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북이 덤덤하게 말했다.“셋째 장로님, 일단 이 두 분이 지낼 곳을 알아봐 주세요. 제가 나은 후에 차차 얘기하도록 하죠.”셋째 장로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바로 넷째 장로에게 명령을 내렸다.“이만 나가주시죠.”트레이북이 무표정으로 말했다.셋째 장로는 화장실을 힐긋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이건 제가 최근에 정리한 스파이 자료입니다. 지금 확인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트레이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문서를 받아쥐었다.첫 페이지부터 여러 스파이의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그중 한국 이름이 눈에 띄었다. 도예나.“도예나는, 최근 H 지역에 자주 나타나는 한국에서 미모가 출중한 여인인데…….”셋째 장로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이 사람은 한국에서 보낸 스파이라고 합니다. 목적은 우리 지역 물자 확보이구요…….”“알겠어요.”트레이북이 차갑게 문서를 닫으며 말했다.“나가보세요.”셋째 장로의 눈이 반짝거렸다.일단 말은 전했으니, 트레이북이 믿든 말든 이제 그의 문제였다.셋째 장로는 고개를 숙인 채로 말없이 방을 나섰다.예나는 화장실에서 아이들과의 통화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문밖에 사람 말소리가 들려왔다.그러나 정확히 무슨 대화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고 그녀는 마지막 사람이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화장실에서 나왔다.트레이북은 곧바로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목에 자국이 남았다.‘아마 아까 관계를 맺을 때 생긴 것이겠지.’‘만난 지 겨우 며칠밖에 되지 않는, 이름도 모르는 여자와 관계를 맺다니.’“그러고 보니 아직 그쪽 이름을 모르고 있네요.”트레이북이 물었다.“저는 도예나라고 해요. 예나라고 부르시면 돼요.”예나가 침대 끝에 앉으며 말했다.“아까 하려던 말 계속해도 될까요?”그녀는 남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저는 제 남편을 찾으러 온 세상을 돌아다녔어요. 매번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지쳐가고 있었는데 당신을 발견한 거예요. 당신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저는 하느님이 드
예나는 애써 침착하려 노력했다.길게 한숨을 내쉰 예나가 입을 열었다.“친자 확인은 위조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사람과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당신, 나한테 관심 있는 거 맞죠? 내 얼굴 때문이라거나 이런 이유가 아니라, 우리는 원래 사랑하는 사이였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제 남편이고, 저는 당신 아내고, 우리에겐 사랑스러운 아이 네 명이 있어요…….”그리고 핸드폰을 꺼내든 예나는 네 아이 사진을 꺼내 보였다.남자의 차가운 시선이 핸드폰을 향했고, 환하게 웃는 네 아이들이 보였다.순간,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그 고통은 마치 질식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이 여자의 말이 맞아. 친자 확인은 위조가 가능해도 이런 감정은 숨길 수가 없어…….’짧은 몇 초 사이에 트레이북은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형님, 둘째 장로가 찾아왔습니다.”밖의 경호원이 입구에서 가볍게 문을 두드리며 보고했다.트레이북은 핸드폰을 다시 예나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이 일은 내가 따로 사람을 구해서 알아볼게요. 그러니 이만 돌아가서 내 연락을 기다리세요.”예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했다.그녀가 안방을 나서자, 루이스가 곧바로 다가와 그녀를 부축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예나 씨, 정말 대단하세요. 엘리자 씨가 그렇게 화가 난 모습은 저도 처음 봤어요.”예나가 입술을 매만지며 말없이 밖으로 걸었다.“예나 씨, 다음에 오실 때에는 저한테 연락을 따로 주세요. 제가 마중 나가겠습니다.”루이스가 굽신거리며 말했다. 그는 예나 목의 자국을 보며 이 여자가 바로 우두머리의 아내가 될 것임을 확신했다. 아니면 적어도 트레이북의 가장 많은 총애를 받은 애인이거나…….‘이 여자를 잘 구슬리면 앞으로 내 미래가 창창해질 거야.’걸음을 늦춘 예나가 인상을 쓴 채로 물었다.“당신은 트레이북의 신뢰를 받는 사람인가요?”“감히 그렇게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는 당분
