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연락해 보겠습니다. 그쪽에서 아이를 이곳에 보내 학교에 다니게 하는 걸 받아들일 진 모르겠지만요. 사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는 학교라 동의 안 하실 수도 있겠어요.”수현이 민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냉랭하게 말했다.“무슨 수를 쓰든 동의 받아내요.”“알겠습니다.”_조우림과 그의 아내 서가영은 퇴근 후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둘은 같은 회사에서 근무 중이라 늘 퇴근 후 함께 집에 간다. 점심엔 두 시간 동안의 자유시간이 주어지는데 집과 회사가 가까워 집까지 충분히 걸어갈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반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휴식을 취한 뒤 함께 회사로 돌아가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다.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매일이 그렇게 평화롭다.조우림은 이런 일상에 매우 만족하며 살고 있다. 이대로 쭉 별일 없이 살다가 죽어도 괜찮을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그의 아내도 생각이 같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그의 아내는 종종 그에게 쓸모가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다른 남자들은 돈도 많고 승진도 잘하는데 그는 회사에서 몇 년을 다녔는데도 여전히 제자리니 말이다.그녀의 불만은 그렇게 조우림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응어리가 졌다.하지만 그 정도 마음의 돌은 둘의 결혼 생활에 크게 해를 끼치진 않았다. 우림은 늘 불쾌한 마음도 자신의 깊은 곳에 꼭꼭 숨겨두고 살았다. 최근엔 그도 승진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심지어 이직을 할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마땅히 들어갈 만한 회사도 자리도 없다는 게 문제였다.“여보, 점심은 비빔면 어때. 오늘 좀 피곤해서 요리하기가 싫네.”가영의 말에 우림이 미간을 찌푸렸다.“어제도 비빔면 먹었잖아, 또?”“오늘 또 먹으면 어때서? 비빔면이 만들기 간단하니까 그러지. 싫으면 당신이 혼자 차려 먹든가.”“난 일하기도 바쁜데 어떻게 밥까지 해?”“너만 일하니? 난 놀고먹어? 근데 매일 나만 밥 하잖아. 먹기 싫으면 배달시키든지 알아서 해. 아님 주방 아줌마 한 명 쓰든가.”“배달? 주방 아줌마? 그건 돈 안 드는
우림은 이민재가 누군진 몰라도 진 씨 그룹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수현이란 이름도 그의 회사에서 꽤 유명한 이름이었다.옆에 있던 서가영도 그걸 아는지 순식간에 표정이 바뀌었다.“저희를 찾아오셨어요?”부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민재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는 모습을 보았다. 곧이어 민재는 두 사람의 이름을 거듭 확인하며 말했다.“조우림 씨, 서가영 씨. 본인 맞으시죠? 여기 사진도 맞으시고?”우림과 가영은 고개를 들이밀고 서류를 확인했다. 그곳엔 그들의 개인정보와 사진이 틀림없이 박혀있었다.“네, 저희 맞는데요. 근데 무슨 일로?”“여기선 좀 그렇고, 들어가서 얘기할까요?”부부는 곧바로 민재를 집으로 들였다.민재는 집에 발을 들인 후 빠르게 집 안을 훑었다. 역시 조사한 대로 두 사람의 형편은 그냥 그래 보였다. 아무리 여기저기서 돈을 벌어 모은대도 매달 나가는 생활비에 부동산 대출까지 내야 하니 넉넉하진 않을 거다. 게다가 아이까지 있으니, 학비도 부담될 테고. 그러다 보니 집 안을 세심히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거지.가영은 민재를 위해 차를 한 잔 내왔다.하지만 민재는 차는 입에도 대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두 분 오후에 또 회사 나가보셔야 하죠? 시간 너무 뺏지 않고 바로 본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민재는 찾아온 목적을 얘기했다.둘은 민재의 말을 들은 후 얼이 빠진 듯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겨우 정신이 들었다.“자,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정말이에요?”민재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습니다. 진수현 대표님께서 두 분 자녀분을 후원하실 겁니다.”“하, 하지만... 왜요?”서가영은 이해가 안 되는 듯 물었다.“그런 건 보통 빈곤가정이나 시골에 사는 아이들한테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 집 형편이 그렇게까지 나쁜 건 아닌 것 같은데요?”“그렇긴 하죠. 만약 후원이 목적이면 그런 아이들을 찾았겠죠. 하지만 저희 대표님은 다른 이유가 있으십니다. 두 분 형편이 안 좋아서가 아니라 두 분 조상님이 저희 대표님과 아주 조금의 친
