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의 모든 챕터: 챕터 221 - 챕터 230

524 챕터

제221화 이성이라면 다 편해?

그녀를 놀리는 듯 다소 경박한 설영준의 표정을 보자 송재이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정녕 둘이 헤어졌다는 사실을 잊은 걸까?그나마 사귀는 사이에는 음담패설을 늘어놓아도 농담 삼아 가볍게 넘길 수 있지만 이미 남남이 된 이상 양아치나 할 법한 멘트이지 않은가?송재이는 손을 홱 빼내더니 설영준이 지난번에 그랬던 것처럼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두 사람은 멀찍이 떨어졌다.도로에는 차들이 오고 갔고, 머리 위로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렸다.그녀의 시선은 설영준에게 향했다.흰색 셔츠에 연그레이 울 코트를 입은 남자는 무표정일 때 시크한 분위기를 풍겼다.얼핏 봐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며, 마치 하늘 높이 떠 있는 태양처럼 차마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잘생겼다.순간 송재이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고, 저도 모르게 슬픔이 밀려왔다.하필이면 격차가 이렇게 큰 사람을 좋아하게 되다니.또한, 천지 차이인 만큼 자신이 닿을 수 없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손에 잡히지도 않고 애매한 관계를 해결하지도 못하고, 일단 머릿속에 남아 있는 한 계속해서 가슴을 졸이게 했다.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아까만 해도 잔뜩 약이 오른 새끼 고양이처럼 화가 난 표정을 짓던 그녀도 갑자기 느껴지는 울적한 기분에 어깨가 축 처졌다.이내 고개를 돌려 그를 외면하고 안개가 자욱한 거리를 바라보았다.설영준의 눈에 아리따운 옆모습이 들어왔다.부드러운 라인과 뽀얀 피부는 백옥을 연상케 했고, 아련한 눈빛은 외로움과 나약함이 담겨 있었다.이때, 알 수 없는 감정이 갑자기 그의 마음을 후벼팠다.송재이가 고개를 돌린 틈을 타서 설영준은 손을 들어 올렸는데 이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마치 그녀를 품에 안고 싶지만 불가능한 상황에 갈등하는 듯싶었다.왜냐하면 아직 송재이를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당시 헤어지기로 했던 것도 밀당이 아니라 진심이었다.자신을 속이고 바람 피는 여자를 어찌 용납하겠는가?...멀지 않은 곳에 차를 대고 앉아 있는 박윤찬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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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2화 방해하지 마

물론 마지막 말은 혼자만의 생각이었을 뿐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다.설영준은 그녀에게 외투를 던져 주고 나서 고개를 돌리고 등받이에 몸을 기대더니 눈을 감았다.“출발해요.”그의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묻어났다.박윤찬도 그제야 휴대폰을 내려놓았고, 여태껏 테트리스 쌓기에 집중하고 있었는지라 송재이의 옷이 비치는지 마는지 관심도 없었다.더욱이 지금은 설영준의 외투를 걸쳤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그래서인지 밑도 끝도 없는 말에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곧이어 백미러를 통해 설영준과 송재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의 예상대로 설영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자는 척했고, 송재이는 입술을 꼭 깨물고 안색이 살짝 빨갰다.송재이 역시 홧김에 현재 주소를 대충 알려주고 창밖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그동안 설영준은 송재이가 어디 사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게 되었다.이내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렸다.차는 어느 한 아파트 단지 앞에 멈춰 섰다.같은 공간에 한시도 머물러 있고 싶지 않은 송재이는 몸에 걸친 설영준의 외투를 던져버리고 안전벨트를 풀더니 차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하지만 설영준이 그녀의 손목이 덥석 붙잡았다.대체 뭐 하는 짓이냐고 따지려는 순간, 눈살을 살짝 찌푸린 설영준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이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한 손에 쇼핑백을, 다른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낯익은 남자를 발견했다.송재이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그리고 설영준의 손을 뿌리치고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조금 전에 벗어놓았던 외투가 다시 어깨 위에 걸쳐졌다.입을 달싹이던 그녀가 말을 내뱉기도 전에 설영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쏘아보고는 차에서 먼저 내렸다.비록 영문을 알 수 없지만 굳이 따지지는 않았고, 잠깐의 침묵을 끝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이때, 설영준이 등 뒤로 다가와 그녀에게 우산을 씌워 주었다.“경주에서 남도까지 쫓아오다니, 송재이 씨의 매력도 참 대단하네?”말을 마치고 나서 냉소를 지으며 길 건너편을 쳐다보았다.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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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3화 공짜 밥

