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가 왜 인제 와서 그에게 연락했을지 그도 얼추 짐작은 되었다. 아마 그가 준 돈을 돌려주려는 거겠지.하지만 그런 허접한 이유라면 상대해줄 필요가 없었다. 그는 한번 준 돈은 다시 받지 않는다. 딱 한 번 예외가 있었다면 바로 5년 전 그때뿐이었다.5년 전 일을 생각하니 수현은 그가 건넸던 몇 장의 수표와 그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건넸던 카드가 방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가 준 모든 것, 그리고 그녀가 달라고 했던 돈까지도 일전 한 푼 남기지 않고 모두 그에게 돌려줬었지. 마치 이제부턴 철저히 남이니 각자 갈 길 가자고 선포하기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5년이나 흘렀는데도 매번 그때를 떠올리면 수현은 기분이 더러웠다.독한 인간.민재가 준비해둔 음식도 시간이 많이 흐른 탓에 맛이 별로였다. 민재는 수현이 한두 입 먹고는 수저를 내려놓는 모습을 보며 그에게 말했다.“대표님. 오후에 또 회의 있으시잖아요. 지금 많이 드셔야죠.”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수현이 방문을 닫는 소리뿐이었다.민재는 그 자리에 서서 한가득 남은 밥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고는 직원에게 연락해 치우게 했다.오후 회의가 끝났을 땐 이미 밤이 어두웠다.수현은 회의실을 나오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러대며 말했다.“저녁에 또 다른 일정 있나요?”민재가 수심 가득한 표정을 한 채 머리를 흔들었다.“아뇨, 대표님. 저녁에 별다른 일정 없으니 이제 호텔에 돌아가 쉬시면 됩니다. 속은 괜찮으시시니까?”덤덤하게 대답하는 수현.“안 괜찮을 일이 뭐가 있어요?”그러나 그의 표정은 이미 그의 몸 상태가 안 좋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 수현이 걱정되는 민재는 저녁으로 그를 위해 무슨 음식을 시켜드릴지 고민하고 있었다.돌아가는 길에 수현은 피곤했는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한편, 민재는 차에서 오늘 회의에 썼던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이따금 수현을 한 눈 바라보곤 했다.그는 컨디션이 많이 나빠 보였다. 오후에 회의실에서도 그랬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하지만 그들은 수현에게 협업은 그저 공식적인 협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몰랐다. 그건 그 회사의 실력에 의해 결정되는 사안이지 선물 공세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때문에 여태 보내온 선물들도 모두 포장 그대로 되돌려 보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이번 협업은 모든 게 순조로웠고 계약 체결만 남은 상태였는데 이제 와 굳이 선물을 보낸다니. 민재는 그들이 무슨 생각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생각에 잠긴 채 걷다 보니 민재와 수현은 어느새 호텔 룸 앞까지 다 와있었다. 서둘러 룸카드를 꺼내 문을 여는 민재.“대표님. 들어가십시오.”입을 꾹 다문 채 방에 들어가던 수현이 현관을 넘어 몇 걸음 가기도 전에 걸음을 멈췄다.요지부동이 된 수현의 모습에 민재가 물었다.“대표님. 왜 그러십니까?”말이 끝나기 바쁘게 수현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그대로 방을 나와버렸다.민재:“?”“냄새가 이상해요.”수현이 불안정하게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네? 무슨 냄새요?”민재는 얼른 고개를 기울여 방 안의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어느새 이마에 땀까지 맺힌 수현은 그늘진 얼굴로 그에게 다시 말했다.“더 들어가 봐요.”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 민재는 그의 말대로 조금 더 들어가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대표님. 딱히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요?”수현은 그를 돼지 보듯 보더니 말했다.“...더 들어가라고요. 조금 더.”“네.”대표님 말인데 어쩔 수 없지. 민재는 그의 말대로 방 안쪽까지 들어갔고 수현은 문어구에서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며 뭔갈 기다리는 듯 서 있었다.몇 걸음 걸어 나가던 민재는 괜히 불안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 수현에게 눈짓으로 물었다. 그에 수현은 턱을 살짝 올리며 더 걸어가라 눈짓했다.민재는 여기까지 오면서도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방이 이렇게 멀쩡한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뭐 도둑이라도 들었겠어?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던 민재는 순간 눈앞이 아득해지며 새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이 그를
