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아는 이시연의 팔을 잡고 눈물을 뿜어냈다.“내가 언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요? 왜 나한테 이래요? 왜 내 인생을 망치려는 거냐고요? 언니 강현 오빠를 좋아하는 거 알아요. 그래서 나 항상 양보하고 있었잖아요. 친구로서 나도 강현 오빠가 언니를 좋아하는 거 알아요. 그래서 계속 오빠한테 대신 설명해 달라고 했어요. 믿지 않은 건 언니 탓이에요. 나한테 이런 짓을 해서 무슨 이득이 있어요? 오빠가 얼마나 더 양보해야겠냐고요? 날 보고 싶지 않으면 솔직하게 말해요. 내가 강현 오빠랑 있는 게 싫으면 그냥 말로 해달라고요. 얼마든지 물러날 수 있어요. 일 갖고 장난질만 치지 마요, 제발!”조민아는 세상 억울한 일을 당한 것처럼 울었다. 눈물 자국에 눌어붙은 머리카락 때문에 더욱 불쌍해 보였다.그녀의 울음소리에 박강현은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그래서 한껏 속상한 표정으로 그녀를 부축했다.이시연은 인상을 쓰며 조민아의 손을 뿌리치고는 목을 매만졌다. 뽀얀 피부에 빨간 자국은 유난히 선명했다.이번에 박강현은 정말 그녀를 죽일 기세였다. 그녀의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하긴, 조민아가 이렇게 울고 있지 않은가?“이시연, 너 대체 뭘 원하는 거야?”박강현이 이를 악물었다. 조민아는 여전히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마지막 희망이라도 잡는 듯 박강현을 꽉 잡았다.“왜! 나한테 왜 그래요!”박강현은 조민아 때문에 속상할 수록 이시연이 미웠다. 그는 다시 이시연의 목을 졸라서 잘못을 인정하게 하자고 했다.이때 이시연이 피식 웃으며 그의 뺨을 때렸다.“내가 만만해?”박강현은 순간 넋이 나갔다. 조민아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소리를 지르더니 박강현의 얼굴부터 살폈다.이시연은 더 이상 두 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자세를 숙였다. 그리고 흩어진 담향목 염주를 줍기 시작했다.담향목의 무늬는 전부 달랐다. 거친 것도 있고 부드러운 것도 있는 것이 점점 늘어간 기술을 드러냈다.그녀의 왼쪽 손가락에는 아직도 흉터가 남아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
박강현은 겉보기에는 거리감이 느껴져도 속은 따듯한 사람이라고 알려졌다. 또 여자를 아주 존중하는 귀공자라는 말도 있었다.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윤철웅이 먼저 박강현에게 물었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후배님 목은 또 왜 그래요? 무슨 오해라도 있었어요?”박강현은 진현우가 누군지 몰랐다. 그가 대뜸 조롱하는 것을 듣고 그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하지만 그는 똑똑했다. 윤철웅이 진현우에게 공손한 것을 보고 그는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오해는 없어요.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고 있었어요.”그 말인즉슨 남은 끼어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특히 진현우가 말이다.박강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진현우를 노려봤다. 그런데도 진현우는 신경 쓰지 않고 이시연에게 깨끗한 손수건을 건넸다.그녀는 창백한 손을 뻗어서 받았다. 표정은 그가 왜 갑자기 나타났는지 의아한 듯해 보였다.‘설마 아저씨도 왔나?’진현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감독님, 대표님께서 촬영팀이 문제없으면 투자 건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하셨어요. 근데 그 전에 박강현 씨도 촬영팀에 속해 있는지 묻고 싶네요.”윤철웅은 순간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강현 씨는 안필훈 선생님 추천으로 왔어요. 배역도 거의 정해졌다고 보면 돼요.”“그럼 이분은요?”진현우는 또 박강현의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조민아를 바라봤다.그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눈에 박강현은 얼굴도 유태경보다 못하고, 몸매도 유태경보다 못하고, 사회적 지위도 유태경보다 못했다. 바람까지 피우는 남자를 이시연이 왜 좋아했는지 이해가 안 됐다.‘대표님이랑 시연 씨가 그런 사이만 아니었어도 참 잘 어울렸을 텐데.’윤철웅은 울상이 된 조민아를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이분은 아니에요.”그 순간 윤철웅은 어딘가 이상함을 눈치챘다.조민아는 박강현의 추천으로 왔다. 그리고 이시연은 캐스팅을 도운 조감독이다.‘설마 후배님 때문에 조민아 씨가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후배님이랑은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
