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아이 옆에 있던 소녀는 깜찍하게 카메라를 향해 윙크하고 키스를 하며 하트를 날리기도 했다."고마워요, 고독현 아저씨, 아저씨 진짜 멋져요!"어린 소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귀여웠다. 하는 행동도 약간 서툴었는데 왜인지 그의 마음속 부드러운 부분에 와닿았다.남자는 아까까지만 해도 얇은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지금은 얼음이 녹은 것처럼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렸습니다.두 아이를 비교해 봤을 때 그는 여전히 이 소녀가 더 마음에 들었다.남자 아이처럼 정색하고 선물을 주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하트를 날려주니 말이다.만약 그도 이런 딸이 있었으면...…이렇게 사색하는 사이에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비서가 문을 밀고 들어오며 말했다."대표님, 회의가 곧 시작되니 출발해야 합니다.”이민재는 수현의 올라간 입꼬리를 보자 잠시 멈칫했다. 잠시 후 수현의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아이 소리에 문득 깨달았다.대표님께서 또 그 두 아이의 생방송을 보고 계신다는 것을.조금 허무맹랑했다.1년 전 그는 수현과 함께 U국에 회의하러 갔었다. 회의가 끝난 후 수현은 어머니께 보석 선물을 사드리려고 보석 가게에 갔었다. 이 과정에서 보석 가게에 있던 두 할머니와 마주쳤는데 조금 특별해 보였다. 두 사람이 아이의 생방송을 보면서 주얼리를 고르고 있었기 때문이다.할머니들이 뭔가 특이한 일을 하면 민재는 이해할 수 있었었지만 수현이 그 아이들의 말을 들은 후 걸음을 멈추고는 두 할머니의 곁에 서서 오랫동안 듣고 지켜본 점에 대해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마지막에는 심지어 어떻게 하면 볼 수 있는지 물어보기까지 했다.이 변화에 민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이후에는 이 쌍둥이의 라이브를 보는 것이 거의 수현의 일상이 된 것 같다.그 두 아이가 라이브를 시작하면, 수현은 뭐를 하든 간에 잠시 제쳐두고 선물을 보낸다.회의 중이라면 그냥 들어가서 선물하고 떠난 뒤,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재방을 본다.처음에 민재는 수현이 이 두 아이가 귀엽고 재밌게 여겨
화면의 모서리에는 여자의 희미한 모습만이 비쳤고, 몇 초 만에 여자의 가녀린 몸짓이 사라졌다. 동시에 들려오는 건 여자를 향해 뛰어가는 작은 귀여운 아이들의 발소리였다."엄마.""엄마, 돌아오셨어요? 오늘 수고했어요, 엄마."두 아이들은 매우 다정하게 여자에게 다가가 관심했다. 멀리 있어서 여자의 목소리는 똑똑히 들려오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작은 아이들은 화면 앞으로 돌아왔다."삼촌, 이모, 여러분, 우리 엄마가 돌아왔어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방송할게요."훈이 돌아온 후 화면을 향해 한 마디 말했다. 그의 쌍둥이 여동생은 다시 화면에 하트를 비춰 보였다."여러분, 안녕!”라이브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약간 아쉬워했다. 두 아이가 일주일에 한 두 번씩만 방송하는데 오늘은 절반도 하지 않고 끝냈기 때문이었다. 비록 아쉽지만 그들은 남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화면은 검게 변하며 방송이 끝났음을 나타냈다. 수현은 휴대폰을 응시하며 멍하니 있었다.민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대표님, 지금 출발하지 않으시면 시간이 부족해요."다음 순간, 수현은 핸드폰을 끄고 침묵한 채 밖으로 걸어갔다.문밖에는 민재 외 얼마 전에 고용된 신입사원도 있었다. 회사 일이 많아서 비서도 한 명 이상 필요했다.두 사람은 수현이 나오자마자 인사를 했다."대표님.”"안녕하세요, 대표님."수현은 무표정하게 머리를 끄덕이고 지나갔다. 두 사람은 그의 뒤를 즉시 따라갔다. 수현은 빠르게 걸었고, 두 사람은 그의 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따라왔다. 새로 입사한 비서는 최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여자로, 민재와 함께 일하며 배우고 있었다. 두 사람이 수현의 뒤에서 약간 떨어진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민재에게 물었다."민재 님, 대표님 방금 아이들 방송 다시 보던 거예요? 맞아요?"민재는 머리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네, 맞아요. 방금 문밖에 있을 때 소리까지 들렸어요.""나도 직접 몰래 보러 간 적이 있어
