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영은 손에든 털실 뭉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얼마 전에 당신 학생이 당신더러 다시 영화를 찍으라고 했을 때 관심을 가졌었잖아요?”나선영은 숄을 여미며 말했다.세월은 나선영을 야박하게 대하지 않았다. 비록 흰머리가 희끗거렸지만 눈매가 따뜻하고 분위기가 부드러워 자애롭고 온화한 기운이 온몸을 감돌았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눈 밑에는 안타까움과 유감스러운 기색이 서려 있었다. “전에는 나더러 하지 말라고 했잖아?”안필훈은 눈썹을 찡그리며 개구쟁이처럼 굴었다.‘이 여자가 변덕이 많네?’“그건 당신이 지칠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에요.”“그럼 지금은 지쳐도 돼?”안필훈은 어린애처럼 씩씩거렸는데 눈을 부릅뜨고 화를 냈지만 통통한 모습은 그저 귀엽기만 할 뿐 전혀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말 끊지 말아요.”나선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노려봤다.“지금도 당신이 직접 하라는 게 아니라 도와주라는 거예요.”그런후 나선영은 살며시 웃으며 계속해서 말했다.“내 생각엔 만약 당신이 도와줄 수 있다면 그 캐릭터가 강현이랑 잘 어울리니 밀어주라는 뜻이예요.”“당신은 강현이에게 화가 나 있지 않아? 왜 또 도와줘? 마음이 약해졌어?”안필훈은 흐뭇하게 웃으며 차를 한 잔 따랐다.‘우리 착한 할망구.’“말 끊지 말라니깐요.”나선영은 안필훈을 노려보았다.“나는 강현이를 돕는 게 아니라 시연이가 아까워서 그래요. 당신이 이제 시연이를 촬영팀에 넣어줘 봐요. 당신도 시연이가 당신의 뒤를 잇기를 바라잖아요. 당분간 감독이 될 수는 없어도 당신이 힘써서 조감독으로 배정할 수는 있어요. 시연이는 능력을 갖추었으니 자리가 너무 낮으면 나도 내키지 않아.”안필훈은 천천히 차를 한 모금 마셨다.“이 두 골칫거리...”안필훈은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지만 아내가 입을 열었으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박강현은 지난번에 이시연과 헤어지고 난 후 마음이 점점 더 답답해졌다.그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조민아도 특별히 시간을 내어 반나절 함께 보냈다.부드
이시연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여유로운 시간은 오랜만이라 유씨 가문으로 가 어른들을 뵈어야 했다.유태경은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눈치챘기에 일부러 시간을 내 하루 종일 그녀의 곁에 있어 주었다.이시연은 최대한 자신이 민망함을 느끼지 않도록 그날 밤 일을 그저 꿈을 꾼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그러나 그녀는 요즘 열심히 주위를 관찰했지만 유태경에게 다른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기지 않은 것 같았다.역시 유태경은 유태경이라고 생각했다. 여자친구를 이렇게나 꼭꼭 숨겼으니 말이다.“요즘 나한테 아주 흥미가 있어 보이던데?”유태경은 손에 든 서류를 내려놓으며 느긋하게 말했다.그는 유한 그룹 대표로 일한 지 오래되었고 절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도 정장을 입은 그는 피지컬도 좋았을 뿐 아니라 표정도 차갑고 엄숙했다.오늘은 집에 있었던지라 유태경은 캐주얼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평소 차가웠던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지금 이시연을 보는 그의 얼굴에도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이시연은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몰래 힐끔힐끔 보다가 들켜버린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휙 돌렸지만 언제나 단호하고도 정당한 논리로 말했다.“그건 관심이에요. 아저씨를 더 알아가기 위한 관심이라고요. 알겠어요?”유태경은 시선을 내렸다. 예쁜 그의 눈동자에 어둡고도 희미한 빛이 감돌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이시연은 그의 입가에 걸린 옅은 미소를 발견하고서야 얼렁뚱땅 상황을 넘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소파에 몸을 축 늘어뜨렸다.그 모습은 마치 고양이 같기도 했고 부잣집 딸의 우아한 기품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 나이대 소녀와 같은 활기와 명랑한 모습은 아주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눈을 깜박이며 천장을 보는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박강현이 정말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다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던 때 안필훈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전화를 받은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소파에서 벌떡
