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영준과 헤어지고 나서 송재이는 한동안 기분이 울적했는데 민효연도 눈치를 챘다.하지만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유지했다.주현아가 떠난 후 그녀는 항상 외로움을 탔다.그나마 도정원이 양심이 있는 편이라 다행이었다. 비록 양육권을 빼앗겼지만, 평소에 연우를 돌보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그녀이니까.곁에 남은 어린 손녀가 현재 민효연의 유일한 안식처였다.가끔 고개를 돌리다가 민효연과 눈이 마주칠 때면 송재이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긴 눈빛은 열 길 물속처럼 헤아리기 힘들었다.따라서 당최 짐작이 안 갔다....송재이는 집으로 가던 중 유은정의 연락을 받았다.유은정은 전화에서 곧 경주를 떠난다고 말했다.그동안 하지현과 많은 일이 있었기에 잠시 이곳을 떠나 기분 전환할 겸 무작정 여행 계획을 잡았다고 했다.다음 날 저녁, 두 여자는 포장마차에서 한 잔하기로 약속을 잡았다.유은정이 떠나기 전 유일하게 작별 인사를 건넨 사람이 송재이였고, 문예슬은 연락도 하지 않았다.송재이 역시 문예슬에게 비밀로 했다.그녀도 이제는 유은정의 마음속 응어리가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솔직히 앞으로 친구 사이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고, 결국에는 운명에 달린 듯싶다.“혼자서 자동차 여행한다며? 안전에 꼭 유의해. 자, 모든 일이 잘 풀리길 바라며 나중에 다녀왔을 때 완전히 새로운, 환골탈태한 유은정이 되기를!”송재이가 웃으면서 잔을 부딪쳤다.유은정도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잔을 비운 뒤 시원하게 트림까지 했다.비록 시종일관 업된 모습을 유지했지만, 송재이는 그녀의 눈빛에서 이루 형용하기 힘든 쓸쓸함과 속상함을 보아냈다.이는 불과 몇 달 전 자신의 앞에서 해맑은 모습으로 약혼반지를 자랑하던 여자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어쨌거나 첫사랑이자 태어나서 처음 좋아하게 된 남자이니 공감은 되었다.이처럼 어이없고 막장 같은 결말에도 불구하고 지난 7~8년 동안 유은정은 자기 행복과 청춘을 모조리 바치지 않았는가?“다만 하지현도 대가를
설영준은 사전에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지만 하지현을 나락으로 내모는 과정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 건 사실이었다.하지현의 신임을 두둑이 받던 사람은 사실 그 사건이 터지고 나서 서서히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비록 겉으로는 평소와 별반 다를 바 없으나 등만 돌리면 다른 사람에게 하지현과 일하기 싫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소문이 어찌저찌 설영준의 귀까지 흘러 들어가 상대방을 먼저 찾아가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결국 두 사람은 같은 편에 서기로 했다.하지현은 돈을 좋아하고 재산을 불리기에 급급한지라 설영준은 우선 높이 추켜세우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한 다음 철저하게 짓밟을 계획이었다.그리고 돈을 넣은 지 일주일 만에 투자금은 무려 세 배로 불어났다.재벌 2세 유은정과 연애하는 동안 그녀의 관계를 빌려 안목이 꽤 높아졌다고 자부했으나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수익을 끌어올린 건 솔직히 처음이었다.마치 올인해서 잭폿을 터뜨린 듯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어깨가 저절로 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벼락부자가 된 느낌은 적응이 안 될 정도였다.그러나 정말 정말 행복했다.이 정도 재산이라면 더는 국내 상류층 사교계에서 눈총을 받을 필요가 없으며, 해외로 도피해 병을 치료하면서 호의호식하기 충분했다.꿈틀거리는 욕망이 전신으로 퍼져나갔고, 지금이야말로 운을 바꿀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했다.사람은 때로 벼랑 끝에 다다를수록 신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컸다.결국 침대 앞에서 무릎 꿇고 밤하늘의 달을 향해 세 번 절을 하며 온갖 신에게 이번만큼은 무사히 넘겨달라고 간절히 기도까지 했다.현재의 그는 귀신에 홀린 게 분명했다.그리고 정산받은 후 또다시 투자에 뛰어들어 남은 재산의 3/2를 올인했다.3일 뒤, 투자금이 두 배로 뛰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이를 접하자마자 하지현은 다리가 풀릴 뻔했다.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가정환경이 넉넉지 않았기에 밑바닥부터 힘겹게 기어 올라온 사람으로서 돈의 매력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았다.그에게 방탕한 생활보다 금전의
