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경매도 진수현은 소영 씨와 함께 갔던 걸로 기억하는데요.”경매 얘기에 민재는 서둘러 해명했다.“그건 맞지만 그땐 대표님 어머니께서 시키신 일이라 어쩔 수 없었어요. 그리고 강소영 아가씨께서 원하시던 물품이 있어서 함께 출석하신 겁니다.”“그래서요?”양훈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언제 윤아 씨를 다시 만난 건데요? 윤아 씨는 언제 돌아왔고요? 그 두 아이는... 진수현 아이예요?”“그럼요. 생김새만 봐도 딱 저희 대표님 아이잖아요.”그러자 양훈이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하긴. 너무 닮긴 했죠.”수현을 쏙 빼닮은 또렷한 이목구비와 매끈한 얼굴형에 어딘가 윤아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오묘한 눈썹과 눈동자까지... 굳이 친자 검사를 해보지 않아도 누구의 아이인지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민재는 그런 양훈을 지그시 쳐다보더니 대뜸 물었다.“김양훈 씨는 왜 여기 계십니까?”최근 수현이 그를 너무 풀어준 탓일까, 민재는 어쩐지 평소보다 더 대범한 듯했다.안 그래도 그는 수현에게 오늘 일에 관해 물어보려던 참이었는데 수현이 병실로 쌩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수현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려면 아마 몇 시간은 더 걸릴 것같으니 민재는 생각을 바꿔 양훈에게 오늘 일의 자초지종을 물었다.애초에 먼저 얘기를 나누자며 찾아온 사람은 저쪽이 아닌가.“윤아 씨는 어쩌다 다치신 거예요? 오늘 오후까지도 멀쩡하시지 않았어요?”“그랬죠.”양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우리가 진수현을 찾으러 갔을 때까지도 괜찮았어요. 모든 건 사고였어요.”“우리라고요?”“저, 고석훈, 그리고 강소영이요.”강소영이라는 말에 민재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네? 강소영 아가씨도 오셨다고요? 그런데 윤아 아가씨가 왜 다치신 겁니까? 설마 강소영 아가씨가?”그러자 양훈은 그를 바보 보듯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강소영 씨가 아무리 사리 분별 못한대도 이런 짓까지 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을 겁니다.”진수현 앞에서 윤
병실 안.윤이는 누군가의 노크 소리에 곧바로 고개를 돌려 자기 오빠를 바라보았다.그리고 훈이 고개를 끄덕인 후에야 비로소 수현에게 문을 열어줬다.병실 문이 열리자 두 꼬마는 수현이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들어오는 모습을 발견하였고 윤이가 호기심에 물었다.“고독현 아저씨, 혹시 뭐 사셨어요?”물어보자마자 윤이는 비로소 자기의 행동을 깨닫고 당황한 얼굴로 입을 막았다.아뿔싸!분명 그를 상대하지 않기로 다짐했었는데 그가 가져온 물건을 보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말을 걸어버렸다.“응.”수현은 살짝 미소를 짓더니 들고 온 물건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내가 우리 비서더러 먹을 걸 좀 사 오라고 했어.”말을 마치고 수현은 봉투에서 먹거리를 꺼내더니 테이블에 가지런히 세팅하기 시작했다.두 꼬마는 이 모습을 보고 그저 손가락을 꼼지락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병실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수현은 곁눈질로 두 아이가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보고도 느긋하게 하던 일을 마저 했다.테이블 위가 더 이상 물건을 놓을 자리가 없자 그제야 멈췄다.그리고 고개를 들어 두 아이에게 물었다.“아직 저녁 안 먹었잖아, 배 안 고파?”훈이는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답했다.“괜찮아요.”음식을 보자마자 먹고 싶었던 윤이도 냉큼 대답했다.“저, 저도 배 안 고파요.”하지만 말을 마치자마자 윤이의 뱃속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윤이는 깜짝 놀란 나머지 얼굴이 빨개진 채로 재빨리 자그마한 손으로 배를 움켜쥐었다.그리고 훈이의 곁으로 가더니 나지막하게 속삭였다.“오빠, 나 너무 창피해.”훈이는 오빠로서 여동생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위로했다.이 광경을 지켜보던 수현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눈에 콩깍지가 씐 걸까?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웠다.수현의 눈이 순간 반달 모양으로 변하더니 한껏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진짜 배 안고파? 식으면 맛없어.”윤이는 배고팠지만 자존심을 부리며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저는 고독현 아저씨 음식을 먹지 않을래
