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진심 어린 말투와 담담한 눈빛은 마치 모든 걸 내려놓은 듯 평온했다.윤아와 그를 축복해 준다는 말에 수현은 경계를 풀고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고마워.”소영은 숨이 턱 막혀왔다. 수현은 어떻게 하면 그녀를 가장 아프게 할 지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그럼 이제 합의서 쓸까?”수현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사람 시켜서 내일 줄게.”“아니.”소영이 단호히 머리를 저었다.“오늘 밤이어야 해. 무려 백 퍼센트 주식인데 내일 네가 후회하면 어떡해.”오늘밤이 지나면 다시는 수현과 단둘이 있을 기회가 없다. 그것도 단둘이 술을 마실 수 있는 기회는 더더욱.이 기회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주식도 손에 얻고 오늘밤 잠자리로 수현의 아이까지 얻을 것이다.소영은 지금이 마침 가임기다. 그러니 그녀는 하늘도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처지를 가엽게 여기어 하늘이 그녀를 돕는다고 말이다.오늘 일이 순조롭게만 된다면 소영은 이제 수현의 아이를 임신한데다가 어릴 적 그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기까지 된 셈이다. 그때가 되면 윤아 따위는 가볍게 밀어낼 수 있겠지.소영은 담담한 얼굴 뒤로 바쁘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수현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몸을 일으켜 변호사에게 연락했다.수현이 나가자 소영은 재빨리 그 틈을 타 가방 속에서 엄마가 준 물건을 꺼내 수현의 술잔에 넣었다. 그리고 술병을 집어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소영은 가루약과 술이 잘 섞이도록 잔을 흔들었다.난생처음 이런 짓을 벌이는 그녀는 지금 극도의 긴장 상태였다. 미친듯 쿵쾅대는 심장 소리는 어느새 머릿속까지 가득 울려 퍼져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소영은 태어나서 한 번도 자기 자신이 이토록 비열해 보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원하는 걸 얻으려면 어쩔 수 없지.‘그러게 누가 나를 선택하지 말라고 했나. 이건 내 탓이 아니야. 난 그저 수현 씨를 너무 사랑하는 것뿐이라고.’진수현과 진 씨 그룹 둘 다 가질 거다.긴장한 탓인지 술잔을 흔드는 소영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바
소영은 곧바로 테이블 위의 술잔을 집어 들더니 단숨에 남은 술을 몽땅 마셔버렸다. 그리고 수현이 보는 앞에서 빈 잔에 다시 술을 채워 넣었다.소영은 술잔을 손에 들고 천천히 흔들었다.“예전에 너 살려준 걸 봐서라도 마지막으로 내 체면 좀 살려줘. 우리 웃으며 헤어지자. 응?”수현의 얇은 입술은 가로로 굳게 닫혀 있었고 눈빛은 서늘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의 부탁대로 다가가 앉았다.“같이 마셔줘야 웃으면서 헤어지는 거야? 네게 준 두 배의 주식으로는 안 돼?”소영은 처연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수현 씨가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어. 하지만 내 마음은 항상 진심이었어. 설령 수현 씨가 회사 대표가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대도 난 좋아했을 거야. 내가 왜 지분 50퍼센트를 달라고 한 줄 알아? 수현 씨는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인 걸 알아서야. 내가 그런 요구를 제기하지 않았으면 수현 씨는 내가 정말 이 관계를 끝낼 결심을 했다는 걸 믿지 않았을 거야. 차라리 잘 됐어. 내가 이 회사 지분을 가져가면 수현 씨도 이제 더 이상 나한테 갚을 거 없는 거야.”말을 마친 소영은 술잔을 들었다.“여기까지 오는 데 참 오래 걸렸네. 한잔 들어. 네 행복을 찾길 진심으로 응원해.”그녀는 짧은 축복과 함께 잔을 들어 올렸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갈수록 무겁게 느껴지는 술의 무게에 손이 저렸지만 팔을 내리지 않고 버텨냈다.그렇게 한참 동안의 정적과 함께 이렇게 계획이 실패하나 싶을 때 드디어 수현이 잔을 들어 그녀와 술잔을 부딪쳤다. 그는 내키지 않는 듯 몇 모금만 마신 후 말했다.“이 정도면 됐어?”잔이 다시 테이블에 놓이며 가벼운 소리를 냈다.소영은 술이 그의 목을 타고 내려가는 걸 확인하자 갑자기 미치게 떨려왔다. 심장 소리는 어느새 아찔하게 온몸에 울려 퍼졌고 잔을 쥔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마신 거지?드디어 성공이다!그저 몇 모금일 뿐이지만 그럴 것을 대비해 소영은 약을 충분히 챙겨왔다.한 모금만 마셔도 바로 약효가 발효되게 말