인턴은 좀 답답했다.이 방송에서 나오는 두 아이는 성형을 한 것 같지 않다고 말하려고 했다. 성형을 한 사람은 보기엔 정교하더라도 생기가 부족했다. 그러나 이 두 아이들은 정말 생기가 넘쳐 보였다.하지만 아무리 비슷하다고 해도 수현이 이렇게 큰 아이를 낳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어느 여자가 수현의 아이를 낳고도 숨기며 살겠는가.생각만 해도 어처구니없었다.그래서 그녀는 다른 일에 관해 물어보았다."하지만 그렇게 닮은 아이들을 보고 대표님은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을까요? 성형이 아니라 진짜 자신의 아이라고요."그 말을 듣자 민재는 피식 웃었다."대표님을 어떻게 생각하는 거예요? 만취하더라도 낯선 여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사람이에요.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뭐가 생각난 듯 민재는 한 마디 더 덧붙였다."낯선 여자 말고, 여러 해 동안 대표님과 함께한 생명의 은인은 강소영 씨조차, 술에 취했을 때 만지지 않았어요."그는 수현의 비서로 몇 년 동안 일하면서 그의 인내심을 직접 확인했다. 정말 놀랍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인턴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강소영 씨도 안 된다면 정말로 놀랍네요!"그녀는 소영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정말 온화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정말 남성들의 배우자로서 가장 완벽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이렇게 생각하자 인턴은 업계에서 계속 전해지는 한 가지 소문을 떠올리고는 민재에게 물었다. "민재 님, 대표님께 전 부인이 있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그러면 대표님께선 전 부인을 대할 때에도 인내심이 있었나요?"인턴의 말에 민재의 얼굴에는 아쉬운 표정이 나타났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나의 사촌 형의 일을 대신했을 때 이미 이혼하셨어요. 근데 추측일 뿐이긴 하지만 대표님께서 결혼한 지 그렇게 오래되었는데도 아이를 가지지 않았으니까 같았다고 봐요."“하긴요.”인턴은 턱을 문지르며 속으로 상상했다."하지만 형은 대표님 전 부인께서 엄청난 미인이라고 하셨어요.”"얼마나 아름다워요
교외에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집에서."엄마! 엄마!"라이브 방송을 끝낸 후, 아이들은 왼쪽과 오른쪽으로 윤아의 품 안으로 들어가 작은 손을 벌려 그녀를 안았다. 그리고 윤아의 몸에서 나는 특유의 샤워 젤 향을 탐하듯이 흡수했다.아이를 안은 여자의 몸매는 날씬했고 유리구슬 같은 눈은 맑고 차가워 보였다. 그녀의 눈썹은 마치 깃털처럼 길었고 눈동자는 아름답게 빛났다."라이브 껐어?" 윤아는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청명하고 밝았다."네."윤이는 얼굴로 윤아의 목과 턱을 가볍게 스치며 애교를 부렸다.훈이는 자신의 여동생을 한눈 보고는 비교적 듬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오늘 그 사람이 또 많은 선물을 보냈어요."그 사람?윤아가 멍하니 있었다.“고독현 아저씨 말야?”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꾹 다물었다가 말했다."엄마가 하신 말을 전해드렸는데 듣지 않았어요."이 말을 듣자 윤아는 손으로 훈이 머리를 문지르며 가볍게 웃었다."됐어, 선물 주면 줬지." 두 아이가 오랫동안 고민하게 하지 않기 위해 윤아는 빨리 주제를 바꿨다. "배고파? 오늘 뭐 먹고 싶어?"음식 애호가인 윤이가 즉시 메뉴를 부르기 시작했다."엄마, 나 오늘은 새우를 먹고 싶어요, 그리고 저녁 후에 디저트도 만들어주세요."윤아는 고개를 돌려 훈이를 보며 물었다. “훈이는? 뭘 먹을래?"훈이의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나는 뭐든지 괜찮아요."그의 생각은 매우 단순했다. 만약 그가 메뉴를 고르면, 엄마는 분명 또 하나의 요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비록 돕고 싶었지만 윤이와 훈이는 아직 어린 나이여서 윤아는 그들을 부엌에 들여보내지 않았다.윤아는 훈이의 눈빛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훈이는 엄마가 힘들까 봐 걱정돼? 오늘 밤은 일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저녁만 만들면 돼.""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훈이는 윤이보다는 듬직했어도 결국 어린아이에 불과했다.어른들 앞에서 어린아이들의 마음은 한눈에 보일 만큼 명백하다."
