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Chapter 201 - Chapter 210

660 Chapters

제201화 너에게 질리지 않는 이유

송재이는 설영준을 대신하여 자기 동생의 학부모회에 참석하였다.정말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면 그녀에게 이런 일을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그녀가 참석하게 되면 그들의 관계는 다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된다. 송재이는 마음속으로 준비를 단단히 하였다.이 일은 곧 설영준의 어머니인 오서희의 귀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처음에 오서희는 겉으로는 예의 있게 대했지만, 속으로는 아주 경멸했을 것이다.오서희가 이 일을 알고 난 후의 태도는 그녀는 이미 짐작했었다.…그날 송재이가 퇴근하고 막 빌딩에서 나올 때 검은색 페라리 한 대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봤다.차창이 천천히 내려갔다.차 안에는 고귀한 기품이 넘치고 우아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긴 머리로 올림머리를 하였고 50대의 나이지만 관리를 받아서 30대처럼 보였으며 몸매는 아주 날씬하였다. 정말 빨리 오셨네!오서희를 본 순간, 송재이는 의아한 정서가 가장 먼저 나타났고, 이어서 하늘이 내려앉을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오서희가 너무 도도해 보였고 또한 설영준의 어머니라서 송재이는 자신도 모르게 열등감을 느껴서 그런 것 같다.“타요!”오서희의 목소리 톤이 그리 높지 않았지만 냉랭한 분위기를 풍겼다.송재이는 입술을 잘끈 깨물고는 고개를 돌려 같이 있던 서유리에게 말했다.“먼저 갈게요.”서유리도 오서희의 신분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했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하였다.“네. 내일 봐요.”송재이는 차에 올라탄 후, 서유리는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서 그 차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요즈음 사유리도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그녀가 일편단심 좋아했던 박윤찬이 드디어 주동적으로 데이트 요청을 했지만, 그녀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준 시계를 돌려주기 위해서였다.“유리 씨, 유리 씨의 마음은 고맙지만 저는 받아들일 수 없어요. 죄송합니다.”“왜요? 제가 어디가 부족한가요?”서유리는 어릴 적부터 첼로를 배웠고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서 자신이 동경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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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대역

솔직히 말해서 당시 설씨 저택에서 송재이는 설영준과 첫만남을 가진 후 며칠 만에 두 사람은 잠자리를 가졌다.그때 그녀의 어머니는 편찮았고 또 아버지는 친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은 그녀에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어머니 앞에서 드러낼 수 없었다. 병원비의 부담에다 출생 비밀의 충격에 그녀는 답답해서 한동안 술집에 가서 술을 마셨다. 그러다가 취해서 로비에서 방금 룸에서 나온 설영준과 부딪친 것이다. 평소에 감정을 많이 억제한 사람은 술에 취하면 통제력을 쉽게 잃는다더니 송재이는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송 선생?”설영준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그렇게 착해 보이고 단정하고 고상해 보이는 여자가 이런 곳에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반쯤 얼큰하게 취한 송재이는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매혹적인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웃으면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의 귓가에 대고 한마디 했다.“오빠, 날 데리고 가요. 네?”그녀는 자신의 유혹은 특별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이 남자는 이런 직설적이고 촌스럽고 저속한 유혹을 많이 받아서 대수로이 여기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걸려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오랫동안 설영준은 주동적으로 품에 안기는 여자라면 다 받아주는 남자라고 생각했다.사실 대부분 남자는 그러하지 않은가.그날 그녀가 아니고 다른 여자라도 몸매와 얼굴이 괜찮고 그에게 그런 말을 했다면 그는 그 여자를 데리고 갔을 것이다.하룻밤을 지난 후 설영준은 어디서 송재이의 어려운 사정을 들었는지 자발적으로 그녀 어머니의 병원비를 지불해주는 대신에 애인으로 되어달라고 제안했다. 그는 돈을 내고 그녀는 몸을 내준다. 송재이는 이런 거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그녀는 다른 남자가 이런 제안을 하면 받아들이겠는지는 모르겠지만 설영준이기에 그녀는 크게 망설이지 않았다.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설영준은 미리 결과를 짐작한 듯 얼굴에 지은 미소는 자신감 외에 약간 경멸스러운 듯한 빛이 보였다. 송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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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저와 정아현이 많이 닮았나요?