조우림은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이거 사기 아니죠? 당신, 설마 부동산 매매 하는 사람이에요? 이런 수법으로 우리한테 비싼 집 팔아넘기려고 이러는 거 아니에요?”그러자 민재는 곧바로 부동산 증명서를 두 사람 앞에 꺼내 보이며 말했다.“돈은 저희 쪽에서 전부 부담하니 두 분은 그냥 몸만 오시면 됩니다.”20분 후, 둘은 다정하게 민재를 배웅했다. 그러면서 오후에 바로 사직서를 낸 후 아이의 전학 수속을 밟고 내일 새 학교로 보내겠다고 했다.민재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시간 잘 지켜주십쇼. 내일 아침엔 반드시 그곳에 계셔야 합니다.”“그럼요. 문제없죠. 잠을 안 자서라도 오늘 밤에 이사 마치겠습니다.”일을 순조롭게 마친 민재는 드디어 만족스럽게 길을 떠났다._윤아는 은행에 들러 현금 100만 원을 준비했다.아이를 키우게 된 후부터 그녀는 항상 아이들이 필요할 만한 물건들을 수시로 가지고 다녀야 했기에 들고 다니는 가방도 소싯적 즐겨 메던 미니 백이 아니라 수납공간이 큰 가방으로 바뀌었다.덕분에 현금 100만 원도 거뜬히 넣을 수 있었다.윤아는 그 사람이 필요하다는 현금이 고작 100만 원일 줄은 몰랐다.라이브 방송으로 그 많은 돈을 써대던 사람이 고작 100만 원으로 뭘 할 수 있다는 건지.윤아는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돈을 돌려받는 건 핑계일 뿐이고 진짜 목적은 그녀를 만나기 위함이다.왜 만나려 하는지는...윤아는 계획대로 두 자리를 예약하고 창가 자리만 상대방에게 알려줬다.그녀는 현아가 말한 대로 그 사람이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지켜볼 생각이다._한편, 수현은 오늘도 잔뜩 그늘진 얼굴로 레스토랑에 발을 들였다. 그는 가장 꼭대기 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가만히 있어도 우울한 기운이 마구 뿜어져 나왔다.옆에 앉아 있던 민재는 덩달아 오싹한 기분이 들어 겉옷 지퍼를 올리며 수현을 봤다.“대표님. 윤아 아가씨도 온다고 약속하셨는데 왜 아직도 화가 나 계십니까?”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수현의 괴이한 냉소였다
분노가 머릿속을 지배할 땐 이성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심지어는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이성마저 잠식되기도 한다.아무리 진수현이라도 사랑하는 여자 앞에선 예외가 아니다.하지만 이민재의 말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어느새 그를 지배하던 분노는 사그라들고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그래, 내가 화낼 자격이 있나?민재의 말처럼 벌써 5년이나 지났는데 아직 그녀가 미혼인 거에 감사하고 이렇게나마 만날 기회라도 있다는 거에 감사해야 하는 거였다. 무슨 신분으로든 지금 그녀를 만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이지 않은가.생각 끝에 수현은 민재를 한 눈 보고 말했다.“그러네요. 이 비서 생각보다 쓸모가 없진 않네요.”“그렇죠?”민재는 그의 칭찬에 화색이 돌았다.“그럼, 대표님. 올해 제 월급 인상은 어떻게 안 될까요?”수현이 코웃음을 쳤다.“그건 나중에 보죠.”“제가 시킨 일은 잘 진행했습니까?”“그럼요. 오늘 밤에 바로 옮겨오기로 했습니다. 내일 바로 아이를 데리러 가면 되겠어요. 그런데... 대표님은 두 아이 앞에서 그 친구가 대표님 아이라고 하실 생각입니까?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은데요.”“당연히 안 되죠.”수현이 서늘하게 말했다.“나더러 다른 애 아빠가 되라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그렇긴 하지. 다른 애더러 그를 아빠라 부르게 하는 건 아무리 연기라 해도 대표님이 허락할 리가 없다.“그럼 달리 생각해 둔 신분이 있습니까?”“조상이 친척이라면서요? 대충 친척인 척 부르면 되죠.”민재는 곧바로 간편한 호칭을 생각해 냈다.“그럼, 아저씨는 어때요?”삼촌?수현은 두 아이도 그를 아저씨라 부르던 걸 떠올리고 머리를 끄덕였다.“그러죠.”민재는 핸드폰을 꺼내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가 떠오를 때마다 수현에게 건의했다.“대표님, 건의할 사항이 있긴 한데 이걸 말씀드려도 될지...”“말해봐요.”“그게... 두 아이가 대표님께 완전히 마음을 열기 전까진 조 씨네 그 아이를 대표님 댁에서 같이 지내게 하는 게 어떨까 해
