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혹시 지금 시연이 편을 들어주시는 거예요?”그는 결국 픽 웃고 말았다.“먼저 헤어지자고 한 건 이시연이에요. 저도 물론 계속 기회를 줬어요. 시연이가 이 억지를 그만 부린다면 다시 전처럼 지낼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시연이는 고집이 아주 센 사람이죠. 대체 무슨 억지를 부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모님께서 시연이 편을 들어주시려는 것이라면 일단 누가 문제인지부터 알고 들어주세요.”그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엔 비난의 의미가 다소 담겨 있었다.나선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여전히 그를 위아래 훑어보고 있었다.“강현아, 너 아직도 시연이를 사랑하긴 하니?”그도 미간을 찌푸렸다.“제가 시연이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일찌감치 계약을 해지한 사실을 밝혔을 거예요. 그랬다면 이시연이 저 자리에 멀쩡히 서 있었을까요?”나선영에선 온화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내가 너를 이 작품으로 추천한 건 너희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이야. 하지만 넌 조민아를 이곳에 데려와서는 안 됐어.”박강현은 미간을 더 찌푸렸다.“사모님, 제가 민아를 오디션 보게 한 건 민아가 그동안 안필훈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어서예요. 이 기회는 민아가 해외로 진출할 유일한 기회기도 해요. 그리고 저랑 민아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그냥 옆집 오빠 동생 사이일 뿐이라고요.”“옆집 동생은 무슨 동생!”나선영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픽 웃었다.“어느 옆집 동생이 옆집 오빠의 팔찌까지 차? 또 어느 옆집 오빠가 옆집 아는 동생 때문에 여자친구를 제쳐둬? 이게 어딜 봐서 옆집 동생이야? 옆집에 사는 내연녀지!”“강현아, 넌 대체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거니, 아니면 정말로 눈치가 없는 거니?”그는 눈에 띄게 멈칫했다.“사모님, 말 가려서 하세요. 저랑 민아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사모님께서 믿든 말든 자유지만 전 이미 사실대로 말했습니다.”나선영은 그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 코웃음을 쳤다.“허, 그래. 넌 곧 후회하게 될 거다.”말을 마친 그녀는 이내 몸을 돌렸다.박강현은 멀지 않은
이시연은 안필훈과 윤철웅과 바쁜 하루를 보냈다. 손에 든 대본엔 글씨가 빼곡히 있었고 오디션 참가자들에 관한 특징과 연기 실력, 배역에 어울리는지에 대한 평가도 전부 자세하게 적어두었다.윤철웅은 이시연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몰래 그녀의 대본을 펼쳐 보다가 놀라게 되었다.그는 비록 이시연을 후배라고 꼬박꼬박 부르긴 하지만 속으로는 딱히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젊어도 너무 젊었기 때문이다. 만약 안필훈이 데리고 온 것이 아니었다면 절대 촬영장에 발도 못 들이게 했을 것이다.하지만 하루 동안 이시연을 관찰해보니 이시연의 안목은 꽤나 뛰어났고 대본엔 빼곡한 글씨가 있었다.윤철웅은 이시연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안필훈은 불룩 튀어나온 배를 만지며 물었다.“그래, 시연이를 지켜본 결과 어떤 것 같니?”“저보다 젊긴 한데 실력도 뛰어난 것 같네요.”윤철웅은 솔직하게 말했다.안필훈은 더 짙은 미소를 지었다. 얼굴에 주름이 더 지게 되었다.“시연이는 실력은 있는데 조금 융통성이 없어.”만약 전처럼 박강현 케어하는 것에만 집중했다면 이런 그녀의 능력조차 발견하지 못하고 끝났을 것이다.나선영은 안필훈의 어깨를 툭툭 쳤다. 힘을 주었던지라 안필훈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여보, 왜 그래?”그녀는 한마디의 쓸데없는 말 없이 직설적으로 말했다.“오늘 조민아라는 여자가 오디션 보러 왔죠? 탈락시키세요.”윤철웅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왜요?”안필훈은 수염을 쓸어내렸다.“내가 집중적으로 보긴 했는데 연기 실력은 어중간했어. 탈락시키든 말든 일단 자세히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 우리는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탈락시키면 안 되잖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그러자 나선영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흥, 나도 아무 이유 없이 떨어뜨리라는 건 아니에요. 오늘 조민아와 같은 배역을 따내기 위해 오디션을 본 여배우는 여럿이 되잖아요. 뒤 순서로 나온 강수진이라고 했나? 그 배우가 조민아보다 연기를 더 잘한 것 같아서 그래요.”“조민아보다 더 잘한 사람이 있
