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비서도 날 위해 그러는 거니까 탓하지 마.”선우가 싱긋 웃었다.“아마 미래의 상사가 다른 사람이 될까 봐 그랬을 거야.”그의 말 속엔 뜻이 있었다.“그래서, 지금은 걜 보면 어떤 느낌인데?”선우의 질문은 직설적이고 날카롭다.“미안. 내가 선 넘었나? 5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벗어났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만.”하긴, 5년이나 흘렀는데.그렇게 긴 시간 동안 못 털어낼 일이 뭐가 있겠는가.윤아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아냐, 괜찮아. 묻고 싶으면 물을 수도 있지. 수현 씨는 이젠 나한테 낯선 사람이나 마찬가지야.”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에게 가슴 떨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말이 안 된다.“그래?”선우는 믿는건지 아닌지 가늠할 수 없는 표정으로 윤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럼 됐어. 난 네가 아직도 그곳에 머물러있는 줄 알았어.”“그럴 리가.”윤아가 웃으며 말했다.둘은 더 말하지 않았다. 이 화제가 불편하단 걸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었으니까.선우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윤아의 어깨에 손을 놓고 밀며 나아갔다.“가자. 이제 자야지. 여긴 내가 계속 있을게. 앨리스가 아무 일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제일 먼저 너한테 알릴 테니까 걱정 말고.”“하지만...”윤아가 머뭇거리며 말했다.“네가 계속 있어 주는 것도 좀 미안하고. 아니면 역시 내가...”윤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선우에 의해 방까지 밀려갔다.윤아가 입을 열어 말을 하려 하자 선우가 손가락을 뻗어 그녀의 입술을 누르며 말했다.“쉿.”그의 중저음 보이스는 마치 유유히 흘러나오는 첼로 소리 같이 매력적이었다.“훈이랑 윤이 깨겠어. 얼른 들어가.”그의 손가락을 통해 전해지는 온기는 마치 불꽃같이 윤아의 입술에 닿여왔다. 그녀가 정신이 돌아왔을 땐 황급히 그를 밀어내기 바빴다.하지만 그보다 빨리 손을 거둔 선우. 그의 눈빛은 맑고 청렴해 마치 조금 전 행동은 그저 순수하게 윤아를 조용히 시키려는 의도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윤아는 하는 수없이 침대
이런 생각을 하며 윤아는 방문을 열고 맨발로 뛰쳐나갔다.거실로 나가려 했던 윤아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대로 그녀를 찾으러 왔던 선우의 품에 폭 안겼다.선우도 놀랐는지 윤아를 안은 채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휘청거렸다.“무슨 일이야?”선우가 넘어지지 않게 윤아의 허리를 잡고 바로 서며 물었다.그러나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는 윤아는 바로 그에게 물었다.“앨리스는? 돌아왔어?”그녀의 말에 선우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조급해하지 마. 그거 알려주려고 온 거니까.”그제야 조금 진정이 된 윤아는 그에게서 몇 걸음 물러났다.윤아는 옷도 어제 그대로고 신발도 신지 않았는데 얘기를 듣기 전에는 입을 것 같지 않아 선우는 하는 수 없이 될수록 짧게 추려서 말해주기로 했다.“앨리스는 안전해. 별일 없었어. 우리 쪽 사람이 호텔 입구에서 지금까지 계속 지키고 있다 금방 돌아왔대.”“호텔에서?”“응.”“어떻게 지키고 있었다는 건데? 앨리스는 호텔 어디에 있었어? 들어갔었어?”나올 때 호텔 카드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으니 방에 들어가진 못했을 텐데.선우는 윤아의 표정을 관찰하려는 듯 그녀를 빤히 주시하더니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들어갔다면, 넌 무슨 기분일 것 같은데?”윤아가 멈칫했다.곧이어 표정이 굳는 윤아.“날 시험해 보면 재밌어?”“어젯밤부터 계속 알게 모르게 날 시험해 보고 있잖아.”선우가 잠시 멈칫하더니 시선을 올려 그녀를 유심히 바라봤다.“그럼 시험하는 거라고 치자. 긴장되고 신경 쓰이고 근데 또 할 수 있는 건 없고. 그래서 이런 방법으로라도 네가 걔한테 마음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어. 나한테 아직 기회가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어.”“...”그의 돌직구에 윤아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난...”“됐어. 이 얘긴 그만하고 이제 앨리스 안전한 거 알았으니까 옷이나 입어.”윤아는 그제야 고개를 숙여 자신이 잠옷 차림인 걸 확인했다.“추워. 감기 걸리겠다.”_호텔,어느새 날이 밝았다. 앨리스는 벽에 기댄 채 졸음