둘째 장로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제가 사람을 시켜 장로님 집을 수색이라도 해볼까요?”트레이북의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여태껏 몇십 년 동안 김두철을 속일 수 있었던 건, 그 사람이 장부 따위를 잘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겠죠. 그 사람이 몰랐다고 저도 모르는 척 넘어갈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김두철의 집정기간에 횡령한 돈은 고사하고, 제가 취임한 지 고작 한 달 안에 2천억이라니요! 1년이면 1조를 넘길 생각이세요? 어쩐지 마피아 운영이 하루가 다르게 힘들어져 간다 했더니, 다 이곳에서 돈이 빠져나가고 있었네요!”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장로를 찔렀다. 장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그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한 채로 벌벌 떨고 있었다.옆에 선 셋째 장로가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혹시 무슨 오해가 있으신 건 아닌지요?”넷째 장로도 맞장구를 쳤다.“둘째 장로는 여전히 힘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별장 하나 사지 못하는 둘째 장로가 어떻게 그 많은 돈을……?”트레이북의 눈길이 그들을 향했다.“당신들은 뭐가 그렇게 떳떳한가요?”트레이북이 베개 옆에 둔 여러 자료를 던졌다.“셋째 장로는 외교 쪽을 담당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매번 저희 H 지역을 방문한 외교 인사들이 우리 구역에서 살해 협박을 당했다고 하는 겁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무려 몇 십억의 보호비를 청구했다고 하던데…… 셋째 장로가 이 일을 묵인하고 있었던 겁니까?”“넷째 장로님. H 지역의 무너진 건물 보수를 당신이 책임지고 있다고 했죠. 그런데 동남 구역의 민간인 거주지역은 왜 3년이 지나도록 복구가 완성되지 않아, 수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까? 이 일에 대해 셋째 장로는 하시고 싶은 말이 없으십니까?”쏟아지는 질타에 셋째 장로와 넷째 장로도 땀을 비 오듯 쏟아냈다.“셋째 장로와 넷째 장로의 일은 사람을 시켜 차차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둘째 장로
마피아 내부 권력 다툼 이슈는 바로 현지 뉴스에 방송되었다.“보고에 따르면 마피아 둘째 장로의 횡령 사실이 적발되어 직위에서 사퇴당했다고 합니다. 지금 둘째 장로는 수천억의 횡령금을 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또한 셋째 장로와 넷째 장로의 부실 근무가 적발되었습니다. 재임 중 여러 문제로 현재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마피아 내부의 권력 다툼은 사실상 새로 부임한 우두머리와 대장로 라인의 권력 다툼 문제이며 갈등은 점점 더 격화되고 있습니다…….”뉴스를 보는 예나의 표정이 점점 더 굳어갔다.외부인이 보아도 긴장되는 상황이었다. 현석은 마피아 우두머리로서 이 소용돌이의 중심에 위치했다.“예나야,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민준이 텔레비전을 끄며 말했다.“현석 씨가 마피아 장로들을 완전히 장악했다면 네가 당장 그를 찾아간다고 해도 말리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현석 씨 주위에 그를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깔렸어. 마피아 중 80%가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을 거야. 이런 사람의 아내가 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아?”예나가 침묵했다.그날, 현석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기억을 잃은 현석이 여전히 그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건 모두가 눈치챌 수 있는 일이었다.‘만약 내가 현석 씨의 적군에게 인질로 잡혀 그를 협박한다면, 그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해야 할 것인가…….’‘이 한 달 동안 이미 너무 많은 일을 겪었어. 더 이상 그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그래, 네 말이 맞아. 이런 상황에 내가 그를 찾아가는 건 아닌 것 같아.”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세 날만 기다려 보자. 세 날 뒤면 상황이 좋아질 수도 있잖아. 그러면 아이들을 데리고 만나러 갈 거야.”예나는 하루빨리 현석의 기억을 되찾아 주고 싶었다.그래야 마피아 세상에서, H 지역에서 떠나 성남시로 돌아가 평범한 하루를 보낼 수 있으니…….민준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미 업계에서 유명한 정신과 의사한테 연락했어.
