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심기가 불편해지는 나태웅의 눈치를 살피던 왕여는 또 재빨리 구석으로 가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두 번을 시도하고 나서야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금방 막 잠에서 깬 듯한 얼떨떨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왕여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 했다.잔거야? 대표님이 알면 큰 일인데! "왜 공항에 안 와요?""제가 거기를 왜 가요?""수안 프로젝트, 정말 잊은거 아니죠?""이젠 협박 같은건 안 통해요. 저 출장 안 가요."왕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안지영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생각보다 당당하고 여유로운 그녀의 태도에 왕여는 다소 놀랐다. 이렇게까지 태도가 강경한 이유가 뭘까?언제는 배준우의 보복이 두려워서 장선명 곁으로 붙은거면서, 이제 와서는 꽤나 진심인 것 같았다."끊어요. 피곤해 죽겠으니까." 곧바로 안지영은 전화를 끊었다.그제서야 왕여는 더이상 어떤 방법을 써도 안지영이 공항에 오지 않을거라 생각이 들자 조심스레 나태웅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대표님...""안 온대?""네. 더이상 기다리지 않는게 좋을 것 같애요. 안 올 것 같습니다." 왕여는 내심 탄복했다. 일개 직원이 어찌 회사 대표한테 이렇게까지 반항을 할 수가 있다니.수안 프로젝트로 협박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안지영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훗. 이젠 세상 무서울게 없나봐.”나태웅은 여태 자신이 너무 잘해줘서 그런지 안지영이 자신을 더이상 무서워하지도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왕여도 잘 알고 있었다. 나태웅이 안지영을 데리고 출장 가려는건 장선명과의 약혼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을. 심지어 공항으로 오기 전, 장선명에게도 간단히 귀띔을 해주었다.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줄이야! 나태웅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그 모습에 왕여는 불안해졌다."그럼 이만 돌아갈까요?"어찌 됐든 안지영은 오지 않을 것이니 왕여는 계속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이때 나태웅이 입을 열었다."
약 한 시간의 시간이 흐른 뒤,장선명은 정말로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난 나태웅을 보고는 믿기지가 않았다.지금은 새벽 한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다. 바로 그때 나태웅이 다짜고짜 물었다."동성을 갖고 싶지 않은거야?""그딴 식으로 협박할 생각하지 마. 동성은 애초에 나한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거였어.” "그래? 그럼 M국은?"그러자 장선명이 순간 멈칫했다.그가 줄곧 M국을 맡아오긴 했지만, 그 중에서도 아직 보완이 안 된 구역들이 좀 있었다. 장선명은 나태웅의 꿍꿍이를 직접적으로 물었다. "너한테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안지영과의 약혼을 취소하면, 내가 도와줄게.""..."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갑자기 싸늘해졌고, 서로 아무 말 없이 눈을 마주치기만 했다.한참의 정적이 흐르고나서야 장선명이 비웃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여자가 너한테 그렇게나 중요한 사람이야?"하지만 나태웅은 가볍게 그 질문을 무시했다."내 제안 받아줄건지 아닌지만 말해."그는 굳이 자신의 마음을 실토하고 싶지 않았다."사람이 말이야, 건드려야 될게 있고 건드리면 안 될게 있어.” 나태웅의 얼굴은 그대로 굳어져버렸다. "만약 안지영도 진작에 너한테 마음이 있었다면, 애초에 배준우를 피해서 바로 너를 찾으러 갔을거야.""허, 너 혹시 그 여자가 정말 너한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 그 여자는 너를 찾기 전에 이미 진씨 가문도 찾아갔었고, 심지어 배준우와 연관되는 모든 사람들을 찾아갔었어.""아무리 급하고 흥분돼도 없었던 일을 지어 내면서까지 말하지 마.”"그럼 너는 여태 안지영이 너한테 진심이었다고 생각한거야?" 나태웅은 직설적으로 장선명을 비꼬았다. 그의 말대로, 안지영이 장선명을 찾아간건 당시 급한 마음에 내린 결정이었다.그리고 그 사이에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실은 장선명도 잘 알고 있었다."어차피 곧 나랑 약혼할 사이인데, 차라리 네가 가서 직접 물어봐. 안지영이 정말 싫다고 하면 나도 더이상 강요하지 않을게."나태웅의 위협에도
