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내가 엄마를 봤어요. 엄마는 성수시에 있어요!”수아는 울음을 그치고, 허겁지겁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고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다.그렇게 현석은 사진 속 예나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서둘러 핸드폰을 받아 쥔 현석은 사진을 확대했다. 확대하자 더 선명하게 보이는 이목구비는 너무 익숙했다. 부드러운 예나의 시선을 확인한 현석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기쁨을 겨우 억누른 현석이 천천히 물었다.“수아야, 이 사진은 언제 찍은 거야?”“아빠, 내가 엄마 품에 안긴 거 안 보여요?”수아가 입을 삐죽였다.“오늘 입은 옷이랑 똑같잖아요. 오늘 찍은 거예요.”현석은 그제야 예나의 품에 안긴 제 딸을 발견했다.마른기침을 몇 번 하고 현석이 입을 열었다.“수아야 미안해. 아빠가 지금 너무 흥분해서 그래. 어디에서 엄마를 만났다고?”“성수시요.”수아가 입을 매만졌다.“엄마 지금의 이름은 여지연이에요. 그리고 예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해요. 아마도 기억상실인 것 같아요.”수아는 또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이건 엄마의 어깨에서 주운 머리카락이에요. 아빠가 친자확인 해주세요. 친자 확인만 되면 엄마도 내 엄마라고 인정할 거예요.”현석이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받아 쥐었다. 방금까지 흥분에 겨운 표정이 조금 가라앉았다.“엄마가 4년 전에 비해 달라진 게 있었어?”“엄마가 실종되기 전 2달 동안, 자주 화를 내고 그랬잖아요. 지금도 화를 내던 엄마의 모습이 생생해요.”수아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그런데 오늘의 엄마는 아주 상냥하고 말도 부드럽게 했어요. 엄마 치마를 더럽혔는데도 화내지 않고, 괜찮다고 날 위로했어요.”현석의 시선이 핸드폰에 찍힌 얼굴로 향했다.4년 전과 조금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현석은 확신할 수 있었다.이 사람이 바로 현석이 찾아 헤맨 예나가 맞았다!‘예나 씨는 왜 기억을 잃은 걸까?’‘왜 다른 사람이 되어 성수시에서 4년이나 지낸 걸까?’‘왜 4년 동안 연락 한번 없었던 걸까?’‘
‘모든 걸 내팽개치고 달려가는 사람은 아빠잖아요.’현석이 빠르게 별장을 벗어나는 모습을 본 수아는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4년 동안 제일 힘들어 한 사람이 바로 아빠였다.네 아이는 서로를 껴안고, 함께 울고 위로할 수 있었다.하지만 아빠는 절대로 그들 앞에서 취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거대한 산처럼,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현석 덕분에, 아이들은 언젠간 엄마가 꼭 돌아올 거라고 믿고 기다렸다.……성수시.동이 트고, 해가 서서히 떠올랐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성수시는 여씨 가문 노부인의 팔순 잔치로 시끌벅적했다. 수많은 고급 인사들이 참여한 팔순 잔치는 성수시의 5성급 호텔에서 열렸다.지연은 백소은과 함께 아침 일찍 연회장을 찾았다. 박정순은 연회장의 휴게실에서 친척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어머님, 지연이 왔어요.”백소은이 미소를 지으며 휴게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박정순은 백소은을 반갑게 맞았지만, 지연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너는 무슨 일로 온 거니?”지연은 퉁명스러운 박정순의 태도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리고 손에 쥔 백자 다도 세트를 건넸다.“할머니께서 요즘 다도에 관심이 많으시다고 해서, 지인을 통해 구해온 백자 다도 세트에요. 최고급 자기로 만든 다도라 차향이 더 좋을 거예요.”박정순은 콧방귀를 뀌었다.“예나야, 자기는 청화백자가 제일 좋은 거란다. 내가 전에 쓰던 자기는 이천의 명장이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만든 거야. 색감과 질감에서 대대손손 전통으로 이어온 명장이 만든 게 티가 나지. 이 백자 다기가 뭐라고, 지인에게까지 부탁해서 가져온 건지 모르겠구나.”박정순의 말은 평범한 백자 다도는 본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었다.그러자 지연이 백자 주전자의 뚜껑을 열었고, 은은한 차향이 휴게실 안으로 퍼졌다.미소를 지은 지연이 말을 이었다.“조선 왕실에서부터 이어 내려온 최고급 자기입니다. 사용된 지는 벌써 100년이 넘었으며, 차 벽에 남은 차향은 뚜껑만 열어도 맡을 수 있습니다.
