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정이 올린 내용을 문예슬은 오후가 되어서야 확인했다.이내 하트까지 누른 송재이의 댓글을 보게 되었다.[나중에 돌아오면 다시 양꼬치에 한 잔해.]유은정이 대댓글을 남겼다.[좋아!]문예슬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둘이 따로 만난 건가? 왜 그녀에게는 비밀로 했지?왠지 모르게 삼총사 무리에서 따돌림당한 느낌이 문득 들었다.둘이 훨씬 더 친해 보였고, 그녀는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문예슬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사실 속으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심지어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마저 얼핏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된 이상 무슨 짓을 하든 망설일 필요가 없을 테니까.방현수는 최근에 수심이 가득했다. 다음 달이면 해외 지사로 발령이 나는데 남들은 승진한다고 하지만 자신은 정반대였다.이번 사건은 회사에서 우스갯거리로 전락하기도 했다.결국 문예슬과 한잔하기로 해서 그동안의 서러움을 털어놓았다.그녀는 시종일관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일관했다.이내 술자리가 길어지며 저도 모르게 비밀까지 술술 얘기해주었다.어느 날 방현수는 우연을 가장한 만남 차원에서 일부러 송재이의 아파트에 찾아갔는데 예상외로 진짜 마주쳤고, 심지어 집까지 데려다줬다고 했다.그리고 단둘이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나쁜 마음을 먹은 적도 있지만 금세 정신을 차렸다는 해프닝이었다.이유는 송재이가 본인이 차마 건드릴 수 있는 여자가 아니며, 설영준과 라이벌은커녕 겸상할 자격조차 없다는 사실에 대해 뻔했다는 것이다.그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다.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한들 설영준의 마수를 벗어나지 못했으니 괜스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방현수의 말을 들으며 문예슬은 속으로 몰래 기억하고 있었다.나중에 이 사건을 한껏 부풀려서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었다.설영준과 복잡 미묘한 관계인 상대방은 늘 그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지만 겉으로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마침 문예슬은 이러한 사이를 이용해 알게 모르게 설영준의 귀에 흘러 들어가게 했다.물론 그 사람이 전달한 내용은 방현수가 송재이를 데려
한 도시에 대한 감정은 기분의 변화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경주에서 20년 동안 살아온 송재이는 곰곰이 따져보면 아직 미지의 세상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그동안 워낙 다양한 일들이 벌어져서 딱히 감개무량할 시간도 없었다. 어쩌면 최근에 헤어져서 그런지 몰라도 실연하고 나니 괜스레 감성적으로 변해 별것도 아닌 일에 마음이 흔들리고는 했다.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회식이 있는 밤, 송재이는 간만에 술을 몇 잔 마셨다.창가 자리에 앉은 그녀는 술잔이 오고 가는 옆 테이블과 달리 홀로 고개를 들고 손에 든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창밖으로 북적이는 거리를 내려다보았다.레스토랑은 호수 뷰로 유명했고, 저녁이면 유람선을 타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바글바글했다.사람들의 얼굴에는 전부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하지만 분위기가 화기애애할수록 그녀의 외로움이 더욱 돋보이는 듯싶었다.어쩌면 이때부터 관둘지 말지 고민했을지도 모른다.갑자기 경주를 떠나려는 마음이 굴뚝 같았고, 20년 인생사에 수많은 이야기가 펼쳐진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비록 그녀는 즉흥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점점 확신이 드는 이상 결코 질질 끌지 않았다.이내 단장님을 찾아서 개인 면담을 신청했고, 그녀가 악단을 떠난다고 했을 때 깜짝 놀라며 제대로 고민하고 내린 결론이 맞냐고 몇 번이고 확인했다.송재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다른 도시에서도 한번 살아보고 싶어요. 한곳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지 조금 지겹네요.”단장은 입맛 벙긋하더니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동안 네가 악단에서 맹활약을 펼친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야. 수석으로 승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쉽네. 어쨌거나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 생각이 있기 나름이니 말을 꺼낸 이상 허락해줄 수밖에 없을 것 같군. 오후에 인사팀에 찾아가서 퇴사 수속하거라.”송재이는 이미 마음을 굳게 먹었다.그녀가 결정한 일이라면 일반 사람은 설득할 수가 없다.다행히 단장이 붙잡지 않아서 한시름 놓았다.퇴사 수속은 금세 끝났다.그리고 수속
