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와 아이들, 그리고 현석까지, 그들은 이곳에서 살아갈 운명이 아니었다.‘이 모든 게 강남천 때문이야!’그 사람만 떠올리면 예나는 이를 악물었다.새벽에 도망치듯 나왔으니 강남천이 얼마나 화가 났을지는 예상이 되었다.‘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H 지역에 왔다는 걸 알면 이곳까지 찾아올까?’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예나는 일단 트레이북의 신분을 확인하는 게 가장 먼저라는 생각을 했다.조용한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았다. 어둠과 죄악은 태양 아래서 신분을 감췄다.예나는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나갈 준비를 했다.집을 나선 그녀는 천천히 H 지역까지 운전했다. 이곳 경비는 며칠 전보다 더 삼엄해졌으며, 순찰을 하고 있는 경호원의 수가 거의 서너 배는 되는 것 같았다.경호원들은 저마다 무기들을 어깨에 메고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폈다.예나는 차에서 내렸고 경호원이 자기 몸을 샅샅이 살필 수 있도록 두 팔을 벌렸다.그녀는 이곳을 이미 여러 번 와봤었다. 어떤 경호원들은 핵심 구역에서 전출된 사람들이었는데, 다들 예나가 트레이북과 협력한 사람이라는 알아본 눈치였다.한 경호원이 굽신거리며 그녀를 별장 입구로 데려갔다.안쪽 경호원의 수는 더 많았는데 거의 1미터에 경호원이 하나 있을 정도로 별장을 겹겹이 둘러싼 모습이었다.예나는 손에 쥔 곰탕 도시락을 들고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트레이북 씨를 만나러 왔어요.”경호원이 보고하려는데 루이스가 웃으며 걸어왔다.“예나 씨가 오셨군요.”이번 전란에 많은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다 보니 가장 밑층에 있던 작은 경호원도 별장을 지키는 데에 투입이 되었다.루이스는 어제 트레이북이 예나를 따로 만난 일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여성이 트레이북의 주의를 끌었다는 것도 눈치를 챘다.트레이북이 우두머리 자리에 앉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마피아 장로가 여성을 보내왔다. 그런데 트레이북이 관심을 가지는 여성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루이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예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2층을 올려다보았다.안방 입구에도 무기를 든 경호원 두 명이 살벌한 모습으로 보초를 서고 있었다.“말씀해 주셔서 고마워요.”예나는 루이스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고 2층으로 올라갔다.별장 입구 경호원이 예나를 들여보냈고, 루이스가 직접 별장 안까지 모셔온 걸 본 안방 경호원들은 몸수색을 마치고 그녀를 바로 안으로 들여보냈다.방 안은 예상보다도 컸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건 작은 응접실이었고, 병풍을 따라 걸자 안방 침대가 보였다.그녀가 한 걸음 다가가자, 병풍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마침 잘 왔어. 빨리 주사라도 하나 가져와. 숟가락으로는 약을 먹일 수가 없어.”예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렇게 많이 다친 거야? 약도 다른 사람이 먹여줘야 할 정도로?’그녀는 걸음을 재촉하여 침대 쪽으로 걸어갔고, 얼굴빛이 창백한 남자를 확인했다. 그는 흰 거즈를 머리에 감고 있었는데 머리를 다친 게 분명했다.가면을 쓰지 않은 트레이북의 얼굴에 핏기 하나 없어 보였다.“내 말 못 들었어? 당장…….”침대 옆에 앉은 여자가 쌀쌀맞게 말하다가 예나를 확인하고 표정을 굳혔다.엘리자는 손에 쥔 약 그릇을 차갑게 탁자 위로 내려놓더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감히 누가 당신을 이곳으로 들여보낸 거예요?”예나는 도시락통을 탁자 위로 올려 두며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당신이 이곳에 있을 수 있다면 제가 들어오지 못할 이유도 없죠.”“나가요.”엘리자가 명령하듯 말했다.“밖에 경호원은 귀가 잘못된 거예요? 당장 이 사람 끌어내라고요!”입구에 선 경호원들이 천천히 걸어왔지만, 섣불리 행동하지 못했다.정확히 예나와 트레이북이 어떤 사이인지는 몰라도, 엘리자는 마피아 장로의 딸이었으니 엘리자의 명령에 감히 불복할 수도 없었다…….“트레이북 씨가 저한테 방을 마음대로 들어와도 된다고 했어요.”예나가 침착하게 말했다.“지금 날 내쫓고 트레이북 씨가 일어난 후에 감당할 수 있겠어요?”두 경호원은 서로를 마주 보다가 가볍
