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이 점에 대해 수현은 이미 확실한 검증을 했다.비록 아주 매정하게 행동하고 모진 말들을 내뱉었지만...갔다가 다시 돌아왔었다.그리고 자신의 병원에 데려다주고 여기서 민재가 오기를 기다렸다.이건 뭘 뜻하는가?그녀는 자신을 걱정했고 심지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려웠다는 것을 설명한다.그렇다면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끝에 닿은 게 아니었다. 그는 아직 기회가 있었다.원래 윤아에게 자신의 병세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이 병세는 뜻밖으로 그에게 다른 일을 알려주었다. 그는 이걸 역이용하려고 한다.민재는 지금 밖에서 전화하고 있었다.사실 그는 윤아의 연락처가 없었다. 하지만 훌륭한 비서로서 그는 직접 친구에게 전화해 윤아의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민우는 두말없이 윤아의 연락처를 그에게 주었다."고마워요. 다음에 제가 밥 살게요."번호를 가진 후, 그는 얼른 윤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때 윤아는 금방 차를 불렀다. 지금은 차가 가장 많을 때다 보니 기다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마침 떠나려고 할 때 핸드폰이 울렸다."여보세요?""윤아 아가씨, 저 좀 살려주세요!"전화를 받자마자 윤아는 민재가 미친 듯 소리 지르는 것을 들었다.그녀는 핸드폰을 멀찍이 가져가 몇 초 귀를 진정시킨 후 다시 가까이했다."이 비서님?"비록 두 번 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지난 시간이 짧으니 그녀는 민재의 목소리를 기억했다."네, 저예요."민재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이에요?"그의 말투가 조금 이상한 것 같아 윤아는 기사에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손짓을 한 후 다시 물었다."윤아 아가씨, 대표님께서 깨어나셨습니다."수현이 깨어났다는 말이 듣자 윤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네, 그럼 다행이네요.""하지만 남은 링거를 맞지 않으려고 해요. 심지어 퇴원 절차를 밟으라고 했어요."이 말을 듣자 윤아는 눈썹을 찌푸렸다.그렇게 아프면서 링거도 맞지 않고 심지어 퇴원을 하려 한다고?도대체
민재는 잠시 멍해 있다가 얼른 달려갔다. "대표님!"-오 분 후.수현은 썩을대로 썩은 표정으로 병상에 앉아 있었는데 옆엔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한 간호사가 있었다."아니, 이렇게 아프면서 왜 가만히 있지 않아요? 링거 맞으면서 바늘을 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도 아프지 않아요?""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민재는 어쩔 수 없이 곁에서 수현 대신 사과했다."정말 죄송해요."간호사는 생기 없이 병상에 앉아있는 수현을 한눈 본 후 또 말했다."다신 바늘 빼지 마요. 병원은 이미 충분히 바쁘니까 굳이 일 만들 필요 없어요."말을 마치고 간호사는 병실에서 나갔다. 그녀가 간 후, 병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이 해프닝 때문에 병실에 있던 아저씨와 아이는 모두 수현을 보았다."엄마, 이 오빠가 아까 피를 엄청 많이 흘렸어요."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수현은 짚으며 말했다.아이 엄마는 아이를 꼭 껴안았다."간호사 말 듣지 않고 함부로 주삿바늘을 빼서 피를 흘린 거야. 그러니까 우리 딸은 꼭 말 들어야 해. 아니면 이 오빠처럼 될 수 있어.""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꼭 말 잘 들으세요."민재는 머쓱해 머리를 긁적이며 수현은 향해 말했다."대표님, 오늘 정 입원하기 싫으시면 남성으로 돌아갈까요? 그리고 의사를 불러 몸조리해야 할 것 같아요."남성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수현은 인재를 차갑게 쏘아보고는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이민재: "..."하지만 수현이 스스로 누운 것을 보자 이렇게 생각했다.이제는 받아들이신 건가?다행이었다. 잠시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도 좋은 일이었다.-윤아는 돌아간 민우와 오늘 투자 일에 대해 의논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회사에 도착해보니 소파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선우와 마주쳤다.그녀가 돌아온 것을 보자 선우는 몸을 일으켜 그녀의 가방을 들어주었다."돌아왔어? 어떻게 얘기했어?"말하면서 그는 윤아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는데 행동이 아주 친밀했다.곁에 있던 민우는
