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영화제, 시상식.신인 여배우 조민아가 처음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에 대해 사회자가 소감을 물으며 자신에게 어떤 상으로 주고 싶으냐고 물었다.조민아는 옆에 있는 시상자 유명 영화배우 박강현에게 눈길을 돌렸다.“백강현 배우님의 단향목 염주 팔찌를 갖고 싶은데 가능할까요?”이 말이 나오자 장내가 깜짝 놀랐다.연예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배우 박강현이 늘 갖고 있는 단향목 염주 팔찌를 잘 알고 있다. 이것은 그가 매우 아끼는 팔찌였는데 그가 데뷔했을 때부터 줄곧 몸에 착용하고 있었다.업계에는 떠도는 소문이 있다.유명 배우 박강현은 고급 명품 브랜드의 모델을 맡은 적이 있는데 브랜드 측은 단향목 염주 팔찌 대신 손목시계만 차고 오기를 바랐으나 거절당했다고 했다.그는 광고모델을 하지 않더라도 단향목 염주 팔찌를 절대 벗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이를 위해 브랜드는 단향목 염주 팔찌와 어울리는 선의(禪意)의 시계를 디자인했다.‘조민아, 미친 거야? 톱스타의 단향목 팔찌를 원하다니?’무대 위의 사회자는 멍하니 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모두 박강현이 조민아의 제안을 거절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뜻밖에도 그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단향목 염주 팔찌를 손목에서 빼내어 조민아의 손목에 채워줬다.이시연은 무대 아래에 앉아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유명 배우 박강현이 그녀가 5년 동안 사귀어 온 남자친구라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단향목 팔찌는 그녀가 태성산 계단을 오르는 동안 한 발 한 발 절하며 구한 것임을 아무도 몰랐다.단향목 염주 팔찌에 새겨진 연꽃무늬는 그녀가 직접 새긴 것이다.무대 위의 조민아는 깜짝 놀라며 손목을 흔들었다.“박강현 배우님의 지도와 격려에 감사드리며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작품 많이 보여드리겠습니다.”그녀의 목소리는 사람만큼 달콤했다.박강현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돌려 이시연이 앉았던 자리를 돌아보니 어느새 비어 있었다.그의 눈웃음이 조금 옅어졌다.이시연은 회사로 돌아갔는데 누군가 시상식에서의 박강현과 조민아
“뭐라고?”이시연은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박강현은 쌀쌀하게 방금 한 말을 반복했다.“하고 있는 모든 일을 멈추고, 진정되면 다시 돌아오라고. 네가 맡은 그 영화 프로젝트도 잠시 비서에게 넘겨.”이시연은 몸을 흠칫했다.“네가 뭔데?”그녀는 심호흡하고 나서야 겨우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다른 일은 안 해도 돼. 이 영화 프로젝트는 내가 직접 계약서를 따 온 거니 네가 가져갈 권리가 없어.”박강현은 무슨 우스갯소리를 들은 듯 피식 웃었다.“네가 계약한 거? 무엇으로 계약했어? 내 인맥 자원이 없다면 프로젝트 책임자가 너를 만날 거로 생각해? 이시연, 너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야?”이시연은 갑자기 낯설어진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번 훑어보았다.“내가 너의 인맥 자원에 의지한다고? 박강현,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양심이 없는 거야? 넌 내가 직접 챙겼고 네 모든 자원은 내가 알아서 해결했어. 이제 와서 내가 너한테 의지하고 있다고?”남자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이시연, 너 옛날얘기 하고 싶어? 예전에는 이렇게 억지 부리지 않았잖아?”이시연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본 박강현은 마음이 조금 아팠다.“이시연, 그만해. 아무도 내 마음속의 네 자리를 대신할 수 없어.”이시연은 우습다고 생각했다.“조민아는? 그 여자는 뭔데?”박강현은 짜증스러운 기분을 억누르며 대답했다.“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나는 민아를 여동생으로만 생각한다고.”그녀는 손을 들어 눈을 가리고 나서야 시고 떫은 느낌을 억제했다.“박강현, 자신을 속이지 마. 조민아가 귀국하고 네가 내 매니저 자리를 없애고 싶어 했을 때부터, 난 네 마음속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아니었던 거야.”“너!”박강현의 마음속에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민아는 민아고, 매니저 자리랑 아무 상관없어. 매니저를 바꾼 건 그냥 패션계의 자원이 필요해서. 그때 마침 그 사람이 있었고. 내가 쓸데없는 말 싫어하는 걸 알잖아.
