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Chapter 531 - Chapter 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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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1화

의사는 몸을 살짝 굳히며 말했다.“지금 제 직업 능력을 의심하는 겁니까?”온지유는 여전히 의사의 손을 꽉 붙든 채 말했다.“매니큐어를 하는 의사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이렇게 긴 매니큐어로는 병원 문도 못 들어올 것 같네요. 그리고 이 방 안에 당신 향수 냄새가 얼마나 진동하는지 알아요?”가짜 의사는 당황한 듯 손을 거뒀다. 온지유는 이 틈을 타서 도망가려고 했다. 그러나 의사가 먼저 그녀의 머리채를 잡았다.“가긴 어딜 가!”머리채를 잡힌 온지유는 꼼짝도 못 했다. 상대가 일반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몸으로 반항할 생각도 없었다.“살려주...”그 순간 의사가 그녀의 목을 조르며 주사기를 찔렀다. 조금 전 피를 뽑으려던 그 주사기였다.날카로운 통증에 온지유는 눈살을 찌푸리며 본능적으로 의사의 다리를 꽉 잡았다. 하지만 정신은 점점 흐려졌다.온지유가 더 이상 저항하지 않자, 의사는 이제야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녀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온지유는 흐릿한 시야로 의사를 응시했다. 그리고 이제야 어제의 택시 기사와 오늘의 의사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의사가 드러낸 기묘한 눈빛에 그녀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의사는 거만한 자태로 온지유를 내려다보며 말했다.“하여간 멍청한 여자야. 도망갈 능력도 없으면서 아는 척은 왜 해?”약효는 빠르게 퍼졌다. 온지유는 점점 더 깊은 혼수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손톱으로 손바닥을 꾹 누르며, 그 고통으로 잠에 빠지지 않으려 했다.“포기해. 코끼리도 쓰러뜨릴 약이니까.”의사는 아직도 의식이 있는 온지유를 보며 피식 비웃었다. 그러고는 그녀를 들쳐서 이동식 카트 아래에 숨긴 뒤 흰 천으로 덮어 버렸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데리고 나갈 수 있었다.모든 준비가 끝난 후, 의사는 문을 열었다. 밖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카트를 밀며 조용히 엘리베이터로 향했다.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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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2화

절망적이었다.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려올 때, 한 쌍의 따뜻한 손이 그녀의 손을 잡고 귓가에 속삭였다.“괜찮아. 내가 널 데리고 나갈게.”이때 또 한 쌍의 차가운 손이 그녀를 잡고 물었다.“넌 태양 본 적 있어? 태양은 어떤 느낌일까?”상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방 안이 하도 어두워서 서로의 얼굴도 볼 수 없었다. 느낄 수 있는 건 오직 소리뿐이다.“율아... 내가 태양을 보여줄게.”“승아야!”온지유는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두 손은 꽉 쥐어졌고 온몸은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그녀는 다시 정신을 차렸지만 여전히 좁고 어두운 공간에 갇혀 있었다.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그녀는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안 돼!”차가 갑자기 급정거를 했다.온지유의 비명이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의 귀에 들어갔다. 그들은 반사적으로 차를 멈췄다. 자신들이 잘못 들은 것인지 의심하며 말이다.“왜 그래?”홍혜주가 물었다.“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그 여자가 깨어난 건 아닐까요?”조수가 말했다. 조수는 키가 크고 마른 남자였다. 평범한 외모의 그는 말투에 약간의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그럴 리 없어. 인간이면 내가 쓴 약을 이기지 못해.”차는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이때 갑자기 앞에서 5대의 군대 차량이 다가왔다. 홍혜주는 이상함을 눈치채고 외쳤다.“빨리, 빨리 방향 틀어!”조수는 엑셀을 밟으며 핸들을 급히 돌려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그들의 차와 5대의 군대 차량만 있었다.홍혜주는 그들이 온지유를 구하러 온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맞다고 해도 겨우 붙잡은 온지유를 이렇게 놓칠 수 없었다. 이번에도 빈손으로 돌아가면 죽는 길밖에 없었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설마 여자 한 명 구하려고 군대 차량을 동원하지는 않았겠죠?”그들은 한 번도 이토록 긴박한 상황에 놓인 적 없었다. 홍혜주는 인명진의 반응을 떠올리며 말했다.“이 여자 아무래도 보통 사람 아닌 것 같아.”그녀는 온지유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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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3화

