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는 말문이 막혔다.“난...”“설마 아이들의 친아빠라서 집안으로 들였다고 핑계 댈 거는 아니지?”윤아는 할말이 없었다. 예상 밖으로 현아가 자신이 뒤에 말하려던 말을 단번에 알아맞혔기 때문이다.하여 그저 입술만 달싹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대답하지 않는 걸 보니 맞다는 뜻이네? 아이들의 친아빠라면 더욱 도와주면 안 되지. 전에 너한테서 아이들을 뺏어갈까 봐 항상 걱정했잖아? 만약 그 사람이 진짜 소영의 꾀에 넘어갔더라면 두 사람은 이제 한 쌍이 되는 거고 거기에 아이까지 낳으면 수현은 이제 아빠가 되는 몸이고 그럼 더 이상 너한테서 아이를 뺏어갈 일은 없잖아.”윤아는 현아가 한 모든 말이 다 맞기에 대꾸할 수 없었다.만약 오늘 밤 수현이 진짜 소영의 꾀에 넘어갔더라면 두 사람은 지금쯤...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기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윤이와 훈이를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왜 그를 도와줬을까?분명히 처음에 그를 문전박대까지 했는데 왜 후회했을까. 그러다 마음 약해져서 다시 문을 열어 그를 집안으로 들이고 또...생각하다가 윤아는 자기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처음에 문을 열어줬을 때까지는 문제없었는데 두 번째부터...이건 분명 그녀의 탓이다.수현이 이 일로 오해가 생긴다면 분명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할말이 없지?”현아가 살짝 웃으며 물었다.“아직 수현이를 좋아하네. 아니면 왜 선우 씨한테는 이런 여지조차 주지 않는데?”윤아가 반박했다.“난 그저 너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을 뿐이지 너더러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해석해 달라는 게 아니야.”“겸사겸사 이 기회에 자기 마음도 알게 되는 거지. 우리 자매님을 대변해서 해석해 주면 좋지 뭐,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 낫잖아.”“무슨 후회? 난 후회하지 않아.”“그래? 후회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그 사람을 내쫓아, 아직 기회가 있어. 어쩌면 그가 단념할 수도 있잖아.”“내가 그렇게 모질게 대한다고 그가 과연 단념할 사람일까?”“하긴.”
윤아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앞에 했던 말은 그렇다 쳐도 뒤에 말은 대체 무슨 뜻으로 내뱉은 말일까?“내 방에서 자겠다고? 지금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아?”윤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를 보고 말을 이었다.“설마 내가 그 계약에 사인을 했다 해서 우리 사이가 예전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한건 아니겠지?”“아니.”수현은 눈을 내리깔고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아까 찬물에 너무 오랫동안 몸을 담근 데다가 밖이 너무 추워서.”“추우면 이불을 덮으면 되잖아?”말을 마친 윤아는 몸을 돌려 이불을 꺼내려고 수납장을 열어보았으나 이미 텅텅 비어있었다.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그녀는 이불 한 세트를 더 준비해 뒀는데 그 이불은 이미 수현에게 줬다. 만약 그 이불마저 모자란거면...윤아는 다시 몸을 돌려 자기 침대 위의 이불을 그에게 주려고 했다.“이거 가져가. 이불 두 개면 충분하지? 지금 세시 넘었어. 또다시 찾아와서 내 휴식을 방해하면 그때는 진짜 내쫓아버릴 거야.”수현은 그녀가 자기 침대 위의 이불을 끌어안고 오는 모습을 보았으나 받지 않았다.“아니야, 됐어.”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윤아는 할말을 잃었다.“...”‘싫으면 말아!’더 이상 신경 쓰기 귀찮았다.윤아는 문을 닫은 뒤 다시 침대에 돌아와 이불을 뒤덮은 채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 했다.허나 눈을 감은 지 십분도 넘었는데 그녀의 머릿속에는 자꾸만 수현이 춥다고 했던 말이 맴돌았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춥다고 한 말이 아예 신빙성이 없지는 않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찬물 샤워를 한데다가 최근에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거기에 이렇게 한겨울에 그런 추위를 겪었으니 어쩌면 위병이 다시 발작할지도 모른다.게다가 방금 윤아를 찾아온 모습은 거의 서있기도 힘들 정도로 허약해 보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윤아는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이번 한 번뿐이고 마지막이다. 내일 그를 보내고, 나중에 그가 다시 자기 앞에서 불쌍한척해도 모른 체 할 것이다. 윤아는 문을
