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Chapter 811 - Chapter 820
820 Chapters
제811화
“가혜 씨, 심형진 씨.”단이수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 가볍게 인사한 뒤 바로 용건부터 말했다.“이연석 쪽의 변호사입니다. 사적으로 이 일을 해결했으면 하는데요.”변호사라는 말에 정가혜와 심형진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우리는 합의를 볼 생각이 없습니다.”고의적 상해 혐의와 성추행으로 계속해서 그를 고소할 생각이었다. 이런 상황을 수없이 많이 겪어본 단이수는 별 반응 없이 두 사람을 향해 미소만 지었다.“당신들의 심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심형진 씨가 먼저 도발한 거 아닌가요? 그래서 연석이가 충동적으로 반격한 거고요.”“내 여자 친구를 먼저 괴롭힌 건 그쪽입니다. 난 단지 그를 찾아가 몇 마디 경고했을 뿐이고요. 그쪽이 뭔데 날 때려요?”흥분에 겨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심형진을 보고 단이수가 그의 어깨를 누르며 그를 다시 의자에 앉혔다.“흥분하지 말고 합의 조건부터 들어보시죠.”두 사람이 듣고 싶든 말든 단이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의자를 끌어와 두 사람의 맞은편에 앉았다.“심형진 씨, 검사 보고서를 보니까 가벼운 상처일 뿐이던데요. 고소하기는 어려울 겁니다.”“이렇게 하죠. 병원비는 우리 쪽에서 전부 부담하겠습니다. 그리고 정신적 피해보상으로 2천만 원 드리죠.”“그리고 연석이가 가혜 씨한테 무례하게 군 건 두 사람 사이를 오해하고 잠시 격분해서 이성을 잃었던 것뿐입니다.”“연석이를 대신해 가혜 씨한테 보상으로 1억 원을 배상해 드리겠습니다. 어떠합니까?”그가 제시한 조건을 정가혜의 전남편 강은우라면 당연히 동의했겠지만 지금 그녀의 곁에 앉아 있는 사람은 심형진이었다. “돈 따위 필요 없습니다. 돈으로 해결할 생각 하지 말아요. 반드시 고소할 거니까 법원 소환장이나 기다리라고 하세요.”협상이 결렬되자 단이수는 천천히 위선의 웃음을 거두었다. “당신 얼굴에 난 그 상처로 연석이를 감옥에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이 사람은 안 되지만 난 할 수 있어요.”“정가혜 씨.”그가 그녀의 말을
Read more
제812화
단이수가 떠난 뒤 심형진은 정가혜의 손을 꼭 잡았다.“정가혜, 저 사람 말 마음에 두지 마. 너한테 겁주려고 일부러 저러는 거니까.”그녀는 애써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고한 사람이 자신 때문에 다칠까 봐 그게 제일 걱정되었다. 한편, 이연석은 단이수의 도움으로 이내 경찰서를 빠져나갔고 정가혜와 심형진은 경찰서 앞에 앉아 콜택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의 처지가 이렇게 하늘과 땅 차이라니.호텔로 돌아온 그녀는 심형진에게 약을 한 번 더 발라주고 나서야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누웠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멍하니 이불을 쳐다보다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서유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모처럼 한가롭게 신혼여행을 즐기는 두 사람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한참을 망설이던 그녀는 결국 전화를 걸지 못하고 침대에서 내려와 심형진을 찾아갔다.심형진은 한창 변호사와 통화 중이었다. 그녀는 그가 통화를 마친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갔다.“선배, 변호사는 구했어요?”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한테 소파에 앉으라는 손짓했다.“변호사가 그러는데 단이수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최고의 변호사래. 재판에서 승소율이 거의 백 퍼센트. 당해낼 자가 없다고 하더라.”그녀는 단이수를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심형진은 계속 그녀를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 내가 선임한 변호사도 재판에 능하니까.”그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선배. 고소는 나 혼자 할게요. 선배는 가족들도 있으니까 연루되지 않는 게 좋겠어요.”단이수의 말이 맞았다. 이연석을 고소한다고 하더라도 그한테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그러나 한 번쯤은 그를 혼내주고 싶었다. 제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지 말라고. 이연석이 어떻게 반격할지에 대해서는 사실 두렵지 않았다. 그녀는 혼자니까.그러나 심형진은 가족들이 있으니 그들한테까지 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 이연석은 부잣집 도련님 중에서도 최고 가문의 도
Read more
제813화