또한 지금 제일 중요한 건 고독현 아저씨가 음식을 이렇게나 많이 사 왔는데 이 시점에서 선우 아저씨를 부르면...“오빠...”이때, 더 생각할 나위도 없이 배고픈 윤이가 또다시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어쩔 수 없이 수현한테서 핸드폰을 가져오려고 하던 이때, 마침 그가 테이블에서 두 사람 있는 곳으로 다가오더니 쪼그리고 앉으며 물었다.“둘이 뭘 속닥거려?”윤이는 냉큼 그를 등지면서 못 본 척했다.그 모습에 수현은 윤이의 머리를 콩 때리면서 말했다.“아직도 아저씨한테 화난 거야?”“흥.”윤이가 도저히 그와 대화하려고 하지 않는 모습에 수현은 그녀의 목덜미를 콕콕 찌르며 다시 물었다.“아저씨가 잘못했어. 우리 윤이랑 훈이한테 사과할게. 그러니깐 이제 그만 용서해 주면 안 될까?”“안 돼요!”원래 그냥 무시하려고 했던 윤이는 씩씩거리면서 말했다.“용서 안 해도 돼. 근데 진짜 안 먹을 거야? 배고파서 쓰러진 모습을 엄마가 깨어나 보기라도 하면 어떡해?”어쩔 수 없이 수현은 최후의 수단을 써야 했다.아이는 아인지라 수현의 말에 금세 마음이 동요했다.“엄, 엄마가요?”“그래.”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어린이가 제때 밥을 먹지 않으면 쓰러지기 쉬워.”윤이는 그에게 되물었다.“진짜요?”수현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진짜로.”옆에서 듣고 있던 훈이는 그들의 대화가 어이없었다.“...”자꾸만 이 아저씨가 일부러 자기 여동생을 속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 수 없지만 어쨌든 오빠로서 자기 여동생을 굶기기 싫었다. “또한 너희들은 지금 나한테 화가 난 상태잖아. 그러면 더 굶으면 안 되지, 이 고독현 아저씨한테 벌을 줘야 하지 않겠어?”“벌을 준다고요?”윤이는 이 기발한 아이디어에 드디어 구미가 당기는지 다시 물었다.“어떻게 벌주면 돼요?”그녀의 물음에 수현은 한껏 진지한 얼굴로 한참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벌은 이 아저씨가 너희들에게 밥을 사주는 걸로 하자.”훈
결국 훈이도 자신의 작은 손을 그에게 쥐여주면서 같이 자리를 떴다. 민재는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샀는데 덕분에 테이블이 꽉 차게 되었다.윤이는 의자에 앉자마자 테이블 위의 음식들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고독현 아저씨, 이게 다 윤이와 오빠가 먹어도 되는 건가요?”“당연하지.”말과 동시에 수현은 냅킨을 뽑아서 그들의 테이블에 펴줬다.최근에 두 아이를 돌보면서 아직 취향을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으나 식사할 때 도구들이 필요하다는 사실만은 알게 되었다. 하여 아까 먹거리를 살 때 겸사겸사 같이 구매했다. 윤이와 훈이는 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수현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아까까지만 해도 도도한 척 수현을 애써 상대하지 않던 윤이는 모든 경계모드가 해제된 채 그를 부려 먹기 시작했다.“아저씨, 저 이거 먹고 싶어요!”“그래.”수현은 냉큼 그녀가 말한 음식을 밥그릇에 덜어줬다.“저것도 먹을래요!”“응.”“그 옆에 탕수육도!”“그래.”수현은 거의 입도 대지 못한 채, 윤이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서 한편으로는 또 훈이에게도 음식을 집어주었다. 하지만 이 어린이가 매우 내성적이라 받아먹으면서도 내키지 않지만 고맙다는 인사는 꼬박꼬박 했다.수현은 예의 바른 두 아이를 보면서 속으로 감탄했다.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렇게나 훌륭하게 자랐기 때문이다. 생각에 잠기던 수현은 침상에 누워있는 윤아를 흘낏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직도 혼수상태에 빠진 채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수현의 눈살이 찌푸러졌다. 아직 그녀가 얼마나 더 누워있어야 할지 짐작조차 안 되었기 때문이다. “고독현 아저씨.”꼬마 아가씨의 부름에 수현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는 살짝 불만스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그가 잠시 딴생각하던 모습을 눈치챈 모양이다.“미안, 아저씨가 방금 다른 생각 하느라 못 들었어. 우리 윤이 뭐 먹고 싶어? 아저씨가 집어 줄게.”윤이는 입술을 삐쭉 내밀더니 사
