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는 거야?”수현이 잡아당기는 바람에 윤아의 손에 있던 보고서가 손쓸 새도 없이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졌다.그러나 그는 무언가에 자극받은 사람처럼 보고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윤아를 끌고 성큼성큼 나아갔다.“잠깐만요.”그제야 반응이 돌아온 안경남이 서둘러 달려 나가 두 사람 앞을 막아섰다.“당, 당신. 우리 대표님께 뭐 하려는 거예요. 그 손 놔요!”수현은 겁 없이 그의 앞을 막아서는 하룻강아지 같은 이 남자를 한 눈 흘겨보았다.금테 안경... 그의 안경에 시선이 닿자 수현은 비슷한 안경을 늘 끼고 다니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 남자, 아까 엘리베이터에서도 윤아를 음침하게 쳐다봤었지...수현은 순간 빈정이 확 상했다.그는 냉소를 터뜨리며 안경남을 조롱했다.“그쪽이 뭔데 날 막지?”수현의 드센 기에 눌린 안경남은 잠시 멈칫했다.한편, 윤아는 여전히 그에게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쳤다.“진수현. 이거 놔. 대체 뭐 하는 짓이야.”안경남은 그런 윤아의 모습에 용기를 내 앞으로 더 나서며 말했다.“대표님 놔줘요.”“꺼져!”수현이 짜증스럽게 호통을 쳤다.“주먹 나오게 하지 맙시다.”말을 마친 그는 곧장 윤아를 끌고 떠나버렸다.안경남은 한참 후에야 정신이 돌아와 그들을 따라가려 했지만, 수현의 섬뜩한 모습을 떠올리고는 결국 몸을 돌려 오민우의 사무실로 달려갔다.“매니저님, 매니저님!”그는 허둥거리며 사무실로 쳐들어 갔는데 민우가 클라이언트와 통화 중인 걸 보고서야 요란하게 외쳐대던 입을 다물었다.민우는 하는 수 없이 미안하다는 말로 급하게 통화를 마치고 자초지종을 물었다.“무슨 일인데 이렇게 난리법석이에요? 회사에서 누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랍니까?”“매니저님, 아까 어떤 남자가 와서 저희 대표님을 끌고 갔어요.”윤아의 일을 들은 민우는 순식간에 표정이 굳더니 다급히 물었다.“무슨 남자요? 대표님을 끌고 가요? 납치란 말입니까?”“납치?”안경남은 곰곰이 생각한 후 말을 정정했다.“납치는 아닌 것 같아요. 두 분이
“생각 정도는 해도 괜찮아요. 예쁘고 똑똑한 여자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어서 돌아가서 일이나 해요.”안경남은 하는 수 없이 우울한 마음을 뒤로 한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돌아갔다.민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시 자기 일에 몰두했다._수현은 윤아를 끌고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향했다.초반에는 안간힘을 쓰며 버둥거리던 윤아도 쇠사슬같이 그녀의 팔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수현의 커다란 손에 완전히 의욕을 잃어버렸다.윤아는 결국 괜한 힘을 빼는 대신 그가 가려는 데로 끌려가기를 선택했다.윤아가 조용해지자 수현도 그녀의 기분이 신경이 쓰였던 건지 얼마 안 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숨 막히는 적막 속,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공중에서 맞물렸다. 이윽고 윤아의 시선은 천천히 밑으로 내려가 단단히 붙잡힌 자신의 손목으로 향했다.“이제 좀 놔주지?”그녀의 목소리는 냉정하고 명확했으며 소름 끼치게 차가웠다.이런 윤아의 모습에 수현은 미간을 구겼다. 그는 손목을 풀어주는 대신 더 힘을 주어 단단히 붙잡았다. 그러고는 앞으로 두 걸음 다가가 그녀와의 거리를 좁혔다.“할 말 있어.”수현이 다가오자 순식간에 그의 서늘한 체향이 윤아를 감쌌다.기억 속의 그 냄새와 똑같았다.윤아는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옆으로 돌려 그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그래. 할 말 있으면 해.”윤아의 짜증스러운 말투와 귀찮은 듯한 태도에 수현은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 났다. 하지만 오늘 꼭 해야만 하는 말이다.“아까 내 핸드폰 무음 모드 해지할 때, 알림 뜬 거 봤었지?”수현이 이걸 물어볼 줄 몰랐던 윤아는 당황한 듯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코웃음을 쳤다.“그럴 리가. 난 네 사생활에 관심 없어.”“그래?”수현의 시선이 그녀에게 단단히 고정되었다.“못 봤다고?”“응.”윤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못 봤어. 그러니까 이제 나 좀 놔주지?”그러나 수현은 곧바로 윤아를 차가운 벽으로 밀어붙인 후 그녀의 손을 포박했다. 그러고는 이빨을
