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화면에는 소개 정보가 길게 문자로 와 있었다. 지예는 대충 훑어보면서 가장 눈에 띄는 핵심 정보를 포착했다. ‘결혼 후에는 각자 더치페이?’ ‘더 고민할 필요도 없네.’ 지예가 말했다. “이거 정말 결혼 소개팅하는 상대 맞아? 룸메이트를 구하는 게 아니고?” 그녀는 감정상담사이다. 하지만 때때로 중매인이라고 오해받기도 했다. 지예는 우선 자신의 역할에 대해 설명을 하지만 보수만 괜찮으면 기꺼이 의뢰를 받았다. ‘뭐 어차피 과정이야 비슷한 면도 없지 않으니까.’ 수여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대가 어디 있어? 난 아무리 봐도 답이 안 나오거든? 근데 지금 연애에 미친 내 사촌 여동생은 결혼을 못해 안달이라는 거야.” 수연의 사촌 여동생은 이모의 딸로 내성적이고 느긋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결혼은 서두르려고 했다. 수연은 그것이 너무나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지예에게 상대에 대해 물어본 것이다. 지예는 다시 한번 조용히 소개 문자를 읽어보았다. ‘더치페이 말고도 자기 대학 입시 성적을 자랑이라고 써 놓다니.’ ‘그거참.’ ‘특이한 사람들을 많이 봐오긴 했지만 올해는 특히 많네.’ “결혼하면 네 사촌 여동생은 정말 한평생 후회할 거야.” 지예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휴대폰을 닫았다. 그녀는 일생에 단 한 번 사람을 잘못 봤고 이런 실수를 두 번 다시 저지를 수 없었다. ‘요즘 남자들은 함부로 믿으면 안 돼.’ ‘그건 누구도 예외는 없어.’다음날 아침. 지예는 계속 방을 찾아다녔지만 결과는 어제의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는 이미 몇몇 재벌가들에 의해 집단적으로 방해를 받았다. 경해시에 있는 한 그녀에게 방을 임대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지예는 편의점에 앉아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하필이면 보고 있던 휴대폰에서 자동으로 전송한 뉴스가 그녀의 신경을 더 거슬리게 했다. [경해뉴스: 유우진 대표가 바쁜 일과에도 병원에서 계속 자신의 애인을 보살펴서 로맨티스트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저 지예 씨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형을 꼬셨다고 하겠지.’ ‘그럼 결국 손해 보는 건 지예 씨일 테고.’ “급할 거 없어.” 진철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이어서 말했다. “내가 먼저 좋아한 거야. 다른 언론들이 괜히 지예 씨를 공격하는 걸 허락할 수 없지.” ‘지예 씨는 행복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형은 그렇게 느긋하게 있는 거야? 도중에 지예 씨를 놓칠 수도 있는데? 자신 있나 보지?” “그럴 리 없어.’ 진철이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럴 리 없기는? 지예 씨는 사람 보는 눈이 좋지 않잖아. 형 같은 대단한 사람을 놔두고 쓰레기 같은 놈을 다시 죽도록 사랑할 수도 있다고. 그러다 만약 정말 그놈과 도망이라도 가면? 나중에 형은 울지나 말라고.” 진철은 고개를 떨구고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불안을 억눌렀다. “지예 씨가 우진이와 사귄 건 단지 사고일 뿐이야. 한창 철이 없을 때 벌어진 일이라고.” 진철은 자신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 사람을 시켜 지예를 조사했다. 그중에는 지예와 우진 사이의 소소한 추억들도 포함되었는데 진철은 그 모든 걸 잘 알고 있었다. ‘사랑했던 것도 진실이고, 지금 사랑하지 않는 것도 진실이야.’ 자신의 눈앞에서 지예의 결단을 똑똑히 본 진철이었다. ‘효신이의 가정은 절대 실현될 수 없어.’ ‘지예 씨처럼 줏대 있는 사람을 절대 일반 사람과 비교하면 안 되지.’ 효신은 좀 더 진철을 도발하고 싶었지만 진철의 한마디에 입을 다물었다. “내 얘기는 그만하고, 너와 네 제자는? 어떻게 된 거야?” ... 해가 졌다. 저녁 8시, 진철은 약속 장소로 갔다. 오늘 그는 특별히 더 잘 꾸몄다. 검은색 셔츠 위로 검은색 조끼를 받쳐 입었고, 말끔한 헤어스타일에 금테 안경은 더욱 그를 점잖고 산뜻하게 보이게 했다.레스토랑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의 이목이 진철에게로 쏠렸다. 지예 역시 놀란 눈으로 어색하게 진철을 불렀다. “부 선생님.” 진철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고 의자를 당겨 그녀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의 진철의 답을 들은 지예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녀는 임대가격을 인상하는 것은 봤어도 자발적으로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부 선생님이 지금 제정신이야? 