조민아는 그 새로 홀쭉해졌다. 눈가는 빨갛게 부었고 볼에는 아직도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누가 봐도 한바탕 운 모습이었다.“오빠, 결과 나왔어요. 저... 저 탈락이래요.”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끝냈다. 박강현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멀쩡하게 끝낸 오디션이 어떻게 탈락이야? 무조건 이시연 때문일 거야. 감독님한테 이상한 얘기를 한 게 분명해!’눈물 흘리는 조민아를 보고 그는 가슴이 아프다 못해 이성을 잃었다.“울지 마. 내가 지금 당장 이시연을 찾아가서 복수할게.”박강현은 똑똑히 알았다. 안필훈과 윤철웅은 그런 식으로 인재를 놓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이시연에게도 그 정도의 힘이 없을 것이다.그러나 조민아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니 이성을 잃고 이시연의 죄라고 단정 지었다. 허은수를 이용해서 그를 협박하던 것과 똑같은 수단을 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독한 년!’박강현은 일까지 미루고 촬영장에 찾아갔다.그들과 마주쳤을 때 이시연은 마침 점심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오늘 식사가 꽤 훌륭하게 나왔다고 했다.그녀는 밥을 얼마나 먹을지 고민했다.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는 유태경 때문에 한참이나 대중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앞길이 막혔을 때 그녀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이시연, 너 어쩌자는 거야?”박강현이 대뜸 물었다. 이시연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를 노려보며 아무 말도 안 했다.“네가 아무 말도 안 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아? 너 진짜 최악이다. 허 선생님이 떠난 일은 내가 이미 충분히 양보했어. 내가 그 정도 약속도 안 지킬 사람 아니라는 거 알잖아. 계약 해지한 일 밝히지 않은 건 너한테 기회를 주는 거야. 너 자기 힘으로 조감독까지 됐다고 잘난 척했었잖아. 세상 영화는 혼자 다 찍은 척했잖아. 근데 이제 와서 인맥을 더럽게 쓰는 건 무슨 경우야?”모든 말이 그녀를 탓하고 있었다.박강현의 눈빛은 아주 살벌했다. 그는 질문조차 하지 않고 모든 잘못을 이시
조민아는 이시연의 팔을 잡고 눈물을 뿜어냈다.“내가 언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요? 왜 나한테 이래요? 왜 내 인생을 망치려는 거냐고요? 언니 강현 오빠를 좋아하는 거 알아요. 그래서 나 항상 양보하고 있었잖아요. 친구로서 나도 강현 오빠가 언니를 좋아하는 거 알아요. 그래서 계속 오빠한테 대신 설명해 달라고 했어요. 믿지 않은 건 언니 탓이에요. 나한테 이런 짓을 해서 무슨 이득이 있어요? 오빠가 얼마나 더 양보해야겠냐고요? 날 보고 싶지 않으면 솔직하게 말해요. 내가 강현 오빠랑 있는 게 싫으면 그냥 말로 해달라고요. 얼마든지 물러날 수 있어요. 일 갖고 장난질만 치지 마요, 제발!”조민아는 세상 억울한 일을 당한 것처럼 울었다. 눈물 자국에 눌어붙은 머리카락 때문에 더욱 불쌍해 보였다.그녀의 울음소리에 박강현은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그래서 한껏 속상한 표정으로 그녀를 부축했다.이시연은 인상을 쓰며 조민아의 손을 뿌리치고는 목을 매만졌다. 뽀얀 피부에 빨간 자국은 유난히 선명했다.이번에 박강현은 정말 그녀를 죽일 기세였다. 그녀의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하긴, 조민아가 이렇게 울고 있지 않은가?“이시연, 너 대체 뭘 원하는 거야?”박강현이 이를 악물었다. 조민아는 여전히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마지막 희망이라도 잡는 듯 박강현을 꽉 잡았다.“왜! 나한테 왜 그래요!”박강현은 조민아 때문에 속상할 수록 이시연이 미웠다. 그는 다시 이시연의 목을 졸라서 잘못을 인정하게 하자고 했다.이때 이시연이 피식 웃으며 그의 뺨을 때렸다.“내가 만만해?”박강현은 순간 넋이 나갔다. 조민아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소리를 지르더니 박강현의 얼굴부터 살폈다.이시연은 더 이상 두 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자세를 숙였다. 그리고 흩어진 담향목 염주를 줍기 시작했다.담향목의 무늬는 전부 달랐다. 거친 것도 있고 부드러운 것도 있는 것이 점점 늘어간 기술을 드러냈다.그녀의 왼쪽 손가락에는 아직도 흉터가 남아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
