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의 모든 챕터: 챕터 821 - 챕터 830

1202 챕터

제821화

“서희야, 나 정말 아파...”주서희 위에 올라타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지고 떨리기 시작했다.“아프면 나를 놔요!”“거기가 아픈 게 아니야.”소준섭은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 위로 가져갔다.“여기가 아파.”주서희의 얼굴을 바라볼 때, 깊게 파인 눈에서 슬픔이 서서히 드러났다.“서희야, 너랑 결혼하려고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 정말 거의 죽을 뻔했어.”“그런데 넌 날 속이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러 갔지. 내가 얼마나 아픈지 네가 알기나 해?”말을 마친 후, 소준섭은 피로 범벅이 된 다른 손으로 주서희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내가 막지 않았다면, 넌 지금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겠지?”주서희는 고개를 돌려 그의 손길을 피했고, 눈에는 혐오와 증오가 가득했다.남자의 가늘고 약한 손가락이 공중에서 몇 초간 멈춘 후, 갑자기 주서희의 뺨을 꽉 잡았다.“서희야, 우리 약속했잖아. 내가 소 씨 집안 사람들을 설득하기만 하면 나랑 결혼해주겠다고. 그런데 왜 갑자기 윤주원과 결혼하려는 거야?”이 말을 할 때 그의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주서희의 얼굴을 움켜쥔 손가락에는 볼이 움푹 파일 정도로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주서희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며, 소준섭의 행동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런 차가운 무시로 그를 몰아내려는 듯.소준섭은 화를 내지 않고 그녀의 얼굴을 잡았던 손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따뜻한 손가락 끝이 목을 지나 계속 아래로 내려가며 차가운 감각을 남겼다.마치 복수하러 돌아온 뱀이 기어가는 곳마다 사람을 얼려 죽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주서희는 굴욕을 참으며 턱을 치켜들고 그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그녀보다 더한 증오가 드러나 있었다.그런 눈빛을 보자 주서희는 비웃었다.하, 소준섭이 무슨 자격으로 그녀를 증오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건 그가 자초한 일이면서.소준섭의 손가락은 그녀의 허리 뒤에서 멈췄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눈을 들어 주서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서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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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2화

“소준섭 씨!”정신이 든 주서희는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목소리는 찢어질 듯한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고 당장이라도 그를 죽이고 싶어 했다.“쉿.”소준섭은 가늘고 긴 손가락을 입술 위에 올리며 ‘조용히 하라’는 동작을 한 뒤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그렇게 크게 소리치는 걸 보니, 내가 너무 기분 좋게 해줬나 보네...”“미쳤어요?”소준섭은 웃으며 손가락을 입술에서 떼어내고 주서희의 등을 어루만지며 위아래로 움직였다. 하얀 피부 위를 유영하는 그의 손길이 느껴졌다.“서희야, 너 예전에도 침대에서 나를 미쳤다고 욕했잖아. 넌 정말 변하지 않았구나...”“입 다물어요!”소준섭은 전화를 끊지 않았다. 전화는 계속 연결된 상태였고, 상대방은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주서희는 윤주원이 계속 듣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소준섭 씨, 전화 끊어줘요.”손과 발이 묶인 그녀는 돌아서서 소준섭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모욕하는 것은 괜찮았지만 윤주원에게 상처 주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는 아무 죄가 없었으니까.그녀를 벌하려고 했던 소준섭이 전화를 끊을 리 없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번지고 있었지만 하는 짓은 짐승보다 더 끔찍했다.그는 한 손으로 주서희의 허리를 지탱하고, 다른 손으로는 휴대폰을 들어 두 사람이 몸을 섞는 소리를 윤주원에게 들려주려고 했다.소준섭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주서희는 갑자기 눈이 빨개지더니 침대 시트 위로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윤주원, 제발... 끊어줘...”‘소준섭 같은 변태는 전화를 끊지 않을 거니까, 윤주원, 제발 네가 끊어줘. 더 이상 듣지 마...’지금의 그녀는 마치 모든 화려한 겉모습을 벗겨낸 채 가장 추악한 내면을 드러낸 것 같았다.아무런 존엄도 남지 않은 그녀는 이 세상에서 살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윤주원의 귀를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전화기 너머의 윤주원은 결국 거칠고 폭력적인 소리를 들었다. 그는 몇 번이고 말하려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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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3화