아니면 내가 제정신이 아닌가?’ 진철이 이어서 말했다. “제 친구는 딱 60만 원이 부족해요. 만약 액수가 커져서 계산이 맞지 않으면 나중에 아내에게 엄청 혼날 겁니다.” 진철의 표정이 너무 담담해서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았다. ‘황당무계하지만 진짜일 수도 있겠어.’ ‘재벌집 사람이 욕심이 없을 수도 있잖아?’ 지예는 억지로 자신을 설득했고 더 이상 진철의 호의를 거절하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재 그녀는 경해시를 떠날 계획이 없었다. 그날 밤 지예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집주인으로 온 효신은 어리둥절해했다. 그래도 티는 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효신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흰 연기가 시야를 흐리자 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난 여태 왜 내게 이런 집이 있는지 몰랐지? 진철이 형, 월세가 60만 원? 왜 그냥 공짜로 준다고 하지.” 경해시라는 도시에서 60만 원에 세를 산다는 건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진철이 그를 보고 말했다. “넌 쓸데없는 소리나 하지 마.” “걱정 마. 내 입 정말 무겁잖아. 그런데... 형수님 직업이 무슨 감정상담사 던데?” 효신은 이전에 이런 직업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감정적인 문제를 겪으며 걱정을 많이 해 하루에 두세 갑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지예가 감정상담사라는 말을 듣고 효신은 좋은 생각이 났다. “음, 네가 지예 씨에게 도움을 받는다면...” 진철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효신이 말을 가로챘다. “걱정 마. 내가 형수님께 비용을 더 드리면 되지. 어차피 모두 한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누가 벌어도 좋은 거 아니야?” ... 큰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지예는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밤새 이삿짐센터를 불러 짐을 모두 정리했고 끝
오늘은 기온이 30도가 넘어서 날씨가 괜히 뜨겁다. 그래서 지예는 낮에 굳이 외출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수연과 저녁 약속을 잡고 밖을 쳐다보았다. 큰 창밖에는 푸른 바다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지예는 태블릿을 가지고 푹신한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는 창밖을 향해 한 장의 사진을 찍어 카카오스토리에 올렸다. 첫 번째로 ‘좋아요’를 누른 사람은 진철이었다. 지예는 한참 동안 그 이름을 쳐다보다가 수연이 보낸 인터넷 생방송 링크를 받고 정신을 차렸다. 인터넷 생방송에서 수연은 지금 댓글의 문의 사항에 답하고 있었다. 지예가 살펴보니 거의 이혼과 관련된 문제였다. “먼저 그 쓰레기 같은 놈의 불륜 증거를 수집한 다음 실력이 좋은 변호사를 찾으시면 최대한 위자료를 받으실 수 있어요.” “내연녀의 아이가 상속권을 갖는 것은 합법이에요.” 잠시 댓글 창을 멍하니 보다가 한 줄기 생각이 지예의 뇌리를 스쳤다. ‘그래, 나도 감정상담사로 1인 방송을 할 수 있잖아.’ 지예는 자신의 생각을 수연에게 말했고 그녀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식당에는 사람이 많았다. 지예는 미리 작은 룸을 예약했다. 수연은 물 반 컵을 마시고 상의의 단추를 풀자 가슴이 보일 듯 말 듯했다. “지예야, 네가 하고 싶으면 대담하게 해 봐. 지금 1인 방송이 아주 인기야. 특히 감정적인 소재는 특히 더 그래.” “전에 동료한테 들었는데, 요즘 여자애들은 자기 감정을 이해하려고 인터넷에 돈 쓰는 걸 좋아한대. 점 보거나 타로 카드 같은 거 말이야.” 지예도 알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할 때 이런 개인 방송 계정을 만들고 싶었었다. 다만 우진이 그녀가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결정을 보류했다. “지금 어떤 플랫폼을 계약할지 고민 중인데... 아무래도 경해방송은 힘들겠지?”수연은 말뜻을 이해했다. “이따가 내 친구에게 아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볼게.” 테이블 위의 음식들은 모두 수연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수연은 하루 종일 배가 고팠는데도 먹다 보