이시연은 괴로운 듯 소파에 누워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어렴풋이 누군가 얼굴을 만지고 있는 것 같아 잠에서 깼다.담담한 술 냄새를 맡고 나서야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거실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고 실내에는 도시 밖의 야경에 물든 옅은 빛만이 있었는데 유태경이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는 양복 외투를 입지 않았는데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있어 셔츠를 사이 두고도 그의 건장한 몸매가 어렴풋이 느껴졌다.그는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넥타이를 좀 더 풀었는데 이 동작만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것 같았다.“아저씨?”그녀는 앞에 있는 사람이 조금 취한 것 같다고 느꼈다.“왜 갑자기 술을 마셨어요?”이시연이 일어나 그를 방으로 부축하려 하자 유태경의 따뜻한 손바닥이 그녀의 얼굴을 살며시 어루만졌다.이시연은 깜짝 놀라 꼼짝도하지 못했다.곧 그녀는 후회했다. 유태경이 갑자기 몸을 숙여 그녀를 허리로 끌어안았기 때문이다.이시연은 어쩔 수 없이 다리를 벌리고 그의 품에 마주 앉았는데 이건 정말 죽을 맛이었다.고개를 숙이고 턱을 그녀의 목 사이에 댄 유태경의 따뜻한 호흡은 깃털처럼 피부를 쓸어내려 짜릿하게 느껴졌다.다정한 연인처럼 서로의 체온을 천천히 빨아들이고 있었는데 이시연은 순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아무 말도 못 하고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그를 살짝 밀었다.유태경은 그녀의 거동이 못마땅한지 그녀의 허리를 잡고 다시 품으로 안았다.옷을 사이에 두고도 몸의 열기가 느껴졌다.“움직이지 마.”목소리를 한껏 낮춘 그는 무언가를 애써 참는 것 같았다.목소리에 약간의 고혹감이 감돌자 이시연은 묘한 상태로 다시 조용해졌다.그녀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눈앞에서 커지는 남자의 얼굴을 보고 심장이 멈추었다.조심스러우며 거친 키스가 떨어졌다.따뜻하고 습한 혀끝이 그녀의 입술에 살짝 대자 이시연은 몸이 뻣뻣해지고 사고력이 전혀 없어졌다.남자의 따뜻한 손바닥이 옷자락 사이로 파고들어 아무런
이시연을 잠시 발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아저씨 걱정하지 말아요. 이정도 작은 일은 저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어요. 만약 회사가 정말 너무 심하게 행동하면 아저씨에게 전화 해서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할 거예요.”“그래. 어서 일 봐. 나갈게.”유태경은 그녀의 재롱에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렸다.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그의 두 눈에 웃음기가 더욱 짙어졌다.하긴, 그의 꼬맹이는 온실에서 쉽게 꺾이는 예쁜 꽃이 아니었다.회사에 도착한 진현우는 왠지 보스의 기분이 좋아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보스가 한마디 질문을 던졌다.“현우야, 내가 잘 생겼어?”진현우는 하마터면 발을 헛디딜뻔한 채 망연자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잘 생겼죠.”유태경은 눈살을 찌푸리며 또 한 마디 물었다.“부드러워?”진현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부드러운 건 대표님과 어울리지 않으니 말이다.“때론 그렇기도...”유태경이 차갑게 말했다.“나가!”진현우는 어이없어 마음속으로 투덜거렸다.‘남자의 얼굴이 오뉴월의 하늘처럼 참 쉽게 변해!’...이시연은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부서에서도 그녀와 박강현의 일을 논의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의외의 일이 이미 이렇게 벌어졌다.“이시연이 정말 박강현 선배님이랑 사이가 틀어졌어요?”“물론이죠. 박강현 배우님 팀 사람들이 다 알아요. 지금 하는 일 전부 정지당했대요.”“이시연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요. 박강현 배우님은 젊고 잠재력이 있잖아요. 무명배우에서 지금의 유명 배우의 자리까지 스스로 이루어냈으니 앞으로 성과가 분명 더욱 높아질 거예요. 가장 중요한 것은 박강현 배우님도 이시연을 매우 아끼는데 저였으면 배우님이 헤어지잔 말을 안 하는 거로 매일 감사했을 거예요.”누군가는 아예 조롱 조로 말했다.“오늘 고급 차에서 내리는 걸 봤는데 지위가 높은 새 사람이 생긴 게 분명해요. 역시 얼굴이 예쁘면 좋아요. 아무렇게나 남자를 유혹할 수 있잖아요.”이시연의 발걸음이 잠시 멈추더니 소리 없