송재이는 설영준에게 이별을 통보한 후 두 사람이 완전히 헤어지지 못하고 그 뒤로 이렇게 많이 엮이게 된 것은 꼭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후에 설영준은 그녀에 대한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공개적 또는 비공개적으로 그녀를 지켜줬고 따뜻한 사소한 일들도 많이 해주었다. 그녀의 오피스텔에서 지내면서 밥도 자주 해주었다. 침대에서도 거칠게, 또는 부드럽게 대해줘서 그녀에게 자기는 그의 유일한 사랑이라는 착각이 생기게 하였다. 이 모든 것으로 인해 송재이는 설영준의 마음속에 자기는 점점 중요한 사람으로 되었다는 느낌이 들게 된 것이다. 어쩌면 설영준은 그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어 이런 일들을 함으로써 그녀가 떠나지 못하게 붙잡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오서희는 사진 한 묶음으로 그녀의 모든 망상을 완전히 깨뜨렸다. 원래 품고 있었지만, 그녀가 조심스레 숨겨왔던 의혹들이 이때 무자비하게 까발렸다. “영준이가 송 선생을 마음에 뒀다기보단 송 선생의 운이 좋아서 그런 거 같아요. 마침 그가 첫사랑을 잃어서 몇 년 동안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송 선생이 갑자기 나타난 거죠. 지금 그가 송 선생에게 한 것은 마음속에 있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보상일 뿐이죠.”오서희는 송재이를 향해 지은 미소에 심지어 동정심이 어려 있다.오서희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송재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사실 이런 얘기를 일찍 송 선생에게 말했어야 했어요. 근데 저도 여자라 여자는 가끔 자신을 속이는 것을 좋아하는 걸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송 선생이 달콤한 꿈에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으라고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한 거예요.” 오서희는 정말 이런 선심을 썼을까?송재이가 보기엔 오선희는 그냥 재밌는 구경거리를 보기 위해서이다. 그녀는 테이블 아래서 주먹을 꽉 쥐었고 부르르 떨 뻔했다.“영준이는 마음이 한결같다고 할 수 있죠. 몇 년이나 흘렀어도 여전히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무정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첫사랑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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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차라리 끝까지 아프자

송재이가 주동적으로 박윤찬을 불러내서 처음에 박윤찬은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예율 법률 사무소의 아래에 있는 태국식 레스토랑에서. 박윤찬은 물을 따르고 있었는데 송재이의 질문에 물을 테이블 위에 쏟았다.그의 이런 반응을 보고 송재이의 마음도 순식간에 철렁했다. 그녀는 몸을 뒤로 기댄 채 의기소침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 후에 그녀는 자조적인 냉소를 지으면서 말하였다.“당신들은 다 아는데 저 혼자만 모르는 거예요?” 박윤찬과 설연중은 가까운 사이였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정직한 성품의 소유자라 사람을 속일 리가 없다. 그래서 박유찬의 반응에서 송재이는 거의 확신이 들었다. 정아현이란 여자는 확실히 존재하고 설영준과도 뼈아픈 과거가 있었다. 설영준은 여복이 참 많네? “그럼 저와 그 여자는 얼마나 많이 닮았는지 얘기해 봐요.”이어서 송재이는 또 물었다. 기왕 마음이 아팠으니 차라리 끝까지 아프자.지금의 송재이는 다소 자포자기한 생각이 들었다.박윤찬은 난처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면서 손에 든 주전자를 한쪽에 두었다.“이렇게 고민할 필요가 있나요? 지금 영준 씨의 마음속에 재이 씨만 있으면 되잖아요.”“박 변호사님, 제 질문에만 대답해 주시면 안 될까요?”송재이는 박윤찬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박윤찬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말하였다. “별로 안 닮았어요…그냥 눈만, 눈만 닮았어요.”그가 설영준의 집에서 송재이를 처음 만났을 때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는 워낙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박윤찬의 말을 듣자, 송재이는 더 환하게 웃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그녀는 차를 마시면서 찻잔으로 얼굴을 가렸다.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은가.그녀는 설영준은 그녀를 조금이라도 사랑하고 있고 그녀를 마음에 두었고 그녀를 위해 집안 살림을 잘하는 좋은 남자로 되었다고 여러 번 생각했었다. “그럼 둘이 왜 헤어졌나요?”다시 입을 열 때 송재이는 목이 쉬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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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헤어지자

