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열기가 점점 가라앉고, 밤은 점점 깊어 졌다.예나는 베란다 창문에 기대어 앉아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회사 새 프로젝트의 코드를 쓰고 있었다.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그녀는 가장 기분이 좋았다.멍멍멍!창밖에서 갑자기 들개의 짖은 소리가 들려왔다.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자 주변 여러 개가 동시에 맹렬히 짖어 댔다.창문을 열어보니 별장 주변에 떠돌이 개 여러 마리가 모여 있었다.무슨 이유인지 짖음 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예나는 점점 화가 났다. 인상을 찌푸린 그녀는 더 이상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탁자 위에 놓인 과일칼이 보였고, 그녀는 성큼 다가가 칼을 손에 쥐고 창밖으로 던지려고 했다.그러나 그녀는 그 자리에 뚝 멈춰 섰다.‘몇 번 짖었을 뿐인데, 나 지금 개를 죽이려고 한 거야?’‘어떻게 이런 무서운 생각을 할 수 있어?’“어디에서 몰려온 들개들이야? 훠이 훠이. 저리 가!”양 집사는 도우미들을 시켜 들개를 내쫓았다.예나는 드디어 조용한 근무 환경을 되찾았다.현석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자, 잔뜩 인상을 찌푸린 예나가 수심 깊은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는 게 보였다.이런 그녀의 모습에 현석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는 예나가 짖음 소리에 마음이 심란해졌을 거라고 예상했었다.조심스레 다가온 현석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달빛이 참 예뻐요. 산책이라도 할까요?”예나는 더 이상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예나가 외투 하나를 꺼내 입으며 말했다.“그래요, 좀 걸어요.”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정원으로 향했다.별장은 산 중턱에 자리 잡았고, 입구를 나가면 바로 공원이 있었다. 공원 울타리에 서면 전체 성남시가 한눈에 들어왔다.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하늘 아래에는 네온등이 도시를 수놓았다. 성남시는 원래 야경이 예쁜 도시로 손꼽혔다.그러나 예나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울타리에 몸을 기댄 예나는 갑자기 괴상한 생각이 들었다.‘여기에서 뛰어내린다면 해피 엔딩일까?’“예나 씨, 우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서슬기였다.무슨 악연인지, 밤 산책에 마주치다니.예나는 모르는 척 지나가려고 했으나, 서슬기 일행은 어느새 몸싸움으로 번지고 있었다.주현무가 손을 들어 세게 뺨을 내리쳤다.“내가 때리면 뭐? 서슬기, 내가 말해 두는데, 네가 서씨 가문 딸이라고 해서 내가 오냐오냐 해줄 거라는 생각은 접어두는 게 좋을 거야! 애초에 정말 너를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야. 결혼은 집안사람들이 하도 윽박질러서 한 거라고, 알아?”주현무 옆에 선 화려한 옷차림의 여자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음을 터뜨렸다.“서슬기 씨, 아이 낳고 나서 몸이 다 망가졌다면서요? 현무 오빠가 같은 침대에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역겹다고 그러더라고요. 같이 있어도 아무런 감정이 안든 다고…… 서슬기 씨는 그냥 얌전히 주씨 가문 사모로 계세요. 저는 현무 오빠를 도와서 사교 모임도 참가하고, 이것저것 도움을 줄게요. 서로 나쁠 건 없잖아요.”서슬기는 울화가 치밀어 가슴을 세게 내리쳤다.여태껏 이혼하지 않은 건, 절대 내연녀 뜻대로 해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주현무는 점점 더 과분한 행동을 취했다. 집에서 폭행하더니, 이제는 밖에서도 스스럼없이 주먹을 휘둘렀다.서슬기는 너무 화가 나서 이것저것 잴 것 없이 몸을 날렸다.주현무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서슬기의 머리카락을 확 낚아채며 말했다.“어이, 우리 두 가문 관계를 무너뜨릴 생각이 없다면, 얌전히 주씨 가문 사모로 살아. 조용하게.”“내가 주씨 가문 사모 자리에 벌벌 떠는 줄 알아? 너 같은 쓰레기는 죽어야 해!”서슬기는 손톱을 세우고 주현무를 할퀴었다.그러나 아무리 매섭게 공격해도, 성인 남성을 이길 수는 없었다.치열한 몸싸움에서, 서슬기는 또 뺨을 두 대나 맞았다.주현무가 다시 손을 들자, 하얀 손이 주현무의 팔목을 휘어잡았다.“쓸데없는 참견 말고, 갈 길 가세요.”주현무가 말하며 고개를 돌리다가 뚝 멈춰 섰다.“도, 도예나 씨.”황급히 손을 거둔 주현무가 바로 생글생글 미소를 지었다.“이게 무슨
