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뜻을 잘 알고 있었던 정가혜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당당하게 대답했다.“좋아했었죠.”진짜 좋아했었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도 그 사람이 준 선물들은 돌려주지 않았었다. 어쩌면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좋아했었다는 건 그가 그녀의 마음을 잡지 못해서 이젠 지나간 일이 되어버렸다는 뜻이다. 결국은 이연석 그의 잘못이었다. 다만 그 대답을 듣고 이승연은 어떤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몰랐다. 설득하고 싶었지만 정가혜한테는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버렸고 설득하지 않으려니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럼 지금은...”“지금은 남자 친구 있어요.”정가혜는 그녀의 말을 단호하게 잘라버렸다. “이연석 씨 설득해 주세요. 더 이상 저와 심형진 씨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해요.”이미 결정한 이상 마음을 굳게 먹을 것이다. 심형진이 먼저 헤어지자고 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역경에도 절대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똑똑히 알아들었다. 그녀는 이연석을 원하지 않았다. 아주 확고하게 현재의 남자 친구를 선택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그래요. 연석이는 내가 잘 타이를게요.”두 사람의 대화가 끝날 무렵 종업원이 커피를 가져다주었다.정가혜는 몇 모금 마시고는 더 앉아 있기가 민망하여 작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그 모습에 이승연은 더는 말리지 않고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작별 인사를 했다.정가혜가 카페를 나간 뒤, 이승연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옆 좌석으로 가더니 난간을 톡톡 두드렸습니다.“똑똑히 들었어?”먼저 돌아가라고 했지만 이연석은 한사코 따라오려고 했다. 이젠 직접 그녀의 마음을 들었으니 물러서지 않겠는가?소파에 등을 기댄 채 눈을 내리깔고 있던 그는 핸드폰 사진첩에 한창 두 사람이 연애 중일 때 등산하면서 함께 찍었던 사진을 쳐다보았다. 사진 속 정가혜는 환한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를 바라보는 눈빛마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당시 그는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
한편, 정가혜와 심형진이 막 체크아웃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려는데 이연석이 부랴부랴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 숱이 많은 잔머리는 바람에 흐트러졌고 셔츠의 넥타이도 뒤틀려 엉망이 되어버렸다. 심형진은 그가 또 정가혜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줄 알고 한 걸음 앞으로 나와 그녀를 자신의 뒤로 숨기며 이연석에게 경고했다. “또다시 함부로 굴면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그런 위협은 이연석에게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그가 새빨개진 눈으로 심형진의 뒤에 숨어있는 그녀를 응시했다. “누나랑 하는 얘기 다 들었어요. 늦은 고백이라고 생각할게요.”“가혜 씨의 고백을 받았으니 나도 가혜 씨한테 말해주고 싶어요. 나 가혜 씨 좋아해요. 아니 사랑하는 것 같아요.”술에 취한 주정뱅이가 헛소리를 하는 것처럼 횡설수설하고 온몸에 술 냄새가 가득했다. 당사자인 그녀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의 말을 알아듣더라도 바람둥이가 말한 사랑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제3자인 심형진은 한눈에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다. 이제 와서 깨달은 남자의 사랑은 늦었지만 깊은 사랑이었다. 이 세상에서 이연석과 같은 부잣집 도련님이 이렇게 미친 듯이 쫓아다니면 당해낼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그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돌려 그녀를 자신의 뒤로 완전히 숨겨버렸다. “이연석 씨, 가혜는 지금 내 여자 친구예요. 이제 와서 이런 말 하는 건 경우가 아닌 것 같네요.”그를 힐끗 흘겨보는 이연석의 새까맣고 그윽한 눈동자에 경멸이 가득했다. “아내가 아니라 그저 여자 친구일 뿐이죠. 그러니 나한테도 고백할 권리가 있는 겁니다.”그는 심형진을 밀어내고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심형진 씨한테 사과할게요. 나 좀 다시 좋아해 주면 안 돼요?”갑자기 고개를 숙이는 그 모습에 그녀는 어리둥절해졌다. 이 사람이 선배한테 사과를 하겠다니?늘 도도하고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던 그런 사람이 사과를?