송재이가 처음으로 설영준의 회사에 온 것은 아니었다. 프런트 데스크에 있는 직원도 그녀를 알아봤다. 특히 며칠 전에 그녀가 설영준 남동생의 학부모회에 참석한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조금이라도 가십거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이 소식을 들었다. 송재이가 설영주의 사무실로 가는데 가로막는 사람이 없었다. 송재이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올 때 여진과 마주쳤는데 여진도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대표님은 사무실에 계십니다.”다만 송재이가 지나간 후 여진의 얼굴에 번져 있던 웃음이 점차 굳어졌다. 그는 은근히 오늘의 송재이가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사무실 안.설영준이 서류를 보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머리도 들지 않고 말했다.“들어오세요!”송재이는 들어간 후 문을 닫았다.이틀 전까지만 해도 아무 일도 없었다. 설영준이 송재이더러 자신을 대신해서 설도영의 학부모회에 참가하라는 것도 사실은 그녀의 신분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또한 이 기회를 빌려서 두 사람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이다.앞으로 결혼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녀가 굳이 원한다면…“설영준, 우리 헤어지자.”송재이는 그의 책상머리에 서서 불쑥 이렇게 말하였다.설영준은 글을 쓰던 손을 멈추었다. 그러고 나서 고개를 들고 들어온 사람이 송재이인 걸 보고 꽤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를 더욱 의아하게 만든 것은 방금 그녀가 한 말이었다. 그는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하였다.“뭐라고 했어?”“우리 헤어지자고 했어.”송재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였다.그녀는 두 손을 등 뒤로 하고 꽉 쥐었다. 그는 그녀의 강렬한 정서를 느끼지 못했고 단지 그녀가 겉으로 드러난 잔잔한 표정만 볼 수 있었다.설영준은 갑자기 웃으면서 뒤로 기대었다. 그녀를 자세히 훑어보면서 조롱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입가의 웃음은 그녀를 웃는지 자신을 웃는지 알 수가 없었다.한참 후에 그는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하였다.“좋아.”그러고 나서 다시 고개를 숙이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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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감쪽같이 속이다

설영준과 헤어지고 나서 송재이는 한동안 기분이 울적했는데 민효연도 눈치를 챘다.하지만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유지했다.주현아가 떠난 후 그녀는 항상 외로움을 탔다.그나마 도정원이 양심이 있는 편이라 다행이었다. 비록 양육권을 빼앗겼지만, 평소에 연우를 돌보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그녀이니까.곁에 남은 어린 손녀가 현재 민효연의 유일한 안식처였다.가끔 고개를 돌리다가 민효연과 눈이 마주칠 때면 송재이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긴 눈빛은 열 길 물속처럼 헤아리기 힘들었다.따라서 당최 짐작이 안 갔다....송재이는 집으로 가던 중 유은정의 연락을 받았다.유은정은 전화에서 곧 경주를 떠난다고 말했다.그동안 하지현과 많은 일이 있었기에 잠시 이곳을 떠나 기분 전환할 겸 무작정 여행 계획을 잡았다고 했다.다음 날 저녁, 두 여자는 포장마차에서 한 잔하기로 약속을 잡았다.유은정이 떠나기 전 유일하게 작별 인사를 건넨 사람이 송재이였고, 문예슬은 연락도 하지 않았다.송재이 역시 문예슬에게 비밀로 했다.그녀도 이제는 유은정의 마음속 응어리가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솔직히 앞으로 친구 사이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고, 결국에는 운명에 달린 듯싶다.“혼자서 자동차 여행한다며? 안전에 꼭 유의해. 자, 모든 일이 잘 풀리길 바라며 나중에 다녀왔을 때 완전히 새로운, 환골탈태한 유은정이 되기를!”송재이가 웃으면서 잔을 부딪쳤다.유은정도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잔을 비운 뒤 시원하게 트림까지 했다.비록 시종일관 업된 모습을 유지했지만, 송재이는 그녀의 눈빛에서 이루 형용하기 힘든 쓸쓸함과 속상함을 보아냈다.이는 불과 몇 달 전 자신의 앞에서 해맑은 모습으로 약혼반지를 자랑하던 여자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어쨌거나 첫사랑이자 태어나서 처음 좋아하게 된 남자이니 공감은 되었다.이처럼 어이없고 막장 같은 결말에도 불구하고 지난 7~8년 동안 유은정은 자기 행복과 청춘을 모조리 바치지 않았는가?“다만 하지현도 대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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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나를 위해