거듭되는 장선명의 조롱에 나태웅은 점점 얼굴이 굳어졌다."또 할 말 있어? 곧 두 시가 다 돼가. 난 얼른 자고 싶은데.""네가 이렇게 일찍 자는 사람이라고?""앞으로는 우리 약혼녀를 위해서라도 나쁜 습관은 고쳐야지."더이상 화를 참을 수가 없었던 나태웅은 그의 대답을 무시하고는 문을 박차고 나섰다.곧바로 차를 타고 도로를 달렸지만,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왕여는 무거워진 그의 안색을 보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장선명 쪽에서는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나요?"왕여는 분명히 나태웅이 갖은 협박으로 장선명을 압박했을거라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그의 얼굴을 봐서는, 협의가 딱히 순조롭지는 않았던 것 같다.안지영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구는 사람이 또 있었다니, 누가 약혼남 아니랄까 봐.나태웅이 말한 조건은 장선명을 유혹하기에는 충분하긴 했지만, 그는 그렇게 쉬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게 오늘 밤, 나태웅은 아무런 성과도 얻어내지 못했다.일이 단단히 꼬인 그는 화를 낼 기력도 없어 집에 가는 길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이튿날, 전에 안지영이 신청했던 휴가는 단지 약혼식 전날의 휴가였기에 오늘 그녀는 하루 더 출근해야 했다.정식 휴가는 내일부터다.아침 일찍 회사에 도착한 그녀는 어젯밤에 일찍 잔 덕에 매우 활기차보였다.그런데, 재수 없게도 엘리베이터에서 잔뜩 화가 난 나태웅을 만나 크게 당황했다. "대, 대표님? 출장 가신거 아니었어요?" 안지영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어젯밤 왕여가 수십 통의 전화를 걸어왔는데, 그만큼 중요한 업무라면 지금쯤은 당연히 유럽에 있을거라 생각했다. 근데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거지? 안지영의 물음에 나태웅은 화를 내지도 않고 그녀를 노려보기만 했다.그 눈빛은 안지영의 눈을 순간 피하게 만들었다. 설마, 내가 또 뭘 잘못한건가?그리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저... 나태현 대표님께서 저의 휴가를 허락해주셨기에 전 정당한 이유로 출장을 거부한겁니다.”틀린 말은 아니
안지영은 정말 하루 빨리 나태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하지만 그의 협박은 끊이지 않았다."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당장 장선명이랑 파혼해.""네?"파혼?이게 나태웅 당신이랑 뭔 상관인데?안지영은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아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파혼이라뇨? 제 약혼이 회사에 뭔 영향이라도 줬나요?”그녀는 멍하니 나태웅을 바라보았다.하지만 그의 날카로운 눈빛에 이내 기가 죽어 눈을 재빨리 피했다.그리고 마음속으로는 확신했다. 나태웅 이 사람, 지금 제 정신이 아니라는 것을."내가 참아줄 수 있는 것도 여기까지야. 오늘 오후까지 파혼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네가 알아서 책임져.""이게 무슨...?"안지영은 이 상황이 전혀 납득이 가지 않아 재차 확인했다."지금 대체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협박하고 있잖아. 몰라?""그러니까 왜요? 왜 나를 협박하는데요?""..."안지영은 그가 이렇게까지 협박하는 원인이 매우 궁금했다.어리둥절한 그녀의 모습에 나태웅은 답답하기만 했다. 정말 그 이유를 모른다고? 안지영의 입장으로선, 고작 업무 실적을 쌓기 위해 출장을 강요하며 협박을 하는 나태웅이 이해가 안 갈 뿐이었다.진작 이럴 줄 알았다면 애초에 고은영을 데리고 배준우한테 가 도움을 청할걸 하며 내심 후회가 됐다. "대표님께서는 제 실적을 위해서 이렇게 애 쓰시는걸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제 약혼은 업무에 아무런 영향도 안 줘요."“......”"정장해랑 협력하고 싶지 않으시면 제가 바꿀게요. 딱 한 달만 기다려 주세요. 이렇게까지 저를 협박하실 필요는 없어요."안지영은 점점 다급해진 말투로 말했다. 나태웅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하고싶은 말만 계속하여 내뱉었다."대표님이 원하시는 실적, 200억이면 충분하잖아요?"하지만 200억이라는 수치는 천락 그룹에게 있어 그저 새발의 피일뿐이었다.안지영 또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고작 그 정도 실적을 위해서 난동을 부리는 나태웅의 태도를 더이상 참을 수
