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 분위기가 무거워졌다.연구팀 팀장은 회사 설립 초기 멤버로 예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고 이에 대담하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해외에서도 마이크로 칩을 규정한 법률이 있습니다. 법의 구속하에 이 산업이 그렇게 난잡하고 무질서하게 발전하지는 않을 겁니다. 저희도 업계 지침을 준수하고…….”“그만하세요!”예나의 표정이 굳어버렸다.“그래서 제 반대에도 당신들은 이 프로젝트를 강행하겠다는 말인가요?”“대표님, 그 뜻이 아니고요.”팀장이 계속 말을 이었다.“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쨍그랑!예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머그잔 하나를 들어 연구팀 팀장을 향해 던졌다. 팀장의 얼굴을 스쳐 바닥에 떨어진 머그잔은 바로 산산조각이 났다.이 광경에 회의실 모두가 깜짝 놀랐다. 다들 예나가 폭력적인 행동을 취할 줄은 예상 못 했었다. 놀란 건 예나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늘 폭력보다는 대화로 일을 해결하던 예나였는데…….‘며칠 전 세윤이가 발을 밟았을 때도 이렇게 갑자기 화가 났었어.’“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합시다.”예나는 미간을 잡고 말했다. 그녀가 회의실을 나서자 긴장한 분위기가 드디어 풀어졌다.“대표님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거 아니야? 왜 갑자기 이렇게 화를 내시는 거지?”“대표님은 이 프로젝트가 하고 싶지 않으신 게 분명해. 그러니 우리도 다시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어.”“대표님은 늘 직원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사람이었어. 의견 충돌이 생겨도 부드럽지만, 강단 있는 모습으로 우리와 소통했었는데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물건을 던진 적은 없었다고.”“지금 장씨 가문 후계자 경쟁 중 이시잖아. 경쟁에 문제가 생기셔서 기분이 별로일 수도 있지.”“어쨌든 이 프로젝트는 일단 모두 접어 둬. 대표님 기분이 좀 나아지면 다시 얘기해 보는 게 좋겠어.”회의실 안에서 사람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지만, 대표 사무실은 더없이 조용했다.예나는 창가 앞으로 서서 풍경을 바라보며 조급하던 마음을
“큰 오빠가 책 읽어주고, 둘째 오빠는 그림 그려주고, 셋째 오빠는 피아노 연습 같이 해줬어요.”수아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엄마가 책 읽어주면 안 돼요?”예나는 돌아오는 길에 먹은 약효 때문인지 머리가 무거워 빨리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예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엄마 30분만 먼저 자야겠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책 읽어 줄게.”예나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곧장 2층으로 올라가 문을 가볍게 닫았다.수아의 얼굴에 실망한 표정이 드러났다.“엄마 엄청 피곤해 보여. 저렇게 힘들어하는 엄마를 왜 아빠는 회사로 출근시킨 걸까?”“엄마는 해외에서 보름 동안 지내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회사로 나가지 못했잖아. 엄마가 직접 처리해야 할 일이 많나 봐.”세훈이 입을 열었다.“일단 엄마가 주무시게 방해하지 말고 저녁 식사 때 엄마 깨우러 가자.”제훈은 고개를 숙여 블록을 쌓고 있었는데 점차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이는 자신이 해결해 줄 수 없는 무기력감에 사로잡혔다.“수아야, 우리 숨박꼭질 할래?”세윤이 바로 표정을 고쳐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수아가 숨으면 내가 찾을 게.”수아의 표정도 다시 밝아졌다.“첫째 오빠랑 셋째 오빠도 같이해.”세훈이 손에 쥔 책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우리가 백까지 셀 테니까 그동안 숨어, 알았지?”수아는 바로 위층으로 달려갔다. 하얀색 치맛자락이 바람에 흩날리고 마치 작은 나비 같았다.“하나, 둘, 셋…… 아흔아홉, 백.”숫자를 세고 나서 세 아이는 동시에 눈을 떴다.세윤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위층으로 올라가는 소리가 들려 왔어. 빨리 올라가자.”“쉿!”세훈이 손가락으로 세윤의 입을 막았다.“조용히 해. 수아를 놀라게 해야 지.”그리고 두 아이는 제훈의 뒤를 따라 몰래 위층으로 올라갔다.방학이 되어 집에 남게 된 아이들이 가장 자주 하는 놀이는 바로 숨바꼭질이었다. 수아와 세윤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이며, 제훈이와 세훈이와 함께한다면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방문이 세게 닫히고 예나는 바로 정신을 차렸다.‘내가 대체 뭘 한 거야? 왜 또 아이들에게 화를 낸 거지? 약을 먹어서 기분이 많이 가라앉았는데도 왜 이런 거야.’예나는 자기 머리를 부둥켜안고 이불 안으로 몸을 숨겼다.한참 후 에야 예나는 진정을 되찾았다. 