두 번 정도 눌렀는데 안에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앨리스는 그래도 참을성 있게 문 앞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초인종을 얼마나 눌렀는지 세지도 못할 무렵, 방문이 드디어 열렸다.문 앞의 수려한 용모의 그 남자는 단잠을 깨운 탓인지 서늘한 기운을 내뿜으며 차갑게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찰나였지만 앨리스는 그에게서 한기를 느꼈다.“안, 안녕하세요?”쾅!곧바로 닫히는 문에 앨리스는 하마터면 문에 코를 찧을 뻔했다.그녀는 정신을 다잡은 뒤 다시 다가가 초인종을 눌렀다.두 번을 누르고서야 수려한 용모의 그 남자가 다시 문을 열어줬다.“무슨 일이죠?”수현이 눈앞의 그녀를 못 알아본 건 아니다.술집에서 그렇게 그에게 오랜 시간 찝쩍대던 여자.수현은 입을 꾹 다문 채 서늘하게 그녀를 쳐다봤다. 술집에 있던 이 여자가 어떻게 호텔까지 쫓아온 건지.앨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문이 다시 닫힐까 봐 얼른 앞으로 다가갔다.그러나 수현이 손을 뻗어 그녀를 막는 바람에 몇 걸음 못 가 앨리스는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수현은 여전히 서늘하게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방에 들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저... 먼저 들여보내 줘요. 할 말이 있어요.”“여기서. 일 분.”수현이 냉랭하게 말했다.앨리스는 그가 이렇게까지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었나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금방 깨서 어젯밤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여기까지 생각한 앨리스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어젯밤에 그쪽이 너무 취해서 제가 여기 호텔까지 데리고 온 거예요.”그녀의 말에 수현이 잠시 멈칫했다.“호텔 비용도 제가 냈고요.”앨리스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물론 그 돈 돌려달라는 건 아닌데요, 그냥 오해하지 마시라고요.”어젯밤에 취한 그를 도와줬다는 얘기에 수현이 잠시 침묵하더니 어젯밤 일을 조금씩 떠올렸다.혼란스러운 가운데 그가 간절히 그리워하던 누군가의 모습을 본 것만 같았다.하지만 눈을 떠보니 그의 앞에 있는 여자는 낯선 사람이고,
번호도 다 저장한 마당에 이제 와 비서 연락처라고 하고 가버리다니.앨리스는 급한 마음에 무작정 수현을 뒤따라 엘리베이터까지 갔다.“잠깐만요. 보수를 달라고 연락처 물어본 거 아니에요. 전 그냥 그쪽과 친구라도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본인 연락처 좀 주시면 안 돼요?”성큼성큼 걸어가던 수현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무표정으로 가만히 멈춰 섰다.앨리스는 자신의 아랫입술을 깨물며 잔뜩 긴장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제발요. 저 정말 연락처 알고 싶다고요. 저 절대 귀찮게 굴지 않을게요.”수현은 서늘하게 그녀를 한 눈 보고는 손을 올려 슈트 가장 위의 단추를 잠그며 말했다.“이봐요 아가씨. 나한테 마음 있는 거면 이만 포기해요. 아니면 나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 못 하니까.”띵--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수현이 무표정으로 걸어 들어갔다.앨리스는 그의 매정한 말에 어느새 낯빛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그를 보며 저도 모르게 다시 한번 슬며시 그를 따라갔다.엘리베이터에는 그녀와 수현 둘만 있었다. 앨리스는 그를 따라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그에게서 냉랭한 한기가 풍기는 걸 느꼈다.이 남자가 좋지만... 누군가에게 이렇게 단칼에 거절당한 적은 처음인 것 같다.수현의 차가운 눈빛과 말투는 그녀를 마치 무슨 쓰레기 취급을 하는 듯해 사람 자신감을 한순간에 박살 냈다.앨리스는 수현에게 다시 말을 걸 용기조차 나지 않아 그저 꼿꼿하게 서서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기를 기다렸다.앨리스는 이 순간만큼은 일 초가 일 년 같이 느껴졌다.얼마나 지났을까, 엘리베이터가 드디어 일 층에 도착했고 앨리스는 그제야 수현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올 때 수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서늘하게 물었다.“따라오지 마시죠.”앨리스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채 입술만 깨물며 고개를 들지도 대꾸를 하지도 못했다.그때, 들고 있던 핸드폰이 울리며 눈앞의 남자는 떠나갔다.앨리스는 발신인을 확인한 뒤 맥 빠진 목소리로 전화를 받
