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 말고 다: Chapter 471 - Chapter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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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1화

서준혁의 목소리는 쉰 듯했고 말투도 전혀 달랐다. 신유리는 단번에 그가 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녀는 서준혁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신유리는 이 자세로 어렵게 말을 꺼냈다. “서준혁, 너 취했어.”“응, 알아.” 서준혁은 그녀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신유리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화인 그룹 쪽 일에 대해 들었어...”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서준혁은 그녀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뜨거운 숨결이 목덜미에 닿았다. 많이 마신 모양인지 목소리가 꽤나 잠겨있었다.“듣기 싫어.”“이것 말고는 할 말 없어?”서준혁은 눈을 감은 채로 신유리를 벽에 밀어붙이며 본래 좁은 공간이 더욱 좁게 느껴졌다.“일, 서창범, 이신 듣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일들만 내 앞에서 얘기하잖아. 내가 좋아할 만한 말을 할 수는 없어?”신유리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그를 일깨워줬다. “너 취했어. 석민 씨나 서진 씨 불러줄게.”“그럼 손민수는?” 서준혁이 갑자기 물었다. 다만 신유리의 허리를 감싸안고 있는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자신도 깨닫지 못했다. 그는 눈을 번쩍 들고 신유리를 쳐다봤다.“아까 우서진이 말했잖아. 손민수가 돌아온다고, 손민수를 보면 넌 무슨 말할 거야?”신유리는 잠시 멈칫하더니 물었다. “내가 손민수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그녀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게다가 조금 전 우서진이 손민수에 대해 일부러 언급한 것도 떠올렸다.서준혁의 손끝은 굳어버렸고 큰 폭풍을 일으킬 듯했지만 이내 억눌러버렸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손민수랑 만났잖아, 좋아했고.”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덧붙였다. “그때 우리 사귀고 있었어.”신유리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손을 들어 서준혁의 손을 뿌리쳤다. 서준혁의 한마디는 눈가에 고였던 눈물을 금세 마르게 했다. 모든 감정이 사라진 채 차가움과 냉소만 남았다.그녀는 서준혁을 쏘아보며 말했다. “서준혁, 모든 사람을 너처럼 더럽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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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2화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서준혁의 쉰 목소리가 들렸고 신유리는 그저 피곤하기만 했다. 그녀는 그만 떠나고 싶었고 서준혁과 거리를 두고 싶었지만 그는 신유리를 꽉 잡은 채 고집스럽게 놓아주지 않았다. 신유리는 마음이 한없이 허탈했다. 서준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이 상황이 우습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가 서준혁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이 순식간에 하찮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가 그녀의 뺨을 세게 내리치며 네가 자초한 일이라고 조롱하는 것 같았다. 신유리는 빤히 앞을 쳐다보았고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천천히 붉어졌다. “서준혁, 우리 이제 그만하자. 더 이상 너를 어떻게 대할지 모르겠어.”그녀는 서준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고 억울하게 지낸 지난 몇 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가장 순수하고 깨끗했던 신유리의 감정을 서준혁은 무시하고 짓이겼다. 그는 항상 마음대로 그녀를 판단했고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신유리는 마치 모든 감정이 사라진 듯한 공허한 눈빛으로 서준혁을 바라보았다. “네가 나를 이토록 역겹게 볼 줄은 몰랐어.” “아니야... 다 내 잘못이야, 나 때문이야, 내가 너무 어리석었어...” 서준혁은 신유리의 초점을 잃은 공허한 눈빛에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 타들어 갈 것 같은 고통이 심장에서부터 퍼져나갔다. 숨도 못 쉴 정도로 힘들었다.그의 잘생긴 얼굴은 고통에 휩싸였고 신유리를 잡고 있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신유리는 이내 그의 손을 뿌리쳤다.그는 마치 땅에 뿌리를 내린 듯 움직이지 못하고 신유리가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내 허리를 굽히며 가슴을 움켜잡더니 깊게 숨을 내쉬었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절망과 고통에 그는 무기력해진 채 시야조차 흐려졌다. 룸 안에 방금 전까지 남아있던 뜨거운 열기는 무형의 칼날이 되어 서준혁의 마음을 찔렀다. 신유리는 술집을 벗어나 역겨운 공간에서 멀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살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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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3화