박강현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시연아, 다른 건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내 옆에 있는 건 네가 선택할 수 없어. 제대로 생각하고 먼저 나를 찾아오면 오늘 이 일은 내가 더는 묻지 않을게.”이시연은 그를 보며 가소롭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박강현인데 결국 용서받아야 할 사람은 그녀란 말인가?“아무렇게나 생각해, 난 더는 할 말이 없어.”말을 마친 이시연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가 버렸다.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박강현의 두 눈에 화가 피어올랐다.서채진은 사무실에서 열 바퀴 넘게 왔다 갔다 하면서 비로소 이시연을 배치할 방법을 생각해 냈다.해성 엔터 대표님에게도 밉보일 수 없는데 하물며 유한 그룹 대표님은 더 말할 나위 없다.하지만 서채진도 이렇게 어려운 사람을 곁에 두고 싶지 않아 이시연이 알아서 물러나게 하려는 타산이었다.이런 생각을 하던 중 이시연이 마침 도착했다.배가 불룩하게 나온 그는 반갑게 인사하며 앉으라고 했다.“시연 씨, 회사 사람 모두 시연 씨가 일을 잘하는 걸 알아요. 지난 몇 년 동안 박강현 씨를 따라 이룬 실적도 적지 않았고 그만큼 고생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내 수하에 들어오니 정말 기쁘네요.”이시연은 입술을 깨물고 조용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신인 두 명을 붙여줄 테니 한번 잘 해보는 게 어때요?”그녀는 살며시 눈살을 찌푸리고 대답했다.“전 매니저를 해본 적이 없어서 못 할 것 같아요.”“너무 겸손하시네요. 박강현 씨를 직접 케어하신 걸 알아요. 박강현 씨가 바로 이시연 씨의 간판이니 분명 잘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서 대표님은 당근 비법을 쓸 생각이었다.“하지만 제가 더 잘하는 건 감독과 촬영이에요.”감독은 이시연의 전공이고, 촬영은 취미생활인이데 둘 다 그녀가 열정을 퍼붓는 일이었다. 박강현을 챙기던 몇 년 동안 너무 바빠서 이런 일을 많이 줄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등한시하지는 않았다.특히 최근 2년간 박강현의 매니저 일을 하지 않은 뒤 미니시리즈에 몇 편 참여해 봤는데 반응이
이시연은 그가 단번에 알아맞힐 줄 몰랐다.올 때 잘 생각하고 할 말 있으면 바로 하려고 했지만 막상 선생님과 사모님을 마주하니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박강현이 아쉽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실망하는 모습을 볼까 봐 두려웠다.안필훈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네 사모는 영화제에서 박강현 그 자식이 네가 어렵게 받아온 팔찌를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걸 보고 이틀째 화를 내고 있어. 휴, 일단 들어와 얘기해.”이시연은 그의 한숨에 가슴이 아파졌다.“강현이 그 자식이 참 염치가 없어요. 날 말리지 말라고 했잖아요. 불러와서 한번 혼내줘야 해요. 그 팔찌는 시연이가 한 계단에 한 번씩 무릎을 꿇고 어렵게 구해 온 것인데 남에게 주다니.”“강현이는 당신이 사업을 도와준 거 알아요. 하지만 시연이도 당신 학생인데 그렇게 그 녀석만 감싸고 시연이는 신경 안 쓸 거예요? 왜 말을 안 해요?”사모님은 남편이 한참 동안 대꾸하지 않자 화가 나서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크게 싸우려 했다.하지만 고개를 돌리는 그녀는 이시연의 눈빛과 마주했다.“시연아?”세월의 흐름으로 사모님이 더는 젊지 않았지만 여전히 분위기가 우아했는데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모습도 엿보였다.그녀가 급히 일어나자 이시연이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했다.“사모님, 저 왔어요.”박강현과 이별을 얘기할 때도 울지 않았던 그녀는 사모님 앞에서 눈시울이 붉어졌다.“아이고, 착한 시연이가 마음고생이 많구나.”사모님은 가슴이 아파 이시연을 품에 안았다.목이 메어 가늘게 떨리는 그녀의 몸을 느끼며 사모님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고 따라서 눈물을 흘릴 뻔했다.“억울한 일이 있으면 나에게 다 말해. 내가 다 들어줄게. 박강현 그 자식 정말 너무 했어. 이렇게 너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니 나도 화가 나. 네가 헤어지더라도 나는...”“쿨럭.”안필훈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말할수록 이상하게 흘러가.”그는 한숨을 내쉬며 위로했다.“시연아, 너도 너무 슬퍼하지 마. 이 연예계라는 곳이 워낙 복잡해