멍하니 서 있는데 그가 몸을 돌려 심형진을 향해 사과했다.“미안합니다.”쿨하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승연은 두 사람이 떠나자 이연석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이제 그만 현실을 받아들여. 가혜 씨 마음은 이미 너한테서 떠났어. 이젠 남자 친구도 생겼으니까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최소한 반박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그녀는 막냇동생이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뭐라 말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예전의 동생은 꽤 행복해 보였었다. 하지만 지금의 막냇동생은...눈을 내리깔고 애써 눈 밑의 감정을 감추고 있는 동생을 보며 그녀는 마음이 아팠고 그의 팔을 다독였다. “괴로워하지 마. 인생은 길어. 언젠가는 너한테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그래요?”그가 고개를 들어 올리는 데 예전과 같은 무심한 얼굴이었다. “누나. 나 노력한 거예요. 맞죠?”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확실히 노력했었으니까. 어렸을 때, 체격이 작았던 이연석은 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었다. 한번은 화를 참지 못하고 뚱뚱한 친구를 심하게 때린 적이 있었다. 학교 교장이 학부모를 불러왔고 두 어린이에게 서로 사과하라고 했었다.근데 뚱뚱한 아이가 사과를 하자 이연석은 죽어도 사과를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이렇게 고집이 센 사람이 정가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심형진에게 고개까지 숙였으니. 그한테는 참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천천히 묻는 그의 말에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몰랐다. “날 버린 여자이니 나도 이젠 그 여자 버릴 거예요.”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그를 쳐다보았다.그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아는 사람 같았다. 조금 전까지도 미친 듯이 달려들어 사과를 하던 사람이 지금은 또 멀쩡한 듯했다. 그와 이승하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람이었다. 이승하는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었지만 이연석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충실한 사람이었다. 이성보다 감성이 더 앞서는 사람은 결국 큰코다치게 될 것이다.세상만사 모든 걸 쉽게 생각하던 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승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어찌 동생들이 하나같이 이리 속을 썩이는지.그전에는 이승하가 죽느냐 사느냐 자살을 네 번이나 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빠르게 뛴다. 근데 지금은 이연석이 또 이렇게...다른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도 바람 잘 날이 없었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햇볕에 타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돌아와 결혼하지 않으려는 다섯째 동생. 그리고 여태껏 나타나지 않았던 여섯째 동생은 마치 은신이라도 한 것처럼 출근도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고 매일 집에서 게임만 하고 있다. 거기에 이연석 이 녀석까지 더해 그들한테는 이미 두손 두발 다 들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려 한다. 그녀도 이젠 더 이상 신경 쓰기 귀찮다. 공항, 심형진은 물 한 병을 사서 뚜껑을 열어 대기실에 앉아 있는 정가혜에게 건네주었다.“고마워요.”그녀는 물병을 건네받아 묵묵히 물 한 모금을 마셨다.옆에 앉아 그녀의 눈치를 살피던 그가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금 전에 네가 이연석 씨의 질문에 대답하는 걸 내가 두 번이나 막았는데. 기분 상한 건 아니지?”그녀는 고개를 흔들 뿐 아무 말이 없었다.그 모습에 심형진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했다.“미안해. 네가 이연석 씨한테 끌려갈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서 그랬던 거야.”“알아요. 괜찮아요.”그녀는 괜찮다는 듯 그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고 긴장했던 마음이 그제야 조금 풀렸다. 그녀를 붙잡기 위해 작은 꾀를 부린 것이다. 사실 이런 그의 속셈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심형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긴장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전 남자 친구라는 건 언제나 민감한 존재였다. 게다가 방금 이연석은 심형진이 보는 앞에서 그녀한테 고백까지 했으니 더 마음이 쓰이겠지. “선배, 걱정하지 말아요. 앞으로 다시는 나 찾아오지 않을 거예요.”그와 3년을 만났기 때문에 그의 성격이 어떤지는 어