우서진은 서준혁이 이미 사흘째 회사에 모습을 비추지 않고 있다고 말을 했다.집에도 그의 흔적은 남겨있지 않았고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도 받지도 않으며 서준혁이 갈만한 익숙한 곳들을 다 찾아가 봐도 그를 찾을수는 없었다.신유리는 우서진의 말들을 듣고는 거실에서 한참동안이나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손민수가 뒤에서 몰래 그렇게나 많은 나쁜 짓을 벌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고 서준혁이 조용히 자신을 대신해 처리하고 해결해준 사실도 당연히 몰랐다.그때 신유리는 갓 스무 살이 넘은 대학생이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학생일 뿐이라 손민수가 정말 그런 물건을 가지고 학교로 들어왔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20살의 신유리는 여리고 나약하고 담이 작은 그저 대학생이었으니까.그녀의 유일한 용기들은 전부 서준혁을 좋아하는 마음에 부어 부렸고 다른 일에는 좀처럼 나서지를 못했다.신유리는 소파에 앉아 자신을 보호하려는 듯 무릎을 잔뜩 웅크린 채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우리 사이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오해들이 더 남아있으려나?]오해들은 이젠 제각기로 흩어져 바닥에 떨어져버린 퍼즐 조각 같아서 다시 주워서 붙이려고 해도 어려운 일이었다.-신유리가 럭셔리 하우스에 도착하고 경비실에서 등기를 하려고 할 때, 수위아저씨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여기 사시는 분은 안하셔도 됩니다.”아저씨의 말에 신유리는 조용히 대답했다.“저는 이미 다른 데로 이사를 가서요.”수위아저씨는 잠깐 확인을 하겠다고 자리를 비웠고 신유리는 얌전히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신유리 씨 맞으십니까? 여기 사시는 분이라고 명확하게 나와 있네요. 안 바뀌었습니다.”확인을 마친 수위아저씨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다시 말했고 신유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으로 들어섰다.럭셔리 하우스는 부유층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 입주민에 대한 확인절차가 꽤나 까다로운 터라 틀릴 리가 없었다.신유리는 서준혁 집 앞에 서서 복잡한 마음을 억누르며 계속 벨을 눌렀지만 누구도 문을 열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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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4화

시간은 이미 밤 열시가 넘었지만 서준혁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맑았다.“오늘 정말 기뻤어, 네가 나를 찾아줘서. 유리야 보고 싶어, 많이.”신유리는 그의 말을 단호하게 거절했다.“난 너 보고 싶지 않은데?”“나도 알아.”서준혁은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웃더니 호텔 밖의 풍경을 내다보며 계속 말했다.“그냥 보고 싶어서, 너한테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화했어.”신유리는 수화기 너머 들리는 바람 소리에 호흡이 빨라졌고 눈을 지그시 감고는 말했다.“지금 시간이 너무 늦었어.”서준혁은 그녀의 말을 못 들었는지 자신의 할 말들을 마구 해댔다.“내가 한 말 다 진짜야, 술에 취해서 그런게 아니고. 난 정말로 너희들을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어.”“그리고 나 지금 호텔 밑이야, 유리야. 나...”신유리는 그의 말을 뚝 잘라버리며 입을 뗐다.“너 계속 거기 서있으면 우서진 씨는 또 네가 실종이라도 됐다고 생각할 거야.”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서 천둥번개소리가 들려왔다. 신유리는 오늘 비가 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워낙 변덕스러운 날씨라 듣는 둥 마는 둥 했었다.신유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오늘 비가 온댔으니까 유치하게 굴지 말고 돌아가, 서준혁.”“나 유치하게 군적 없는데?”서준혁은 목안에 솜 한 덩이가 막혀있는 것처럼 말을 하는 것이 힘들어보였고 한 자 한자 천천히 대답했다.“그날 네가 나보고 너를 좀 놔달라고 했지? 어쩌지, 나는 못할 것 같은데.”“유리야, 난 못해.”“욕하고 때리고 함부로 막 대해도 되니까 내쫓지만 말아줘, 나를 죽이는 것보다 더 아프니까.”서준혁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서 있던 옛날과는 달리 힘없고 맥이 빠진 소리가 났다. 오후에 깨어났을 때 우서진에게 신유리가 떠났다는 말을 듣고 그는 바로 이곳으로 달려왔다.미친 사람처럼 신유리를 찾았고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들이 이제는 다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서준혁은 늘 자신이 통제력이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라온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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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5화

