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는 더 말하지 않았다.잠시 후 우진은 머쓱한 듯 자신의 머리를 쓱쓱 만졌다.너무 마음을 놓아버린 탓일까, 저도 모르게 말실수를 해버렸다. 그는 자신이 한 말을 곱씹으며 후회하고 있었다.그래도 다행히 몇 분 후 윤아가 먼저 어색한 침묵을 깨줬다.“비서님. 다음 경매품은 저 대신 값을 불러주세요.”“다음이요?”우진은 곧바로 수첩을 펼쳐 다음 경매품이 고급스러운 옥 팔찌임을 확인했다.“윤아 님. 이게 마음에 드세요?”우진은 전혀 준비되지 않은 탓이 어리둥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 윤아가 옥을 좋아한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다행인 것은 이선우가 사전에 그에게 윤아가 마음에 들어 하는 물건이 있거든 그녀를 도와 얼마를 부르던 무조건 낙찰받도록 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돈은 선우의 계좌에서 나가도록 하라고 말이다.윤아는 싱긋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네. 알겠습니다.”우진은 다음 경매품이 나올 때쯤에 잔뜩 긴장한 채 자리를 잡았다.다음 경매품이 아마 오늘 밤의 피날레인듯했다. 윤아는 사뭇 진지하게 기다리는 우진을 보며 당부했다.“다들 한바탕 하기까지 기다렸다 값을 불러요.”우진이 힘껏 머리를 끄덕였다.장내에는 어느새 줄줄이 값을 부르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옥 팔찌의 가격은 빠르게 6억 원에 치달았다.6억 원이라는 가격에 값을 부르던 사람들도 주춤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남은 사람은 둘 밖에 없었다.그때 윤아가 우진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에 우진이 막 팻말을 들어 값을 부르려 했는데 마침 그때 앞쪽 VIP 석에서 누군가 선수를 쳤다.“8억.”우진도 8억을 부르려 했는데 저쪽에서 먼저 외칠 줄은 몰랐던 탓에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선우의 곁에서 오랫동안 함께 했던 그도 만만치는 않았다. “9억.”옆에 있던 윤아가 입을 열기도 저에 더 높은 가격을 부르는 우진.윤아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우진의 활활 타오르는 열정에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닫았다.강소영은 호기롭게 값을 불렀다가 그에 따라붙
윤아가 그에게 선우의 말을 그렇게까지 하면서 따를 필욘 없다고 말하려 했으나 우진이 이미 팻말을 든 후였다.“10억.”재벌인 그들에게 10억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숫자는 아니었지만 소영은 이 옥 팔찌를 위해 그렇게까지 나서는 이가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게다가 하필이면 그녀가 수현과 함께 있는 이 때에 말이다. 대부분 사람은 그녀의 체면을 위해 이렇게까지 경쟁하진 않았을 것이다.설마...날 무시하는 건가?소영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11억.”우진도 지지 않았다.“12억.”윤아:“...”그녀 잘못이다. 물건이 마음에 든다는 걸 티 내지 말았어야 했는데.현장은 어느새 수군대는 사람들로 술렁거렸다. 아마 옥 팔찌 하나로 이렇게까지 치열해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12억까지 왔는데 소영은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팻말을 들었다.“13억.”우진은 그에 더 따라붙으려 했지만 윤아가 말린 탓에 팻말을 들 수 없었다.“됐어요. 비서님.”“하지만 윤아 님. 대표님...”윤아는 차분히 그를 보며 말했다.“이제 갖고 싶지 않아졌어요. 정말 그를 대신해 제가 좋아하지 않는 물건을 사줄 생각이에요?”그녀의 말에 우진이 멈칫했다.선우를 대신해 윤아의 환심을 사려 했으나 이젠 선우도 없는데 고집을 부리다 윤아의 눈 밖에 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정말 얻은 게 하나도 없는 꼴이지 않은가.생각 정리를 마친 우진은 결국 포기하기로 했다.“알겠어요. 하지만 후에라도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꼭 말씀해주세요.”윤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머리를 끄덕였다.그러나 우진은 그녀가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타나도 이젠 티를 내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어휴.여자의 환심을 사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그는 새삼 대가 없는 사랑을 퍼붓는 선우가 어떻게 몇 년을 견지해왔는지 참 대단해 보였다.소영은 그렇게 13억에 팔찌를 낙찰받았다. 주위에서 수군대는 소리에 그녀는 기세가 등등해졌다.13억. 그녀의 목표는 이미 달성했다. 내일이면 아마 모두가 그녀가