연회장을 찾는 손님이 점점 늘어나고, 더욱 시끌벅적 해졌다.여씨 가문 가족들은 모두 손님 접대로 바삐 돌아다녔다.“언니는 우리 가문 진짜 후손도 아니고, 옆에서 쉬고 있어요.”지수가 웃을 듯 말 듯 한표정으로 말했다.지연은 지수의 속마음을 바로 알아차렸다.‘아마도 양녀가 여씨 명문가 아가씨의 명성을 뺏어갈 까, 걱정이 된 것이겠지.’지연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샴페인 한 잔을 들고, 연회장 옆 베란다로 향했다.그곳에 있은 지 1분도 되지 않았는데, 큰아버지 아들인 여민우가 지연에게 다가왔다.박정순은 두 아들을 두었다. 첫째 아들은 여씨 그룹 대표였고, 둘째 아들은 그룹의 부대표였다.첫째 아들 여진태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그의 첫째 아들은 여민우로 올해 29살, 미혼이었다. 손자가 여태껏 결혼을 하지 못한 게 박정순의 가장 큰 골치였다.“예나야, 왜 여기에 혼자 있어?”여민우는 그녀의 샴페인 잔에 가볍게 짠하며 물었다.지연아 입꼬리를 올렸다.“그러는 오빠는 왜 여기에 있어요?”여민우가 고개를 저었다.“이 연회는 정말 별로야. 겉으로는 할머니 생신을 축하하러 왔다고 하면서, 사실은 비즈니스 하기 최적인 장소인 거지.”지연이 여민우를 힐끗 살폈다.여진태의 첫째 아들로, 여민우는 여씨 그룹의 미래 후계자였다.‘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에게 얼굴도장을 박아야 할 텐데, 왜 이곳으로 도망을 온 거지?’“그런 눈길로 날 보지 마. 난 후계자에 관심 없어.”여민우가 쓴웃음을 지었다.“내가 여씨 그룹 후계자가 된다면, 내 혼인은 그룹의 성장을 위해 계약 결혼이 될 거야. 난 자유 결혼할 권리를 잃고 싶지 않아.”그 말에 지연이 옅게 미소를 지었다.여씨 가문에는 총 세 명의 후손이 있었다. 여민우가 사업에 관심이 없다면, 둘째 아들 여민기는 소문난 바람둥이였다. 유일한 아가씨인 여지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였으니…… 여씨 가문이 이 후손들에게 넘어간다면 겨우 몇 년 사이에, 업계에서 사라질 게 뻔했다.하지만 이건 지연과는 별로 큰 연관이
“그럼…….”백소은이 목소리를 낮췄다.“지연이랑 결혼은…….”“작은어머니!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세요!”여민우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비록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촌 동생이지만, 사촌 동생이랑 결혼이라니,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소리인가요! 그리고 작은어머니도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마음에 둔 사람이 있어요. 부모님이 간섭만 하지 않았어도 이미 결혼했을 거예요.”“그래 그래, 작은엄마가 농담한 거야.”백소은이 여민우의 어깨를 토닥이고 연회장으로 돌아갔다.여민우와 여민기, 두 사람 중 더 나은 건 여민우였다. 하지만 여민우는 마음에 둔 사람이 있었으니, 그렇게 쉽게 걸려들지 않을 것이다.그렇다면 남은 건 여민기였다.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서 있는 지연을 바라보며 백소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지연아, 날 원망하지 말 거라. 나도 여씨 가문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단다.’지연이 영원히 과거를 기억해 내지 못한다면, 백소은은 지연을 평생 품어줄 생각이 있었다.하지만 어느 날인가 과거를 되찾게 된다면, 여씨 가문에 한을 품지 못하게 할 방법은 여씨 가문의 후대를 낳는 것뿐이었다.“어머니, 하실 말씀이 뭐예요?”지연이 걸어와 물었다.“네 할머니가 몸이 조금 불편하시대. 네가 마사지를 참 잘하지 않느냐? 할머니 어깨 좀 주물러 드려.”백소은이 웃으며 말했다.“오늘 네가 선물한 백자 다기가 퍽 마음에 드신 모양이야. 그리고 네가 마사지까지 해준다면 앞으로 할머니 눈칫밥을 먹지 않아도 될 거야.”지연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박정순이 아무리 눈치를 줘도 지연은 대수롭지 않았다.하지만 백소은이 애써 챙겨준 것으로 생각한 지연은 별말 없이 휴게실로 걸어갔다.휴게실 문은 닫혀 있었고, 지연이 노크하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요.”지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여민기가 나른한 모습으로 소파에 누워있는 게 보였다. 지연의 등장에 여민기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왜 그쪽이 들어오는 거예요?”지연이 입구에
여민기는 음주를 즐기는 사람이었으므로, 두 잔은 그에게 있어 별일이 아니었다.탁자 위로 놓인 두 잔의 술을 여민기는 바로 고개를 젖혀 마셔버렸다.지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살폈다.‘왜 탁자 위에 술 두 잔이 있는 거지?’‘전에 휴게실을 사용한 사람이 남긴 걸까, 아니면 누가 따로 주문한 걸까?’‘어떻게 딱 두 잔이 있는 거지.’지연은 계속해서 여민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는데, 여민기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는 게 보였다.“지연 누나, 오늘따라 더 예뻐 보이네요.”여민기는 갑자기 지연에게 다가갔고, 알콜 냄새가 지연에게까지 훅 전해졌다.가까운 곳에서 보니, 지연의 아름다운 미모는 더 대단했다.비록 소문난 플레이보이라고 할지라도, 여민기는 여자에게 강압적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지연 누나, 이 술 이상해요!”