사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봐도 크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하지현도 애를 꽤 먹었기에 엄연히 따지면 쌍방 폭력인 셈이다.송재이가 다른 생각에 빠진 찰나 유은정이 문득 화제를 돌리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재이야, 물론 설 대표님이 너한테 마음이 있어서 그러는 거겠지만 상대방이 먼저 헤어지자고 하지 않는 이상 나중에 네가 먼저 실수라도 한다면 워낙 가차 없는 성격이라 오히려 본인 걱정을 더 해야 할 것 같은데?”어쨌거나 무자비한 수단과 한 치의 속마음도 알기 힘든 남자를 매일같이 마주해야 한다는 자체만으로 마음이 조마조마하기 마련이다.송재이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한참이 지나서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이미 헤어졌어.”“뭐?”유은정이 깜짝 놀라며 한참 뒤에야 물었다.“왜?”지금까지 수다를 떨다가 그제야 설영준과 헤어진 일을 얘기하다니? 송재이의 인내심에 혀를 내두르는 순간이었다.결국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못 이겨 결국은 오서희가 찾아왔다고 얘기해 주었다.처음에는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유은정도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점차 똥 씹은 듯 떨떠름했다.“설 대표 그렇게 안 봤는데 일 처리가 아주 형편없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첫사랑 대타를 운운하고 있지?”유은정은 멈칫하더니 무언가를 떠올린 듯 다시 말을 이어갔다.“근데 사실 맞아? 그 아줌마가 너희 둘을 헤어지게 하려고 일부러 지어낸 건 아닐까?”송재이는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윤찬 씨한테 물어봤어. 심지어 윤찬 씨도 내가 정아현이라는 여자와 눈이 똑 닮았대.”오서희는 거짓말할 가능성이 크지만 박윤찬의 됨됨이는 믿고 있는 송재이였다.당시 그보다 더 실감 나는 반응은 없었을 테니까.“헤어지자고 했더니 알겠대?”유은정이 다시 물었다.송재이는 입술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생각해보면 애초에 그 사람은 내 몸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고, 설령 날 좋아하는 건 아닌지 싶어도 고작 여자를 꼬시는 수단에
유은정이 올린 내용을 문예슬은 오후가 되어서야 확인했다.이내 하트까지 누른 송재이의 댓글을 보게 되었다.[나중에 돌아오면 다시 양꼬치에 한 잔해.]유은정이 대댓글을 남겼다.[좋아!]문예슬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둘이 따로 만난 건가? 왜 그녀에게는 비밀로 했지?왠지 모르게 삼총사 무리에서 따돌림당한 느낌이 문득 들었다.둘이 훨씬 더 친해 보였고, 그녀는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문예슬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사실 속으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심지어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마저 얼핏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된 이상 무슨 짓을 하든 망설일 필요가 없을 테니까.방현수는 최근에 수심이 가득했다. 다음 달이면 해외 지사로 발령이 나는데 남들은 승진한다고 하지만 자신은 정반대였다.이번 사건은 회사에서 우스갯거리로 전락하기도 했다.결국 문예슬과 한잔하기로 해서 그동안의 서러움을 털어놓았다.그녀는 시종일관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일관했다.이내 술자리가 길어지며 저도 모르게 비밀까지 술술 얘기해주었다.어느 날 방현수는 우연을 가장한 만남 차원에서 일부러 송재이의 아파트에 찾아갔는데 예상외로 진짜 마주쳤고, 심지어 집까지 데려다줬다고 했다.그리고 단둘이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나쁜 마음을 먹은 적도 있지만 금세 정신을 차렸다는 해프닝이었다.이유는 송재이가 본인이 차마 건드릴 수 있는 여자가 아니며, 설영준과 라이벌은커녕 겸상할 자격조차 없다는 사실에 대해 뻔했다는 것이다.그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다.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한들 설영준의 마수를 벗어나지 못했으니 괜스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방현수의 말을 들으며 문예슬은 속으로 몰래 기억하고 있었다.나중에 이 사건을 한껏 부풀려서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었다.설영준과 복잡 미묘한 관계인 상대방은 늘 그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지만 겉으로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마침 문예슬은 이러한 사이를 이용해 알게 모르게 설영준의 귀에 흘러 들어가게 했다.물론 그 사람이 전달한 내용은 방현수가 송재이를 데려
