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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의 모든 챕터: 챕터 1211 - 챕터 1220

1552 챕터

제1211화

그녀의 말재주는 정말로 대단했다.“너 이렇게 하는 거, 결국 정가혜를 자극하려는 거잖아.”유나희의 직언에도 배하린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오히려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가혜 씨를 자극한다고요? 이게 가혜 씨랑 무슨 관련이 있어요?”유나희는 컵을 내려놓으며 차가운 눈빛으로 배하린을 응시했다.“네가 연석이의 아파트에 들어간 직후에 정가혜도 바로 도착했어. 네가 분명 정가혜가 올 것을 알고 일부러 앞에서 연극을 벌인 거겠지.”배하린은 마치 이해한 듯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고개를 들어 유나희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어머니, 저는 길에서 연석이를 우연히 만나 집에 데려다 준 것뿐이에요. 그동안 가혜 씨가 올지 몰랐어요. 설마 연석이랑 가혜 씨가 약속을 한 건가요?”그 부분은 이연석도 말한 적이 없으니 아마 약속하지 않았을 것이다.유나희는 그날 밤 정가혜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녀는 그 후 곧바로 이연석의 아파트로 향했었다. 그녀가 그렇게 빠르게 이연석을 찾아간 것은 자신과의 대화 후 헤어지기 위해 그를 만나러 간 것이었다.이렇게 보니, 정가혜가 배하린과 이연석의 ‘하룻밤’을 목격한 건 결국 자신 때문이었다.이를 깨달은 유나희는 한동안 말문이 막혔고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다.“어머니 표정을 보니, 약속은 안 한 것 같네요. 만약 두 사람이 약속을 하지 않았다면, 제가 어떻게 미리 가혜 씨가 올 것을 알았겠어요?”“가혜 씨가 올지조차 몰랐는데 제가 왜 가혜 씨를 자극하겠어요?”“설령 그 일로 나중에 가혜 씨를 자극하려 했다 하더라도 제가 찾아갔다는 흔적이 남았겠죠.”“원한다면 가혜 씨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우리 둘이 만난 적 있는지.”“만약 없다면 어머니는 지금 증거도 없이 저를 모함하고 있는 겁니다!”유나희는 이 말을 듣고 얼굴이 어두워졌다.“네 속셈이 무엇이든 간에 연석이를 모욕한 건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유나희가 다시 경호원에게 고개를 까딱이는 것을 보자 배하린은 겁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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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2화

배하린은 유나희가 자신을 위협하도록 유도해 왔고 결국 그 목적을 달성한 후 조소를 터뜨렸다.“어머니, 이렇게 저를 협박하시면 가혜 씨가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더더욱 이 집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을 텐데, 두렵지 않으세요?”“가혜가 우리 집에 들어오든 말든 난 상관없어. 내가 이 모든 걸 하는 건 내 아들을 돕기 위해서일 뿐이야.”이 말에 배하린의 입가에는 더욱 짙은 미소가 번졌다.“어머니는 제 부모님과 제가 이씨 집안과 같은 가문에 맞설 힘이 없다는 걸 알고 이렇게 협박하는 거겠죠?”“알고 있으면 내 말대로 해.”배하린은 크게 숨을 들이쉰 후 마치 죽음을 각오한 듯 목을 뻣뻣하게 세웠다.“좋아요. 어머니가 그렇게 듣고 싶다면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할게요. 그게 원하는 거잖아요.”결과를 얻은 유나희는 배하린의 턱을 잡고 있던 손을 풀고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두드렸다.“이 말은 가혜 씨에게 직접 하도록 해.”유나희는 그렇게 말한 뒤 몸을 곧추세우고 경호원이 건네준 손수건을 받아 우아하게 손가락을 닦았다.“먼저 가둬. 얼굴에 난 상처는 깨끗이 치료하고 회복되면 정가혜한테 데려가.”“알겠습니다.”경호원이 배하린을 끌고 나가자마자 정확한 시간을 계산한 듯 이연석이 거실로 돌아왔다.“어머니, 배하린은 어딨어요?”유나희는 아들에게 등을 돌린 채 피가 조금 묻은 손수건을 무심하게 쓰레기통에 던졌다.“다 처리했어. 사흘 뒤에 우리와 함께 정가혜를 만나 진실을 밝힐 거야.”이 말을 듣자 긴장으로 굳어있던 이연석은 비로소 안도했다. 술에 취했어도 자신이 그런 일을 저지를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그가 배하린과 하룻밤을 보냈다면 평생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사흘 후, 배하린은 전용기를 타고 정가혜 앞에 나타났다. 송사월을 간호하던 정가혜는 눈물로 범벅된 배하린을 보고 얼떨떨했다.“가혜 씨, 그날 밤 난 연석이를 집에 데려다준 후, 가혜 씨가 연석이를 찾으러 온 것을 보고 순간 질투가 나서 일부러 연극을 벌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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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3화