여민기가 힘겹게 말을 뱉었다.지연은 처음부터 두 잔만 남겨진 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빈 술잔을 들고 지연은 가볍게 향을 맡았다.알콜 향 외에도 진한 꽃 향이 느껴졌다.이건 바로 범죄에 이용되는 약물이었다!지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열려는데, 여민기가 단번에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어깨를 감싸 쥐었다.“이 손 놔요!”지연이 차갑게 말했다.“누나, 저, 저도 그러고 싶은데…… 몸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아요.”지연의 말에 손을 거두었지만 여민기는 바로 다시 손을 올렸다.“누나, 누나는 빨리 나가요. 가능하다면 다른 여자를 이곳으로 보내줘요.”“…….”“주씨 가문 둘째 딸이 제 전 여자 친구예요.”여민기는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힘겹게 말했다.“오늘 재결합하고 싶다고 날 찾아왔었는데, 그 사람이라면 날 도울 수 있을 거예요.”지연이 입꼬리를 매만졌다.“주씨 가문 둘째 아가씨는 아직 학생인데요.”“오늘, 이 연회장에서 나와 관계를 맺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어요. 또 누굴 찾을 수 있겠어요!”여민기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지연 누나, 혹시 누나가 약을 탄 건 아니에요? 설마, 누나가 나한테…….
“어머님, 연회가 끝나면 민기를 시켜 집으로 모실 게요.”여씨 가문 첫째 며느리, 이경은이 입을 열었다.“어머니, 안에 들어가서 쉬고 계세요. 백자 다기로 차를 끓여 올 게요.”방안의 지연이 눈썹 한쪽을 치켜세우고 와인잔을 가볍게 흔들었다.일부러 박정순을 이곳으로 유인해, 지연과 여민기의 여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하려는 계획인 듯싶었다.‘그렇다면 내 명성을 무너뜨리거나, 민기와 날 결혼시키려는 목적일 텐데. 대체 누가 이런 짓을 계획한 거지?’딸깍-문이 가볍게 열렸다.“어머나, 지연아.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어?”이경은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너 혼자 여기 있었던 거야?”지연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물었다.“그럼 누가 더 있어야 하는데요?”“아니, 왜 네가 혼자 이곳에 있는지 물어본 거야.”이경은이 지연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연회장 안에 손님들이 아직 많은데, 여기에서 뭘 하고 있었어?”지연이 술병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방에서 좋은 술을 발견했는데, 맛이 참 좋더라고요. 큰어머니, 마셔 보실 래요?”그리고 술을 따른 잔을 이경은에게 내밀었다.지연은 이경은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나와 큰어머니는 아무런 원한 관계가 없는데, 왜 본인의 아들을 미끼로 이런 계획을 세운 거지?’“연회장에서 술을 많이 마셨더니 더는 못 마시겠어.”이경은이 인상을 찌푸렸다.“지연아, 볼일 없으면 차 끓이는 거나 확인하러 갈래? 할머니가 마실 차 한잔 가져와 줘.”이경은의 표정과 몸짓 모두 너무 자연스러웠다. 심지어 여민기의 행방은 물어보지도 않았다.굳은 표정의 지연이 한 발 뒤로 물러서 있던 백소은에게 향했다.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감히 시선을 앞으로 돌리지 못하는 모양이 퍽 불안해 보였다.지연이 술잔을 백소은에게 건넸다.“어머니, 무슨 맛인지 한번 마셔 보시겠어요?”“난…….”고개를 든 백소은의 눈빛에는 불안과 죄책감이 드러났다.이런 표정에 지연은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오늘 일은 꾸민 사람은 큰어머니가
지연의 머릿속에는 3년 동안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백소은은 자기 친딸 여지수를 애지중지 아꼈지만, 양딸인 지연에게도 전혀 부족한 것 없는 보살핌을 주었다.지수가 가진 건 지연도 가졌다.지연의 방은 지수의 것과 똑같은 평 방수와, 똑같은 가구로 모든 게 일치했다.백소은이 지연에게 잘해줄수록, 지연은 자신이 이런 보살핌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받아도 되는 사람인지를 고민했다.백소은이 아낌없이 주는 사랑에 지연은 여씨 가문에 남았고, 여태껏 그곳을 떠나려는 마음을 먹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일은…….”“네가 권석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서 다른 혼사를 알아봐야 했어. 민기가 아직 철이 없어 그렇지 나쁜 아이는 아니야.”백소은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지만, 꿋꿋이 말을 이었다.“네가 만약 민기와 결혼을 한다면, 내가 평생 널 지켜줄 수 있어.”지연이 헛웃음을 터뜨렸다.“어머니, 이 일에 있어 할머니 의견을 물어보셨나요? 큰어머니는 요? 아니면 여민기의 의견이라도 물어보셨어요?”백소은이 침묵하자 지연이 말을 이었다.“당사자의 의견은 하나도 묻지 않고 어머니 멋대로 이 상황을 만들고, 큰어머니가 만약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결과일지 생각해 보셨어요? 큰어머니 눈에 저는 별 볼 일 없는 양녀일 텐데, 어떻게 감히 가문의 작은 도련님과 결혼할 수 있겠어요? 