윤아는 의식적으로 반박했다.“아쉬운 게 아니라 회사를 생각해서 그런 거야. 회사를 운영하고 발전시키는 데 투자가 필요하잖아.” “오 매니저는 예전에 대기업의 관리층이었어. 그리고 진씨 그룹도 투자받기 아주 좋은 선택지였고. 그리고 난 이미 다 잊었고 더는 신경 쓰지도 않아. 그러니까 콜라보를 해도 상관없어. 난 그 어떤 영향도 받지 않으니까.”“이제 남성에서 일할 때 진수현 만나기만 하면 피해야 해?”“그래? 영향받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어?”“응, 장담할 수 있어.”“좋아. 그럼 나랑 약속해.”심윤아: “뭐?”“나랑 사귀어줘.”선우의 아름다운 얼굴엔 처음으로 웃음과 부드러움이 사라졌다.윤아는 이런 선우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몰아붙일 줄은 몰랐다.“너...”“아무 영향 없다며? 아까 차에서 오 매니저가 전화 오기 전, 뭘 말하려고 했어?”선우는 윤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아무 영향 없다고 했지? 그럼 알려줘. 아까와 비교했을 때 지금 생각이 바뀌었는지 말이야.”윤아는 침묵했다.자신이 선우의 말에 반박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아서였다.그 생각은 빠르게 생겼고 또 빠르게 사라졌다.그때 선우에게 너만 원한다면 한번 시도해 볼 수 있다고 말하려고 했었다.하지만 지금은 이런 충동이 사라졌다. 그 이유에 대해 그녀 자신도 잘 몰랐다.생각은 원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니까.“윤아야.”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자 선우는 재촉했다.“대답해 줘.”윤아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우울하게 말했다.“네 말이 맞아. 아무 영향 없는 게 아니었어. 하지만 이런 영향은 시간 때문에 생긴 거지 다른 사람과 상관없어.”“다른 사람과 상관없다고?”선우는 가볍게 웃었다.“마음속으로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응, 당연하지.”일 초 후, 큰 손이 윤아의 턱을 부드럽게 감쌌다. 선우는 그녀의 턱을 들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몸을 굽혀 얇은 입술을 윤아의 이마에 대였
“좋아, 사흘.”원하던 대답을 얻은 선우는 드디어 만족한 듯 윤아를 놓아주더니 예전과 같은 웃음을 회복했다.“오 매니저랑 할 말이 있는 것 같으니까 불러올게.”말을 마치고 선우는 나갔다.그가 가니 원래 긴장한 나머지 경직되었던 그녀의 몸은 순간 느슨해졌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건 마치 바닷가에서 죽어가던 물고기가 다시 물속에 들어가 정상적으로 호흡을 할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윤아는 소파에 기대 조금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선우는... 정말 많이 변했다.예전에 그녀는 선우가 온화하고 상냥한 줄 알고 있었다.하지만 오늘 그의 태도는 아주 강력했고 굳건했다. 만약 그의 말을 따라주지 않는다면 이렇게 쉽게 그녀를 놓아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밖에서 소리가 들려오더니 민우가 사무실에 들어왔다.“사장님?”민우는 사무실에 들어온 후, 또 몰래 밖을 보았다. 그는 윤아와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선우가 엿들을까 봐 다시 밖에 달려가 선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신비스럽게 윤아에게 다가갔다.“사장님, 괜찮으세요?”윤아는 그가 갑자기 다가오자 깜짝 놀랐다.“뭐 하는 거예요?”“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사장님께서 괜찮나 해서요.”윤아는 어이가 없었다.“난 아주 괜찮으니까 나랑 멀리 떨어져 있어요.”“쳇.”민우는 그녀의 말대로 멀리 떨어지는 대신 그녀의 곁에 앉았다. 다만 남녀 사이의 거리를 유지했지만 말이다.“어떻게 됐어요? 저분 말을 따르기로 했어요?”이 말을 듣자 윤아는 눈썹을 찌푸렸다.“우리가 하는 얘기 훔쳐 들었어요?”“에이, 훔쳐 들은 게 아니라 밖에서 다 들리던데요. 두 분 목소리가 너무 높아서요.”“...”“정말 저분과 사귈 거예요? 진 대표님과 다시 만나는 게 아니고요?”“다시 만나긴 뭘 만나요. 헛소리하지 마요.”“하지만 진 대표님 한 일을 보니 다시 만나고 싶어 하던 눈친데요.”윤아는 입꼬리를 올렸다.“웃기네요.”어떻게 수현과 다시 만나겠는가. 예전에 얻은 교
하늘이 어두워졌다.병원.민재는 병상 옆에 앉아 우울한 얼굴로 테이블에 놓은 음식을 본 후 아무것도 먹지 않는 수현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대표님, 하루 동안 뭐라도 좀 드셔야지 않겠어요?”그러나 수현은 이어폰을 꽂은 후 침대에 기대 핸드폰만 조용히 보고 있었다.민재는 가까이 다가가 한 눈 보았는데 핸드폰 스크린엔 두 아이의 라이브 방송이 자리 잡고 있었다.그는 어이가 없었다. 두 아이의 라이브 방송을 볼지언정 밥을 먹기 싫어했다. 민재는 마비된 표정으로 스크린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만약 인스타에 계정을 만들고 두 아이에게 메시지를 보내 친구가 그들의 라이브 방송을 보기 좋아하지만 지금 많이 아프고 밥도 먹기 싫어하며 치료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후 도움을 청하면 어떨까.꽤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만약 두 아이가 라이브 방송에서 이 친구에게 밥을 잘 먹으라고 한다면 수현은 아마 그들의 말을 들을 거다.이렇게 생각한 민재는 가만히 핸드폰을 꺼내 인스타 계정을 만들기 시작했다.평소 일이 너무 바쁘기 때문에 민재는 인스타를 놀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전화번호로 새 계정을 만들었다.그는 한참 동안 연구한 후에야 라이브 방송을 볼 수 있었다.하지만 바로 이때 수현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쏘아보았다.