한참 후,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가 다시 핸드폰을 들고 그녀를 쳐다보았다.“사촌 형한테 전화해 볼게. 그 형도 변호사야. 금융 쪽 재판에만 능하긴 하지만 그래도 도움이 될 거야.”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전화를 걸었고 이내 통화음이 연결되었다.일의 자초지종에 대해 얘기하자 전화기 너머로 상대방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형진아. 형이 안 도와준 게 아니라 중요한 건 너무 작은 사건이야. 법정까지 갈 정도가 아니라고.”“그리고 이연석의 전 여자 친구를 왜 건드려? 우리 집안이 그렇게 돈 많고 실력 있는 집안이냐?”“너도 이젠 나이 먹을 만큼 먹었으니 부모님 생각도 해야지.”“그래. 알았어.” 사촌 형의 잔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심형진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를 끊은 후 그가 난감한 표정을 감추며 그녀를 향해 웃었다.“동창 중에도 변호사 하는 애 있어. 다시 전화해 볼게.”또다시 핸드폰을 집어 드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얼른 손을 뻗어 그를 막았다.“선배, 그만해요.”핸드폰 화면을 누르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에서 시선을 뗀 그가 그녀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그만 하라고?”“두 변호사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잖아요.”이길 수 없다고...“하지만...”그녀는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이렇게 해요. 단이수 씨 찾아가서 합의 조건에 대해 말해볼게요. 이연석 씨가 선배한테 사과하고 앞으로 다시는 날 찾아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합의해요.”“이연석 씨가 동의하지 않을 거야.”“일단 해볼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단이수가 남긴 명함을 꺼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까스로 다시 잠이 든 단이수는 새벽 5시에 걸려 온 전화를 듣고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났다.“누구예요? 이 새벽에 뭔 전화입니까?”“단 변호사님. 정가혜입니다.”전화기 너머로 부드럽고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합의 조건을 바꿨으면 하는데요.”그녀의 목소리에 단이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타협할 줄은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타협할 줄은 몰랐다. “조건
Read more
제814화
한편, 부산 출장이었던 이지민은 친구로부터 이연석이 클럽에서 사람을 때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녀는 늦은 시간에 이연석의 별장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술을 마시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테이블에 엎드려 있는 남자를 향해 한소리했다.“오빠,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뭐 하러 가혜 씨 남자 친구한테 주먹질을 해?”술에 취해 흐릿해진 시선 속에서 이지민의 윤곽이 천천히 떠올랐다. 그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그녀의 손을 밀쳤다.“신경 꺼.”그녀는 손에 든 가방을 내려놓고 술병을 빼앗았다.“그만 마셔. 이렇게 마시면 위가 남아나겠어?”허구한 날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먹고 놀기만 하니. 둘째 오빠한테 사진이라도 보내 혼내주라고 하고 싶었다. 그녀가 술병을 빼앗자 이연석은 벌컥 화를 났다.“여기서 귀찮게 하지 말고 그만 돌아가.”힘이 딸린 그녀는 술병을 빼앗지 못해 화가 났다.“그래. 아예 마시고 죽어. 나도 신경 쓰고 싶지 않으니까.”그 말을 뿌리치고 돌아서는데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어렸을 때부터 늘 오빠들의 기에 눌려 자랐기 때문에 그들이 그녀의 말을 들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승연 언니의 말이라면 오빠가 새겨들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한 이지민은 별장을 나와 이승연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한 후에야 차를 몰고 별장을 떠났다.마침 부산에 있었던 이승연은 그 얘기를 듣고 바로 차를 타고 이연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만취한 채로 겨우 침대에 엎드려 잠을 청하려는데 이승연의 경호원에게 들려 욕조에 던져졌다.“물 틀어놔. 이놈 정신 좀 차리게.”경호원이 물을 틀자 그가 정신을 차렸다. 허우적거리며 욕조에서 나와 숨을 돌리던 그는 차갑고 굳어있는 이승연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었다.“누나?”구역질이 나는 걸 억지로 참으며 욕조 아래의 계단에 거꾸로 앉아 욕조 가장자리에 머리를 기댄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누나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
Read more
제815화