여이현은 그들의 소대장이었다. 부대를 떠난 지금도 전우들은 입에 익은 대로 소대장이라고 불렀다.그는 온지유와 통화할 때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일정을 단축해 새벽같이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러다가 납치범과 딱 마주친 것이다. 당연히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계속 쫓아가. 인질이 있으니까 조심하고.”차를 멈추고 싶으면 타이어를 전부 펑크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온지유가 타 있기 때문에 경솔하게 움직일 수 없었다.납치범이 다치면 온지유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온지유는 홑몸이 아니었다. 그들은 속도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차량은 마치 다리에 다다랐다. 홍혜주의 조수가 말했다.“이 다리만 건너면 무사할 수 있어요!”홍혜주는 뒤에서 바짝 쫓아오는 차를 바라보며 말했다.“...그게 쉽지 않을 것 같아.”타이어가 펑크 난 탓에 속도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아직 아직 3개의 타이어가 있었다.군대 차량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었다. 조수는 백미러를 힐끗거리며 또다시 물었다.“이제 진짜 어떡해요?”홍혜주는 다리 아래를 바라봤다. 온지유가 죽으면 임무를 완성할 것으로 칠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말이다.그 사이로 군대 차량은 더 바짝 쫓아왔다. 온지유를 처리하지 않으면 이대로 붙잡힐 것이 분명했다.“차 세워.”조수는 눈을 크게 떴다.“뭐라고요?”“차 세우라고. 장기는 필요 없어. 그 여자 지금 바로 던져서 임무를 완성해야겠어.”“네!”차는 급정거했다.홍혜주는 빠르게 내려서 트렁크를 열었다. 안에서 온지유는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갑자기 비친 태양이 공격적이기만 했던 터라 얼굴은 꼭 가리고 있었다.그녀가 깨어 있는 것을 보고 홍혜주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생각할 때가 아니다. 홍혜주는 그녀를 끌어내렸다.온지유는 아직도 환상 속에 잠겨 있었다. 눈동자도 완전히 풀려 있었다. 그녀는 트렁크 밖으로 나와 몸이 붕 뜬 다음에야 약간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거친 물살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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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4화

홍혜주는 온지유를 바라보며 이내 이를 악물고 말했다.“미안해요.”그녀의 손은 점점 느슨해졌다. 온지유는 아직 살고 싶었기에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다 갑자기 홍혜주가 그녀의 손을 난간 위에 올려놓았다.온지유는 놀란 표정으로 홍혜주를 바라보았다. 행동과 달리 홍혜주는 냉정하게 말했다.“이제 생사는 당신 운명에 달린 거예요. 난 여기까지 도와줄게요.”온지유는 두 손으로 난간을 꽉 잡았지만 발밑에 아무것도 없어서 버티기 힘들었다. 이제 막 떨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지유야!”여이현은 난간에 매달린 온지유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소대장님, 위험합니다!”뒤에서 군인들이 그를 막으려고 했지만, 여이현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온지유밖에 없었다. 위험을 고려할 틈이 없었다. 그가 달려가지 않으면 그녀는 떨어져서 죽을 것이다.그는 군인들의 손을 뿌리치고 재빨리 온지유에게로 달려갔다. 흉터남은 이 장면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마침내 그가 원하던 기회가 온 것이다.홍혜주와 조수는 빠르게 도망쳐서 흉터남의 통제 범위 내에 들어갔다.“소대장님!”군인들은 빠르게 뒤쫓았다. 그러나 곧 총성이 울려 퍼지며 그들의 길을 가로막았다. 오직 여이현만이 홀로 온지유의 곁에 다다랐다.총성을 들은 온지유는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 놓였음을 깨닫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총소리까지 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그 순간 머릿속을 스쳐 가는 끔찍한 기억들이 악몽처럼 그녀를 감싸기 시작했다.‘이 사람들은 뭐지? 나는 또 누구지?’얼굴이 하얗게 질린 온지유가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한 쌍의 손이 그녀를 꽉 붙잡았다.“지유야!”고개를 들어보니 여이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어떻게 끌어올릴지 고민하고 있었다.상황은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온지유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이현 씨 여기 오면 안 돼요! 총소리가 나잖아요. 위험해요. 빨리 돌아가요!”여이현은 안심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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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5화