예나가 차가운 얼굴로 주현무의 복부를 걷어찼다.서슬기를 위해 복수하는 게 아니라, 내연녀 때문에 아내를 폭행하는 쓰레기 같은 남자를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거의 전력을 다해 발길질하자, 주현무는 도로 끝으로 날아갔고 그 바람에 달려오던 차 한 대가 급정거를 했다.“도, 도예나…… 내가, 내가 뭘 잘못했다고…….”주현무가 가슴을 움켜쥐고 분노에 휩싸인 말투로 말했다.“소문이 틀린 게 아니었어. 당신은 정말 폭력적인 인격을 가진 게 틀림없어. 강씨 그룹을 빽으로 걸핏하면 사람을 줘패다니.”현석은 핑거 스냅으로 딱-하고 소리를 냈다.“강씨 그룹이 빽인 걸 알면, 입 단속 잘하는 게 좋겠어요.”주현무는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예나 하나도 벅찬데, 현석까지 합세하자 주현무는 힘에 버거웠다.바닥에 몸을 누인 주현무는 아프다고 꽥꽥 소리를 질렀다.현석이 고개를 돌려 예나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예나의 표정이 어두웠다. 꽉 쥔 주먹을 발견한 현석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괜찮아요. 우린 이만 돌아가요.”현석은 예나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주현무 같은 쓰레기에게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었다.“이다정, 빨리 구급차 불러!”바닥에 누운 주현무는 갈비뼈 어딘가가 부러졌음을 감지했다.그러나, 이다정은 쌀쌀맞게 말했다.“방금 강현석 씨와 도예나 씨에게 미움을 샀으니, 강씨 가문은 절대로 당신을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 우리 관계는 여기서 그만두죠.”“너, 너!”주현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아까는 너 때문에!”“그런 말 마요!”이다정이 차갑게 그를 바라보았다.“우린 원래 돈으로 맺어진 사이예요. 강씨 가문에게 밉보인 당신은 약속대로 돈을 줄 수 없을 것이고, 돈이 없는 당신을 내가 굳이 따라다닐 필요는 없죠. 현무 오빠, 저는 이만 돌아가 볼 게요. 몸조리 잘하세요.”이다정은 가느다란 허리를 비틀며 시야에서 사라졌다.“이런 빌어먹을!”주현무는 화가 나서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서슬기는 좋은 구경이라는 듯 주현무
내연녀를 두고 아내를 폭행하는 쓰레기 같은 사람은 정말 경멸스러웠다.차 운전자는 바로 시동을 걸고, 주현무를 내버려둔 채 자리를 떠났다.화가 나서 숨을 헐떡이던 주현무는 하마터면 저 세상으로 떠날 뻔했다.다행히 누워 있은 지 10여 분 만에 지나가던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신고해 병원에 갈 수 있었다.더욱 깊어진 밤.현석은 차가워진 예나의 손을 잡고 다시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랐다.얼마 뒤, 예나가 입을 열었다.“현석 씨, 최근 들어 감정을 더 억제하지 못하고 있어요. 내일 병원 같이 가줘요.”이미 여러 의사를 만나고, 약도 여러 종류로 바꾸어 봤지만, 증상은 좀처럼 낫지 않았다.“예나 씨는 공감 능력이 좋아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해서 그런 거예요. 저는 예나 씨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현석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앞으로도 이런 일을 목격한다면, 꼭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예나가 조금 멈칫하다가 말을 이었다.“내가 너무 감정적으로 굴고, 심지어 폭력적으로 보이지 않나요? 그러다가 현석 씨를 향해 주먹을 날릴 수도 있어요.”예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칩에 조종당해 자주 현석을 물었는데, 아직도 현석의 손등, 어깨, 가슴에는 예나의 이빨 자국이 남아있었다.사실 현석은 예나가 상처 주는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예나 씨가 어떻게 변해도 저는 예나 씨를 사랑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예나 씨 옆에 있을 게요.”현석의 목소리가 더 부드러워졌다.“한 달 전, 예나 씨가 아이들과 함께 날 찾으러 온 것처럼…… 미약한 희망을 품고 수많은 사람 속에서 날 찾은 것처럼…… 나도 예나 씨를 지킬 게요. 절대 예나 씨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불안에 떨던 예나가 점점 마음을 진정시켰다.집으로 돌아오고 현석은 예나와 밤을 새워 사랑을 나눴다.깊은 밤, 조용한 거리와 달리 인터넷은 또다시 시끄러워졌다.장서영의 해명 라이브가 종료된 지 세 시간 만에, 도예나 세 글자가 다시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락내리락했다.주현무의 병실