컴퓨터를 꺼내든 예나는 아래층 거실의 감시 카메라로 네 아이들이 얌전히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거실은 너무 조용하다 못해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카메라를 가까이 당기니 눈시울이 빨개진 수아가 보였다. 세윤은 무릎 위로 책을 올려 두고 있었는데 한참 동안 한 페이지도 펼치지 않는 걸 보니 방금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세훈이와 제훈이도 책을 펼친 채로 멍하니 앉아있었다.‘또 아이들을 놀라게 했어.’자책, 미안함, 불안함…… 온갖 감정이 예나를 뒤엎었다.얼마 뒤 정원 쪽에서 차 한 대가 들어섰고 현석이 돌아왔다. 예나는 컴퓨터를 닫고 세수를 한 뒤 아래층으로 내려왔다.네 아이는 들어오는 현석을 한번 보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예나를 또 한 번 번갈아 보며 조용히 제 자리를 지켰다.눈치 빠른 현석은 이상한 분위기를 빠르게 감지했다. 바로 예나의 허리에 손을 감은 현석이 물었다.“오늘 회사는 괜찮았어요?”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일단 밥부터 먹어요.”양 집사는 사람을 시켜 빠르게 식탁을 세팅했다. 풍성한 한상 차림이었지만 여섯 식구는 입맛이 없었다.예나는 몇 입 먹다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엄마가 소리 질러서 미안해, 얘들아.”“괜찮아요, 엄마.”제훈이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앞으로 엄마가 주무실 때 저희도 조심할 게요.”예나가 고개를 저었다.“엄마가 무슨 말을 하든 다 홧김에 한 거니까 절대 마음에 담아주지 마. 엄마는 영원히 너희들을 사랑해.”세윤이 바로 눈물을 터뜨렸다.“엄마, 정말 날 사랑해요?”‘그런데 엄마는 날 미워하는 것 같아.’예나가 아이를 빠르게 품 안에 안고 달랬다.“엄마가 회사 일 때문에 기분이 안
“알겠어요, 아빠.”제훈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아빠, 엄마가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먼저 올라가서 쉬세요.”현석이 손을 들어 제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똑똑한 제훈이는 눈치도 빠르고, 이해심도 깊어. 이런 아이가 옆에 있었으니, 예나 씨가 그동안 버틸 수 있었던 거겠지.’현석은 예나를 부축해 위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닫자 예나는 현석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조용히 흐느꼈다.“현석 씨도 알고 있었죠. 알고도 나한테 숨겼던 거죠?”예나가 울먹이며 말했다.“마이크로 칩 피해자 인터뷰 자료를 찾아봤는데 피해자들의 최후는 모두 좋지 못했어요. 아무리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다고 해도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했는데 결국 나도 그렇게 될까요?”“예나 씨, 그런 말 하지 마요!”현석은 그녀를 달랬다.“마이크로 칩의 가장 큰 후유증은 분노 조절 장애인데 화를 자주 내는 건 별일 아니에요. 날 봐 봐요. 강씨 그룹에서 가장 화가 많은 사람이라면 바로 나를 꼽을 텐데 회사를 멀쩡히 잘 운영하고 있잖아요.”예나는 이런 현석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사람들이 사석에서 현석 씨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요?”“당연하죠. 악마, 라고 하잖아요.”현석이 예나의 콧등을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앞으로 예나 씨도 별명이 생길 걸요?”예나가 현석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저승사자.”“뭐라고요?”예나는 홧김에 주먹을 쥔 손으로 현석의 가슴을 콩콩 내리찍었다.“아내가 회사에서 왕따당했으면 좋겠어요?”현석이 예나를 끌어안았다.“나는 그 어떤 순간의 예나 씨를 모두 사랑해요. 아이들도 점점 커가고 이젠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외부 사람들의 생각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뭐라고 떠들든 우리 가족만 행복하게 오손도손 잘 살면 되죠.”예나는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흥, 하고 콧방귀를 뀐 예나가 입을 열었다.“앞으로 누가 날 저승사자라고 부르면 다 현석 씨 탓이에요!”현석은 그녀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둘은 바로 침대로 향했
현석의 등장에도 장서원은 크게 놀라지 않은 눈치였다.보름 전 현석이 직접 오민석 부장을 제압해 리조트 프로젝트를 진행시킨 일을 장서원도 전해 들었었다.만약 현석과 예나와 정말 이혼할 사이였다면, 굳이 건축부의 부장에게 미움을 살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장대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모두 모였다면 다들 이리로 와서 앉게.”장씨 가문은 총 5명의 식구였고, 강씨 가문의 식솔 6명이 함께 모여 총 11명이 옹기종기 사이좋게 자리를 잡았다.현석은 아직 30이 되지 않는 나이임에도 자리에 앉자, 그의 주변에는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보였다. 장씨 가문은 비록 역사가 유구한 가문이지만 권력을 따지면 강씨 가문에 비할 수가 없었다.