주서희의 손톱이 살을 파고들 때, 소준섭은 그녀의 목덜미를 붙잡고 자신의 입가에로 끌어왔다.“서희야, 네가 날 죽이고 싶어 한다는 거 알아. 근데 난 죽더라도 네가 다른 남자랑 결혼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주서희가 그의 목숨을 앗아가는 건 괜찮지만 다른 남자랑 결혼해서는 안 된다고 소준섭은 생각했다.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와 입을 맞췄다.“서희야, 넌 영원히 내 여자야...”소준섭은 그녀의 몸에 한번 또 한 번 욕구를 풀어내고 그녀가 진짜 돌아왔다는 사실을 실감한 후에야 풀어주었다.그는 땀으로 흥건히 젖은 주서희를 안고 욕조에 가서 깨끗이 씻어주었다. 그리고 반듯하게 옷까지 입혀주기까지 했다.그 과정에서 그녀가 도망가거나 혹 스스로를 해치는 걸 막기 위해 손발을 묶고 있던 밧줄을 한 번도 풀어주지 않았다.소준섭만큼 힘이 세지 않았던 주서희는 인형처럼 그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그는 헤어드라이기를 들고 그녀의 머리를 말려준 후, 신발을 가져와 신겨 주었다.이 모든 걸 끝낸 후에야 그는 고개를 들어 주서희를 보며 말했다.“서희야, 집에 데려다줄게.”데려다준다고?주서희는 겉으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실은 속으로 매우 놀라웠다.소준섭이 그녀를 죽을 때까지 여기에 감금해 둘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그와 함께 죽을 각오까지 했는데 집에 데려다준다고?그녀는 상대방이 어떤 속셈인지 몰라 경계를 취하며 그를 힐끗 보았다.소준섭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부드럽고 깔끔한 웃음을 보였는데, 그 웃음은 전에 주서희가 얹혀살면서 그를 오빠라고 부를 때랑 별로 다르지 않았다.어릴 적 단순하고 무해하던 소준섭으로 다시 돌아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러나 주서희는 잘 알고 있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가자...”소준섭은 검은색 비단으로 주서희의 눈을 막은 후 그녀를 들어 올렸다.올 때도 이런 식으로 왔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갈 때도 소준섭은 당연히 그녀에게 여기가 어디인지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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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4화

주서희는 몸을 돌려 이를 악물고 소준섭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내가 살아 있는 한, 꼭 윤주원을 내 남편으로 만들 거예요.”이번 일을 겪고 나면 윤주원이 자기를 더 이상 원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소준섭이 결혼을 반대할수록 그녀는 더 결혼을 밀어붙였다.입으로 뱉는 말도 하나의 독약이라서, 독이 될 수 있을 만큼 오래 독을 퍼뜨려야 했다.“좋아.”소준섭은 담배를 한 모금 빨며 말했다. 연기에 둘러싸인 그의 모습은 마치 연기 속에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그의 눈은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독수리처럼 깊고 음침하게 주서희를 쏘아보았다.“기다리고 있을게.”그는 주서희에게 눈짓을 한 후, 핸들을 돌려 차를 후진시키며 저택을 떠났다.주서희는 두 주먹을 꽉 쥐고 빠르게 사라져가는 검은색 고급 승용차를 차갑게 노려보았다.“서희 씨, 괜찮아요?”정가혜가 뛰쳐나와 주서희의 어깨를 잡고 위아래로 살폈다.“괜찮아요.”주서희는 고개를 저으며 무언가 떠오른 듯이 빠르게 저택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그녀는 문 뒤에서 야구 방망이를 꺼내 들고 저택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마침내 거실, 침실, 욕실 등 천장에 숨겨진 감시 카메라를 찾아냈다.사다리를 가져와 올라가서 그 감시 카메라들을 모두 산산조각 내버렸다.주서희가 아무 말도 없이 돌아와서 미친 듯이 물건을 부수는 모습을 보고 정가혜과 심형진은 얼어붙었지만, 감히 그녀를 방해하지 못했다.부수고 나서 주서희는 사다리에서 내려와 바닥에 주저앉아 부서진 감시 카메라 조각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뜯어냈다.날카로운 조각이 손가락을 베어 피가 흐르는데도 주서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분노에 차서 계속해서 뜯어냈다.“서희씨...”“가혜 씨, 나 좀 혼자 있게 해줘요.”정가혜가 다가가서 그녀를 위로하기도 전에 주서희가 차갑게 말을 막았다.심형진은 주서희의 감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정가혜가 주서희의 상처를 치료해 주려고 하는 것을 급히 막았다.“가혜야, 서희 씨 혼자 두고 우리는 나가서 기다리자.”정가혜는 어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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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5화

