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씨?”양 집사가 마당에서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하고 캐서린을 불렀다.캐서린과 정지숙은 막연한 사이이고, 얼마 전에는 강현석과 스캔들까지 있었던 사람이라는 걸 양 집사는 알고 있었다…….만약 도예나가 집에 없었다면 양 집사는 캐서린을 집안으로 절대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현석과 예나는 예전처럼 사이가 좋고, 이런 모습을 캐서린에게 보여주는 게 나쁘지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양 집사는 철문을 열고 미소를 지은 채로 물었다.“캐서린 씨, 저녁은 드셨어요?”캐서린은 주방 안을 들여다보며 덜덜 떨었다.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양 집사님, 사모님한테 제가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간다고 전해주세요.”그리고 그녀는 몸을 돌려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양 집사의 표정이 굳었다.‘대표님이 돌아오신 걸 알고 찾아온 게 분명해.’‘그리고 사모님이 함께 계신 걸 보고 도망치는 것이겠지.’‘요즘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 다 있을까? 대표님은 대체 왜 이런 여자와 스캔들이 났고?’양 집사가 다시 철문을 닫으려는데 그들 뒤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캐서린 씨, 여기까지 오셨는데 안으로 들어가서 차 한 잔이라도 하실래요?”예나가 걸어와 날카로운 눈빛으로 캐서린을 노려보았다.캐서린은 몇 걸음 걸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차가운 예나의 눈과 마주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날 탓하지 마요…… 저도 남천 씨가 당신을 찾지 못하게 하고 싶었어요. 당신이 돌아오지 않길 바랐다고요…… 당신이 돌아오면 나와 남천 씨는 더 불가능해 질게 뻔한데…….”예나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내가 뭘 당신을 잡아먹기라도 한대요? 뭐가 그렇게 무서운데요?”예나는 말을 마치고 캐서린 쇄골 아래의 상처를 발견했다. 화상이었다. 마치 담뱃불에 데인 것 같은 상처였다.예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그날 공항에서 헤어질 때, 내가 그쪽한테 성남시를 며칠 동안 떠나 있으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그동안 계속 강남천 옆에 있었던
캐서린이 눈을 부릅뜨고 이성을 잃은 채 예나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남천은요? 남천은 어디 갔는데요?”예나는 그녀의 상처를 힐끗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당신을 상처 줬던 사람을 그렇게 걱정하는 거예요?”“당신들이 죽인 거죠?”캐서린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가득했다.“도예나 씨,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아무리 남천이 잘못한 게 많아도 그 사람은 예나 씨를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그렇게 사랑하는데 어떻게 칼을 꽂아요? 당신은 너무 매정하고 냉정한 사람이예요…… 어떻게 그럴 수가…….”예나는 자기 손을 휙 빼내며 말했다.“아직 목숨은 붙어 있어요. 잠시 어딘가로 가두었을 뿐이에요. 왜요, 그렇게 만나고 싶어요?”캐서린이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어디에 가뒀는데요?”예나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캐서린처럼 어린 여자가, 세계 열 순위 안으로 꼽히는 우수한 정신과 의사가, 왜 하필 강남천과 같은 악마에 목을 매는 건지.’그녀에게는 수많은 선택이 존재했으나 캐서린은 남천이라면 심연에도 빠질 사람이었다.이는 그녀의 선택이었으니 예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현석 씨 기억은 당신이 지웠으니, 당신이 책임지고 다시 되돌려줘요.”예나가 덤덤하게 말했다.“기억이 돌아오면 그때 강남천을 만나게 해 줄 게요.”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현석이 별장 안에서 나왔다.식사하고 있었던 터라 그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고 무서운 흉터가 그대로 드러났다. 또한 타고나길 매서운 카리스마 탓에 캐서린은 감히 그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캐서린은 그날 일을 떠올렸다.성남시의 초호화 결혼식에 수많은 사람이 관심을 돌렸지만, 새신랑은 남천에게 납치당해 지하실에 갇혔다.그때 캐서린은 현석의 얼굴에 큰 흉터가 생긴 걸 발견했다. 제때 처리하지 않은 상처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그리고 그녀는 아직도 남천이 했던 말을 기억한다.“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은 없어야 해.”그렇게 현석의 얼굴은 망가졌다.현석의 기억을 되돌린다면 남천의