온지유는 여이현의 옷자락을 꽉 잡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할 용기조차 없어서 머리는 푹 숙였다.귓가에는 여이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괜찮아. 곧 괜찮아질 거야.”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이었다.“이현 씨...”“대장님!”군인들이 달려왔다.그들은 여이현이 있는 곳으로 올 수 없었다. 그래서 되는 대로 도움을 줄 수밖에 없었다. 여이현의 상황이 어떤지는 그들도 몰랐다.드디어 한데 모인 다음 자신부터 걱정하는 군인들에게 여이현이 말했다.“빨리 떠나자!”이곳에 오래 남아 있으면 안 됐다.흉터남 일행도 같은 생각이었다. 대치가 길어지면 서로 손해였다. 지금으로서는 빠른 철퇴가 답이었다.흉터남의 차는 먼지를 일며 멀어져 갔다. 여이현 등도 차에 올라탔다.군대 차량에 앉아서도 온지유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그녀는 막연한 표정으로 여이현의 옷자락을 잡은 채 물었다.“이현 씨 정말 괜찮아요? 다치지 않았어요?”여이현은 곧게 앉아서 온지유의 손을 잡았다.“괜찮아.”온지유는 여이현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쩐지 약간 창백한 것 같았다. 말이 짧아진 것 역시 의심스러웠다.그녀가 생각하는 사이 손은 서서히 축축해졌고 선명한 피비린내도 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손을 벌벌 떨었다. 예상 가는 결과가 있었지만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걱정이 현실이 되었다.여이현의 옷자락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아보자 피로 흥건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이토록 많은 피를 보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여이현은 지금껏 참고 있었던 것이다.넋을 잃은 온지유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저 여이현의 몸에서 상처를 찾을 뿐이었다. 그녀는 결국 왼쪽 가슴에서 총상을 발견했다. 피는 눈에 보일 정도의 속도로 흘러나오고 있었다.“이렇게 됐으면서 뭐가 괜찮아요!”온지유는 그의 가슴을 꾹 눌러서 지혈하며 말했다.“이현 씨 총 맞았어요! 총 맞았다고요!”여이현은 그녀가 걱정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줄곧 아무렇지도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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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6화

“아니, 그러지 않을 거야.”여이현은 숨을 몰아쉬면서 극심한 통증에 미간을 찌푸렸다.“난 안 죽어. 내가 죽으면 누가 널 지켜줘. 그러니까 난 절대 안 죽어.”그의 말을 들은 온지유는 더 눈물이 났다.여이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면서 손바닥으로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사실 그도 두려웠다. 죽게 될까 봐, 그녀가 혼자 남겨질까 봐.그리고 석이라는 인간이 그녀를 빼앗아 갈까 봐, 자신이 석이라면서 나타난 사람이 그녀를 속여 데리고 갈까 봐 두렵기도 했다.그녀가 무슨 일을 당할까 봐, 행여나 정말로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마음을 졸였다.그의 배포는 사실 크지 않았다. 이런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누군가에게 말한다면 아마 다들 그를 비웃을 것이다.여이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온지유는 눈물을 닦았지만,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울 때가 아닌데도 말이다.그녀는 빨개진 눈으로 그를 보면서 말했다.“그 약속 꼭 지켜요. 믿고 있을 테니까요.”그녀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 말뿐이었다.여이현의 두 눈동자는 그녀에게 고정되었다. 미소를 짓긴 했지만, 이번엔 씁쓸함이 묻어나는 미소가 아니었다. 단호한 그녀의 눈빛에 오히려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그는 그제야 마음이 놓여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았다.여이현은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온지유를 위해 힘들게 눈을 뜨면서 말을 해왔다.10여 분이 지난 뒤.군용차가 질서 있게 병원으로 도착했다.병원의 간호사들은 군용차를 보자마자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직감하곤 얼른 침대를 밀며 나왔다.부대 사람들은 여이현을 들어 차에서 내리곤 침대에 고이 눕혔다.간호사는 얼른 산소 호흡기를 여이현에게 씌웠다.온지유는 차에서 내린 후 거의 달리다시피 여이현에게 다가가 얼른 손을 잡았다.여이현의 안색이 점차 창백해지는 모습에 그녀는 이성을 잃었다. 행여나 여이현이 죽을까 봐 두려웠다.“이현 씨, 약속 지켜야죠. 버텨내요. 전 이현 씨가 저랑 한 약속 무조건 지킬 거라고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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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7화