소영은 손에 들고 있던 경매 수첩을 펼쳐보고는 조심스레 수현의 옆으로 다가가 말했다.“수현 씨. 어머님이 말한 그 물건이 곧 나올 거야.”“응.”수현은 차갑게 대꾸하고는 다시 핸드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소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곳에 들어서서부터 수현은 줄곧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목적이 분명해서 원하는 물품이 나오기 전까지는 경매에 그다지 관심도 없었다.하지만 아무리 관심이 없다 해도 예전엔 이렇게까지 핸드폰을 보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대체 뭘 보길래 그렇게 눈을 못 떼는 것인지.소영은 궁금한 마음에 그의 핸드폰 화면을 한 눈 보았다가 깜짝 놀라 그대로 몸이 굳고 말았다.두 아이??수현이 지금 두 아이를 보고 있다고?소영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한번 그의 핸드폰을 향해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핸드폰 화면은 이미 꺼져있었다.이윽고 그녀를 향하는 수현의 싸늘한 시선.“뭘 봐?”소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너한테 얘기 좀 해주려고.”“알았어.”수현은 핸드폰을 거두고 딴 데 정신 팔지 않고 정면을 주시했다. 그러자 소영도 자세를 바로 하고 자리에 앉았다.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드는 소영.‘수현 씨가 언제부터 아이들 사진을 보기 시작했지?’예전에 그의 핸드폰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요즘은 일에만 미쳐있는 사람이 어떻게 어린아이 사진을 본단 말인가?짧은 찰나에 소영은 방금 자신이 봤던 화면을 떠올리고는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혈색이 줄고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그녀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화면 속 그 아이들, 수현과 아주 많이 닮았다.수현이 최근 술에 찌든 생활을 한 바람에 적지 않은 여자들이 호시탐탐 그를 노리며 그가 취한 틈을 타 어떻게든 그와 엮여보려 안달이긴 했다. 심지어 자신의 아이를 성형시키기까지 하는 악랄한 인간들이다. 소영은 그런 인간들이 대체 무슨 수로 수현에게 다가간 것인지, 또 어떻게 그런 음침한
결국 그 물품을 가져간 건 이름 없는 신비의 인사였다.모두 그 신비의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해했으나 그 추리가 차씨 집안까지 다다를 줄은 몰랐다.윤아는 뭔가 떠오른 듯 옆에 있던 우진에게 물었다.“그 차씨 집안...”우진은 그녀와 마음이 통한 듯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윤아 님. 바로 예전에 윤아 님을 캐내던 그 집안이에요.”정말로 그 차씨 집안이라니.현장의 분위기를 보며 윤아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새로 온 후계자가 꽤 인내심이 있는 모양이네요.”“네.”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인내심이 있네요. 게다가 패기도 있고요. 이번 피날레도 손에 얻겠죠.”현장은 이미 값을 부르기 시작했다.우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오늘 기세로 보아 얼마를 들여야 얻을 수 있을지 감도 안 잡히네요.”희귀아이템이다 보니 경매 최저 가격도 굉장히 높았다. 게다가 값을 부르는 사람들도 줄줄이 나오니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벌써 80억에 치솟았다.80억, 100억.경매장에서 외치는 숫자들은 돈이 아니라 그저 숫자에 불과한 듯했다.“120억!”사회자가 감탄하며 서둘러 누군가의 이름을 외쳤다.“저희 진 대표님이 120억을 외쳤습니다. 더 높은 가격 있나요?”수현과 같은 성씨를 듣자 우진이 저도 모르게 윤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하지만 윤아는 마치 듣지 못한 사람 마냥 태연하게 앉아있었다.윤아의 평온한 표정과 달리 우진은 마음이 불편했다.여긴 해외가 아니라....한국이다.그것도 남성의 옆 도시 수원이다.수원이 아니라 전국에서도 이런 값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심지어 그중에서도 성이 진 씨인 사람은... 없지 않은가.우진은 자신도 아는 걸 영리한 윤아가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온한 그녀의 표정을 보니 정말 이젠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하긴, 벌써 5년이나 흘렀으니 그럴 만도. 5년이란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무언가를 흐릿하게 만들기엔 충분한 시간이다.우진은 마음을 놓고 다시 경매에
