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웅은 투자자의 말에 흔들릴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유한 그룹이 제안한 금액은 너무나도 많았다.아직은 박강현의 캐스팅 소식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그리고 계약서도 체결하지 않았다. 안필훈의 추천이라 오디션도 보지 않았으니 배우를 바꾸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다.이시연은 윤철웅의 고민을 보아 냈다.처음에 윤철웅은 박강현은 남길 생각이었다. 어찌 됐든 안필훈의 체면을 봐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강현를 남기려면 조민아도 캐스팅해야 한다는 생각에 급 생각이 바뀌었다.지금 고민하는 것은 안필훈에게 전달할 말이었다. 유한 그룹의 투자금은 아주 좋은 계기가 되어줬다.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어 보였다.“강현 씨.”윤철웅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후배님 말이 맞아요. 조민아 씨는 연기력이 부족해요. 이번 촬영에서는 캐스팅할 수 없을 것 같네요. 다음번에는 맞는 캐릭터가 있는지 잘 봐줄게요. 강현 씨를 봐서라도요. 그리고 강현 씨는... 저도 같이 일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조금 안 좋네요. 저희 유한 그룹의 투자금이 필요해요. 저뿐만 아니라 촬영팀을 생각해서라도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난 돈을 택했으니 너희들은 꺼지라는 말이었다.박강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일이 이렇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그의 안색은 아주 어두웠다. 모든 분노와 증오는 역시나 이시연에게 향했다.“넌 아주 좋겠다. 이제 만족해?”‘이 새X 또 왜 이래? 내가 뭘 어쨌다고?’조민아는 막연한 표정을 지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상황은 그녀가 예상하던 것과 너무 달랐다.윤철웅이 나서서 거절했고, 또 진현우까지 있으니 이시연은 두려울 게 없었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조민아에게 말했다.“민아 씨 말대로 나대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요?”조민아는 억울하다는 듯이 빨개진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시연이 시선을 보내자 진현우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시연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것도 그에게는 영광이었다.그녀와 유태경의 관계를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이시연은 시선을 숙였다. 긴 눈초리는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분위기도 따라서 차가워졌다.“이시연!”박강현이 이를 악물었다.“민아는 내 동생이야.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이렇게 말하며 그는 조민아를 살짝 풀었다. 그러자 조민아가 긴장한 표정으로 거리를 벌리며 울먹였다.“언니가 우리를 그렇게 볼 줄 생각도 못 했어요. 나한테 악의 품을 정도일 줄 알았으면 안 그랬을 거예요. 오빠까지 이런 일 당할 건 없잖아요. 나는 촬영 못 해도 상관없어요. 근데 오빠까지 끌어들이지 마요.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보복을 그만둘 건데요?”이 말을 듣고 윤철웅과 진현우는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 들어줄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조민아가 울먹이는 것을 듣고 박강현은 또다시 가슴이 아팠다. 그는 죄책감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녀를 데리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 직면할 일도 없었다. 동시에 이시연은 완전한 악인이 되어버렸다.윤철웅이 대신 설명하려고 할 때 이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둘이 남매라고? 나랑 정혁 오빠도 마찬가지야.”그녀는 피식 웃으며 태연하게 말했다.사실인데도 박강현은 전혀 믿지 않았다. 그는 이시연이 바람을 피웠다고 단정 지었다.“내가 그런 말에 속을 정도로 멍청해 보여? 둘이 어떻게 남맨데?”“입양이라고 해도 남매는 남매지. 서류도 없는 너랑 민아 씨는 끼지도 못해. 나한테 오빠가 있는 것만 아니었어도 세상 남매가 다 너랑 민아 씨 같은 줄 알았을 거야.”진현우와 윤철웅도 박강현과 조민아의 모습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그러기에 박강현이 얼마나 역겨운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았다.조민아는 복잡한 눈빛으로 이시연을 바라봤다. 고아 주제에 유한 그룹은 가당치도 않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박강현도 똑같이 생각했다.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허은수를 보내서 협박하고, 이번에는 또 더 더러운 수작을 쓴다고 말이다.이토록 양심 없는 사람이라면 유한 그룹을 이용하지 않고 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의 말은 이성 잃
