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안아줘요.”윤아가 반응하기도 전에 윤이는 갑자기 다가오는 큰 팔에 안겼다. 선우는 아이를 자신의 다리 위에 앉혔다.윤이는 비록 원하던 대로 엄마의 품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선우의 품도 제법 익숙했기 때문에 싫어하지 않았다. 심지어 선우의 품에 파고들어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저 아저씨 품에서 자도 돼요?”선우는 손을 뻗어 윤이의 작은 코를 가볍게 만졌다.“자고 싶으면 자. 아저씨가 언제 허락하지 않은 적 있어?”“고마워요, 아저씨.”선우는 뭐가 떠오른 듯 고개를 돌려 옆에 앉아있는 훈이를 보았다.“훈아. 너도 올래?”작은 훈이는 거기에 앉아있었는데 웃지도 않고 애교도 부리지 않으니 조금 딱딱해 보였다.선우의 초대에 훈이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거절했다.“고마워요, 아저씨. 그런데 전 괜찮아요.”선우는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넌 늘 아저씨랑 친하지 않네.”훈이가 대답을 생각하기 전 윤아는 먼저 입을 열었다.“훈이는 원래 성격이 듬직한 거 알고 있잖아.”“그리고 윤이 하나만 매달리는 것도 부족해?”아이 한명이 계속 매달리는 것도 이미 충분히 힘든 거였다.하지만 선우는 이 말을 들은 후 입꼬리를 올렸다.“응, 부족해. 알잖아, 난 너희 세 명이 계속 나한테 매달렸으면 좋겠다는 거.”심윤아: “...”곁에 앉아 있던 훈이는 이 말에 고개를 돌려 엄마를 한눈 보았다. 그리고는 엄마가 하는 말을 들었다.“어린애만 매달리기 좋아하거든?”“응. 내 앞에서 너도 자신을 어린애처럼 여기면 되잖아.”그럼 그렇지. 윤아는 드디어 알 것 같았다.귀국한 후, 선우는 자신을 통제하기 힘든 것처럼 말이 많아졌다.뭘 두려워하는 걸까?오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자신이 수현에게 다가간다고 여긴 걸까?이렇게 생각한 윤아는 못 말린다는 눈빛으로 선우를 보았다.원래 선우에게 꼭 이렇게 말 해야겠냐고 물어보려고 했었다.하지만 두 아이가 다 여기에 있는 것을 생각하니 어쩔 수 없이 꾹 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선우는 그
윤아는 조금 어쩔 수 없었다.매번 그랬다. 선우가 준 물건을 받지 않으면 그는 윤이에게 주곤 했다.그리고 윤이는...윤이는 큰 눈을 깜박거리며 조금의 부담도 없이 열쇠를 받았다. 그리고 까치발을 들어 선우의 볼에 뽀뽀했다.“고마워요, 선우 아저씨.”윤아는 딸을 보며 그러면 그렇지 라는 표정을 지었다.윤이의 성격은 훈이와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윤이는 다른 사람들의 호의를 거의 받아들이고 심지어 자신의 생각도 있었다.전에 윤아는 딸에게 선우가 준 물건을 자꾸 받지 말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아이는 작은 얼굴을 들고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었다.“그런데요, 엄마. 전 아저씨 물건 그냥 받는 거 아닌데요.”“왜 그렇게 말하는 건데?”“매번 아저씨가 왔을 때 윤이를 안고 윤이 볼을 만지잖아요. 그리고 윤이한테 사진도 찍어줬어요. 그러니까 윤이도 노동력을 지급했어요.”심윤아: “...”어휴, 어린 나이에 자신의 견해가 있었다.안기고 볼을 만지게 하는 거, 심지어 사진을 찍어주는 것도 노동하는 거란다.그래서 윤아는 또 아이에게 도리를 알려주었다.“하지만 아저씨가 널 안고 사진을 찍어주는 건 모두 널 돕는 거잖아. 아니야?”윤이는 눈을 깜박였다.“하지만 엄마, 윤이는 아저씨에게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요.그리고 선우 아저씨 엄마를 좋아하잖아요? TV에서 말했어요. 여자에게 구애할 땐 성의가 있어야 한다고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여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겠어요?”어린아이는 마치 귀신같이 남녀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한마디로 개괄하였다.윤아도 나중에 설득당하고 말았다.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윤이가 열쇠를 받은 것을 보고 저녁에 집에 돌아간 다음 한마디 해줘야겠다고 경심했다.집처럼 귀중한 물건은 절대 받을 수 없었다.만약 진짜 받는다면 돈을 내야 했다.그녀는 이미 선우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받았다. 차가 목적지에 도착한 다음 기사는 고개를 돌려 말했다.“대표님, 윤아 아가씨. 도착했습니다.”차는 한 사립학교 앞에서 멈추었다.“여긴
한바퀴 둘러본 후 윤아는 이 학교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아이들이 수업을 듣는 분위기도 아주 좋았다. 선생님은 부드럽게 강의했고 아이들도 협조를 잘 해줬다. 종합적인 방면에서 제법 마음에 들었다.학교를 거의 다 돌아본 후, 윤아는 직접 정하지 않았고 그저 돌아가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학교 측의 담당자도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윤아에게 연락처를 남겨주었다.“저희 학교에선 픽업 서비스를 제공합니다만, 어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한 차에 앉는 것을 걱정하여 직접 픽업하거나 집안의 기사를 보내기도 해요.”“네, 무슨 뜻인지 알고 있어요. 고마워요, 잘 생각해 볼게요.”“네네. 그럼 안녕하 가세요. 두 아이도 안녕.”