“지금 뭐 합니까?”“아무것도 아닙니다.”민재는 가볍게 기침한 후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입을 열었다.“대표님께서 계속 보시길래 저도 아이들이 귀여워 보여서요. 그래서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보고 싶었어요.”수현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한참 보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거두었다.민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또 가만히 댓글을 작성했다.[귀염둥이들, 안녕. 숙제 하는구나? 어머, 귀여워라.]원래 긴 문장을 보낼 생각이었지만 손가락이 뭘 잘못 눌렀는지 이미 보내졌다.새 계정이기 때문에 댓글을 보내자마자 수현은 또 서늘한 시선으로 그를 쏘아보았다.민재는 켕기는 게 있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보기만
[빨리 낫길 바라요!]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착했다.훈이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귀엽고 완벽한 얼굴이 카메라에 확대되었다.“헐!”핸드폰을 들고 있던 민재는 순간 참지 못하고 감탄했다. 그리고 확대된 이 얼굴을 놀라서 바라보았다.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수현을 축소한 것 같았다.그래서 민재는 가끔 고개를 들어 수현을 보고는 또 고개를 숙여 스크린에 나온 훈이를 보았다.보면 볼수록 이상했다.결국 그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예전에 그는 수현이 아이들의 라이브 방송을 본다는 것과 아이들이 수현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그런데 그는 오늘 처음으로 확대된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완벽한 얼굴은 비록 애티를 벗지 못했으나 이미 차갑고 듬직한 미래 모습을 연상할 수 있었다. 이건 수현과 완전 흡사했다.예전에 성형한 아이들은 비록 비극이었지만 여러 가지 문제점을 보아낼 수 있었다.하지만 눈앞의 이 아이는 그저 보드라운 피부만 보였다.“저 봤어요. 이씨 성을 가진 분,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민재는 이 소리에 얼른 정신을 차리고 댓글을 보냈다.[아저씨라고 부르면 돼. 아, 내 친구는 성이 진씨니까 진 아저씨 혹은 형이라고 부르면 돼.]형이라면 더 젊어 보이기 때문에 수현이 기뻐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보냈다.하지만 다 보낸 다음 조금 이상한 것 같아 얼른 말을 보탰다.[됐어.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 나이도 꽤 많은데 형이라고 부르는 건 아닌 것 같아.]이 댓글을 본 수현: “...”민재는 어쩔 수 없이 헤헤 웃었다.그쪽에 있던 훈이는 카메라를 보며 진지하게 말하기 시작했다.“아저씨, 안녕하세요. 저희 라이브 방송을 봐주셔서 고마워요. 어떻게 아픈진 모르겠지만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치료받으셔야 나아요.”아이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언어 능력은 대단했다. 민재가 원하던 걸 그대로 말해주었다.그는 참지 못하고 핸드폰 스크린에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잘했어.”“전 아저씨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랄
쓸모가 있었다.민재는 그 웃음을 본 순간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그는 기쁜 마음으로 물었다.“대표님, 그럼 뭐라도 드실래요?”하지만 수현의 대답은 그에게 차가운 물을 퍼부은 것만 같았다.“내가 언제 먹겠다고 했어요? 쓸모없는 짓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요?”민재는 자리에 멍해 있었다.“네? 아까 분명...”웃음이 걸려있는 눈은 지금 다시 평소 그 차갑고 다가가기 어려운 수현으로 돌아왔다.수현은 민재의 말에 대꾸하기 귀찮았다. 머릿속에는 또 아까 두 아이가 그에게 건강하길 바란다는 말이 떠올랐는데 마음이 따뜻해졌다.신기했다. 스크린을 통해 모르는 아이들에게 치유를 받는 기분 말이다.수현은 손가락을 움직여 또 아이들에게 선물을 보냈다.“어?”윤이는 핸드폰에 뜨는 선물을 보냈다는 메시지를 보더니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말했다.“고독현 밤 아저씨도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선물 고맙습니다.”아이의 귀여운 모습은 비행기에서 봤을 때랑 똑같았다.하지만 지금 고도현 밤 아저씨는 아이에게 낯선 사람일 뿐이었다. 윤이는 비행기에 있을 때도 그를 몰랐고 라이브 방송할 때도 비행기에서 만났다는 것을 몰랐다.곁에 있던 훈이는 고개를 긁적였다. 이 아저씨가 또 선물을 보낼 줄 몰랐다. 매번 보내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훈이는 이 아저씨가 계속 선물을 보내는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그는 돈도 많았고 시원시원했다.그리고 이건 훈이가 고독현 아저씨에 대한 유일한 인상이었다. 매번 윤이와 라이브 방송을 할 때 이 아저씨는 꼭 와서 선물을 보내곤 했다.그래서 윤이는 계속 고맙다고 인사했고 훈이도 함께 말했다.“고독현 밤 아저씨가 보낸 선물 고맙습니다.”민재는 누가 라이브 방송에서 계속 선물을 보내는 것을 보았다. 여러 가지 색깔의 선물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을 보며 그는 드디어 눈치챘다.“대표님, 설마 대표님께서 이 고독현 밤에세요?”헐, 이 정도 선물이면 돈을 얼마나 썼다는 거야?하지만 이 돈은 민재에겐 많지만
