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나선 후 윤아는 서둘러 회사로 갔다.길이 막힌 탓에 윤아는 조금 지각해 버렸다. 게다가 가는 길에 어제 봤던 그 남자와 또다시 마주쳤다.윤아를 보자마자 안경을 낀 그 남자는 곧바로 쑥스러운 듯 웃으며 윤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안녕하세요. 이제 저희 동료네요?”윤아도 손을 뻗어 그의 악수에 응했다.“어제는 면접 보러 오신 줄 알았어요. 이미 여기 사원일 줄은 몰랐네요. 윤아 님은 어떻게 이 작은 회사에 오게 되신 거예요? 진 씨 그룹이 여기에 투자할 거란걸 미리 아셨던 거예요?”미리 알아?윤아가 낮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그게 아니더라도 전 이미 알고 있었을 거예요.”“하긴, 이미 여기 입사하셨으니 아실 수도 있겠네요. 전 그냥 입사 수첩에서만 봐서.”엘리베이터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 남자를 제외하고는 다들 딱히 얘기를 나눌 의욕은 없어 보였다. 윤아도 다른 낯익은 얼굴은 발견하지 못했다.아무래도 어제 윤아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 중 이 안경남 혼자만 면접에 붙은 모양이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윤아는 곧장 나가 왼쪽으로 몸을 돌렸다. 안경남과 엘리베이터에 탔던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레 그녀의 뒤로 함께 나왔다.한참을 걷던 윤아는 문득 다들 자기를 따라오는 걸 느끼고는 걸음을 멈추고 의아하게 그들을 쳐다봤다.“왜 절 따라오죠?”안경남은 안경을 쓱 올리더니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저희가 오늘 첫 출근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요.”윤아:“...”‘이 사람들 나를 사원으로 알고 있구나. 나 따라오면 사무실일 줄 아나 보네.’윤아를 따라가도 사무실이 나오긴 하지만 그곳은 사원용이 아닌 윤아의 개인 사무실이다.게다가 지금 보니 안경남뿐만 아니라 뒤에서 함께 걸음을 멈추고 서있는 저 사람들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그럴 수도 있지.윤아가 몸을 돌려 그들을 사무실까지 안내하려고 하던 그때, 마침 옆에서 걸어오던 오민우가 윤아를 발견했다.“대표님.”안경남과 다른 사람들:“?”대표님?누구?그들의 눈엔 물음
“가요. 안내해 줄게요.”민우는 윤아에게 인사한 후 사원들을 데리고 떠났다.안경남은 민우의 뒤를 터덜터덜 따라가며 말했다.“매니저님. 저분이 정말 저희 대표님이에요?”아까 분명 말했는데 또 묻는 걸 보니 민우의 촉으로 봤을 때 이 남자, 다른 생각이 있는 게 분명했다.“왜요, 대표님이 아니면 잘해보려고 했어요?”역시, 민우의 말 한마디에 그의 얼굴은 불탄 고구마가 되었다.“매니저님, 무슨 그런 말씀을.”“하하하!”민우는 통쾌하게 웃어주며 말했다.“자식, 쫄기는. 좋아하면 다가가 보세요. 제가 알기로는 대표님 아직 싱글이시거든요.”안경남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을 반짝였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고는 다시 풀이 죽었다.“됐어요. 저렇게 아름다우신데. 대표님이 아니라고 해도 전 안될걸요. 게다가 돈도 많으시니 더더욱 안될 거예요.”그의 말에 민우가 어깨를 툭툭 쳐주며 말했다.“음, 생각보다 자기 객관화가 잘 되네요. 그럼, 일이나 잘합시다. 출세하면 우리 대표님 같은 사람까지는 못 만나도 나쁘진 않을 거잖아요.”그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우르르 몰려갔다._신규회사라 윤아가 할 일이 아주 많았다. 윤아는 바쁜 일정을 보내고 점심때에야 민우와 함께 밥을 먹으러 내려갔다.구내식당이 아직 완공되지 않은 탓에 둘은 회사 근처의 식당으로 향했다.밥을 먹는 동안 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핸드폰 진동 소리에 확인해 보니 민재가 보내온 문자가 와있었다.「보고 올립니다. 대표님 오늘 점심 제때 챙겨 드셨습니다, 오버.」보고?오버?재밌는 단어 사용에 윤아의 입꼬리가 주체 못 하고 씰룩거렸다.그녀는 싱긋 웃으며 민재에게 답장했다.「OK.」병원.핸드폰 알림음에 수현이 곧장 민재를 쳐다보았다.“답장 왔어요?”민재는 핸드폰을 한 눈 확인하고는 수현에게 말했다.“네. 오긴 했는데…. 좀 짧게요.”그 말에 수현이 손을 뻗었다.“가져와 봐요.”민재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핸드폰을 수현에게 건넸다.수현은 윤아의 답장을