강현석은 서재 소파에 몸을 뉘었다.피터가 최면술에 필요한 도구를 챙겨왔고, 캐서린은 그중 회중시계 하나를 들고 최면을 시작하려고 했다.“허튼수작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피터가 차갑게 말했다.“나도 정신과 의사니까, 당신이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바로 발견할 수 있어요.”캐서린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그녀는 회중시계를 다시 상자 안에 넣고, 모래시계를 꺼냈다. 모래가 흐르는 작은 소리가 서재 안에서 울렸다.그녀는 또 도우미한테 2미터가량의 전신 거울을 정면으로 놓으라고 시켰고, 거울 중앙에는 멈추지 않고 회전하는 나선을 두었다.이 장면을 보고만 있어도 예나는 어지러운 기분이 들었다.‘이런 최면술이라면 아무리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어도 기억을 잃어버릴 거야…….’최면은 빠르게 시작되었다.캐서린이 본격적으로 최면을 시작하자, 정신과 의사다운 냉정함과 침착함이 돋보였다. 그녀는 현석과 함께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들어섰다.최면은 장장 두 시간이 걸렸다.시침이 12시에 이르자, 현석이 갑자기 소파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캐서린이 거의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한 달 전에도 세 번에 걸쳐 기억을 지웠으니, 이번에도 최면술을 세 번 진행해야 기억을 온전히 돌릴 수 있을 거예요.”예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좀 와봐요.”서재 밖에서 대기를 타고 있던 두 경호원이 빠르게 안으로 들어와 캐서린의 양 팔을 잡아당겼다.“지금 뭘 하는 거예요?”캐서린이 몸부림을 쳤다.“약속대로 강현석 씨 기억을 돌려주고 있는데 왜 나를 잡는 거예요? 도예나 씨, 애초에 당신한테 강현석 씨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주는 게 아니었어요!”‘공항에서 그 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남천이 실종되는 일은 없었을 거야.’‘내가 이런 수모를 겪지 않았을 거고…….’“최면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으니 그동안 강씨 별장에서 꼼짝없이 있어요.”예나가 차갑게 말했다.“이 사람을 3층 객실로 데려가요. 절대 도망가지 못하게 제대로 지키고 있어요.”두 경호원은 바로
현석은 그녀의 손을 잡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예나 씨, 고마워요.”지난 한 달 동안, 그는 철저히 혼자였다. 모든 일을 현석 혼자 이겨내야만 했다.이런 그가 성남시에 도착하고, 예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를 세세히 보살폈다…….‘이 사람에게 빚진 게 너무 많아.’“우린 부부니까,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돼요.”예나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로 여전히 그의 머리를 문질렀다.현석은 두 눈을 감고, 무수히 많은 파편 같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부서진 기억을 끼워 맞추려고 애썼다. 그래야만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 테니…….“예나 씨, 기억났어요!”현석이 갑자기 두 눈을 뜨더니 입을 열었다.“열다섯 살 때 일이 생각났어요.”예나의 손이 멈칫했다.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아마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일 것이다. 그리고 열다섯 때라면…… 아마도 현석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긴 해일 테고.예나는 그의 옆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뭐가 떠올랐는데요? 천천히 말해봐요.”“열다섯 그 해에, 선천적인 심장병을 앓고 있던 쌍둥이 형이 다른 곳으로 옮겨져 요양한다고 했어요…….”예나는 가만히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양 집사가 그녀에게 말해준 내용과 거의 일치했다.“형은 어릴 때부터 절에서 자랐는데 그 후 한 가족한테 입양이 되었어요. 그런데 너무 극단적인 성격을 가진 형이 그 가족이 8년 동안 키운 강아지를 죽였어요. 그리고 형은 보육원으로 보내졌죠. 보육원에서도 형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수많은 아이를 괴롭혔거든요…….”현석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하지만 형이 이런 행동을 했던 건 모두 강씨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위해서였어요. 강씨 가문에 돌아오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미신을 맹신하는 편이라 형이 평생 가문에 돌아오면 안 된다고 믿었어요. 형이 돌아오면 형의 목숨이 위험해질 거라고…….”“몇 년 동안 형은 가문 밖에서 목숨을 유지했고, 부모님은 미신을 더 맹신하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형이