때는 이미 저녁이었고 병실안은 작은 등불만 켜져있었는데 불빛이 적당히 온화하여 윤아가 눈을 떠도 전혀 눈부시지 않았다.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침대옆에 있는 불청객을 발견했다.진수현...머릿속이 백지상태던 윤아는 그를 발견한 뒤로 빠르게 오늘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이마에 물건이 부딪히면서 필름이 끊겨 그 뒤의 일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보아하니 윤아가 다치게 된 후 수현이 병원까지 데려온 것 같다. 병원...그럼 윤이와 훈이는?두 아이를 떠올리자마자 가만히 누워있던 윤아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그녀의 움직임에 침대 옆에서 잠깐 졸고 있던 수현이 눈을 떴다.그렇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의 눈동자에 윤아의 모습이 비쳤다.빠르게 수현은 윤아를 도와 침대에서 일으켜줬다.“깨났어?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그의 목소리는 많이 잠겼는데 아마 피곤해서 그런 것 같았다.윤아는 제일 먼저 아이들의 안부를 물었다.“훈이랑 윤이는?”그녀의 물음에 수현은 살짝 당황했다.깨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아이들을 묻는 걸 보니 진짜 걱정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마.”수현은 턱으로 윤아의 뒤쪽을 가리켰고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포근한 불빛 아래 두 아이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자고 있었는데 그들 위에는 두꺼운 이불과 수현의 옷까지 덮여 있었다.조명이 너무 따뜻한 탓에 마치 지금 일상도 포근하고 안락한 것처럼 사람을 착각하게 했다.두 아이가 모두 자기 곁에 있는 모습을 보고 윤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자기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면 두 아이는 어떡할지 항상 걱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아이가 여기까지 따라오고 수현도 와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두 아이보다 너 자신부터 챙기는 게 어때?”수현의 목소리에 윤아는 그제야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두 아이가 무사한 모습을 보고는 윤아의 표정이 다시 차가워지더니 수현을 보고 물었다. “다른 사람은?”그녀의 말에 수현은 살짝 머뭇거리며 대답했다.“나 혼자 너를 여기
수현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더니 이마 위의 힘줄이 불끈 튀어나왔다.하지만 얼마 안 가서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다.“목마르지 않아? 따뜻한 물이라도 마실래?”윤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노려봤다.수현은 그녀와 눈이 몇 초간 마주친 뒤 따뜻한 물을 따라왔다.“방금 봤는데 온도가 딱 적당해.”윤아는 물잔을 보더니 거절했다.“안 마셔.”“밤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쭉 누워만 있었잖아. 먼저 따뜻한 물이라도 마셔.”말을 마치고 수현은 물잔을 아예 윤아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하지만 윤아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고개를 돌렸다.“안 마신다니까.”수현은 얼마간 물잔을 들고 있다가 결국에는 다시 내려놓았다.“그럼 뭐라도 먹을래? 뭐 먹고 싶어?”순간, 윤아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물도 마시기 싫고 아무것도 먹기 싫어, 그리고 수현 씨도 보고 싶지 않아. 만약 정말 오늘 밤의 일 때문에 죄책감을 느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으면 선우 씨나 불러줘.”그녀의 입에서 이선우라는 이름이 불린 것과 동시에 평온했던 수현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생각하지도 않고 단번에 거절했다.“그럴 순 없어.”“그래, 그럼 날 귀찮게 하지 마.”말을 마치고 윤아는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 움직이다가 그만 이마의 상처를 건드리고 말았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깜짝 놀랐다.그 모습에 수현의 냉랭하던 눈빛은 순간 돌변하더니 걱정스레 물었다.“상처 건드린 거야? 아프지?”긴장한 얼굴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묻는데 아까의 무서운 얼굴은 온데간데 사라진 지 오라다.“상관하지 마, 손 치워.”윤아는 그의 손을 뿌리치면서도 아파서 앓음 소리를 냈다.“왜 갑자기 착한 사람인 척하는데, 만약 수현 씨가 내 동의도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 않았다면 내가 그쪽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그들과 마주치지도 않았을 것이고, 오늘 같은 일은 더더욱 일어나지 않았을 거잖아.”수현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확실히, 그녀의 말이 모두 옳았다. 만