간결하고 차가운 네 글자에 수현은 오후 내내 침울했다.윤아는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쯤에야 병실에 도착했다.수현은 침대에 앉아 있었는데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윤아가 그의 앞에 앉자 그는 태연하게 말을 건넸다.“왜 이렇게 늦게 왔어?”윤아는 별다른 반응 없자 담담하게 수현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오는 데는 시간 안 걸리는 줄 알아? 밥하는 건 또 어떻고?”그 말에 수현은 입을 다물었다.윤아가 그에게 음식을 덜어주자 수현은 그제야 낮은 소리로 말했다.“오면 됐어. 굳이 음식까지 준비해 줄 필요 없어.”윤아:“내가 오고 싶어 오는 줄 알아?”수현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그럼 왜?”윤아는 굳이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비록 수현과 마주 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윤아는 등에 눈이 달리기라도 했는지 수현을 재촉했다.“빨리 먹어. 나 시간 없어.”수현은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윤아는 다 먹은 그릇을 정리하며 무표정한 얼굴로 수현에게 말했다.“내일 올게.”그리고는 수현이 입을 떼기도 전에 물건을 챙겨 나가버렸다.수현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윤아가 이렇게 빨리 가버릴 줄은 민재도 예상 못했다. 그녀는 마치 임무를 완수한 사람처럼 아무런 미련도 감정도 없이 곧장 가버렸다.수현:“왜 오는 거지? 설마 그냥 내 병세 때문에?”민재는 침묵했다. 그도 윤아가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그 뒤로도 윤아는 매일 아침저녁마다 밥을 가져다주는 일을 반복했다.달라진 점이 있다면 처음엔 수현에게 그저 묽은 음식만 먹이던 데로부터 점점 다양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다른 건 몰라도 음식 준비엔 정말 진심인 모양이다. 하지만 매번 병원에 올 때마다 윤아의 태도는 차갑다 못해 마치 수현을 병원 안의 환자 1 정도로 생각하고 매일 임무 완수를 하는 간호사 같았다.처음엔 작은 희망이라도 갖고 있던 수현도 이젠 별 기대를 하지 않는 듯 보였다. 이런 상태는 3일 내내 지속되었다.4일 째 되는 날, 평소
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거래?”이미 말도 꺼냈겠다, 이제 시간도 꽤 흘렀으니 윤아는 숨기지 않고 수현에게 다가가 말했다.“요즘 회복은 좀 잘 된 것 같지?”수현은 입을 꾹 다문 채 말을 하지 않고 윤아가 말을 잇길 기다렸다.“할머님을 만나고 싶어.”그녀의 말에 수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그래서?”“요 며칠 밥을 가져다준 건 네 회복을 도우려는 거였어. 이제 네가 날 데리고 할머님 좀 만나 뵙게 해줘.”수현은 윤아를 잠시 바라보더니 실소를 터뜨렸다.어쩐지 그날 울고 난 뒤로 화장실 한 번 들어가더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했다. 자기를 보러 병실에 꼬박꼬박 음식까지 준비해 온 것도 다 그 이유였나.그렇게 오래 견지하더니, 성격이라도 바뀐 줄 알았는데 다 목적이 있는 거였다.수현은 불현듯 뭔가 떠오른 듯 물었다.“할머니 아니었으면 매일 이렇게 올 일도 없었단 거네?”윤아가 차갑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밥도 다 먹었고 휴식도 잘했으면 됐지. 뭘 굳이 따져.”“허.”수현이 싸늘하게 웃었다.“네 눈에 대체 난 무슨 사람이야? 할머니 만나고 싶다고 하면 내가 허락 안 할 줄 알았어?”윤아는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안 거절했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해?”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곁에 있지 못했는데 몇 년이나 지난 지금 할머니 무덤도 한 눈 못 보게 할 리가 있겠는가.수현은 짜증이 치밀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자기한테 했던 일들이 단지 거래 목적이었다는 생각만 하면 가슴이 꽉 막혀오는 기분이었다.‘난 또...’여기까지 생각한 수현은 좌절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어쩐지 갑자기 아침저녁으로 찾아오면서 그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수현은 생각 끝에 결심을 내렸다.“퇴원 수속 해줘. 오후에 데려가 줄게.”그의 말에 윤아는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윤아가 아무 말이 없자 수현이 시선을 올려 그녀를 바라봤다. 윤아를 보는 그의 두 눈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깊고 어두웠다.“왜. 설마 오후에 시간이 안 된다는 말을 하려