절여두는 시간이 필요하니, 윤아는 다른 일을 처리하러 갔다. 빈 시간에 할 일이 떠오른 그녀는 거실로 향해 라이브 방송을 할 때 사용하는 핸드폰을 가져왔다.오늘 생방송에서 그녀의 두 아이는 또다시 많은 팬들을 얻었다. 새로 올린 동영상에 대한 코멘트에서 두 아이들이 너무 귀엽다는 말들이 저주 언급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요를 많이 받은 코멘트는 바로 이거였다."이렇게 얌전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쳤나요?"그녀는 웃으며 장난스럽게 답했다."아이를 키우는 것이 처음이라,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드릴 수 없을 거 같아요."답을 보낸 후, 그녀는 오늘의 수익을 확인했다. 보지 않았을 때는 괜찮았지만, 확인하고 보니 고독현 밤이 오늘도 두 아이에게 많은 선물을 보냈다는 것을 발견했다.전에 받은 돈과 오늘의 돈을 합쳐서 대략 계산해 보니 이미 수중에 들어온 돈이 상당히 많았다. 윤아는 아이들을 키우는 데 돈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두 아이의 생방송은 그저 그들의 취미이며, 두 아이가 즐겁기만 한다면 된다.하지만 생방송 이후에 수익이 이렇게 높아질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관객들은 꽤 귀여웠다. 그녀는 그들에게 돈을 써야 하는 선물은 보내지 말라고 했다. 정 하고 싶다면 무료 선물이면 족하다고 했다.하지만 고독현 밤이라는 사람은 계속해서 선물을 보냈고 그 액수도 상당히 컸다. 윤아는 백스테이지를 나가 고독현 밤의 계정을 찾았다. 실은 그와 이미 서로를 팔로우하고 있었었다. 너무 많은 선물을 보냈기 때문에 팔로우 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렇지만 고독현 밤의 계정은 아무것도 올리지 않았고, 팔로우 목록에도 그녀 한 명뿐이다. 마치... 이 계정이 두 아이의 생방송을 보기 위해 전용으로 개설된 것 같았다. 게다가 이렇게 오랫동안 팔로우하고 있는데 양측에서는 한 번도 대화한 적이 없었다. 윤아는 이런 사람을 처음 보았다.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생방송을 보고 묵묵히 선물을 보냈다.상대를 찾은 후, 윤아는 그가 온라인 상태인 것을
상대방이 두 아이의 엄마라고 자처하자, 수현의 눈빛은 조금 어두워졌다. 그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는 눈을 내리깔고 핸드폰을 차분하게 쳐다보며 별다른 동작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회의실 안의 다른 사람들은 이런 수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심지어 앞에서 발언하는 사람조차 많이 어색해졌다. 인턴은 이런 상황을 처음 보았는데, 놀라 손에 든 볼펜을 꽉 쥐었다가 노트북에 머리를 숨기려 했다. 민재도 처음에는 놀라웠지만 나중에는 침착해졌다. 이런 일에 대해 그는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어찌 되었든, 예전에도 회의 중에 두 아이가 방송을 시작하면 직접 핸드폰을 꺼내어 모든 사람의 시선 속에서 보는 일이 이미 있었다. 비록 회의에는 핸드폰 사용 금지라는 규정이 있지만, 수현이 누군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가 그를 감히 지적할 수 있겠는가?다들 그냥 수현의 행동을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는 그의 것이었으므로.예를 들어 지금처럼, 민재는 가볍게 기침 소리를 내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입을 열었다.다음 순간, 수현은 핸드폰을 넣어두고 양손을 책상 위에 교차시키면서 냉소적이고 예리한 표정을 지었다.다른 사람들: "..."차가운 시선이 닿는 것을 느끼자 그들은 수현이 핸드폰을 다시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적어도 지금처럼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그래서 다시 후회하며, 속으로 수현이 언제 다시 핸드폰을 보게 될지 기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실망했다. 이 회의는 몇 시간 동안 계속되어 끝날 때까지 수현은 핸드폰을 다시 보지 않았다. 떠날 때 많은 사람들은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는데 고도의 집중 때문에 기절 직전이었다. 수현이 자료를 정리하고 무표정하게 회의실을 나가자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에, 드디어 갔네요. 이 회의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저도요. 엉덩이가 불에 타고 있어도 감히 움직이지 못할 정도예요. 대표님 아우라 진짜 대박이에요." 사실 오늘의 이 회의에는 대부분이 진씨 그룹의 사람이 아