갑작스러운 청혼에 정가혜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지금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요. 시간을 좀 주세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급하게 청혼을 한 이연석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었지만, 역시 너무 성급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정가혜의 손에 끼워진 다이아몬드 반지를 힐끗 보고는 그녀가 반지를 빼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을 보며 마음속의 저울이 자신에게 기울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더 이상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얼마나 생각해 볼 건데요?”“내일 사월이가 퇴원하니까 사월이랑 귀국하고 정리한 후에 다시 답을 줄게요.”정가혜가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보이자 이연석은 그녀가 아직 마음속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을 것이라 짐작했다.“좋아요, 가혜 씨 답을 기다릴게요.”정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연석은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끌어안았다. 원래 정가혜는 밀어낼 생각이었지만, 그가 온 힘을 다해 자신을 껴안는 것을 느끼고는 멈칫했다.정가혜가 자신을 밀어내지 않은 것을 감지한 이연석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따스한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가혜 씨 답이 더 이상 거절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그는 이렇게 말한 후 정가혜를 놓아주고 웃으며 뒤돌아섰다. 정가혜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깊은 혼란에 빠졌다.정가혜는 손을 들어 그 반지를 바라보았다... ‘배하린이 한 말이 정말 사실일까? 다시 한 번 저 사람을 믿어도 될까?’이연석은 차에 올라탄 후 어머니 유나희를 껴안았다.“어머니 덕분에 제가 솔로 탈출이에요.”아들의 기쁜 모습을 본 유나희는 오해가 풀렸음을 눈치 채고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네가 혼자 살든 말든 상관없어. 난 그저 네가 손자를 남겨주길 바랄 뿐이야.”“손자가 갖고 싶으시다면 나중에 가혜 씨랑 결혼해서 애를 많이 낳을게요.”유나희는 여전히 정가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배하린보다는 정가혜가 집에 들어오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결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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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4화

“나...”정가혜는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좋아하는 감정은 있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왜 그가 다른 여자를 만졌다는 것에 그렇게까지 신경이 쓰였을까? 이전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던 일이었는데.정가혜조차 자신이 그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송사월은 눈가에 따뜻한 미소를 띠었다.“누나, 때로는 사랑에 대해 너무 두려워하지 마요. 마음에 그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용기를 내봐요.”정가혜는 원래 사랑과 미움을 분명히 하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전남편의 배신을 겪고, 또 신뢰할 수 없는 꽃미남 이연석을 만난 이후로 감정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하지만 송사월은 양쪽에서 서로를 향해 가는 사랑이라면 언제나 용기를 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사랑을 택했을 것이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단, 그는 다시 시작할 기회조차 없을 뿐이었다.송사월의 생각을 읽지 못한 정가혜는 손을 꽉 쥐고 처음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한 번은 용기를 내서 다가간 적이 있었어. 하지만 내가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그 사람이 나를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 그래서 도망쳤고, 두려워졌고, 더 이상 그 사람이랑 엮이지 않겠다고 결심했지. 그런데 오늘 그 사람이 내가 본 게 단순한 오해였다고 말하면서 그 여자를 데려와 설명했어. 내가 과연 믿어도 되는 걸까?”송사월은 이해했다.“그 사람이 과거에 했던 일들이 누나한테 불안감을 준 거예요. 그래서 결국 신뢰할 수 없는 거죠.”사실 사건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연석이라는 이름표였다. 결혼 생활에서 상처를 받은 정가혜는 이연석에게 모든 걸 걸기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런 이유는 이연석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사람, 이를테면 심형진이라면, 정가혜는 그가 다른 여자를 만졌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것이고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맞아, 그 사람이 했던 일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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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5화