그녀의 새로운 남자친구라...물론 송재이가 설영준을 열받게 하려고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긴 했다.하지만 이미 헤어진 와중에 대체 무슨 입장으로 시시콜콜 간섭하겠는가?아직 설영준의 외투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송재이는 지민건 앞으로 걸어가 손에 든 장바구니를 건네받고는 입을 열었다.“가자.”지민건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설영준을 바라보았다.아마도 설영준 때문에 화가 나서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겼을 거라고 얼추 짐작했다.하지만 그게 뭔 대수랴?지민건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이내 입꼬리를 살짝 올렸고, 설영준을 쳐다보는 눈빛이 금세 도발적으로 변했다.설영준은 감정 컨트롤에 능한 사람이다. 물론 평소에 그렇다는 게 함정이지만 오늘은 갑자기 일탈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내가 들게.”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지민건은 자연스럽게 송재이의 손에서 장바구니를 가져왔다.안에는 방금 마트에서 산 식자재가 들어있는지라 야채와 고기만 해도 꽤 무거워서 여자가 짐을 들게 할 수는 없었다.송재이는 그제야 상념에서 빠져나왔다.빠르게 상승하는 엘리베이터와 점점 커지는 안내판의 숫자를 보자 지민건을 집으로 불러들이는 다소 충동적인 결정에 후회하기 시작했다.게다가 지민건이 첫 번째 주인공이 될 거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녀가 한창 후회막급할 때 엘리베이터는 목적층에 도달했고, 근심 가득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때마침 오늘은 불편하니 이만 돌아가는 게 어떻겠냐고 핑계를 대려는 순간 입을 떼기도 전에 휴대폰이 울렸다.“재이 씨, 저예요.”전화를 받자 박윤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는 전화로 설영준도 그렇고 아직 식전이라 괜찮으면 집에서 같이 밥을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박윤찬이 통화할 때 설영준도 옆에 있었고, 송재이와 대화하는 내내 그의 눈치만 힐끔힐끔 살폈다.사실 너무 쪽팔리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몰염치하게 여자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으려고 한 적이 없지 않은가?비록 혼자는 아니지만 이런 부탁을 했다는 자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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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4화 풀네임

설영준이 정신을 차리고 나서 고개를 돌리자 똑같이 멍하니 송재이를 바라보고 있는 지민건을 발견했다.물론 송재이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처음이든 아니든 심기 불편한 건 사실이다.순간, 거실에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샤부샤부를 먹는 동안에도 침묵이 이어졌고, 다들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밥만 먹었다.박윤찬은 과묵한 편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침울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먼저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에 앉은 송재이, 왼쪽의 설영준과 오른쪽의 지민건을 보니 각자의 고민에 빠진 듯 표정들이 사뭇 어두웠다.가시방석에 앉은 게 무슨 느낌인지 박윤찬은 처음 알게 되었다....샤부샤부만 먹고 나면 호텔로 돌아갈 줄 알았지만 설영준이 카드 게임을 하자고 먼저 제안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송재이는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물론 게임에 대해 편견이 있는 게 아니라 설영준처럼 안하무인이 따로 없는 사람이 카드 게임 따위 관심을 가진다는 자체가 납득이 안 갔다.“집에 카드가 없는데...”송재이가 운을 떼자마자 설영준은 박윤찬을 흘긋 쳐다보았다.금세 눈치를 챈 박윤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차에 가서 가져올게요.”“그쪽도 같이 할 건가?”설영준은 밥 먹는 내내 지민건을 무시했고, 단지 그가 송재이를 챙기기 위해 음식을 집어줄 때만 고개를 잠깐 들고 바라보았다.따라서 지민건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진 적도 이번이 처음이었다.사실 지민건은 속으로 설영준을 무지 원망했다.하지만 정작 먼저 말을 걸어오자 저도 모르게 황송한 기분이 들었다.이내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 같이 해요.”옆에 있는 송재이가 눈살을 찌푸렸다.정확한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좋은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그녀는 무의식중으로 거절하려고 했다.“카드가 있어도 할 줄 몰라서...”“예전에 나 대신 카드 골라준 적도 있잖아.”설영준이 느긋하게 말했다. 이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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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5화 허둥지둥