이렇게 되었는데도 윤주원이 아직도 자기를 원한다니 주서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윤주원, 나...”“서희 씨, 나 버릴 거예요?”주서희는 놀라서 조심스럽게 물었다.“너... 내가 너 안 받아줄까 봐 무서워?”“그럼요.”윤주원은 넓은 손을 들어 주서희를 자기 품에 끌어안았다.“처음부터 서희 씨랑 소준섭 씨의 관계를 알고 있었어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으니까, 당신이 나를 포기하지 않는 한 나도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그 부드러운 목소리가 조금씩 귀에 스며들며 주서희의 얼어붙은 몸을 천천히 녹여갔다.이 세상에 이렇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구나...주서희는 윤주원을 안아주려 손을 내밀었지만, 윤주원을 더럽힐까 봐 손을 천천히 거두었다.“윤주원, 나는 이제 당신과 어울리지 않아. 그러니 포기해.”살아있는 그녀는 더럽고 죽은 그녀의 영혼도 더러웠다.그녀는 이미 생의 희망을 잃은 상태였다.그녀는 소준섭과 함께 지옥에 빠지도록 복수의 칼을 쥐기로 했다.“서희 씨, 방금 당신이 말했잖아요. 살아 있는 한 꼭 나랑 결혼하겠다고.”“그건 소준섭에게 거짓말한 거야.”“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받아들였어요.”윤주원은 주서희를 살짝 놓으며 진심으로 가득 찬 눈으로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약속 지켜줄래요?”그녀가 원하기만 하면 어떤 모습이든 윤주원은 그녀와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동안 윤주원은 주서희에게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었다.윤주원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졌지만, 그가 모든 것을 바쳐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사랑받는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주서희는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자꾸 눈물이 났고 이번만큼 서럽고 힘들게 운 적은 없었다.“윤주원, 너 정말 바보야...”윤주원은 웃었다.“사람은 가끔 바보같이 살아야 행복이 오래간다는 말이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그의 말은 어둠 속에 있는 주서희에게 한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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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6화

밀쳐진 윤주원은 주서희의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한참 뒤, 그는 다시 손을 내밀어 주서희를 안으려 했지만 주서희는 피했다.윤주원의 손은 공중에 멈춰 섰고 그의 맑고 깨끗한 눈에는 설명할 수 없는 어두운 빛이 서서히 드리웠다.“그럼 당신은요?”“나?”주서희는 고개를 숙여 밴드로 감싸인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인생은 이 손가락들과 같았다. 속은 썩어 문드러졌지만, 겉은 아무런 흠집도 없는 모습.이런 그녀에게 과연 미래가 있을까? 행복을 계속 가질 수 있을까? 주서희는 눈썹을 펴고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윤주원, 어떤 사람은 행복을 가질 자격이 없어. 나 같은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그녀가 유일하게 확실한 건 지금의 자신이 윤주원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당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내가 알려줄게요.”윤주원은 그녀의 손을 단단히 붙잡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억눌린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주서희 씨, 오늘부터 소준섭은 당신의 원수이자 내 원수에요. 나도 함께 싸울 거예요.”“변호사를 이미 고용했어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 아내에게 상처 준 그 놈을 고소할 거예요.”“법이 그를 처벌할 수 없다면 내 방식대로 할 거예요. 함께 망하더라도 당신을 구해줄게요.”그렇다. 윤주원은 그 긴 통화에서 뼛속까지 아픈 고통을 겪었지만 전화를 끊는 순간 결심했다.어떻게든 주서희를 도와주겠다고. 그녀 혼자서 그 미친놈과 맞서게 하지 않겠다고.주서희가 가장 힘들 때 떠난다면, 윤주원 자신도 주서희를 사랑할 자격이 없었다.그의 결연한 눈빛, 결심에 찬 말, 그리고 행동은 주서희를 놀라게 했다.이렇게 분명히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윤주원은 여전히 그녀를 선택하고 끝까지 함께 싸우기로 했다.윤주원은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했고, 진정으로 바보 같았다...다른 남자라면 약혼녀가 다른 남자와 잤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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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7화