그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이시연에게 집중되었다. 그녀는 덤덤하게 박강현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지금껏 참고 있던 욕설을 결국 내뱉고 말았다.“너 지금 사람 말 못 알아듣는 병X 같아.”진현우는 자칫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항상 부드럽던 이시연이 이런 식으로 욕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유태경이 현장에 없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다. 만약 5초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는 무조건 영상을 찍었을 것이다.방강현은 얼빠진 표정으로 물었다.“뭐라고?”“넌 촬영하든 말든 알아서 해! 그리고 조민아 씨는 연기력이 모자라. 누가 와서 난리 쳐도 소용없으니까 데리고 돌아가.”“너...! 너 정말...!”박강현은 인상을 썼다. 이 순간 이시연 때문에 조민아가 탈락했다는 생각은 더욱 굳히게 되었다.“그래, 난 양심 없는 사람이야. 좋게 말할 때 알아듣지도 못하는 멍청한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빨리 돌아가. 시끄러워 죽겠어.”그녀는 아주 빠르게 말했다. 그러나 말을 마치고는 약간 불안하기도 했다.촬영장에서는 그녀가 아닌 윤철웅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녀에게는 박강현의 캐스팅 여부에 관여할 능력이 없었다.박강현도 잘 알고 있었기에 당당하게 윤철웅을 바라봤다.“감독님도 들었죠? 제가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나요?”윤철웅은 눈을 피하며 대답하지 않았다.솔직히 그는 안필훈이 박강현을 추천한 것이 놀라웠다. 그는 그냥 박강현이 연기도 괜찮게 하고, 인기도 괜찮게 높아서 받아들였을 뿐이다.“감독님.”진현우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배우도 직업에 속하지 않나요? 직업이라면 기본적인 책임감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그의 느긋한 말투에는 유태경 못지않은 압도감이 있었다. 그는 차갑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다들 유한 그룹의 대우가 좋다고 해요. 하지만 저희 유 대표님도 바보는 아니에요. 책임감이 없는 직원은 애초에 우리 그룹에 들어오지도 못하니까요. 유한 그룹의 자금으로는 영화 한 편은 물론이고, 최근 촬영되고 있는 모든 영화에도 얼마
윤철웅은 투자자의 말에 흔들릴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유한 그룹이 제안한 금액은 너무나도 많았다.아직은 박강현의 캐스팅 소식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그리고 계약서도 체결하지 않았다. 안필훈의 추천이라 오디션도 보지 않았으니 배우를 바꾸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다.이시연은 윤철웅의 고민을 보아 냈다.처음에 윤철웅은 박강현은 남길 생각이었다. 어찌 됐든 안필훈의 체면을 봐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강현를 남기려면 조민아도 캐스팅해야 한다는 생각에 급 생각이 바뀌었다.지금 고민하는 것은 안필훈에게 전달할 말이었다. 유한 그룹의 투자금은 아주 좋은 계기가 되어줬다.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어 보였다.“강현 씨.”윤철웅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후배님 말이 맞아요. 조민아 씨는 연기력이 부족해요. 이번 촬영에서는 캐스팅할 수 없을 것 같네요. 다음번에는 맞는 캐릭터가 있는지 잘 봐줄게요. 강현 씨를 봐서라도요. 그리고 강현 씨는... 저도 같이 일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조금 안 좋네요. 저희 유한 그룹의 투자금이 필요해요. 저뿐만 아니라 촬영팀을 생각해서라도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난 돈을 택했으니 너희들은 꺼지라는 말이었다.박강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일이 이렇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그의 안색은 아주 어두웠다. 모든 분노와 증오는 역시나 이시연에게 향했다.“넌 아주 좋겠다. 이제 만족해?”‘이 새X 또 왜 이래? 내가 뭘 어쨌다고?’조민아는 막연한 표정을 지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상황은 그녀가 예상하던 것과 너무 달랐다.윤철웅이 나서서 거절했고, 또 진현우까지 있으니 이시연은 두려울 게 없었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조민아에게 말했다.“민아 씨 말대로 나대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요?”조민아는 억울하다는 듯이 빨개진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시연이 시선을 보내자 진현우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시연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것도 그에게는 영광이었다.