어머니의 계획대로 됐다면 여씨 가문의 두 아들 사이가 악화하고, 가문에 분열이 생길 수도 있었어요. 우리 가문을 노리는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조금의 분열이 보인다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에요.”“지연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백소은이 입술을 달싹였다.이 일은 여진태의 허락을 받았었다. 여진석, 여진태 두 형제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계획이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었던 건데, 이 혼사에 이경은의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백소은은 생각했다.“지연아, 넌 이렇게 예쁘고 능력도 있는데, 왜 민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짝이라고 할 수 있겠어? 절대 너 자신을 의심하지 마!”지연
경찰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여진태의 두 손에 수갑을 채우자, 현장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여진태는 여씨 그룹의 대표로, 성수시에서도 높은 명성을 쌓아왔다. 오지성 국장이 그나마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여진태 대표님, 잠시 서로 가셔서 차 한잔 마시며 조사를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확실한 조사가 끝나면 바로 돌아가실 수 있으세요.”“오지성 국장, 할 말 있으면 좋게 좋게 하세.”박정순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조사해야 할 일이 있다면 우리 여씨 그룹은 얼마든지 협조할 테니, 굳이 서로 이동하지 않는 게 어떻겠는가.”경찰서로 출석한다면 명성에 얼룩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여씨 그룹에 작은 오점이 생긴다면 성수시에서의 지위가 한층 꺾이는 건 시간문제였다.오지성 국장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상대가 성남시 거물이라서요. 위쪽에서 조사해야 한다고 지시하니 어쩔 수 없이 조사할 테지만, 너무 큰 걱정은 마세요. 별문제가 없다면 바로 돌아오실 수 있을 거예요.”오지성 국장이 손을 흔들자, 젊은 두 경찰이 바로 여진태를 양옆으로 끼고 밖으로 호송했다.여진태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덤덤하게 말했다.“이 프로젝트는 권씨 그룹, 차씨 그룹, 이씨 그룹이 함께 참여한 거예요. 어머니가 연락 좀 돌려주세요.”그리고 여진태는 경찰차 안으로 올라탔다.이경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멀쩡하던 프로젝트에 왜 갑자기 일이 생긴 거예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예요?”이경은이 바로 김성희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권씨 그룹이 제일 큰 투자자인데, 권씨 그룹은 왜 아무 문제가 없는 거예요?”김성희는 빠르게 손을 빼냈다.“조사 협조일 뿐인데 사모님, 너무 당황해 마세요. 오늘 연회도 이쯤이면 끝이 난 것 같으니,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김성희가 발걸음을 돌리자 다른 손님들도 빠르게 연회장을 벗어났다.시끌벅적하던 연회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여진석이 핸드폰을 들고 나타났다.“사람을 찾아 물어보니, 어제
온라인 댓글 창에도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네티즌들이 댓글을 쏟아냈다.빠르게 정신을 차린 진행자가 술렁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말을 보탰다.“다들 잊으셨나요? 강연 님께서 또 좋은 소식도 전하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이 다시 집중했다.이어 사람들은 숨소리를 가다듬었고 강연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저와 전서안 씨는 멀지 않아 곧 결혼할 예정입니다!”“!!!”[와아아아! 이날만을 기다렸다고!][엉엉 우리 강전 커플이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고.][행복하세요! 두 사람 꼭 평생 행복해야 해요!]무대 아래 환호 소리가 이어지고 어느새 시상식 전체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강연은 이 광경에 고개를 돌려 무대 뒤의 서안과 시선을 마주했다.드디어 결혼....9월 8일, 결혼에 적합한 어느 날.사회부, 경제부 기자는 물론 연예 기자까지 총출동했다.각종 포털에서 수아와 안택, 그리고 강연과 서안의 성대한 결혼식에 대한 기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최고 재벌가인 강씨 가문의 두 공주님이 결혼하는 날, 더구나 결혼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대단한 청년. 한국에 있어 수백 년 가도 한번 볼까 말까 한 성대한 구경거리였다.커다란 식장에 손님들로 붐비고 컬러 풍선이 이곳저곳에 날아다녔다. 꽃으로 뒤덮인 예식장과 레드카펫은 식장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졌다.강씨 가문, 전씨 가문, 그리고 안택의 가족 모두 유명한 가문이었으므로 상업게, 정치계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출동했다.그렇다 보니 경찰 인력도 많이 투입되어 치안을 유지했다.이번 결혼식에는 그 어떤 매체도 초대하지 않았고, 다만 직접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했다. 그리고 주요 매체들과 협력해 다들 생중계를 퍼 나를 수 있도록 했다.그렇게 만인의 주목 아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수아와 강연의 드레스는 F 국왕실 전용 재단사가 시간과 심혈을 기울여 한땀 한땀 수놓은 것이었다.두 사람이 개인 헬기에서 내리고 결혼식장에 모습을
