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Chapter 461 - Chapter 470

520 Chapters

제461화 나무 말고 숲

송재이는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문씨 가문 남매를 마주한 그녀는 차분하고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이런 영상이 일파만파 퍼진다면 주현아 씨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줄뿐더러 우리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부정적인 뉴스일수록 시장 반응은 더욱 신속하고 거셀 것이며, 특히 상장기업의 경우 주가 하락은 물론 투자자의 신뢰를 저버리고, 심지어 주주들의 소송까지 이어질지도 몰라.”문예슬은 냉소를 지으며 강경한 태도로 일관했다.“내가 그런 말에 겁먹을 것 같아? 설영준에게 고통이란 무엇인지 똑똑히 느껴주게 할 거야. 모든 걸 쥐락펴락해야 성에 차는 사람이니까 이 난장판을 어떻게 수습할지 두고 보지.”송재이는 문예슬의 도발에 흔들리지 않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물론 화가 많이 나서 그럴 수 있다고 쳐. 하지만 결국 너와 네 가족만 봉변당할 거라는 사실을 잊지 마. 영준 씨는 쉽게 무너지지 않아. 괜히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가 처참한 결말이라도 맞이하고 싶어?”문예슬은 고집스럽게 상관없다는 식으로 쏘아붙였다.“괜찮아. 어차피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쳤어.”반면, 옆에 잠자코 앉아 있던 문성호가 갑자기 휴대폰을 꽉 움켜쥐더니 표정이 점점 심각하게 변했다.그는 비서가 보낸 문자를 받았다.“예슬아, 방금 비서가 얘기하길 우리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했대. 투자자들도 줄줄이 자금을 회수했고 우리한테 불리한 소문이 이 바닥에서 슬슬 떠돌고 있다네.”문예슬의 안색이 돌변하더니 벌떡 일어섰고,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싶었다.“네? 그럴 리가 없어요!”송재이가 그 틈을 타 말을 보탰다.“이제 알겠지? 지금은 힘을 합쳐서 진실을 바로잡고 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할 때야.”문성호는 여동생에게 형세를 잘 판단하라는 식으로 눈짓을 보냈지만, 문예슬은 썩 내키지 않았다.이내 문성호의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고, 매서운 눈빛으로 문예슬을 바라보며 현재 얼마나 심각한 사태인지에 대해 상기시켰다.“예슬아,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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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2화 나한테도 기회가?

온라인에서 동영상이 퍼져갈수록 여론의 압박도 더욱 거세졌다.결국 주현아는 관련 부서에 연행되어 조사받았다.이 사건은 곧 주요 언론 매체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초점이 되었고, 대중의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이에 문정 그룹은 즉시 해명 성명을 발표하여 진상을 밝히기 위해 애를 썼고, 주현아와 선을 긋고 모든 거짓 의혹을 부인했다.하지만 현재로서는 대중의 의심과 불만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판명 났다.시장의 반응은 특히 민감했다.해명 성명을 발표한 이후에도 문정 그룹의 주가는 파동을 일으켰고, 투자자들의 신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라 일부 주주들은 매각을 고려하기 시작했다.게다가 시장에는 소문과 추측이 난무했다.비록 회사 최고 경영진이 긴급회의를 열어 해결책을 논의했지만, 국면이 복잡할뿐더러 대중의 반감이 워낙 심한 탓에 그동안의 노력이 무색하게 효과는 미미했다.한편, 교탁 위에 놓인 송재이의 휴대폰이 별안간 울리자 그녀는 본의 아니게 수업을 잠시 중단했다.발신자를 확인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이내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재빨리 교실에서 나와 전화를 받았다.“송 선생님! 지금 어디예요?”휴대폰 너머로 민효연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울음기가 살짝 섞여 있었다.“지금 학교에 있어요. 무슨 일이시죠?”민효연이 이 시간에 연락했다는 건 분명 급한 일일 가능성이 컸다.“현아가... 끌려갔어요! 동영상은 이미 인터넷을 도배했고, 해명 성명도 발표했는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요. 이제 어떡하죠?”민효연의 목소리는 절망이 가득했고, 지금 얼마나 무력하고 당황한 마음일지 가히 짐작이 갔다.결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만큼 송재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사모님, 우선 진정하세요. 평정심을 잃으시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어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믿을 만한 법조계 조력자를 찾아서 현아 씨에게 필요한 법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죠.”반면, 현재 민효연과 주현아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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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3화 아직 솔로지?

