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청룡영화제, 시상식.

신인 여배우 조민아가 처음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에 대해 사회자가 소감을 물으며 자신에게 어떤 상으로 주고 싶으냐고 물었다.

조민아는 옆에 있는 시상자 유명 영화배우 박강현에게 눈길을 돌렸다.

“백강현 배우님의 단향목 염주 팔찌를 갖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이 말이 나오자 장내가 깜짝 놀랐다.

연예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배우 박강현이 늘 갖고 있는 단향목 염주 팔찌를 잘 알고 있다. 이것은 그가 매우 아끼는 팔찌였는데 그가 데뷔했을 때부터 줄곧 몸에 착용하고 있었다.

업계에는 떠도는 소문이 있다.

유명 배우 박강현은 고급 명품 브랜드의 모델을 맡은 적이 있는데 브랜드 측은 단향목 염주 팔찌 대신 손목시계만 차고 오기를 바랐으나 거절당했다고 했다.

그는 광고모델을 하지 않더라도 단향목 염주 팔찌를 절대 벗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브랜드는 단향목 염주 팔찌와 어울리는 선의(禪意)의 시계를 디자인했다.

‘조민아, 미친 거야? 톱스타의 단향목 팔찌를 원하다니?’

무대 위의 사회자는 멍하니 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모두 박강현이 조민아의 제안을 거절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단향목 염주 팔찌를 손목에서 빼내어 조민아의 손목에 채워줬다.

이시연은 무대 아래에 앉아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유명 배우 박강현이 그녀가 5년 동안 사귀어 온 남자친구라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단향목 팔찌는 그녀가 태성산 계단을 오르는 동안 한 발 한 발 절하며 구한 것임을 아무도 몰랐다.

단향목 염주 팔찌에 새겨진 연꽃무늬는 그녀가 직접 새긴 것이다.

무대 위의 조민아는 깜짝 놀라며 손목을 흔들었다.

“박강현 배우님의 지도와 격려에 감사드리며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작품 많이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사람만큼 달콤했다.

박강현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돌려 이시연이 앉았던 자리를 돌아보니 어느새 비어 있었다.

그의 눈웃음이 조금 옅어졌다.

이시연은 회사로 돌아갔는데 누군가 시상식에서의 박강현과 조민아를 주제로 논의하는 것을 들었다.

그녀는 두 눈이 시큼해서 몸을 돌려 화장실로 들어가 찬물로 얼굴을 적시고 다시 거울 속의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허둥지둥 도망치는 초라한 모습에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와 박강현이 알고 지낸지 7년, 그중 5년을 사랑했다. 무명배우에서 톱스타가 되기까지 내내 그와 함께했다.

지칠 때나 힘들 때나 언제나 그의 옆이라서 이시연은 달게만 느껴졌다.

갓 교제할 때 그녀는 박강현의 휴대전화에 찍힌 조민아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옆집 여동생이라고 태연하게 설명했는데 이시연은 그런 그의 말을 믿었다.

이후 3년 동안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감독의 꿈을 포기하고 박강현에게 매달렸다.

무명배우인 박강현이 좋은 배역을 얻을 수 없기에 매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하나씩 부탁해야 했다.

회사도 신입사원에게 너무 많은 자원을 낭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니 이시연은 여러 일을 도맡아 했다. 그녀는 박강현의 매니저이자 보조이며, 사진작가이기도 했지만 유독 그녀 자신이 아니었다.

박강현은 가끔 촬영이 없을 때면 그녀를 안고 소파에 앉아 함께 미래를 꿈꿨다.

“시연아, 내가 유명 배우가 되면 너에게 청혼해서 가장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줄게. 어때?”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허리를 감싸며 더없이 기대하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 순간을 기대하며 그녀는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다했고 박강현도 열심히 노력했다.

3년 후 그는 유명 배우의 소망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시연은 그의 청혼을 받지 못했고, 박강현은 오히려 귀국한 옆집 여동생을 만났다.

2년 동안 그는 조민아를 위해 한 번 또 한 번 그녀를 내쳤다.

이시연이 화를 내지 않은 건 아니다.

박강현은 조민아가 국내에 의지할 사람이 없고 연예계가 복잡하여 오빠로서 더 잘 보살펴줘야 하는데 이건 모두 오랜 우정을 봐서 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시연은 손을 들어 눈을 가렸지만 두 눈에 전해오는 시큼함을 억제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우정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나는 뭐지?’

2년 동안 박강현은 조민아를 지켜주며 대본이나 광고 모델 자리를 갖다 바쳤지만 이시연은 다 참았다.

하지만 끝까지 참은 결과 그는 그 단향목 염주 팔찌까지 그녀에게 갖다 줬다.

‘처음에는 왜 박강현을 사랑했던가?’

생각해보니, 박강현도 고아라는 동병상련의 감정 때문인지, 아니면 물에 빠진 자신을 의롭게 구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에 동병상련이 많은데 왜 그가 유일한 그 사람이었던 걸까?