강씨 가문은 또 한 번 침묵에 빠졌다.세 언니 중 나이란은 이미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청아와 예은은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그러자 감동에 젖어있던 강씨 세 형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지금 다른 남자 때문에 우는 거야? 날 앞에 두고?’그러나 세 형제가 화를 낼 차례는 주어지지 않았다. 강현석이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강현석은 앞으로 다가가 훌륭한 두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몇 년 사이 조금 늙어버린 강현석은 어느새 상권을 주름잡던 그 모습이 사라졌다.“앞으로, 내 보배 딸을 잘 부탁하네.”안택과 서안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두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현석은 이미 자리를 벗어났고, 어느새 도예나가 강현석의 옆자리를 지켰다.도예나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다 큰 자식들과, 대단한 두 사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축하하네.”그리고 도예나는 강현석의 손을 잡고 거실을 벗어나 자리를 비켜줬다.거실은 잠시 침묵하다가 격동의 비명이 들려왔다.“아아아 드디어 성공했어!”“축하해! 드디어 결혼하네.”“두 공주님이 왕자님을 찾아가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아.”강씨 가문에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2층 베란다에서.강현석은 집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도예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우리 아이들이 이제 다 컸네요.”...그리고 시상식은 예정대로 거행되었다.강연의 “아기” 사건으로 대부분의 매체가 시상식 앞을 채웠다. 게다가 인원을 계속 보충해 이 파격 소식을 맞을 준비를 했다.무대 위 강연이 트로피를 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그리고, 아주 중요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그 말이 들리고 인터넷은 아예 서버가 막혀버렸다.무대 아래 모든 배우와 매체, 그리고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소식을 들으려고 했다.“강연 님! 드디어 전서안 씨와의 결혼 사식을 밝히려는 겁니까?”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의 기자가 앞으로 달려가지 못해 안달인 듯 외쳤다.“다들 급해
“아버님, 안녕하세요!”안택과 전서안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나이가 많은 안택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아버님, 이건 제가 3년 전부터 준비해 온 겁니다. 제 명하의 모든 재산, 가족 기업 주식, 부동산, 땅, 주식 등 모든 걸 수아의 이름으로 전환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 제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은 수아의 소유입니다.”그 말을 들은 수아가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다.모든 재산을 본인의 이름으로 돌리다니. 안택은 수아에게 단 한 번도 이 사실을 밝힌 적이 없었다. 다만 묵묵히 행동으로 움직였다.“아버지...”수아가 강현석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느새 촉촉해졌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가족을 제외하고 수아를 위해 이렇게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오직 안택일 것이다.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겉이 아닌 깊숙이까지 수아를 사랑했다.세훈은 안택이 건넨 문서를 읽더니 다시 강현석에게 넘겼다.강현석은 몇 장 넘기다가 깊은 고민에 잠겼다.그리고 아무 말없이 수아를 다독이다가 안택을 향해 말했다.“물어보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다네.”안택이 바로 대답했다.“편하게 말씀하세요.”“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자네의 사업과 내 딸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질문을 들은 안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고민하지도 않고 답했다.“제 사업이 아니라, 제 목숨으로 수아의 목숨을 구한다고 해도 수아를 선택할 겁니다.”“그렇다면 자네 가문과 내 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강현석이 계속해서 물었다.“그래도 수아를 선택하겠습니다. 제 가문은 이미 수백 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충분히 많은 우수한 자녀가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고 제가 굳이 나설 일은 없습니다.”안택이 대답했다.“그렇다면, 자네 부모님과 가족은?”강현석이 안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물었다.“자네 부모, 가족들과 수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그 물음에 안택이 잠시 침묵했다.진