‘됐다, 침착해야지. 어쨌든 지금 그녀가 만나러 오는 남자는 나니까.’윤아는 가방을 메고 레스토랑에 들어왔다.그녀가 들어서자, 직원이 빠르게 나와 손님을 맞았다.“안녕하십니까.”“안녕하세요. 제가 예약한 자리가...”직원은 윤아를 예약한 자리로 안내했다.그리고 수현은 그 모습을 서늘하게 지켜보고 있었다.윤아가 예약한 자리는 창가다.수현은 살얼음 같은 무표정으로 직원이 윤아를 안내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예약된 창가 쪽이 아닌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왜지?직원의 실수인가? 아니면 윤아가 헷갈린 건가?수현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윤아는 어느새 계단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민재는 놀라서 옆에 있는 수현에게 말했다.“헉. 저 직원분 설마 이쪽으로 데려오는 건 아니겠죠? 어떡해요 대표님?”당황한 건 민재 뿐만이 아니었다. 내내 무표정이던 수현도 낯빛이 바뀌어있었다.계단은 아주 짧고 내려가는 길은 하나 뿐이다.민재는 가마 위 개미처럼 발을 동동 굴렀다.“어떡해요? 저희 이러다 들키는 거 아니에요?”사실 오늘 그녀를 불러낸 건 만나고 싶어서라기보단 다른 남자와의 만남을 무산시키려던 것뿐인데.지금 마주쳐버리면 그의 입장만 난처해질 게 뻔했다.“뭘 그리 긴장합니까.”수현이 잔뜩 긴장한 민재를 차갑게 한 눈 보며 말했다.“침착하세요.”“대표님...”침착하라고는 해도 이 상황에 어떻게 침착할 수가 있겠는가.“그냥 계단 오르는 겁니다. 지금 우릴 발견한대도 뭐 어때요. 설마 나와 그 남자를 연관 지어 생각하지는 못하겠죠.”민재는 그의 냉랭한 목소리에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하긴. 저희가 예약된 그 자리에 있던 것도 아닌데 설마 알아보겠어요? 괜히 티 내지만 않으면 괜찮겠죠.”말을 마친 민재는 테이블에 있던 커피를 들어 크게 한 모금 마셨다.그는 입에 커피를 머금은 채 고개를 돌려 윤아를 보았다. 직원은 그녀를 데리고 계단을 올라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민재는 커피를 삼키기 어려워졌다.
윤아보다 훨씬 키가 큰 수현이 그녀의 곁에 바짝 붙자, 그의 찬 기운이 순식간에 윤아를 덮었다.차고 강한 기운이다.윤아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 그에게서 멀어졌다.하지만 운 나쁘게도 뒤로 한 걸음 물러나자마자 발을 헛디뎌 몸이 휘청거렸다.수현은 손을 뻗어 뒤로 넘어질 뻔한 윤아의 허리를 붙잡고 끌어당겼다.윤아는 당기는 힘에 그대로 수현의 가슴팍에 부딪혔다.퍽!윤아의 향긋한 체향이 수현의 호흡을 파고들었다.수현은 나른한 몸이 그의 품으로 들어오는 걸 느꼈다. 잡고 있는 그녀의 허리도 유독 말캉하게 느껴졌다. 그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조롱하듯 말했다.“날 보는 게 그렇게 긴장될 일이야?”윤아는 몸을 바로 세우고 수현을 밀쳐냈다.“이거 놔.”하지만 오히려 더 꽉 잡는 수현. 그는 윤아가 아무리 밀어도 우뚝 선 산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레스토랑 직원은 이 광경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져서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어차피 아는 사인데 그냥 같이 앉아. 번거롭게 내려가지 말고.”수현은 그녀의 얇은 허리를 감싼 채 그의 테이블로 데려갔다.“누가 너랑 같은 테이블에 앉는대? 이거 놔!”윤아는 계속해서 몸부림치며 수현을 노려봤다.“그리고 네가 왜 여기 있어?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나 미행해?”“미행?”수현이 냉소를 터뜨렸다.“심윤아. 네 옆에 있는 직원한테 물어봐. 우리가 언제 왔는지 말이야.”윤아는 잠시 멈칫했다. 그를 보자마자 자신을 따라와 귀찮게 하려는 거라 생각했지 그가 먼저 와있었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민재는 다급히 몸을 일으키며 윤아에게 인사했다.“윤아 아가씨.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식사하러 오셨어요? 벌써 오후가 다 됐는데 바쁘셔서 식사도 아직 못하셨나 보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같이 앉지 않으시겠어요?”“괜찮습니다.”단칼에 거절 하는 윤아.“같이 밥 먹을 생각 없어요.”“네 회사 투자자여도?”“...”윤아는 아직도 그녀의 허리를 놔주지 않는 수현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지금 나 협박해