그녀와 유태경의 관계를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이시연은 시선을 숙였다. 긴 눈초리는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분위기도 따라서 차가워졌다.“이시연!”박강현이 이를 악물었다.“민아는 내 동생이야.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이렇게 말하며 그는 조민아를 살짝 풀었다. 그러자 조민아가 긴장한 표정으로 거리를 벌리며 울먹였다.“언니가 우리를 그렇게 볼 줄 생각도 못 했어요. 나한테 악의 품을 정도일 줄 알았으면 안 그랬을 거예요. 오빠까지 이런 일 당할 건 없잖아요. 나는 촬영 못 해도 상관없어요. 근데 오빠까지 끌어들이지 마요.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보복을 그만둘 건데요?”이 말을 듣고 윤철웅과 진현우는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 들어줄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조민아가 울먹이는 것을 듣고 박강현은 또다시 가슴이 아팠다. 그는 죄책감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녀를 데리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 직면할 일도 없었다. 동시에 이시연은 완전한 악인이 되어버렸다.윤철웅이 대신 설명하려고 할 때 이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둘이 남매라고? 나랑 정혁 오빠도 마찬가지야.”그녀는 피식 웃으며 태연하게 말했다.사실인데도 박강현은 전혀 믿지 않았다. 그는 이시연이 바람을 피웠다고 단정 지었다.“내가 그런 말에 속을 정도로 멍청해 보여? 둘이 어떻게 남맨데?”“입양이라고 해도 남매는 남매지. 서류도 없는 너랑 민아 씨는 끼지도 못해. 나한테 오빠가 있는 것만 아니었어도 세상 남매가 다 너랑 민아 씨 같은 줄 알았을 거야.”진현우와 윤철웅도 박강현과 조민아의 모습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그러기에 박강현이 얼마나 역겨운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았다.조민아는 복잡한 눈빛으로 이시연을 바라봤다. 고아 주제에 유한 그룹은 가당치도 않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박강현도 똑같이 생각했다.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허은수를 보내서 협박하고, 이번에는 또 더 더러운 수작을 쓴다고 말이다.이토록 양심 없는 사람이라면 유한 그룹을 이용하지 않고 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의 말은 이성 잃
박강현은 속상한 듯 조민아를 품에 안고 토닥였다. 그리고 이시연과 말할 때와 전혀 다른 말투로 위로했다.“이게 다 이시연 탓이야. 너랑은 상관없어. 이런 곳에서 나도 연기하고 싶지 않아. 감독도 제정신이 아니잖아. 남아 봤자 기분만 더러울 거야. 넌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 오늘 당한 일은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복수할게.”조민아는 감동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금방 다시 울먹이며 걱정했다.“근데 언니랑 헤어진 거 진짜 발표할 거예요? 그러면 만회할 방법이 없는 거 아니에요?”박강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넌 단순해서 이시연의 속셈을 알지 못해. 내가 양보할수록 이시연은 점점 나대려고 할 거야. 그렇다면 아예 기회를 남겨주지 않는 게 낫지. 발표해야 내 결심도 보여줄 수 있어. 나도 이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사람들이 알고 나면 내 체면을 봐서 걔 일 도와주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러면 당연히 내 곁으로 돌아오겠지. 내가 꼭 너 대신 사과를 받아낼게.”조금 전까지 득의양양해 있던 조민아는 ‘내 곁으로 돌아오겠지’라는 말을 들은 순간 얼어붙었다.‘이게 무슨 뜻이야? 아직도 이시연이랑 만나고 싶은 건가?’...박강현이 떠난 다음 이시연과 진현우의 안색이 전부 어두워졌다. 윤철웅의 안색만 복잡해 보였다.그는 박강현과 별로 친하지 않았다. 그저 소문으로만 접했을 뿐이다. 최근 인기가 높은 박강현에 관해서는 좋은 소문밖에 없었다. 아주 스윗한 사람이라고 말이다.하지만 오늘 그의 생각은 진현우와 똑같았다. 역시 소문은 믿을 것이 안 됐다.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만약 정말 발표한다면 후배님한테 불리한 거 아니에요? 그쪽은 팬도 많은데... 너무 충동적으로 일을 벌인 것 같아요.”진현우도 복잡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정말 부정적인 여론이 생긴다면 아무리 유한 그룹이 나선다고 해도 잠재우기 어려울 것이다. 이 일은 빨리 유태경에게 말해야 했다.이렇게 생각하며 그는 입을 열었다.“감독님, 촬영팀 구경 잘했어요. 이제 투자금