차에 오른 후, 선우는 그녀에게 물었다.“어때?”“보기엔 괜찮았어. 하지만 다른 곳도 가서 보고 싶어.”“그래. 내가 같이 가줄게.”그리고 윤아와 선우는 주변의 학교 두, 세 곳에 가서 보았으나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 위생 방면이 나쁘지 않으면 음식이 별로였다.결국 윤이도 너무 힘든 나머지 선우의 품에서 잠들어 버렸다.윤이가 잠든 것을 보자 오늘 다닌 곳이 조금 많다는 것을 의식했다. 그녀는 발걸음을 멈춘 후 곁에 있던 훈이를 보았다.“훈아, 힘들어?”훈이는 얌전했고 윤아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었다. 이렇게 많은 길을 걸었으니 분명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윤아의 물음에 괜찮은 척하며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아이의 말이 끝나자 윤아는 허리를 굽혀 훈이를 안았다.“엄마...”“응, 엄마가 힘들어, 그러니까 얼른 엄마 품에 안겨줘.”갑자기 말을 바꾸는 윤아에 훈이는 말문이 막혔다.“됐어. 돌아가는 길은 별로 멀지 않으니까 엄마가 안아줄게.”그제야 훈이는 사양하지 않고 머리를 윤아의 품에 가볍게 대었다. 처음엔 눈을 뜨고 윤아와 몇 마디 말하였으나 뒤로 갈수록 소리가 사라졌다.윤아가 입구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이미 그녀의 품에서 잠들었다.이런 아이를 보자 윤아는 참지 못하고 훈이의 코를 만졌다. 그리고 웃긴다는 듯 말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말...윤아는 비록 처음 선우에게서 들은 건 아니지만 그가 매번 이런 말을 할 때면 가슴이 아팠다.사실 선우는 정말 그녀에게 지극정성으로 잘해줬다. 아마 하늘 아래 이토록 그녀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더 없을 거다.그녀의 심장도 돌덩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선우가 그녀에 대한 마음은 자연히 알고 있었다. 만약 아이 둘만 없었어도 아마...그의 마음을 받아주었을 거다.하지만 그녀는 한부모 가정에서 컸었다. 그래서 그녀 한 명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연애하고 감정을 나눌 정력이 없었다.두 아이 외의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사랑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결국 그녀는 선우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정했다.“선우야, 넌 엄청 좋은 사람이야. 하지만...난 네가 준 것들을 받기만 할 수 없어. 난 네게 아무것도 줄 수 없으니까.”이 말을 듣자 선우는 담담하게 웃었다.“그럼 조금이라도 주면 되잖아? 윤아야, 내가 원하는 건 아주 적어.”심윤아: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자 선우는 또 이렇게 말했다.“믿기 어려우면 한번 해봐. 나랑 사귀어줘. 너한테 스트레스 주는 일은 없을 거야. 너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잘 돌봐줄 자신 있어.”“안 돼.”윤아는 고개를 저었다.“너한테 나눠줄 정력이 없어.”“누가 정력을 나눠달래? 나랑 사귀어도 넌 너야. 하고 싶은 건 마음껏 해. 내가 뒤에서 네가 한 모든 일을 대신 설명해 줄게.”“너...”“왜? 이래도 안 돼?”선우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또 입을 열었다.“아니면 나랑 삼 개월만 사귈래? 삼 개월이면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잖아. 어때?”“선우야.”윤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이러지 마.”선우는 이를 보더니 윤아에게 말했다.“이렇게 많이 말했는데 아직도 안 된다고 하네. 그래, 내가 더 노력할게.”기사가 와서 차 문을 열자 선우는 허리를 굽혀 아이를 안고 들어갔다.윤아도 얼른 다가와 도왔
윤아는 두 아이를 데리고 방에 돌아가 옷을 갈아입었다.그녀가 간 후, 선우는 티 나지 않게 앨리스를 한눈 보았다.“오늘 어땠어요?”주동적으로 물어보는 선우를 보자 앨리스는 조금 어리둥절했다.“네?”앨리스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을 보자 선우는 어쩔 수 없이 말을 보탰다.“어젯밤.”이 말을 듣자 앨리스의 안색은 조금 변했다.“어젯밤 일이라고요? 선우 씨가 어떻게 알았어요? 설마 윤아가 알려준 건가요?”어젯밤에 자신이 남자의 방문 앞에서 지킨 것을 선우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자 앨리스의 표정은 순간 안 좋아졌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윤아 왜 그래요? 같이 살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자유로운 상태라고 분명 말했는데. 상대방의 일에 간섭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왜 내 일을 선우 씨에게 말했어요?”폭발해 나온 원망에 선우는 멈칫했다. 앨리스를 시험한 게 윤아에게 이렇게 큰 폐를 끼칠 줄 몰랐다.하지만...앞으로 앨리스가 그 남자와 계속 얽힌다면 윤아를 앨리스랑 살게 둘 수는 없었다.자칫하면 큰일이 벌어질 것이다.이렇게 생각한 금테 안경 아래에 숨겨진 선우의 눈동자엔 뭔가 날카롭게 스쳐 갔다. 그는 아직도 원망하고 있는 앨리스를 보며 비아냥거리 듯 입꼬리를 올리고는 말했다.“앨리스, 지금 윤아랑 함께 살고 있잖아요. 새벽에 뛰쳐나갔으니 윤아도 걱정된 마음에 그랬어요.”