동시에 제훈도 수아에게 문자를 보냈다.[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건 바로 옆 동네야.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계셨던거야.]...‘역시!’차가운 인상의 수아가 살기를 드러냈다.‘그래요, 아버지. 이번에는 어디로 숨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요!’스타일링을 마친 강연이 시간을 확인하자 시상식과 2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30분 정도 남겼다.그리고 수아는 몰래 서안과 안택을 불러 아버지 강현석이 들어오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그 옆에는 흥미진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는 세훈 부부, 세윤 부부, 그리고 제훈 부부가 있었다.강씨 두 자매의 노력 아래 세 언니는 이미 제 편으로 만들었고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했다.이어 세 언니를 편에 끌어들이고 나니 세 오빠도 한 편으로 되었다.강씨 자매는 정말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그러자 강현석과 도예나가 대문을 넘어서는 즉시 “포위” 당해버렸다.세 언니는 도예나를 이끌고 거실로 들어갔고, 강현석은 두 딸에 의해 양팔이 포위당한 채로 소파에 앉았다.세 아들은 각각 다른 퇴로를 맡고 강현석이 도망갈 수 없게 했다.이어지는 건 두 자매의 맹공격!“아버지! 우리 이제 다 컸으니 제발 각자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그래요. 아버지! 우리가 보아 같은 귀여운 아이를 낳아 아이들이 외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듣고 싶지 않으세요?”“아버지, 계속 미루다가는 보배 딸들 다 늙어요!”두 딸의 이어지는 애교 세례에 강현석은 정신이 혼미해졌다.“잠, 잠깐만!”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강현석이 물었다.“송이가 임신해 아기가 있다는 말은 대체 뭐냐?”수아와 강연이 눈을 마주했고 강연이 머리를 쳐들며 말했다.“지금은 없지만, 원하면 언제든지 생길 거예요!”강현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꺼낸 강현석이 기침을 연신 해댔다.“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수아는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이건 시작일뿐이에요. 동생에게 생길 거면 나도
직원의 목소리는 생방송을 타고 큰 파동을 일으켰다.[강연 여신님에게 아기가?][전서안이 아버지가 되는 거야?][거봐, 내 말이 맞잖아. 두 사람이 몰래 결혼했다니까?][두 사람의 결혼을 왜 생방송으로 틀지 않은 거야!!!]생방송 댓글이 뒤집어지고 있는 걸 강연은 전혀 알지 못했다.“우리 집 보배 아기니까 잘 부탁드려요.”댓글은 더 난리가 벌어졌다.[????][!!!!]각종 의문 기호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강연과의 통화가 끝난 뒤에도 댓글은 끝나지 않았다.네티즌들은 감동에 북받쳐했다.시상식 관계자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이미 실시간 검색어가 초고속도로 상승 중이었다.클릭하면 팬들이 꺅 꺅-하며 환호하는 댓글이 넘쳤다.두 사람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좋은 감정을 이어가자,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팬들도 서서히 인정했다.그사이 강연의 성장은 아주 놀라웠다. “그 시절,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여자 신인상을 받더니 “스파이”를 통해 여우주연상까지 차지했다.그 이후로 찍었던 영화도 모두 훌륭한 성적을 받아냈다.오늘 밤 시상식에서도 그중 한 영화로 상을 받기로 되어있었다.서안과 강연은 이제 신분이면 신분, 외모면 외모, 인품이면 인품, 경력이면 경력, 모든 게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다.두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고 과거 이야기까지 전해 들은 후로는 두 커플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과반수를 이뤘다.그러니 오늘 이 깜짝 뉴스에 다들 격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었다.유독 전서안 본인과 강씨 가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심정이었다.수아 때문에 도피 중이었던 강현석이 가장 먼저 가족 톡방에 모습을 드러내며 질문을 쏟아냈다. 강현석도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그 자식이 내 보배 딸을 임신시켜?][정말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지!]스타일링을 받던 강연은 미처 소식을 전해 받지 못했고 수아가 답장했다.[아빠, 휴가 중 아니었어요? 신호가 나빠서 연락