예나의 목이 움츠러들었다.‘총이 있을 줄은 몰랐어. 내가 너무 방심했어.’그녀는 빠르게 주위를 살피며 무기가 될 만한 물건을 찾았다…….바로 그때, 침대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두 여자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반 죽어가던 남자가 기적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워 앉았다.검은 눈동자에 온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엘리자 씨. 지금 내 구역에서 사람을 죽이려는 겁니까?”“그, 그게…….”트레이북을 바라보는 엘리자의 눈빛이 흔들렸다.탁-총이 바닥 위로 떨어졌다.“경호원!”트레이북의 호령에 경호원이 빠르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지금 당장 엘리자 씨를 내보내세요. 그리고 내 허락 없이는 다시 이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세요.”엘리자의 눈이 커다래졌다.그녀가 다시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는 두 경호원에 의해 방 밖으로 내쫓아졌다.엘리자는 너무 화가 나 얼굴을 구겼고, 온몸에 살기가 넘쳤다.오늘 오전, 그녀는 트레이북을 암살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받고 이곳을 찾아왔었다.그런데 막상 트레이북의 얼굴을 마주하자, 마음이 약해졌다…….‘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 비수를 망설임 없이 가슴에 꽂아버릴 거야!’두 경호원은 방을 나서면서 가볍게 문을 닫았다.큰 안방에 두 사람만 남겨졌다.예나의 얼굴에는 그의 상처에 마음 아파하는 감정과 또 자신을 선택했다는 기쁜 마음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엘리자와 나 사이에서, 트레이북은 망설임 없이 나를 선택했어!’그녀는 눈앞의 사람이 자신이 여태껏 찾은 사람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예나는 도시락통을 손에 준 채로 천천히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다쳤다고 해서 보러 왔어요. 지금 음식 먹어도 돼요?”트레이북이 까만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아까, 내가 당신 남자라고 하던데.”그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지만, 남자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예나의 얼굴이 붉어졌다.사이가 좋던 예전에도, 그녀는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낸 적이 없었다.그녀는 침대 끝에 앉으며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그럼, 당신은 어
남자의 말에 예나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마피아 내부 싸움에 대해 예나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엘리자는 마피아 장로의 딸로서 약에 독을 탈 가능성이 있었다.그녀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먼저 누워있어요. 제가 의사 불러올 게요.”“도망갈 생각하지 마요.”남자가 힘껏 여자를 침대 위로 당겼다.“말해요. 당신은 도대체 누구고, 무슨 의도로 나한테 접근했는지!”예나는 강한 힘에 어쩔 수 없이 침대 위로 앉아버렸지만, 화를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 약은 엘리자가 가져온 거예요. 독을 타도 엘리자가 탄 거라고요! 이것 놔요, 당장 의사 불러올 테니까!”두 사람의 거리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예나가 잡힌 팔을 빼려 몸부림치자 헐렁한 옷깃에서 하얀 목선이 드러났다.그제야 남자의 이상을 발견한 예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트레이북 씨, 침착해요. 지금 상처가 이렇게 많은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예나는 자기 피부에 닿는 그의 온도가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예나는 침을 꿀떡 삼키며 말했다.“설마, 엘리자가 탄 약이……?”트레이북의 눈길이 차가워졌다.‘어쩐지 약에서 이상한 향이 나더니.’‘엘리자가 감히 이런 약을 풀다니, 정말 살고 싶지 않은가 봐.’그는 팔을 뻗어 링거를 뽑으려는데 예나가 막았다.“이건 항염제예요. 이 링거를 맞아야 염증이 가라앉을 거예요…….”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트레이북이 점점 숨을 거세게 쉬기 시작했다.‘다행히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엘리자의 뜻대로 될뻔했어…….’‘만약 관계를 맺었다면 트레이북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었잖아…….’“찬물로 샤워하고 올게요.”트레이북이 차갑게 말했다.“아니면 당신이 해독제라도 되어줄래요?”예나는 하려던 말을 꿀꺽 삼켰다.남자가 침대에서 일어나자, 예나는 그의 온몸에 난 상처를 발견했다. 다친 건 머리뿐만이 아니었다. 