박강현은 속상한 듯 조민아를 품에 안고 토닥였다. 그리고 이시연과 말할 때와 전혀 다른 말투로 위로했다.“이게 다 이시연 탓이야. 너랑은 상관없어. 이런 곳에서 나도 연기하고 싶지 않아. 감독도 제정신이 아니잖아. 남아 봤자 기분만 더러울 거야. 넌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 오늘 당한 일은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복수할게.”조민아는 감동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금방 다시 울먹이며 걱정했다.“근데 언니랑 헤어진 거 진짜 발표할 거예요? 그러면 만회할 방법이 없는 거 아니에요?”박강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넌 단순해서 이시연의 속셈을 알지 못해. 내가 양보할수록 이시연은 점점 나대려고 할 거야. 그렇다면 아예 기회를 남겨주지 않는 게 낫지. 발표해야 내 결심도 보여줄 수 있어. 나도 이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사람들이 알고 나면 내 체면을 봐서 걔 일 도와주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러면 당연히 내 곁으로 돌아오겠지. 내가 꼭 너 대신 사과를 받아낼게.”조금 전까지 득의양양해 있던 조민아는 ‘내 곁으로 돌아오겠지’라는 말을 들은 순간 얼어붙었다.‘이게 무슨 뜻이야? 아직도 이시연이랑 만나고 싶은 건가?’...박강현이 떠난 다음 이시연과 진현우의 안색이 전부 어두워졌다. 윤철웅의 안색만 복잡해 보였다.그는 박강현과 별로 친하지 않았다. 그저 소문으로만 접했을 뿐이다. 최근 인기가 높은 박강현에 관해서는 좋은 소문밖에 없었다. 아주 스윗한 사람이라고 말이다.하지만 오늘 그의 생각은 진현우와 똑같았다. 역시 소문은 믿을 것이 안 됐다.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만약 정말 발표한다면 후배님한테 불리한 거 아니에요? 그쪽은 팬도 많은데... 너무 충동적으로 일을 벌인 것 같아요.”진현우도 복잡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정말 부정적인 여론이 생긴다면 아무리 유한 그룹이 나선다고 해도 잠재우기 어려울 것이다. 이 일은 빨리 유태경에게 말해야 했다.이렇게 생각하며 그는 입을 열었다.“감독님, 촬영팀 구경 잘했어요. 이제 투자금
“형, 시연 누나 일 진짜 발표할 거예요?”김성민은 주저했다. 그러자 박강현이 짜증스럽게 넥타이를 풀며 말했다.“내 말 못 알아들었어?”김성민은 마른침을 삼키며 용기 내서 말했다.“영화 책임자 쪽에서 아직도 압박하고 있어요. 만약 지금 발표한다면 저희한테 안 좋은 영향을 줄 거예요. 저는 그게 걱정돼서...”김성민의 말에 박강현은 더욱 짜증이 났다. 그도 다 아는 일이었기 때문이다.영화 책임자는 그렇다 쳐도, 그가 지금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 함께 해준 이시연과 헤어졌다는 자체만으로도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그도 오랫동안 만들어 온 이미지를 하루아침에 잃고 싶지 않았다.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서류 더미 속에서 대본 하나를 빼냈다.“이 대본 민아한테 보내줘.”일단은 조민아를 위로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녀가 계속 속상해하지 않도록 말이다. 이시연 일은 후에 다시 처리해도 늦지 않았다.“참, 그리고 영화 투자자한테 연락해 봐. 내가 만나자 했다고 해.”김성민은 대본을 힐끗 봤다. 회사에서 투자한 여자주인공을 위주로 한 영화였다.그는 머리를 갸웃했다. 박강현이 조민아에게 너무 잘해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이시연이라고 해도 화가 날 것 같았다. 자신의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에게 지극정성인 모습을 견딜 사람은 없을 것이다.“뭐해? 빨리 보내주지 않고!”박강현이 언성을 높였다. 지금 그는 세상 모든 것이 거슬리는 상태였다.김성민은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을 도로 삼켰다. 그는 짧게 대답하고 나서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이튿날, 박강현은 오전 10시에 이시연이 떠난 소식을 발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회사 계정은 아무리 해도 로그인되지 않았고, 급기야 정지까지 먹었다.화가 치밀어 오른 그는 아예 개인 계정으로 발표하려고 했다. 개인 계정은 로그인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계시할 수 없는 상태였다.“시X!”안 그래도 화가 났던 그는 더욱 화가 났다. 그는 아예 핸드폰을 바닥으로 내던졌다.유한그룹, 대표이사실.유태경은 고개를 숙여서 서류를