‘설마 진수현이 옆에 있는 건 아니겠지?'윤아는 불현듯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한 편, 윤아의 전화를 끊은 앨리스는 황급히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 후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왜...”앨리스는 왜 돌아왔냐 묻고 싶었으나 괜히 머쓱한 마음에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다시 삼켰다.앨리스가 무슨 얘기로 운을 떼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수현이 그녀의 핸드폰을 힐끗 보더니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방금 통화 한 겁니까?”의외의 질문에 앨리스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렇죠.”“친구?”“네.”수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어젯밤에... 그쪽이 날 도왔다고요?”앨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취해서 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호텔에 데려왔어요. 근데...”앨리스는 불현듯 뭔가 생각난 듯 갑자기 말을 멈췄다.“근데 뭐요?”수현의 촉이 그 뒤의 말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있었다.사실 앨리스는 그 뒤의 말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 먼저 나와버린 거였다. 자신의 친구를 팔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그의 앞에서 할 말은 아닌듯했기 때문이다. 괜히 얘기했다 그를 화나게 할 수도 있으니까.그녀도 자기 입이 이렇게 빠른 줄 몰랐다.앨리스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아, 아무것도 아니에요.”수현의 눈빛이 순간 싸해졌다.“사실대로 말해요.”그 순간 수현에게서 상위자의 기개가 뿜어져 나왔다.앨리스도 자기가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는데 분명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 걸 수현이 이렇게 나오니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며 저도 모르게 사실대로 말했다.“어, 어젯밤에는 오해가 있었어요. 그쪽이 술에 취해 제 친구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고요. 근데 걱정은 마세요. 제가 제 친구한테 그런 사람 아니라고 해명했거든요. 그리고나서는 저와 친구가 같이 그쪽을 호텔에 데려다준 거고요.”“당신 친구 몸에 손을 대려 했다고?”수현의 머릿속에 순간 떠오르지 않았던 화면이 스쳤다.술집에서 그녀를 만난 기억이 어렴풋이
사건의 반전은 정말 예상하기 어려웠다.아까까지만 해도 자신의 비참한 처지가 슬퍼서 돌아간 다음 윤아를 안고 통곡하는 거로 처음 거절당한 일을 애도하려고 했다.하지만 이 남자가 쫓아올 줄은 정말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다,차에 앉은 앨리스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입술을 꾹 다물었는데 속으론 엄청 행복했다. 그리고 용기도 함께 생기면서 수현에게 말을 걸었다.“저기요,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수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보았다.“말해요.“네. 그게 그러니까...이름이 뭐예요? 오해하지 말아요. 실은 정말 어떻게 부를지 몰라서 그래요. 심지어 성이 뭔지도 몰라요.”“성은 진씨이에요.”“진?”앨리스는 조금 놀라웠다.“진 씨라니.”그녀의 반응 보자 수현은 어떤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물었다,“알아요?”앨리스: “아니요. 그냥 단순하게 듣기 좋은 것 같아서요.”진수현: “...”그래서 윤아는 이 여자와 친구로 지내면서도 자신에 대해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단 말인가?심지어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오 년 동안 정말 자신을 잊고 살았던가?허.그의 성을 안 후 앨리스는 또 그의 이름을 알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참았지만 결국 물었다.“그럼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수현은 굳은 얼굴로 대답하지 않았다.하지만 앨리스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그럼 연락처는요?”끙, 여전히 무시하네.하지만 앨리스는 풀이 죽지 않았다. 지금 그녀와 같은 차에 앉아 있는 건 고작 하나의 “오해”로 자신의 친구에게 사과하러 가기 위함이다. 이건 이 남자의 품성과 소질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장기적으로 만나며 관계의 발전을 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또한 앨리스는 그의 차가움을 신경 쓰지 않았다.이렇게 겉으로 보기엔 빙산처럼 차가운 남자는 그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지만 그의 마음을 얻기만 한다면 아마 유독 열렬하게 사랑해 줄 것이다. 이점에 대해 앨리스는 아주 잘 알고 있다.그녀는