설영준은 사전에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지만 하지현을 나락으로 내모는 과정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 건 사실이었다.하지현의 신임을 두둑이 받던 사람은 사실 그 사건이 터지고 나서 서서히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비록 겉으로는 평소와 별반 다를 바 없으나 등만 돌리면 다른 사람에게 하지현과 일하기 싫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소문이 어찌저찌 설영준의 귀까지 흘러 들어가 상대방을 먼저 찾아가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결국 두 사람은 같은 편에 서기로 했다.하지현은 돈을 좋아하고 재산을 불리기에 급급한지라 설영준은 우선 높이 추켜세우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한 다음 철저하게 짓밟을 계획이었다.그리고 돈을 넣은 지 일주일 만에 투자금은 무려 세 배로 불어났다.재벌 2세 유은정과 연애하는 동안 그녀의 관계를 빌려 안목이 꽤 높아졌다고 자부했으나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수익을 끌어올린 건 솔직히 처음이었다.마치 올인해서 잭폿을 터뜨린 듯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어깨가 저절로 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벼락부자가 된 느낌은 적응이 안 될 정도였다.그러나 정말 정말 행복했다.이 정도 재산이라면 더는 국내 상류층 사교계에서 눈총을 받을 필요가 없으며, 해외로 도피해 병을 치료하면서 호의호식하기 충분했다.꿈틀거리는 욕망이 전신으로 퍼져나갔고, 지금이야말로 운을 바꿀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했다.사람은 때로 벼랑 끝에 다다를수록 신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컸다.결국 침대 앞에서 무릎 꿇고 밤하늘의 달을 향해 세 번 절을 하며 온갖 신에게 이번만큼은 무사히 넘겨달라고 간절히 기도까지 했다.현재의 그는 귀신에 홀린 게 분명했다.그리고 정산받은 후 또다시 투자에 뛰어들어 남은 재산의 3/2를 올인했다.3일 뒤, 투자금이 두 배로 뛰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이를 접하자마자 하지현은 다리가 풀릴 뻔했다.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가정환경이 넉넉지 않았기에 밑바닥부터 힘겹게 기어 올라온 사람으로서 돈의 매력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았다.그에게 방탕한 생활보다 금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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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파트너에 대한 미련

사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봐도 크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하지현도 애를 꽤 먹었기에 엄연히 따지면 쌍방 폭력인 셈이다.송재이가 다른 생각에 빠진 찰나 유은정이 문득 화제를 돌리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재이야, 물론 설 대표님이 너한테 마음이 있어서 그러는 거겠지만 상대방이 먼저 헤어지자고 하지 않는 이상 나중에 네가 먼저 실수라도 한다면 워낙 가차 없는 성격이라 오히려 본인 걱정을 더 해야 할 것 같은데?”어쨌거나 무자비한 수단과 한 치의 속마음도 알기 힘든 남자를 매일같이 마주해야 한다는 자체만으로 마음이 조마조마하기 마련이다.송재이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한참이 지나서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이미 헤어졌어.”“뭐?”유은정이 깜짝 놀라며 한참 뒤에야 물었다.“왜?”지금까지 수다를 떨다가 그제야 설영준과 헤어진 일을 얘기하다니? 송재이의 인내심에 혀를 내두르는 순간이었다.결국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못 이겨 결국은 오서희가 찾아왔다고 얘기해 주었다.처음에는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유은정도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점차 똥 씹은 듯 떨떠름했다.“설 대표 그렇게 안 봤는데 일 처리가 아주 형편없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첫사랑 대타를 운운하고 있지?”유은정은 멈칫하더니 무언가를 떠올린 듯 다시 말을 이어갔다.“근데 사실 맞아? 그 아줌마가 너희 둘을 헤어지게 하려고 일부러 지어낸 건 아닐까?”송재이는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윤찬 씨한테 물어봤어. 심지어 윤찬 씨도 내가 정아현이라는 여자와 눈이 똑 닮았대.”오서희는 거짓말할 가능성이 크지만 박윤찬의 됨됨이는 믿고 있는 송재이였다.당시 그보다 더 실감 나는 반응은 없었을 테니까.“헤어지자고 했더니 알겠대?”유은정이 다시 물었다.송재이는 입술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생각해보면 애초에 그 사람은 내 몸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고, 설령 날 좋아하는 건 아닌지 싶어도 고작 여자를 꼬시는 수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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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용서할 수 없어