재판 당일, 법정의 분위기는 유난히 긴장감이 넘쳤다.방청석에 앉아 있는 송재이와 설영준의 표정은 하나같이 진지했다.두 사람은 이번 재판의 결과가 모두의 운명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박윤찬은 변호석에 서서 열심히 변호했다. 비록 최선을 다했지만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결국 패소하게 되었다.판사가 판결문을 읽는 순간 주현아와 민효연은 패닉에 빠졌다.주현아의 눈에는 절망이, 민효연의 얼굴에는 불신과 분노가 가득했다.재판이 끝난 뒤 민효연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설영준을 향해 걸어갔다.그녀는 실망하면서도 화가 난 기색이 역력했고, 무시무시한 눈빛은 마치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였다.옆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송재이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이러한 결과는 민효연과 주현아에게 큰 타격을 줄뿐더러 설영준한테도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이내 설영준의 옆으로 다가가 나지막이 위로했다.“영준 씨 잘못 아니야. 우린 최선을 다했어.”...법원에서 나오자 설영준은 긴장된 분위기를 깨려고 송재이와 박윤찬에게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함께 저녁을 먹자고 초대했다.평소 성격이 무딘 편인 송재이도 오늘 밤은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자신을 향한 박윤찬의 마음을 우연히 알게 된 이후로 특히 설영준 앞에서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레스토랑에서 박윤찬과 마주 앉은 송재이는 그의 시선을 피하기 급급했고, 다소 어색해 보였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스테이크를 자르며 최대한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반면, 맞은편에 앉은 박윤찬도 법정에서 카리스마 넘치던 모습과 달리 오늘 밤 송재이 앞에서 안절부절못했다.그러다 가끔 고개를 들어 송재이를 바라보기도 했지만, 눈이 마주칠 때면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설영준은 두 사람 사이에 앉았다.그리고 송재이와 박윤찬을 번갈아 보면서 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감지한 듯싶었다.결국 먼저 침묵을 깨고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업무와 관련된 얘기를 가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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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4화 바늘로 심장을 찌르는 듯

다음 날, 퇴근길에 오른 송재이의 발걸음은 유난히 분주했고 머릿속에는 어젯밤 어색한 공기가 흐르던 레스토랑의 여러 장면이 맴돌았다.단골 카페 입구를 지나치던 중 우연히 창가 좌석에 앉아 있는 박윤찬을 발견했는데, 손에 책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싶었다.어쨌거나 오랜 친구로서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는 게 정상이었다.하지만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망설였다.괜히 단둘이 만났다가 불필요한 오해라도 일으킬까 봐 걱정했다.송재이는 뒤돌아서서 재빨리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정신이 딴 데 팔린 탓에 정면에서 마주 오는 차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위기일발의 순간, 박윤찬이 카페에서 뛰쳐나와 그녀를 인도로 끌어당겼다.송재이는 갑작스러운 충격 때문에 현기증이 났고, 박윤찬은 초조한 얼굴로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했다.“괜찮아요? 재이 씨!”박윤찬의 목소리는 걱정으로 가득했다.송재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팔과 무릎이 쓸렸는지 통증이 밀려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를 본 박윤찬은 두말없이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단호하게 말했다.“병원으로 가요.”송재이는 민망하고 불편한 나머지 거절하려고 했다.“아, 아니요. 심하게 다친 건 아니라서...”하지만 박윤찬이 강하게 밀어붙였다.“안 돼요. 감염될 수도 있으니까 상처부터 치료해야 해요.”병원 응급실에 도착해서 의사가 상처를 치료해 줄 때까지 박윤찬은 송재이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송재이는 감격에 겨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윤찬 씨, 고마워요.”박윤찬이 미소를 짓더니 절제된 어조로 말했다.“친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송재이를 바라보는 박윤찬의 눈빛은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비록 자제하려고 노력했지만 감정까지 숨길 수 없는 법이다.송재이는 만감이 교차했다. 박윤찬의 배려와 관심에 감동하면서도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왜냐하면 짝사랑의 대상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병원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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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5화 등골이 오싹