“아가씨, 전화 왔어요. 나머진 제가 할게요.”“그래요.”윤아는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들고 주방에서 나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윤아 아가씨.”익숙한 목소리에 윤아는 멈칫했다.“이 비서님?”왜 또 전화했지?“윤아 아가씨,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죄송합니다.”윤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무슨 일인가요?”민재가 말을 하려고 했을 때 수현은 턱을 살짝 올리면서 스피커를 켜라고 했다.그래서 수현의 시선 하에 민재는 별수 없이 스피커를 켰다. 그리고 더듬거리며 말했다.“그게요, 대, 대표님께서 아직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어요. 계속 먹는 걸 거부하거든요. 그러니까 아가씨께서...”“이 비서님.”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아는 그를 불렀다.“진 대표는 이미 성인이에요. 먹든 말든 그건 자신이 알아서 할 겁니다. 만약 먹지 않는다면 아마 자신의 건강에 생각이 있어서겠죠.”말을 마치고 윤아는 전화를 끊었다.이민재: “...”그는 핸드폰을 들고 고개를 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왜 스피커를 켜 수현에게 들리게 했는지 엄청 후회되었다.정말 망했다.그는 고개를 들지 않아도 수현에게서 뿜기는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대, 대표님.”“꺼져요”민재는 감히 말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핸드폰을 들고 묵묵히 몸을 일으켰다.수현은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는데 지금은 라이브 방송을 볼 기분도 없어 손을 뻗어 핸드폰을 껐다.그래서 그는 라이브 방송에 나타난 부드러운 여자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윤아, 훈아. 오늘 라이브 방송 시간 끝났어.”만약 수현이 조금만 더 봤더라면 이 여자 목소리의 주인이 윤아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을 거다.“그럼 오늘 라이브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 여러분 안녕.”라이브 방송을 끈 후 윤아는 핸드폰을 거두었다.“오늘 숙제 다 했어?”“네, 다 했어요. 엄마.”윤이는 뭔가 떠오른 듯 윤아의 어깨를 안으며 애교를 부렸다.“엄마, 아까 누가 엄마한테 전화하지 않았어요?”윤아는 멈칫한 후
-며칠 후. 현아는 해외로 떠났다. 떠나기 전 그녀는 윤아에게 내뱉은 말을 주워 담아야겠다고 했다. 현아는 남자친구가 너무 보고 싶었고 그래서 결국 남자친구와 함께 일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던 윤아는 그런 현아가 전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현아가 출발하기 전 윤아는 조심히 가라는 인사를 전했다. 윤아는 생각했다. ‘주한 씨 추진력이라면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현아에게서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겠네.’역시나, 윤아의 예상대로 6월 1일쯤. 윤아가 곧 무대에 오를 두 아이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주한이 프러포즈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8월로 정해졌다. 1월에 고백하고 4월부터 연인으로 발전, 6월엔 프러포즈, 8월엔 결혼식. 그 놀라운 진행 속도에 윤아는 입이 떡 벌어졌다. 특히나 현아는 처음엔 그렇게 거부감을 드러내더니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토록 빠른 속도로 결혼까지 골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주한이 적극적으로 현아에게 다가간 덕분이었다. 주한이 현아의 마음을 얻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시기에 뭘 해야 하는지 그는 이미 충분한 준비를 마쳤고, 그 철저한 준비성을 당해낼 사람은 없었다. 다만 윤아가 놀란 것은 주한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공세를 퍼부으면서도 아직 잠자리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윤아에게 그 일을 털어놓는 현아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가 프러포즈를 받아줬는데 아직도 예전처럼 자제한다는 건 혹시 날 아예 안 좋아했던 거 아냐?”윤아는 현아의 사유 방식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너 대체 무슨 생각하는 거야? 주한 씨가 널 안 좋아하면 결혼하려고 했겠어? 주한 씨가 얻는 게 뭔데?”“그건 그래. 그럼 대체 왜?”“그거야 모르지. 그건 너희 연인 사이의 일이잖아. 난 끼고 싶지 않아. 궁금하면 네가 직접 알아봐.”‘알아보라고?