팔, 가슴 쪽에도 붕대가 칭칭 둘려 있었는데 거즈에서 붉은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던 트레이북의 손이 뚝 멈춰 섰다.방금 관계를 맺은 예나가 이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남편 얘기를 꺼내자, 그는 마음이 불편해졌다.하지만 그녀에게 남편이 있다는 걸 사실을 몰랐던 건 아니었으니.이런 관계는 사실 그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자신이 유부녀와 애인 관계를 맺을 거라고 그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관계가 깊어지다가 그녀가 자기 남편을 찾아 훌쩍 떠나갈까 봐 걱정되었다.자신이 그 사람보다 못난 구석이 있을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의 눈길에 마음이 불편했다.그녀는 자기 남편을 사랑하고 있었다.“제 남편은 당신과 비슷한 키와 몸무게를 가졌고요, 당신처럼 아랫배에 청색 태반이 있고, 둘의 목소리도 진짜 비슷해요…….”예나가 말을 천천히 꺼내는데 베개 위의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했다.그녀가 손을 뻗어 핸드폰을 확인하자 아이들이 걸어온 영상 통화였다.그녀는 깜짝 놀라 침대에서 내려와 옷을 껴입고 핸드폰을 들고 욕실로 뛰어갔다.이런 그녀의 모습에 트레이북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나와 남편이 너무 닮아서 애인이 되려는 걸까?’‘이유라면 그 하나뿐인 듯싶은데.’똑똑-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트레이북은 셔츠를 꺼내 입고 침대에 기댄 채로 말했다.“들어오세요.”한 무리 사람들이 들어왔다. 셋째 장로와 넷째 장로가 미소를 한가득 지으며 말했다.“전에 가족을 찾아달라고 부탁하셨는데 드디어 찾았어요.”트레이북의 눈길이 그들의 뒤로 향했다.거의 60이 다 되어가는 남녀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걸어왔다…….“우리 택이, 드디어 찾았어.”부인이 눈물범벅으로 걸어와 트레이북의 손을 잡았다.어르신도 슬픔에 가득 찬 표정으로 침대 옆에 다가가 말했다.“네 이름은 최택이라고 한단다. 우리 유일한 아들이지. 반년 전에 실종되어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찾았는데 드디어 이렇게 만나는구나…….”마음 아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도 트레이북은 아무런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최택이라는 이름도 이질감이 느
트레이북이 덤덤하게 말했다.“셋째 장로님, 일단 이 두 분이 지낼 곳을 알아봐 주세요. 제가 나은 후에 차차 얘기하도록 하죠.”셋째 장로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바로 넷째 장로에게 명령을 내렸다.“이만 나가주시죠.”트레이북이 무표정으로 말했다.셋째 장로는 화장실을 힐긋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이건 제가 최근에 정리한 스파이 자료입니다. 지금 확인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트레이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문서를 받아쥐었다.첫 페이지부터 여러 스파이의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그중 한국 이름이 눈에 띄었다. 도예나.“도예나는, 최근 H 지역에 자주 나타나는 한국에서 미모가 출중한 여인인데…….”셋째 장로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이 사람은 한국에서 보낸 스파이라고 합니다. 목적은 우리 지역 물자 확보이구요…….”“알겠어요.”트레이북이 차갑게 문서를 닫으며 말했다.“나가보세요.”셋째 장로의 눈이 반짝거렸다.일단 말은 전했으니, 트레이북이 믿든 말든 이제 그의 문제였다.셋째 장로는 고개를 숙인 채로 말없이 방을 나섰다.예나는 화장실에서 아이들과의 통화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문밖에 사람 말소리가 들려왔다.그러나 정확히 무슨 대화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고 그녀는 마지막 사람이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화장실에서 나왔다.트레이북은 곧바로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목에 자국이 남았다.‘아마 아까 관계를 맺을 때 생긴 것이겠지.’‘만난 지 겨우 며칠밖에 되지 않는, 이름도 모르는 여자와 관계를 맺다니.’“그러고 보니 아직 그쪽 이름을 모르고 있네요.”트레이북이 물었다.“저는 도예나라고 해요. 예나라고 부르시면 돼요.”예나가 침대 끝에 앉으며 말했다.“아까 하려던 말 계속해도 될까요?”그녀는 남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저는 제 남편을 찾으러 온 세상을 돌아다녔어요. 매번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지쳐가고 있었는데 당신을 발견한 거예요. 당신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저는 하느님이 드