신유리는 임아중의 말에 하던 일을 멈추더니 담담하게 말했다.“병이 다 나으면 퇴원 해야지, 그게 뭐 놀랄 일이야?”“하긴 네 말이 맞네. 근데 우서진 씨가 말하길 서준혁 씨 지금 퇴원하면 안 된다던데? 서준혁 씨가 하도 퇴원하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어쩔 수 없었대.”임아중은 신유리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했다.서준혁이 신유리를 위해 서창범을 법정에 내세웠을 순간부터 이 업계의 사람들에게서 그에 대한 평가는 양쪽이 현저히 달랐다.나이가 조금 든 어른들은 서준혁이 양심도 없는 미친 놈이라는 평가를 해댔고 조금 젊은 사람들은 서준혁이 멋있다고 생각을 했다.서준혁의 일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이 늘어나 사실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몇몇 사람들은 신유리를 부러워했다.그러나 신유리는 딱히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고 자두와 자신의 짐을 다 챙긴 뒤, 몸을 돌려 임아중을 보며 말했다.“너 승직해서 쏘겠다던 밥은 못 얻어먹겠네, 미리 축하해.”임아중은 그제야 대화의 주제를 돌려 아쉬워하며 대답했다.“도저히 방법이 없어, 설을 쇨 때쯤에야 승직할 것 같은데?”“아 맞다! 이신 씨 다음 달에 성남에 돌아와 업무를 본다고 들었는데, 두 사람 그래도 한번은 얼굴 보나 했는데 이렇게 기회를 또 놓치겠네.”신유리는 임아중의 말에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해외에 나갔다가 곧 돌아올 거야, 평생 못 보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걔가 해외로 오면 밥이나 사줘야지.”임아중은 신유리의 말에 눈을 깜빡거리며 다가와 물었다.“너랑 이신 씨는 언제쯤 잘 될건데? 언젠데?”신유리는 요즘 기분이 별로 안 좋아 그와의 연락을 끊은지 꽤 되는 바람에 임아중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임아중은 신유리가 아무 말을 하지 않자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지금 그건 무슨 표정이야? 너랑 이신 씨 설마 싸운 거니?”신유리는 임아중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부정했다.“아니, 그건 아니고.”“깜짝이야, 난 또 두 사람 싸운 줄.”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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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6화

서준혁은 여전히 시선을 신유리에게 고정한 채로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나랑 신연 씨가 일을 같이 하기로 해서 앞으로 나도 이쪽에 있을 거야.”신유리는 신연에게서 이 일을 알고 있었지만 한 가지, 서준혁이 먼저 여기에 오겠다고 말한 것은 모르고 있었다.그녀는 서준혁의 말에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입을 뗐다.“그건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잖아, 너랑 신연 씨 일이지.”신유리는 말을 마치고 바로 자두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고 자두는 그녀의 품에 안겨 서준혁을 보며 뭐라고 말을 하려는 듯 옹알이를 해댔다.그녀는 이미 기분이 팍 상해 아무 말 없이 자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고 아주머니에게 월급을 쥐어주고는 떠나라고 말을 했다.경계심도 없이 옆에서 뭐라고 하면 다 믿고 자두와 놀게 하는 사람, 그리고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그런 행동을 계속 하는 사람은 자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신유리는 곁에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아주머니는 신유리에게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신유리의 태도는 완강했고 아주머니는 그런 그녀에게 불만이 생긴 듯 말했다.“신유리 씨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서 그랬어요. 그리고 그 사람 딱 봐도 하율이 아빠 같아서 제가 그런 일을 한 거고요. 그냥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슥 제공하려고 그랬어요. 혼자서 애를 키우고 아빠 없이 자라는 것도 아이에게는 안 좋잖아요.”아주머니의 말을 들어주면 들어줄수록 기분이 더 나빠지는 신유리는 얼른 아주머니더러 집에서 떠나라고 말을 했다.고개를 돌려 보니 자두는 소파에 앉아 홀로 놀고 있었고 신유리는 그런 아이의 모습에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그때는 신기철과 이연지가 이혼을 한 상태라 신유리는 외할아버지 집에서 지냈다.이웃들은 거의 다 신유리의 집 사정을 알고 있었던 터라 신유리를 볼 때마다 동정 가득한 눈빛을 보냈었다.신유리는 그때 어린 마음에 왜 남들은 다 있는 부모님이 자기는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속상하고 화가 났다.시간이 흘러 점점 자라나다보니 그런 생각도 점차 사라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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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7화

