인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 일어난 일이 그녀와 또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그녀는 단지 수현의 대처 방안을 보고 싶은 사람일 뿐이었다. 어떻게 처리할지, 잘 처리할지, 그건 모두 수현 혼자만의 일이었다.수현 본인조차도 결과를 내놓지 않았는데 그녀가 먼저 급해 할 필요가 없었다.계속 조급해한다면, 정말 완전히 지게 되는 거다.생각을 정리한 윤아는 더 이상 이 일에 얽매이지 않고 업무에 열중했다.-그날 저녁.강씨 집안이
일부 영애들이 이 소식을 듣고 단체 채팅방에서 열렬한 토론을 벌였다.[자살에 실패하고 제때 치료했다고? 정말 자살하고 싶은 건지 누가 알겠어.][가련한 척하며 아니라고 발뺌하는 거겠지. 잔 거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진씨 집안에 시집가겠어?][진 대표가 전처랑 이혼한 지 이렇게 오래됐는데, 강소영과 결혼할 마음이 있었다면 진작 했겠지 왜 지금까지 기다렸을까? 만약 내가 강소영이라면 하루 빨리 진 대표를 포기하고 은인 대접만 받으면서 날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 행복하게 살겠어.][그런데 상대는 진수현이잖아. 그런 남자와 평생을 함께 살 기회가 있는데 다른 남자가 눈에 들어오겠어?]이 말이 나온 후 모두 침묵했다. 다들 이미 묵인한 것 같았다.하지만 이때 누가 이렇게 말했다.[강소영이 아무리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써도 소용이 없어. 찌라시가 그러던데, 윤아가 귀국했다고.]모두들 깜짝 놀랐다.[누구? 심윤아? 진 대표 전처가 귀국했다고?][응. 작은 회사를 차렸는데 진씨 그룹도 그 회사에 투자했다지 뭐야. 사촌 여동생의 대학 동창생이 얼마 전에 그 회사에 입사해서 알게 됐어.][회사를 차리자마자 진씨 그룹이 투자를 했다고? 그 두 사람 아직도 뭐가 있는 거 아니야?][진 대표가 좋아했던 사람은 분명히 심윤아였어. 그렇지 않다면 왜 결혼했겠어? 게다가 그 둘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잖아. 강소영이 진 대표를 구하면서 우세를 차지했어도 심윤아가 떠난 5년 동안 진 대표는 강소영과 만나지 않았잖아. 이제 심윤아가 돌아왔으니 그건 더더욱 불가능하지.]윤아의 귀국 소식에 모두가 궁금해했고, 대화에 참여한 사람도 기존 2명에서 3명으로 바뀌었다.같은 시각 병실에서.소영은 자신의 가느다란 손목에 감긴 붕대를 들여다본 후, 고개를 들어 병실 안에 있던 엄마를 바라보았다.“엄마, 어떻게 됐어요? 수현 씨가 전화를 받았어요?”열 몇 통이 넘는 전화를 걸어도 수현이 받지 않으니 유지혜의 안색은 썩을 대로 썩었다.여론으로 소식을
호통을 치는 아내를 보자, 강학철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풀이 죽어 병실을 떠났다.그가 떠난 후, 소영은 눈을 내리깔며 불쌍하게 말했다. “엄마, 나 이제부터 아빠 말 들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수현 씨 그만 귀찮게 굴어야 하나 봐요.”“네 아빠 말 듣지 마. 저 인간은 남자 마음을 전혀 몰라. 소영아, 진 대표를 잡는 게 너한텐 얼마나 어려운 기회인지 잘 알잖니. 아무도 진 대표를 구하지 못했어. 오직 너만, 너만 그의 목숨을 구했으니, 진 대표에게 넌 언제나 가장 특별한 존재일 거야. 이제 진 대표가 온 후에 반드시 결혼해 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목숨으로 협박하는 거야.”“그런데... 통할까요?”유지혜는 서늘하게 웃었다.“배은망덕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면 들을 거란다.”소영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엄마 말만 들으면 돼. 이렇게 한 번의 기회에 진 대표랑 결혼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나중에 진 대표가 너한테 아무리 화가 나 하더라도 결혼한 다음 잘 달래면 되잖니. 남자는 다 거기서 거기란다. 네가 진 대표 몸만 잘 다뤄준다면 나중에 자기를 협박한 일은 다 까먹게 돼 있어.”유지혜의 말에 소영은 가슴이 설렜다. 현실은 전혀 생각지도 않은 채 벌써부터 두 사람의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기 시작했다.안타깝게도 유지혜가 아무리 연락해도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어느덧 모녀는 병실에서 점차 어둠을 느꼈다.늦은 시간, 밖에서 지키던 강학철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진 씨 부부가 왔다고 했다.이 말에 유지혜는 눈을 번쩍 떴다.“수현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왔다고요? 모두 해외에 있지 않았어요?”“그랬지. 오늘 소영이에게 일이 생긴 걸 보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왔다고 하더라고.”강학철이 설명했다.그들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달려왔다는 말에 유지혜는 순간 희망으로 불타오르면서 얼른 모시라고 했다. 진 씨 부부는 곧 병실로 모셔졌다.소영은 이선희를 보자마자 울면서 그녀의 품에 안기려고 했다.“아주머니.”그
수현이 진씨 부부를 불렀다는 소식을 들은 소영은 되려 조금 걱정되었다.설마 아침부터 그녀의 일을 알았단 말인가?하지만 수현은 지금 그녀를 만나기 싫어했고, 또 이 일이 있은 후 지금까지 그는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심지어 진 씨 부부 마저 급히 한국으로 불러들인 것으로 보아 그녀가 자살시도한 일을 처리하려는 대신 어제저녁 일을 처리하려는 듯싶었다.이 가능성을 생각하자 소영은 당황해서 이선희를 끌어안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제발 자신을 믿어 달라고 했다.이선희는 병실에서 한참 동안 그녀를 위로한 후에야 떠났다.병원을 나선 진 씨 부부는 차에 탔다.“어쩌다 이렇게 됐어요?”진태범은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이선희가 차에 오르자마자 물었다. 이선희는 병원에서 수심에 찬 표정을 순식간에 바꾸더니 엄숙해졌다. “일이 잘못된 것 같아요. 도리상 이렇게 큰일이 일어났는데 아들이 소영이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병문안 정도는 왔어야 해요. 그런데 아까 병실에 있을 때 현이가 있는 걸 못 봤어요.”아내의 말에 진태범도 눈을 가늘게 떴다.“이상해요. 현이가 우리를 부른 게 소영에 관한 일이 아닐 것 같아요.”이선희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먼저 가죠. 우리를 왜 불렀는지, 도대체 뭘 하려는지 알야겠어요.”거실.진 씨 부부는 나란히 소파에 앉았고 그들 앞엔 수현이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차가웠고, 꾹 다문 얇은 입술은 서리가 낀 듯했다.수현이 그 말을 내뱉은 순간부터 분위기는 경직되었다.“내일 강소영과 철저히 관계를 끊겠습니다.”거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변했다.그러나 진씨 부부의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마치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처럼.다만 한참 동안 묵묵히 있던 진태범이 먼저 입을 열었다. “관계를 끊은 다음에 안 좋은 소리를 들을 각오는 했고?”이 말에 수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가소롭다는 듯한 웃음을 보였다.아들의 마음을 엄마인 이선희가 어찌 모르겠나. 그녀는 아들의 표정을 본 순간 그가 이미 마음의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