하지만 집에 돌아간 이후로 그는 송재이에게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고 언제나 그렇듯 사이좋게 지냈다.감정을 숨기는 데 도가 튼 사람으로서 아무런 내색도 없이 평소와 마찬가지로 그녀를 대했다.3일 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송재이는 퇴근하고 교문을 나섰다.오서희의 차가 정문 앞에 멈춰 있었는데, 거울처럼 반짝이는 검은색 승용차는 교내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차를 발견한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우선 올라탔다.오서희를 다시금 마주한 송재이의 태도에 뚜렷한 변화가 생겼다.차 안에서 오서희가 명령조로 말했다.“우리 아들한테서 떨어졌으면 좋겠어요. 본인의 신분을 누구보다 잘 알지 않아요? 이쯤에서 끝내는 게 서로를 위하는 길이죠.”송재이는 차분한 말투로 대답했다.“사모님의 의견은 존중합니다만 저와 영준 씨의 우정도 인정해주시길 바랍니다. 우린 사모님께서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오서희가 눈살을 찌푸렸다.“건방지군, 지금 누구 앞에서 잘난 척하는 거지? 송 선생이 우리 아들을 그렇게 잘 알아요?”송재이가 무덤덤하게 말했다.“영준 씨를 잘 안다고 한 적이 없어요. 단지 우리의 결백과 우정을 증명하려고 했을 뿐이죠. 하실 말씀이 이게 끝이라면 먼저 가 봐도 될까요?”오서희가 펄쩍 뛰면서 말했다.“당장 내려가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으니까.”송재이는 별말 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차에서 내리고 문을 닫았다.오서희를 대하는 데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긴지라 예전처럼 쉽게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저녁에 그녀는 혼자 살던 집으로 향했다.설영준은 며칠 전에 급한 일을 처리하러 경주로 다시 돌아갔다.결국 그에게 연락할까 말까 고민하던 중 휴대폰을 켜자마자 알림창에 뜬 뉴스 기사를 보고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싶었다.송재이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설한 그룹의 대규모 정리해고 뉴스가 온라인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해당 사건은 인터넷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기사를 확인하는 순간 이미 댓글로 도배 당했다.현재 설영준은 여론몰이에 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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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6화 매정한 방식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는 설영준은 무의식중에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속으로 만감이 교차했다.송재이와 박윤찬의 애매모호한 관계를 알게 된 이후로 그는 줄곧 불만과 질투를 억누르려고 갖은 애를 썼다.두 사람 사이에 이미 발생했을지도 모르는 친밀한 스킨십 따위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그런 장면을 떠올리는 자체로 그에게 처음 느껴보는 좌절감을 안겨주었다.하지만 지금 송재이가 자신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다니? 결국 알 수 없는 배신감에 부아가 치밀었다.또한, 송재이의 질의는 권위에 대한 도전일뿐더러 마음의 상처이기도 했다.특히 힘든 결정을 내렸을 때 그녀가 지지하고 이해해주기를 바랐다.이제 송재이마저 반대하니 오히려 고립감이 느껴졌고, 마치 전 세계 사람이 반발하는 듯싶었다.설영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져 만신창이가 되었다.이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한편, 송재이도 마음고생에 시달리고 있었다.설영준이 해고한 말단 직원만 생각하면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씁쓸하고 괴로운 기분이 들었다.하지만 그가 경주에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문자로 한바탕 싸우고 얼굴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불평불만이 계속 쌓이기만 했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그러다 밤이 찾아오면 또다시 설영준을 원망했고,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순간 화가 나면서도 그리운 모순적인 느낌이었다.그리고 낮에 수업이 없을 때면 창가에 앉아 이미 식은 커피를 손에 들고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곤 했다.설영준을 향한 그녀의 마음은 마치 식어버린 커피처럼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했다.이내 눈을 감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실마리를 찾으려고 했다.박윤찬의 연락을 받았을 때는 거의 퇴근할 무렵이었고, 혹시 시간 되면 같이 샤부샤부 먹으러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평소라면 기피 대상 1호였을 테지만 지금은 우울한 기분을 달래줄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그래서 [좋아요]라는 답장을 보냈다.저녁 6시, 두 사람은 1층에 있는 일식집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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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7화 다른 사람의 존재