“그렇게 쉽지 않을 거야.”제훈이 쓴웃음을 지었다.“아빠는 마피아 우두머리니까 그렇게 빠르게 자리에서 물러날 수 없을 거야. 권력 다툼에서 죽거나, 이 구역을 깨끗하게 정리해서 다음 우두머리에게 넘기거나 둘 중 하나일 거야.”서재가 조용해졌다.한편, 별장 마당에서 놀고 있던 세윤과 수아의 기분도 많이 우울해 보였다.수아는 작은 삽으로 마당 흙을 파고 있었는데, 큰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했다.“수아야, 왜 울어?”세윤이 손에 쥔 장난감을 내려놓고 빠르게 수아에게 달려갔다.수아의 목소리가 물기에 젖어있었다.“오빠, 나 아빠 보고 싶어. 아빠가 너무 보고싶어…….”“나도 아빠 보고싶어…….”세윤도 덩달아 훌쩍였다.“하지만 엄마는 아빠가 기억을 잃었다고 했어. 우리가 보러 간다고 해도 기억하지 못할 거야…….”그 말에 수아는 더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까만 눈동자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우리 엄마한테 가서 아빠 보러 가자고 해보자, 그러니까 그만 울어…….”세윤은 수아의 눈물을 닦아주고 거실로 달려갔다. 예나는 지금 회사 일을 처리하느라 굳은 표정이었다.세윤은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다시 조용히 마당으로 돌아왔다.“수아야, 엄마가 지금 많이 바쁜 것 같아. 엄마가 볼일을 끝내면 다시 물어볼게.”수아는 아무 말없이 눈물을 삼켰다.이런 그녀의 모습에 세윤은 마음이 아팠다…….그러다가 드디어 결심한 듯 굳센 말투로 말했다.“수아야, 울지마. 내가 데려다줄게.”수아가 고개를 들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던 눈에 놀라움이 담겼다.“그런데 엄마는 아빠가 있는 곳이 위험하다고 했잖아…….”“형이랑 제훈이도 안전하게 돌아왔잖아.”세윤이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나는 제훈이보다도 형이니까 내가 널 지켜줄 수 있을 거야. 나랑 갈래, 수아야?”수아가 눈을 깜빡거렸다. 아이도 충동적인 감정이 들었다.세윤이 낮은 목소리로 수아에게 말했다.“민준 삼촌의 기사 아저씨한테 부탁해서 아빠 얼굴 한 번만 보고 오는 거야. 한 시
세윤은 수아를 데리고 순조롭게 막힘없이 H 지대로 들어왔다.“여기 경호원 아저씨도 많고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도 않아.”세윤은 이리저리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추어 수아에게 말했다.“수아야, 오빠가 지도를 봤는데, 아빠가 계시는 곳은 저쪽이야. 우리 얼른 아빠 만나러 가자.”세윤의 말을 듣고 수아의 두 눈은 더없이 초롱초롱해졌다.그리고 두말하지 않고 세윤을 따라 핵심 별장 구역으로 달려갔다.별장 입구에는 군용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화가 잔뜩 난 얼굴로 엘리자가 지금 그 차에 타 있다.‘짜증 나!’김두철이 정권을 잡았을 때, 이곳은 엘리자가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는 그런 곳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들어가지도 못한 채 밖에 가로막힌 그런 신세가 되어버렸다.엘리자는 마피아 가문의 아가씨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마피아 본거지에도 발을 마음대로 들여놓지 못한다.모든 사람의 웃음거리가 된 기분이 들지 않을 수밖에 없는 엘리자이다.엘리자는 차가운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집으로 가게 차 돌려!”‘트레이북! 두고 봐! 내 앞에서 무릎 꿇고 빌게 될 날이 올 거야!’차가 방향을 바꾸자마자 엘리자는 길모퉁이에서 달려오는 두 아이를 보았다.“차 세워.”엘리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두 아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엘리자는 전에 별장에서 두 남자아이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도 그들이 트레이북과 거의 똑같이 생겼다고 생각했었다.지금 엘리자는 또 다른 두 아이를 보았는데, 이번에도 전과 마찬가지로 트레이북과 판박이라는 느낌이 단번에 들었다.‘다 같은 아시아계 사람이라서 그런가?’엘리자는 그들이 모두 아시아계 사람이라 비슷하게 생긴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한편, 세윤은 수아의 손을 잡고 별장 입구의 경호원에게 달콤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아저씨, 안녕하세요! 저희 트레이북 선생님을 뵙고 싶어서 그러는데, 대신 좀 전해줄 수 있으세요?”두 아이의 순진무구한 모습을 보고 하루 종일 전