제훈은 체크무늬 잠옷을 입고 있었다. 나른하고 캐주얼한 차림과는 달리 아이의 눈빛이 예리했다.제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CCTV 영상은 이미 해킹해서 지웠는데, 주현무 인터뷰 영상은 리트윗이 천만이 넘어서 완전히 삭제하는 건 무리예요.”하나를 삭제하면 몇 백 개씩 늘어나니, 깨끗이 지우는 건 불가능했다.현석이 걸어가 덤덤하게 말했다.“영상을 지우는 게 해결 방법은 아니야.”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엄마의 병이 치료되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수 있어요. 언젠간 아빠가 감당하지 못할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현석이 고개를 들어 제훈을 바라보았다. 제훈은 아직도 혈액 교체 치료법을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었다.입술을 매만지며 현석이 말했다.“일단 이 일부터 해결하자.”현석은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전화 몇 통을 걸었다.“정재욱 씨, 주씨 그룹 주식을 세 시간 안으로 20% 인수하세요. 가격은 신경 쓰지 말고요.”“주성태 대표님, 제가 전화를 건 이유를 잘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어르신 (예나의 외할머니)…….”서씨 가문.이현숙은 연예 뉴스를 즐겨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현석의 전화를 받은 후에야 그러한 일이 벌어졌음을 알게 되었다.‘어젯밤 서슬기가 갑자기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그랬구먼.’전화를 끊자, 서슬기가 당황한 얼굴로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게 보였다.근엄한 얼굴의 이현숙이 서슬기를 불렀다.“이리 오거라.”“할머니…….”서슬기가 조심스럽게 걸어가며 말했다.“할머니, 제가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서요. 조금 있다가 다시 올 게요.”“무슨 할 일이 있는지 말하거라.”이현숙이 의자에 기대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곧이곧대로 말해!”“그게…….”서슬기가 고개를 떨구고 입술을 깨물었다.서슬기도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야 기사를 확인했다.주현무가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인터뷰했고, 예나의 폭력적인 성향이라는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사건 발생
어제 도예나는 서슬기를 위해 복수를 해주었다. 그러니 오늘은 서슬기가 보답할 차례였다.주현무가 입원한 병원 주위로 기자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그러다가 주성태 (주현무 할아버지)가 경호원을 대동하여 기자를 내쫓았다.“이런 빌어먹을 놈!”주성태가 병실로 들어서자마자 주현무에게 뺨을 날리며 말했다.“네가 얼마나 큰 사고를 쳤는지 알아?”“할아버지, 저 갈비뼈가 부러졌어요. 아프지 않냐 물어보지 못할 망정 뺨부터 때리 다니요! 제가 친손자가 맞긴 하나요?”주현무가 씩씩대며 말했다.“주씨 가문이 나를 위해 복수를 해주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어요. 그러니 저는 저대로 머리를 굴렸을 뿐이에요.”“이게 머리를 굴린 결과인 거냐! 주씨 그룹이 쫄딱 망하게 생겼어!”주성태는 주현무의 반대쪽 뺨을 내리치며 말했다.“당장 인터뷰로 공개적인 사과를 하거라! 네가 먼저 강씨 그룹 사모에게 시비를 걸어 이 사달이 났다고 말하거라!”“허! CCTV에 똑똑히 찍혔는데, 사과한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요?”주현무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어제 그 거리의 CCTV가 마침 고장이 생겨 미처 수리하지 못했다고 하더라. 그 장면은 애초에 찍히지도 않았어!”주성태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사과하거라. 강씨 그룹과 맞서서 좋은 일 하나 없어.”주현무는 여전히 내키지 않았지만, 할아버지의 압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다.바로 그때, 밖을 지키던 경호원이 급하게 달려왔다.“사모님이 병원 입구에서 인터뷰를 받고 있습니다.”주성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그 애는 왜 또 끼어들고 난리야!”“서슬기 그 사람은 함부로 입을 놀릴 위인이 못돼요.”주현무가 차갑게 말했다.“몇 년 전부터 여자를 만나고 다녀도, 주씨 가문 사모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언제 한번 소란을 피운 적이 있던 가요? 이젠 그 여자와의 사이도 끝났으니,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입바른 소리만 할 거에요…… 그리고 서슬기와 도예나 사이가 안 좋은 걸 아시잖아요. 이참에 도예나를 밟아