박윤찬의 조언을 듣고 나서 송재이는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며칠 후 경주에서 돌아온 설영준은 퇴근 시간에 맞춰 송재이를 픽업하러 학교까지 찾아갔다.차는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조수석에 앉아 빠르게 지나가는 차창 밖의 풍경에서 시선을 돌린 송재이의 얼굴에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그러다 결국 용기를 내어 나지막이 물었다.“영준 씨, 설한 그룹은 요즘 괜찮아? 시장이 매우 불안정하다고 들었어.”설영준이 진지한 눈빛으로 송재이를 바라보았다.“재이야, 회사도 나도 걱정해줘서 고마워. 최근에 시장이 안 좋은 건 사실이야. 하지만 여러 가지 대책을 세워서 대처한 덕분에 상황이 점차 호전되고 있어.”송재이는 한시름 놓았지만 여전히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해고된 직원들은... 죄가 없는 사람들이야. 최소한의 보상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설영준은 손을 내밀어 송재이의 손등을 살포시 감싸고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네 마음 이해해. 나도 이 부분에 대해 고민했고 이미 피해받은 직원들의 재취업을 돕거나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지원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야. 그동안 그룹에 기여한 공로를 잊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송재이는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고마워, 영준 씨! 쉽지 않은 일인 건 알지만 이렇게까지 생각해주니 정말 기뻐.”두 사람은 길가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한 다음 별장으로 돌아갔다.거실에 들어서자 송재이는 커튼을 살짝 열었고,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을 감상하며 왠지 모르게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이때, 갑자기 울리는 초인종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지안 씨? 웬일이에요? 우리 집에는 왜...?”송재이는 의아했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손님을 거실로 맞이했다.류지안은 가방을 내려놓으며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재이 씨, 밤늦게 찾아와서 민폐라는 걸 알지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어요.”한편, 설영준은 샤워하러 위층으로 올라갔고 거실에는 두 여자만 남았다.소파에 앉은 다음 송재이는 류지안에게 차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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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8화 속이 후련

어두컴컴한 계단에 서 있는 설영준의 모습은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착잡한 눈빛은 감정을 헤아릴 수 없었고, 수건을 너무 꽉 쥔 탓에 살짝 구겨져 있었다.류지안의 말은 갑자기 불어닥친 찬바람처럼 그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송재이를 향한 감정은 절대 변치 않을 거로 확신했지만, 고작 작은 돌덩이 하나에 신념이 흔들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설영준은 거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그의 시선이 송재이와 류지안에게 닿았고, 허물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두 여자를 보자 왠지 모르게 울적했다.“영준 씨?”인기척을 느낀 송재이가 그를 향해 웃으면서 손짓했다.설영준이 억지로 미소를 쥐어 짜내고 송재이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하지만 마치 누군가 손으로 심장을 움켜잡은 듯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무슨 얘기 했어?”비록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흔들리는 눈빛까지 감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류지안은 미묘한 분위기의 변화를 감지했다.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핑계를 대고 황급히 작별을 고하고는 설영준과 송재이만 남겨두었다.문이 닫히는 순간 설영준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송재이는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었다. 불편한 심기가 고스란히 느껴졌고, 막연한 괴리감 때문에 괜스레 마음이 조마조마했다.그리고 이러한 의심과 불안을 없애줘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변명하기 시작했다.“영준 씨, 난...”그녀의 목소리는 다급함이 묻어났다.하지만 설영준은 손을 저으며 말을 끊었다.비록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지만 지친 기색이 역력한 안색은 낯설게 다가왔다.“굳이 설명 안 해도 돼. 난 널 믿어.”송재이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불안한 나머지 회피하려는 설영준의 의도를 어찌 모르겠는가?어쩌면 진실을 알고 나서 더욱 고통스러워하거나 그녀의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귀를 닫고 있을지도 모른다.설영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걸어가더니 야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이내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박윤찬이 괜찮은 남자라는 걸 나도 알아. 재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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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9화 우려