그의 입에서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말이 다 나오다니. 해가 서쪽에서 뜰 노릇이다.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생의 모습에 그녀는 가슴이 아파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연석아, 네가 가혜 씨를 좋아하는 마음은 이해하는데. 하지만 가혜 씨 마음도 헤아려야 하는 거 아니니?”“가혜 씨가 너한테 마음이 없다면 네가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건 오히려 가혜 씨한테 미움만 더 사게 될 거야.”그런 건가? 내가 지금 소란을 피우고 있는 건가? 왜 다들 내가 소란을 피운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정가혜 그 여자가 먼저 날 화나게 한 건데 말이다.“누나. 가혜 씨가 나한테 이러는 건 내가 싫어서 그런 걸까요?”그 말에 그녀는 흠칫했다. 바보 같은 동생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아직 구별이 잘 안되나보다. 그동안 사귀었던 여자 친구한테는 마음을 줘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제 겨우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그 물음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정가혜와 만난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마음이 어떤지는 이승연도 잘 몰랐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더 이상 정가혜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 동생을 타이를 수밖에 없었다. “이연석.”그녀는 그를 부축하며 말을 이어갔다.“일단 집에 가자. 가혜 씨한테는 내가 물어볼게. 너에 대한 마음이 어떤 건지. 여전히 널 좋아하고 있다면 설득해 볼게. 하지만 너에 대해 마음을 접었다면 너도 나랑 약속해. 다시는 찾아가지 않겠다고.”겉으로는 순순히 고개를 숙였지만 속으로는 그녀가 좋든 싫든 절대 놓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한편, 정가혜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송사월을 보러 갔다. 그녀는 어젯밤에 이연석과 심형진이 싸운 일에 대해 송사월한테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았다. 그저 병원에 일이 있어서 심형진이 먼저 서울로 돌아갔다는 핑계만 댔다.송사월은 그 말에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주서희가 혼인신고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정가혜와 함께 쇼핑몰로 가서 주서희에게 줄 선물
Read more
제816화
그녀의 뜻을 잘 알고 있었던 정가혜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당당하게 대답했다.“좋아했었죠.”진짜 좋아했었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도 그 사람이 준 선물들은 돌려주지 않았었다. 어쩌면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좋아했었다는 건 그가 그녀의 마음을 잡지 못해서 이젠 지나간 일이 되어버렸다는 뜻이다. 결국은 이연석 그의 잘못이었다. 다만 그 대답을 듣고 이승연은 어떤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몰랐다. 설득하고 싶었지만 정가혜한테는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버렸고 설득하지 않으려니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럼 지금은...”“지금은 남자 친구 있어요.”정가혜는 그녀의 말을 단호하게 잘라버렸다. “이연석 씨 설득해 주세요. 더 이상 저와 심형진 씨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해요.”이미 결정한 이상 마음을 굳게 먹을 것이다. 심형진이 먼저 헤어지자고 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역경에도 절대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똑똑히 알아들었다. 그녀는 이연석을 원하지 않았다. 아주 확고하게 현재의 남자 친구를 선택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그래요. 연석이는 내가 잘 타이를게요.”두 사람의 대화가 끝날 무렵 종업원이 커피를 가져다주었다.정가혜는 몇 모금 마시고는 더 앉아 있기가 민망하여 작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그 모습에 이승연은 더는 말리지 않고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작별 인사를 했다.정가혜가 카페를 나간 뒤, 이승연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옆 좌석으로 가더니 난간을 톡톡 두드렸습니다.“똑똑히 들었어?”먼저 돌아가라고 했지만 이연석은 한사코 따라오려고 했다. 이젠 직접 그녀의 마음을 들었으니 물러서지 않겠는가?소파에 등을 기댄 채 눈을 내리깔고 있던 그는 핸드폰 사진첩에 한창 두 사람이 연애 중일 때 등산하면서 함께 찍었던 사진을 쳐다보았다. 사진 속 정가혜는 환한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를 바라보는 눈빛마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당시 그는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