이시연은 얼른 다가갔다.“선생님.”“선생님들, 안녕하세요.”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검은 긴 머리칼은 머리끈으로 단정하게 묶었지만 흘러내린 잔머리는 어쩔 수 없었고 그녀를 더 부드러운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아이고, 이 아가씨가 선생님이 그렇게 칭찬하던 그 학생이에요? 드디어 칭찬의 주인공을 만나게 되었네요. 선생님이랑 몇 년 동안 알고 지냈는데 이렇게 다정한 모습을 본 적 없다니까요.”말을 꺼낸 사람은 영화의 감독인 윤철웅이었다.그는 안필훈의 학생이었을 뿐 아니라 안필훈과 성격이 비슷해 항상 작품에 대해 완벽을 추구했다.하지만 윤철웅은 항상 운이 부족했다. 매번 세계 영화제에서 2위로 밀려났을 뿐 아니라 촬영 도중에 두 번이나 캐스팅한 배우에게 문제가 생겨 꽤나 큰 손실을 보았다.그래도 실력은 뛰어났고 집안도 좋아 이번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수많은 인맥과 돈을 들였을 뿐 아니라 이번엔 안필훈까지 이번 작품에 끌어들였다.이시연은 그런 그를 존경하고 있었기에 예의를 지키며 말했다.“선생님께서도 저희에게 감독님 칭찬 많이 하셨어요.”안필훈은 웃으며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든든한 모습으로 말했다.“둘은 내 학생이었으니 시연이 너는 철웅을 선배님이라고 부르면 되겠구나. 궁금한 것이 있을 때 내가 없으면 철웅이를 찾아가거라. 만약 이놈이 무시하면 바로 나한테 말하고. 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그들은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누었다. 안필훈이 그녀를 옆으로 끌어당겼다.“시연아, 내가 너한테 할 말이 있단다.”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꼭 잘못을 저지른 학생의 모습처럼 말이다.그녀의 말에 이시연은 바로 눈치를 챘다.“선생님, 전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할지 알고 있어요. 선생님과 사모님도 이해해요. 하지만 전 두 분을 실망하게 해 드릴 것 같네요. 전 박강현과 그런 사이가 될 수 없거든요.”안필훈은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확고하고도 자신감이 흘러넘치는 이시연의 모습에 대학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한참 후 그는 짙은 한숨을
조민아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입술을 짓이겼다. 또 울먹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전...”“이시연, 대체 뭐 하자는 거야? 꼭 말을 그렇게 해야겠어?”박강현은 화를 내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민아는 착한 사람이라 네가 그런 말을 해도 화를 내지는 않겠지만 계속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나와의 일은 나랑 해결하면 된 지 않나? 그런데 이시연은 왜 자꾸 조민아에게 화풀이하는 거지?'‘이시연은 대체 왜 조민아의 존재를 이렇듯 신경 쓰는 걸까?'이렇게 생각한 그는 이내 입을 열었다.“너는 내가 너만 바라보고 살라는 거야? 그런 거라면 차라리 배우 생활도 그만하라고 해. 매일 집에만 갇혀서 너만 보고 살면 되겠네!”박강현의 목소리는 아주 컸다. 사람들 앞에서 화를 내는 그의 모습은 꼭 이시연을 원수로 대하는 듯했다.이시연은 화를 내면서 예전에 옆집 살았던 동생의 편을 들어주는 박강현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그는 명백히 조민아에게 흔들리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중요한 것을 잊은 듯했다. 그것은 바로 그녀와 헤어졌다는 것과 그녀가 더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박강현의 위협과 질책에도 그녀는 더는 반성하지 않았고 더는 먼저 사과하며 그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다투는 소리에 주위 사람들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이때 한 여자가 말했다.“저 사람은 톱배우 박강현과 조민아 아니야?”“그러게! 친밀한 모습을 보니 역시 둘은 사귀는 사이였나 보네!”“조민아 손목에 있는 거 단향목 염주 팔찌잖아. 박강현이 항상 시크하기에 난 또 원래부터 그런 사람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네. 본인이 먼저 열애 사실을 밝힐 줄이야.”“그래도 두 사람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그들이 의논하는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의 귀에 들렸다.이시연은 아무것도 없는 박강현의 손목을 보다가 이내 천천히 시선을 돌려 조민아의 왼손에 있는 염주 팔찌를 보았다.분명 그녀가 신경 쓰고 있는 물건이었지만 지