말이 끝나자마자 윤아는 윤이의 작고 흰 코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러자 윤이도 둥근 눈을 크게 떴는데 우윳빛 화이트 잠옷을 입은 아이는 마치 끓는 물에서 나온 부드럽고 촉촉한 우유 케이크 같았다.윤이는 윤아의 말에 진지하게 생각한 후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내가 크면 엄마를 도와 많은 일을 할게요." "응, 그럼 약속할게. 빨리 놀러 가." "움, 그럼 엄마 뽀뽀." 윤이는 자신의 이마를 가리키며 말했다.윤아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머리를 숙여 아이의 매끈한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윤이는 만족하며 돌아갔다. 부엌에서 나온 훈이가 마침 이 장면을 보았다. 아이의 눈동자엔 부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작은 발걸음으로 윤아 옆으로 다가갔는데 입은 열지 못하고 그저 윤아를 응시하면서 입술을 꾹 다물었다. 윤아가 탁자를 닦는 도중 고개를 숙이자 훈이가 자신의 발 옆에 서서 기대 가득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훈이는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작은 어른 같았다.윤아는 잠시 멈칫한 후, 아이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빨리 들어가서 여동생이랑 같이 놀아." 처음에는 약간 우울한 표정이었던 훈이는 윤아의 이마 뽀뽀를 받은 후에 눈에 띄게 기뻐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뻐도 그저 입꼬리를 조금 올리고는 자리를 떠났다. 훈이의 뒷모습을 보자 윤아는 왜인지 모르게 한 사람을 떠올랐다. 훈이 얘... 정말 어린 시절에 누구와 닮았다. 그도 아무리 즐거워도 티 내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유심히 관찰하지 않는다면 그의 감정을 느끼기 어려웠다.결국 어떤 유전자는 깊게 영향을 끼쳤다. 사실 처음에 윤아는 본인이 쌍둥이를 가지고 있을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중에 해외에서 아버지와 함께 재검사받고 기록을 작성하였다.그리고 의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그녀는 아이들을 낳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훈이는 성격이 내성적이고 침
이 말을 듣자, 윤아 입가의 웃음은 약간 식었다. 그녀는 수도꼭지를 닫고 설거지 장갑을 착용했다. "봐봐, 귀국하는 일만 언급하면 너는 항상 침묵해." 현아도 화가 난 것 같았다. "진짜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이렇게 오랜 시간 지났는데 약속했던 시간도 지금은 이미 지났지 않았겠어?" 윤아는 여전히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아는 이어서 말했다. "지금 해외에서 이 업계의 발전은 느려. 우리 나라에서는 이미 잘 되고 있어. 게다가 너를 초빙한 건 국내 최고 기업 중 하나야. 이렇게 좋은 자리는 너의 뛰어난 능력을 고려해서 특별히 자리를 비워 둔 게 아니면, 이미 누군가에게 뺏겨졌을 거야.”“그 회사에 나한테 전화까지 걸었어. 널 설득해달라고 하더라고. 우수한 인재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말이야." 여기까지 듣자 윤아는 드디어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설득하려는 걸 보면 그 회사가 너한테 어떤 혜택을 주기로 했어?”"아아악, 그런 거 아니거든!" 현아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그런 사람이야? 그 일자리 급여도 높고 미래 전망도 좋은 것 같아서 너에게 권유한 거야. 절대로 받은 게 있기 때문이 아니라고. 비록 혜택이 정말 좋긴 하지만 말야." "그래서, 그 회사가 너한테 어떤 혜택을 약속했어?" 주현아: "...별로 없어. 되게 작거든? 네가 입사 1년 후에 네 연봉의 몇 퍼센트를 나에게 줄 거라고 하더라." 윤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회사 진짜 돈을 아끼지 않네." "그래, 그래. 대단하긴 해. 그리고 내가 들은 바로는 이 회사 대표가 젊고 멋지게 생겼대. 심지어 싱글이야. 이번에 널 초대한 게 바로 그 사람이야. 전에 너랑 만나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네가 원하지 않았잖아." "내가 정말 바빠서 그래. 집에 오면 아이를 돌봐야 하고. 무슨 시간으로 남자를 만나?" "하긴.”두 아이 말에 현아는 마음이 약해졌다.“애들은?" "거실에 있어." "너 말이야. 친히 애들을 돌보고 싶어도 모
-며칠 후. 현아는 해외로 떠났다. 떠나기 전 그녀는 윤아에게 내뱉은 말을 주워 담아야겠다고 했다. 현아는 남자친구가 너무 보고 싶었고 그래서 결국 남자친구와 함께 일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던 윤아는 그런 현아가 전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현아가 출발하기 전 윤아는 조심히 가라는 인사를 전했다. 윤아는 생각했다. ‘주한 씨 추진력이라면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현아에게서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겠네.’역시나, 윤아의 예상대로 6월 1일쯤. 윤아가 곧 무대에 오를 두 아이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주한이 프러포즈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8월로 정해졌다. 1월에 고백하고 4월부터 연인으로 발전, 6월엔 프러포즈, 8월엔 결혼식. 그 놀라운 진행 속도에 윤아는 입이 떡 벌어졌다. 특히나 현아는 처음엔 그렇게 거부감을 드러내더니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토록 빠른 속도로 결혼까지 골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주한이 적극적으로 현아에게 다가간 덕분이었다. 주한이 현아의 마음을 얻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시기에 뭘 해야 하는지 그는 이미 충분한 준비를 마쳤고, 그 철저한 준비성을 당해낼 사람은 없었다. 다만 윤아가 놀란 것은 주한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공세를 퍼부으면서도 아직 잠자리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윤아에게 그 일을 털어놓는 현아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가 프러포즈를 받아줬는데 아직도 예전처럼 자제한다는 건 혹시 날 아예 안 좋아했던 거 아냐?”윤아는 현아의 사유 방식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너 대체 무슨 생각하는 거야? 주한 씨가 널 안 좋아하면 결혼하려고 했겠어? 주한 씨가 얻는 게 뭔데?”“그건 그래. 그럼 대체 왜?”“그거야 모르지. 그건 너희 연인 사이의 일이잖아. 난 끼고 싶지 않아. 궁금하면 네가 직접 알아봐.”‘알아보라고?