송재이의 진료 기록지를 받은 오서희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이내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애를 썼지만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파르르 떨렸다.마치 손에 들고 있는 진료 기록지가 천근만근이라도 되는 듯싶었다.무미건조한 의학 용어들을 빠르게 훑어보던 그녀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지고 착잡하게 변했다.진료 기록지는 송재이의 건강 상태를 보여줬을뿐더러 어머니로서 가장 예민한 곳을 소리 없이 건드리기도 했다.그녀는 이루 형용하기 힘든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앞으로 고난을 겪게 될지도 모르는 송재이를 향한 동정심과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아들에 대한 우려가 교차했다.특히 전통이 뿌리 깊은 사회에서 이런 소식은 어느 가족에게나 큰 타격이 된다는 것을 오서희는 잘 알고 있다.이내 뒤죽박죽 한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송재이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제 송재이는 오서희의 연락을 받고도 딱히 놀라지 않았다.오서희가 설영준의 친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예전보다 한결 편해졌다.송재이는 오서희가 만나자는 말에 흔쾌히 응했다.두 사람은 조용한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오서희는 송재이를 만나자마자 대뜸 진료 기록지를 던져 주었다.송재이는 흠칫 놀랐고, 이를 보는 순간 이번 만남의 목적이 대충 짐작이 갔다.이내 입술을 살짝 깨물었고,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진료 기록지는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꼭꼭 숨겨둔 상처를 무자비하게 도려냈다.그리고 진료 기록지를 펼쳐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체질상 불임이라는 결론이 떡하니 나타났다.지난번 유산한 이후로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는데 그녀에게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것과 마찬가지였다.순간, 눈앞에 흐려지면서 기억이 마치 해일처럼 밀려왔다.얼굴도 모르는 아이, 그리고 아픈 기억들이 또다시 그녀를 덮쳤다.날카롭게 번뜩이는 오서희의 싸늘한 눈빛은 송재이의 모든 약점과 비밀을 꿰뚫어 보는 듯싶었다.이내 차분하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단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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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0화 넌 너무 순진해

송재이는 머리가 어지러운 나머지 손으로 테이블의 가장자리를 꽉 움켜쥐었고 침착함을 되찾으려고 애를 썼다.오서희의 말은 마치 그녀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듯싶었다.흔들리는 눈빛은 무력감과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설영준과 만나면서 이렇게 혹독한 시련을 맞이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오서희는 시종일관 쌀쌀맞은 표정을 지었고, 단호하기 그지없는 말투로 말했다.“물론 쉽지 않은 일이죠. 나도 이해해요. 하지만 영준은 설씨 가문의 외동아들로서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책임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송재이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살짝 갈라져 있었다.“책임감이 막중하다는 걸 알지만... 전 영준 씨를 진짜 사랑해요...”오서희는 한숨을 내쉬더니 한풀 꺾인 어조로 대답했다.“송 선생님의 마음을 의심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만약 정말 영준이 잘 되기를 바라고 사랑한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미래를 위해서 희생할 줄 알아야 해요.”송재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공포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설영준과 함께할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 열쇠가 자기 몸 상태가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이내 마음속으로는 의혹과 의문으로 가득했다. 하필이면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질 수 없는 가혹한 운명을 타고나다니!오서희가 말을 이어갔다.“물론 괴롭겠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송 선생님이 상처를 입게 될뿐더러 영준도 끝없는 분쟁에 휘말리게 될 거예요. 두 사람 모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송재이는 숨이 턱 막혔다. 마치 깊은 심연 속에 빠진 듯 질식할 것 같았다.비록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흘러내리지 않도록 억지로 참았다.물론 오서희의 말이 매정하게 들리는 건 사실이지만 일리는 있었다.설영준을 사랑하지만 현실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듯싶었다.한편, 송재이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절규하고 있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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