장대휘가 현석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하는데 강현석 씨가 바로 그런 모양이네요.”“편하게 현석이라고 불러주세요.”현석이 자세를 낮춰 말했다.“저는 예나 씨의 남편 되는 사람입니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할아버님.”옆에 앉은 장서영의 표정이 깜짝 놀라 굳었다.장서영은 장씨 그룹 대표로 강씨 그룹 현석과 적지 않은 왕래가 있었다. 볼 때마다 넘치는 카리스마와 과감한 선택으로 깊은 인상이 남았었는데 그렇게 잘난 대표가 예나 때문에 머리를 숙이는 노릇이라니 장서영은 기가 찼다.‘이혼한다고 떠들썩하더니, 왜 이렇게 사이가 좋아 보이는 거야? 어쩐지 최근 리조트 프로젝트에 아무리 태클을 걸어도 쉽게 쉽게 넘어간다 했어…… 강현석이 손을 써주고 있었던 모양이야.’장서영이 주먹을 꽉 쥔 채로 억지 미소를 보였다.“몇 달 동안 하도 이혼설로 말이 많다 보니 벌써 이혼한 줄만 알았어요.”이지원도 말을 보탰다.“우리 사촌 언니가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형부가 바람을 피워도 모른 척 넘어가는 거겠죠.”그녀의 말에 현석이 차가운 시선을 보내왔다. 시선은 마치 칼날이 되어 지원을 조각낼 것만 같았다.“지원아, 당장 사과하거라!”장대휘가 호통쳤다.“아무것도 모르는 기자들이 헛소문을 퍼뜨
겉으로 보기에는 예나를 호통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장서영에게 반격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었다.이런 광경에도 네 아이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며칠 동안 행여나 엄마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아이들은 늘 조심했었다.‘고모할머니와 이모가 먼저 시비를 걸어왔는데 엄마가 이 정도로 반격한 건 이미 많이 참으신 거야.’드디어 식사 자리가 조용해지고 현석이 입을 열었다.“저희 부부 사이의 일은 그 어떤 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고모님께서 물으시니 간단하게 대답하겠습니다. 저와 예나 씨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제삼자의 가입 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이혼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 할아버님과 아버님께서 안심하시길 바랍니다.”장서원은 현석의 소유욕을 겪어봤었다. 현석은 자기 아내와 자식을 내팽개칠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장서원이 술잔을 들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그런 안 좋은 이야기는 접어두고, 우리 사위 술 한잔 하세.”장서원이 분위기를 띄우자, 식사 자리를 다시 화기애애 해졌다.다만 장서영과 이지원의 안색은 눈에 띄게 안 좋았는데 젓가락을 한참이나 쥐고 있어도 반찬 한번 집지 않고 있었다.세윤이 고개를 돌려 배시시 웃었다.“이모는 우리 엄마보다 두 살 밖에 어리지 않는데 엄마보다 훨씬 늙어 보여요. 책에서 그랬는데 화를 자주 내면 빨리 늙는 대요. 책에서 말한 게 진짜인가 봐요.”이지원은 그 말에 뒷목 잡고 쓰러질 뻔했다.‘겨우 22살인데, 어딜 봐서 늙어 보인다는 거야! 이 쪼끄마한 녀석이!’이지원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더니 세윤을 혼내기로 마음먹었다. 예나가 빠르게 눈치채고 말했다.“식사 자리에서는 밥 먹어야 해. 허튼소리 하지 말고.”“네, 엄마!”세윤은 빠르게 고개를 돌려 밥을 한 큰 술 떠서 입에 넣었다.지원은 너무 화가 나서 터질 것만 같았다.‘태어나서 부터 이곳에서 자란 내가 왜 이방인같이 느껴지는 거야? 그래도 내일이면 후계자 결과 공개일이니까, 모든 사람의 주목하에 장씨 그룹의 차세대 후계자가 될 수 있
이지원은 화를 참지 못하고 주먹을 꼭 쥐었다.이씨 성이라는 이유 하나로 지원은 늘 명훈보다 한 수 아래였다.‘명훈이라면 그렇다 해도, 도예나 이깟 사생아가 내 머리 꼭대기로 기어오르게 내버려둘 순 없어!’지원이 또각또각 앞으로 걸어오며 냉소를 터뜨렸다.“도예나, 네가 강씨 가문 사모라고 해서 장씨 가문에서 입지가 생길 것 같아? 꿈 깨! 난 곧 장씨 그룹 후계자가 될 거고, 장씨 그룹이 내 손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너를 장씨 가문에서 내쫓을 거야.”예나의 마음속에도 화가 부글부글 치솟았다. 예나는 주먹을 꽉 쥔 채로 화를 참아보려 했지만 더 이상 제어가 되지 않았다.“결혼 전 삼촌이랑 이런저런 관계를 맺고도 도씨 가문에 시집을 간 네 엄마 말이야, 정말 어떻게 그럴 수 있어?”예나가 아무 말없자 지원은 더 흥이 나서 말을 이었다.“너도 그런 네 엄마를 닮아 18살에 남자를 꼬셔 혼전에 아이를 네 명이나 낳았잖아.”지원은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예나의 이마를 툭툭 건드렸다.예나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이성보다 행동이 한 발 빨랐다. 예나는 빠르게 지원의 식지를 낚아채며 말했다.“너희 어머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손가락질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시지 않은 거니?”그 말을 끝으로 예나는 손에 점점 더 힘을 주었다.까드득!뼈마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아!”지원의 비명이 장씨 별장에 떠들썩하게 들려왔다.이어 무질서한 발걸음 소리가 화장실로 달려왔다.“엄마!”지원이 부러진 손가락을 움켜쥐고 장서영의 품에 안겼다.“엄마, 도예나가…… 내 손가락을 부러뜨렸어요…… 너무 아파요…….”지원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말 한마디도 겨우 내뱉았다.장서영이 고개를 숙여 지원의 손가락을 확인했는데 휘어진 각도로 보아 골절이 틀림없었다. 장서영은 순식간에 화를 참지 못하고 욕을 퍼부었다.“어미도 없이 자란 근본 없는 네까짓 게 감히 내 딸을 때려?”그리고 장서영이 손을 뻗어 예나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 장서원이 빠르게 둘 사이를 막아서려고 했으나 현석이 한