설 연휴 후. 윤아는 우진에게서 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선우가 드디어 생각을 바꿔 더 이상 방에 갇혀 있고 싶지 않다고 이곳을 떠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윤아는 가슴 한편을 꽉 막고 있던 응어리가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요? 정말 잘됐네요. 진 비서님은요? 제가 뭘...”윤아는 우진을 자기 곁에 두려 했다. 하지만 우진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이미 선우 곁에서 오랫동안 보좌했던 터라 그의 곁에 있는 것이 편하다며 계속 선우 옆에 남겠다고 했다. 모두 자기만의 귀속이 있는 법이었기에 윤아는 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우진에게 만약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당부했다. 그날 밤, 윤아는 이별을 고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예전에 엄청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어. 하지만 난 그 애에게 많은 폐를 끼쳤지. 심지어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 애를 다치게 하기도 했어. 미안한 마음뿐이야. 그럼에도 난 여전히 걔를 사랑해. 그리고 앞으로 행복하기를 바라.][안녕.]내용은 간단했다. 하지만 그 문자를 작성하기까지 이선우는 그가 갖고 있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했다. 메시지를 전송한 후 선우는 윤아의 답장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에겐 그녀의 답장을 볼 용기도 없었다. 선우는 U-SIM을 뽑아 그대로 휴지통에 버렸다. 더는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이젠 뒤돌아볼 기회조차도 없었지만. 윤아는 지금 그녀가 사랑하고 그녀를 사랑해 주는 사람 곁에서 앞으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낼 것이었으니까. -4월 1일쯤, 현아와 주한은 연인으로 발전했다. 같은 시기, 현아가 투자한 과일 가게가 아파트 단지에 오픈했다. 오픈 날 윤아는 현아에게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주한 씨 회사로 안 돌아가려고?”현아가 입술을 짓이겼다. “내가 없으면 주한 씨 회사가 안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왜 주한 씨 회사로 돌아가?’“주한 씨 회사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라, 네가 만약 집에서 과일 가게를
안 그래도 현아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훌륭한 남자를 만났으니 선희도 당연히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주한은 인품이 좋아 보였기에 선희는 가운데서 두 사람을 팍팍 밀어줄 의향이 있었다. 선희가 씩 미소 지으며 말했다. “주한아, 이 절에서 인연을 빌면 신통하게 들어주신대. 도착하면 성심을 들여 절을 올리렴.”말을 마친 선희는 일부러 현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현아 너도. 왔던 김에 같이 가서 기도드려.”잘 걱도 있다 갑자기 이름을 불린 현아는 순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차마 말을 내뱉지 못했다. 주한은 시선을 내린 채 빨개진 현아의 볼과 귓불을 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이번엔 전혀 헛된 걸음은 아닌 듯했다. 수현의 가족은 정말 따뜻한 분들이었다. 만약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어 이런 가정을 꾸릴 수만 있다면 정말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네. 제가 간절히 기도를 드려 볼게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선희가 손을 내저으며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그들 일행은 10여 분 후 산꼬대기에 도착했다. 날씨가 퍽 좋았던 지라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서니 구름도 더 가까이 느껴졌다. 발아래엔 산봉우리가 첩첩이 이어져 있었고 멀리 보이는 마을 풍경까지 더해져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수많은 여행객들은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풍경 사진을 찍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풍경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기도 했다. 윤아를 포함한 그들도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나서야 기도를 드리러 절로 향했다.워낙 영험하다고 소문이 난 절이라 사람으로 붐비었고 기도를 드리는 것도 줄을 서야만 했다. 주한이 자리한 곳은 마침 현아의 맞은 편이었다. 주한이 그저 예의상 하는 얘기일 거라고 생각했던 현아는 그가 진지하게 기도를 드리러 눈까지 꼭 감고 절을 올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현아는 조금 놀라기도, 또 조금 감동적이기도 했다. 뒤에서 누군가 현아에게 말했다. “넌 안 가?”윤아의 목소리