Read more
제817화
한편, 정가혜와 심형진이 막 체크아웃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려는데 이연석이 부랴부랴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 숱이 많은 잔머리는 바람에 흐트러졌고 셔츠의 넥타이도 뒤틀려 엉망이 되어버렸다. 심형진은 그가 또 정가혜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줄 알고 한 걸음 앞으로 나와 그녀를 자신의 뒤로 숨기며 이연석에게 경고했다. “또다시 함부로 굴면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그런 위협은 이연석에게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그가 새빨개진 눈으로 심형진의 뒤에 숨어있는 그녀를 응시했다. “누나랑 하는 얘기 다 들었어요. 늦은 고백이라고 생각할게요.”“가혜 씨의 고백을 받았으니 나도 가혜 씨한테 말해주고 싶어요. 나 가혜 씨 좋아해요. 아니 사랑하는 것 같아요.”술에 취한 주정뱅이가 헛소리를 하는 것처럼 횡설수설하고 온몸에 술 냄새가 가득했다. 당사자인 그녀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의 말을 알아듣더라도 바람둥이가 말한 사랑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제3자인 심형진은 한눈에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다. 이제 와서 깨달은 남자의 사랑은 늦었지만 깊은 사랑이었다. 이 세상에서 이연석과 같은 부잣집 도련님이 이렇게 미친 듯이 쫓아다니면 당해낼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그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돌려 그녀를 자신의 뒤로 완전히 숨겨버렸다. “이연석 씨, 가혜는 지금 내 여자 친구예요. 이제 와서 이런 말 하는 건 경우가 아닌 것 같네요.”그를 힐끗 흘겨보는 이연석의 새까맣고 그윽한 눈동자에 경멸이 가득했다. “아내가 아니라 그저 여자 친구일 뿐이죠. 그러니 나한테도 고백할 권리가 있는 겁니다.”그는 심형진을 밀어내고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심형진 씨한테 사과할게요. 나 좀 다시 좋아해 주면 안 돼요?”갑자기 고개를 숙이는 그 모습에 그녀는 어리둥절해졌다. 이 사람이 선배한테 사과를 하겠다니?늘 도도하고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던 그런 사람이 사과를?멍하니 서 있는데 그가 몸을 돌려 심형진을 향해 사과했다.“미안합니다.”쿨하게
Read more
제818화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승연은 두 사람이 떠나자 이연석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이제 그만 현실을 받아들여. 가혜 씨 마음은 이미 너한테서 떠났어. 이젠 남자 친구도 생겼으니까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최소한 반박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그녀는 막냇동생이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뭐라 말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예전의 동생은 꽤 행복해 보였었다. 하지만 지금의 막냇동생은...눈을 내리깔고 애써 눈 밑의 감정을 감추고 있는 동생을 보며 그녀는 마음이 아팠고 그의 팔을 다독였다. “괴로워하지 마. 인생은 길어. 언젠가는 너한테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그래요?”그가 고개를 들어 올리는 데 예전과 같은 무심한 얼굴이었다. “누나. 나 노력한 거예요. 맞죠?”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확실히 노력했었으니까. 어렸을 때, 체격이 작았던 이연석은 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었다. 한번은 화를 참지 못하고 뚱뚱한 친구를 심하게 때린 적이 있었다. 학교 교장이 학부모를 불러왔고 두 어린이에게 서로 사과하라고 했었다.근데 뚱뚱한 아이가 사과를 하자 이연석은 죽어도 사과를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이렇게 고집이 센 사람이 정가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심형진에게 고개까지 숙였으니. 그한테는 참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천천히 묻는 그의 말에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몰랐다. “날 버린 여자이니 나도 이젠 그 여자 버릴 거예요.”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그를 쳐다보았다.그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아는 사람 같았다. 조금 전까지도 미친 듯이 달려들어 사과를 하던 사람이 지금은 또 멀쩡한 듯했다. 그와 이승하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람이었다. 이승하는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었지만 이연석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충실한 사람이었다. 이성보다 감성이 더 앞서는 사람은 결국 큰코다치게 될 것이다.세상만사 모든 걸 쉽게 생각하던 이