앨리스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면서 머뭇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윤아가 날 걱정하는 건 당연히 알죠. 하지만 전 지금 성인이잖아요. 저도 제 생각이라는 게 있는데 정 걱정되면 메시지라도 보내면 안 돼요? 왜 하필 내 일을 다른 사람한테 알려주는 건데요?”선우는 입술을 꾹 다물더니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앨리스한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네요.”이 말을 듣자 앨리스는 아까 자신의 말이 선우의 미움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갑작스럽게 깨달았다.그녀는 정신을 번뜩 차리고 사과했다.“미안해요. 선우 씨 탓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전 그냥 조금의 자유를 원했을 뿐이
앨리스의 안색은 순간 변했다.원래 윤아에게 그 남자가 사과하러 왔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까 선우의 말을 들은 후, 알려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생각을 정리한 후, 그녀는 머쓱하게 웃었다.“아, 아무것도 아니야.”이 말을 듣자, 윤아의 얼굴엔 의심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돌아온 다음 나한테 전화 걸었잖아. 할 말 있는 거 아니었어?”“응, 맞아.”앨리스는 황급히 설명했다.“그땐 욱해서 할 말이 있었던 거야. 그런데 지금은 없어.”윤아는 눈썹을 위로 올렸다.“정말 그래?”앨리스는 연이어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앨리스를 안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할 때 그녀는 거의 숨기지 못했다. 시선이 이리저리 떠돌고 고개를 끄덕일 때도 마치 병아리가 쌀을 쪼아먹는 듯했다.그래서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윤아는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첫눈에 알아보았다.아마 알려주고 싶지 않아서겠지.윤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쉰 다음 더는 묻지 않았다.앨리스는 또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윤아는 앞치마를 두르고 고기를 자르려고 했다. 앨리스는 곁에서 그냥 보기 머쓱해 얼른 다가갔다.“내가 도와줄게.”만약 평소라면 윤아는 아마 칼을 앨리스에게 주었을 것이다.하지만 앞으로 그녀가 할 말을 생각하니 윤아는 칼을 건네지 않고 직접 잡고 있었다.“내가 하면 돼.”“그래.”앨리스는 곁에 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이런 앨리스의 모습을 보자 윤아는 눈동자를 돌리며 어떻게 운을 뗄지 고민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어때? 연락처 땄어?”윤아가 갑자기 이 일을 꺼내자 앨리스는 윤아가 선우에게 알려준 게 떠올랐다. 그래서 안색이 좋지 않았다.윤아는 앨리스의 안색은 본 후 그녀가 또 실패한 줄 알았다.그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실패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나증에 힘을 빼는 걸 피면할 수 있으니까.이렇게 생각한 윤아는 부드럽게 말했다.“아침에 너랑 할 얘기 있다고 했었잖아. 사실 그 사람에 관한 거야
앨리스는 얼른 두 아이를 향해 간신히 웃음을 지어냈다.윤아는 둘을 한눈 보더니 아이들이 밥상에서 내려온 후 그들의 고개를 만졌다.“윤아, 훈아. 오늘 저녁엔 아주 얌전하네. 먼저 방에 돌아가서 쉬고 있어. 그리고 짐을 정리하고, 응?”곁에 있던 앨리스는 이 말을 듣자마자 창백한 얼굴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두 아이도 이 말에 순식간에 윤아를 보았다. 일이 이토록 엄중할 줄은 몰랐으니까.하지만 일 초 후. 윤아는 또 웃으며 말했다.“내일 새 학교에 갈 거야.”그러자 두 아이는 드디어 마음을 놓고 짐을 정리했다.아이들이 간 후 윤아는 그제야 그릇에 있던 남은 밥을 천천히 먹었다.그리고 맞은편에 앉은 앨리스는 아까 윤아가 아이들에게 짐을 정리하라고 했을 때부터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었다.윤아가 다 먹고 몸을 일으켰을 때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얼른 사과했다.“윤아야, 미안해.”윤아는 담담하게 웃었다.“괜찮아. 너도 날 생각해서 그러는 건데, 뭐. 이제 선우 찾으러 갈게.”사실 앨리스는 그런 말을 한 후부터 계속 후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윤아가 선우를 찾아가겠다는 말을 듣자 또 말을 바꾸기 머쓱해 어렵게 목구멍까지 올라간 말을 참으면서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밥상을 정리한 후 윤아는 주방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그리고 쓰레기까지 버린 후 그 어떤 자국도 남기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 방에 돌아가 짐을 정리했다.금방 이사했기 때문에 정리할 짐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윤아는 간단하게 정리한 후 침대 곁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호텔을 예약했다.호텔을 다 예약한 후, 훈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엄마.”이 소리에 윤아는 핸드폰을 거두고 아이를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훈아, 짐 정리 다 했어?”“네, 다 정리했어요. 엄마.”“응. 윤이는?”“윤이도 다 됐어요. 지금 방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걸요.”“그래. 우리 그럼 가자.”윤아는 몸을 일으켜 캐리어를 끌고 방에서 나왔다.나갈 때 마침 그녀를 찾아온 앨리스와 마주쳤다.그녀는 윤아