오미수가 기세등등하게 뛰어들어왔다 그녀는 지예를 확인하고 바로 뺨을 한 대 갈기려고 했다. 하지만 지예가 손목을 잡는 바람에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잡힌 손목이 아픈 오미수는 화가 나서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에게서 재벌집 귀부인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기지예! 지금 어른을 막대하는 거야? 왜 윤희를 때렸으니 이번엔 나도 때리려고?” 오미수은 딸인 윤희를 위해 지예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들의 연락처는 모두 지예에 의해 차단당해서 궁여지책으로 오미수는 사설탐정을 직접 고용해 지예의 행방을 조사했다. 오늘 겨우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빨간 신호등도 무시하고 재빨리 달려왔다. 오미수가 소리치며 욕설을 퍼부어도 지예는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오미수의 손목을 세게 뿌리치며 지예의 예쁜 눈매에 비아냥이 감돌았다. “아줌마, 외출하기 전에 약 먹는 거나 잊지 마세요.” 욕하지 않고 모욕을 주는 게 욕설의 최고 경지이다. ‘이 아줌마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게 미친개가 아니면 뭐야?’ 수연은 재빨리 걸어가 객실의 문을 닫아 바깥 구경꾼들의 시선을 차단했다. 그러자 왠지 모르게 오미수가 당황했다. 하지만 그녀는 더 화가 났다. “기지예, 네가 이렇게 배은망덕한 년인 줄 알았다면 애초에 우리가 네가 죽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말았어야 했어.” 화가 난 오미수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그녀의 잘 관리된 얼굴은 증오로 일그러졌다. 지예는 이 말을 처음 듣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의아해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오미수를 떠보았다. “그러니까 아줌마는 내가 당신 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단 말이에요?” ‘윤희가 돌아오기 전까지 기씨 가문은 내가 그들과 혈연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몰랐잖아.’ ‘그런데 왜 자꾸 이런 소리를 하는 거지?’ ‘자꾸 들으니까 뭔가 수상하네.’ 오미수의 말로 지예의 직감은 더욱 강해졌다. “넌 가짜야! 윤희야말로 우리의 진짜 딸이고.” 오미수는 아주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우리가 너를 키워준 게
오미수는 테이블 위의 모든 그릇과 젓가락을 바닥으로 쓸어내렸고 순간 국물이 튀어 지예의 바짓가랑이를 더럽혔다. 수연은 아까부터 문을 지키고 있어서 다행히 이 재난을 면했다. “기지예, 넌 이제 유씨 가문과 아무런 사이도 아니야. 내가 너라면 그냥 조용히 살겠어. 윤희가 아니었다면 아직 네가 경해시에 남아있을 수 있을 것 같아? ” ‘윤희는 늘 순하고 착한 여자애지.’ ‘20년 넘게 밖을 떠돌아다녔는데도 내게 인생을 빼앗긴 나를 관대하게 대해주는 걸 보면, 정말 마음씨가 착한 사람인 게 틀림없어.’ 지예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이런 가식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혀를 내둘렀다. “이제 자유의 몸으로 유씨 가문과 아무 관계도 없으면 다른 가문을 찾아 도움을 받으면 되죠.” 몇 초 동안 침묵이 흘렀고 오미수가 갑자기 다시 욕설을 퍼부었다. “염치없이, 어느 눈먼 사람이 네년 따위를 좋아해?” ‘욕이 점점 듣기 거북하네.’ 수연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지예는 그녀보다 빨리 직접 바닥에 떨어진 이미 사용한 휴지를 주워 오미수의 입에 쑤셔 넣었다. “우웩!” 욕설을 대신해 헛구역질하는 소리가 났다. 지예는 턱을 치켜들고 차갑게 오미수를 째려보았다. “입이 하도 더러워서 쓰레기통인 줄 알았어요.” ... ‘오늘 밤의 좋은 기분이 아줌마 때문에 모두 망가졌잖아.’ 지예는 조수석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수연이 안전벨트를 매면서 위로했다. “지예야, 너도 그런 사람 때문에 괜히 슬퍼하고 그러지 마.” “슬픈 게 아니라 생각을 하고 있어.” “어?” “내가 보기에 기씨 가문은 내가 자신들과 혈연관계가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거든?”지예의 말 한마디가 폭탄처럼 수연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고? 그럼 그 사람들은...” 수연은 예전에 재벌가의 암투를 보면서 모두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긴다고 생각했다. “기씨 가문이 왜 그랬을까?’ 지예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조만간 알게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지예와 우진에게 집중되었다. 지예가 바닥에 놓인 수표를 내려다보았는데 우진이 말했다. “돈 달라는 거 아니야? 