송재이는 어디까지나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설영준을 잊지 못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예민하게 반응했을지도 모른다.정작 상대방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이름도 딱히 미묘한 감정 변화를 담아 부른 게 아닐 수도 있었다.결국 송재이는 이런 허황한 추측을 떨쳐버리고 현재 진행 중인 카드 게임에 집중하기로 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설영준이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찾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지민건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바보가 아닌 이상 설영준이 일부러 태클 건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그는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게임이 이어질수록 설영준에게 압살당해 옴짝달싹 못 했다.설영준의 왼쪽에 앉은 송재이가 이따금 고개를 들어 맞은편의 지민건과 그를 번갈아 보았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속이 타들어 갔다. 머릿속으로는 이번 라운드만 마무리하면 어떻게든 핑계를 찾아 서둘러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설영준의 느긋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아량이 너그러운 건가? 아니면 멍청한 건가? 누가 봐도 본인에게 유리한 조건인데 나한테 기회를 주다니, 나야 뭐 고맙지만.”말을 마치고 나서 손에 든 카드를 테이블 위에 몽땅 내려놓았다.그리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지민건을 바라보았다.“경주에 있든 남도에 있든 우리 송재이 씨는 그쪽한테 관심이 없으니 꿈 깨.”지민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마치 못이라도 박힌 듯 제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고, 귓가에 오로지 설영준의 말만 메아리쳤다.‘경주에 있든 남도에 있든...’마지막 자존심마저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이었다.그동안 지위는 물론이고 몸값, 그리고 능력치도 워낙 설영준과 천지 차이라서 설령 인정할 수 없더라도 결국에는 한 수 위라고 묵인했다.자리에서 일어난 지민건은 휘청이며 중심을 잃었다.“재이야, 시간도 늦었는데 이만 가볼게.”이내 허둥지둥 뒤를 돌아 현관으로 걸어가 신발을 신으려고 했다.“데려다 줄...”“앉아 있어!”송재이가 지민건을 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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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6화 열나는데?

박윤찬은 아파트 아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지민건 배웅하러 간다는 것은 설영준과 송재이에게 둘만의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다.설영준이 한참 뒤에 내려올 줄 알았는데 10분 뒤에 바로 내려올 줄 몰랐다.“갑시다!”갑자기 뒤에서 설영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박윤찬은 뒤돌아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설영준을 쳐다보았다.“재이 씨랑 더 얘기 안 해요?”“대화가 필요하다고 한 적 있나요?”설영준은 피식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둘은 그렇게 차를 타고 이곳을 떠났다....송재이는 박윤찬에게 이원희의 연락처를 보내주었다.이원희가 이혼소송을 하겠다는데 유일하게 도울 수 있는 일은 그저 믿음직한 변호사를 소개해 주는 것이었다.박윤찬은 이원희에게 연락하여 커피숍에서 만나 상세하게 이야기하자고 했다.이원희는 미행당할까 봐 일부러 은밀한 룸을 예약했다.문이 열리고, 말라 보이는 한 젊은 남성이 반갑게 맞이했다.“안녕하세요. 혹시 의뢰인 이원희 씨 맞으시죠?”“네...”이원희는 상대가 이 정도로 젊을 줄 몰랐다.비록 똑똑해 보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사회초년생으로 보여 조금은 실망한 눈치였다.“들어오세요!”룸에서 또 다른 듬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안으로 들어가자 자리에 앉아 차를 따르고 있는 한 남성이 보였다.박윤찬은 찻잔을 내려놓고 매너 있게 일어서서 이원희의 앞으로 다가가 예의를 갖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저는 박윤찬이라고 합니다.”방금 문을 열어준 사람은 박윤찬의 매니저였다.진짜 변호사를 만난 이원희는 두 눈이 반짝거렸다.분위기가 넘치고, 멋있고, 성숙한 모습에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이쪽에 앉으시죠!”...오늘 송재이는 월차를 냈다.설영준을 만난 뒤로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설영준은 남도에서 볼일을 마치면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그전에 송재이와 밥 한 끼 하고 싶었다.하지만 전화해도 받지 않았고, 문자를 보내도 답장이 없자 송재이가 출근하는 사립예술학교를 찾아갔더니 그제야 월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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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7화 헤어진 마당에 이렇게 안고 있으면 어떡해?