어슴푸레 동이 튼 아침, 침대에 누워있던 주서희는 어렴풋이 눈을 떴고 창밖으로 갈매기들이 스쳐 지나갔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양쪽 창문으로 들어오자 실내의 향이 담백한 맛을 자아냈다. 그녀가 좋아하는 향기였고 그녀가 좋아하는 바다 풍경이었고 집안의 인테리어조차도 그녀가 한때 꿈꾸었던 신혼집 인테리어였다. 그러나 그것은 다 지나간 일일 뿐. 뒤늦게 찾아온 진심에 대해 그녀는 늘 외면해 왔지만 그 사람은 계속 과거에 살고 있는 듯했다. 방문이 열리고 보라색 셔츠를 입은 소준섭이 우유와 빵을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한동안 갇혀 있더니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 잘생긴 얼굴이 지금은 눈 밑이 어두웠고 그늘이 져 있었다. 그가 허리를 굽혀 아침 식사를 침대 머리맡에 놓고는 다시 몸을 일으켜 침대에 누워 자는 척하고 있는 주서희를 쳐다보았다.“일어났으면 뭐 좀 먹어.”그녀를 구청 앞에서 데려온 후, 그는 그녀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의 눈을 가린 채 그녀를 배에 태우고 섬으로 왔다. 그러고는 그녀를 밀폐된 방에 가두어 두었다. 밤새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퍼부어도 그는 상대조차 하지 않았고 방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윤주원과 왜 결혼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 일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그녀는 그를 외면한 채 눈을 내리깔고 묶여있는 자신의 두 손을 쳐다보았다. 손과 발이 밧줄에 묶인 채 밤새 몸부림치다가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안 일어날 거야? 내가 직접 먹여줘?”그는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손목시계를 벗어 던진 뒤 침대에 반쯤 꿇어앉아 주서희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머리맡에 놓인 우유를 들고 그녀의 입에 부었다.그녀가 마시려 하지 않고 입술을 꼭 다물고 있으니 우유가 입가로 흘러내려 소준섭의 옷을 적셨다.우유가 묻은 옷을 보고 그가 깊고 음험한 눈을 들어 그녀를 차갑게 훑어보았다.“정말 안 먹을 거야?”천천히
“서희야, 나 정말 아파...”주서희 위에 올라타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지고 떨리기 시작했다.“아프면 나를 놔요!”“거기가 아픈 게 아니야.”소준섭은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 위로 가져갔다.“여기가 아파.”주서희의 얼굴을 바라볼 때, 깊게 파인 눈에서 슬픔이 서서히 드러났다.“서희야, 너랑 결혼하려고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 정말 거의 죽을 뻔했어.”“그런데 넌 날 속이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러 갔지. 내가 얼마나 아픈지 네가 알기나 해?”말을 마친 후, 소준섭은 피로 범벅이 된 다른 손으로 주서희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내가 막지 않았다면, 넌 지금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겠지?”주서희는 고개를 돌려 그의 손길을 피했고, 눈에는 혐오와 증오가 가득했다.남자의 가늘고 약한 손가락이 공중에서 몇 초간 멈춘 후, 갑자기 주서희의 뺨을 꽉 잡았다.“서희야, 우리 약속했잖아. 내가 소 씨 집안 사람들을 설득하기만 하면 나랑 결혼해주겠다고. 그런데 왜 갑자기 윤주원과 결혼하려는 거야?”이 말을 할 때 그의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주서희의 얼굴을 움켜쥔 손가락에는 볼이 움푹 파일 정도로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주서희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며, 소준섭의 행동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런 차가운 무시로 그를 몰아내려는 듯.소준섭은 화를 내지 않고 그녀의 얼굴을 잡았던 손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따뜻한 손가락 끝이 목을 지나 계속 아래로 내려가며 차가운 감각을 남겼다.마치 복수하러 돌아온 뱀이 기어가는 곳마다 사람을 얼려 죽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주서희는 굴욕을 참으며 턱을 치켜들고 그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그녀보다 더한 증오가 드러나 있었다.그런 눈빛을 보자 주서희는 비웃었다.하, 소준섭이 무슨 자격으로 그녀를 증오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건 그가 자초한 일이면서.소준섭의 손가락은 그녀의 허리 뒤에서 멈췄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눈을 들어 주서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서희야