백지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엄숙하게 말했다.“너, 충격받아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냐? 네 몸 하나 지킬 수 능력이 있었으면 달라지지 않았을 거냐고? 여자와 남자의 체급 차이를 네가 어떻게 비교하는데. 네가 뭐 마법이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현실적으로 좀 생각해. 넌 영화 속에 나오는 히어로가 아니야.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고. 심지어 임신까지 했는데 뭘 자꾸 그렇게 땅을 파고 있는 거야?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 자책한다고? 자책해봤자 뭐가 달라지는데?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온지유는 자신이 너무 나약한 것 같아 자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은 아주 많았다.그녀도 일일이 상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도 주게 될 것이다.백지희의 말이 맞았다. 그녀가 아무리 슬퍼하고 자책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그녀는 백지희를 끌어안으며 백지희의 어깨에 기댔다.“무서워서 그래. 그냥 단순한 납치가 아닌 것 같았어. 그 사람들을 내가 상대할 수조차 없었다고.”트렁크에 갇히게 되었을 때 그녀는 이런 두려움을 느꼈었다.그때부터 이미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백지희의 한껏 구겨졌던 미간이 풀어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온지유를 달랬다.“무서워할 것 없어. 내가 네 옆에 있잖아. 함께 그 사람들을 상대하면 분명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야.”온지유도 어떻게든 내면에서 느끼는 공포에서 벗어나 보려고 애를 썼다. 아무리 나약하다고 해도 언젠가 그 상황을 맞이해야 할 것이었다. 게다가 빨간 머리 여자는 그녀와 갈등이 있었던 것 같았다.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다리 위에서 했던 말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일 뿐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았다.다만 트렁크에 갇히게 되었을 때 어둡고 좁은 공간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엄청난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홍혜주를 본 순간 그저 직감적으로 말을 한 것이다.하지만 홍혜주의 표정과 내뱉은 말을 떠올려 보면 한번 경험한 적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온지유는 이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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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8화

홍혜주를 벌하고 있는 흉터남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홍혜주의 상태에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홍혜주가 쓰러지자 그제야 찻잔을 내려놓으며 사나운 눈빛으로 홍혜주를 보며 말했다.“일부러 그 여자를 놓아준 거지?”홍혜주는 바닥에 엎드려 있었지만 두 눈은 똑바로 뜨고 있었다. 최대한 힘을 내어 앞으로 기어가 흉터남의 곁으로 왔다.“아녜요...”흉터남이 말했다.“분명 그 여자를 던지라고 했을 텐데 넌 망설였지. 그때부터 난 널 믿지 않았어.”홍혜주의 안색이 창백했다. 다소 비참한 모습으로 있는 힘껏 흉터남의 바지를 잡았다.“그 여자가 제 손을 꽉 잡은 거예요. 저도 손을 놓으려고 했어요. 제발 이번 한 번만 봐주세요. 다음번엔 절대 실수하지 않을게요!”흉터남은 매정하게 그녀를 퍽 차버렸다.홍혜주는 신음 소리를 두어 번 내더니 입안에 퍼지는 짙은 피비린내에 역겨움이 올라오면서 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살아남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그래도 일을 완전히 망친 건 아니잖아요. 목표는 그 남자 아니었어요? 총을 맞았으니 살아남기는 힘들 거예요. 그러니 저한테도 공이 있는 거죠.”그 말을 들은 흉터남은 그녀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홍혜주의 턱을 꽉 잡으며 싸늘하게 말했다.“너희들 목숨은 어차피 내 것이었어. 내가 너희들을 키워주지 않았더라면 너희는 이미 죽었을 거라고.”홍혜주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힘이 빠진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저도 알고 있어요. 제 양부시잖아요.”그들은 전부 흉터남이 키웠다.하지만 흉터남에게 경외와 두려움만 느낄 뿐 가족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흉터남에게 그들은 그저 돈벌이 수단이었다.이 점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들은 흉터남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그럼에도 그들에겐 반항할 힘조차 없었다.두 손에 피를 묻힌 그 순간부터 그들의 삶은 하수구에 박혀 사는 쥐보다 못했고 어두운 구석에 숨어지는 수밖에 없었다.그들도 따스한 햇빛 아래서 당당하게 살고 싶었지만,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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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화