호텔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아직 일렀다. 윤아는 스위트 룸으로 보름 동안 체크인했다.모든 절차를 다 밟은 후 호텔의 직원은 직접 그녀를 데리고 위층에 올라갔다.“고객님, 원하신 스위트룸엔 야외 수영장이 있지만 지금 겨울이라 개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둘이나 데리고 있으니 가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네.”상대방의 세심한 말에 윤아는 고마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알려줘서 고마워요.”직원은 방에 들어가서 설비를 검사한 후 아까 말했던 수영장 구역에 다른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돌아갔다.윤아는 필요한 물건들을 모두 꺼내 놓았다. 두 아이도 그녀를 도와 물건을 옮겼고 그녀가 멈췄을 때야 아이들도 멈추었다,그리고 두 아이는 윤아의 다리에 엎드려 작은 얼굴을 들고는 물었다.“엄마, 앨리스 이모랑 싸웠어요?”윤아는 아이들에게 어른들 사이의 불쾌함을 알려주고 싶지 않아 다른 핑계로 대답했다.“윤아, 싸우지 않았어. 그냥 앨리스 이모가 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공간을 원해서 그래. 너랑 오빠가 한 사람이 한 방을 차지하는 것처럼 말이야. 알겠어?”이 말을 듣자 윤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하지만 우리가 거기에 살 때도 앨리스 이모는 엄마랑 함께 자지 않았잖아요.”“그렇지. 함께 자지는 않았지. 하지만 집은 앨리스 이모가 돈을 내고 맡은 거야. 이모가 우리한테 돈을 받지 않는데 계속 거기에 살 수는 없잖아. 안 그래?”여기까지 듣자 윤이는 드디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것 같아요.”그러나 곁에 있던 훈이는 계속 침묵했다.그의 성격은 윤이와 달랐으니 생각하는 것도 윤이보다 많았다.윤아는 어쩔 수 없이 부드럽게 설명했다.“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어차피 엄마가 어딜 가든 함께 갈 거 아니야? 그러니까 마음 놓고 엄마만 따라다니면 돼.”두 아이를 재운 후, 윤아는 노트북을 열어 계획을 짜며 준비했다.호텔에 머무는 건 합당한 선택이 아니었다. 세를 맡으려면 회사 부근에서 집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윤
-며칠 후. 현아는 해외로 떠났다. 떠나기 전 그녀는 윤아에게 내뱉은 말을 주워 담아야겠다고 했다. 현아는 남자친구가 너무 보고 싶었고 그래서 결국 남자친구와 함께 일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던 윤아는 그런 현아가 전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현아가 출발하기 전 윤아는 조심히 가라는 인사를 전했다. 윤아는 생각했다. ‘주한 씨 추진력이라면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현아에게서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겠네.’역시나, 윤아의 예상대로 6월 1일쯤. 윤아가 곧 무대에 오를 두 아이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주한이 프러포즈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8월로 정해졌다. 1월에 고백하고 4월부터 연인으로 발전, 6월엔 프러포즈, 8월엔 결혼식. 그 놀라운 진행 속도에 윤아는 입이 떡 벌어졌다. 특히나 현아는 처음엔 그렇게 거부감을 드러내더니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토록 빠른 속도로 결혼까지 골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주한이 적극적으로 현아에게 다가간 덕분이었다. 주한이 현아의 마음을 얻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시기에 뭘 해야 하는지 그는 이미 충분한 준비를 마쳤고, 그 철저한 준비성을 당해낼 사람은 없었다. 다만 윤아가 놀란 것은 주한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공세를 퍼부으면서도 아직 잠자리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윤아에게 그 일을 털어놓는 현아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가 프러포즈를 받아줬는데 아직도 예전처럼 자제한다는 건 혹시 날 아예 안 좋아했던 거 아냐?”윤아는 현아의 사유 방식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너 대체 무슨 생각하는 거야? 주한 씨가 널 안 좋아하면 결혼하려고 했겠어? 주한 씨가 얻는 게 뭔데?”“그건 그래. 그럼 대체 왜?”“그거야 모르지. 그건 너희 연인 사이의 일이잖아. 난 끼고 싶지 않아. 궁금하면 네가 직접 알아봐.”‘알아보라고?