윤주원은 정리를 마치고 돌아서서 주서희를 바라보았다.그는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말이 너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방 안에 몇 분간 서 있다가 그는 침실을 나섰다.정가혜와 심형진은 여전히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윤주원이 나오는 것을 보자마자 급히 다가왔다.“서희 씨는 어때요?”윤주원은 다시 침실 쪽을 돌아보았다.“안정된 상태예요, 다만 마음의 벽을 세웠어요.”그는 말을 마치고 시선을 정가혜에게 돌렸다.“가혜 씨, 잠시 여기에 남아서 서희 씨를 돌봐줄 수 있어요?”“물론이죠.”윤주원이 말하지 않아도 정가혜는 이미 주서희를 돌볼 생각이었다.“가능하다면 연이도 데려와 줘요...”주서희는 아이를 좋아하니 아이가 옆에 있으면 그녀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알겠어요.”정가혜가 고개를 끄덕이자 윤주원은 그제서야 발걸음을 옮겼다.반달이 지난 후, 윤주원은 소준섭을 법정에 고소했다.그리고 주서희는 정가혜와 연이의 보살핌 속에서 점차 예전의 생기를 되찾았다.서유와 이승하가 국내로 돌아오는 날, 심형진과 윤주원은 주서희의 별장으로 향했다.정가혜는 윤주원이 들고 온 식재료를 받아들며 물었다.“소송은 어떻게 되고 있어요?”“막 법원에 제출했으니 아직 소환장을 기다려야 해요.”소송은 그렇게 빨리 끝나지 않았지만 윤주원은 여유가 있었다.정가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파에서 연이를 안고 노는 주서희를 보았다.“최근 서희 씨는 많이 나아졌어요. 주원 씨가 자주 와서 격려해 준 덕분이에요.”윤주원은 식재료를 냉장고에 정리하며 정가혜에게 미소 지었다.“소준섭을 무너뜨리면 서희 씨에게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줄 거예요.”정가혜는 주먹을 꽉 쥐고 윤주원에게 ‘화이팅’ 해라는 포즈를 보였다.“그럼 힘내요. 우리도 기다리고 있을게요.”“나중에 큰 봉투 챙겨와야 해요.”“그건 당연하죠.”정가혜는 웃으며 대답하고 윤주원에게 손짓했다.“가서 서희 씨랑 함께 있어요. 여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윤주원은 알겠다고 답하며 주방을 떠났다.“가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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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8화

공항에서 전용기가 멈추자, 이승하는 품에 안긴 채 가볍게 잠든 아내를 내려다보았다.“여보, 집에 도착했어.”서유는 눈을 뜨고 기창 밖을 희미하게 바라보았다. 석양의 황혼이 아직도 황금빛으로 반짝여 눈부셨다.이승하는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을 가려 빛을 막아주고는 앞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내리지 않을 거야? 우리 집에 같이 가려고?”앞자리의 남자는 게임기를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이승하를 돌아보았다.“형, 내가 차로 모셔다드릴게요.”“필요 없어.”이승하의 차가운 시선에 이연석의 옆에 앉아 있던 소수빈도 몸서리를 쳤다.소문에 따르면, 이 대표와 아내의 허니문은 그렇게 즐겁지 않았다고 한다. 둘의 여행이 점차 일행이 늘어나는 상황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첫 반달 동안, 김선우라는 아이가 따라다녔고 나중에 그의 아버지까지 끌어들여 사모님께서 매일 스카프로 몸을 감싸야 했다.후반부에는, 이연석이 기분이 안 좋다며 여행을 같이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이 대표는 매일 화가 나 있었다.더 심각한 것은, 이연석이 이승하보다 여성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서유가 유럽 거리를 누비며 쇼핑할 때, 여성 제품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승하는 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반면 이연석은 각종 브랜드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의 미적 감각도 뛰어나 입에 달콤한 말까지 자주 담았다.“형수님, 이거 정말 잘 어울려요”“형수님, 이 브랜드는 형수님을 위해 나온 거예요”“형수님, 믿어봐요. 이게 형수님 피부톤에 딱 맞아요” 이 같은 말로 이승하를 완전히 제쳐두었다.소수빈의 기억 속에서 그때의 이 대표는 자신처럼 문 앞에서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차가운 눈으로 이연석이 서유를 위해 선물을 고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아직도 두려움이 밀려온다. 이연석은 이렇게 사모님과 가까워져서 여행팀에 쉽게 합류했고, 이 대표의 분노를 무사히 피했다.이연석은 이승하에게 거절당하자 서유를 향해 다가갔다.“형수님...”이연석은 가끔 귀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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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9화