저번에 송재이 집에서 샤부샤부를 먹었을 때 설영준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다른 사람들이 돕고 있을 때 그저 거실에 앉아 지민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러다 지민건이 송재이한테 잘해주는 모습, 송재이의 그릇을 가져가더니 그냥 먹기만 하면 된다고 하던 모습을 그대로 보고 말았다.심지어 지민건은 대화를 이어가다 말고 송재이의 입가에 묻은 머리카락도 떼어주었다.이런 다정한 스킨십에 설영준은 심기가 불편했다.그는 복수 겸 화를 풀려고 지민건에게 카드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이대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오늘도 송재이가 아프지만 않았다면 모른 척했을 수도 있었다.설영준은 집을 아무리 뒤져봐도 해열제를 찾지 못했다.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주방에서 생강을 꺼내 생강차를 끓여주기로 했다.물 끓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설영준은 갑자기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다.‘왜 경주에서든 남주에서든 맨날 뭘 끓여줘야 하지?’절대 주방을 드나들지 않던 설영준은 송재이와 엮인 뒤로부터...그는 끓여진 생강차에 구기자까지 넣어 안방으로 들고 갔다.“송재이, 일어나.”인내심 없는 말투였다.하지만 송재이는 너무 깊은 잠에 빠져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설영준은 그녀가 숨을 멎기라도 했을까 봐 두려운 마음에 숨 쉬고 있는지 확인했다. 별일 없는 것을 보고 또다시 이름을 불렀다.“송재이, 일어나 이거 마셔.”송재이는 머리가 지끈거렸다.비몽사몽인 상태에서 어릴 때로 돌아간 꿈을 꾸었다.초등학교 4학년,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폭우가 쏟아져 친구들과 타프 밑에서 부모가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송재이는 계단에 앉아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결국 혼자 남게 되었다.날이 어두워지고, 퇴근하다 마주친 담임 선생님이 결국 우산을 씌워주고 직접 집까지 데려다주었다.시간이 오래 지나 잊은 줄만 알았던 그날의 일이 다시 꿈에 나타날 줄 몰랐다.송재이는 온몸이 지끈거리면서 이마와 등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몸을 뒤척이더니 계속 이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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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8화 내가 괜한 짓을 했네?

설영준은 송재이를 꼭 끌어안고 그녀의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열이 내렸는지 얼굴, 그리고 이마를 만져보았다.꿈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송재이는 계속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이 순간 설영준은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것만 같았다.심지어 이 세상에서 송재이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자기라고 생각되기도 했다.‘그때 쉽게 헤어지자고 했던 거, 너무 잔인했나?’송재이는 사실 믿을 사람도 없고,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여자아이였다.그녀는 그만 설영준의 보호본능을 일으키고 말았다.그전에는 그저 잠자리만 함께하는 여자라고 생각해서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고, 별로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하지만 여자한테 마음이 뺏기기 싫다는 생각은 바뀐 적이 없었다.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설득하고 있었다. 그저 환자를 돕는 거라고, 깨어나면 절대 이러지 않겠다고 말이다.그는 여진에게 전화해서 잠깐 볼일이 있어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다음 날에 경주로 돌아가자고 했다.여진은 설영준이 걱정되어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다.설영준은 괜찮다고 말하면서 송재이가 차던진 이불을 다시 덮어주었다. 그리고 몇 가지 업무를 당부하고서야 전화를 끊었다.생강차를 마신 송재이의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더운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계속 발버둥 쳤다.사실 설영준과 함께 있을 때도 이랬다.다시 이불을 덮어주고 불을 끄려고 할 때, 송재이는 다시 이불을 차 던졌다.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송재이의 모습에 설영준은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그는 졸리지도 않는지 한숨도 자지 않고 저녁 내내 침대 옆을 떠나지 않았다.모든 불을 끄고, 스탠등 하나만 켜놓았다.주위가 고요하고 아늑한 것이 온 세상에 둘만 남은 것 같았다.어느샌가 밖에서 주룩주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아침이 밝을 때까지 비는 계속 오고 있었다.빗방울이 창가를 두드리는 소리에 송재이는 드디어 잠에서 깨어났다.비가 그치고, 공기 속에는 풀냄새와 흙냄새가 가득했다.휘청휘청 화장실로 향하던 송재이는 문 뒤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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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9화 이제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거야