윤아는 태도의 나쁨과 더 나쁨으로 그녀의 기분을 가늠하는 인간은 살다 살다 처음이었다.“그게 뭐? 널 대하는 태도가 너 나빠졌다 해서 그게 뭘 설명할 수 있는데?”수현은 말없이 그저 가만히 윤아를 바라보았다.그런 수현을 보며 윤아는 다시금 그를 밀어내려 시도했다.“일단 나 좀 놔줘.”수현이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윤아는 힘으로 그를 밀어내려 했다.그 순간, 윤아는 수현 특유의 서늘한 향과 함께 눈앞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수현이 갑자기 몸을 숙여 그녀를 끌어안았기 때문이다.“지금 뭐 하는...”윤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수현의 품속에 안겨있었다.그 순간 수현의 체온이 윤아의 몸을 감돌았다. 윤아는 수현이 자신에게 강제로 키스라도 하려는 줄 알고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래. 너한텐 별 의미 없겠지. 하지만 난 아니야. 나한텐 큰 의미야.”수현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윤아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그저 네 미세한 변화로부터 나한테 조금의 미련이라도 있는지 짐작하는 수밖에. 설령 그게 티끌만 한 마음일 지라도.”진짜든 아니든, 설령 곧 사라질 감정이라도 그는 꽉 붙잡고 싶었다.한편, 윤아는 자기가 잘 못 들은 줄 알았다.방금 그 말, 그답지 않게 비굴했다.진수현 입에서 나온 말이란걸 도무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낮추는 화법이다.윤아는 처음에 그가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5년 전엔 본인이 먼저 이혼하자 해놓고 왜 이제 와 이러는 건지. 게다가 애초에 아이를 포기한 사람도 진수현 본인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제 와 미세한 변화로부터 내 감정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고?대체 무슨 뜻이지?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아니면 그 시간 동안 이혼 한 걸 후회하기라도 했단 건가?후회?아니. 분명 지난번 경매에서는 강소영과 함께였다. 함께 경매에 참여하고 함께 서있었고 함께 떠났었다. 둘의 모습은 누가 봐도 정말 타고난 한 쌍이었다.이런 생각이 들자 윤아의
수현의 눈빛은 깊고 어두워 마치 윤아를 집어삼킬 듯했다. 그의 몸이 윤아에게 한 발짝 다가갈수록 더 크게 들려오는 서로의 숨소리에 수현은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5년, 그 긴 시간 동안 미치게 바라왔던 그녀의 입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마침내 두 입술이 맞닿으려던 그 순간, 윤아의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경멸의 웃음이 새어 나왔다.윤아의 비릿한 웃음에 수현은 동작을 멈추었다.“그래서?”윤아는 여느 때보다도 가까워진 수현을 바라보며 냉소를 터뜨렸다. 이윽고 그녀의 하얀 손끝이 수현의 가슴팍을 꾹 누르더니 가볍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네가 후회한다면 내가 널 받아줘야 해? 진수현, 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지?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날 조종하려 들어? 대체 뭘 믿고?”“그런 적 없어.”수현이 미간을 찌푸렸다.“건망증이 심하네. 자기가 먼저 이혼하자고 하던 일은 까맣게 잊었나 봐.”그 말에 수현이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그래. 그땐 내가 잘못했어. 그럼 넌? 그때 넌 내가 이혼 얘기를 꺼내든 말든 상관이 있었어? 내가 이혼하자고 한 건 네 뜻을 따른 것뿐이었어.”그러자 윤아가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그게 무슨 뜻이야?”수현은 입술을 깨문 채 여전히 그늘진 눈빛으로 윤아를 보며 말했다.“그날, 잠에서 깼을 때 네가 그랬잖아. 그냥 정상적인 생리적 욕구일 뿐이라고.”수현은 말을 하면서 떠오르는 기억에 다시금 분노가 차오르는지 이를 꽉 물었다.“그리고 나한테 20억을 요구했지.”윤아는 잠시 침묵하더니 반박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그 돈은 이미 돌려줬을 텐데?”윤아는 그를 떠날 때 정말 다시는 엮이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었다.“그 문제가 아니잖아.”“그럼 뭔데? 진수현. 난 이제 너한테 빚진 거 없어.”“그래, 없지. 그러니까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홀가분하게 갔겠지. 이젠 내 얼굴 한 번 보려고 하지도 않잖아.”수현은 윤아를 바라보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신경 쓰는 건 그저 생리적 욕구