정가혜는 엘리베이터를 나와 복도를 지나자마자 배하린과 마주쳤다. 순간 그녀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멈췄다.배하린은 정가혜를 보자 얼굴에 걸친 선글라스를 벗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 정가혜 앞까지 다가갔다.“가혜 씨, 알아야 할 게 있어요. 시간을 내서 한 번 들어봐요.”막 설명을 끝내고 또다시 진실을 말하겠다는 배하린을 보며 정가혜는 그녀의 말을 전혀 신뢰할 수 없었다.“나 시간 없어요. 그리고 당신이 말하는 진실 따위는 듣고 싶지도 않아요.”정가혜는 배하린을 지나치려 했지만 그녀가 길을 막아섰다.“가혜 씨,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연석이랑 결혼하고 싶다면 맘대로 해요.”그러면서 배하린은 녹음기를 꺼내 들었다.“하지만 가혜 씨를 속이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아요.”그녀는 녹음기를 정가혜의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이건 연석이 어머니가 연석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고 나서 저한테 연석이 대신 설명하라고 강요한 증거예요.”차가운 녹음기가 손에 닿자 서늘한 기운이 퍼졌다.“그러니까 당신 말은, 방금 했던 설명이 연석 씨 어머니가 시켜서 한 거란 거예요?”“네.”배하린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죽을 거라 협박받았어요. 부모님도 함께 위험에 처하게 될 거라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했어요.”배하린은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 옷을 걷어 올리더니 정가혜의 손을 잡고 자신의 갈비뼈에 대었다.“만져봐요. 몇 개나 부러졌는지 느껴지죠?”그녀는 이어서 축 늘어진 약지손가락을 정가혜 앞에 들이밀었다.“손가락도 영구적인 골절이 됐어요.”배하린은 말을 끝내고 목을 가린 높은 칼라를 젖혀 목에 난 상처들을 정가혜에게 보여주었다.“이 상처들, 전부 연석이 어머니가 경호원에게 시켜서 때리게 한 거예요.”그녀의 눈에는 억울함이 서려 있었고 입가에는 비웃음이 스쳤다.“겨우 자기 아들과 하룻밤을 가졌다는 이유로 이렇게 잔인하게 굴다니.”“그분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오로지 아들을 위해 가혜 씨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서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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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6화

배하린을 바라보며 정가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길게 드리운 속눈썹을 내려뜨고 손에 들린 녹음기를 멍하니 바라봤다. 사람들은 모두 이연석이 정가혜를 사랑한다고 했다. 배하린조차 그렇게 말하니,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정가혜 역시 이연석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의심이 남아있었다. “그날 밤 두 사람 정말 잤던 거예요?”정가혜에게는 유나희가 아들을 위해 무슨 일을 했든 상관없었다. 그녀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이연석뿐이었다. 배하린은 그 말을 듣자 비웃음을 참지 못했다. “가혜 씨, 아직도 연석이한테 희망을 걸고 있는 거예요?”“네.” 정가혜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 따스한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며 더욱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난 이 모든 것이 그저 거짓이었으면 해요. 그러니까...”정가혜는 잠시 말을 멈추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당신이 방금처럼 다시 한 번 합리적인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요?”정가혜가 그 말을 할 때 그녀의 눈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 그녀가 지금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배하린이 착한 사람이었다면 정가혜를 동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배하린은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아첨하며 살았던, 돈만 쫓는 여성이었다. 그녀 같은 사람은 동정심이란 게 없다. 오로지 자신이 얻지 못하는 것은 파괴하려는 욕망만 있을 뿐이다. 무엇이든 대가를 치르더라도 말이다.“가혜 씨, 한번 생각해봐요. 술에 취한 남자와 그를 깊이 사랑하는 여자가 같은 방에 오래 있었다면 무슨 일을 했겠어요?”정가혜의 얼굴은 햇빛을 받고 있었지만 점점 창백해져 갔고 녹음기를 쥐는 힘도 점점 강해졌다. “연석이는 절대 한 여자에게만 충실하지 않을 거예요. 아마...”“앞으로 나에게만 충실하겠다고 했어요.” 정가혜는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배하린은 입 꼬리를 올리며 비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요? 그렇게 믿고 싶은 거죠?”그녀는 마치 우스꽝스러운 농담이라도 들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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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7화