설 연휴 후. 윤아는 우진에게서 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선우가 드디어 생각을 바꿔 더 이상 방에 갇혀 있고 싶지 않다고 이곳을 떠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윤아는 가슴 한편을 꽉 막고 있던 응어리가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요? 정말 잘됐네요. 진 비서님은요? 제가 뭘...”윤아는 우진을 자기 곁에 두려 했다. 하지만 우진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이미 선우 곁에서 오랫동안 보좌했던 터라 그의 곁에 있는 것이 편하다며 계속 선우 옆에 남겠다고 했다. 모두 자기만의 귀속이 있는 법이었기에 윤아는 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우진에게 만약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당부했다. 그날 밤, 윤아는 이별을 고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예전에 엄청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어. 하지만 난 그 애에게 많은 폐를 끼쳤지. 심지어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 애를 다치게 하기도 했어. 미안한 마음뿐이야. 그럼에도 난 여전히 걔를 사랑해. 그리고 앞으로 행복하기를 바라.][안녕.]내용은 간단했다. 하지만 그 문자를 작성하기까지 이선우는 그가 갖고 있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했다. 메시지를 전송한 후 선우는 윤아의 답장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에겐 그녀의 답장을 볼 용기도 없었다. 선우는 U-SIM을 뽑아 그대로 휴지통에 버렸다. 더는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이젠 뒤돌아볼 기회조차도 없었지만. 윤아는 지금 그녀가 사랑하고 그녀를 사랑해 주는 사람 곁에서 앞으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낼 것이었으니까. -4월 1일쯤, 현아와 주한은 연인으로 발전했다. 같은 시기, 현아가 투자한 과일 가게가 아파트 단지에 오픈했다. 오픈 날 윤아는 현아에게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주한 씨 회사로 안 돌아가려고?”현아가 입술을 짓이겼다. “내가 없으면 주한 씨 회사가 안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왜 주한 씨 회사로 돌아가?’“주한 씨 회사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라, 네가 만약 집에서 과일 가게를
안 그래도 현아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훌륭한 남자를 만났으니 선희도 당연히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주한은 인품이 좋아 보였기에 선희는 가운데서 두 사람을 팍팍 밀어줄 의향이 있었다. 선희가 씩 미소 지으며 말했다. “주한아, 이 절에서 인연을 빌면 신통하게 들어주신대. 도착하면 성심을 들여 절을 올리렴.”말을 마친 선희는 일부러 현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현아 너도. 왔던 김에 같이 가서 기도드려.”잘 걱도 있다 갑자기 이름을 불린 현아는 순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차마 말을 내뱉지 못했다. 주한은 시선을 내린 채 빨개진 현아의 볼과 귓불을 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이번엔 전혀 헛된 걸음은 아닌 듯했다. 수현의 가족은 정말 따뜻한 분들이었다. 만약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어 이런 가정을 꾸릴 수만 있다면 정말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네. 제가 간절히 기도를 드려 볼게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선희가 손을 내저으며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그들 일행은 10여 분 후 산꼬대기에 도착했다. 날씨가 퍽 좋았던 지라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서니 구름도 더 가까이 느껴졌다. 발아래엔 산봉우리가 첩첩이 이어져 있었고 멀리 보이는 마을 풍경까지 더해져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수많은 여행객들은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풍경 사진을 찍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풍경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기도 했다. 윤아를 포함한 그들도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나서야 기도를 드리러 절로 향했다.워낙 영험하다고 소문이 난 절이라 사람으로 붐비었고 기도를 드리는 것도 줄을 서야만 했다. 주한이 자리한 곳은 마침 현아의 맞은 편이었다. 주한이 그저 예의상 하는 얘기일 거라고 생각했던 현아는 그가 진지하게 기도를 드리러 눈까지 꼭 감고 절을 올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현아는 조금 놀라기도, 또 조금 감동적이기도 했다. 뒤에서 누군가 현아에게 말했다. “넌 안 가?”윤아의 목소리