강현석은 여자는 안정된 직장이 있거나, 든든한 가족이 있다면 한평생 행복할 것이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더구나 강현석은 절대 자신의 아이디가 아닌 아내 도예나의 핸드폰으로 그러한 글을 남겼다.그래서 초반에는 강씨 형제들이 어머니마저 결혼을 반대하는 게 아닐까 싶어 두려움에 떨었었다.하지만 제훈이 아버지의 계정을 해킹해 글을 어머니의 아이디에 옮겨 전송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제야 강씨 형제는 안심했다.장인어른이 사위를 어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그건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같은 이치였다.하지만, 이 집안에서는 아버지와 딸들의 투쟁으로 조금 바뀌었다.두 사람의 투쟁은 어느새 3년 가까이 이어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18살 소녀 강연은 21살 아리따운 여인이 되었다.아버지와의 오랜 투쟁 끝에 강연과 서안은 약혼식을 마쳤고 연예계 공식 커플이 되었다.그리고 세훈, 세윤, 제훈은 모두 결혼을 마쳤고 단란한 가정을 차렸다.세훈에게는 두 살배기 귀여운 아기도 생겼다.나이란도 임신했다. 어느새 막달에 진입한 나이란은 동그랗게 나온 배를 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아했고 세윤이 깜짝 놀라며 옆에 바짝 붙어 곁을 지켰다.제훈과 예은은 신혼여행을 떠났다. 예은은 아이보다는 사업에 더 비중을 둘 생각이었다. 제훈도 아기 욕심이 급하지 않았으므로 두 사람은 다행히 의견 차이 없이 합의를 보았다.이제 수아만 남겨졌는데, 매일 오빠들과 동생을 보는 눈빛에 큰 원망이 담겨있었다.세 오빠는 결혼하고 동생도 약혼식을 올렸는데, 안택과 저만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다. 가장 빨리 청혼하고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으나 결혼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수아도 강연처럼 투쟁을 거쳐 약혼하려고 했으나 한번 당한 강현석이 또 당할 리가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다시 세계 여행을 떠난 뒤로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매번 오늘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연주회 준비 때문에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괜찮아요. 전 늘 여기 있을 거예요.”안택이 수아를 다독였다. 수
이연수의 미소는 진심을 담았다.강연을 돕기로 마음먹었던 건, 강연이 실제로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가 있었고, 오디션 현장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배역을 따내겠다는 그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자신이 건넨 도움이 기회가 되어 돌아와 이연수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이연수의 말을 들은 강연도 마음이 따뜻해졌다.다들 연예계는 신경전이라 모두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이곳에는 꿈을 좇는 이를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기 나름이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따뜻함과 진심이 있기 마련이었다.강연은 차근차근 촬영을 해나갔다.강씨 형제들의 연애도 순항 중이었다.세훈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송청아 역시 적극적으로 자기 뜻을 보이며 함께 상의하며 결정했다.둘의 공통된 의견은 결혼식은 성대할 필요가 없으며 따뜻하고 오래 기억에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둘째 세윤은 아직 결혼할 “자격”이 없었으므로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그래서 요즘 새로운 취미인 맛집 탐방을 시작했다.나이란 역시 먹짱이었는데 세윤이 앞서 맛집을 개발하면 나이란과 함께 찾아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짧은 보름 안에 살이 3킬로나 쪄버리고 말았다.그러자 강연과 통화를 하거나 만날 때면 나이란은 항상 30분 동안 찡찡거렸다.“강연아!! 나 3킬로가 쪘다고! 다이어트 할 거야. 다시 안 먹어! 엉엉!”강연은 나이란의 다부진 몸매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아니야 어디 뺄 데가 있다고 그래? 우리 세윤 오빠는 딱 너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정말?”나이란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드러냈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그렇게 강연은 드디어 조용한 대기실을 되찾을 수 있었고 대본을 읽으며 다음 촬영을 준비할 수 있었다.셋째 제훈은 열애 중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송예은을 찾아 데이트했다.송예은이 촬영이 있는 날이면 촬영 장소를 찾아갔고, 선남선녀가 나란히 있는 모습은 시선을 끌었다.그러자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제