한 도시에 대한 감정은 기분의 변화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경주에서 20년 동안 살아온 송재이는 곰곰이 따져보면 아직 미지의 세상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그동안 워낙 다양한 일들이 벌어져서 딱히 감개무량할 시간도 없었다. 어쩌면 최근에 헤어져서 그런지 몰라도 실연하고 나니 괜스레 감성적으로 변해 별것도 아닌 일에 마음이 흔들리고는 했다.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회식이 있는 밤, 송재이는 간만에 술을 몇 잔 마셨다.창가 자리에 앉은 그녀는 술잔이 오고 가는 옆 테이블과 달리 홀로 고개를 들고 손에 든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창밖으로 북적이는 거리를 내려다보았다.레스토랑은 호수 뷰로 유명했고, 저녁이면 유람선을 타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바글바글했다.사람들의 얼굴에는 전부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하지만 분위기가 화기애애할수록 그녀의 외로움이 더욱 돋보이는 듯싶었다.어쩌면 이때부터 관둘지 말지 고민했을지도 모른다.갑자기 경주를 떠나려는 마음이 굴뚝 같았고, 20년 인생사에 수많은 이야기가 펼쳐진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비록 그녀는 즉흥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점점 확신이 드는 이상 결코 질질 끌지 않았다.이내 단장님을 찾아서 개인 면담을 신청했고, 그녀가 악단을 떠난다고 했을 때 깜짝 놀라며 제대로 고민하고 내린 결론이 맞냐고 몇 번이고 확인했다.송재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다른 도시에서도 한번 살아보고 싶어요. 한곳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지 조금 지겹네요.”단장은 입맛 벙긋하더니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동안 네가 악단에서 맹활약을 펼친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야. 수석으로 승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쉽네. 어쨌거나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 생각이 있기 나름이니 말을 꺼낸 이상 허락해줄 수밖에 없을 것 같군. 오후에 인사팀에 찾아가서 퇴사 수속하거라.”송재이는 이미 마음을 굳게 먹었다.그녀가 결정한 일이라면 일반 사람은 설득할 수가 없다.다행히 단장이 붙잡지 않아서 한시름 놓았다.퇴사 수속은 금세 끝났다.그리고 수속
서유리는 설영준에 관한 업계 뉴스에서 여진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스포트라이트와 마이크가 모두 설영준에게 향할 때 그는 눈에 띄지 않은 구석에서 자리를 지켰다.딱 떨어지는 슈트와 딱딱하게 굳은 얼굴, 설령 업계 거물과 비교한다고 한들 어디 하나 꿀리지 않았다.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 기억력이 너무 뛰어나도 문제였다.이때, 오가는 사람들 틈에서 그녀는 통화하는 여진의 모습을 발견했다.누가 봐도 오피스룩 차림에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그는 아랍 거래처 사장님을 모셔다 주고 돌아가는 길에 설영준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이내 전화로 업무 얘기를 주고받았다.통화를 마치고 나서 뒤를 돌아서는 순간 등 뒤에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누구...?”흠칫 놀란 여진은 상대방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서유리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곧이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설 대표님께서 왜 송재이 씨랑 헤어졌죠?”순간 넋을 잃은 여진은 곧바로 페이스를 되찾았다.“송 선생님이랑 아는 사이인가요?”“전 직장 동료예요.”서유리가 대답했다.“전...이요?”여진이 요점을 잽싸게 포착했다.서유리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머릿속에는 송재이와 밥을 먹던 저녁, 설영준을 언급했을 때 씁쓸함이 언뜻 스쳐 지나간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사실 그동안 설 대표님에 대한 이미지가 꽤 좋았거든요. 다른 재벌 2세와 다르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여자를 쉽게 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저의 착각에 불과했죠. 대표님에게 관계를 끊어내는 건 밥 먹듯 쉬웠고, 송재이 씨만 불쌍하게 상처만 가득한 이곳을 떠나게 되는 신세라니... 남자란, 참.”서유리는 자기 할 말만 마치고 뒤돌아서 떠났다.여진은 어리둥절했다.하지만 송재이와 관련된 일인 이상 대충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서유리가 몇 걸음 못 가서 여진에게 따라 잡혔다.“저기요, 잠시만...”“저기라니? 서유리라는 이름이