수현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툭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민재에게 달라붙어 몸싸움하던 금발의 여자도 그의 시선을 따라 수현의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그제야 민재를 놓아주고 그와 함께 수현에게 다가갔다.그녀는 어설픈 한국어로 무어라 계속 민재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이 사람 괜찮아? 구급차 불러줄까요?”협업 측 회사에서 보낸 여자란 걸 알고 난 후 민재는 그녀더라 어서 떠나라 하고 싶었지만 수현의 지금 상태를 봐선...“손대지 마요.”민재와 함께 수현을 부축하려던 그녀에게 수현이 서늘하게 얘기했다.그의 말에 민재는 얼른 그녀의 손을 내치며 유창한 영어로 알렸다.“당신 도움은 필요 없으니 이만 가서 할 일 하세요.”금발의 여자는 눈앞의 비실거려 보이지만 그래도 꽤 잘생긴 이 남자를 아쉬워하는 기색이었다.이런 남자는 흔치 않은데. 하지만...그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운 그의 모습을 보며 잘 꼬셔봐도 뭘 하진 못하겠구나 싶어 쿨하게 포기하고 방을 떠났다.그녀가 떠난 후 민재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수현을 부축해서 방으로 돌아갔다.민재가 수현을 소파에 눕히고 나서야 인턴이 헐레벌떡 약을 사 들고 문도 안 닫힌 호텔 방으로 달려왔다.“비서님. 여기 위약이요.”민재는 얼른 약을 받아들고 뚜껑을 열어 손바닥에 털어내다 불현듯 뭔가 생각난 듯 인턴을 향해 말했다.“물! 물은?”“아아. 물! 제가 얼른 가져다드릴게요.”그는 후다닥 주방으로 가 물을 한 컵 받아왔다.진수현의 위병이 도져 정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비록 분주한 사람은 민재와 인턴 둘뿐이지만 말이다.수현에게 약을 먹이고 손님방 침대까지 부축해가고 나니 어느새 반 시간이 훌쩍 흘러있었다. 일전에 금발의 그 여인이 안방 침대에 누웠던 탓에 향수 냄새로 범벅이었기에 그들은 하는 수 없이 수현은 손님방의 침대로 데리고 갔다.민재는 호텔 방을 나온 후 인턴에게 당부했다.“대표님 좀 괜찮아지시면 밑에 내려가서 다른 방으로 다시 잡아드려요.”“
“대표님 가족분들께서 얘기해보시는 것도 소용없던가요?”그의 질문에 민재는 표정이 침울해지더니 대답했다.“소용없어요. 그게 통했으면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겠죠.”“하긴.”둘은 얘기를 하면 할수록 더욱 우울해졌다.순간, 인턴이 뭔가 떠오른 듯 두 눈을 반짝이더니 물었다.“소영 아가씨는요? 몇 년간 진수현 대표님 곁에는 그분밖에 없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설마 소영 아가씨 말씀도 소용없었습니까?”“강소영 아가씨 말이에요?”민재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말도 마요. 나도 처음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영 아가씨께 부탁드려봤는데 쓸모없었어요.”“소영 아가씨도 안돼요? 그럼... 아무 방법도 없는 거 아니에요? 이대로 뒀다간 저희 대표님 일찍이 돌아가시겠어요.”“퉤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 그쪽은 인턴사원이지 저주 인형이 아니에요.”인턴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비서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세요. 제가 저주 인형이에요? 제가 얼마나 저희 대표님을 생각하는데요. 정말 이대로 방치했다간 건강하던 사람도 견디지 못할 거라고요.”민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래요. 하지만 가족들도 못 하는데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요.”인턴은 침묵했고 둘 사이에 한참 동안 정적이 흘렀다.두 시간 정도가 흐른 후 수현은 방을 바꿔 잡내 없이 깨끗한 공기를 맡으며 새 침대에서 금방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민재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며 인턴을 향해 말했다.“이제 됐어요. 할 일 없으면 이만 돌아가 봐요.”“비서님은요?”“대표님이 편찮으시니 밤새 간호해줄 사람이 필요하잖아요.”인턴은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 입을 만지작거리더니 말했다.“그런데 대표님은 약 말고 다른 음식은 안 드세요? 이러면 위에 안 좋지 않을까요? 아니면... 제가 죽이라도 사 올까요?”“여기 해외에요. 죽 구하기 어려울 거예요.”“여기 오는 길에 한인 식당을 봤어요. 그곳이라면 있을지도 모르니 제가 한번 가볼게요.”말을 마친 인턴은 곧장 밖으로 뛰어갔다.민