수군대던 사람들은 그들이 자신들의 대화를 듣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박강현이 갑자기 자신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놀라워하며 기뻐했다.“박 배우님, 전에 출현하신 작품 정말 잘 봤어요. 연기 실력이 정말 대단하시던데요.”그러자 다른 한 여자가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저희는 박 배우님 연애 사실을 절대 말하지 않고 다닐 거예요. 비록 인터넷에 찌라시가 돌긴 하지만 저희는 정말로 박 배우님이랑 조민아 씨가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해요!”그들은 재잘대며 박강현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할 말만 한 뒤 흩어져버렸다.“...”이시연은 코웃음을 쳤다.“두 사람 축하해요. 전 다른 할 일이 있어 이만 가볼게요.”그녀는 에코백을 들며 걸음을 옮기려 했다.박강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그녀가 자극받아 미친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가 제일 싫어하던 것이 그가 다른 여자와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던가.조금이라도 그런 기미를 보이면 이시연은 슬쩍 다가와 애교를 부리거나 일부러 입술을 삐죽 내밀며 삐진 티를 냈다.그때의 그녀는 정말이지 너무도 귀여웠다.꼬치꼬치 캐묻던 그녀가 가끔 짜증 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묻지 않았다. 박강현은 그녀가 자신에게 전처럼 꼬치꼬치 캐묻길 바랐다. 설령 그때처럼 화를 낸다고 해도 지금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적어도 그녀가 여전히 자신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으니까.“강현 오빠, 인터넷에서 대체 뭐라고 소문이 도는 걸까요? 시연 언니는 분명 지금 오해하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화가 난 거예요. 제가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요?”조민아는 그를 보며 눈썹을 파르르 떨더니 바로 눈물을 그렁그렁 달았다.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박강현은 마음이 아팠다. 그가 알고 있는 옆집 살던 동생 조민아는 항상 세상에서 제일 밝은 아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시연 때문에 자주 두 눈에 눈물을 달고 있었다.이시연을 향한 감정이 어느새 다시 분노로 바뀌었다.이시연은 그와 재결합하기 위해 안필훈과 사모님에게 자리까지 만
안필훈이 이시연에게 물으니 윤철웅도 궁금했다. 윤철웅은 손에 든 펜을 내려놓으며 이시연에게 고개를 돌렸다.“후배님, 난 아직 시연 후배의 실력을 모르니까 얼른 시연 후배 생각을 말해 봐요.”그러더니 그는 이내 한마디 더 보탰다.“틀린 말을 해도 걱정할 것 없어요. 나랑 선생님이 있으니 틀린 부분을 고쳐줄 테니까요. 일단 저 여배우가 이 배역에 어울리는 것 같아요?”이시연은 펜을 내려놓았다.“연기 실력은 아주 좋아요. 이 배역을 저 여배우가 맡는다면 분명 아주 잘 해낼 수 있을 거예요.”윤철웅의 눈빛이 분명하게 흔들렸다.박강현은 그런 그녀를 비웃었다. 그가 보아도 여배우의 연기 실력은 아주 좋았기 때문이다. 얼굴도 예뻤지만 이 배역과는 어울리지 않았다.그러나 이시연은 어울린다고 말했다. 윤철웅의 표정이 변한 것도 바로 이해가 되었다.“안목이 없으면 집 돌아가서 제대로 공부하고 도전해. 괜히 여기 와서 윤 감독님 시간만 낭비하지 말고.”박강현은 코웃음을 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안필훈은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나이가 있었던지라 얼굴의 주름이 더 자글자글해졌다.그는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안필훈의 아내는 검은색 개량 한복을 입고 있었고 그 위에는 섬세한 무늬가 있었다. 머리는 단정하게 비녀로 고정한 뒤 어깨엔 흰색 숄을 걸치고 있었다.우아한 걸음걸이로 다가오자 따사로운 햇볕이 그녀에게 내리쬐면서 하얀 피부를 돋보이게 했다.분명 이젠 소녀라고 일컫기엔 많은 나이였지만 소녀보다 더 아름다웠고 세월이 그녀에게 준 흔적은 더 기품이 흘러넘치게 했다.“난 시연이가 틀린 말 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저 여배우는 확실히 이 배역과 어울려요. 배우가 반전 매력이 있으면 더 몰입되지 않아요? 청순한 얼굴에 아주 짙은 화장을 하고 온갖 등장인물을 전부 처단하는 거죠. 그런데 유독 남자주인공에게만 마음이 약하다? 그럼 더 흥미가 끌리지 않을까요?”나선영의 목소리에선 성숙함과 우아함이 묻어났다.이시연은 고개를 끄덕