설 연휴 후. 윤아는 우진에게서 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선우가 드디어 생각을 바꿔 더 이상 방에 갇혀 있고 싶지 않다고 이곳을 떠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윤아는 가슴 한편을 꽉 막고 있던 응어리가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요? 정말 잘됐네요. 진 비서님은요? 제가 뭘...”윤아는 우진을 자기 곁에 두려 했다. 하지만 우진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이미 선우 곁에서 오랫동안 보좌했던 터라 그의 곁에 있는 것이 편하다며 계속 선우 옆에 남겠다고 했다. 모두 자기만의 귀속이 있는 법이었기에 윤아는 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우진에게 만약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당부했다. 그날 밤, 윤아는 이별을 고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예전에 엄청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어. 하지만 난 그 애에게 많은 폐를 끼쳤지. 심지어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 애를 다치게 하기도 했어. 미안한 마음뿐이야. 그럼에도 난 여전히 걔를 사랑해. 그리고 앞으로 행복하기를 바라.][안녕.]내용은 간단했다. 하지만 그 문자를 작성하기까지 이선우는 그가 갖고 있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했다. 메시지를 전송한 후 선우는 윤아의 답장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에겐 그녀의 답장을 볼 용기도 없었다. 선우는 U-SIM을 뽑아 그대로 휴지통에 버렸다. 더는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이젠 뒤돌아볼 기회조차도 없었지만. 윤아는 지금 그녀가 사랑하고 그녀를 사랑해 주는 사람 곁에서 앞으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낼 것이었으니까. -4월 1일쯤, 현아와 주한은 연인으로 발전했다. 같은 시기, 현아가 투자한 과일 가게가 아파트 단지에 오픈했다. 오픈 날 윤아는 현아에게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주한 씨 회사로 안 돌아가려고?”현아가 입술을 짓이겼다. “내가 없으면 주한 씨 회사가 안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왜 주한 씨 회사로 돌아가?’“주한 씨 회사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라, 네가 만약 집에서 과일 가게를
안 그래도 현아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훌륭한 남자를 만났으니 선희도 당연히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주한은 인품이 좋아 보였기에 선희는 가운데서 두 사람을 팍팍 밀어줄 의향이 있었다. 선희가 씩 미소 지으며 말했다. “주한아, 이 절에서 인연을 빌면 신통하게 들어주신대. 도착하면 성심을 들여 절을 올리렴.”말을 마친 선희는 일부러 현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현아 너도. 왔던 김에 같이 가서 기도드려.”잘 걱도 있다 갑자기 이름을 불린 현아는 순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차마 말을 내뱉지 못했다. 주한은 시선을 내린 채 빨개진 현아의 볼과 귓불을 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이번엔 전혀 헛된 걸음은 아닌 듯했다. 수현의 가족은 정말 따뜻한 분들이었다. 만약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어 이런 가정을 꾸릴 수만 있다면 정말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네. 제가 간절히 기도를 드려 볼게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선희가 손을 내저으며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그들 일행은 10여 분 후 산꼬대기에 도착했다. 날씨가 퍽 좋았던 지라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서니 구름도 더 가까이 느껴졌다. 발아래엔 산봉우리가 첩첩이 이어져 있었고 멀리 보이는 마을 풍경까지 더해져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수많은 여행객들은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풍경 사진을 찍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풍경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기도 했다. 윤아를 포함한 그들도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나서야 기도를 드리러 절로 향했다.워낙 영험하다고 소문이 난 절이라 사람으로 붐비었고 기도를 드리는 것도 줄을 서야만 했다. 주한이 자리한 곳은 마침 현아의 맞은 편이었다. 주한이 그저 예의상 하는 얘기일 거라고 생각했던 현아는 그가 진지하게 기도를 드리러 눈까지 꼭 감고 절을 올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현아는 조금 놀라기도, 또 조금 감동적이기도 했다. 뒤에서 누군가 현아에게 말했다. “넌 안 가?”윤아의 목소리