도예나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감히 내 어머니를 모욕하길래 작은 교훈을 준 것뿐이에요.”“아무리 네 어미를 욕해도 말로 하면 되지, 왜 아이 손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야!”장서영이 노발대발하며 물었다.“저는 윗사람을 모욕하면 안 된다고 배워서요.”예나가 가방을 열어 카드 한 장을 꺼냈다.“안에 20억 정도 있을 거예요. 치료비랑 위자료로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럼 됐죠?”“아니!”지원의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들려왔다.“너도 손가락이 부러지는 고통을 느껴봐야 해! 네 병원비는 내가 40억 물어 줄게!”“싫으면 말고.”예나는 카드를 도로 가방에 넣었다.“현석 씨, 아이들이랑 집으로 돌아가요.”현석이 덤덤하게 말했다.“이지원 씨가 장모님을 모욕한 건 저희 쪽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믐날인 만큼 문제 삼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이지원 씨도 조심 해주시길 바랍니다.”그의 차가운 시선이 이지원을 향했다. 이건 그녀를 향한 경고였다.현석은 한 손으로 예나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세훈의 손을 잡았다. 세훈은 동생의 손을 잡았고 여섯 식구는 나란히 장씨 별장을 나섰다.여섯 명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지원은 엉엉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대체 왜 나를 다치게 하고도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 거예요? 엄마, 할아버지, 삼촌, 제가 그렇게 만만해요? 제가 당하고 있는데 왜 보고만 있냐고요!”장서원이 차갑게 지원을 쳐다보았다.“우리에게 있어 예나의 엄마는 절대로 넘으면 안 되는 선이야. 내가 직접 듣지 못한 것에 행운이라고 생각하거라. 내 귀로 듣는 날이면 난 너 같은 조카 다시 보지 않을 것이야.”“그럼 도예나 엄마를 좀 들먹였다고 손가락을 부러뜨려도 되는 거예요?”지원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저는 기껏해야 모욕죄이지만 도예나가 한 건 고의상해죄에요! 저 신고할 거예요!”장서영이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장서원에게 말했다.“오빠, 딸을 너무 오냐오냐 대하는 거 아니에요? 원래 엄마 없이 자란 아이
온라인 댓글 창에도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네티즌들이 댓글을 쏟아냈다.빠르게 정신을 차린 진행자가 술렁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말을 보탰다.“다들 잊으셨나요? 강연 님께서 또 좋은 소식도 전하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이 다시 집중했다.이어 사람들은 숨소리를 가다듬었고 강연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저와 전서안 씨는 멀지 않아 곧 결혼할 예정입니다!”“!!!”[와아아아! 이날만을 기다렸다고!][엉엉 우리 강전 커플이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고.][행복하세요! 두 사람 꼭 평생 행복해야 해요!]무대 아래 환호 소리가 이어지고 어느새 시상식 전체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강연은 이 광경에 고개를 돌려 무대 뒤의 서안과 시선을 마주했다.드디어 결혼....9월 8일, 결혼에 적합한 어느 날.사회부, 경제부 기자는 물론 연예 기자까지 총출동했다.각종 포털에서 수아와 안택, 그리고 강연과 서안의 성대한 결혼식에 대한 기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최고 재벌가인 강씨 가문의 두 공주님이 결혼하는 날, 더구나 결혼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대단한 청년. 한국에 있어 수백 년 가도 한번 볼까 말까 한 성대한 구경거리였다.커다란 식장에 손님들로 붐비고 컬러 풍선이 이곳저곳에 날아다녔다. 꽃으로 뒤덮인 예식장과 레드카펫은 식장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졌다.강씨 가문, 전씨 가문, 그리고 안택의 가족 모두 유명한 가문이었으므로 상업게, 정치계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출동했다.그렇다 보니 경찰 인력도 많이 투입되어 치안을 유지했다.이번 결혼식에는 그 어떤 매체도 초대하지 않았고, 다만 직접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했다. 그리고 주요 매체들과 협력해 다들 생중계를 퍼 나를 수 있도록 했다.그렇게 만인의 주목 아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수아와 강연의 드레스는 F 국왕실 전용 재단사가 시간과 심혈을 기울여 한땀 한땀 수놓은 것이었다.두 사람이 개인 헬기에서 내리고 결혼식장에 모습을