박강현은 겉보기에는 거리감이 느껴져도 속은 따듯한 사람이라고 알려졌다. 또 여자를 아주 존중하는 귀공자라는 말도 있었다.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윤철웅이 먼저 박강현에게 물었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후배님 목은 또 왜 그래요? 무슨 오해라도 있었어요?”박강현은 진현우가 누군지 몰랐다. 그가 대뜸 조롱하는 것을 듣고 그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하지만 그는 똑똑했다. 윤철웅이 진현우에게 공손한 것을 보고 그는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오해는 없어요.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고 있었어요.”그 말인즉슨 남은 끼어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특히 진현우가 말이다.박강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진현우를 노려봤다. 그런데도 진현우는 신경 쓰지 않고 이시연에게 깨끗한 손수건을 건넸다.그녀는 창백한 손을 뻗어서 받았다. 표정은 그가 왜 갑자기 나타났는지 의아한 듯해 보였다.‘설마 아저씨도 왔나?’진현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감독님, 대표님께서 촬영팀이 문제없으면 투자 건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하셨어요. 근데 그 전에 박강현 씨도 촬영팀에 속해 있는지 묻고 싶네요.”윤철웅은 순간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강현 씨는 안필훈 선생님 추천으로 왔어요. 배역도 거의 정해졌다고 보면 돼요.”“그럼 이분은요?”진현우는 또 박강현의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조민아를 바라봤다.그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눈에 박강현은 얼굴도 유태경보다 못하고, 몸매도 유태경보다 못하고, 사회적 지위도 유태경보다 못했다. 바람까지 피우는 남자를 이시연이 왜 좋아했는지 이해가 안 됐다.‘대표님이랑 시연 씨가 그런 사이만 아니었어도 참 잘 어울렸을 텐데.’윤철웅은 울상이 된 조민아를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이분은 아니에요.”그 순간 윤철웅은 어딘가 이상함을 눈치챘다.조민아는 박강현의 추천으로 왔다. 그리고 이시연은 캐스팅을 도운 조감독이다.‘설마 후배님 때문에 조민아 씨가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후배님이랑은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
그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이시연에게 집중되었다. 그녀는 덤덤하게 박강현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지금껏 참고 있던 욕설을 결국 내뱉고 말았다.“너 지금 사람 말 못 알아듣는 병X 같아.”진현우는 자칫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항상 부드럽던 이시연이 이런 식으로 욕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유태경이 현장에 없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다. 만약 5초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는 무조건 영상을 찍었을 것이다.방강현은 얼빠진 표정으로 물었다.“뭐라고?”“넌 촬영하든 말든 알아서 해! 그리고 조민아 씨는 연기력이 모자라. 누가 와서 난리 쳐도 소용없으니까 데리고 돌아가.”“너...! 너 정말...!”박강현은 인상을 썼다. 이 순간 이시연 때문에 조민아가 탈락했다는 생각은 더욱 굳히게 되었다.“그래, 난 양심 없는 사람이야. 좋게 말할 때 알아듣지도 못하는 멍청한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빨리 돌아가. 시끄러워 죽겠어.”그녀는 아주 빠르게 말했다. 그러나 말을 마치고는 약간 불안하기도 했다.촬영장에서는 그녀가 아닌 윤철웅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녀에게는 박강현의 캐스팅 여부에 관여할 능력이 없었다.박강현도 잘 알고 있었기에 당당하게 윤철웅을 바라봤다.“감독님도 들었죠? 제가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나요?”윤철웅은 눈을 피하며 대답하지 않았다.솔직히 그는 안필훈이 박강현을 추천한 것이 놀라웠다. 그는 그냥 박강현이 연기도 괜찮게 하고, 인기도 괜찮게 높아서 받아들였을 뿐이다.“감독님.”진현우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배우도 직업에 속하지 않나요? 직업이라면 기본적인 책임감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그의 느긋한 말투에는 유태경 못지않은 압도감이 있었다. 그는 차갑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다들 유한 그룹의 대우가 좋다고 해요. 하지만 저희 유 대표님도 바보는 아니에요. 책임감이 없는 직원은 애초에 우리 그룹에 들어오지도 못하니까요. 유한 그룹의 자금으로는 영화 한 편은 물론이고, 최근 촬영되고 있는 모든 영화에도 얼마