윤아는 사실 지금 현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두 사람이 사귀게 된다면 그건 신분 상승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주한 씨가 너에게 그런 얘기까지 했다는 건 그만큼 진심이라는 말일 거야. 주한 씨는 네가 그런 것들에 얽매여 두 사람 사이에 걸림돌이 되기를 바라지 않을 거야.”사실 주한 같은 남자를 만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자수성가한 것은 물론 부모도, 친척도 없어 가족관계가 이보다 간단할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은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가 걸어갈 미래는 전부 스스로 계획한 것이었다.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주한이 지금 현아에게 다가온다는 것은 그는 이미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나도 알아.”현아가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사실 전엔 난 믿지 않았어. 난 그저 주한 씨가 내가 갑자기 퇴사한 걸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윤이네 선물을 사러 갔을 때, 주한 씨가 내가 할인받아 사준 만년필을 몇 년 동안이나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별일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조 단위의 자산을 갖고 있는 주한에겐 소중한 물건이라는 얘기였다. 최소한 현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현아의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윤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사실 그렇게 많이 고민할 필요 없어. 만약 너도 주한 씨가 좋다면 용기 내서 한 번 만나봐. 어차피 사귄다고 해도 당장 결혼할 것도 아니잖아. 혹시 알아? 사귀고 나서 네 생각이 바뀔지?”“네 말도 맞아. 그럼 나 더 이상 고민 안 할래. 일단 연애만 해보면 되잖아. 어차피 그저 연애만 하는 것뿐이야.”깊은 고민에 빠졌던 현아는 윤아의 도움으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그래. 인생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고 그런 거지. 실수해도 괜찮아. 처음부터 선택한 모든 길이 정확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공주야, 넌 좋은 친구야. 넌 내 인생의 구원자라고.”고민이 해결
그 말은 어느 정도 강압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예의상 건넨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주한을 집으로 초대한 것임이 느껴졌다. 선희가 이렇게까지 얘기를 꺼냈으니 주한도 더 이상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몸을 숙였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신세는 무슨. 가요.”주한과 현아는 선희를 따라 차로 돌아갔다. 그들은 앞에 있는 차를 뒤따라가고 있었다. 운전하며 현아가 참지 못하고 주한에게 말했다.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어요.”주한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나중에도 오랫동안 봐야 할 사이 같아서요. 가면 얘기도 나눌 수 있고요.”현아는 순간 주한의 말 속에 담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진씨 그룹과 얘기 중인 프로젝트가 있어요?”“지금은 없어요.”“그럼 왜...”순간 현아는 뭔가를 인지한 듯 얼굴빛이 변하더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또 저 희롱하는 거죠.”“제가 언제요? 그리고 그게 어떻게 제가 현아 씨를 희롱하는 거예요? 전 지금까지 현아 씨에게 아무 짓도 한 적 없잖아요.”“네, 저에게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언어적인 희롱도 희롱이잖아요?”“그건 실제로 그런 게 아니니까 희롱이라고 할 수 없어요.”“쳇, 왜 아니에요.”현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 와중에 주한은 이미 화제를 전환했다. “두 분 모두 현아 씨를 친절하게 대해주시네요.”“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윤아와 같이 두 분 댁에 자주 갔었거든요. 그래도 절 잘 아세요.”현아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했다. “주한 씨는 어렸을 때 어떻게 지냈어요?”질문을 던진 후 현아는 살며시 주한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얼굴에서 작은 표정이라도 캐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주한은 여전히 평온함을 유지했다. 자신의 불행했던 유년 시절의 얘기를 꺼내도 큰 감정의 기복을 보이지 않았다. “저 어렸을 때요? 거의 혼자 지냈죠.”비록 주한은 평온하게 얘기했지만 현아는 그가 사실은 비참했었던 과거