“소준섭 씨!”정신이 든 주서희는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목소리는 찢어질 듯한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고 당장이라도 그를 죽이고 싶어 했다.“쉿.”소준섭은 가늘고 긴 손가락을 입술 위에 올리며 ‘조용히 하라’는 동작을 한 뒤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그렇게 크게 소리치는 걸 보니, 내가 너무 기분 좋게 해줬나 보네...”“미쳤어요?”소준섭은 웃으며 손가락을 입술에서 떼어내고 주서희의 등을 어루만지며 위아래로 움직였다. 하얀 피부 위를 유영하는 그의 손길이 느껴졌다.“서희야, 너 예전에도 침대에서 나를 미쳤다고 욕했잖아. 넌 정말 변하지 않았구나...”“입 다물어요!”소준섭은 전화를 끊지 않았다. 전화는 계속 연결된 상태였고, 상대방은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주서희는 윤주원이 계속 듣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소준섭 씨, 전화 끊어줘요.”손과 발이 묶인 그녀는 돌아서서 소준섭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모욕하는 것은 괜찮았지만 윤주원에게 상처 주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는 아무 죄가 없었으니까.그녀를 벌하려고 했던 소준섭이 전화를 끊을 리 없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번지고 있었지만 하는 짓은 짐승보다 더 끔찍했다.그는 한 손으로 주서희의 허리를 지탱하고, 다른 손으로는 휴대폰을 들어 두 사람이 몸을 섞는 소리를 윤주원에게 들려주려고 했다.소준섭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주서희는 갑자기 눈이 빨개지더니 침대 시트 위로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윤주원, 제발... 끊어줘...”‘소준섭 같은 변태는 전화를 끊지 않을 거니까, 윤주원, 제발 네가 끊어줘. 더 이상 듣지 마...’지금의 그녀는 마치 모든 화려한 겉모습을 벗겨낸 채 가장 추악한 내면을 드러낸 것 같았다.아무런 존엄도 남지 않은 그녀는 이 세상에서 살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윤주원의 귀를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전화기 너머의 윤주원은 결국 거칠고 폭력적인 소리를 들었다. 그는 몇 번이고 말하려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
주서희의 손톱이 살을 파고들 때, 소준섭은 그녀의 목덜미를 붙잡고 자신의 입가에로 끌어왔다.“서희야, 네가 날 죽이고 싶어 한다는 거 알아. 근데 난 죽더라도 네가 다른 남자랑 결혼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주서희가 그의 목숨을 앗아가는 건 괜찮지만 다른 남자랑 결혼해서는 안 된다고 소준섭은 생각했다.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와 입을 맞췄다.“서희야, 넌 영원히 내 여자야...”소준섭은 그녀의 몸에 한번 또 한 번 욕구를 풀어내고 그녀가 진짜 돌아왔다는 사실을 실감한 후에야 풀어주었다.그는 땀으로 흥건히 젖은 주서희를 안고 욕조에 가서 깨끗이 씻어주었다. 그리고 반듯하게 옷까지 입혀주기까지 했다.그 과정에서 그녀가 도망가거나 혹 스스로를 해치는 걸 막기 위해 손발을 묶고 있던 밧줄을 한 번도 풀어주지 않았다.소준섭만큼 힘이 세지 않았던 주서희는 인형처럼 그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그는 헤어드라이기를 들고 그녀의 머리를 말려준 후, 신발을 가져와 신겨 주었다.이 모든 걸 끝낸 후에야 그는 고개를 들어 주서희를 보며 말했다.“서희야, 집에 데려다줄게.”데려다준다고?주서희는 겉으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실은 속으로 매우 놀라웠다.소준섭이 그녀를 죽을 때까지 여기에 감금해 둘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그와 함께 죽을 각오까지 했는데 집에 데려다준다고?그녀는 상대방이 어떤 속셈인지 몰라 경계를 취하며 그를 힐끗 보았다.소준섭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부드럽고 깔끔한 웃음을 보였는데, 그 웃음은 전에 주서희가 얹혀살면서 그를 오빠라고 부를 때랑 별로 다르지 않았다.어릴 적 단순하고 무해하던 소준섭으로 다시 돌아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러나 주서희는 잘 알고 있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가자...”소준섭은 검은색 비단으로 주서희의 눈을 막은 후 그녀를 들어 올렸다.올 때도 이런 식으로 왔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갈 때도 소준섭은 당연히 그녀에게 여기가 어디인지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