이시연은 순간 총알을 장전해 놓고도 쏠 곳이 없는 것 같은 허무함을 느꼈다.요즘 촬영팀이 바쁘다 보니, 집에서 지내면 이동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그래서 그녀는 아예 촬영팀에서 마련해 준 호텔에 머물기로 했다.심심했던 그녀는 침대에 누워서 한참 뒤척였다. 침대의 품질은 별로 좋지 못했다. 삐걱 소리가 나는 건 그렇다 치고, 너무 꺼져서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맞은 것처럼 아팠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쑤시고, 그냥 온몸이 불편했다.이튿날 일어난 그녀의 얼굴에는 생기가 별로 없었다. 윤철웅이 걱정돼서 한마디 건넸지만, 그녀는 말할 기분도 아니라 손만 흔들었다.윤철웅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날 박강현이 떠난 후, 그는 안필훈에게 가서 둘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은데 왜 촬영팀에 함께 온 건지 물어보았다.그제야 그는 그 두 사람이 연애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시연이 기운 없이 보이는 걸 보고는, 그녀가 이별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윤철웅은 쉬는 동안 잠깐 눈을 붙인 이시연에게 시선을 던졌다가, 그날 자신이 첫 번째 목격자였던 일을 떠올렸다. 그는 뒤늦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진현우나 유한 그룹은 박강현과 별다른 갈등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현우는 박강현의 캐스팅을 명확히 반대했다.윤철웅도 원래는 이시연이 유정혁과 남매라고 했던 말을 박강현을 자극하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현우의 태도를 곰곰이 떠올려 보니 마냥 거짓말 같지도 않았다.“흡...”윤철웅이 입술을 깨물며 턱을 만졌다.진현우는 이시연의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유태경의 비서로서,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당연히 반박했을 것이다.유한과 같은 재벌가는 사소한 일로도 큰 주목을 받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입양 딸에 관한 소식이 하나도 없을 수 있는가? 물론 소식이 없다고 해서 사건 자체가 없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우리 후배님 정말 재벌가 출신이었던 건가?’이시연은 촬영팀에서 며칠 동안 바쁘게 지냈다. 하지만 호텔 침대에는 여전히 적응하지
이시연은 오랜만에 편하게 잠을 잤다. 다음 날 늦잠 자고 일어나서 급하게 준비를 마치고 내려가 보니, 유태경이 아직 집에 있었다.“아저씨, 왜 아직도 출근 안 했어요?”식탁에 앉아 있던 유태경이 고개를 들어 천천히 대답했다.“널 기다리고 있었어.”방금 빵을 한입 물었던 이시연은 그 말에 목이 멨다. 그녀는 서둘러 우유를 한 모금 마시며 삼켰다.“저...”유태경은 손목시계를 힐끗 보며 말했다.“이러다 너 늦겠다.”그녀는 즉시 감정들을 뒤로 하고 말했다.“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서 절대 늦으면 안 돼요.”이시연은 우유 몇 모금 더 마시고는 서둘러 차에 올랐다. 유태경은 여유롭게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조수석에 앉아 남은 빵을 먹기 시작했다.“차고에서 마음에 드는 차 하나 골라. 전부 마음에 안 들면 진 비서한테 말해서 다른 차를 보러 가도 돼.”“네?”이시연은 이해가 되지 않은 듯 고개를 갸웃했다.“널 태우고 다니는 게 귀찮은 건 아니고... 차 하나 있으면 너 혼자 다닐 때도 편할 것 같아서.”그는 어제와 같은 경우를 말했다. 하지만 굳이 말로 하지는 않았다.이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는 항상 박강현과 함께 다녀서 차가 필요 없었지만, 이제는 확실히 차가 필요할 것 같았다.그러나 유태경의 차고에 있는 차들은 부담스러웠다. 그녀는 나중에 적당히 저렴한 차를 사서 다니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유태경은 그녀의 생각을 눈치채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회사에 도착하자, 서채진은 이미 사람들과 함께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신인 배우 두 명을 보고 이시연은 잠시 침묵했다.남자는 임주연, 여자는 주혜성이라고 했다. 둘 다 외모는 괜찮았다. 다만 그들은 정말 생 신인이었다. 이제 막 데뷔해서 내놓을 만한 작품도 없었다.이시연은 그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임주연은 키가 꽤 컸다. 180cm가 넘는 그는 아직 어린 관계로 소년다운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웃지 않을 때는 약간 차가운 인상을 주었다.주