그녀의 앞에 있는 지민건은 환한 미소를 지었고, 마치 몸 위로 내리쬐는 햇살처럼 따스하면서 훈훈한 느낌이 들었다.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그의 모습은 개과천선한 듯싶었다.지민건이 한 달 일찍 출소한 건 사실이며, 경주를 떠나 하성에 장착했다.원래는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했지만 감옥을 다녀온 기록이 있어 녹록지 않았다.다행히 본가에 집이 있는데 단지 오랫동안 비워뒀을 뿐이다.경주에서 사업이 전성기를 맞이했을 때는 심지어 까먹기도 했다.이제 인생의 바닥을 찍고 나니 이 집이 마지막 지푸라기가 될 줄은 몰랐다.그리고 잽싸게 팔아서 현금화했다. 비록 6천만 원밖에 안 되는 금액이지만 현재의 그에게 창업 자금으로 충분했다.지민건은 하성에서 자그마한 무역 회사를 설립해 바닥부터 시작했다.예전에 사업했던 경험을 토대로 실적을 차근차근 쌓아 나갔다.이번에 남도를 찾은 것도 사실 업무 때문이었다.원래 과거와 깔끔하게 이별하려고 했으나 낯선 도시에서 송재이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송재이는 남도 길거리 노포에서 지민건의 얘기를 잠자코 들어주었다.둘은 비빔국수를 먹으며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었다.“난 살면서 잘못한 짓이 참 많은데, 그중에서도 너한테 제일 미안했어.”지민건은 갑자기 화제를 돌리더니 송재이를 바라보았다.“주현아와 손을 잡고 아이를 낙태시킨 일은 회상할 때마다 죄책감이 들어. 어쩌면 사람을 죽여놓고 초상을 치러 주는 격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믿거나 말거나 미안한 건 사실이야.”아량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어찌 살인자를 용서하겠는가? 물론 그녀도 마찬가지였고, 변수가 있다고 하면 세월의 흐름과 경험의 축적, 옥살이 중 고난을 겪으면서 한풀 꺾인 지민건의 모습을 마주하니 이제는 훌훌 털어버려도 될 것 같았다.굳이 따지자면 털어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잊으라고 강요하는 셈이다.그동안의 나쁜 기억을 잊어야만 과거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법이다.송재이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이미 잃어버린 건 사과한다고 해서 되찾을
“전무님, 뭘 축하 하시는 건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요?”송재이는 고개를 들고 서도재를 향해 차갑게 웃었다.서도재는 눈썹을 들썩거리더니 입을 열었다.“민건이는 출소하고나서 한 발짝 한 발짝 힘들게 걸어왔어요. 그러다가 어렵게 저와 손을 맞잡았고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민건이에게 아주 중요해요. 제가 줄지 말지는 제 기분에 달려 있어요. 송 선생님, 민건이를 도와줄 마음이 있다면...”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송재이가 벌떡 일어났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지민건을 노려보았고 순간 정적이 흘렀다.그리고는 송재이가 서도재를 향해 입을 열었다.“저는 전무님이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결코 지민건을 도울 의사가 없어요. 저는 그와 친구도 아닌 데다가 그 회사의 어떠한 업무든지 성사시킬 의무가 없어요. 오늘은 민건이가 사람을 잘못 찾았을 뿐만 아니라 전무님도 마찬가지로 사람 잘못 찾았어요!”그녀는 옆에 있던 가방을 들고 발길을 돌려 레스토랑을 떠났다.송재이는 자기가 남도까지 왔는데 또다시 이런 난처한 일에 휘말리게 될 줄은 몰랐다.그녀가 걸어 나오자마자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송재이는 누군지 짐작했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하지만 상대방은 그런 그녀의 속마음을 모른 채 여전히 손목을 붙잡았다.“재이야, 만약 네가 날 도와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킨다면 너에게 돈을 나눠줄게. 너 지금 직업이 없잖아. 돈을 좀 벌었다고 생각하고 말이야...”“지민건, 네가 무슨 자격으로?”참다못한 송재이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골목에 서서 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시간이 많이 흘러서 나는 네가 정말 변한 줄 알았어. 네가 예전에 나에게 했던 일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미안해할 줄 알았어. 하지만 너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 넌 똑같은 일을 여러 번, 계속 반복하고 있어. 나를 데리고 가서 설영준과 함께 술을 마시라고 하질 않나, 이번에는 또 나를 데리고 와서 서도재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질 않나... 내가 너한테 무슨 빚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