송재이는 그가 이렇게 오해할 줄 알았지만 뒤로 물러서지 않고 계속 하던 말을 했다.“난 옛날 일이 반복되는 게 싫어...”이제 겨우 옛날 감정에서 빠져나왔는데 지민건을 견제하는 모습, 남도에 다시 나타나 온밤 아픈 자신을 돌봐주는 이런 모습 때문에 다시 그에게 빠져들까 봐 두려웠다.누군가의 대체품이 되기도 싫었고, 희망에서 절망으로 떨어질 때의 감정을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설영준은 컨트롤하기도, 파악하기도 어려운 사람이었다.설영준이 차갑게 쳐다보자 송재이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송재이는 머리가 부스스하긴 했지만 생얼이 유난히 뽀얗고 예뻤다.하지만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한 듯한 두려움과 억울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하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였다.“그러니까 내 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봐도 모른 척하라는 거지?”“응...”말투에서 분노를 느꼈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깔끔하게 헤어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끔 보여주는 다정한 모습에 속아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제발 나한테 잘해주지 마!’쿵!설영준은 문을 걷어차고 밖으로 나갔다.송재이는 그가 화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뒤돌아 거실 소파로 가서 앉은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오늘로써 설영준과의 인연이 끝인 것을 알고 있었다.온밤 보살핌을 받았지만 결국엔 쫓아낸 식이 되어버렸다.자존심이 강한 설영준은 다시는 송재이를 찾지 않을 수도 있었다....설영준이 떠나고, 이원희가 전화와서 같이 밥 먹자고 했다.박윤찬이 이원희의 이혼소송을 맡기로 했기 때문이다.송재이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박윤찬과 같은 유명 변호사를 만날 일도 없었다.이원희는 송재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기 위해 유명 레스토랑을 예약했다.오늘은 윤수아도 함께 했다.주말이라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윤수아의 나이는 12살, 이원희와 10살 차이였다. 비록 법적으로는 모녀 사이였지만 멀리서 보면 자매와도 같았다.송재이는 메뉴를 연구하고 있는 이 둘을 멀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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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0화 내 전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송재이는 정하현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설영준의 전 여자친구라 단번에 얼굴을 익혔다.정아현도 오서희와 설동준의 결혼기념일 파티에서 송재이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그 사진 속에서는 설영준이 그윽하게 송재이를 쳐다보고 있었다.여자는 감각적인 동물이라 눈빛 하나만으로도 느끼는 바가 많았다.심지어 송재이는 이목구비가 또렷한 사람이라 한 번 보고 잊혀질 얼굴이 아니었다.두 사람은 그렇게 몇 초 동안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정아현과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송재이가 먼저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했지만 정아현이 이쪽으로 걸어왔다.하지만 이렇게 조심스럽게 물어볼 줄은 몰랐다.“혹시 송재이 씨 맞으세요?”송재이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의아한 표정으로 정아현을 쳐다보았다.정아현은 억지 미소를 지으면서 자연스럽게 송재이의 옆에 앉았다.간단한 인사를 주고받고, 정아현이 또 송재이를 쳐다보면서 말했다.“안녕하세요. 저는 정아현이라고 해요. 전에 경주에서 도영이한테 피아노를 가르쳐주던 선생님 맞죠?”송재이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라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그저 사진에서 보던 모습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사진 속 정아현은 차마 다가가지 못할 정도로 도도해 보였지만 실물은 말괄량이 같은 것이 아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송재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정아현이 머쓱한지 머리를 긁으면서 또 물었다.“죄송한데 송재이 씨, 혹시 민효연 씨를 아세요?”‘민효연?’민효연은 경주에서 이름난 슈퍼우먼이었다.“왜요? 그쪽도 민 사모님이랑 아는 사이에요?”“그분 혹시 설영준 씨랑 아직 연락하고 지내세요?”정아현이 또 묻자 송재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늘 사이가 좋았어요. 그분 따님이랑 하마터면 결혼할 뻔했는데 파혼했어도 사이가 나빠지지 않았어요. 사적에서도 만나고 업무적으로도 만나고...”송재이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정아현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그래요. 천천히 드세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그러더니 다급하게 이곳을 떠났다.그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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