서유리는 설영준에 관한 업계 뉴스에서 여진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스포트라이트와 마이크가 모두 설영준에게 향할 때 그는 눈에 띄지 않은 구석에서 자리를 지켰다.딱 떨어지는 슈트와 딱딱하게 굳은 얼굴, 설령 업계 거물과 비교한다고 한들 어디 하나 꿀리지 않았다.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 기억력이 너무 뛰어나도 문제였다.이때, 오가는 사람들 틈에서 그녀는 통화하는 여진의 모습을 발견했다.누가 봐도 오피스룩 차림에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그는 아랍 거래처 사장님을 모셔다 주고 돌아가는 길에 설영준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이내 전화로 업무 얘기를 주고받았다.통화를 마치고 나서 뒤를 돌아서는 순간 등 뒤에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누구...?”흠칫 놀란 여진은 상대방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서유리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곧이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설 대표님께서 왜 송재이 씨랑 헤어졌죠?”순간 넋을 잃은 여진은 곧바로 페이스를 되찾았다.“송 선생님이랑 아는 사이인가요?”“전 직장 동료예요.”서유리가 대답했다.“전...이요?”여진이 요점을 잽싸게 포착했다.서유리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머릿속에는 송재이와 밥을 먹던 저녁, 설영준을 언급했을 때 씁쓸함이 언뜻 스쳐 지나간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사실 그동안 설 대표님에 대한 이미지가 꽤 좋았거든요. 다른 재벌 2세와 다르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여자를 쉽게 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저의 착각에 불과했죠. 대표님에게 관계를 끊어내는 건 밥 먹듯 쉬웠고, 송재이 씨만 불쌍하게 상처만 가득한 이곳을 떠나게 되는 신세라니... 남자란, 참.”서유리는 자기 할 말만 마치고 뒤돌아서 떠났다.여진은 어리둥절했다.하지만 송재이와 관련된 일인 이상 대충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서유리가 몇 걸음 못 가서 여진에게 따라 잡혔다.“저기요, 잠시만...”“저기라니? 서유리라는 이름이
그녀의 앞에 있는 지민건은 환한 미소를 지었고, 마치 몸 위로 내리쬐는 햇살처럼 따스하면서 훈훈한 느낌이 들었다.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그의 모습은 개과천선한 듯싶었다.지민건이 한 달 일찍 출소한 건 사실이며, 경주를 떠나 하성에 장착했다.원래는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했지만 감옥을 다녀온 기록이 있어 녹록지 않았다.다행히 본가에 집이 있는데 단지 오랫동안 비워뒀을 뿐이다.경주에서 사업이 전성기를 맞이했을 때는 심지어 까먹기도 했다.이제 인생의 바닥을 찍고 나니 이 집이 마지막 지푸라기가 될 줄은 몰랐다.그리고 잽싸게 팔아서 현금화했다. 비록 6천만 원밖에 안 되는 금액이지만 현재의 그에게 창업 자금으로 충분했다.지민건은 하성에서 자그마한 무역 회사를 설립해 바닥부터 시작했다.예전에 사업했던 경험을 토대로 실적을 차근차근 쌓아 나갔다.이번에 남도를 찾은 것도 사실 업무 때문이었다.원래 과거와 깔끔하게 이별하려고 했으나 낯선 도시에서 송재이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송재이는 남도 길거리 노포에서 지민건의 얘기를 잠자코 들어주었다.둘은 비빔국수를 먹으며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었다.“난 살면서 잘못한 짓이 참 많은데, 그중에서도 너한테 제일 미안했어.”지민건은 갑자기 화제를 돌리더니 송재이를 바라보았다.“주현아와 손을 잡고 아이를 낙태시킨 일은 회상할 때마다 죄책감이 들어. 어쩌면 사람을 죽여놓고 초상을 치러 주는 격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믿거나 말거나 미안한 건 사실이야.”아량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어찌 살인자를 용서하겠는가? 물론 그녀도 마찬가지였고, 변수가 있다고 하면 세월의 흐름과 경험의 축적, 옥살이 중 고난을 겪으면서 한풀 꺾인 지민건의 모습을 마주하니 이제는 훌훌 털어버려도 될 것 같았다.굳이 따지자면 털어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잊으라고 강요하는 셈이다.그동안의 나쁜 기억을 잊어야만 과거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법이다.송재이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이미 잃어버린 건 사과한다고 해서 되찾을