이연석은 차를 몰고 이승하와 서유를 주서희의 별장까지 데려다주었다. 정가혜와 다른 사람들은 마중을 나왔고, 운전석에 있는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고 뒷좌석에서 내리는 서유에게로 달려갔다.“서유, 한 달 넘게 못 봤더니 너무 보고 싶었어!”서유는 웃으며 두 팔을 벌려 정가혜를 안았고, 이어서 주서희도 안아주었다.“나도 보고 싶었어.”“그럼 나는? 나는?”어디선가 나타난 연이가 서유의 다리를 안고는 동그란 얼굴을 들어 올리며 안아달라고 했다.“이모, 빨리 안아줘요. 나 살쪘는지 봐줘요!”한 달 남짓 못 본 사이 연이는 정가혜와 주서희 덕분에 통통하게 살이 쪄 있었다. 서유가 안기에도 조금 힘들 정도였다.“연이야, 이제 이름을 ‘작은 반달’로 바꾸는 게 낫겠다...”“왜 ‘작은 반달’이에요?”정가혜와 주서희가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네 이모가 네가 살쪘다고 하는 거야.”연이는 그제야 ‘작은 반달’이 ‘작은 뚱뚱이’를 의미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살이 오른팔을 껴안고 서유에게 불만스러운 소리를 냈다.“흥, 이모 미워, 이모부 안아줘요...”이승하가 막 차에서 내리자마자 연이의 통통한 손가락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승하는 그 손을 쳐다보며 짙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고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먼저 손부터 씻어.”“...”연이는 상처받은 듯 입을 벌리고 울음을 터뜨리려 했지만 이승하의 한마디에 막혀버렸다.“네가 울면 더 지저분해 보여.”“...”연이는 입을 크게 벌린 채로 멈췄다가 잠시 후 소리를 질렀다.“아아아아아, 연이 너무 화나...”연이는 작은 주먹을 꼭 쥐고 이번 생에는 절대로 이모부와 말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정말이지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서유는 화가 잔뜩 난 연이를 보고 웃으며 하얗고 부드러운 손을 들어 그 통통한 얼굴을 쓰다듬었다.“연이야, 네 이모부가 너에게 많은 선물을 사 왔어. 가서 볼래?”“어디요?”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모부와 말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연이는 선물을 보자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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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0화

친구의 남자 친구를 이렇게 태도를 보니, 정가혜도 눈치를 채고 서둘러 소수빈에게서 물티슈를 받아 이승하에게 건넸다.“손 좀 닦으세요.”“이 대표님, 결벽증 있으신가요?”물티슈를 받으려던 이승하는 냉랭한 눈빛을 들며 의미심장하게 심형진을 훑어보았다.하지만 한 번 쓱 보고는 시선을 거두고 정가혜가 건넨 물티슈를 받아 들고 느긋하게 손을 닦았다.“약간 있습니다. 심 선생님께서 이해해 주세요.”이승하가 손을 다 닦고 나서 덤덤하게 말했다. 그의 표정은 읽기 어려웠다.“괜찮습니다, 이해해요.”심형진도 형식적으로 답하고 나서 두 사람에게 손짓했다.“이 대표님, 지 부인님, 안으로 들어가시죠.”아마도 처음 만나는 자리라 심형진은 지나치게 공손했고, 그로 인해 분위기는 다소 어색해졌다.서유가 모두 친구라며 긴장할 필요 없다고 웃으며 말하자 그제야 분위기가 풀렸다.몇 사람이 웃고 떠들며 별장 안으로 들어가는 사이, 이연석이 차창을 내리고 잘생긴 얼굴을 드러냈다.뒤돌아보던 정가혜는 이를 보고 약간 놀란 눈치로 이연석을 흘깃 쳐다보았다.차 안에 느긋하게 기대어 있던 남자는 가늘고 긴 손가락을 뻗어 아무렇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하이, 정가혜 씨...”잘생기고 반듯한 얼굴에는 태평한 미소가 걸려 있었고, 얼마 전의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정가혜는 그가 먼저 인사하자 잠시 멍하니 있다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안으로 걸어갔다.정가혜의 매끈한 뒷모습이 멀어져 갈 때 이연석의 느긋한 표정은 점차 어두워졌다...그녀를 몇 초 동안 바라본 후 이연석은 시선을 거두고 운전대를 돌렸다.차를 후진시키려던 그는 심형진이 정가혜의 허리를 감싸는 모습을 보자 가슴 한구석이 갑자기 답답해지며 불편한 기분이 들었고, 그 느낌에 짜증이 확 몰려왔다!그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망설임 없이 차 문을 열고 별장 안으로 걸어갔다.식탁 앞에 막 앉은 사람들은 초대받지 않은 이연석을 보고 모두 멍해졌다.오직 연이만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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