예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녀는 현석이 왜 그렇게 남천을 미워했는지, 왜 남천을 성남시 밖으로 내쫓으려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남천이 아니라면 그의 아버지가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죽는다고 해도, 그런 오명을 쓰고 죽지 않았을 텐데.“전형적인 반사회적 인격의 소유자였어요. 아버지가 죽어도 달라지는 게 없었죠.”현석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그는 항상 강씨 가문이 자신에게 빚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자신이 모든 고통은 내가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믿었죠…… 아버지가 죽고 나서 자극을 받았는지 형은 그 후에도 여러 번 나를 암살하려고 시도했어요. 다행히 내가 그의 손에서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고요.”예나가 그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이런 사람은 감옥에 가두어야 해요. 이렇게 멀쩡히 밖을 돌아다니는 건 너무 위험해요.”현석이 예나의 가는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열다섯 살 그 이후의 기억은 잠시 없어요. 나도 왜 그 사람을 감옥에 넣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어쩌면 어머니가 나를 막았는지도 모르죠. 어머니는 항상 형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 나를 막았을 거예요.”예나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만약 어머님이 현석 씨한테 강남천을 용서해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에요.”현석은 예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을 넘보지 않았다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줬을 지 몰라도, 당신을 넘본 그 사람에게 선처는 없어요. 예나 씨, 당신이 단번에 나를 알아봐 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나를 찾아줘서 고마워요. 당신이 아니라면 나는 여전히 매일 피 튀기는 전쟁터에 있을 거예요.”“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잖아요.”예나는 일부터 애교 부리듯 그의 품에 안겨 말했다.그리고 예나는 현석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는 게 느껴졌다.그녀는 황급히 품에서 나오며 말했다.“아, 아이들 보러 가야 겠어요.”“밖은 아주 조용해요. 아이들도 쉬고 있는 것 같은데요.”현석의 낮은 목소리가
현석은 빠르게 침대에서 일어나, 아래층에서 따뜻한 물 한 잔과 약 두 알을 가지고 올라와 건넸다. 그리고 예나가 약을 삼키는 걸 보고 나서야 그녀를 품에 안고 다시 잠이 들었다.하지만 예나는 한참이나 뒤척이다가 동이 틀 때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아진 후였다. 햇살이 방 안으로 들어와 방안이 포근했다.그녀는 이를 닦고 간단한 샤워를 한 뒤 머리를 묶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주방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현석은 식탁에 앉아 수아가 먹을 계란의 껍데기를 까고 있었다.너무 따뜻한 일상에 예나는 가슴 한쪽이 포근해졌다.그녀가 입을 열려는 찰나, 두 볼이 또 갑자기 간지러웠다. 특히 오른쪽 얼굴에는 무수히 많은 개미가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아프지는 않았다. 그런데 견딜 수 없을 만큼 간지러웠다.그녀는 다시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가 약을 두 알 삼키고 주방으로 돌아왔다.“굿모닝, 엄마.”“좋은 아침이에요, 엄마. 빨리 아침 먹어요. 이건 아빠가 직접 만든 아침이에요.”예나가 깜짝 놀라 물었다.“당신, 요리할 줄도 알았어요?”현석이 마른기침하며 말했다.“셰프가 가르쳐준 대로 해봤어요. 빨리 맛있는지 먹어봐요.”예나는 고개를 숙여 국을 한 입 떠먹으며 말했다.“간도 딱 맞고, 요리에 소질이 있는 것 같은데요?”“그렇게 맛있어요?”세윤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엄마, 나도 한 입 먹어 볼래요.”예나가 숟가락으로 한술 떠서 세윤이 입에 넣어주었다.“우엑!”세윤은 다급하게 싱크대로 달아가며 말했다.“맛이 하나도 없잖아요! 엄마, 거짓말쟁이!”“…….”‘나쁘지 않은 맛인데? 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다고?’세훈이 입을 열었다.“나도 한번 맛볼래요.”세훈이 다가와 한술 떠먹더니, 그 자리에 잠시 얼어붙었다. 그리고 힘겹게 국을 넘기더니 말했다.“평범한 맛이네요.”“…….”‘내 혀에 문제가 생긴 걸까?’그녀는 다시 한술 떠서 입에 넣었다. 정말 맛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자신이 한 요리와 다