“지켜볼 필요 없어.”수현은 입술을 달싹거리면서 그녀를 바라보다가 결국에는 몸을 일으키더니 밖으로 나갔다.윤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착각일수도 있겠지만 아까부터 계속 수현이 왠지 모르게 억울해하는 것 같았다.여기까지 생각하다가 윤아는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대체 뭐가 억울하지?’‘지금 다친 사람이 누군데, 뭐가 억울하다는 거야?’쾅!병실의 문이 닫히면서 수현이 밖으로 나갔다.윤아는 천천히 돌아누웠다. 상처는 아직 아프지만 돌아 누우면 두 아이를 볼 수 있었다. 두 꼬마는 여전히 아무 걱정 없이 달콤하게 자고 있었다. 혹시 그녀가 여기에 있어서일까 아니면 병실에 수현이 지키고 있어서일까?이마의 상처가 여전히 따끔거려서 윤아는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고 의식은 빠르게 희미해지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윤아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잠이 들기 시작했다.하지만 깊게는 잠이 들지 못했다. 그저 의식만 살짝 있을 뿐이다.가끔 자기도 모르게 병실 밖의 사람을 떠올리곤 했지만 다시금 헛된 생각을 하지 못하게 애써 이성으로 돌아오곤 했다.그렇게 얼마나 지나지 않아 윤아는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소리는 아주 작았는데 만약 병실이 시끄럽거나 그녀가 이미 잠에 빠졌더라면 아예 들리지도 않았을 소리였다.‘아까 분명 밖으로 나가지 않았나? 돌아와서 뭐 하려는 거지?’문을 등진 바람에 윤아는 들어온 사람이 수현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잠시 후, 가벼운 발소리가 그녀의 뒤에서 멈춰지더니 등 뒤로 그 사람의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윤아는 그 시선이 불편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고 어렵게 고개를 돌렸다.역시나 수현이었고 마침 그의 검은 두 눈과 마주쳤다.수현도 윤아와 눈이 마주친 뒤 살짝 놀랐다. 아마 그녀가 깨어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 같았다.그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그는 아마 밖에서 있던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윤아가 잠든 사이에 들어와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허락하지 않았지만 또 거절하지도 않았다.수현의 마음도 그제야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옆으로 누워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불쌍한 척 한 게 아니다...그저 바깥의 온도가 한 자릿수인 데다 홑 옷차림으로 서있었으니 확실히 춥긴 했다. 더구나 얼마 전 위출혈때문에 병원에 갔었는데 아직 다 낫지 않은 것 같았다.그래서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물론 그는 충분히 민재더러 외투 한 벌을 가져오라고 할수 있었지만 시간이 많이 걸렸다.민재도 확실히 그렇게 제안했었다.하지만 그 순간, 수현은 들어가서 윤아의 마음을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만약 남으라고 하면 제일 좋겠지만 말이다.역시나 그의 바람대로 성공적이다.비록 실내도 춥긴 마찬가지지만 아이들이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수현의 마음도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잠시 앉아 있다가 일어나 뜨거운 물을 한 잔 따랐는데 병실 안이 너무 조용한 탓에 물 마시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윤아는 저녁때부터 지금까지 긴장한 탓에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상태라 지금 목이 살짝 말랐다.하지만 수현과는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아 억지로 눈을 감고 참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윤아는 갈증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두 눈을 떴다. 그 상태로 또 한참 기다리다가 결국에는 일어나서 물을 마시려고 했다.자신의 움직임이 작다고 착각한 윤아는 물론 수현이 아까처럼 잠에 들었으리라 생각했다.하여 동작을 최대한 작고 가볍게 일어나려고 했다.생각했던 찰나, 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그래?”그의 목소리에 윤아는 놀란 나머지 몸이 굳어버렸다.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수현이 그녀에게 다가오면서 다시 물었다.“뭐 해줄까? 말해 봐, 내가 도와줄게.”“필요 없어.”윤아는 고민할 새도 없이 그의 말을 거절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려고 하던 순간 몸이 갑자기 앞으로 기울었는데 다행히 수현이 재빨리 부축했으니 마련이지 아니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을 것이다.머리 위에서 그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