윤아는 사실 지금 현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두 사람이 사귀게 된다면 그건 신분 상승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주한 씨가 너에게 그런 얘기까지 했다는 건 그만큼 진심이라는 말일 거야. 주한 씨는 네가 그런 것들에 얽매여 두 사람 사이에 걸림돌이 되기를 바라지 않을 거야.”사실 주한 같은 남자를 만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자수성가한 것은 물론 부모도, 친척도 없어 가족관계가 이보다 간단할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은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가 걸어갈 미래는 전부 스스로 계획한 것이었다.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주한이 지금 현아에게 다가온다는 것은 그는 이미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나도 알아.”현아가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사실 전엔 난 믿지 않았어. 난 그저 주한 씨가 내가 갑자기 퇴사한 걸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윤이네 선물을 사러 갔을 때, 주한 씨가 내가 할인받아 사준 만년필을 몇 년 동안이나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별일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조 단위의 자산을 갖고 있는 주한에겐 소중한 물건이라는 얘기였다. 최소한 현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현아의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윤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사실 그렇게 많이 고민할 필요 없어. 만약 너도 주한 씨가 좋다면 용기 내서 한 번 만나봐. 어차피 사귄다고 해도 당장 결혼할 것도 아니잖아. 혹시 알아? 사귀고 나서 네 생각이 바뀔지?”“네 말도 맞아. 그럼 나 더 이상 고민 안 할래. 일단 연애만 해보면 되잖아. 어차피 그저 연애만 하는 것뿐이야.”깊은 고민에 빠졌던 현아는 윤아의 도움으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그래. 인생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고 그런 거지. 실수해도 괜찮아. 처음부터 선택한 모든 길이 정확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공주야, 넌 좋은 친구야. 넌 내 인생의 구원자라고.”고민이 해결
그 말은 어느 정도 강압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예의상 건넨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주한을 집으로 초대한 것임이 느껴졌다. 선희가 이렇게까지 얘기를 꺼냈으니 주한도 더 이상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몸을 숙였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신세는 무슨. 가요.”주한과 현아는 선희를 따라 차로 돌아갔다. 그들은 앞에 있는 차를 뒤따라가고 있었다. 운전하며 현아가 참지 못하고 주한에게 말했다.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어요.”주한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나중에도 오랫동안 봐야 할 사이 같아서요. 가면 얘기도 나눌 수 있고요.”현아는 순간 주한의 말 속에 담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진씨 그룹과 얘기 중인 프로젝트가 있어요?”“지금은 없어요.”“그럼 왜...”순간 현아는 뭔가를 인지한 듯 얼굴빛이 변하더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또 저 희롱하는 거죠.”“제가 언제요? 그리고 그게 어떻게 제가 현아 씨를 희롱하는 거예요? 전 지금까지 현아 씨에게 아무 짓도 한 적 없잖아요.”“네, 저에게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언어적인 희롱도 희롱이잖아요?”“그건 실제로 그런 게 아니니까 희롱이라고 할 수 없어요.”“쳇, 왜 아니에요.”현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 와중에 주한은 이미 화제를 전환했다. “두 분 모두 현아 씨를 친절하게 대해주시네요.”“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윤아와 같이 두 분 댁에 자주 갔었거든요. 그래도 절 잘 아세요.”현아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했다. “주한 씨는 어렸을 때 어떻게 지냈어요?”질문을 던진 후 현아는 살며시 주한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얼굴에서 작은 표정이라도 캐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주한은 여전히 평온함을 유지했다. 자신의 불행했던 유년 시절의 얘기를 꺼내도 큰 감정의 기복을 보이지 않았다. “저 어렸을 때요? 거의 혼자 지냈죠.”비록 주한은 평온하게 얘기했지만 현아는 그가 사실은 비참했었던 과거