“전무님, 뭘 축하 하시는 건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요?”송재이는 고개를 들고 서도재를 향해 차갑게 웃었다.서도재는 눈썹을 들썩거리더니 입을 열었다.“민건이는 출소하고나서 한 발짝 한 발짝 힘들게 걸어왔어요. 그러다가 어렵게 저와 손을 맞잡았고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민건이에게 아주 중요해요. 제가 줄지 말지는 제 기분에 달려 있어요. 송 선생님, 민건이를 도와줄 마음이 있다면...”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송재이가 벌떡 일어났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지민건을 노려보았고 순간 정적이 흘렀다.그리고는 송재이가 서도재를 향해 입을 열었다.“저는 전무님이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결코 지민건을 도울 의사가 없어요. 저는 그와 친구도 아닌 데다가 그 회사의 어떠한 업무든지 성사시킬 의무가 없어요. 오늘은 민건이가 사람을 잘못 찾았을 뿐만 아니라 전무님도 마찬가지로 사람 잘못 찾았어요!”그녀는 옆에 있던 가방을 들고 발길을 돌려 레스토랑을 떠났다.송재이는 자기가 남도까지 왔는데 또다시 이런 난처한 일에 휘말리게 될 줄은 몰랐다.그녀가 걸어 나오자마자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송재이는 누군지 짐작했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하지만 상대방은 그런 그녀의 속마음을 모른 채 여전히 손목을 붙잡았다.“재이야, 만약 네가 날 도와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킨다면 너에게 돈을 나눠줄게. 너 지금 직업이 없잖아. 돈을 좀 벌었다고 생각하고 말이야...”“지민건, 네가 무슨 자격으로?”참다못한 송재이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골목에 서서 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시간이 많이 흘러서 나는 네가 정말 변한 줄 알았어. 네가 예전에 나에게 했던 일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미안해할 줄 알았어. 하지만 너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 넌 똑같은 일을 여러 번, 계속 반복하고 있어. 나를 데리고 가서 설영준과 함께 술을 마시라고 하질 않나, 이번에는 또 나를 데리고 와서 서도재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질 않나... 내가 너한테 무슨 빚이라도
박윤찬은 일 때문에 남도에 출장을 온 것이었다.그가 거래처와 맥락 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더없이 친숙한 그림자가 보였다.“박 변호사님?”송재이도 의아해하며 물었다.박윤찬은 아주 놀라워했다.그는 위아래로 그녀를 한 번 훑어보고서야 입을 열었다.“남도에 오셨다고 듣긴 했지만 진짜였네요. 살이 좀 빠지신 것 같아요.”마지막 한마디는 그저 혼잣말하는 것 같았다.송재이가 떠나려 했을 때는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곳을 떠나려 하는 생각뿐이었다.하지만 지금 다른 곳에서 옛 친구를 만나니 그녀는 여전히 매우 기뻤다.박윤찬은 그날 바로 경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송재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돌아간 후, 로펌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저녁이 다 돼서 밥을 먹을 때에야 그는 자신이 남도에서 송재이를 만난 사실을 설영준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이튿날 오전 비는 시간에 박윤찬은 설한 그룹을 찾아갔다.설영준은 마침 글을 쓰고 있었다.박윤찬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을 때, 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이렇게 큰 사무실에 설영준 혼자뿐이었지만 박윤찬은 한 번도 그가 외로워 보이고 불쌍해 보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설영준이 불쌍하다고?이렇게 생각한 그는 피식 웃었다.자신의 이 황당한 생각을 비웃은 것이었다.설영준이 어떻게 불쌍할 수 있겠는가?“왜 웃죠?”인기척을 듣고서야 고개를 든 설영준이 무뚝뚝하게 물었다.“아무것도 아닙니다.”박윤찬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설영준 책상 맞은편에 앉아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에 걸쳤다.“한 가지 이야기해 드릴 게 있어요. 저 이번에 남도에 가서 송 선생님을 만났어요. 예술학교에 면접을 보러 간 것 같더라고요. 보아하니 거기에서 생활하고 싶은 모양이에요. 그렇게 되면 두 사람은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걸로 돼요...”“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설영준은 담담하게 말하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설영준은 박윤찬이 그에게 알려준 송재이의 근황