엘리자의 두 경호원은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가 각자 한 명씩 들어 올렸다.공중으로 들어 올려진 세윤은 끊임없이 발버둥 쳤다.“당장 놔줘! 이 마귀할멈! 우리 아빠 나오면 너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반드시 복수해 줄 거야! 놔!”세윤은 화를 내며 자기 나라 언어로 말했는데, 엘리자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비록 알아듣지 못했지만, 엘리자는 어느 정도로 이 꼬마가 자기를 욕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너무 시끄러워, 좀 조용하게 해 봐.”엘리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러자 경호원은 명령을 듣고 망설임 없이 세윤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세윤의 오른쪽 뺨은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어떻해 감히 나를 때릴 수 있어!’세윤은 멍하니 두 눈을 부릅뜨고 순간 발생한 모든 것을 믿을 수 없었다.“이제 좀 조용해졌네.”엘리자는 앞으로 다가가 손을 들어 세윤의 턱을 들어 올렸다.“뭐 얼굴은 그런대로 잘 생겼네. 힘도 좋아 보이고, 아빠한테 술안주 드리면 딱 좋겠어.”엘리자가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세윤은 입을 벌려 엘리자의 손등을 꽉 깨물었다.“미친 XX! 당장 놔!”경호원은 화들짝 놀라서 얼른 세윤의 턱을 잡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엘리자의 손등에는 피가 났고 지나친 아픔으로 얼굴까지 일그러졌다.화가 제대로 터진 엘리자는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저 XX 반쯤 죽여 놔! 그리고 저 XX 이도 한 번에 말고 천천히 하나씩 깨뜨려!”이때 다른 경호원이 입을 열어 물었다.“아가씨, 이 여자애 이도 하나씩 깨뜨려야 합니까?”“아니, 예쁘게 생겼는데, 이가 없으면 얼마나 아깝겠어.”엘리자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깨끗이 씻어서 저기 빈민가로 보내! 나를 건드린 대가가 얼마나 아픈지 제대로 보여주겠어!”“네! 알겠습니다!”두 경호원은 엘리자의 심복이다.여러 해 동안 엘리자를 지켜 오면서 이미 손에 수많은 피를 묻혔다.하여 두 아이가 자기들 손에 죽는다고 해도 그 어떠한 죄책감도 들지 않는다.경호원은 손을 들어 세윤의 입을 강
트레이의 두 눈은 한겨울의 칼바람처럼 차가워졌다.품속의 안겨있는 아이는 벌벌 떨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은 그대로 트레이북의 목으로 굴러떨어졌다.아이의 눈물에 가슴이 갑자기 불에 데기라도 한 듯이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트레이북은 허리를 굽혀 얇은 입술을 오므리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괜찮아, 눈 감고 있어.”수아가 눈을 감자 맺혀있던 눈물방울은 볼을 타고 뚝뚝 굴러떨어졌다.트레이북은 고개를 숙이고 또다시 입을 열었다.“너도, 눈 감아.”그러자 세윤은 순순히 두 눈을 꼭 감았다.팡팡-곧이어 총성이 연거푸 두 번 울리자, 엘리자는 비명을 질렀다.‘아! 말도 안 돼!’엘리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이 휘둥그레져 경호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방금 손과 다리만 다쳤던 두 경호원은 어느새 차가운 주검으로 변해버렸다.두 경호원은 엘리자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고 엘리자를 위해 그들은 수많은 죄를 대신 지었다.‘죽었어?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트레이북!”이사벨은 히스테리를 부렸다.“네가 오늘 저지른 일에 대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는 날이 올 거야! 네가 앞으로 무엇을 하든 그 반대편에 내가 있을 거야! 딱 기다려!”트레이북은 당황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트레이북은 문 앞에 누워 있는 시체 두 구를 한 번 보고는 담담하게 분부했다.“깨끗하게 처리해.”말을 마치고 트레이북은 세윤도 품속으로 껴안았다.그리고 두 아이를 데리고 별장으로 들어갔다.“이제 눈 떠도 돼.”트레이북의 말이 떨어지자 두 아이는 바로 눈을 떴다.안개가 자욱한 눈동자 속에는 찬란한 빛이 반짝였다.이러한 빛에 트레이북은 예나의 두 눈에 그렸던 찬란한 빛이 떠올랐다.예나와 판에 박힌 듯 똑같았다.“아빠! 왜 이제야 나타났어요?”“아빠, 너무 보고 싶었어요. 저 기억나세요?”두 아이는 새까만 눈동자를 부릅뜨고 트레이북을 바라보며 눈물을 억지로 삼켰다.이러한 모습에 트레이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