그녀의 문자에 답하지 않은 지도 어느덧 하루라는 시간이 흘렀다. 벌써 밤이 깊었으니 말이다.두 아이의 계정은 군더더기 없이 아주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는데 스토리가 자주 올라오진 않았다. 그저 가끔 편집된 영상이 어울리는 음악과 텍스트와 함께 뜨곤 했는데 보아하니 계정관리자가 바쁜 사람인듯했다.수현이 영상 하나를 클릭하자 화면 전체에 두 아이의 햇살 같은 웃음꽃이 피었다. 수현은 이 아이들이 웃는 모습을 보면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나쁜 감정들이 사르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그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한참 동안 영상들을 하나하나 넘겨보며 점차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민재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쯤은 이미 머리끝까지 솟았던 짜증도 제법 가라앉아 많이 평온해진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약을 먹은 덕에 아프던 위도 꽤 나아졌다.“대표님. 왜 깨어있으세요?”민재가 그의 곁에 다가오며 물었다.“아직 쉬고 계신 줄 알았는데요.”수현은 아직 안색은 안 좋지만 눈빛은 제법 날카로워졌다.그는 민재를 한 눈 보고는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민재는 그제야 그를 찾아온 목적을 떠올리고 말했다.“다른 건 아니고 장보람 인턴이 죽을 사 왔는데요. 거기 사장님이 대표님 아프시다는 얘기에 특별히 만들어주신 거랍니다. 금방 가져온 거라 아주 먹음직스러워요. 좀 드시지 않으시겠어요?”민재는 손을 비비며 말을 더 보탰다.“빈속에 약만 드시는 건 아무래도 위에 안좋으니까요...”그러나 민재의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수현이 단칼에 거절해버렸다.“됐어요. 가봐요.”민재는 그가 이렇게 빨리 거절할 줄 몰랐으나 포기하고 싶지 않아 그 자리에서 머뭇대며 돌아갈 생각을 안 했다.그런 그를 보며 수현이 물었다.“더 할 말 있어요?”“아니 대표님. 대표님 위도 안 좋은데 자꾸 이렇게 식사 거르시면 안 돼요.”“무슨 상관이에요.”민재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하긴 대표님이 아프지 내가 아픈가 뭐. 하지만 대표님이 아프면 바빠지는 건 나 아닌가? 걱정해주는 사람도
“엄마가 그랬어요. 밥 제때 잘 먹어야 건강한 몸을 만든다고요. 모두 꼭 제때 식사하세요.” 이게... 그 귀여운 녀석들 목소리다.하필 이때 이 녀석들 목소리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대체 뭘 암시하려고?비록 위약을 먹었지만 수현의 위는 여전히 쓰렸다.그는 신경질적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민재가 침실을 빠져나가려 할 때 그를 불러세웠다."잠깐만요."민재는 걸음을 멈추고 풀이 죽은 채 그를 쳐다봤다."대표님?""방금 죽이라고요?"빛을 잃어가던 민재의 눈이 번쩍 빛나더니 곧장 머리를 끄덕였다. "네. 대표님. 한인 식당에서 특별히 끓여 온 죽이에요."수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들여와 봐요.""넵. 금방 가져다드릴게요."민재가 방을 나갈 때 장바름은 밖에서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비서님. 어때요? 대표님 식사하신대요?""그래요. 어서 죽 좀 가져다줘요.""네."바름은 작은 그릇에 죽을 담아 민재에게 건넸다.민재는 혹여 수현이 그 새로 마음을 바꾸기라도 할까 봐 죽을 손에 들고 발 빠르게 침실로 향했다. 먹겠다고 했을 때 될수록 많이 먹이면 좋으니 말이다.죽의 향기가 어느새 방안 가득 퍼졌고 민재가 서둘러 들고 온 덕에 아직 따뜻한 상태였다.민재는 숟가락까지 챙겨 수현에게 건네며 세심하게 말했다."대표님. 뜨거우니 조심하세요."수현은 그릇을 받아 그 안에 담긴 하얀 죽을 바라보다가 숟가락으로 한입 떠서 입에 가져갔다. 그러나 죽이 그의 입가에 다가갈 때 그는 손을 멈추더니 민재를 향해 말했다.“언제까지 거기서 보고 있을 셈이죠?”먹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려던 민재는 수현의 말에 하는 수 없이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그럼 전 먼저 나가볼게요.”침실의 문이 닫히자 안팎이 조용해졌다.수현은 모락모락 김이 나는 죽을 보고는 있지만 사실 전혀 입맛이 없었다. 그는 예전부터 음식에 대한 흥미가 별로 없었다. 그에게 음식은 그저 배를 채우고 삶을 유지하는 도구에 불과했다.그 탓인지 수현은 항상 식사를 적게 했다.한