비는 내릴수록 거세져 어느새 복도를 반이나 적셨다.윤아는 목도리를 정리하며 몸을 움직였다.한국 날씨가 이렇게 추운 줄은 몰랐는데...윤아는 몸은 바로 섰지만 정신이 흐릿함을 느꼈다. 오늘 밤 진 대표님 그 한마디 때문에...이번에도 예전과 같이 같은 성씨를 들어도 크게 동요하진 않았지만 사실 윤아도 알고 있었다. 오늘 밤의 그 ‘진 대표’는 그전에 들었던 이름들과 다르단 걸.이곳은 한국이다. 그리고 수원이다. 그 성씨에 120억을 외칠 수 있는 데다 초대를 받아 올 만한 사람, 딱 한 명이다.진수현...못 본 지 5년이다.윤아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방향을 틀어 걸음을 옮겼다.“윤아 씨.”몇 걸음 가기도 전에 그녀는 훤칠한 남성의 부름에 걸음을 멈췄다.윤아는 그 자리에 멈춰선 채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남자를 바라보았다.남색 슈트에 구김 없는 넥타이까지. 그는 윤아가 고개를 들자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문을 열었다.“안녕하세요. 차서원입니다.”차서원?아까 그 진우진 비서님이 말했던 그 차씨 가문 후계자?윤아가 멍하니 있자 서원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절 못 알아보시는 건가요? 이래 봬도 윤아 씨에게 몇 번이나 스카우트 제안을 했던 사람인데. 못 알아보시면 너무 서운할 것 같은데요?”“그건 아니고요.”윤아가 그의 악수를 받아주며 말했다.“서원 씨가 이곳에 있는데 좀 신기해서요.”사실 윤아는 차성그룹의 신임 후계자의 얼굴을 모른다. 그때는 너무 바빠서 볼 새가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렇다고 아는 척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앞으로 수원에 회사를 차릴 거니 다른 기업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서원은 부드러운 손의 촉감에 잠시 멈칫하더니 금방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그는 윤아를 몇 초 정도 훑어보고는 물었다.“왜 나와 계시죠?”“너무 오래 앉았더니 바람 좀 쐬고 싶어서요.”“그렇군요.”서원은 눈썹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아 참. 윤아 씨. 저번 스카우트 제안을 몇 번이고 거절한 이유가
그의 비서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농담 한건데 그게 왜 자신의 탓이 된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이다.한 편, 윤아는 서원이 떠나간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몸에 둘렸던 그의 외투를 벗었다. 그를 뒤따라 가려 했지만 이미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후였다.윤아는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 경매장 입구의 관리원에게 그의 외투를 맡겼다.“안녕하세요. 혹시 이 외투 좀 차서원 씨에게 돌려줄 수 있을까요?”조금 전 윤아와 서원이 대화를 나눌 때 입구의 관리원들도 이곳에서 그들을 지켜보며 농담거리를 주고받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서원은 사람 홀리기 좋아하는 데다 방탕한 생활을 즐긴다고 한다. 여자가 많은 건 그렇다 쳐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홀릴 줄은 몰랐는데 미인에게 자신의 외투까지 벗어줄 줄이야.관리원인 그들이 윤아의 외투를 어찌 감히 받겠는가. 그것도 차서원이 그녀에게 준 걸 말이다. 이건 분명 윤아와 잘 되고 싶어 하는 시그널이라는건 그들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아뇨아뇨. 아가씨, 이건 차서원 대표님이 윤아 아가씨께 드린 거잖아요. 그래도 직접 돌려드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윤아:“하지만 그분이 어디 갔는지 몰라서요.”관리원:“아까 차서원 대표님과 연락처를 주고받지 않았나요?”윤아:“...”윤아가 아직도 제자리에 서 있자 옆에 있던 관리원이 설명했다.“저희가 돕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요. 현장 관리원인 저희는 평소 차서원 대표님을 만날 기회가 없어요. 그러니까 저희가 이 외투를 받아도 돌려드리기 어려울 것 같아요.”그의 설명을 들으니 윤아도 납득이 된 듯 말했다.“그렇군요. 감사해요.”윤아는 더는 그들을 곤란하게 하지 않았다.그녀는 경매장을 한 눈 보고 또다시 로비 쪽을 보면서 그들에게 말했다.“밖에서 좀 쉬어도 괜찮을까요?”그녀의 말에 관리원들이 친절하게 안내했다.“그럼요. 제가 바래다 드리죠.”반대편까지 가려면 우산이 필요했기에 관리원은 우산을 들고 그녀를 안내했다.싱긋 웃으며 말하는 윤아.“감사해요.”윤아는 예쁜 외모와 더