소영은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수현이 보이지 않아 심장이 철렁했다. 그녀는 수현이 다른 사람이라도 찾아간 줄 알고 기겁하며 여기저기 그를 찾아다녔다.물론 소영이 가장 걱정하는 상황은 그가 윤아를 찾아가는 거였다.만약 수현이 윤아를 찾아간다면 지금까지 그녀가 한 일은 결국 남 좋은 노릇이 아닌가.그 꼴은 절대 못 보지.소영은 수현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말했다.“밤바람이 찬데 옷도 얇게 입고 왜 나와 있어. 들어가자.”소영이 다가오자 수현은 의식적으로 뒤로 두 걸음 물러나며 그녀와 거리를 유지했다.수현의 짙은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소영이 자꾸 다가와서 그런 건지 민재가 한참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아서인진 모르지만 이상하게 짜증이 났다. 게다가 몸도 비정상적으로 점점 뜨거워 나는 것 같았다.서늘한 밤바람이 매섭게 불어와 그의 체온을 앗아갔지만 수현은 왜인지 이 추위가 오히려 기분 좋았다.그는 이상한 느낌에 신경을 곤두세웠다.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소영을 바라보던 수현은 문득 방금 먹었던 술이 떠올랐다.어지간해선 눈앞의 사람을, 그것도 생명의 은인을 의심하고 싶진 않았는데 온몸을 휘감는 뜨거운 기운이 그에게 오늘밤 있었던 모든 일들이 어딘가 심상치 않음을 말해주고 있었다.막무가내로 찾아와서 떠날 거라질 않나, 그러다 갑자기 주식을 달라질 않나, 술을 마시자고 하질 않나. 수현은 소영의 모든 행동이 께름칙했지만 했지만 결국 그녀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수현은 바깥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그 모습에 소영도 깜짝 놀라 서둘러 그의 뒤를 쫓았다.“수현 씨, 왜 그래?”그러자 수현의 발걸음이 뚝 끊기더니 서늘한 눈빛으로 소영을 노려보며 말했다.“네 생각엔?”그녀의 모든 걸 꿰뚫어 보는듯한 싸늘한 눈빛에 소영은 순간 소름이 돋아 황급히 눈을 피하며 말했다.“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그러나 수현은 그녀를 향해 냉소를 터뜨린 후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나버렸다.소영은 다급히 그를 뒤쫓았으나 수현의 걸음이 너무 빨라 따
윤아는 어쩔 수 없이 펜을 내려놓고 현관 쪽으로 갔다.혼자 사는 집이라 늘 조심했고, 입구에도 CCTV와 도어 뷰어를 설치했다.현관에 도착한 그녀는 먼저 인터폰으로 누구인지 확인했다.그리고 화면에 비친 사람을 보고 윤아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진수현?’‘저 사람이 왜?’‘한밤중에 왜 여기까지 온 거지?’낯선 사람은 아니지만 윤아는 수현이 무슨 짓을 할지 걱정되었고, 지금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면 문을 열어주고 싶지 않았다.만약 정말 중요하게 할 말이 있다면 전화하면 되는데.하지만...곧 합의하겠다고 약속했던 일과 앞으로도 두 아이와 만날 기회가 많은 걸 고려해 보았다.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더 이상...윤아는 고민 끝에 한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문을 열어줬다.수현은 윤아네 집 문 앞에서 오랫동안 기다렸고 문을 열어주기 전에 그는 자기 발을 내려다보았다.이미 늦은 시간이기도 했고 여기에 올 때도 그녀가 문을 열어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하여 그저 벨을 한번 눌러보고 그 뒤에 일은 운에 맡겨보기로 했다.만약 소리를 못 들었다고 해도 상관없다.수현은 한참 동안 기다렸지만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아 실망감을 안고 떠나려고 하던 그때, 갑자기 문이 열렸다.문이 열린 순간, 수현은 믿어지지 않다는 눈빛으로 윤아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는데 윤아는 수현의 몰골을 보고 깜짝 놀랐다.인터폰에서는 그의 반쪽 얼굴밖에 비치지 않아 똑똑히 볼 수 없었다.하여 이제야 그의 정면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마치 술에 취한 듯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그리고 눈빛도 조금 이상했다.‘설마 취해서 지금 술주정 부리러 온 건 아니겠지?’윤아는 생각하다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어?”수현이 입술을 살짝 다셨다.‘그러네, 이미 밤도 깊었는데 뭐 하러 여기까지 왔지? 이 상태로 대체 저 여자한테 뭐 하려고?’오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리 그녀와 다시 잘해보려고 왔다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더욱 오면 안