윤아는 사실 지금 현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두 사람이 사귀게 된다면 그건 신분 상승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주한 씨가 너에게 그런 얘기까지 했다는 건 그만큼 진심이라는 말일 거야. 주한 씨는 네가 그런 것들에 얽매여 두 사람 사이에 걸림돌이 되기를 바라지 않을 거야.”사실 주한 같은 남자를 만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자수성가한 것은 물론 부모도, 친척도 없어 가족관계가 이보다 간단할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은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가 걸어갈 미래는 전부 스스로 계획한 것이었다.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주한이 지금 현아에게 다가온다는 것은 그는 이미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나도 알아.”현아가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사실 전엔 난 믿지 않았어. 난 그저 주한 씨가 내가 갑자기 퇴사한 걸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윤이네 선물을 사러 갔을 때, 주한 씨가 내가 할인받아 사준 만년필을 몇 년 동안이나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별일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조 단위의 자산을 갖고 있는 주한에겐 소중한 물건이라는 얘기였다. 최소한 현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현아의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윤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사실 그렇게 많이 고민할 필요 없어. 만약 너도 주한 씨가 좋다면 용기 내서 한 번 만나봐. 어차피 사귄다고 해도 당장 결혼할 것도 아니잖아. 혹시 알아? 사귀고 나서 네 생각이 바뀔지?”“네 말도 맞아. 그럼 나 더 이상 고민 안 할래. 일단 연애만 해보면 되잖아. 어차피 그저 연애만 하는 것뿐이야.”깊은 고민에 빠졌던 현아는 윤아의 도움으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그래. 인생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고 그런 거지. 실수해도 괜찮아. 처음부터 선택한 모든 길이 정확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공주야, 넌 좋은 친구야. 넌 내 인생의 구원자라고.”고민이 해결
그 말은 어느 정도 강압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예의상 건넨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주한을 집으로 초대한 것임이 느껴졌다. 선희가 이렇게까지 얘기를 꺼냈으니 주한도 더 이상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몸을 숙였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신세는 무슨. 가요.”주한과 현아는 선희를 따라 차로 돌아갔다. 그들은 앞에 있는 차를 뒤따라가고 있었다. 운전하며 현아가 참지 못하고 주한에게 말했다.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어요.”주한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나중에도 오랫동안 봐야 할 사이 같아서요. 가면 얘기도 나눌 수 있고요.”현아는 순간 주한의 말 속에 담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진씨 그룹과 얘기 중인 프로젝트가 있어요?”“지금은 없어요.”“그럼 왜...”순간 현아는 뭔가를 인지한 듯 얼굴빛이 변하더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또 저 희롱하는 거죠.”“제가 언제요? 그리고 그게 어떻게 제가 현아 씨를 희롱하는 거예요? 전 지금까지 현아 씨에게 아무 짓도 한 적 없잖아요.”“네, 저에게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언어적인 희롱도 희롱이잖아요?”“그건 실제로 그런 게 아니니까 희롱이라고 할 수 없어요.”“쳇, 왜 아니에요.”현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 와중에 주한은 이미 화제를 전환했다. “두 분 모두 현아 씨를 친절하게 대해주시네요.”“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윤아와 같이 두 분 댁에 자주 갔었거든요. 그래도 절 잘 아세요.”현아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했다. “주한 씨는 어렸을 때 어떻게 지냈어요?”질문을 던진 후 현아는 살며시 주한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얼굴에서 작은 표정이라도 캐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주한은 여전히 평온함을 유지했다. 자신의 불행했던 유년 시절의 얘기를 꺼내도 큰 감정의 기복을 보이지 않았다. “저 어렸을 때요? 거의 혼자 지냈죠.”비록 주한은 평온하게 얘기했지만 현아는 그가 사실은 비참했었던 과거