수현은 그녀의 하얀 팔목을 잡고 말했다.“내가 잘할게.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줄게. 목숨도 바칠 수 있어. 응?”하지만 윤아는 그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그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 온도도 서서히 내려가는 것 같은데 왜 그의 입에서 생명 문학까지 나오지?“안 돼.”윤아는 그를 대신해서 알코올로 몸을 닦아주며 무표정한 얼굴로 거절했다.“손들고 뒤돌아 누워. 등도 닦아 줄게.”만약 수현이 깨어나지 않았다면 아마 윤아가 자기 절로 닦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왕 그가 깨어났으니 체력도 아낄 겸 그더러 뒤돌게 했다.결국 한참 동안 기다려도 꿈쩍하지도 않는 수현을 보고 윤아가 다시 재촉했다.“빨리.”가만히 누워있던 수현은 그제야 팔을 들었다. 윤아는 그가 돌아눕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고 있던 팔로 그녀의 목을 휘감더니 그대로 자기 품에 안았다. “악!”윤아는 깜짝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질렀고 동시에 수건을 바닥에 떨어뜨리면서 그의 품에 엎어졌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턱을 잡았는데 서늘한 기운이 순식간에 그녀를 덮쳐왔다.마침 두 사람의 이마가 서로 맞닿게 되었는데 한껏 다정해 보이기도 했다.“왜 안 돼?”남자는 뜨거운 숨을 그녀의 얼굴에 뿜어댔다.입술과 입술이 거의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두 사람의 숨결이 뒤엉키면서 분위기도 같이 야릇해졌다.윤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이런 분위기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해 뒤로 물러서려 했는데 남자는 떨어지기 싫어 다시 거리를 좁혔다.그의 숨결이 다시 가까워지자 윤아는 무의식적으로 피했다.하지만 행동이 너무 느린 탓에 부드러운 입술이 남자로 인해 그대로 포개졌다.윤아의 호흡이 순간 뒤틀어졌다.그녀가 움직이기 전에 이미 재미를 본 수현은 그녀의 뒤통수를 감싸더니 놀라서 벌겋게 달아오른 그녀의 입술을 사납게 삼켰다.“웁...”윤아는 그를 밀쳐내려고 손을 뻗었는데 마침 손이 그의 가슴 쪽에 닿자 수현은 짜릿함을 느꼈는지 뒤통수를 잡고 있던 손을 그녀의 목 쪽으로 옮기면서 엄지손
키스하자마자 쓰러진다고?입술엔 아직도 그의 온기가 남아있는 듯했고 심지어 조금 부어오르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까 이런 일을 한 인간은 지금 소파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마음에 안 들어...윤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수현의 준수한 얼굴을 훑어보았다.아까는 멀쩡하더니 밀자마자 쓰러진다고?윤아는 손을 뻗어 수현의 얼굴을 툭툭 쳤다.“진수현, 쓰러진 척 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그러나 수현은 조금의 반응도 없었다. 이를 본 윤아가 그의 이마를 만져보았다. 또 열이 나기 시작했다.설마 아까 너무 격렬하게 키스해서 그런가...방금 전, 정욕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던 수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갑자기 쓰러지지만 않았어도 그녀를 깔끔하게 먹어 치웠을 게 뻔했다.윤아는 입술을 꼭 깨물며 속으로 머리채를 잡았다.어쩌다가 순순히 따라갔지? 어흑,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오...“너 설마 아직도 진수현 사랑하는 거야?”현아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사랑... 순간,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윤아.이 때문에 수도 없이 아팠었다.“5년이나 지났어.”아픔을 남겨줬던 곳을 떠나면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활달하게 살 줄 알았다. 가시로 가득했던 사랑을 싹둑 자르고, 잊고 살 수 있으리라 여겼으니까.“정말 현아 말대로 나 아직... 진수현을 사랑하고 있나...”그러나 사랑은 인간이 모르는 곳에서 뿌리를 두고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우매한 인간을 간간이 비웃으며 존재를 드러내면서.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윤아의 안색은 서늘하게 변했다.-이튿날.“고독현 아저씨, 고독현 아저씨.”아이들의 부름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정신을 차린 수현. 눈을 뜨자마자 앞에 엎드린 작은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지금 작은 손으로 그를 힘껏 흔들고 있었다.수현이 깬 것을 보자, 아이는 활짝 웃었다.“아저씨, 드디어 깨셨네요!”원래 머리가 깨질 듯 아파 기분이 좋지 않았던 수현은 아이의 맑은 웃음과 귀여운 소리를 듣자 신기하리만치 많이 나아진 것