그 꽃은 파란색과 보라색의 잘 어울리는 아이리스 꽃다발이었는데 예쁜 포장지에 싸여져 있어 더 아름다워 보였다. 게다가 오늘 신유리가 입은 연보라색 셔츠와도 너무나 잘 어울렸다. 그녀는 꽃다발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모습을 본 서준혁이 말했다. “네가 아이리스 꽃을 좋아한다고 한 말 기억해.”신유리는 꽃을 좋아하지만 수많은 꽃 중에 아이리스 꽃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어릴 때 이연지과 외할아버지가 꽃을 키우기를 즐겨하셔서 신유리는 늘 작은 의자를 끌어다 놓고 꽃을 보았기 때문에 꽃에 대한 반감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어 만지거나 직접적으로 접하지는 않았었다.게다가 꽃은 서준혁이 건네준 것이니 신유리는 받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신유리는 결국 마지막까지 그 꽃다발을 받지 않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밖에 천천히 황혼이 지고 있었다.어제 도우미 아줌마가 퇴직했기 때문에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자두를 근처의 보육원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사실 자두의 나이로는 보육원에 맡길 수 없는 것이 정상이지만 신유리와 그곳의 책임자는 어느 정도 아는 사이여서 어찌 저찌 맡길 수 있었다.자두를 데리러 가는 길 내내 서준혁은 신유리의 뒤를 따랐고 책임자는 외국인 여성이라 서준혁을 발견하고는 농담을 던졌다. “자기야, 이분은 누구? 남편인가요? 정말 멋져 보이네요.”신유리는 책임자의 물음에 얼른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그럼 당신의 남자친구군요. 둘이 잘 어울리네요.” 신유리는 할 말을 잃었고 조용히 자두를 받아 안으며 고개를 들었을 때, 서준혁이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서준혁의 눈에는 끝없는 애정과 부드러움이 담겨 있는 듯했지만 신유리는 마음이 이상해져 그의 시선을 피하며 곧바로 떠났다. 최근에 변태 스토커가 동네를 누비고 다닌다는 뉴스가 떠들썩했기에 신유리는 자두를 보육소에 혼자 두는 게 걱정되었다. 그래서 차라리 회사 일을 집으로 가져와 하려고 결정을 내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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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8화

갑작스러운 사고에 신유리는 입맛이 없어져버렸고 잔뜩 긴장한 채로 경찰에 상황을 설명한 뒤,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서준혁 또한 굳은 얼굴로 어딘가로 몇 통이나 전화를 걸더니 신유리에게 다가오며 말했다.“사건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내가 있을게, 아마 상습법인 것 같아. 너랑 자두만 집에 있으면 내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신유리는 핸드폰으로 최근 뉴스를 확인했고 그 변태는 이미 이 주위에서 꽤 오랜 시간을 돌아다녔지만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창문에 가득 묻은 페인트는 사람을 불러 해결을 마쳤지만 흔적은 조금 남게 되었다. 신유리는 서준혁과 거실에 있는 모든 창문을 꼼꼼하고 세게 잠가버렸다.지금 이 상황에 신유리는 자꾸만 예전에 주국병이 진 빚으로 인해 사채업자가 들이닥치던 일들이 생각이 나 더욱 두려웠다.서준혁이 집에 남겠다고 결정했으니 신유리도 그를 내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필경 무서운 변태보다는 서준혁이 더 믿음직하니까 말이다.게다가 집에 어린 자두로 있어 홀로 긴급 상황을 대처하기보다는 남자가 한명이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하지만 벌어진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심각한 어른들 뒤로 해맑은 자두는 방실방실 웃고만 있었다.서준혁이 해준 이유식을 먹고 나서는 혼자 땅바닥에 앉아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자두는 요즘 그가 사온 장난감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곰 인형을 손에 들고는 뭐라는지 모를 옹알이를 하고 있었다.자두의 모습을 본 서준혁은 아이를 번쩍 안았고 자두도 안기자마자 서준혁의 목을 꽉 감싸며 애교를 부렸다.서준혁은 자두가 자신을 어떻게 막 대해도 그저 웃기만 하다가 옆에 있는 신유리를 달래며 입을 열었다.“아까 통화하면서 물었는데 이 동네 치안이 그래도 꽤 괜찮대, 방금 꺼는 그냥 겁주기였을 거야.”“겁?”신유리가 그의 말에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그래도 조심하는게 좋을 거야, 이미 그 사람은 우리를 노리고 있을 수도 있어. 너만 괜찮다면 내가 사는데 같이 가서 지낼래?”서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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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9화