민재는 그 자리에 선 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대표님. 정말 퇴원하시게요? 아직 몸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으셨는데요.”그의 말에 수현이 인상을 찌푸렸다.“그 사람은 신경도 안 쓰는거 못 봤습니까? 지금 퇴원하라잖아요.”민재는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아니죠. 퇴원한다는 얘기는 대표님이 홧김에 하신 얘기고 윤아 아가씨는 그런 말씀 안하셨는데요.”수현:“...”“게다가 대표님께서 오늘 물어보시지 않았다면 윤아 아가씨도 오늘 말씀드리지 않았을겁니다.”그의 말에 수현의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그럼 내일은, 모레는?”“대표님. 만약 윤아 아가씨를 계속 보고 싶으시면 먼저 물어보시지 말았어야죠. 사람은 가끔 너무 딱딱하게 굴면 안된다고요. 원래 대표님이 짝사랑하시는 입장인데 이렇게 모든걸 다 너무 확실히 하려고 하시면 윤아 아가씨가 넘어오겠어요?”요며칠 함께 있으면서 민재는 간땡이만 부은 모양이다. 윤아와 관련된 일에서는 그가 하는 조언들이 만약 효과가 있으면 화를 내지 않는다는 걸 발견한 뒤로는 더욱 대범해졌다.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그의 말을 새겨 듣는 수현을 보며 민재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아무래도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민재가 수현보다 경험이 많을수 있었다._오후, 윤아는 약속한 시간에 맞춰 수현의 호텔 로비에 도착했다.그러나 윤아는 곧바로 들어가는 대신 호텔 입구에 있는 벤치에서 그를 기다렸다.윤아는 내일 곧바로 돌아올 예정이었기에 짐을 많이 챙기지 않았다.그리고 두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잠시 앨리스에게 맡겼다.비록 앨리스와는 최근에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지만 윤아가 도움이 필요할 때면 윤아가 일에 집중할수 있도록 곧바로 다른 일은 제치고 도와주었다.그러면서 둘 사이에 있었던 마음속 응어리도 조금씩 풀어지고 있었다.윤아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일찍 온 탓에 그녀는 2분 정도 기다렸다가 민재에게 연락했다.「비서 님, 내려오셨나요?」민재는 3분이나 지나서야 그녀에게 답장을 했다.「좀 늦을것 같습니
“그래요?”옷 갈아입는 게 이렇게까지 당황할 일인가?윤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또 피를 토한 건 아니겠지?그럴 리가. 요 며칠 눈에 띄게 건강이 회복됐었는데.비록 입원 시간이 길긴 했지만 오늘이 퇴원일은 아닌 건 윤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퇴원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자기가 홧김에 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그러니 윤아는 굳이 자기가 나서서 말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정말 그가 또 피를 토한 거면...윤아는 조금 후회되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참았다 얘기할걸.아침에 한 얘기가 또 그를 자극한 모양이다.윤아는 곧장 안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윤아의 뒤에는 민재가 따라오며 그녀를 말리려 했다.윤아가 미간을 찌푸린 채 안방 문을 열려고 손을 뻗는 순간, 문이 저절로 슥 열렸다.그리고 그곳엔 이미 옷을 다 입은 수현이 윤아의 앞에서 그녀의 길을 막고 섰다.윤아는 수현을 한 눈 보았다.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수현은 잘생긴 용모에 차가운 기운까지 그대로였다.“뭐 해?”“괜찮아?”윤아는 마치 무슨 단서라도 찾으려는 듯 그의 수려한 얼굴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윤아가 자신을 유심히 살펴보려 하자 수현은 옆에 서 있는 민재와 눈빛을 교환한 후 무뚝뚝한 얼굴로 앞으로 나아갔다.“안 괜찮을게 뭐가 있어?”앞으로 몇 걸음 걸은 수현은 윤아가 뒤따라오지 않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할머니 뵈러 간다며? 안 가?”윤아는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 몸 안 좋으면 며칠 뒤에 가도 돼.”“그럴 필요 없어.”아직도 그녀에게 화가 나 그러는 건진 모르겠지만 수현은 윤아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리고는 윤아가 더 생각할 틈도 없이 밖으로 걸어 나갔다.민재는 덩달아 머쓱해져서 윤아를 재촉했다.“저희도 얼른 가죠.”말을 마친 민재는 캐리어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윤아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따라갔다.윤아는 원래 조수석에 앉을 생각이었는데 저번에 동부 승마장에 갔을