유은정이 올린 내용을 문예슬은 오후가 되어서야 확인했다.이내 하트까지 누른 송재이의 댓글을 보게 되었다.[나중에 돌아오면 다시 양꼬치에 한 잔해.]유은정이 대댓글을 남겼다.[좋아!]문예슬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둘이 따로 만난 건가? 왜 그녀에게는 비밀로 했지?왠지 모르게 삼총사 무리에서 따돌림당한 느낌이 문득 들었다.둘이 훨씬 더 친해 보였고, 그녀는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문예슬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사실 속으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심지어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마저 얼핏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된 이상 무슨 짓을 하든 망설일 필요가 없을 테니까.방현수는 최근에 수심이 가득했다. 다음 달이면 해외 지사로 발령이 나는데 남들은 승진한다고 하지만 자신은 정반대였다.이번 사건은 회사에서 우스갯거리로 전락하기도 했다.결국 문예슬과 한잔하기로 해서 그동안의 서러움을 털어놓았다.그녀는 시종일관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일관했다.이내 술자리가 길어지며 저도 모르게 비밀까지 술술 얘기해주었다.어느 날 방현수는 우연을 가장한 만남 차원에서 일부러 송재이의 아파트에 찾아갔는데 예상외로 진짜 마주쳤고, 심지어 집까지 데려다줬다고 했다.그리고 단둘이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나쁜 마음을 먹은 적도 있지만 금세 정신을 차렸다는 해프닝이었다.이유는 송재이가 본인이 차마 건드릴 수 있는 여자가 아니며, 설영준과 라이벌은커녕 겸상할 자격조차 없다는 사실에 대해 뻔했다는 것이다.그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다.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한들 설영준의 마수를 벗어나지 못했으니 괜스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방현수의 말을 들으며 문예슬은 속으로 몰래 기억하고 있었다.나중에 이 사건을 한껏 부풀려서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었다.설영준과 복잡 미묘한 관계인 상대방은 늘 그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지만 겉으로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마침 문예슬은 이러한 사이를 이용해 알게 모르게 설영준의 귀에 흘러 들어가게 했다.물론 그 사람이 전달한 내용은 방현수가 송재이를 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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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흔한 작별

한 도시에 대한 감정은 기분의 변화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경주에서 20년 동안 살아온 송재이는 곰곰이 따져보면 아직 미지의 세상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그동안 워낙 다양한 일들이 벌어져서 딱히 감개무량할 시간도 없었다. 어쩌면 최근에 헤어져서 그런지 몰라도 실연하고 나니 괜스레 감성적으로 변해 별것도 아닌 일에 마음이 흔들리고는 했다.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회식이 있는 밤, 송재이는 간만에 술을 몇 잔 마셨다.창가 자리에 앉은 그녀는 술잔이 오고 가는 옆 테이블과 달리 홀로 고개를 들고 손에 든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창밖으로 북적이는 거리를 내려다보았다.레스토랑은 호수 뷰로 유명했고, 저녁이면 유람선을 타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바글바글했다.사람들의 얼굴에는 전부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하지만 분위기가 화기애애할수록 그녀의 외로움이 더욱 돋보이는 듯싶었다.어쩌면 이때부터 관둘지 말지 고민했을지도 모른다.갑자기 경주를 떠나려는 마음이 굴뚝 같았고, 20년 인생사에 수많은 이야기가 펼쳐진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비록 그녀는 즉흥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점점 확신이 드는 이상 결코 질질 끌지 않았다.이내 단장님을 찾아서 개인 면담을 신청했고, 그녀가 악단을 떠난다고 했을 때 깜짝 놀라며 제대로 고민하고 내린 결론이 맞냐고 몇 번이고 확인했다.송재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다른 도시에서도 한번 살아보고 싶어요. 한곳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지 조금 지겹네요.”단장은 입맛 벙긋하더니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동안 네가 악단에서 맹활약을 펼친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야. 수석으로 승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쉽네. 어쨌거나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 생각이 있기 나름이니 말을 꺼낸 이상 허락해줄 수밖에 없을 것 같군. 오후에 인사팀에 찾아가서 퇴사 수속하거라.”송재이는 이미 마음을 굳게 먹었다.그녀가 결정한 일이라면 일반 사람은 설득할 수가 없다.다행히 단장이 붙잡지 않아서 한시름 놓았다.퇴사 수속은 금세 끝났다.그리고 수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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