“형, 시연 누나 일 진짜 발표할 거예요?”김성민은 주저했다. 그러자 박강현이 짜증스럽게 넥타이를 풀며 말했다.“내 말 못 알아들었어?”김성민은 마른침을 삼키며 용기 내서 말했다.“영화 책임자 쪽에서 아직도 압박하고 있어요. 만약 지금 발표한다면 저희한테 안 좋은 영향을 줄 거예요. 저는 그게 걱정돼서...”김성민의 말에 박강현은 더욱 짜증이 났다. 그도 다 아는 일이었기 때문이다.영화 책임자는 그렇다 쳐도, 그가 지금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 함께 해준 이시연과 헤어졌다는 자체만으로도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그도 오랫동안 만들어 온 이미지를 하루아침에 잃고 싶지 않았다.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서류 더미 속에서 대본 하나를 빼냈다.“이 대본 민아한테 보내줘.”일단은 조민아를 위로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녀가 계속 속상해하지 않도록 말이다. 이시연 일은 후에 다시 처리해도 늦지 않았다.“참, 그리고 영화 투자자한테 연락해 봐. 내가 만나자 했다고 해.”김성민은 대본을 힐끗 봤다. 회사에서 투자한 여자주인공을 위주로 한 영화였다.그는 머리를 갸웃했다. 박강현이 조민아에게 너무 잘해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이시연이라고 해도 화가 날 것 같았다. 자신의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에게 지극정성인 모습을 견딜 사람은 없을 것이다.“뭐해? 빨리 보내주지 않고!”박강현이 언성을 높였다. 지금 그는 세상 모든 것이 거슬리는 상태였다.김성민은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을 도로 삼켰다. 그는 짧게 대답하고 나서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이튿날, 박강현은 오전 10시에 이시연이 떠난 소식을 발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회사 계정은 아무리 해도 로그인되지 않았고, 급기야 정지까지 먹었다.화가 치밀어 오른 그는 아예 개인 계정으로 발표하려고 했다. 개인 계정은 로그인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계시할 수 없는 상태였다.“시X!”안 그래도 화가 났던 그는 더욱 화가 났다. 그는 아예 핸드폰을 바닥으로 내던졌다.유한그룹, 대표이사실.유태경은 고개를 숙여서 서류를
이시연은 순간 총알을 장전해 놓고도 쏠 곳이 없는 것 같은 허무함을 느꼈다.요즘 촬영팀이 바쁘다 보니, 집에서 지내면 이동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그래서 그녀는 아예 촬영팀에서 마련해 준 호텔에 머물기로 했다.심심했던 그녀는 침대에 누워서 한참 뒤척였다. 침대의 품질은 별로 좋지 못했다. 삐걱 소리가 나는 건 그렇다 치고, 너무 꺼져서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맞은 것처럼 아팠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쑤시고, 그냥 온몸이 불편했다.이튿날 일어난 그녀의 얼굴에는 생기가 별로 없었다. 윤철웅이 걱정돼서 한마디 건넸지만, 그녀는 말할 기분도 아니라 손만 흔들었다.윤철웅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날 박강현이 떠난 후, 그는 안필훈에게 가서 둘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은데 왜 촬영팀에 함께 온 건지 물어보았다.그제야 그는 그 두 사람이 연애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시연이 기운 없이 보이는 걸 보고는, 그녀가 이별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윤철웅은 쉬는 동안 잠깐 눈을 붙인 이시연에게 시선을 던졌다가, 그날 자신이 첫 번째 목격자였던 일을 떠올렸다. 그는 뒤늦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진현우나 유한 그룹은 박강현과 별다른 갈등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현우는 박강현의 캐스팅을 명확히 반대했다.윤철웅도 원래는 이시연이 유정혁과 남매라고 했던 말을 박강현을 자극하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현우의 태도를 곰곰이 떠올려 보니 마냥 거짓말 같지도 않았다.“흡...”윤철웅이 입술을 깨물며 턱을 만졌다.진현우는 이시연의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유태경의 비서로서,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당연히 반박했을 것이다.유한과 같은 재벌가는 사소한 일로도 큰 주목을 받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입양 딸에 관한 소식이 하나도 없을 수 있는가? 물론 소식이 없다고 해서 사건 자체가 없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우리 후배님 정말 재벌가 출신이었던 건가?’이시연은 촬영팀에서 며칠 동안 바쁘게 지냈다. 하지만 호텔 침대에는 여전히 적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