강씨 가문은 또 한 번 침묵에 빠졌다.세 언니 중 나이란은 이미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청아와 예은은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그러자 감동에 젖어있던 강씨 세 형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지금 다른 남자 때문에 우는 거야? 날 앞에 두고?’그러나 세 형제가 화를 낼 차례는 주어지지 않았다. 강현석이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강현석은 앞으로 다가가 훌륭한 두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몇 년 사이 조금 늙어버린 강현석은 어느새 상권을 주름잡던 그 모습이 사라졌다.“앞으로, 내 보배 딸을 잘 부탁하네.”안택과 서안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두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현석은 이미 자리를 벗어났고, 어느새 도예나가 강현석의 옆자리를 지켰다.도예나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다 큰 자식들과, 대단한 두 사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축하하네.”그리고 도예나는 강현석의 손을 잡고 거실을 벗어나 자리를 비켜줬다.거실은 잠시 침묵하다가 격동의 비명이 들려왔다.“아아아 드디어 성공했어!”“축하해! 드디어 결혼하네.”“두 공주님이 왕자님을 찾아가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아.”강씨 가문에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2층 베란다에서.강현석은 집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도예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우리 아이들이 이제 다 컸네요.”...그리고 시상식은 예정대로 거행되었다.강연의 “아기” 사건으로 대부분의 매체가 시상식 앞을 채웠다. 게다가 인원을 계속 보충해 이 파격 소식을 맞을 준비를 했다.무대 위 강연이 트로피를 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그리고, 아주 중요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그 말이 들리고 인터넷은 아예 서버가 막혀버렸다.무대 아래 모든 배우와 매체, 그리고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소식을 들으려고 했다.“강연 님! 드디어 전서안 씨와의 결혼 사식을 밝히려는 겁니까?”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의 기자가 앞으로 달려가지 못해 안달인 듯 외쳤다.“다들 급해
“아버님, 안녕하세요!”안택과 전서안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나이가 많은 안택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아버님, 이건 제가 3년 전부터 준비해 온 겁니다. 제 명하의 모든 재산, 가족 기업 주식, 부동산, 땅, 주식 등 모든 걸 수아의 이름으로 전환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 제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은 수아의 소유입니다.”그 말을 들은 수아가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다.모든 재산을 본인의 이름으로 돌리다니. 안택은 수아에게 단 한 번도 이 사실을 밝힌 적이 없었다. 다만 묵묵히 행동으로 움직였다.“아버지...”수아가 강현석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느새 촉촉해졌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가족을 제외하고 수아를 위해 이렇게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오직 안택일 것이다.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겉이 아닌 깊숙이까지 수아를 사랑했다.세훈은 안택이 건넨 문서를 읽더니 다시 강현석에게 넘겼다.강현석은 몇 장 넘기다가 깊은 고민에 잠겼다.그리고 아무 말없이 수아를 다독이다가 안택을 향해 말했다.“물어보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다네.”안택이 바로 대답했다.“편하게 말씀하세요.”“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자네의 사업과 내 딸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질문을 들은 안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고민하지도 않고 답했다.“제 사업이 아니라, 제 목숨으로 수아의 목숨을 구한다고 해도 수아를 선택할 겁니다.”“그렇다면 자네 가문과 내 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강현석이 계속해서 물었다.“그래도 수아를 선택하겠습니다. 제 가문은 이미 수백 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충분히 많은 우수한 자녀가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고 제가 굳이 나설 일은 없습니다.”안택이 대답했다.“그렇다면, 자네 부모님과 가족은?”강현석이 안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물었다.“자네 부모, 가족들과 수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그 물음에 안택이 잠시 침묵했다.진