안지영은 자신의 업무와 상관도 없는 약혼으로 트집 잡으며 자신을 협박하는 나태웅이 어이가 없기만 했다. 그 와중에 둘의 사이를 확인 받으려는 나태웅의 모습에 안지영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우리 무슨 사이냐고?""당연히 직장 상사와 직원 사이죠."안지영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단호하게 대답했다.그러자 나태웅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그래, 우리는 비지니스 관계였구나...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여태 그렇게 생각해왔구나?""그거 말고 또 있나요?"알 수 없는 그의 반응에 안지영은 어리둥절해했다.나태웅은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이어 그녀를 내쫓았다."당장 나가.""..."드디어 탈출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안지영은 내심 기뻤다.비록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많았지만, 그녀는 더이상 따지고 싶지가 않았다. 그저 한시라도 이 상황에서 빨리 얼른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그럼 전 먼저 나가볼게요."말을 마치자마자 얼른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안지영이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또 다시 “쾅!"하는 소리와 함께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잔을 탁자 위에 세게 내리쳤다.그때 마침 서류를 가지고 들어오던 왕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나태웅을 발견하였다.대충 분위기를 보아도 안지영과의 대화가 순조롭지는 않았던 것으로 예상할 수 있었다.왕여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가갔다."대표님께서 서명해야 될 서류들을 챙겨왔습니다.""수안 프로젝트 말이야, 당분간은 안씨 집안한테 맡기지 마."이 말을 들은 왕여는 온몸이 굳어져 버렸다. 진짜 이렇게까지 하기로 한건가?"혹시 안지영 씨 때문인가요? 제 개인적인 견해긴 하지만, 이 기회에 안지영 씨한테분명하게 말해주는게 어떨가요?"그동안 나태웅과 안지영 사이의 갈등을 가까이에서 봐온 왕여는 괜히 조급해졌다.한쪽은 여전히 마음이 남아있었지만, 다른 한쪽은 그 마음조차 알지 못하고 있으니 계속해서 나아가면 서로 오해만 쌓일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심기가 불편했던 나태웅은 왕여의
어느덧 점심이 된 시각, 안지영과 함께 식사를 하는 내내 고은영의 안색은 많이 밝아졌다.아마 기분 좋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봐?" 궁금했던 안지영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바로 물었다.그러자 고은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응.""무슨 일인데 그래?"“나랑 더이상 헤어지지 않을거래.”"배 대표가?" 고은영은 얼굴을 붉히며 쑥쓰러워했다."어머, 좋은 일이네. 근데 정말 배준우가 그렇게 얘기했다고?""응. 절대 헤어지지 않겠대.""배 대표가 그렇게 말한 이상 믿을만한 말인거네. 그 사람은 절대 함부로 빈 말 하는 사람이 아니잖아."배준우는 언제나 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었다.그 얘기에 안지영도 진심으로 기뻐했다."그럼 됐네. 그나저나 배씨 가문은 지금 어떤 상황이야?"안지영은 배준우에 대한 믿음은 있었지만, 다소 혼란스러운 배씨 가문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심지어는 얼마 전,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배항준에게 또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듣기도 했다.나이 많은 노인네가 왜 이렇게 바람기가 많은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에 이런 유전자가 어떻게 배준우와도 같은 의리 넘치는 아들을 낳은건지 싶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아버지를 둔 배준우가 내심 안쓰러웠다.고은영 또한 배씨 가문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곤 했다."천의의 일은 이미 끝났고, 량천옥도 이미 R국으로 갔어.""뭐? 벌써 갔다고?" 그러자 안지영은 충격에 휩싸였다.그동안 량천옥이 배씨 가문의 재산을 갖고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고를 일으켰는데 그렇게 파렴치한 여자를 쉽게 놓아줬다고?안지영은 믿기지가 않았다."이미 가버린건 어쩔 수 없어. 근데 내가 놀란 일은 따로 있어.""뭔데?""그 여자가 천의의 60% 나 되는 주식을 내 명의로 두고 가버렸어.""어?"그 얘기에 안지영은 더욱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량천옥이 갑자기 배씨 가문 전체를 망가뜨린 것만으로도 충격인데, 지분을 고은영한테 넘겼다니!대체 무슨 꿍꿍이인걸까?"다들 추측하기로는 배