윤아는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남자를 보는 눈은 여자보다는 남자가 더 정확한 법이었으니까. 서로 생각하는 것이 같을 테니 많은 행동들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래. 난 알 만날게. 수현 씨가 나 대신 봐줘. 하지만 진지하게 봐줘야 해. 대충하지 말고.”사랑하는 여자의 부탁을 수현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알겠어.”수현은 자기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한 남자를 관찰해야 하는 이유가 윤아 때문일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가까이 다가간 윤아와 현아는 서로를 꽉 껴안았다. 하지만 집안 어른들이 계신 관계로 짧은 포옹을 한 후 곧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전에 만난 적이 있던 지라 현아는 또 수현의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고는 가지고 온 선물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현아 이모.”아무래도 몇 년간 함께 지냈던 터라 하윤과 서훈은 현아와 사이가 좋았다. 두 아이에게 현아는 곁에 있는 제일 가까운 가족을 제외하고 제일 친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두 아이는 전혀 거리낌 없이 현아가 건네는 선물을 받고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현아의 볼에 가볍게 뽀뽀했다. 그러더니 하윤은 고개를 들어 주현아 뒤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더니 맑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먼저 입을 열었다. “현아 이모, 저 삼촌은 누구예요?”하윤이 주한을 가리키자 하얗던 현아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저분은... 이모 친구야. 주한 삼촌이라고 부르면 돼.”하윤은 무슨 생각인 건지 현아가 분명 설명해 줬음에 불구하고 또 갑자기 질문했다. “이모, 저 삼촌 이모 남자친구예요?”남자친구라는 말에 현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가 막 부인하려는데 주한의 웃음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마 아가씨, 아직 남자친구는 아니지만 삼촌이 여전히 노력하고 있어.”집안 어른들은 주한의 말을 듣고 그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수현의 부모님도 주한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동족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니 설사 함께 협업한 적이 없다고 해도 일면
“그건 아닌데...”현아가 고개를 저었다.“아니면 뭐가 그렇게 걱정돼요?”현아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뭐 걱정할 게 없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정식으로 만나지도 않는데 다른 사람이 보는 건...이렇게 생각한 현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됐어요. 아직 정식으로 만나기 전인데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어요.”현아가 이렇게 말하더니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현아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늦었어요. 이미 봤어요.”“네?”이 말에 현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참 동안 지나서야 현아는 주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현아는 주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아니나 다를까 멀지 않은 곳에서 윤아가 수현을 데리고 도는 게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과 어른들도 뒤따라 걸어오고 있었다.윤아는 현아를 발견하고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더니 얼른 주한의 품에서 벗어났다.“왜 미리 알려주지 않고 지금 와서 말해주는 거예요?”주한이 덧붙였다.“나도 그럴 겨를이 없었어요. 현아 씨와 얘기하고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더라고요.”“거짓말, 일부러 그런 거잖아요.”주한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나도 일부러 그러고 싶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아까 현아 씨 안으면서 신경이 온통 현아 씨 몸에 쏠려 있다 보니 두 사람이 다가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하지만 결과는 뭐 별반 다를 거 없네요.”현아가 무슨 말을 더 하려는데 윤아가 지척까지 다가오자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랬다가 주한이 무슨 놀라운 말을 내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주한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최근 주한이 친 돌직구가 너무 많았기에 현아는 걱정되기 마련이었다....윤아는 멀리서 친구인 현아가 남자 코트로 숨어드는 걸 볼 수 있었다.원래는 알아보기 힘들었다. 기억을 잃은 뒤로 주한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고 이미지도 현아가 말해준 게 전부였다.그러다 옆에 있던 수현이 주한을