동시에 제훈도 수아에게 문자를 보냈다.[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건 바로 옆 동네야.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계셨던거야.]...‘역시!’차가운 인상의 수아가 살기를 드러냈다.‘그래요, 아버지. 이번에는 어디로 숨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요!’스타일링을 마친 강연이 시간을 확인하자 시상식과 2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30분 정도 남겼다.그리고 수아는 몰래 서안과 안택을 불러 아버지 강현석이 들어오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그 옆에는 흥미진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는 세훈 부부, 세윤 부부, 그리고 제훈 부부가 있었다.강씨 두 자매의 노력 아래 세 언니는 이미 제 편으로 만들었고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했다.이어 세 언니를 편에 끌어들이고 나니 세 오빠도 한 편으로 되었다.강씨 자매는 정말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그러자 강현석과 도예나가 대문을 넘어서는 즉시 “포위” 당해버렸다.세 언니는 도예나를 이끌고 거실로 들어갔고, 강현석은 두 딸에 의해 양팔이 포위당한 채로 소파에 앉았다.세 아들은 각각 다른 퇴로를 맡고 강현석이 도망갈 수 없게 했다.이어지는 건 두 자매의 맹공격!“아버지! 우리 이제 다 컸으니 제발 각자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그래요. 아버지! 우리가 보아 같은 귀여운 아이를 낳아 아이들이 외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듣고 싶지 않으세요?”“아버지, 계속 미루다가는 보배 딸들 다 늙어요!”두 딸의 이어지는 애교 세례에 강현석은 정신이 혼미해졌다.“잠, 잠깐만!”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강현석이 물었다.“송이가 임신해 아기가 있다는 말은 대체 뭐냐?”수아와 강연이 눈을 마주했고 강연이 머리를 쳐들며 말했다.“지금은 없지만, 원하면 언제든지 생길 거예요!”강현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꺼낸 강현석이 기침을 연신 해댔다.“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수아는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이건 시작일뿐이에요. 동생에게 생길 거면 나도
직원의 목소리는 생방송을 타고 큰 파동을 일으켰다.[강연 여신님에게 아기가?][전서안이 아버지가 되는 거야?][거봐, 내 말이 맞잖아. 두 사람이 몰래 결혼했다니까?][두 사람의 결혼을 왜 생방송으로 틀지 않은 거야!!!]생방송 댓글이 뒤집어지고 있는 걸 강연은 전혀 알지 못했다.“우리 집 보배 아기니까 잘 부탁드려요.”댓글은 더 난리가 벌어졌다.[????][!!!!]각종 의문 기호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강연과의 통화가 끝난 뒤에도 댓글은 끝나지 않았다.네티즌들은 감동에 북받쳐했다.시상식 관계자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이미 실시간 검색어가 초고속도로 상승 중이었다.클릭하면 팬들이 꺅 꺅-하며 환호하는 댓글이 넘쳤다.두 사람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좋은 감정을 이어가자,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팬들도 서서히 인정했다.그사이 강연의 성장은 아주 놀라웠다. “그 시절,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여자 신인상을 받더니 “스파이”를 통해 여우주연상까지 차지했다.그 이후로 찍었던 영화도 모두 훌륭한 성적을 받아냈다.오늘 밤 시상식에서도 그중 한 영화로 상을 받기로 되어있었다.서안과 강연은 이제 신분이면 신분, 외모면 외모, 인품이면 인품, 경력이면 경력, 모든 게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다.두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고 과거 이야기까지 전해 들은 후로는 두 커플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과반수를 이뤘다.그러니 오늘 이 깜짝 뉴스에 다들 격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었다.유독 전서안 본인과 강씨 가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심정이었다.수아 때문에 도피 중이었던 강현석이 가장 먼저 가족 톡방에 모습을 드러내며 질문을 쏟아냈다. 강현석도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그 자식이 내 보배 딸을 임신시켜?][정말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지!]스타일링을 받던 강연은 미처 소식을 전해 받지 못했고 수아가 답장했다.[아빠, 휴가 중 아니었어요? 신호가 나빠서 연락