정가혜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의사에게 다시 한번 검사를 요청했지만 결과는 여전히 충격적이었다. 병상에 앉아 보고서를 몇 번이고 확인하던 정가혜는 결국 자신이 임신했다는 현실을 천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날 밤, 피임 조치를 하지 않았고 다음 날 아침에는 서유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리고 곧바로 유나희에게 불려갔다. 이연석과 배하린을 만나고 홧김에 밤새 M국으로 송사월을 찾아온 뒤 72시간이 지나도록 긴급 피임약을 먹지 않았으니, 임신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가 찾아온 시기는 너무나도 부적절했다. 정가혜가 불안한 표정으로 침울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병상 앞에 앉아 있던 송사월도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누나, 이연석 씨의 아이죠?”송사월의 직설적인 질문에 정가혜는 난처해했지만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그렇게 기뻐하지 않는 거예요?” 이연석의 청혼을 받아들일 준비를 다 마친 것처럼 보였는데, 왜 이렇게 불안해 보이는 걸까? 정가혜는 손을 들어 자신의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아직은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는 무겁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겠어...” 정가혜는 송사월을 바라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임신 때문에 너무 예민해진 것 같아.” 정가혜는 눈물을 닦고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월아, 너는 먼저 돌아가. 나는 여기서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한 후에 갈게, 응?” 송사월은 정가혜를 가만히 응시했다. 임신 때문에 예민해진 것인지, 아니면 감정적으로 너무 힘든 것인지, 정가혜는 무언가 많은 것을 혼자 짊어지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고 스스로 감당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송사월은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봤기에 그녀의 고통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말 없이 그녀의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그래요. 누나 울지 마요.” 송사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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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8화

정가혜는 서둘러 A시로 돌아왔지만 공항에서 이연석이 화려한 외모와 훤칠한 몸매를 가진 여인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녀의 발걸음은 천천히 멈춰섰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의 도착 게이트가 정가혜의 시야에서는 희미해져 갔고 남은 것은 그들 셋뿐이었다. 그녀는 그 여자가 꽃다발을 받은 후 갑자기 발끝을 세우고 이연석의 뺨에 키스를 한 뒤, 입을 가리며 급히 달아나는 모습을 보았다. 이연석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발길을 돌려 빠르게 떠났다.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정가혜의 세상은 온통 어둠에 잠겼다. 결국 배하린이 없더라도 이연석 곁에는 언제든 다른 여자가 있을 것이었다는 걸 그녀는 깨달았다. 그들이 가로막고 있는 것은 단순히 배하린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결코 줄 수 없는 ‘안정감’이었고, 정가혜가 주고 싶어도 번번이 깨져버리는 ‘신뢰감’이었다. 정가혜는 자신이 아이에게 주고 싶은 가정이 아빠는 한결같은 사랑을 주고 엄마는 그를 믿어주는 그런 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와 자신 둘 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집에 도착한 정가혜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결국 전화기를 들어 이전에 알게 된 산부인과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현정이 우유를 가져오던 중, 정가혜가 낙태 수술을 예약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 손이 떨렸다. 트레이에 올려진 우유가 거의 쏟아질 뻔했다. 전화를 끊은 정가혜는 노현정이 그 사실을 들었다는 걸 알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주머니,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노현정은 혼란스러웠다. “가혜야, 아이를 가졌는데 왜 낙태를 하려고 해?” 정가혜는 대답하지 않고 이불을 들어올리며 침대에 누웠다. 몸과 마음의 피로가 그녀를 지치게 만들었다. 노현정은 많은 의문이 있었지만 지친 그녀를 보고는 입을 다물고 방을 나갔다. 그 시각 이연석은 공항에서 정가혜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정가혜가 나오지 않자 급히 노현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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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9화