여섯 식구는 즐거운 아침 식사를 마쳤다그때, 정지숙이 창백한 얼굴로 계단을 내려왔다.“할머니, 좋은 아침이에요.”“좋은 아침, 할머니.”아이들은 정지숙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정지숙이 식탁에 앉자, 양 집사는 이미 준비된 아침 식사를 가져다주었다.도예나는 빠르게 젓가락을 내려놓고 거실로 나가려고 했는데, 정지숙이 그녀를 불렀다.“현석아, 예나야. 할 말이 있어.”예나가 발걸음을 멈추고 덤덤하게 물었다.“무슨 일인데요?”“오늘 비행기로 이만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갈 생각이야.”정지숙은 목이 메어 말했다.“앞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 남을 생각이니까 너희들은 시간이 되면 놀러 와.”예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지금 이런 관계로는 함께 지내는 건 무리야.’‘어머님께 나가 달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는데, 먼저 이 말을 꺼내 주신 건 서로 얼굴 붉힐 일을 만들지 않은 거야.’아이들은 깜짝 놀랐다.세윤이는 정지숙의 무릎을 타고 올라가 앉으며 말했다.“할머니, 왜 갑자기 오스트레일리아 가는 거예요? 전에 물어봤을 때는 저희가 다 클 때까지 성남시에 있다고 했잖아요.”수아도 아쉬운 듯 정지숙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할머니, 저 보석 목걸이 사 주신다면서요. 왜 약속 안 지켜요?”세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할머니, 굳이 떠나야 하는 이유가 없다면 계속 여기에 계세요.”제훈이는 입술만 매만질 뿐 입을 열지 않았다.정지숙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녀는 아이들의 머리를 차례대로 쓰다듬으며 말했다.“할머니는 성남시 날씨가 너무 힘들어. 매일 머리가 어지럽고 기침도 나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쉬면 좀 나을 것 같아. 할머니가 보고 싶으면 양 집사님한테 오스트레일리아 보내주세요, 하면 돼.”“안 돼요. 제가 허락하지 않아요.”현석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에 정지숙뿐만 아니라 예나도 깜짝 놀랐다.아무리 열다섯 살 기억을 찾았다고 해도, 현석이 정지숙에게 큰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고 그녀는 생각했었다.또한 기억을 되찾을수록, 모자
첫째 아들은 생사가 불분명하고, 둘째 아들은 자신을 원수처럼 생각했다. 정지숙은 자신의 인생이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절망에 빠졌다.정지숙이 울먹이며 말했다.“캐서린부터 놔줘…… 너한테 잘못을 저질렀던 건 모두 남천이 협박해서 그런 거야. 저 애는 죄가 없어.”“어머님, 본인부터 챙기세요.”예나가 덤덤하게 말했다.“남천 씨가 받아야 할 벌을 받고 나면 어머님도 자유로워질 거예요.”정지숙이 고개를 떨구었다.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다.아이들은 어쩔 바를 몰라 했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갔지만, 이건 아이들이 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그때, 양 집사가 밖에서 들어오며 말했다.“대표님, 비서가 왔어요.”현석이 고개를 들었다.그는 강씨 그룹에 대해 미리 조사를 해보았다. 예전의 비서는 정재욱이라는 사람이었지만, 남천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나서 비서는 김용식이라는 양아치 같은 사람으로 대체가 되었다.현석이 성남시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비밀이었지만, 김용식이 이튿날에 바로 자신을 찾아왔다는 건 별장 내부에 사람을 꽂았다는 걸 설명했다.현석이 덤덤하게 말했다.“들어오라고 해요.”예나가 네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가자, 우린 거실에서 티비나 볼까?”정지숙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위층으로 향했다.김용식은 양 집사를 따라 마당에서부터 주방으로 걸어왔고, 단번에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했다.보름 동안 보지 못했던 형님한테서 살기가 더 넘친다고 그는 생각했다.몇 걸음 앞으로 걸어간 김용식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형님, 이 며칠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내부에 문제가 생겼습니다.”“무슨 일?”차가운 세 글자로 현석이 대답했다.김용식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예전 회사를 운영한 지 보름 만에 사람들이 앞다퉈 인수하려고 합니다. 가격이 다 높은 편인데 팔 가요?”현석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물었다.“지하 생체 에너지 회사?”“암시장에서 이 산업이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