다만 일부 화면만 눈앞에 선명히 나타났다.예를 들어서 윤아가 그를 문밖에 가둔 장면과 나중에 문을 열고 그를 들여보낸 장면.윤아가 침대에서 이불을 안고 와 그에게 건넸지만 그가 받지 않았던 장면.아, 그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윤아의 이마에 입을 맞추던 장면과... 두 사람의 몸이 엉킨 채 키스하던 장면도 떠올랐다.격렬한 입맞춤이었다...이런 화면이 수현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빙글빙글 돌면서 마음을 점점 불타오르게 했다.수현은 천천히 손을 들어 입술을 만지작거렸다.수현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가며 예쁜 각도를 만들었다. 어젯밤 그는 느꼈다. 키스할 때 윤아가 호응해 줬다는 것을.윤아는 어쩌면 그를 그렇게 싫어하지 않은 걸 수도 있다.이런 생각만 해도 수현은 기분이 좋아졌고 눈앞이 훤히 밝아왔다. 전에 지끈지끈 그를 괴롭히던 두통도, 돌멩이가 짓누르듯 가슴이 답답하던 증세도 지금은 전부 사라졌다.“심윤아, 심공주...”속삭이듯 그녀의 이름을 불러본다.전에 수현은 이미 마음을 먹었다. 윤아가 조금이라도 그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면, 그게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 정도라고 해도 그는 영원히 손을 놓지 않겠다고 말이다.그 시기가 바로 지금이었다. 수현은 확실히 윤아에게서 오매불망 기다리던 감정 표현을 느꼈다.“콜록콜록.”약효가 떨어지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또 어제 찬 물로 샤워까지 하는 바람에 몸이 더 불편해진 수현이 연이어 기침을 했다. 하지만 어젯밤 일만 떠올리면 꿀을 듬뿍 먹은 듯 진한 달콤함이 밀려왔다. 신기하게도 안 좋은 몸 상태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듯했다.구름에 가려졌었던 무언가가 서서히 걷히며 형체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답을 얻지 못했던 물음에 진지하게 입을 열 용기가 생겼다.남녀 사이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굳이 기나긴 해석으로 풀이할 필요가 있을까. 어릴 때부터 윤아와 줄곧 함께 지내서 그런지 그는 습관적으로 그녀의 희로애락을 자신의 감정으로 여겼다. 윤아가 기쁘면 따라서 웃었고 그녀가 슬프면 곁
수현의 행동에 윤아는 눈썹을 찌푸렸다.“너 지금 뭐 하는 거야?”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윤아 쪽을 향해 두 걸음 다가갔다. 이를 본 윤아가 연 걸음 후퇴했다.수현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더 밀어붙였다. 허리가 현관의 수납장에 닿았을 때 수현과 거리를 유지하려던 윤아는 어쩔 수 없이 몸을 뒤로 젖혔다. 이때 큰 손이 그녀의 허리춤을 타고 올라갔다. 움찔하며 시선을 올리니 지그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현과 눈을 마주쳤다.“네가 날 붙잡지 않으니 남을 수밖에.”허!뻔뻔한 인간!이때 그녀의 허리에 조용히 죽어 있던 큰 손이 느리게 위로 올라갔다.“너어...!”윤아는 큰 적이라도 만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지금 뭐 하는 거야?”수현은 윤아의 목덜미 부근에 고개를 푹 숙이며 가볍게 웃었다. 뜨거운 열기가 목에 닿자 윤아는 온몸에 전율이 흐르듯 간지러웠다.“심 공주.”수현이 낮은 소리로 윤아의 애칭을 불렀다.“예전에 몰랐던 일을 알게 돼서 말이야. 그래서 가지 않을 거야.”가지 않는 거로 과연 끝날까. 백배 천배 더 매달리리라.말이 끝난 후, 수현은 윤아의 몸에 두었던 손을 내렸다.“가자. 아침 먹으러.”주방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는 수현과 반대로 아까 그 자리에 혼자 남은 윤아는 멍해 있었다.무슨 뜻이야? 예전에 몰랐던 일은 또 뭐고?진수현 저 인간, 도대체 뭘 알아챘다는 거야?아 진짜, 심란해 미치겠어!윤아가 입술을 꾹 다물며 봉지를 들고 수현의 뒤를 따라가려던 찰나, 몇 걸음 나아갔던 수현이 갑자기 몸을 돌려 그녀의 손에서 봉지를 낚아채 갔다.“내가 할게.”반항할 틈도 없이 봉지는 이미 강제적으로 수현의 손에 들어갔다.그는 봉지 안에 든 아침을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았다. 윤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수현이 음식을 다 차려 놓은 후, 뭔가 떠오른 윤아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안타깝게도 이미 늦은 상태였다.테이블에 놓인 사 인분의 아침밥을 보며 수현이 유쾌하다는 듯 눈썹을 올렸다.