강현석은 여자는 안정된 직장이 있거나, 든든한 가족이 있다면 한평생 행복할 것이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더구나 강현석은 절대 자신의 아이디가 아닌 아내 도예나의 핸드폰으로 그러한 글을 남겼다.그래서 초반에는 강씨 형제들이 어머니마저 결혼을 반대하는 게 아닐까 싶어 두려움에 떨었었다.하지만 제훈이 아버지의 계정을 해킹해 글을 어머니의 아이디에 옮겨 전송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제야 강씨 형제는 안심했다.장인어른이 사위를 어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그건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같은 이치였다.하지만, 이 집안에서는 아버지와 딸들의 투쟁으로 조금 바뀌었다.두 사람의 투쟁은 어느새 3년 가까이 이어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18살 소녀 강연은 21살 아리따운 여인이 되었다.아버지와의 오랜 투쟁 끝에 강연과 서안은 약혼식을 마쳤고 연예계 공식 커플이 되었다.그리고 세훈, 세윤, 제훈은 모두 결혼을 마쳤고 단란한 가정을 차렸다.세훈에게는 두 살배기 귀여운 아기도 생겼다.나이란도 임신했다. 어느새 막달에 진입한 나이란은 동그랗게 나온 배를 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아했고 세윤이 깜짝 놀라며 옆에 바짝 붙어 곁을 지켰다.제훈과 예은은 신혼여행을 떠났다. 예은은 아이보다는 사업에 더 비중을 둘 생각이었다. 제훈도 아기 욕심이 급하지 않았으므로 두 사람은 다행히 의견 차이 없이 합의를 보았다.이제 수아만 남겨졌는데, 매일 오빠들과 동생을 보는 눈빛에 큰 원망이 담겨있었다.세 오빠는 결혼하고 동생도 약혼식을 올렸는데, 안택과 저만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다. 가장 빨리 청혼하고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으나 결혼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수아도 강연처럼 투쟁을 거쳐 약혼하려고 했으나 한번 당한 강현석이 또 당할 리가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다시 세계 여행을 떠난 뒤로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매번 오늘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연주회 준비 때문에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괜찮아요. 전 늘 여기 있을 거예요.”안택이 수아를 다독였다. 수
이연수의 미소는 진심을 담았다.강연을 돕기로 마음먹었던 건, 강연이 실제로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가 있었고, 오디션 현장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배역을 따내겠다는 그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자신이 건넨 도움이 기회가 되어 돌아와 이연수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이연수의 말을 들은 강연도 마음이 따뜻해졌다.다들 연예계는 신경전이라 모두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이곳에는 꿈을 좇는 이를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기 나름이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따뜻함과 진심이 있기 마련이었다.강연은 차근차근 촬영을 해나갔다.강씨 형제들의 연애도 순항 중이었다.세훈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송청아 역시 적극적으로 자기 뜻을 보이며 함께 상의하며 결정했다.둘의 공통된 의견은 결혼식은 성대할 필요가 없으며 따뜻하고 오래 기억에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둘째 세윤은 아직 결혼할 “자격”이 없었으므로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그래서 요즘 새로운 취미인 맛집 탐방을 시작했다.나이란 역시 먹짱이었는데 세윤이 앞서 맛집을 개발하면 나이란과 함께 찾아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짧은 보름 안에 살이 3킬로나 쪄버리고 말았다.그러자 강연과 통화를 하거나 만날 때면 나이란은 항상 30분 동안 찡찡거렸다.“강연아!! 나 3킬로가 쪘다고! 다이어트 할 거야. 다시 안 먹어! 엉엉!”강연은 나이란의 다부진 몸매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아니야 어디 뺄 데가 있다고 그래? 우리 세윤 오빠는 딱 너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정말?”나이란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드러냈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그렇게 강연은 드디어 조용한 대기실을 되찾을 수 있었고 대본을 읽으며 다음 촬영을 준비할 수 있었다.셋째 제훈은 열애 중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송예은을 찾아 데이트했다.송예은이 촬영이 있는 날이면 촬영 장소를 찾아갔고, 선남선녀가 나란히 있는 모습은 시선을 끌었다.그러자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제