그는 더 이상 여기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았고 더 있다가는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았다.만약 다른 사람이었으면 아마 자기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눈앞에는 자신이 뜨겁게 사랑하는 여자라 마치 불난 집에 기름이라도 부은 듯 욕망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잠깐.”그가 자리를 뜨려고 몸을 막 돌리던 순간 뒤에서 윤이가 그를 불러세웠다.이로인해 수현의 발걸음이 그 자리에 멈춰졌다.그가 움직이기 싫어서가 아니라 몸이 전혀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여지지 않았다.육체와 의식의 힘겨루기 끝에 수현은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고 앞으로 움직이지도, 뒤를 돌아보지도 않게 된 것이다.이상하게 여기던 윤아가 그의 앞에 다가왔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수현의 이마를 짚어보았다.한참 그의 이마를 어루만지던 윤아는 뜨거운 열기를 느끼고 깜짝 놀라 물었다.“왜... 왜 이렇게 뜨거워?”문을 열자마자 그의 빨개진 얼굴을 보고 분명 취했다고 예상했고 그 때문에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여기까지 와서 벨을 눌렀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방금 잠깐 나눈 대화에서 이상하게 아무런 술 냄새도 나지 않았다.근데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고 말투도 어눌한 데다가 지금 잘못 찾아왔다고 얼버무렸다.윤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이마를 짚어보니 역시나 열이 펄펄 나고 있었다.“아까 저녁에 돌아갈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잖아? 왜 갑자기 열이 나는 거야? 가서 뭐 했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이 늦은 시각에 열이 이렇게 세게 나는데, 어쩔 수 없다, 내가 구급차 부를게.”말을 마치고 보니 윤아는 어딘가 이상해서 다시 말을 이었다.“아니다, 넌 지금 의식은 있는 상태라 구급차를 불러도 오지 않을 수 있어. 그리고 불러도 기다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좋기는 지금 바로 병원에 가는 게 좋은데...”하지만 그녀가 병원에 같이 가게 되면 두 아이만 남게 되는데, 그것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그래도...윤아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열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수현
윤아는 수현이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도 지금 온몸이 뜨거운 원인을 알아챘다.그러고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놀라서 그런 건지, 윤아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가 다시 꽉 깨물었다.“그래서? 이미 어떤 상황인 걸 알면서도 왜 날 찾아온 건데?”수현은 그녀를 한참 동안 안고 있다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나... 도 모르겠어.”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너 말고는.... 누구한테 가야 할지 모르겠어.”말을 마치고 얼마간 더 안고 있다가 얼굴을 그대로 그녀의 어깨에 묻었다.지금 참기 힘들 정도로 괴로운데 이렇게라도 그녀를 안고 그녀의 숨결을 느끼면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최소한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윤아라는 사실만으로도 말이다.“누구한테 갈지 몰라서 나한테 왔다고?”“아니...”그의 목소리는 마치 의식을 잃은 사람마냥 더듬거리며 겨우 말을 내뱉었다.“난... 그저... 널 만나러... 오고 싶었어. ”윤아는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이없었다.“나를 찾아와도 무슨 소용이 있어? 내가 너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어?”말을 마치고 윤아는 힘껏 그를 밀어내면서 그의 품 안에서 벗어났다.수현은 뒤로 두 발짝 밀려나면서 벽에 부딪혔다. 눈은 반쯤 풀린 상태에 얼굴은 여전히 불타는 고구마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지금 죽을힘을 다해 참고 있는데 처량한 모습이 마치 버려진 강아지 같았다.단순히 열만 나는 상황인 줄 알았으나...윤아는 지금 당장 그를 몽둥이로 정신 차릴 때까지 때려서 내쫓고 싶었다. 그도 이번이 처음으로 여자의 속임수에 당했다.“어디 가든 난 상관 안 해. 여자한테 속아서 이 모양 이 꼴이 되다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윤아는 모진 말을 내뱉은 뒤 문을 닫았다.쾅!문을 닫는 소리가 너무 큰 나머지 메아리가 쳤다. 그리고 잠시 후 메아리가 사라지고 나니 복도는 삽시에 조용해졌다.남은 건 오직 지금 애써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수현이었다.남의 속임수에 넘어가서