“사업이요?”“네. 창업하고 싶다네요.”수현은 티 나지 않게 눈썹을 위로 살짝 올렸다.자신이 다른 사람 입에서 윤아에 관한 일과 과거를 알게 될 줄은 정말 꿈에서도 몰랐다.이렇게 생각하니 다소 웃겼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윤아에 관한 일이라면 무척 관심이 갔다.“창업이요?”수현은 손을 맞잡으며 무릎 위에 올렸다.“둘이 함께합니까?”“아니요.”앨리스는 고개를 흔들었다.“전 공항에서 아빠 일 돕고 있어요. 아빠가 창업하는 거 반대하셔서 학교에서 졸업한 다음부터 집안 기업에서 일하고 있어요. 지금은 거기서 관리를 배우고 있죠.”하지만 그녀가 이런 말을 한 다음에도 수현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앨리스는 그의 반응을 본 후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제 친구는 회사를 차릴 거래요.”역시나 윤아 일을 꺼내자마자 그의 눈썹은 미세하게 움직였다.“어떤 회사인데요?”앨리스는 우울한 마음으로 말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 그냥 시작 단계라는 것만 알고 있지 다른 건 물어보지 않았거든요.”조금 이상했다. 이 남자가 윤아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어젯밤 술에 취했을 때 잘못된 일을 해서 그러는 걸까?전에 이 일을 꺼냈을 때 그는 기억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앨리스는 수현이 윤아가 마음에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러니 가능한 건 미안함 뿐일 것이다.미안하기 때문에 과한 관심을 보이는 거라고 앨리스는 믿었다.그녀는 이런 심리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사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제 친구 아주 좋은 사람이거든요. 부드럽고 말이 잘 통해요. 조금 있다가 사과하면서 설명하고 나중에 밥 한 끼 함께 먹으면 괜찮을 거예요.”“그래요?”“네. 마음 놓고 있어요. 그때 가서 제가 좋은 말 많이 할 테니까 제 친구가 꼭 사과를 받아줄 거예요.”좋은 말을 해주겠다고?이런 대화를 나눈 후, 수현은 드디어 진지하게 앨리스를 한눈 보았다.“이름이 뭡니까?”이 말을 듣자 앨리스의 눈동자엔 빛이 반짝거렸다. 그녀는 얼른 대답했다
“윤아야?”앨리스는 거의 온 집안을 다 둘러보았지만 윤아를 찾지 못했다.“어디 갔지?”그녀는 어쩔 수 없이 거실에 돌아왔다. 수현이 거실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는 것을 보자 그녀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미안해서 어떡하죠. 제 친구가 집에 없는 것 같아요. 밖에 나간 게 아닌가 싶어요.”이렇게 말하면서 앨리스는 별수 없어 다른 화제로 말을 돌렸다.“먼저 앉아 계시겠어요? 제가 전화 걸어볼게요.”“좋아요.”앨리스는 그가 사양할 줄 알았다. 하지만 수현은 냉큼 소파에 앉으면서 여유 있으니 천천히 기다리겠다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그녀는 얼른 베란다에 달려가 윤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윤아야, 너 지금 어디 있어?”“집 돌아갔어?”앨리스의 전화를 받은 윤아는 의식적으로 되물었다.“응응. 금방 집에 도착했어. 그런데 네가 안 보이네.”그녀가 집에 돌아갔다는 말을 들은 윤아는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앨리스에게 알려주었다.“일이 좀 있어서 밖에 나왔어. 만약 볼 일 없다면 집에 조용히 있어. 돌아간 다음 할 말이 있거든.”“응. 나도 할 말 있는데 너...”“앨리스 전화야?”갑자기 선우의 목소리가 핸드폰 저편에서 들려왔다.“응. 집에 도착했대.”“그럼 다행이네.”원래 앨리스는 그 남자도 지금 집에 있으니 미안하다고 사과하려 했다. 그리고 함께 밥 한 끼 먹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려고 했다.하지만 선우의 목소리를 들은 후, 그녀는 순간 목구멍까지 치멀어 올랐던 말을 다시 삼켰다.윤아가 지금 선우와 함께 있는 것을 알고도 방해할 정도로 눈치가 없지 않았다.그래서 앨리스는 말을 바꾸기로 결정했다.“그럼 밖에서 안전 조심해.”윤아는 아마 아직도 걱정되는지 밖에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 후 전화를 끊었다.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신호음을 듣고 앨리스는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점심에 그 남자와 단둘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점에 그녀는 입꼬리를 올렸다.이렇게 생각한 앨리스는 핸드폰을 치우고 돌아갔다.거실에 도착한 후 그녀는 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