윤아는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남자를 보는 눈은 여자보다는 남자가 더 정확한 법이었으니까. 서로 생각하는 것이 같을 테니 많은 행동들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래. 난 알 만날게. 수현 씨가 나 대신 봐줘. 하지만 진지하게 봐줘야 해. 대충하지 말고.”사랑하는 여자의 부탁을 수현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알겠어.”수현은 자기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한 남자를 관찰해야 하는 이유가 윤아 때문일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가까이 다가간 윤아와 현아는 서로를 꽉 껴안았다. 하지만 집안 어른들이 계신 관계로 짧은 포옹을 한 후 곧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전에 만난 적이 있던 지라 현아는 또 수현의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고는 가지고 온 선물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현아 이모.”아무래도 몇 년간 함께 지냈던 터라 하윤과 서훈은 현아와 사이가 좋았다. 두 아이에게 현아는 곁에 있는 제일 가까운 가족을 제외하고 제일 친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두 아이는 전혀 거리낌 없이 현아가 건네는 선물을 받고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현아의 볼에 가볍게 뽀뽀했다. 그러더니 하윤은 고개를 들어 주현아 뒤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더니 맑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먼저 입을 열었다. “현아 이모, 저 삼촌은 누구예요?”하윤이 주한을 가리키자 하얗던 현아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저분은... 이모 친구야. 주한 삼촌이라고 부르면 돼.”하윤은 무슨 생각인 건지 현아가 분명 설명해 줬음에 불구하고 또 갑자기 질문했다. “이모, 저 삼촌 이모 남자친구예요?”남자친구라는 말에 현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가 막 부인하려는데 주한의 웃음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마 아가씨, 아직 남자친구는 아니지만 삼촌이 여전히 노력하고 있어.”집안 어른들은 주한의 말을 듣고 그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수현의 부모님도 주한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동족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니 설사 함께 협업한 적이 없다고 해도 일면
“그건 아닌데...”현아가 고개를 저었다.“아니면 뭐가 그렇게 걱정돼요?”현아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뭐 걱정할 게 없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정식으로 만나지도 않는데 다른 사람이 보는 건...이렇게 생각한 현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됐어요. 아직 정식으로 만나기 전인데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어요.”현아가 이렇게 말하더니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현아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늦었어요. 이미 봤어요.”“네?”이 말에 현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참 동안 지나서야 현아는 주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현아는 주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아니나 다를까 멀지 않은 곳에서 윤아가 수현을 데리고 도는 게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과 어른들도 뒤따라 걸어오고 있었다.윤아는 현아를 발견하고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더니 얼른 주한의 품에서 벗어났다.“왜 미리 알려주지 않고 지금 와서 말해주는 거예요?”주한이 덧붙였다.“나도 그럴 겨를이 없었어요. 현아 씨와 얘기하고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더라고요.”“거짓말, 일부러 그런 거잖아요.”주한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나도 일부러 그러고 싶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아까 현아 씨 안으면서 신경이 온통 현아 씨 몸에 쏠려 있다 보니 두 사람이 다가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하지만 결과는 뭐 별반 다를 거 없네요.”현아가 무슨 말을 더 하려는데 윤아가 지척까지 다가오자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랬다가 주한이 무슨 놀라운 말을 내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주한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최근 주한이 친 돌직구가 너무 많았기에 현아는 걱정되기 마련이었다....윤아는 멀리서 친구인 현아가 남자 코트로 숨어드는 걸 볼 수 있었다.원래는 알아보기 힘들었다. 기억을 잃은 뒤로 주한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고 이미지도 현아가 말해준 게 전부였다.그러다 옆에 있던 수현이 주한을