신유리는 바뀌어가는 서준혁의 표정에 왜인지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핸드폰을 다시 건네받은 신유리는 자두를 안아 들었고 아이가 조금씩 걸음마를 떼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서준혁이 깐 카펫은 유난히 두꺼워 넘어진다 해도 다치지 않으니까.서준혁은 자두가 핸드폰 영상 속 강아지 한 마리에게 아빠라고 부르면서 자신에게는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 사실에 혼이 나간 듯 앉아 있다가 나지막한 소리로 신유리에게 물었다.“저녁 뭐 먹고 싶어?”“아무거나.”신유리는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는 대답을 했지만 서준혁은 요 며칠 반찬과 국, 심지어는 자두의 이유식까지 다 다르게 만들어주었다.자두의 입맛을 알아차린 서준혁이라 밥 먹을 시간만 다가오면 아이는 먼저 밥상으로 다가가 숟가락을 들고 가만히 밥을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신유리도 그가 한 모든 음식들이 다 자신의 입맛에 맞춘 사실을 발견했지만 유일하게 하나 바뀌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두에게 아빠라고 부르라고 가르쳐주려는 서준혁의 의지였다.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아빠라는 단어를 배워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교육을 하고 있었다.여전하게도 몇 개의 외국어들을 막 섞어가며 가르치고 있었지만 서준혁 또한 고집이 센 사람이라 어떻게 해도 그 영상은 자두에게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다.그러나 서준혁이 자두에게 매달린 뒤로 신유리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일을 할 수가 있었고 그러는 도중 자두에게 언어적인 재능이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서준혁 또한 이 점을 알아차렸는지 계속 몇 개 국어로 자두랑 소통을 하려고 했고 신유리는 가끔 서준혁이 정말로 자두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준다는 착각이 들었다.그 순간,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에 신유리는 정신을 차렸고 발신자는 이신이었다.“나 이제야 뉴스 봤는데 넌 좀 어때?”그는 신유리 집 주위에 발생하는 변태 일을 제일 먼저 물었다.“괜찮아, 요 며칠 별 다른 일은 없어.”신유리가 대답했다.“그럼 됐네.”이신은 머뭇대다가 신유리에게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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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0화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침 마트가 있어 두 사람은 자두의 분유를 사러 가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저녁에는 먹고 싶은거 있어?” 서준혁은 신유리에게 저녁 메뉴에 대해 물었다. 최근 정기적으로 집안청소를 청소부에게 맡겼고 먹고 마시는 것은 다 서준혁이 책임지고 있었다. 사실 서준혁 또한 밥을 잘하지 못했지만 스스로 인터넷을 뒤져 레시피를 찾고 영상을 보며 갖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요리에 꽤 재능이 있었는지 그가 한 음식들은 신유리는 처음에는 인정하지는 않았지 서준혁이 만들어준 이유식을 너무나도 맛있게 먹는 자두를 보고는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중식 아니면 한식? 더 아니면 서양식?” 그는 신유리에게 끈질기게 물었고 신유리는 하는 수 없이 대답을 했다. “다 괜찮아.” 그러자 서준혁은 자두에게 시선을 돌리며 아무것도 모르는 자두에게 물었다. “네가 한번 말해봐, 엄마는 뭐가 먹고 싶대?” 자두는 눈을 깜빡이며 어딘가를 가리키더니 옹알거렸다. “저거! 줘!” 아이가 가리킨 방향을 본 서준혁의 눈에 잘 구운 닭 한 마리가 들어왔다. 곧 자두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단호히 말했다. “안 돼, 저건 네가 못 먹는 거야.” 자두는 누구를 닮은 건지 이상하게도 튀김이나 구운 음식을 먹기 좋아했다. 전에 혼자 몰래 서준혁이 상 위에 놓은 구운 닭고기를 먹고 난 뒤부터는 닭고기를 볼 때마다 사달라고 서준혁에게 졸라댔다. 서준혁은 처음에 자두가 원하는 대로 다 사주다가 몇 번이나 반복이 되자 아이의 음식 습관이 잘못될까 봐 마음을 굳게 먹고 사주지 않기로 다짐했다. 자두는 서준혁의 단호함에 속이 상한 듯 그를 끌어안고는 칭얼거렸고 신유리는 옆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었고 왜인지 모르게 착잡해졌다. 신유리가 업무 때문에 아이를 돌 볼 시간이 없어 자연스럽게 서준혁이 자두랑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는 아이와 함께 놀아주고 걸음마도 연습하며 각종 언어까지 가르쳤다. 신유리는 당연하게도 요즘 자두가 서준혁을 어색해하기는커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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