솔직히 말했을 때 이 답변은 어떻게 보면 조금 이상한 것 같다.만약 이 사람이 별다른 요구 없이 일 년 동안 묵묵히 훈이와 윤이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지 않았다면 윤아는 아마 그에게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어떻게 보면 결국은 그녀가 먼저 그에게 연락한 것이다.늦은 밤 시간도 소중하니 윤아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그에게 직접 연락처를 물었다.그녀의 질문은 꽤 직설적이었다.「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연락처를 추가해도 될까요?」수현은 이 문장을 오랜 시간 동안 바라보다 자신의 연락처를 입력했다.윤아는 상대방이 보내준 연락처를 확인한 후 자신의 카톡을 열어 그를 추가했다.찾아낸 계정은 꽤 간단했고 명칭은 매우 간단한 'Y'로, 프로필 사진은 해변의 밤이었다.그의 인스타그램 닉네임과 아주 어울리는 모습이었다.윤아는 아주 빨리 그의 계정을 추가했다.수현은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보낸 후 잠시 기다렸지만 그녀가 자기에게 별다른 답장을 하지 않자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살펴보았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그만 잠든 것일까?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카톡을 열어보는데 이미 새로운 친구 추가 메시지가 와있었다.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그녀의 계정을 추가했다.서로를 추가한 후 시스템은 상대방이 이미 그의 친구임을 신속하게 알려주었다.수현은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프로필 사진을 확인해보았다.보통은 아이가 있으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아기의 사진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녀의 프로필 사진은 여명 중에 피어나는 한줄기 햇빛이었다.이 프로필 사진을 보며 수현은 왜인지 그녀가 태양의 빛을 닮은 밝고 활기찬 사람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자신과는 다르게...수현이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그들의 채팅창 윗단에는 이런 텍스트가 나타났다: 상대방이 입력 중...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보낸 메시지가 전송되었다."안녕하세요. 제가 뭐라 칭해야 할까요?""칭해?"지나치게 공손한 말투에 수현이 입술을 앙다물었다.그는 키보드를 두드려 한 글
윤아는 상당한 시간을 기다린 후 상대방의 답장을 받았다.그가 카드 번호를 찾으러 간 줄 알았지만 몇 분 후에 그는 단 세 글자로만 응답했다.“괜찮아.”윤아: “...”처음부터 느꼈지만 그는 말을 아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그가 애초에 그런 성격인 것인지 아니면 그녀와의 대화를 원치 않는 건지는 알기 어렵지만 그의 초반 행동을 보아 그녀와 길게 얘기하길 원치 않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전에도 윤아가 그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이미 읽음으로 표시되어 있었지만 한동안 답장을 하지 않았다. 저녁에라도 답장이 온건 아마도 읽씹은 무례하다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그를 이해한 윤아는 더 이상 그와 얘기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잠시 침묵한 뒤 그에게 메시지를 남겼다.“시간이 늦었으니 쉬시는 게 좋겠네요. 내일이나 혹시 다른 때라도 시간이 나신다면 제게 계좌 번호를 보내주세요. 그럼 안녕히 주무시고 좋은 꿈 꾸세요.”이 메시지를 본 순간 수현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대화를 끊으려 하는 모습이 너무 적나라하지 않은가.하지만 그녀가 마지막에 그에게 계좌 정보를 요구한 것은 수현의 예상을 벗어났다.정말 돈을 돌려주려고 하는 걸까?만약 그가 진짜 계좌 번호를 보내면 상대방은 정말 돈을 보내는 걸까?다정하고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이던 그 두 작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수현이 계좌 번호를 보내주기만 한다면 그녀도 돈을 정말 보낼 사람 같았다.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한번 준 돈은 돌려받지 않는다.-다음 날.윤아는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아 몽롱한 상태로 밖이 소란스러운 것을 느꼈다.바스락바스락.잠깐의 침묵 후 윤아는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이불을 걷고 맨발로 문을 열고 나갔다.아침 햇살이 큰 나뭇잎 사이 틈새로 들어와 거실에 살짝 흩어져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반짝이며 부서지는 파편 같이 반짝였다.거실 창문은 열려 있었고 아침부터 새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힘차게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에는 늘씬하고 건장한 남자가 식탁 주위에서 바쁘게 움직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