만약 수현의 낯빛이 이렇게 창백하지 않고 또 윤아와도 딱히 모순이 없다면 그녀도 이렇게까지 의심하진 않았을 거다.하지만 지금의 수현은 걸음걸이도 이상하고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그건 그의 비서인 이민재도 마찬가지였는데 둘이 쌍으로 아주 수상했다.생각 끝에 윤아는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내가 어디 앉든 뭔 상관인데? 잊지마, 이건 거래야. 난 뒤에 앉을 거야.”말을 마친 윤아는 수현이 뭐라 하든 차 문을 열고 뒷좌석에 앉았다.마음이 평온해졌다.윤아가 차에 탄 후 민재는 수현을 힐끗 쳐다보더니 눈썹을 씰룩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대표님. 그냥 이렇게 갈까요?”수현은 아무 말 없이 표정만 구기고 있었다.이에 윤아가 선수를 쳤다.“가죠. 이 비서님.”“네.”차가 출발한 후, 윤아는 이따금 옆에 앉은 수현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러나 그는 윤아에게서 떨어져 창문 쪽에 찰싹 붙어 앉아 뒤통수만 보여줬다.덕분에 윤아는 수현의 표정을 전혀 볼 길이 없었다.수현의 미세한 표정과 행동으로부터 위병이 재발한 것인지 보려고 했던 윤아의 계획이 완전히 망가진 셈이다.하지만 요양한 지 꽤 되었으니 그럴 일은 없지 않을까?공항에 거의 다 와 갈 때쯤, 윤아는 선우의 연락을 받았다.“남성으로 돌아가려고?”선우는 최대한 자신을 억제하려고는 했으나 윤아는 수화기 너머로 그의 가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마치 격하게 달린 후 숨이 채 돌아오기 전에 그녀에게 전화를 건 사람처럼.윤아는 똑똑히 들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응. 내일 돌아와.”옆에 있던 수현은 윤아가 전화를 받자 언짢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선우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다시 입을 뗐다.“걔랑 같이 가?”“응.”다시 조용해졌다.“윤아야. 왜 가는건지 물어봐도 돼?”윤아는 그의 질문에 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중요한 볼일이 있어서 남성에 다녀오려고.”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선우는 그녀의 말뜻을 알아들은 듯 말했다.“그래. 조심히 다녀와. 올 땐 내가
“왜? 비즈니스석 타면 내가 널 어떻게 하기라도 할까 봐?”윤아는 차분하게 표를 거두며 말했다.“돈 아끼려는 거야. 너도 알다시피 내가 회사 개설 중이라.”그녀의 말에 수현이 눈썹을 올렸다.“투자 해줬잖아.”“투자는 받았지만 아직 회사에 돈이 잘 돌아가지는 못해서.”수현:“...”나름 이유도 잘 준비해온 모양이다.잠시 후, 수현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이 말을 끝으로 둘 사이에 다시 정적이 흘렀다. 수현은 의자에 앉아 눈을 붙이고 있었는데 입술이 창백해 얼굴색이 말이 아니었다.사실 윤아도 홧김에 저지르지만 않았어도 오늘 당장 남성으로 떠날 생각은 없었다.아직 회복도 덜 된 사람을 조급하게 끌고 왔으니 아마 꽤 힘들 것이었다.하지만 뭐, 이참에 버릇도 고치면 좋지 않나.수현과 민재는 비즈니스석이라 먼저 등기할 특권이 주어졌다.그 특권이 없는 윤아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그렇게 윤아는 그들과 갈라져 움직였다.민재는 수현의 뒤를 따랐는데 그에게서 풍기는 어두운 기운에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대표님, 걱정 마세요. 비행기 타면 제가 윤아 아가씨와 자리 바꿀게요.”그러나 수현의 어두운 기운은 줄어들지 않았다.민재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위로했다.“대표님. 사실 윤아 아가씨께서 이코노미석을 사신 게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몰라요. 만약 비즈니스석을 사셨다면 그 기세로 절대 대표님과 가까운 좌석을 사지 않으셨을 거잖아요. 근데 전 가능하다고요. 제가 윤아 아가씨와 자리를 바꾸면 그 자리가 바로 대표님 옆자리 아닙니까. 가까이 있는 게 더 좋지 않겠어요?”이번에도 수현은 민재의 말에 넘어갔다.수현은 그윽하게 민재를 쳐다봤는데 민재는 그가 무슨 태클이라도 걸려는 건 줄 알고 바짝 긴장했다.그러나 수현은 ‘큼’하고 목을 가다듬더니 말했다.“잘했네요. 근데 먼저 자리 바꾸는 데 성공해야겠죠.”“걱정하지 마세요, 제게 다 방법이 있어요.”민재가 호언장담했지만 수현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는 비행기에 타기도 전에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