배항준의 심보대로라면 한시라도 빨리 고은영의 손에서 그 주식을 빼앗으려 했을게 뻔하다. "명의 변경 수속을 진행할 때, 량천옥이 배준우랑 5년 동안 이 지분을 변경하지 못하는 협의를 체결했대.""5년이나?"생각보다 치밀한 량천옥의 수법에 안지영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5년이나 기다려야 된대."량천옥은 기어코 배항준이 항복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배준우와 고은영의 이혼을 기다리기만 해오던 배항준은 이제 더이상 그조차도 바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건 이 협의를 받아들인 배준우였다. 아마도 정말로 고은영한테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지분이 누구의 손에 있든 그에게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량천옥보다는 고은영의 손에 들려있는게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괜찮아. 이렇게 된 이상 결국 가장 이득을 보는건 너일테니.""난 아직도 얼떨떨해."고은영은 기쁜 마음보다는 어리둥절했다.량천옥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몰아붙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일단 복잡한 생각은 하지 마. 아무튼 지금으로선 너한테 나쁠 게 하나도 없어. 오히려 량천옥이 너를 한 번 도와준 셈이야."배씨 가문에 폭풍이 휘몰아치게 된 지금 이 시점, 고은영과 배준우는 절대로 이혼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두 사람이 식사를 마친 후, 고은영은 잊지 않고 배준우의 식사까지 포장했다.그렇게 둘은 헤어진 뒤, 안지영은 바로 천락그룹으로 향했다.회사로 돌아온 고은영은 배준우의 사무실에 있던 배지영을 발견하고는 순간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마찬가지로 고은영을 발견한 배지영의 얼굴 또한 굳어졌다.이때 배준우가 말했다."일단 넌 돌아가.""오빠...""돌아가."두 사람이 방금까지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배준우의 표정은 좋지가 않았고, 노발대발하며 배지영한테 화를 내고 있었다.배준우의 쌀쌀맞은 태도에 배지영은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고은영을 지나치는 그녀의 몸에서는 왠지 모를 싸늘한
생각지도 못한 고은영의 솔직한 모습에 배준우는 의외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이내 쓸데 없는 생각은 버리고 그녀를 끌어 안았다."불편하면 만나지 않아도 돼."그러자 고은영의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안 만나도 된다고요?"진심은 아니겠지? 어찌 됐든 배준우의 친어머니인데 말이다. "왜? 안 될게 뭐가 있어?""아무리 불편해도 아예 피해버리면 어머니께서 저를 싫어하지 않을가요?” "우리 어머니한테서 이쁨 받고 싶어서 그래?""내가 며느리인데 당연한거 아닌가요?"전에 고은영과 조영수, 그리고 진여옥이 한 자리에 있게 된 상황에서도 고은지는 혹여나 남편이 불편해할까봐 열심히 시어머니랑 친하게 지내려 노력했었다. 하지만 결국은 그 마음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가 얼마나 유지하기 어려운지는 고은영도 잘 알고 있었다."그래도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어.""그러면 당신이 곤란해지잖아요." 고은영은 같이 지내긴 불편하긴 하더라도 남편의 내조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를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배준우는 오히려 그녀를 말렸다."난 괜찮아."내가 가만 있어도 괜찮다고?"..."여전히 불편한 기색이 있어 보이는 고은영을 보자 배준우는 그녀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갑자기 끌어안고는 한쪽 소파로 데리고 가 앉혔다.곧이어 그녀와 입을 맞추며 위로했다."우린 굳이 어머니랑 같이 한 집에서 지낼 필요 없어."배준우는 굳이 복잡한 관계를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괜히 잘 처리하지 못하면 수습하기도 힘들고, 마음 맞지 않으면 그냥 함께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 말을 들은 고은영의 눈은 순식간에 밝아졌다.같이 살지 않으면 번거로움은 확실히 줄어들 수 있었다."어때? 좋지?"그제서야 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얼른 가서 식사해요."고은영은 순간 돌이켜보니 별로 심각한 일도 아니었는데 너무 깊게 생각한 탓에 갑자기 자신이 소심해진게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다. 예전의 그녀는 이렇지 않았다. 무슨 일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