윤철웅은 투자자의 말에 흔들릴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유한 그룹이 제안한 금액은 너무나도 많았다.아직은 박강현의 캐스팅 소식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그리고 계약서도 체결하지 않았다. 안필훈의 추천이라 오디션도 보지 않았으니 배우를 바꾸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다.이시연은 윤철웅의 고민을 보아 냈다.처음에 윤철웅은 박강현은 남길 생각이었다. 어찌 됐든 안필훈의 체면을 봐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강현를 남기려면 조민아도 캐스팅해야 한다는 생각에 급 생각이 바뀌었다.지금 고민하는 것은 안필훈에게 전달할 말이었다. 유한 그룹의 투자금은 아주 좋은 계기가 되어줬다.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어 보였다.“강현 씨.”윤철웅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후배님 말이 맞아요. 조민아 씨는 연기력이 부족해요. 이번 촬영에서는 캐스팅할 수 없을 것 같네요. 다음번에는 맞는 캐릭터가 있는지 잘 봐줄게요. 강현 씨를 봐서라도요. 그리고 강현 씨는... 저도 같이 일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조금 안 좋네요. 저희 유한 그룹의 투자금이 필요해요. 저뿐만 아니라 촬영팀을 생각해서라도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난 돈을 택했으니 너희들은 꺼지라는 말이었다.박강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일이 이렇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그의 안색은 아주 어두웠다. 모든 분노와 증오는 역시나 이시연에게 향했다.“넌 아주 좋겠다. 이제 만족해?”‘이 새X 또 왜 이래? 내가 뭘 어쨌다고?’조민아는 막연한 표정을 지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상황은 그녀가 예상하던 것과 너무 달랐다.윤철웅이 나서서 거절했고, 또 진현우까지 있으니 이시연은 두려울 게 없었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조민아에게 말했다.“민아 씨 말대로 나대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요?”조민아는 억울하다는 듯이 빨개진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시연이 시선을 보내자 진현우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시연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것도 그에게는 영광이었다.그녀와 유태경의 관계를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이시연은 시선을 숙였다. 긴 눈초리는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분위기도 따라서 차가워졌다.“이시연!”박강현이 이를 악물었다.“민아는 내 동생이야.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이렇게 말하며 그는 조민아를 살짝 풀었다. 그러자 조민아가 긴장한 표정으로 거리를 벌리며 울먹였다.“언니가 우리를 그렇게 볼 줄 생각도 못 했어요. 나한테 악의 품을 정도일 줄 알았으면 안 그랬을 거예요. 오빠까지 이런 일 당할 건 없잖아요. 나는 촬영 못 해도 상관없어요. 근데 오빠까지 끌어들이지 마요.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보복을 그만둘 건데요?”이 말을 듣고 윤철웅과 진현우는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 들어줄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조민아가 울먹이는 것을 듣고 박강현은 또다시 가슴이 아팠다. 그는 죄책감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녀를 데리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 직면할 일도 없었다. 동시에 이시연은 완전한 악인이 되어버렸다.윤철웅이 대신 설명하려고 할 때 이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둘이 남매라고? 나랑 정혁 오빠도 마찬가지야.”그녀는 피식 웃으며 태연하게 말했다.사실인데도 박강현은 전혀 믿지 않았다. 그는 이시연이 바람을 피웠다고 단정 지었다.“내가 그런 말에 속을 정도로 멍청해 보여? 둘이 어떻게 남맨데?”“입양이라고 해도 남매는 남매지. 서류도 없는 너랑 민아 씨는 끼지도 못해. 나한테 오빠가 있는 것만 아니었어도 세상 남매가 다 너랑 민아 씨 같은 줄 알았을 거야.”진현우와 윤철웅도 박강현과 조민아의 모습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그러기에 박강현이 얼마나 역겨운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았다.조민아는 복잡한 눈빛으로 이시연을 바라봤다. 고아 주제에 유한 그룹은 가당치도 않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박강현도 똑같이 생각했다.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허은수를 보내서 협박하고, 이번에는 또 더 더러운 수작을 쓴다고 말이다.이토록 양심 없는 사람이라면 유한 그룹을 이용하지 않고 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의 말은 이성 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