그의 옆에는 하늘거리는 연분홍색 치마를 입은 여자가 함께 있었는데 비를 맞아 옷이 좀 헝클어지긴 했지만 사람 자체에서 나오는 우아한 품위는 가려지지 않았다.그녀는 곁에서 가볍게 남자의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둘은 어수선한 인파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다시 만나게 될 줄 몰랐던 건 아니지만 이렇게 볼 줄은 몰랐다. ‘몇 년이나 흘렀는데, 둘이 진작에 사귀었겠지? 애는... 우리 훈이 윤이와 비슷한 나이려나?’윤아가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데 뭔가 낌새를 눈치챈 그 남자가 윤아 쪽으로 걸어왔다.윤아는 숨을 참고 급하게 몸을 돌렸다.‘방금... 못 봤겠지?’윤아는 고양이에게 걸린 생쥐처럼 제자리에서 꼼짝을 못 했다.“윤아 님. 윤아 님?”우진의 목소리가 그녀의 뒤에서 들려왔다.윤아는 손가락만 조금 움찔할 뿐 차마 몸을 돌릴 순 없었다. 때문에 우진은 빙 돌아 그녀의 앞으로 와서 물었다.“윤아 님. 무슨 일 있으세요?”“비서님. 오셨어요? 경매는 끝났나요?”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끝났어요.”“물품은 낙찰받았나요?”“그럼요.”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쉬운 듯 말했다.“하지만 돈을 너무 많이 써버렸어요. 저 진 씨...”진수현의 씀씀이가 큰 탓에 물건을 낙찰받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하다는 말을 하려던 우진이 급하게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다물었다.사실 윤아와 우진 둘 다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한 참 후에야 다시 입을 여는 윤아.“다 되었으면 돌아가죠.”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윤아는 우진을 관찰하다 그가 마음을 놓는 듯 하자 그제야 수현이 떠났겠거니 했다. 아니라면 아마 그녀가 더 긴장되었을 것이다.생각 정리를 마친 윤아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역시, 조금 전까지 모여있던 사람들도 대부분 떠나고 인파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던 그 남녀도 보이지 않았다.윤아는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_이 야심한 밤에 윤아와 앨리스가 외출한단 말에 우진은 걱정이 앞섰다.“윤아 님. 시간도 늦었는데 지금 나가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요
시간을 한 눈 확인한 윤아는 앨리스에게 물었다.“네 남신님은?”그녀의 질문에 앨리스의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시간이 몇신데 아직도 난 그가 올지 안 올지도 몰라.”윤아는 눈에 띄게 죽상이 된 앨리스의 모습에 웃으면서 어깨를 다독여줬다.“너무 속상해하지 마. 운에 한 번 맡겨보는 셈 치지 뭐. 안 오면 내가 여기서 너랑 같이 있어 줄게. 여기 분위기도 좋으니 한두 시간 앉아있는 건 일도 아니겠어.”앨리스는 냉큼 웃으며 다정하게 윤아의 팔짱을 꼈다.“윤아야. 넌 정말 나한테 너무 잘해줘. 우리 꼭 영원히 함께하자.”둘은 그 후로 한참 동안 이곳 와인바에 더 있었다.그 사이에 서너 명의 남자가 술잔을 손에 들고 윤아의 옆자리에 앉으며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어 했지만 모두 윤아에게 단칼에 거절당했다.앞의 몇 명은 그렇게 거절을 당한 후 체면이 있으니 금방 자리를 떴지만 마지막 그 남자는 달랐다.그는 윤아의 완곡한 거절의 표시를 듣고도 떠나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윤아에게 물었다.“죄송하지만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윤아:“?”“거절한 이유요.”남자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제 생각엔 친구 하는 것 정도는 딱히 나쁠 것도 없어 보이는데.”윤아는 그의 생각을 눈치 챈 듯 말했다.“저 결혼 했어요.”윤아의 말에 상대방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잠시 후 그는 아쉬워하며 손을 흔들었다.“네. 실례했네요. 그럼 전 이만.”그가 떠나간 후 앨리스가 장난기 어린 말투로 윤아에게 말했다.“너 남자 쳐내는 기술도 참 독하다 정말. 예전엔 이 정도 아니었는데 이젠 아예 싹을 잘라버리는구나.”윤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네가 보기에도 이 방법이 더 낫지 않아? 귀찮은 일도 줄이고 말이야.”“네 남자 운도 줄이겠지. 언제 솔로 탈출할래?”“그게 뭔데? 난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남자가 대수야?”앨리스는 집에 있는 두 귀여운 꼬맹이들을 떠올리고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흥. 나도 그런 귀여운 아이가 있었으면 남자 따위 필요 없을 텐데. 있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