중요한 일을 하러 가는 건가?윤아는 곧 이 일을 통해 어젯밤 수현이 속았던 일이 떠올랐다.설마 강소영을 찾아가서 복수라도 하려는 건가?마음 약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생명의 은인에게 손을 쓸 수 있을지도 문제였다.전에 소영이 자신을 도왔던 일 때문에 윤아는 꼬박 5년 동안 신세를 갚았고 또 소영이 요구한 여러 가지 조건도 응해주었다. 그러니 수현의 목숨을 구했던 일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다 갚을 수 있을까.신세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목숨을 구한 은혜는 더 했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한 그림자가 갑자기 그녀의 앞에 걸어오더니 그녀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허리를 굽혀 그녀의 하얀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윤이는 부끄러운 듯 얼른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감쌌고 훈이도 자리에 멍해 있었다.하룻밤 사이에 엄마와 아저씨 사이의 진도가 이렇게 되다니.훈이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고 실은 윤아 본인도 무척이나 놀랐다. 헐.이 인간 진짜 미쳤나 봐. 어젯밤 나한테 키스하자마자 쓰러진 것도 모자라 이젠 아이들 앞에서까지 뽀뽀하다니...하느님이시여, 저 인간이 돌았나요, 아니면 제가 돌았나요...아쉬움이 듬뿍 자리 잡은 마음을 이기지 못한 수현이 입을 맞추고 물러나려던 중, 다시 그녀의 이마를 가볍게 머금었다. 그리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줘.”평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윤아가 자신을 밀어내기 전에 얼른 손을 놓고 빠른 걸음으로 줄행랑 치는 수현.쾅!문이 닫힌 후, 윤아는 두 아이를 보며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반면, 윤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기쁘게 물었다.“엄마, 정말 고독현 아저씨랑 결혼할 거예요? 그럼 앞으로 아저씨가 우리 아빠 하는 거예요?”“아니, 그런 게 아니야. 엄마가 잘 설명해 줄게.”“하지만 어젯밤에 아저씨께서 우리 집에서 잤잖아요. 아저씨를 우리 아빠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왜 집에서 자게 했어요?”윤아는 주저하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말하는 걸 잊었다면 괜찮았다. 그런데 엄마가 속상해할까 봐 말하지 않았다는 딸애의 말에 윤아는 더 가슴이 아팠다.마음에 품고 사랑으로 애지중지 키운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렇게 안 좋은 소리를 듣고도 그녀를 일 순위에 두고 그녀의 기분부터 챙겼다.마음이 저릿하며 코끝이 찡해 났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시야가 흐릿해졌다.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힌 윤아에 비해 딸애는 동경으로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하지만 엄마, 이제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에겐 곧 아빠가 생기니까요! 나중에 선생님께서 윤이랑 오빠에 관한 나쁜 얘기를 할 때 윤이가 아빠한테 혼내 주라고 할게요.”나이가 어리다 보니 딸애는 생각이 단순했다.사실 윤아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혼자 그들을 키우는 엄마를 많이 안쓰러워한다는 것을. 사소한 일로 엄마를 힘들게, 속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늘 어른스럽게 행동한다는 것을. 그래서 이런 일도 그녀에게 숨겼던 것이다.이만한 나이에도 이러는데 앞으론?기나긴 성장의 과정에서 또 다시 이런 일을 겪게 될 때마다 엄마를 생각하고 엄마를 위해 이 서러움을 꾹꾹 내리 삼켜야 한단 말인가.윤아 본인도 유년 시절에 이런 억울함을 겪었었다. 다만 그때 사람들이 공격한 대상은 그녀의 엄마였다. 매번 수현이 곁에서 지켜 주긴 했지만 밤이 깊어질 때마다 그녀는 사람들이 떠들고 다니는 말이 대단히 신경 쓰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는 응어리로 가슴 속에 푹 묻혀 있었다.지금... 그녀가 겪었던 아픔을 아이들도 겪게 해야 한단 말인가...이런 생각에 윤아는 원래 하려던 말을 모두 내리 삼켰다.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볼 생각이다. 수현이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관찰해본 후 결정을 내릴 것이다. 만약 제대로, 깔끔하게 처리하기만 한다면 아이들이 그를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허락하겠다고, 윤아는 다짐했다.어찌 됐든 수현의 핏줄이었다. 그리고 현재 수현이 아이들에게 한 일을 보면 그가 정말 진심으로 아이들을 중시하고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