돈 줬잖아. 네 친구를 데리고 꺼져.” 우진은 고택에서의 일을 거치면서 지예를 아주 증오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예의 얼굴을 보자마자 분노가 확 치밀어 올랐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지만 지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있는 수표를 주웠다. 수연은 갑자기 초조해졌다. “지예야...” 뒤의 말을 뱉기도 전에 이어지는 지예의 행동에 목이 막혔다. 지예는 “쫙”하고 수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우진은 화가 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기지예!” “유 대표, 저 귀 멀쩡하거든요? 좀 조용히 말씀해 주시죠.” 이 말을 하며 지예는 수표 조각을 허공에 뿌렸고 조각들이 흩어져 떨어졌다. 우진은 이런 모욕을 당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의 반응을 보고 지예는 너무 고소해하며 비웃었다. “유 대표, 설마 2억으로 이번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밤이 깊어져 네온사인이 더 반짝였다. 우진에게 지예의 차갑고 예쁜 얼굴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하하, 욕심이 정말 대단하네. 날 자극해서 돈을 더 받아 내겠다고? 야, 기지예 너 참 대단하다.” 지예는 그의 말을 바로잡았다. “유 대표, 당신은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거 같네요. 그쪽이 신호 위반을 해서 벌어진 사고인데 뭐 욕심? 말 좀 가려하시죠.” “수연이의 반응이 조금만 느렸어도 당신이 지금 여기 서 있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아, 유 대표의 목숨이 2억 정도의 가치가 있어서 그 돈을 주려고 한 건가?”지예의 현란하게 비꼬는 말이 우진을 더 화나게 했다. 그때 하필이면 윤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우진은 지예의 면전에서 전화를 받았다. 휴대폰 너머로 가냘프고 울음 섞인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진 씨, 저 너무 무서워요. 언제 와요?] 우진
추성훈의 소식을 듣고 지예는 방금 수연과 함께 응급실에서 나왔다. 수연은 창백한 얼굴에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지예에게 몸을 기댔다. 그녀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가 막혀서 욕을 하다가 바로 위장염이 왔다. “수연아, 일찌감치 내일 휴가 내고 집에서 하루 쉬어.” 수연은 힘없이 대답하고 나서 지예를 따라 수액실로 갔다. “추성훈, 그놈은 당해도 싸! 그래도 죽지 않았잖아? 정말 운이 좋다니까.” 수연이 욕설을 퍼부었고 지예도 맞장구를 쳤다. 수연이 안정을 되찾자 지예는 물을 사러 나갔다. 지예가 자판기 앞으로 가서 물 두 병을 사고 막 계산을 마쳤는데 뒤에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기지예, 성훈이 일이 너와 관계가 있어?” 우진은 방금 윤희의 병실에서 나왔다. 그 두 사람은 모두 추성훈과 잘 아는 사이였고 이미 경찰에게 많은 질문을 받았다. 의구심이 들던 우진은 직감적으로 지예는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추성훈이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지예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진은 이 사실을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 그는 직접 지예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어쩌면 이게 운명일지도? 지예와 어떻게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내 앞에 나타나다니.’ “내가 뭘 할 수 있을 거 같아?” 지예는 우진과 거리를 두고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성훈이가 네게 약을 먹였다고...” “이봐, 유 대표.” 지예는 그의 말을 끊었다. “당신은 이 모든 게 내 자작극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지예는 그날 추성훈에 대해 말한 후 보인 우진의 의심의 눈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7년을 사랑했는데 유우진이 이런 일을 가지고 내가 장난칠 거라고 생각하다니.’ ‘반면 윤희는 만난 지 불과 5년 만에 조건 없는 믿음을 얻었고.’ ‘이렇게 비교해 보니 내가 정말 아주 우습게 됐네.’ “난...” “유우진, 만약 이 일이 내가 한 자작극이라고 생각한다면 경찰 보고 나를 잡으라고 해.” ... 위층 난간. 방금 병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