윤아는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남자를 보는 눈은 여자보다는 남자가 더 정확한 법이었으니까. 서로 생각하는 것이 같을 테니 많은 행동들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래. 난 알 만날게. 수현 씨가 나 대신 봐줘. 하지만 진지하게 봐줘야 해. 대충하지 말고.”사랑하는 여자의 부탁을 수현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알겠어.”수현은 자기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한 남자를 관찰해야 하는 이유가 윤아 때문일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가까이 다가간 윤아와 현아는 서로를 꽉 껴안았다. 하지만 집안 어른들이 계신 관계로 짧은 포옹을 한 후 곧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전에 만난 적이 있던 지라 현아는 또 수현의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고는 가지고 온 선물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현아 이모.”아무래도 몇 년간 함께 지냈던 터라 하윤과 서훈은 현아와 사이가 좋았다. 두 아이에게 현아는 곁에 있는 제일 가까운 가족을 제외하고 제일 친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두 아이는 전혀 거리낌 없이 현아가 건네는 선물을 받고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현아의 볼에 가볍게 뽀뽀했다. 그러더니 하윤은 고개를 들어 주현아 뒤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더니 맑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먼저 입을 열었다. “현아 이모, 저 삼촌은 누구예요?”하윤이 주한을 가리키자 하얗던 현아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저분은... 이모 친구야. 주한 삼촌이라고 부르면 돼.”하윤은 무슨 생각인 건지 현아가 분명 설명해 줬음에 불구하고 또 갑자기 질문했다. “이모, 저 삼촌 이모 남자친구예요?”남자친구라는 말에 현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가 막 부인하려는데 주한의 웃음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마 아가씨, 아직 남자친구는 아니지만 삼촌이 여전히 노력하고 있어.”집안 어른들은 주한의 말을 듣고 그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수현의 부모님도 주한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동족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니 설사 함께 협업한 적이 없다고 해도 일면
“그건 아닌데...”현아가 고개를 저었다.“아니면 뭐가 그렇게 걱정돼요?”현아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뭐 걱정할 게 없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정식으로 만나지도 않는데 다른 사람이 보는 건...이렇게 생각한 현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됐어요. 아직 정식으로 만나기 전인데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어요.”현아가 이렇게 말하더니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현아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늦었어요. 이미 봤어요.”“네?”이 말에 현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참 동안 지나서야 현아는 주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현아는 주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아니나 다를까 멀지 않은 곳에서 윤아가 수현을 데리고 도는 게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과 어른들도 뒤따라 걸어오고 있었다.윤아는 현아를 발견하고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더니 얼른 주한의 품에서 벗어났다.“왜 미리 알려주지 않고 지금 와서 말해주는 거예요?”주한이 덧붙였다.“나도 그럴 겨를이 없었어요. 현아 씨와 얘기하고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더라고요.”“거짓말, 일부러 그런 거잖아요.”주한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나도 일부러 그러고 싶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아까 현아 씨 안으면서 신경이 온통 현아 씨 몸에 쏠려 있다 보니 두 사람이 다가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하지만 결과는 뭐 별반 다를 거 없네요.”현아가 무슨 말을 더 하려는데 윤아가 지척까지 다가오자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랬다가 주한이 무슨 놀라운 말을 내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주한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최근 주한이 친 돌직구가 너무 많았기에 현아는 걱정되기 마련이었다....윤아는 멀리서 친구인 현아가 남자 코트로 숨어드는 걸 볼 수 있었다.원래는 알아보기 힘들었다. 기억을 잃은 뒤로 주한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고 이미지도 현아가 말해준 게 전부였다.그러다 옆에 있던 수현이 주한을