수술실 안은 금세 냉랭한 기운을 풍기는 이연석과 수술대에 누운 정가혜, 두 사람만 남았다. “왜?” 옆에 서 있던 남자는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고 그저 단 한 마디만 물었다. 정가혜는 수술실 밖에 서 있는 노현정을 잠시 보다가 다시금 분노로 가득 찬 이연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냥요.” 이연석이 찾아온 이상, 수술을 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정가혜는 조용히 수술대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의 강한 손에 손목이 붙잡혔다. 그의 힘은 너무나 강해 손가락이 깊숙이 피부에 파고들었고 정가혜는 고통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이를 악물고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그녀가 소리도 없이, 그를 보지도 않는 모습에 이연석은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 “이게 나한테 주는 답인가?” 귀국한 후 대답을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그녀의 대답은 그의 아이를 몰래 낙태하려는 것이었다. 노현정에게서 전화를 받은 그 순간, 정가혜와의 결혼을 기대하던 이연석의 마음은 한순간에 차가워졌다. 그는 그토록 노력하며 그녀를 쫓았지만 정가혜의 계속된 거절 앞에서 그의 모든 것이 산처럼 무너져내렸다. “가혜 씨, 이유를 말해줘요. 대답을 듣고 나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거니까.” 그는 지쳤고 충분히 힘들었다. 그러나 죽더라도 그 이유는 분명히 알아야만 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정가혜는 천천히 속눈썹을 들어 절망으로 가득 찬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 사이에는 분명 끝을 내야 할 무언가가 있었다. 그 끝을 위해서는 말을 분명히 해야 했다. “나는 당신이 배하린 씨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요.” 그녀의 말을 듣고 이연석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미 충분히 설명했어요. 그건 배하린이 꾸며낸 속임수라고. 그런데도 왜 믿지 않는 거예요? 왜?” “배하린 씨가 나중에 다시 녹음기를 주었어요. 배하린 씨의 설명은 단지 당신 어머니가 거짓말을 강요한 것일 뿐이었어요.” 이연석은 잠시 멍해졌다. 의심이 들었지만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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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0화

“믿어줘요. 배하린이든, 안희연이든, 고현서든, 아니면 다른 어떤 여자든, 나는 그 사람들과 완전히 끝났어요.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이연석은 앞으로 다른 여자가 자신을 쫓아다니더라도 철저히 피할 거라고 다짐했다. 필요하다면 외출할 때 가면을 쓸 정도로 신경 쓸 각오였다. 하지만 그의 진지한 설명과 확신 가득한 말에도 불구하고 정가혜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당신을 믿지 않아요.” 그녀는 이연석과의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항상 그를 둘러싼 여자들 때문에 좌절했다. 지금의 그녀는 그의 약속만 들었을 뿐, 그 약속이 진정한 안전감을 주지는 못했다. 그를 믿기 어려웠고 또다시 믿음을 선택한 후 반복되는 실망의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다. 정가혜의 믿지 않는다는 한 마디에 멍하니 서 있던 이연석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 아이를 정말로 지울 거예요?” 정가혜는 눈을 내리깔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침묵은 이연석의 눈에 동의로 비쳤다. “정가혜, 당신 심장 좀 열어보고 싶어. 도대체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 오해가 풀렸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냉정했다. 그건 그녀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이연석은 숨을 쉴 때조차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심장을 죄어오는 고통에 이연석은 천천히 정가혜를 놓아주었다. “당신이 원한다면 아이를 지워. 하지만 난 죽더라도 다시는 당신을 보러 오지 않을 거야.” 그는 말을 마치고 한 걸음 물러섰다. 붉어진 눈으로 정가혜를 한 번 더 깊이 바라본 후 수술실을 떠났다. 그가 사라지자 정가혜는 수술대 옆을 붙잡고 천천히 주저앉았다. 병실 밖에서 이연석이 분노에 찬 채 떠나는 모습을 본 노현정은 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가혜야.” 노현정은 정가혜의 곁에 무릎을 꿇고 손을 그녀의 어깨에 올렸다. “생명은 소중한 거야. 연석 씨와의 갈등 때문에 아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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