“평소 주현무 씨는 음주를 좋아했고, 음주 후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습니다. 저는 주씨 가문에서 가정 폭력에 시달렸고, 주현무 씨까 폭행을 휘둘러도, 제 아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모르는 척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어젯밤…… 도예나 씨가 저를 지켜주었습니다.”서슬기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저와 도예나 씨가 사촌으로 사이가 안 좋은 걸 알고 계실 거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괴롭힘을 당하자, 도예나 씨가 제 앞을 막아서 주었습니다.”“주현무 씨는 여자도 때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를 때리는 건 몰라도, 도예나 씨한테까지 손을 대려고 했고, 도예나 씨는 자신과 저를 지키기 위해 주현무 씨와 맞섰습니다.”“주현무 씨처럼 건장한 사람이 도예나 씨의 발길질에 도로 끝으로 날아갔 다니, 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도 강씨 그룹을 협박해 이득을 취하려는 속셈인 듯싶습니다.”예나는 눈을 뜨자마자 서슬기 인터뷰 영상을 확인했다.서슬기가 자신을 위해 해명 인터뷰를 하다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한국으로 돌아와 서씨 가문을 찾을 때마다, 서슬기는 늘 예나를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었고, 이번에도 모르는 척 구경만 할 줄 알았다.예나는 외투를 꺼내 입고 방을 나섰다. 그런데 옆 방 서재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 앞에 서자 제훈이 본인의 기사를 지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보였다.비록 서슬기가 인터뷰하고 있으나 예나에 대한 악플은 끊이지 않았다.네티즌들은 또 수많은 댓글을 쏟아냈다.[어제 오전에는 장서영, 밤에는 주현무. 폭행을 휘두른 자는 모두 도예나.][폭력적인 성향이 있는 건 맞아. 여러 인격의 소유자라서 자극을 받으면 폭력을 휘두르는 거지.][예성과학기술 회사의 옆 회사 직원입니다. 일주일 전, 회사 회의에서 도예나가 화를 냈었는데 연구팀 팀장이 병원에 실려 갈 뻔했어요.][정말? 그렇게 폭력적인 사람이었어?][무슨 병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예쁘게 생긴 것과 다르게 무서운 사람이었네.][이런 사람과 같이 사는 강현석이 불쌍해
“저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엄마가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세훈이 얌전하게 말했다.“요즘 일 때문에 너무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셔서 그래요. 어제 신혼여행 추천지를 찾아봤는데, 발리가 좋은 것 같아요. 아빠랑 여행이라도 다녀오시는 게 어때요?”예나의 손이 멈칫했다. 이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너희들이 일정을 잡아줄 수 있을까?”“좋아요!”세훈이 깡충 뛰며 말했다.“신혼여행은 일반적으로 한 달은 잡던데, 발리 말고 다른 재밌는 곳도 있는지 찾아볼 게요.”아이는 노트북을 안아 들고 신이 나서 여행지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열심히 메모하며 계획을 세웠다.예나는 창밖에서 천진하게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두 아이를 보며 또 한숨을 내쉬었다.‘내 몸에 이상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여섯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사모님, 아침 준비되었습니다.”양 집사가 공손하게 아침밥을 차려주었다.현석이 직접 만든 아침밥에는 소고기 장조림, 계란 후라이, 시금치 무침이 있었다. 색과 향을 모두 갖춘 아침상이었다.예나는 밥 한술을 크게 뜨고 반찬과 함께 먹었다. 현석의 음식 솜씨는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간단한 아침상이라고 할지라도 너무 맛있었다.소고기 장조림을 한입에 넣는데, 갑자기 속이 메슥거렸다.예나는 입을 움켜쥐고 화장실로 달려갔다.“사모님…….”양 집사가 그녀의 뒤를 따라가 화장실 앞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속이 안 좋으신 가요?”‘어젯밤 그 추운 날씨에 산책했으니, 몸이 추워서 그런 게 아닐까?’예나는 속이 메슥거렸지만, 아무것도 뱉어 내지 못했다.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식욕이 없어졌다.“사모님, 죽을 새로 만들어 올 게요.”“아니에요, 배 불렀어요. 그리고 방금 있은 일은 현석 씨한테 말하지 마세요. 괜히 걱정할 거예요.”아침부터 인터넷 여론을 처리하고, 아침밥도 차려주었는데, 고작 이런 작은 일로 또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예나는 두꺼운 외투로 갈아입고 세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