청룡영화제, 시상식.신인 여배우 조민아가 처음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에 대해 사회자가 소감을 물으며 자신에게 어떤 상으로 주고 싶으냐고 물었다.조민아는 옆에 있는 시상자 유명 영화배우 박강현에게 눈길을 돌렸다.“백강현 배우님의 단향목 염주 팔찌를 갖고 싶은데 가능할까요?”이 말이 나오자 장내가 깜짝 놀랐다.연예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배우 박강현이 늘 갖고 있는 단향목 염주 팔찌를 잘 알고 있다. 이것은 그가 매우 아끼는 팔찌였는데 그가 데뷔했을 때부터 줄곧 몸에 착용하고 있었다.업계에는 떠도는 소문이 있다.유명 배우 박강현은 고급 명품 브랜드의 모델을 맡은 적이 있는데 브랜드 측은 단향목 염주 팔찌 대신 손목시계만 차고 오기를 바랐으나 거절당했다고 했다.그는 광고모델을 하지 않더라도 단향목 염주 팔찌를 절대 벗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이를 위해 브랜드는 단향목 염주 팔찌와 어울리는 선의(禪意)의 시계를 디자인했다.‘조민아, 미친 거야? 톱스타의 단향목 팔찌를 원하다니?’무대 위의 사회자는 멍하니 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모두 박강현이 조민아의 제안을 거절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뜻밖에도 그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단향목 염주 팔찌를 손목에서 빼내어 조민아의 손목에 채워줬다.이시연은 무대 아래에 앉아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유명 배우 박강현이 그녀가 5년 동안 사귀어 온 남자친구라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단향목 팔찌는 그녀가 태성산 계단을 오르는 동안 한 발 한 발 절하며 구한 것임을 아무도 몰랐다.단향목 염주 팔찌에 새겨진 연꽃무늬는 그녀가 직접 새긴 것이다.무대 위의 조민아는 깜짝 놀라며 손목을 흔들었다.“박강현 배우님의 지도와 격려에 감사드리며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작품 많이 보여드리겠습니다.”그녀의 목소리는 사람만큼 달콤했다.박강현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돌려 이시연이 앉았던 자리를 돌아보니 어느새 비어 있었다.그의 눈웃음이 조금 옅어졌다.이시연은 회사로 돌아갔는데 누군가 시상식에서의 박강현과 조민아
“뭐라고?”이시연은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박강현은 쌀쌀하게 방금 한 말을 반복했다.“하고 있는 모든 일을 멈추고, 진정되면 다시 돌아오라고. 네가 맡은 그 영화 프로젝트도 잠시 비서에게 넘겨.”이시연은 몸을 흠칫했다.“네가 뭔데?”그녀는 심호흡하고 나서야 겨우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다른 일은 안 해도 돼. 이 영화 프로젝트는 내가 직접 계약서를 따 온 거니 네가 가져갈 권리가 없어.”박강현은 무슨 우스갯소리를 들은 듯 피식 웃었다.“네가 계약한 거? 무엇으로 계약했어? 내 인맥 자원이 없다면 프로젝트 책임자가 너를 만날 거로 생각해? 이시연, 너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야?”이시연은 갑자기 낯설어진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번 훑어보았다.“내가 너의 인맥 자원에 의지한다고? 박강현,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양심이 없는 거야? 넌 내가 직접 챙겼고 네 모든 자원은 내가 알아서 해결했어. 이제 와서 내가 너한테 의지하고 있다고?”남자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이시연, 너 옛날얘기 하고 싶어? 예전에는 이렇게 억지 부리지 않았잖아?”이시연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본 박강현은 마음이 조금 아팠다.“이시연, 그만해. 아무도 내 마음속의 네 자리를 대신할 수 없어.”이시연은 우습다고 생각했다.“조민아는? 그 여자는 뭔데?”박강현은 짜증스러운 기분을 억누르며 대답했다.“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나는 민아를 여동생으로만 생각한다고.”그녀는 손을 들어 눈을 가리고 나서야 시고 떫은 느낌을 억제했다.“박강현, 자신을 속이지 마. 조민아가 귀국하고 네가 내 매니저 자리를 없애고 싶어 했을 때부터, 난 네 마음속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아니었던 거야.”“너!”박강현의 마음속에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민아는 민아고, 매니저 자리랑 아무 상관없어. 매니저를 바꾼 건 그냥 패션계의 자원이 필요해서. 그때 마침 그 사람이 있었고. 내가 쓸데없는 말 싫어하는 걸 알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