윤아는 또박또박 자세하게 설명했고 수현은 원래 태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내 말 듣고 있어?”수현이 고개를 들었다.“응.”윤아는 할말을 잃었다.“...”됐다, 그의 꼴을 보아하니 윤아의 말을 전혀 듣지 않은 것 같았다. 아예 정신을 잃기 일보직전인 사람한테 무슨 말을 하겠는가?“들어와.”윤아는 뒤로 두 발짝 물러나면서 수현을 안으로 맞이했다.하지만 수현은 방안을 들여다볼 뿐 발을 떼지 않았다.“왜? 들어오기 싫어? 난 그럼 들어갈게...”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현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쾅!윤아는 그를 데리고 먼저 거실 소파로 향했다. 그리고 얌전히 앉아있으라고 한 뒤 물을 따라주겠다고 말했다.“얼음물 줘.”수현이 갑자기 말했다.“뭐?”윤아는 잘못 들은 줄 알고 되물었다.“얼음물 마시겠다고?”“얼음.... 물 마시고 싶어, 아니면 그냥 찬 물도 돼.”“한 겨울인데...”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윤아는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주방에 가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지금은 겨울이기 때문에 냉장고에는 얼려둔 물이 없었고 그저 차가운 맥주뿐이었다.‘차가운 맥주도 괜찮나?’‘지금 상태로는 급속으로 온도를 낮추는 게 시급해 보이는데?’고민 끝에 윤아는 차가운 맥주 두 병을 꺼내 수현에게 가져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얼마 전 그가 위출혈 때문에 병원에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이 상태에서 차가운 맥주라...잠시 고민하다가 윤아는 맥주 두 병을 다시 냉장고 안에 넣었다. 그리고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왔다.그녀한테서 컵을 건네받던 수현이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얼음물은?”“없어.”“그럼... 아무 찬 거라도?”윤아는 참다못해 그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마시든지 말든지.”그녀의 호통에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결국에는 들고 있던 따뜻한 물을 천천히 들이마셨다.그는 물을 아주 천천히 마셨는데 지금 상태를 보아하니 물 한 잔 마시는
하지만 윤아가 부드러운 손으로 셔츠 첫 번째 단추를 풀자마자 수현이 갑자기 차가운 손으로 그녀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힘도 엄청난데 꽤 폭력적이었다.윤아가 고개를 드니 수현의 검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리 밝지 않은 거실에서 수현은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는데 눈빛이 마치 한 마리의 늑대 같았다.그리고 단번에 그녀를 덮칠 것 같았다.그의 모습에 윤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깨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어쩌면 깨어난 것도 다행이다. 자기 절로 알코올로 몸을 닦으면 된다. 단지... 그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설마 이성을 잃어버린 건 아니겠지?’비록 그녀가 직접 당해본 건 아니지만 만약 그 물건에 취하게 되면 자기 몸을 컨트롤하기 매우 어렵다고 듣기는 했으나 만약...윤아는 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녀의 팔목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더욱 세지고 수현의 호흡도 아까보다 더 거칠어졌기 때문이다.윤아의 얼굴빛이 살짝 변하더니 애써 손을 뿌리치려 했다.“알코올과 물수건은 여기에 둘게. 이미 깼으면 혼자서 닦.... 악!”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수현에게 끌려갔고 곧 하늘과 땅이 뒤집히더니 단번에 그녀를 소파 위에 깔아 눕혔다. 청초했던 남자의 숨결이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그녀의 온몸을 간지럽혔다. 윤아의 손은 또다시 결박된 채 머리 위로 올려졌고 남자는 몸을 천천히 숙였다.윤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순간에도 방안에 두 아이가 곤히 잠들고 있다는 생각에 목소리를 낮추고 다급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진수현, 지금 뭐 하는 거야?”하지만 남자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윤아가 그를 정신 차리도록 세게 걷어찰까 말까 망설이던 찰나 수현이 갑자기 모든 동작을 멈춘 채 그녀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두 사람은 아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윤아는 그가 지금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을 죽을힘을 다해 애써 참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하여 그의 미간은 아까부터 찌푸려져 있었고 뱉어내는 숨도 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