둘의 입술은 어느새 거의 붙다시피 가까워졌다. 이제 윤아가 조금만 움직여도 닿을 것 같았다.이 거리... 아주 위험하다.윤아는 하는 수 없이 손을 뻗는 동시에 머리를 뒤로 젖혀 수현에게서 멀어지려 애썼다.그러나 몸을 움직이는 순간 수현이 곧바로 입을 맞춰올 줄은 몰랐다.“읍.”입술이 부딪힌 순간, 수현은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자극에 정신이 몽롱해졌다.말캉한 촉감에 그는 저도 모르게 윤아의 허리를 더 꽉 잡아당겼다. 긴 시간 동안 억눌렸던 욕망을 펼치듯 그의 숨은 거칠게 윤아를 파고들었다.윤아는 손으로 수현의 가슴팍을 밀어내며 말했다.“놔, 이거 놔.”매일 밤 갈망하던 걸 이제 겨우 얻었는데 놓아 줄 리가 있나. 수현은 손을 놓기는커녕 그녀를 삼켜버릴 듯 더 매섭게 밀어붙였다.그러다 윤아가 온 힘을 다해 그를 깨무는 바람에 외마디 소리와 함께 뒤로 물러났다.윤아는 뒤엉킨 입술 사이로 피비린내가 느껴지는 동시에 입술을 뗐고 물러난 수현의 입가에도 피가 묻어있는걸 볼 수 있었다.“짝!”수현이 물러나자 윤아는 곧바로 그의 뺨을 세게 쳤다.수현도 피하지 않고 그녀의 분노를 온전히 받아냈다.“짐승같은 자식.”윤아는 욕 한마디 날린 후 몸을 돌려 떠나버렸다.그러자 뒤에서 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내 말 전부 진심이야.”그 말에 윤아는 냉소를 터뜨렸다.“진심? 그럼 뭐? 네 말은 무조건 믿어야 해?”곧이어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수현은 그곳에 가만히 서있다가 한참 뒤에 손을 올려 상처 난 입술을 가볍게 만졌다.아프고 달콤했다.고통과 쾌락의 전율 속에서 수현은 한참 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그는 눈을 질끈 감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_사무실에 돌아온 윤아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얼굴을 씻었다.찬물로 얼굴을 세 번이나 씻고 나서야 비로소 차분해진 윤아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간신히 붙잡고 있는 이성으로 한 번, 또 한 번 되뇌었다.절대 현혹돼서는 안 된다고.수현은 그녀가 좋아했던 사람이
민우의 말에 윤아는 말문이 막혔다.민우는 유난히 붉은 윤아의 입술을 한 눈 보고는 슬그머니 웃었다.“그리고 제가 간다고 해도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두 분 대화 잘하고 계시나 구경이나 하라고요?”말을 마친 민우는 윤아의 싸늘한 눈빛을 느꼈다.“오 매니저님. 별다른 일 없으면 이만 가보세요.”“거 참. 이젠 절 보기도 싫으신 모양이네요. 갑니다. 가요. 저도 일이 바빠서.”민우가 떠난 후 윤아는 잔뜩 구겨진 미간을 짜증스레 누르다 결국 포기하고 몸을 뒤로 젖혔다. 윤아는 잠시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그 상태 그대로 가만히 누워있었다._윤아가 아이들을 픽업하러 가려는데 마침 앨리스가 저녁을 같이 먹자며 전화를 걸어왔다.윤아도 저녁에 별다른 일정이 없어 흔쾌히 승낙했다.“나 곧 학교에 도착해. 먼저 애들 데리고 쇼핑몰에 가 있을게. 오면 연락해.”“응.”쇼핑몰의 저녁은 항상 사람이 붐빈다. 윤아가 앨리스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이미 윤이와 훈이를 데리고 범퍼카를 타고 사진도 찍으며 놀고 있었다.윤아가 다가올 때 앨리스는 이미 몇 장의 사진을 찍은 후 인스타에 올리기 위해 보정을 하고 있었다.한창 몰두하던 그녀는 윤아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왔어? 오는 길에 차는 안 막혔어?”“괜찮았어. 막히진 않았는데 차는 많더라.”앨리스는 잠시 핸드폰을 멈추고 있다가 윤아의 말이 끝나고 나서 다시 인스타에 올릴 말을 다듬었다.앨리스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윤이와 훈이를 올리기 좋아하는 건 윤아도 이미 익숙해진 일이었다.그 때문에 윤아는 그 일에 대해서 딱히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앨리스가 인스타를 올리다 말고 윤아에게 물었다.“우리 같이 사진 찍은 지 꽤 된 것 같지 않아? 우리도 한 장 찍을까?”윤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앨리스의 곁으로 다가갔다.그러나 앨리스는 포즈까지 다 취해 놓고 윤아의 예쁘장한 얼굴이 화면에 잡히자 문득 뭔가 떠오른 듯 표정이 부자연스럽게 굳었다.진수현 씨가 윤아와 뭔가 있어 보이던데 같이 찍