Read more
제819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승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어찌 동생들이 하나같이 이리 속을 썩이는지.그전에는 이승하가 죽느냐 사느냐 자살을 네 번이나 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빠르게 뛴다. 근데 지금은 이연석이 또 이렇게...다른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도 바람 잘 날이 없었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햇볕에 타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돌아와 결혼하지 않으려는 다섯째 동생. 그리고 여태껏 나타나지 않았던 여섯째 동생은 마치 은신이라도 한 것처럼 출근도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고 매일 집에서 게임만 하고 있다. 거기에 이연석 이 녀석까지 더해 그들한테는 이미 두손 두발 다 들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려 한다. 그녀도 이젠 더 이상 신경 쓰기 귀찮다. 공항, 심형진은 물 한 병을 사서 뚜껑을 열어 대기실에 앉아 있는 정가혜에게 건네주었다.“고마워요.”그녀는 물병을 건네받아 묵묵히 물 한 모금을 마셨다.옆에 앉아 그녀의 눈치를 살피던 그가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금 전에 네가 이연석 씨의 질문에 대답하는 걸 내가 두 번이나 막았는데. 기분 상한 건 아니지?”그녀는 고개를 흔들 뿐 아무 말이 없었다.그 모습에 심형진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했다.“미안해. 네가 이연석 씨한테 끌려갈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서 그랬던 거야.”“알아요. 괜찮아요.”그녀는 괜찮다는 듯 그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고 긴장했던 마음이 그제야 조금 풀렸다. 그녀를 붙잡기 위해 작은 꾀를 부린 것이다. 사실 이런 그의 속셈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심형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긴장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전 남자 친구라는 건 언제나 민감한 존재였다. 게다가 방금 이연석은 심형진이 보는 앞에서 그녀한테 고백까지 했으니 더 마음이 쓰이겠지. “선배, 걱정하지 말아요. 앞으로 다시는 나 찾아오지 않을 거예요.”그와 3년을 만났기 때문에 그의 성격이 어떤지는 어
Read more
제820화
어슴푸레 동이 튼 아침, 침대에 누워있던 주서희는 어렴풋이 눈을 떴고 창밖으로 갈매기들이 스쳐 지나갔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양쪽 창문으로 들어오자 실내의 향이 담백한 맛을 자아냈다. 그녀가 좋아하는 향기였고 그녀가 좋아하는 바다 풍경이었고 집안의 인테리어조차도 그녀가 한때 꿈꾸었던 신혼집 인테리어였다. 그러나 그것은 다 지나간 일일 뿐. 뒤늦게 찾아온 진심에 대해 그녀는 늘 외면해 왔지만 그 사람은 계속 과거에 살고 있는 듯했다. 방문이 열리고 보라색 셔츠를 입은 소준섭이 우유와 빵을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한동안 갇혀 있더니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 잘생긴 얼굴이 지금은 눈 밑이 어두웠고 그늘이 져 있었다. 그가 허리를 굽혀 아침 식사를 침대 머리맡에 놓고는 다시 몸을 일으켜 침대에 누워 자는 척하고 있는 주서희를 쳐다보았다.“일어났으면 뭐 좀 먹어.”그녀를 구청 앞에서 데려온 후, 그는 그녀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의 눈을 가린 채 그녀를 배에 태우고 섬으로 왔다. 그러고는 그녀를 밀폐된 방에 가두어 두었다. 밤새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퍼부어도 그는 상대조차 하지 않았고 방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윤주원과 왜 결혼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 일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그녀는 그를 외면한 채 눈을 내리깔고 묶여있는 자신의 두 손을 쳐다보았다. 손과 발이 밧줄에 묶인 채 밤새 몸부림치다가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안 일어날 거야? 내가 직접 먹여줘?”그는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손목시계를 벗어 던진 뒤 침대에 반쯤 꿇어앉아 주서희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머리맡에 놓인 우유를 들고 그녀의 입에 부었다.그녀가 마시려 하지 않고 입술을 꼭 다물고 있으니 우유가 입가로 흘러내려 소준섭의 옷을 적셨다.우유가 묻은 옷을 보고 그가 깊고 음험한 눈을 들어 그녀를 차갑게 훑어보았다.“정말 안 먹을 거야?”천천히
Read more
PREV
1
...
777879808182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