“사모님, 혹시 지금 시연이 편을 들어주시는 거예요?”그는 결국 픽 웃고 말았다.“먼저 헤어지자고 한 건 이시연이에요. 저도 물론 계속 기회를 줬어요. 시연이가 이 억지를 그만 부린다면 다시 전처럼 지낼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시연이는 고집이 아주 센 사람이죠. 대체 무슨 억지를 부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모님께서 시연이 편을 들어주시려는 것이라면 일단 누가 문제인지부터 알고 들어주세요.”그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엔 비난의 의미가 다소 담겨 있었다.나선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여전히 그를 위아래 훑어보고 있었다.“강현아, 너 아직도 시연이를 사랑하긴 하니?”그도 미간을 찌푸렸다.“제가 시연이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일찌감치 계약을 해지한 사실을 밝혔을 거예요. 그랬다면 이시연이 저 자리에 멀쩡히 서 있었을까요?”나선영에선 온화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내가 너를 이 작품으로 추천한 건 너희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이야. 하지만 넌 조민아를 이곳에 데려와서는 안 됐어.”박강현은 미간을 더 찌푸렸다.“사모님, 제가 민아를 오디션 보게 한 건 민아가 그동안 안필훈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어서예요. 이 기회는 민아가 해외로 진출할 유일한 기회기도 해요. 그리고 저랑 민아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그냥 옆집 오빠 동생 사이일 뿐이라고요.”“옆집 동생은 무슨 동생!”나선영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픽 웃었다.“어느 옆집 동생이 옆집 오빠의 팔찌까지 차? 또 어느 옆집 오빠가 옆집 아는 동생 때문에 여자친구를 제쳐둬? 이게 어딜 봐서 옆집 동생이야? 옆집에 사는 내연녀지!”“강현아, 넌 대체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거니, 아니면 정말로 눈치가 없는 거니?”그는 눈에 띄게 멈칫했다.“사모님, 말 가려서 하세요. 저랑 민아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사모님께서 믿든 말든 자유지만 전 이미 사실대로 말했습니다.”나선영은 그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 코웃음을 쳤다.“허, 그래. 넌 곧 후회하게 될 거다.”말을 마친 그녀는 이내 몸을 돌렸다.박강현은 멀지 않은
이시연은 안필훈과 윤철웅과 바쁜 하루를 보냈다. 손에 든 대본엔 글씨가 빼곡히 있었고 오디션 참가자들에 관한 특징과 연기 실력, 배역에 어울리는지에 대한 평가도 전부 자세하게 적어두었다.윤철웅은 이시연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몰래 그녀의 대본을 펼쳐 보다가 놀라게 되었다.그는 비록 이시연을 후배라고 꼬박꼬박 부르긴 하지만 속으로는 딱히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젊어도 너무 젊었기 때문이다. 만약 안필훈이 데리고 온 것이 아니었다면 절대 촬영장에 발도 못 들이게 했을 것이다.하지만 하루 동안 이시연을 관찰해보니 이시연의 안목은 꽤나 뛰어났고 대본엔 빼곡한 글씨가 있었다.윤철웅은 이시연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안필훈은 불룩 튀어나온 배를 만지며 물었다.“그래, 시연이를 지켜본 결과 어떤 것 같니?”“저보다 젊긴 한데 실력도 뛰어난 것 같네요.”윤철웅은 솔직하게 말했다.안필훈은 더 짙은 미소를 지었다. 얼굴에 주름이 더 지게 되었다.“시연이는 실력은 있는데 조금 융통성이 없어.”만약 전처럼 박강현 케어하는 것에만 집중했다면 이런 그녀의 능력조차 발견하지 못하고 끝났을 것이다.나선영은 안필훈의 어깨를 툭툭 쳤다. 힘을 주었던지라 안필훈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여보, 왜 그래?”그녀는 한마디의 쓸데없는 말 없이 직설적으로 말했다.“오늘 조민아라는 여자가 오디션 보러 왔죠? 탈락시키세요.”윤철웅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왜요?”안필훈은 수염을 쓸어내렸다.“내가 집중적으로 보긴 했는데 연기 실력은 어중간했어. 탈락시키든 말든 일단 자세히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 우리는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탈락시키면 안 되잖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그러자 나선영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흥, 나도 아무 이유 없이 떨어뜨리라는 건 아니에요. 오늘 조민아와 같은 배역을 따내기 위해 오디션을 본 여배우는 여럿이 되잖아요. 뒤 순서로 나온 강수진이라고 했나? 그 배우가 조민아보다 연기를 더 잘한 것 같아서 그래요.”“조민아보다 더 잘한 사람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