아무것도 모르는 앨리스는 기분 좋게 주문을 계속했다.“윤이 훈이는 아직 어리니까 안 매운 탕이 좋겠지? 근데 난 매운 탕으로 먹고 싶으니까 반반으로 하는 거 어때?”앨리스는 윤아가 한참 동안 대답이 없자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윤아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그녀의 핸드폰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뭔가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윤아야?”윤아는 앨리스가 손을 휘적이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무슨 생각 해? 밥 먹으러 와서 무슨 멍을 그렇게 때려. 설마 여기까지 와서 일 생각 하는 건 아니지?”윤아는 앨리스를 보며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묻고 싶은 말이 턱 끝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는 듯 보였다.“미안해. 너...”“뭘 또 미안하대.”앨리스가 손을 뻗어 윤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우리 사이에 미안할 게 뭐가 있어. 난 네가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힘들까 봐 걱정되는 거야. 밥 먹을 땐 일 생각 하지 말고 즐거운 생각만 해.”하긴, 밥 먹으러 와서까지 딴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긴 하다. 윤아는 밥을 다 먹고 나서 방금 그 프로필 사진에 대해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게다가 방금은 그저 찰나여서 잘못 봤을 가능성도 다분했다.윤아는 그저 앨리스도 고독현 밤이라는 사람의 카톡이 있는 거라면 어떻게 추가하게 된 건지 궁금했다.“훈이, 윤이.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더 시켜.”그러자 두 아이도 쪼르르 앨리스의 곁으로 다가가 메뉴를 열심히 보기 시작했다. 윤아는 딴생각에 잠기지 않기 위해 메뉴 선정에 더 집중했다.밥을 먹는 와중에도 앨리스는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들어 복스럽게 먹고 있는 아이들을 찍었다. 그리고 중간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주기 위해 나갔다 오기까지 했다.저녁을 다 먹으니 어느새 밤 아홉 시가 다 되었다.두 아이는 배가 부른지 윤아의 양쪽 팔에 매달려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아이고. 이 귀요미들. 난 언제쯤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가질 수 있을까.”앨리스가 부러운 듯 말했다.윤아는 그런 앨리
윤아는 앨리스의 반응에 입가의 웃음기가 살짝 옅어졌지만 그래도 내색 않고 부드럽게 물었다.“그럴 수도 지. 그래도 내가 너무 궁금해서 그러는데 핸드폰 잠깐만 보여줄 수 있을까?”앨리스는 눈을 깜빡이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윤아야. 정말 별거 없어. 프로필 사진이 겹친 걸 수도 있잖아?”처음엔 별생각 없던 윤아도 지나치게 핸드폰을 사수하고 안 보여주려는 앨리스의 모습에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남의 핸드폰을 보여달라는 게 무례한 요구란 건 알지만, 앨리스와는 그동안 쌓아온 정도 있고 핸드폰 정도는 보여줄 수 있는 사이였다.멀리 갈 필요 없이 앨리스가 그녀와 선우를 한창 엮으려 하던 그때도 윤아의 핸드폰이 울리기만 하면 앨리스는 냉큼 집어가 자기가 먼저 확인하곤 했다.“나도, 나도 볼래. 분명 선우 씨가 보낸 문자일걸? 어머, 어머머. 이것 봐! 진짜야. 내가 답장 해줄게.”그러고는 선우에게 낯간지러운 말들을 잔뜩 보내버리곤 했었다.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 그 후로는 선우도 그런 답장을 받으면 앨리스가 한 짓인 걸 알아차리곤 했었다. 덕분에 이런 일로 오해가 생기는 일은 없었다.사이도 좋고 다 아는 사이라 윤아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은...비슷한 프로필을 본 것 같아 확인해 보고 싶다는 데 이렇게까지 거부할 일인가.윤아는 꼿꼿이 선 채 앨리스를 바라보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해보았다.“다른 의도 없어. 그냥 확인만 한 번 해볼게.”앨리스는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깊은 고민에 빠졌다.윤아는 선을 잘 지키는 사람이다. 예전에도 윤아는 그녀가 싫다고 한 일은 다시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한 번 거절한 일을 또 묻고 있다. 그 말은 지금 윤아가 이 일을 매우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었다.친구라면, 선뜻 핸드폰을 내어주는 게 맞겠지만...앨리스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목소리가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안 돼.’만약 윤아에게 보여주면 그녀가 수현과 나눈 대화를 전부 보게 된다.수현의 앞에서 앨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