설영준은 오랫동안 이곳에 오지 않았다. 방에 들어온 그는 불을 켰다. 안에 있는 가구의 배치는 모두 예전과 같았다.다만 예전에 비해 사람 사는 냄새가 많이 사라졌다.입구에는 여자 슬리퍼 한 켤레만 남았고 그가 늘 신던 슬리퍼는 보이지 않았다.그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송재이의 동작은 의외로 빨랐다.설영준은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로 들어가 그녀의 침실로 갔다.옷장 안은 텅 비어 있었고 원래 그녀가 옷을 놓던 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그가 남겨두었던 몇 벌의 셔츠와 바지는 그대로였다.설영준의 시선은 자신의 옷 주위를 둘러보았다.그러자 아래 서랍에 놓인 열쇠고리가 눈에 들어왔다.그는 송재이에게 ‘설’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열쇠고리를 항상 곁에 두라고 말했었다.하지만 그녀는 경주를 떠날 때 열쇠고리를 그대로 남겨두었다.그날 밤, 송재이와 함께 야시장을 거닐던 때가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두 사람이 함께 지냈던 순간들이었다.그녀는 이 ‘설’자가 달린 열쇠고리를 특히 좋아했다.그녀는 이런 열쇠고리가 흔하지 않았음에도 자기 손에 들어오게 된 건 천생연분이라고 말했다.그녀의 말에 무슨 뜻이 담겨있었는지 잘은 모르지만 설영준은 당시에 그 말을 듣는 걸 아주 좋아했다.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다음 날 그는 같은 가게 주인을 찾아내 똑같은 걸로 주문 제작했다.송재이는 ‘설’자가 씌어있는 열쇠고리를 두고 갔다.그는 두 열쇠고리를 모두 자기의 열쇠에 걸었다.‘설’ 자와 ‘송’ 자가 한데 엉겨 붙어 딸랑딸랑 맑은 소리를 냈다.최근 설한 그룹과 민여사의 회사는 프로젝트에 대해 협력하고 있었다.민여사는 남도로 가서 지역 조사를 했다.사흘 뒤 설영준도 남도로 갔다.이번 협력은 이전과 달랐다.세부 사항이나 많은 부분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초대 측은 그를 리우 호텔에 묵도록 했다.남도에 도착한 후, 여비서가 먼저 설영준을 대신하여 민여사를 만나 구체적인 사항을 설명했다.설영준은 자신의 호텔 룸에서 경주 회사의 임원
윤수아는 악보를 정리한 후, 가방을 메고 현관문으로 나갔다.이원희를 본 윤수아는 한참 동안 울먹이더니 입을 열었다.“언니, 왜 왔어?”이원희는 심호흡을 하며 대답했다.“왜긴, 네가 걱정되니까 왔지.”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송재이를 바라보았다.아까는 송재이가 수업하는 옆모습만 보았고 대부분의 관심은 교실에 앉아 있는 윤수아에게 있었다. 그녀는 인제야 송재이를 알아본 듯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고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송재이는 여기에서 이원희를 만날 줄 꿈에도 몰랐다.두 사람은 과거 중학교 동창으로 한때 매우 친한 사이였다.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연락은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두 사람의 우정은 그대로였다.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기억할 줄이야... 원래 오늘 윤수아 부모님을 부른 건 요즘 그녀의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아주 재능 있는 아이인데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물어보려고 말이다.이원희는 윤수아를 복도로 불렀다.그녀의 윤수아의 귓가에 대고 몇 마디 말을 건넸고 그 말을 들은 윤수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걸어가다가 돌아서서 말했다.“언니, 그럼 일찍 들어오세요. 기다릴게요.”이원희는 윤수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알겠어, 기사님께서 아래에 있으니까 기사님더러 먼저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해.”보아하니 윤수아를 집에 데려다준 후, 남아서 송재이와 자세하게 얘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니까 아마도 옛이야기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마침 송재이도 약속이 없었기에 오랜만에 같이 밥 한 끼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그들은 태국식 레스토랑에 갔다.송재이는 구석에 앉아 똠얌꿍을 마시며 물었다.“그래서 윤수아는 네 의붓딸이야? 너 결혼했어?”방금 요리가 나오는 걸 기다리면서 이원희는 이미 윤수아랑 어떤 관계인지, 그리고 최근 몇 년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송재이에게 말했다.송재이의 기억 속에 있는 이원희는 줄곧 조용한 여자애였다.학업 성적은 보통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