현아는 주한의 돌직구를 당해낼 자신이 없어 시선을 다른데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지금 몇 시예요? 올 때 되지 않았어요?”현아의 화제 전환이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주한은 이를 캐묻지 않았다. 그저 팔에 찬 시계를 확인하더니 이렇게 말했다.“10분 남았어요.”“10분이요?”현아는 착잡한 표정으로 손으로 턱을 받쳤다. 이렇게 오래 잤을 줄은 몰랐다.이미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현아는 외투를 벗어 주한에게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외투 돌려줄게요. 고마워요...”“괜찮아요.”주한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걸치고 있어요.”“그럼 이따 내릴 때 추울 텐데.”“몸이 좋다고 했잖아요.”“나도 나쁘진 않아요. 그리고 나도 외투 챙겨 와서 더 입으면 안 예뻐요.”현아는 이렇게 말하며 외투를 주한에게 욱여넣었다.주한은 현아가 잠도 깨고 진심으로 외투를 돌려주는 걸 보자 외투를 받아 입었다.비행기가 착륙하기까지 10분이 필요했지만 내려서 짐도 찾아야 하니 주한과 현아는 차에서 15분을 더 기다리다가 내렸다.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현아는 너무 추워 계속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에 주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몸 좋다면서 이렇게 떨어요?”현아가 말했다.“내가 언제 떨었다 그래요?”현아가 고집을 부리며 반박하는데 주한이 다시 외투를 벗었고 현아가 얼른 이를 막았다.“벗지 마요. 더 벗으면 화낼 거예요.”이를 들은 주한의 동작이 멈칫하더니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현아가 얼굴을 굳히고 엄숙하게 말했다.“벗지 말라고요!”“춥다면서요?”“그래도 벗지 마요! 벗으면 정말 화낼 거예요.”주한은 그런 현아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갑자기 작은 소리로 웃으며 지퍼를 열었다.“그래요. 안 벗을게요. 대신 들어와서 몸 좀 녹일래요?”현아가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마 주한이 갑자기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것 같았다.“대표님...”주한이 덤덤하게 말했다.“들어와서 숨든지 아니면 내가 벗어서 주든지, 하나만 선택해요.”한참 생각하
현아의 말에 주한이 그녀를 힐끔 쳐다봤다.“나 먼저 들어가고 현아 씨 여기 혼자 남겨두라고요?”그러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였다.“현아 씨, 나는 지금 현아 씨 좋다고 쫓아다니는 사람이에요. 잊은 거 아니죠?”현아가 입술을 앙다문 채 대꾸하지 않았다.“이럴 때일수록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잘 판단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한밤중에 여기까지 데려다줬는데 지금은 이렇게 기다리게 하고, 너무 대표님 시간 잡아먹는 것 같아서요.”“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주한은 이렇게 말하더니 외투를 벗어 현아에게 건네주었다. 현아가 손에 들린 외투를 들고 멍한 표정으로 주한을 물끄러미 쳐다봤다.“왜, 왜요?”“걸쳐요.”주한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아직 한 시간이나 더 있으니까 일단 눈 좀 붙여요.”“졸리지는 않는데...”“그럼 눈 감고 명상하든지.”주한은 마치 반장처럼 그녀를 챙겨줬다. 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한은 혼자 자랐으니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애들과는 다르다고 말이다. 하지만 주한이 사람을 챙기는 방법은 어딘가 강압적이었다.현아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을 붉힌 채 주한이 건네준 외투를 주섬주섬 몸에 걸치고는 자리에 기대 눈을 감았다.눈을 감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아는 뭔가 생각난 듯 다시 눈을 떴다.“옷을 이렇게 다 주면 대표님은 어떡해요? 안 추워요?”“나는 몸이 워낙 좋아서.”주한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아, 네.”현아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몸이 안 좋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에 잠겼던 현아는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다시 깨어났을 때 창밖의 어둠은 더 짙어졌고 현아는 아직도 온몸을 웅크리고 있었다.깨어나 보니 아직도 조금 추웠고 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주한의 외투 속으로 점점 숨어들었다. 외투를 받았으니 다행이지 아니면 정말 자다가 추워서 깼을 것이다.하지만 현아는 이내 뭔가 생각났다. 자기는 외투를 입고 있어서 따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