흉터남은 인명진의 두 눈을 빤히 보았다. 화가 어느 정도 사그라든 그는 눈을 가늘게 접었다.“그건 네 하기에 달렸지.”그러자 홍혜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인명진은 아무것도 몰라요. 이번 계획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요. 그러니 인명진만은 한 번만 봐주세요.”흉터남은 인명진의 손을 보면서 잡으려고 했지만, 인명진은 손을 뒤로 치우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저녁에 한잔하시죠.”분노가 싹 가신 흉터남은 웃으며 답했다.“그래, 기다리고 있으마.”말을 마친 뒤 그는 홍혜주를 놓아주었고 부하들을 데리고 떠나버렸다.홍혜주는 바닥을 기었다. 아무리 몸에 상처가 많다고 해도 통증을 참으며 기어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미쳤어? 저 인간 쓰레기가 변태인 거 몰라? 방금 네가 한 말은 죽음을 자초하는 말이었다고!”이곳엔 두 사람만 남아 있었다.인명진은 홍혜주를 보았다. 잊지 않고 멸균 물티슈를 꺼내 흉터남이 만졌던 손을 벅벅 닦았다.그의 눈빛엔 경멸의 감정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흉터남을 증오하고 있었지만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급할 건 없어.”인명진이 담담하게 말했다.“방금 네가 그랬잖아. 한잔하자고. 그런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어? 네가 그 남자 손아귀에서 상처 하나 없이 멀끔히 나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해?”인명진은 다시 홍혜주에게 시선을 돌리며 되물었다.“넌 지금 생활이 마음에 들어?”홍혜주는 고개를 휙 돌렸다. 눈빛엔 고집이 가득했다.“난 괜찮아. 네가 걱정할 것 없어. 어쨌든 너보단 백 배 더 나으니까!”그들은 어둠 속에서 자랐기에 어둠 속에서 죽게 될 운명이었다.그렇다고 쉽게 굴복해서는 안 되었고 쉽게 자존심을 내려놔서도 안 되었다.인명진의 눈빛은 아주 평온했다. 모든 것에 질린 사람처럼 말이다. 그저 습관적으로 염주를 손에서 굴릴 뿐이다.“이런 생활도 곧 끝나게 될 거야.”홍혜주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그의 입가엔 음험한 미소가 걸려 있었기에 더욱 수상했다.“뭘 하려고?”인명진은 자신이 자주 쓰던 메스를 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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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0화

인명진은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그의 눈빛에서 슬픔을 느껴냈다.왜인지 모르겠으나 그녀도 덩달아 슬펐다.전에 그에게 했던 심한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에게 상처를 남겼을지도 모른다.그녀는 순간 느꼈다. 인명진이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을 말이다.어쩌면 그에게 그녀가 모르는 고충이 있을 수도 있다.그녀는 묻고 싶었다. 그녀와 그가 생사를 함께 한 적이 있는지.횡단보도를 건너려 할 때야 그를 볼 수 있었다.빨간 불이었던지라 초록 불이 되기를 기다려야 했다.두 사람 사이로 차가 지나가고, 그녀는 인명진만 빤히 보았다. 어디 가지 않고 그녀가 갈 때까지 그곳에 있기를 바라면서.초록 불이 켜지자 온지유는 얼른 다가갔다.그러나 건너편으로 왔을 때 인명진은 사라지고 없었다. 길가엔 금방 딴 것 같은 딸기 바구니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온지유는 멍하니 그 바구니를 보았다.허리를 굽혀 딸기 바구니를 들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인명진 씨!”그녀는 큰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어디 있는 거예요! 할 말이 있다고요! 왜 갑자기 저를 피하는 건데요!”그녀는 곧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는 그녀의 앞에서 사라졌다.심지어 그녀에게 딸기 한 바구니를 남긴 채 말이다.대체 무슨 의미일까?주위를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꼭 세상에서 증발한 것처럼.“온지유!”디저트를 사고 온 백지희는 온지유가 없자 또 납치된 줄 알고 얼른 찾으러 나왔다. 그런데 온지유는 길 건너편에서 뭔가를 찾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온지유, 거기 가만히 있어! 내가 갈 테니까!”온지유는 딸기 바구니가 꽤나 무겁게 느껴졌다.꼭 그녀를 향한 인명진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그녀에게 나쁜 마음을 품지 않았지만, 그녀를 보는 그의 눈빛은 아주 복잡해 보였다.어쩌면 두 사람은 예전에 사이가 좋았을 수도 있다.온지유는 다소 허탈했다. 마치 뭔가를 잊은 것처럼 허전하기도 했고 기운이 나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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