안티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신인 배우 강연의 연기는 정말 그 캐릭터 본연의 매력을 연출했다. 자본을 쏟아부어 배역을 따내는 연기가 아닌 캐릭터 스스로가 된 듯한 연기였다.초반에는 학생들과 두루 어울리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소녀였지만, 적군에게 잡혀 처형장으로 나갈 때의 강렬한 정신과 격앙된 태도는 반전을 자아냈다. 백연주의 경험과 강연의 연기는 수많은 애국열사를 대표했다.강연은 선인들의 정신을 캐릭터에 쏟아부어 어리지만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연기를 녹여냈다.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옅게 지어내는 미소...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쓰러져도 여전히 높은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는 태양.그 장면 속 강연의 미소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예고편을 모두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 대단한 “백연주” 역을 강씨 가문 “공주님”인 강연이 맡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처음에는 경악하다가 이어 찬사가 이어졌다.강연은 정말 실력이 있는 배우였다. 이연수를 비롯한 배우들의 글도 모두 사실이었다.그들은 그제야 안티팬들의 선동에 넘어갔던 걸 깨달았다.진실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강연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호감도 생겼다.[언니 연기는 정말 대단해요. 영원히 함께할게요!][언니 힘내세요! 차세대 연기 대상은 언니꺼에요!]...강연을 향한 찬사 목소리가 높아지고 송 감독은 때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 한 발을 발사했다.“스파이” 공식 홈페이지에 오디션에서 “이가을” 연기한 강연의 촬영분이 공개되었다.이 오디션 영상의 공개는 온라인을 또 한 번 들끓게 했다.“백연주”를 통해 강연의 연기 재능을 미리 맛볼 수 있었는데 “이가을”처럼 복잡한 캐릭터에 대한 연기도 완벽하게 소화를 하자 네티즌들은 두손 두발을 모두 들게 되었다.[정말 무서운 연기 괴물이야!][역시 연기의 신 전서안이 마음에 둔 여자는 달라도 달라.]그렇게 온라인 소동은 막을 내렸다. 강연은 사람들의 호감도 사고 차세대 연기의 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강연은 빠르게 “스파
“뭔데? 무슨 반전?”송 감독이 재빠르게 물었다.“우리에게 편이 생겼어요!”“무슨 편? 지금이 언젠데 아직도 네 편 내 편을 나눌 여유가 있는 거야?”송 감독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아니요! 이걸 좀 보세요!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강연 씨를 위해 해명하고 있어요! 우리가 섭외한 것도 아닌데 먼저 나선 거라고요!”“뭐라고?”송 감독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줘 봐.”그러자 스태프가 빠르게 핸드폰을 건넸고 홈페이지의 댓글이 순식간에 늘어나고 있었다.[배우 이연수: 저는 강연 씨와 함께 촬영했었습니다. 강연 씨는 정말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절대 갑질한 적도 없으며 연기를 묵묵히 소화해 내는 천생 배우였어요. 이런 재능을 저희는 아주 부러워했는걸요.]그리고 이연수는 짧은 동영상을 함께 게재했는데 “그 시절, 우리는” 작품에서 강연의 촬영분이었다.“감독님, 이 여배우는 ‘그 시절, 우리는’ 작품의 배우인데요, 강연 씨와 사이가 좋은가 봐요. 이분이 직접 나서자 적지 않은 배우들이 함께 참여했어요. 조연 배우들이라 주연 배우들만큼 임팩트가 큰 건 아니지만 오히려 더 진실성 있게 다가간 것 같아요.”그건 사실이었다.요즘 사람들은 여론에 빨라 어느 유명한 배우가 이런 글을 남겼다면, 오히려 소속사에서 지시한 것이겠니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조연 배우, 스태프, 그리고 촬영 알바생들과 같은 사람들이 남긴 글은 진정성이 넘쳤다.더 중요한 건 그들이 던진 작은 돌멩이는 잔잔한 파도에 티 나지 않는 파울을 남겼고, 이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지 않았다.배우가 네티즌들의 호감을 어느 정도 산 다음, 이제 주연 배우와 촬영팀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모든 건 걸쳐야 할 과정이 있는 법이었다.빠르게 읽어 내려간 송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휴, 드디어 목숨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 전서안 그 자식이 두려워서 어디 살 수 있겠나, 참.”“송 감독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이해가 되지 않은 스태프가 되물었으나 송 감독은 수염을 내리쓰며 덤덤하게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