수현의 손이 풀리고 드디어 자유를 얻은 윤아는 곧바로 뒤로 두 걸음 물러나 수현과의 거리를 유지했다.수현의 시선은 그런 윤아에게 단단히 고정되었다.“윤아 아가씨. 그냥 저희와 같이 앉으시는 게 어때요? 마음 좀 푸시고요. 네?”윤아는 싹싹한 민재를 보며 그에게는 못되게 말할 수 없어 설명을 해줬다.“아뇨. 제가 약속이 있어서.”수현:“누구랑?”윤아:“너랑 뭔 상관인데?”“남자?”“네가 알아서 뭐 하게?”약속 대상이 누군진 알지만, 질투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민재도 옆에서 들으면서 식은땀이 삐질삐질 났다.‘대표님 지금 대체 뭐 하시는 거예요?’조금 전까지 평정심을 유지하기로 잘 얘기해 놓고 어떻게 만나자마자...하지만 윤아의 그 저항하는 태도와 말 한마디 없이 가려는 모습은 그가 진수현이었어도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거다.수현은 냉소를 터뜨렸다.“이선우야?”궁금하긴 했다. 만약 고독현 밤이 만나자고 밀어붙이지만 않았으면 지금쯤 이선우를 만나러 갔을까.윤아는 원래 누굴 만나는지 말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수현이 이렇게 나오자, 홧김에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래. 같이 밥 먹기로 했어. 오후엔 차도 보러 갈 거야. 용건 없으면 난 이만 가볼게.”말을 마친 윤아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선우와 통화하는 척하며 밖으로 나갔다.그러나 수현의 곁은 지날 때, 그가 윤아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이거 놔!”“차 보러 간다며? 같이 가줄게.”그는 윤아의 손목을 잡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민재는 멀어지는 둘을 멍하니 바라보다 거의 다 내려갈 때쯤에야 정신을 차리고 뒤따라갔다.“대표님. 식사 안 하세요?”하지만 돌아오는 건 사라져 버린 둘의 뒷모습이었다.민재:“...”이제 나올 음식은 다 혼자 먹게 된듯하다.하지만 그 많은 음식을 혼자 다 먹을 순 없으니 민재는 서둘러 수원에 사는 친구를 불렀다._윤아는 수현 때문에 바깥까지 끌려왔다. 그는 윤아를 억지로 차에 태운 후 두 손을 꽉 잡고 운전기사에게 출발하라 지시했다
강소영 얘기가 나오자 차 안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마치 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그러나 수현은 강소영이란 말에 눈을 게슴츠레 뜨고 말했다.“나랑 강소영은...”윤아는 고개를 홱 돌리고 쌀쌀맞게 말했다.“너랑 소영 씨가 뭐 어떻든 관심 없어. 나한테 피해만 안 가게 했으면 좋겠어.”그러자 수현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애초에 누가 깔끔하게 헤어지자고 했지? 심윤아, 이게 네가 말한 깔끔한 태도야? 아니면 뭔가 숨기는 게 있어서 깔끔한 이별이 안 되는 건가?”말을 마친 수현은 윤아를 주시했다.아니나 다를까, 윤아는 겉으로는 침착한 척하지만, 흔들리는 동공까진 감추지 못했다. 수현이 눈을 고정하고 있어 발견했지 아니면 알아보지 못했을 거다.윤아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고개를 돌렸다.“내가 그런 말을 했었다고? 기억 안 나는데?”그녀는 침착하고 담담하게 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그런 말 했다는 증거 있어?”“...”수현은 차가운 호수 같은 그녀의 눈동자와 눈을 맞추다가 웃음을 터뜨렸다.“이젠 억지라도 부리게?”“그래, 뭐.”수현이 여유롭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그럼, 말 안 한 거로 해. 어차피 지금 나한테 그딴 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내 결정에 아무런 영향도 없어.”윤아:“...”하긴, 진수현이 마음만 먹으면 윤아가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소용이 없거니와 그가 그 한마디 때문에 그녀를 놓아줄 리도 없다.윤아는 순간 한국으로 돌아온 게 잘못된 결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돌아올 때 아이들은 해외에 두고 창업에만 집중하는 게 더 나았을지도.하지만 윤아는 두 아이와 떨어져 있는 게 더 힘들었다.안 그래도 어릴 때부터 결핍된 사랑을 받아왔었는데 엄마마저 떠나버리면...윤아는 말없이 창밖을 보다가 고독현 밤에게 못 갈 것 같다는 문자를 보내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혹은 지금은 힘드니 약속 시간을 뒤로 미룰 생각이었다.윤아는 열심히 보낼 내용을 적고 있었다.수현은 그녀가 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