현아는 주한의 돌직구를 당해낼 자신이 없어 시선을 다른데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지금 몇 시예요? 올 때 되지 않았어요?”현아의 화제 전환이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주한은 이를 캐묻지 않았다. 그저 팔에 찬 시계를 확인하더니 이렇게 말했다.“10분 남았어요.”“10분이요?”현아는 착잡한 표정으로 손으로 턱을 받쳤다. 이렇게 오래 잤을 줄은 몰랐다.이미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현아는 외투를 벗어 주한에게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외투 돌려줄게요. 고마워요...”“괜찮아요.”주한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걸치고 있어요.”“그럼 이따 내릴 때 추울 텐데.”“몸이 좋다고 했잖아요.”“나도 나쁘진 않아요. 그리고 나도 외투 챙겨 와서 더 입으면 안 예뻐요.”현아는 이렇게 말하며 외투를 주한에게 욱여넣었다.주한은 현아가 잠도 깨고 진심으로 외투를 돌려주는 걸 보자 외투를 받아 입었다.비행기가 착륙하기까지 10분이 필요했지만 내려서 짐도 찾아야 하니 주한과 현아는 차에서 15분을 더 기다리다가 내렸다.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현아는 너무 추워 계속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에 주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몸 좋다면서 이렇게 떨어요?”현아가 말했다.“내가 언제 떨었다 그래요?”현아가 고집을 부리며 반박하는데 주한이 다시 외투를 벗었고 현아가 얼른 이를 막았다.“벗지 마요. 더 벗으면 화낼 거예요.”이를 들은 주한의 동작이 멈칫하더니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현아가 얼굴을 굳히고 엄숙하게 말했다.“벗지 말라고요!”“춥다면서요?”“그래도 벗지 마요! 벗으면 정말 화낼 거예요.”주한은 그런 현아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갑자기 작은 소리로 웃으며 지퍼를 열었다.“그래요. 안 벗을게요. 대신 들어와서 몸 좀 녹일래요?”현아가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마 주한이 갑자기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것 같았다.“대표님...”주한이 덤덤하게 말했다.“들어와서 숨든지 아니면 내가 벗어서 주든지, 하나만 선택해요.”한참 생각하
현아의 말에 주한이 그녀를 힐끔 쳐다봤다.“나 먼저 들어가고 현아 씨 여기 혼자 남겨두라고요?”그러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였다.“현아 씨, 나는 지금 현아 씨 좋다고 쫓아다니는 사람이에요. 잊은 거 아니죠?”현아가 입술을 앙다문 채 대꾸하지 않았다.“이럴 때일수록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잘 판단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한밤중에 여기까지 데려다줬는데 지금은 이렇게 기다리게 하고, 너무 대표님 시간 잡아먹는 것 같아서요.”“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주한은 이렇게 말하더니 외투를 벗어 현아에게 건네주었다. 현아가 손에 들린 외투를 들고 멍한 표정으로 주한을 물끄러미 쳐다봤다.“왜, 왜요?”“걸쳐요.”주한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아직 한 시간이나 더 있으니까 일단 눈 좀 붙여요.”“졸리지는 않는데...”“그럼 눈 감고 명상하든지.”주한은 마치 반장처럼 그녀를 챙겨줬다. 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한은 혼자 자랐으니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애들과는 다르다고 말이다. 하지만 주한이 사람을 챙기는 방법은 어딘가 강압적이었다.현아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을 붉힌 채 주한이 건네준 외투를 주섬주섬 몸에 걸치고는 자리에 기대 눈을 감았다.눈을 감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아는 뭔가 생각난 듯 다시 눈을 떴다.“옷을 이렇게 다 주면 대표님은 어떡해요? 안 추워요?”“나는 몸이 워낙 좋아서.”주한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아, 네.”현아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몸이 안 좋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에 잠겼던 현아는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다시 깨어났을 때 창밖의 어둠은 더 짙어졌고 현아는 아직도 온몸을 웅크리고 있었다.깨어나 보니 아직도 조금 추웠고 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주한의 외투 속으로 점점 숨어들었다. 외투를 받았으니 다행이지 아니면 정말 자다가 추워서 깼을 것이다.하지만 현아는 이내 뭔가 생각났다. 자기는 외투를 입고 있어서 따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