안티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신인 배우 강연의 연기는 정말 그 캐릭터 본연의 매력을 연출했다. 자본을 쏟아부어 배역을 따내는 연기가 아닌 캐릭터 스스로가 된 듯한 연기였다.초반에는 학생들과 두루 어울리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소녀였지만, 적군에게 잡혀 처형장으로 나갈 때의 강렬한 정신과 격앙된 태도는 반전을 자아냈다. 백연주의 경험과 강연의 연기는 수많은 애국열사를 대표했다.강연은 선인들의 정신을 캐릭터에 쏟아부어 어리지만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연기를 녹여냈다.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옅게 지어내는 미소...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쓰러져도 여전히 높은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는 태양.그 장면 속 강연의 미소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예고편을 모두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 대단한 “백연주” 역을 강씨 가문 “공주님”인 강연이 맡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처음에는 경악하다가 이어 찬사가 이어졌다.강연은 정말 실력이 있는 배우였다. 이연수를 비롯한 배우들의 글도 모두 사실이었다.그들은 그제야 안티팬들의 선동에 넘어갔던 걸 깨달았다.진실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강연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호감도 생겼다.[언니 연기는 정말 대단해요. 영원히 함께할게요!][언니 힘내세요! 차세대 연기 대상은 언니꺼에요!]...강연을 향한 찬사 목소리가 높아지고 송 감독은 때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 한 발을 발사했다.“스파이” 공식 홈페이지에 오디션에서 “이가을” 연기한 강연의 촬영분이 공개되었다.이 오디션 영상의 공개는 온라인을 또 한 번 들끓게 했다.“백연주”를 통해 강연의 연기 재능을 미리 맛볼 수 있었는데 “이가을”처럼 복잡한 캐릭터에 대한 연기도 완벽하게 소화를 하자 네티즌들은 두손 두발을 모두 들게 되었다.[정말 무서운 연기 괴물이야!][역시 연기의 신 전서안이 마음에 둔 여자는 달라도 달라.]그렇게 온라인 소동은 막을 내렸다. 강연은 사람들의 호감도 사고 차세대 연기의 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강연은 빠르게 “스파
“뭔데? 무슨 반전?”송 감독이 재빠르게 물었다.“우리에게 편이 생겼어요!”“무슨 편? 지금이 언젠데 아직도 네 편 내 편을 나눌 여유가 있는 거야?”송 감독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아니요! 이걸 좀 보세요!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강연 씨를 위해 해명하고 있어요! 우리가 섭외한 것도 아닌데 먼저 나선 거라고요!”“뭐라고?”송 감독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줘 봐.”그러자 스태프가 빠르게 핸드폰을 건넸고 홈페이지의 댓글이 순식간에 늘어나고 있었다.[배우 이연수: 저는 강연 씨와 함께 촬영했었습니다. 강연 씨는 정말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절대 갑질한 적도 없으며 연기를 묵묵히 소화해 내는 천생 배우였어요. 이런 재능을 저희는 아주 부러워했는걸요.]그리고 이연수는 짧은 동영상을 함께 게재했는데 “그 시절, 우리는” 작품에서 강연의 촬영분이었다.“감독님, 이 여배우는 ‘그 시절, 우리는’ 작품의 배우인데요, 강연 씨와 사이가 좋은가 봐요. 이분이 직접 나서자 적지 않은 배우들이 함께 참여했어요. 조연 배우들이라 주연 배우들만큼 임팩트가 큰 건 아니지만 오히려 더 진실성 있게 다가간 것 같아요.”그건 사실이었다.요즘 사람들은 여론에 빨라 어느 유명한 배우가 이런 글을 남겼다면, 오히려 소속사에서 지시한 것이겠니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조연 배우, 스태프, 그리고 촬영 알바생들과 같은 사람들이 남긴 글은 진정성이 넘쳤다.더 중요한 건 그들이 던진 작은 돌멩이는 잔잔한 파도에 티 나지 않는 파울을 남겼고, 이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지 않았다.배우가 네티즌들의 호감을 어느 정도 산 다음, 이제 주연 배우와 촬영팀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모든 건 걸쳐야 할 과정이 있는 법이었다.빠르게 읽어 내려간 송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휴, 드디어 목숨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 전서안 그 자식이 두려워서 어디 살 수 있겠나, 참.”“송 감독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이해가 되지 않은 스태프가 되물었으나 송 감독은 수염을 내리쓰며 덤덤하게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