현아는 주한의 돌직구를 당해낼 자신이 없어 시선을 다른데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지금 몇 시예요? 올 때 되지 않았어요?”현아의 화제 전환이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주한은 이를 캐묻지 않았다. 그저 팔에 찬 시계를 확인하더니 이렇게 말했다.“10분 남았어요.”“10분이요?”현아는 착잡한 표정으로 손으로 턱을 받쳤다. 이렇게 오래 잤을 줄은 몰랐다.이미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현아는 외투를 벗어 주한에게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외투 돌려줄게요. 고마워요...”“괜찮아요.”주한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걸치고 있어요.”“그럼 이따 내릴 때 추울 텐데.”“몸이 좋다고 했잖아요.”“나도 나쁘진 않아요. 그리고 나도 외투 챙겨 와서 더 입으면 안 예뻐요.”현아는 이렇게 말하며 외투를 주한에게 욱여넣었다.주한은 현아가 잠도 깨고 진심으로 외투를 돌려주는 걸 보자 외투를 받아 입었다.비행기가 착륙하기까지 10분이 필요했지만 내려서 짐도 찾아야 하니 주한과 현아는 차에서 15분을 더 기다리다가 내렸다.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현아는 너무 추워 계속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에 주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몸 좋다면서 이렇게 떨어요?”현아가 말했다.“내가 언제 떨었다 그래요?”현아가 고집을 부리며 반박하는데 주한이 다시 외투를 벗었고 현아가 얼른 이를 막았다.“벗지 마요. 더 벗으면 화낼 거예요.”이를 들은 주한의 동작이 멈칫하더니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현아가 얼굴을 굳히고 엄숙하게 말했다.“벗지 말라고요!”“춥다면서요?”“그래도 벗지 마요! 벗으면 정말 화낼 거예요.”주한은 그런 현아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갑자기 작은 소리로 웃으며 지퍼를 열었다.“그래요. 안 벗을게요. 대신 들어와서 몸 좀 녹일래요?”현아가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마 주한이 갑자기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것 같았다.“대표님...”주한이 덤덤하게 말했다.“들어와서 숨든지 아니면 내가 벗어서 주든지, 하나만 선택해요.”한참 생각하
현아의 말에 주한이 그녀를 힐끔 쳐다봤다.“나 먼저 들어가고 현아 씨 여기 혼자 남겨두라고요?”그러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였다.“현아 씨, 나는 지금 현아 씨 좋다고 쫓아다니는 사람이에요. 잊은 거 아니죠?”현아가 입술을 앙다문 채 대꾸하지 않았다.“이럴 때일수록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잘 판단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한밤중에 여기까지 데려다줬는데 지금은 이렇게 기다리게 하고, 너무 대표님 시간 잡아먹는 것 같아서요.”“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주한은 이렇게 말하더니 외투를 벗어 현아에게 건네주었다. 현아가 손에 들린 외투를 들고 멍한 표정으로 주한을 물끄러미 쳐다봤다.“왜, 왜요?”“걸쳐요.”주한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아직 한 시간이나 더 있으니까 일단 눈 좀 붙여요.”“졸리지는 않는데...”“그럼 눈 감고 명상하든지.”주한은 마치 반장처럼 그녀를 챙겨줬다. 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한은 혼자 자랐으니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애들과는 다르다고 말이다. 하지만 주한이 사람을 챙기는 방법은 어딘가 강압적이었다.현아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을 붉힌 채 주한이 건네준 외투를 주섬주섬 몸에 걸치고는 자리에 기대 눈을 감았다.눈을 감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아는 뭔가 생각난 듯 다시 눈을 떴다.“옷을 이렇게 다 주면 대표님은 어떡해요? 안 추워요?”“나는 몸이 워낙 좋아서.”주한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아, 네.”현아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몸이 안 좋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에 잠겼던 현아는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다시 깨어났을 때 창밖의 어둠은 더 짙어졌고 현아는 아직도 온몸을 웅크리고 있었다.깨어나 보니 아직도 조금 추웠고 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주한의 외투 속으로 점점 숨어들었다. 외투를 받았으니 다행이지 아니면 정말 자다가 추워서 깼을 것이다.하지만 현아는 이내 뭔가 생각났다. 자기는 외투를 입고 있어서 따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