예나는 애써 침착하려 노력했다.길게 한숨을 내쉰 예나가 입을 열었다.“친자 확인은 위조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사람과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당신, 나한테 관심 있는 거 맞죠? 내 얼굴 때문이라거나 이런 이유가 아니라, 우리는 원래 사랑하는 사이였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제 남편이고, 저는 당신 아내고, 우리에겐 사랑스러운 아이 네 명이 있어요…….”그리고 핸드폰을 꺼내든 예나는 네 아이 사진을 꺼내 보였다.남자의 차가운 시선이 핸드폰을 향했고, 환하게 웃는 네 아이들이 보였다.순간,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그 고통은 마치 질식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이 여자의 말이 맞아. 친자 확인은 위조가 가능해도 이런 감정은 숨길 수가 없어…….’짧은 몇 초 사이에 트레이북은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형님, 둘째 장로가 찾아왔습니다.”밖의 경호원이 입구에서 가볍게 문을 두드리며 보고했다.트레이북은 핸드폰을 다시 예나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이 일은 내가 따로 사람을 구해서 알아볼게요. 그러니 이만 돌아가서 내 연락을 기다리세요.”예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했다.그녀가 안방을 나서자, 루이스가 곧바로 다가와 그녀를 부축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예나 씨, 정말 대단하세요. 엘리자 씨가 그렇게 화가 난 모습은 저도 처음 봤어요.”예나가 입술을 매만지며 말없이 밖으로 걸었다.“예나 씨, 다음에 오실 때에는 저한테 연락을 따로 주세요. 제가 마중 나가겠습니다.”루이스가 굽신거리며 말했다. 그는 예나 목의 자국을 보며 이 여자가 바로 우두머리의 아내가 될 것임을 확신했다. 아니면 적어도 트레이북의 가장 많은 총애를 받은 애인이거나…….‘이 여자를 잘 구슬리면 앞으로 내 미래가 창창해질 거야.’걸음을 늦춘 예나가 인상을 쓴 채로 물었다.“당신은 트레이북의 신뢰를 받는 사람인가요?”“감히 그렇게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는 당분
둘째 장로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제가 사람을 시켜 장로님 집을 수색이라도 해볼까요?”트레이북의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여태껏 몇십 년 동안 김두철을 속일 수 있었던 건, 그 사람이 장부 따위를 잘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겠죠. 그 사람이 몰랐다고 저도 모르는 척 넘어갈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김두철의 집정기간에 횡령한 돈은 고사하고, 제가 취임한 지 고작 한 달 안에 2천억이라니요! 1년이면 1조를 넘길 생각이세요? 어쩐지 마피아 운영이 하루가 다르게 힘들어져 간다 했더니, 다 이곳에서 돈이 빠져나가고 있었네요!”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장로를 찔렀다. 장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그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한 채로 벌벌 떨고 있었다.옆에 선 셋째 장로가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혹시 무슨 오해가 있으신 건 아닌지요?”넷째 장로도 맞장구를 쳤다.“둘째 장로는 여전히 힘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별장 하나 사지 못하는 둘째 장로가 어떻게 그 많은 돈을……?”트레이북의 눈길이 그들을 향했다.“당신들은 뭐가 그렇게 떳떳한가요?”트레이북이 베개 옆에 둔 여러 자료를 던졌다.“셋째 장로는 외교 쪽을 담당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매번 저희 H 지역을 방문한 외교 인사들이 우리 구역에서 살해 협박을 당했다고 하는 겁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무려 몇 십억의 보호비를 청구했다고 하던데…… 셋째 장로가 이 일을 묵인하고 있었던 겁니까?”“넷째 장로님. H 지역의 무너진 건물 보수를 당신이 책임지고 있다고 했죠. 그런데 동남 구역의 민간인 거주지역은 왜 3년이 지나도록 복구가 완성되지 않아, 수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까? 이 일에 대해 셋째 장로는 하시고 싶은 말이 없으십니까?”쏟아지는 질타에 셋째 장로와 넷째 장로도 땀을 비 오듯 쏟아냈다.“셋째 장로와 넷째 장로의 일은 사람을 시켜 차차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둘째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