생명을 구해 준 은혜? 지난 몇 년 동안 그녀는 그를 위해 자기 일을 포기하고 최선을 다해 그가 원하는 것을 얻도록 도왔으니 이제 다 갚은 거 아닐까?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이시연의 표정은 이미 평소와 같이 회복되었다.

2년 동안 그녀는 사랑을 거의 다 써버렸다.

그녀는 사무실로 돌아가 몇 년 동안 했던 대로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을 먼저 보았다.

[유명 배우 박강현, 조민아를 위해 오랫동안 소중히 다뤄온 팔찌를 빼.]

이 제목이 1위를 달렸고 대박 날 것 같았다.

그녀는 조금 떨리는 손끝으로 휴대폰을 클릭했다. 첫 번째 게시물은 팬이 편집한 동영상이었는데 조민아가 박강현에게 팔찌를 달라고 하는 장면이었다.

현장에 있을 때 박강현은 이시연을 등지고 있었는데 그때야 비로소 그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늘 엄숙하고 별로 웃지 않던 남자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조민아에게 팔찌를 끼워주고 있었다.

팬들이 아래에서 미친 듯이 환호했고 반나절 만에 좋아요 수가 300만 개를 넘어섰다.

동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되어 다시 박강현이 아무렇게나 팔찌를 벗는 장면이 보였다. 이시연은 갑자기 자신이 예전에 직접 그에게 팔찌를 줬을 때 박강현의 놀라움과 사랑으로 가득 찬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손을 들어 심장을 부여잡았다. 나중에 느껴진 둔한 통증이 그녀를 거의 삼킬 뻔했다.

휴대전화가 뜨겁기라도 한 듯 그녀는 손을 들어 책상에 던졌다.

영상이 한 번 또 한 번 재생되고 있었다.

어둠이 서서히 내려오자 방 안에는 휴대전화 불빛만 남았다.

누군가가 문을 밀고 들어오더니 조명이 켜졌다.

이시연은 손을 들어 눈을 가렸는데 마침 이때 휴대전화가 꺼졌다.

박강현은 눈매가 냉담하고 피곤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왜 일찍 갔어? 한참을 찾아서야 네가 이미 갔다는 것을 알았어.”

그는 다가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졌다.

이시연은 옆으로 비켜서 벽을 짚고 일어나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지만 두 눈에 떠오른 감정을 알아볼 수 없었다.

“왜 기분이 안 좋아 보여? 누가 널 건드렸어?”

박강현은 덤덤하게 물었다.

분명히 이미 생각을 정리했고, 그의 이런 태도를 처음 마주하는 것도 아닌데 겨우 진정한 이시연의 심장이 다시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 애썼지만 그 웃음은 결국 얼굴에 드러나지 않았다.

“박강현, 그 팔찌는 크기가 네 팔에 딱 맞아. 민아 씨에게는 좀 커. 가지고 와서 딱 맞게 바꿔줄까?”

그러자 박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설명했다.

“오늘 무대에 서 있는 민아의 체면을 깎을 수 없었어. 민아도 장난으로 그런 거야. 그 염주 팔찌는 민아에게 안 어울려. 내가 선물하는 게 싫으면 며칠 뒤에 다시 달라고 할게.”

박강현도 이 일이 좀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대 위에 서 있는 조민아의 기대에 찬 눈빛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조민아가 단지 장난을 쳤을 뿐이라고 해도 시상식에서 그녀의 체면이 깎이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이시연이 계속 자신이 착용하길 원하는 거라면 가져오면 그만인데 이런 사소한 일로 소란을 피울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손을 뻗어 이시연을 품에 안고 달래려 했지만 이시연이 또 피하면서 말했다.

“다른 여자 만지던 손으로 만지지 마. 더러워.”

“무슨 말이야?”

박강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덤덤하게 한마디 던졌다.

“헤어지자.”

박강현은 미간을 누르며 피곤한 기색으로 말했다.

“요즘 연속되는 촬영으로 그동안 쉴 틈도 없었어. 다 누구를 위해 이렇게 목숨을 건 거로 생각해? 오늘도 틈이 나자마자 제일 먼저 만나러 왔는데 팔찌 하나 때문에 이 난리야?”

화가 난 이시연은 되려 웃어버렸다.

“자신을 위해 노력한 것이지 나와는 상관없잖아. 네가 거절하지 않은 것도 사실인데 왜 나를 탓해?”

박강현은 그녀가 이렇게 따져 묻자 쌀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시연, 내가 너를 너무 오냐오냐한 거지?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아무 억지부려도 된다고 생각하지 마! 지금부터 하는 모든 일을 멈추고 돌아가서 생각 좀 정리해. 무슨 말을 해야 하고 무슨 말을 하지 말아야 할지 정리하고 나면 다시 돌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