안필훈은 아내가 더 화를 낼까 봐 지체하지 않고 바로 박강현에게 전화를 걸었다.나선영은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시연이가 자신의 사업을 발전시키고 싶어 하니까 촬영 감독 쪽으로 잘 아는 당신이 좀 도와줘요. 아직 우리 말이 힘이 있을 때 좀 더 잘할 수 있게 도와줘요.”“그래, 이 일은 걱정하지 마. 시연이는 내가 아끼는 학생이야. 예전에 박강현 때문에 이 일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가장 슬펐던 건 나였어. 내가 이 일로 당신이랑 말다툼했다는 걸 잊었어? 당신이 함부로 중매를 섰다고 나무랐잖아.”그녀는 한숨을 내쉬고 나서 말했다.“지금 와서 생각하니 후회돼요.”박강현은 전화를 받았을 때 조민아와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그녀는 대상을 받고 나서 먼저 그에게 밥을 사라고 했다.이시연과 헤어진 일로 마음이 심란했던 박강현은 조민아의 애교 섞인 목소리로 걸어온 전화를 받고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하며 이시연이 조민아의 반 정도만 부드러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시연 씨가 오빠를 찾아요?”밥을 반쯤 먹던 조민아가 실망하며 물어보자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시연이 아니야. 선생님이 갑자기 집에 오라는데 가봐야겠어.”“안필훈 선배님이에요? 줄곧 그분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함께 가면 안 돼요?”박강현은 거절하려다가 기대에 찬 그녀의 모습을 보고 말을 삼켰다.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하얀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가자. 하지만 거기 가면 말과 행동 조심해야 해. 선생님은 함부로 친한 척하는 걸 싫어하셔.”조민아는 퉁명스럽게 그의 손을 탁 손을 치며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안 선배님을 꼭 만나보고 싶었어요. 그분의 작품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그녀를 바라보는 안필훈의 눈빛이 부드러웠다.“선생님께서 다시 작품을 시작한다고 하면 내가 열심히 배역을 따볼게.”안필훈의 집은 작은 양옥집으로, 앞에는 크기가 맞춤한 마당이 하나 딸려 있고 대문은 일반 울타리 문이었는데 두 사람은 집 안에 앉아 창문을 사이에 두고 정문
조민아가 말을 절반쯤 하자 박강현의 안색이 이미 매우 안 좋아졌는데 그녀의 질문에 그 이웃은 기뻐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그 작은 얼굴은 정말 정교하게 생겼더라고요.”박강현은 이 말을 듣고 안색이 완전히 냉랭해졌고 눈빛도 따라 어두웠다.그는 평소 이시연과 스케줄을 거의 다 주고받는데 지난 며칠은 이시연이 화를 내는 바람에 버릇을 들이기 싫어서 연락도 안 했다.어제 서채진이 그녀에게 반달 휴가를 준 것을 알았지만 오늘 선생님과 사모님께 일러바칠 줄은 몰랐다.어쩐지 평소 자신에게 이렇게 잘해줬던 두 사람이 오늘 이렇게 괴롭히더라니.옆에서 미간을 살짝 찡그리는 조민아를 힐끗 보던 그는 이시연이 교활하고 제멋대로일 뿐만 아니라 심술궂다고 생각했다.두 사람이 거의 두 시간을 기다리는 것을 보고 나선영은 안필훈에게 전화를 걸라고 했다.“강현아, 나랑 네 사모가 정말 빠질 수 없어서 그러니 먼저 돌아가거라. 나중에 다시 찾을게.”박강현은 감정을 억누르고 알았다고 대답했지만 전화를 끊은 후 쌀쌀한 눈빛을 지었다.이웃은 알아채지 못한 듯 계속 물었다.“아는 사람이에요? 혹시 남자친구 있어요?”박강현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걸 물었다.“혹시 오늘 안 선생님 부부가 외출하는 것을 봤어요?”그 이웃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아침엔 잘 모르겠어요. 그 아가씨가 온 이후로 안 선생님네 나가는 걸 못 봤어요. 그리고 그 아가씨가 떠난 지 얼마 안 돼서 당신들이 도착했어요. 오랫동안 밖에 서 있길래 궁금해서 물어봤어요.”조정린은 나와서 몇 마디 하지 않고 들어갔기 때문에 이웃은 마침 보지 못했다.하지만 이 말은 박강현의 추측을 뒷받침했다.이시연이 가자마자 선생님이 그를 부르시더니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다.이건 무슨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이시연을 위해 화풀이를 하는 것이다.조민아는 그의 안색을 살피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위로했다.“강현 오빠, 화내지 마세요. 무슨 오해가 있는 거 아닐까요? 두 사람 잠깐 트러블이 생긴 건데 그걸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